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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온몸으로

이명남 목사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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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명남
출판사 대한기독교서회
발행일 2019-10-05
규격 신국판 | 312쪽
ISBN 978‐89‐511‐1981‐1 9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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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정의와 평화, 통일과 인권을 위해 한평생을 헌신한 이명남 목사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회고록 『인권, 온몸으로』를 출간했다. 이 회고록에는 일제 말기에서 태어나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살아온 노 목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올곧은 목소리로 역사의 현장을 지키다”

1941년 대전에서 태어난 이명남 목사는 충남 당진교회에서 위임목사로 목회한 뒤 은퇴했으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위원장과 한국교회인권센터 이사장, 전국목회자정의평화운동실천협의회 상임의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문위원 등을 지내며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 평생을 바쳐왔다. 이외에도 당진교회에서 31년간 사역하며 통일운동, 사형제도 폐지 등에 관심을 갖고 헌신해왔다. 또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부회록서기 외에 총회 특별재판국장, 특별재심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총회의 여러 부서에서 활동했으며 2011년 은퇴까지 총회 인권위원회에서 위원장, 총무, 위원 등으로 18년간 섬기며 예장 교단의 인권운동을 이끌어왔다.
사회운동과 목회를 병행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그는 이 둘을 훌륭하게 해냈다. 이 목사는 이와 관련, 세상에서 실패하고 목회를 시작하면서 목회만은 실패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늦더라도, 아무리 먼 곳에서 있더라도 새벽녘에는 반드시 당진에 도착해 있었다.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목회와 관련해서는 단 5분도 늦어본 적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이명남 목사는 지금껏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고자 했고, 약한 사람들의 편에 서고자 한 것이 전부였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힘 있는 사람들과 한 패가 되지 않았고 약한 자들을 차별하는 자리에 서지 않음으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옳은 것에 ‘예’ 하고, 그른 것에 ‘아니오’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명남이라는 한 인물의 개인사 이전에 1980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전개된 민주화, 평화, 통일, 인권운동 속에서 한국교회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담아낸 역사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가히 1980년 이후의 한국교회 민주화운동사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순을 앞두고 있는 이명남 목사는 지난해인 2018년 췌장암 판정을 받은 후 투병 중에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과 싸우는 일은 정말이지 고통스러웠다면서 자신 곁에는 늘 경찰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는데 그 덕분에 항상 바르고 투명하게,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살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하나님이 목숨을 연장해주시는 날까지 그동안 받은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고 싶다고 전했다.




#지은이_이명남
대전신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나와 당진교회에서 위임목사로 목회한 뒤 은퇴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충남노회 노회장과 예장총회의 부회록서기, 인권위원장, 사형폐지위원장 등으로 교단을 섬겼고,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위원장, 일치위원회 위원장, 한국교회 인권센터 이사장 등을 역임하여 교회의 일치와 선교를 위해 일했다. 또 전국목회자정의평화운동실천협의회 상임의장과 재일동포인권선교위원회 위원장, 민주화운동 관련 명예회복분과위원회 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문위원 등으로 섬기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향상, 남북관계의 증진 등을 위해 헌신했다. 이뿐만 아니라 당진시 승격추진위원회 위원장, 충남환경운동 상임의장, 지방분권운동 충남지부 공동대표, 당진문화재단 이사장, 충남문화재단 이사장(현) 등을 지내며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기여했다.




제1부 1940-1979
1940 전쟁의 시대 18
1950 한국전쟁 21
1954 교회와 만나다 22
1959 교회 분열의 충격 26
1959 그룬트비의 꿈 28
1961 긴 신학공부의 시작 29
1963 결혼과 가족 32
1972 첫 목회지 옥천 동이교회 37
1978 임실 성수교회, 사회운동을 만나다 40

제2부 1980-1986
1980 당진교회 부임 44
1980 당진새마을금고 유치 48
1983 다시 광주를 말하다 50
1984 민추협, 민민협 조직 53
1984 목협의 탄생 54
1984 전두환 일본 방문 반대 56
1984 목협 신앙고백 59
1985 야당 돌풍 ‘2·12총선’ 65
1985 광주항쟁 5주년 68
1985 학원안정법 저지 69
1985 목회자시국선언 70
1985 강력한 재야 기구 ‘민통련’ 73
1985 김근태 고문은폐사건 76
1985 운동권 삼부자 81
1986 기도 내용까지 규제하는 국보법 86
1986 개헌 서명운동 확산 87
1986 진실을 갈구하는 죽음의 행렬 90
1986 부천서 성고문사건 93
1986 정신법 저지 운동 94
1986 한미관계에 관한 성명 95
1986 건대사태 102
1986 들불처럼 번지는 민주화 불씨 104
1986 민정당사 기습시위 113
1986 KBS-TV 시청료 거부운동 118

제3부 1987
1987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124
1987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 132
1987 목협 의장으로 추대‐독재타도 단식기도회 136
1987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 143
1987 이한열 군의 죽음과 6・10국민대회 145
1987 천안 6・10국민대회 151
1987 6·26평화대행진 156
1987 6・29선언 159
1987 6・29를 넘어 정권 퇴진으로 164
1987 양 김 씨의 분열과 대선 패배 168
1987 노회장으로 노회회관을 건축하다 171

제4부 1988-1997
1988 최덕수 열사를 보내며 174
1989 문익환 목사 방북 176
1989 통일의 종은 언제 울리나 183
1989 전교조 창립 183
1989 충남 지역 전교조 조직 186
1989 난공불락의 벽, 국가보안법 190
1990 3당 합당 193
1990 수서 비리 은폐 조작사건 195
1991 강경대 군 치사사건 197
1991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200
1992 이지문 중위 양심선언 203
1992 김영삼 대통령 당선 205
1992 비전향 장기수 석방운동 206
1993 사형제도 폐지운동 211
1996 KNCC 정의와인권위원회 위원장 218

제5부 1998-2007
1998 민변, 서준식 씨 등에게 인권상을 수여하다 224
1997 재일동포 인권운동 226
1997 노근리학살대책위원들을 만나다 230
2000 평양 방문과 〈6・15 남북공동선언〉 241
2002 효순·미선 양 사건 251
2003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 254
2004 예장 인권운동의 위상에 대한 고민 256
2011 당진시 승격을 돕다 265

제6부 2008-2019
2009 국민훈장 목련장 268
2010 어느 군수와의 인연 269
2011 한기총 탈퇴운동과 교회 개혁 270
2012 허병섭 목사를 보내다 273
2016 목회자시국대책협의회 275
2017 당진문화재단 이사장 287
2018 양승조 상임선대위원장 및 명예인수위원장 288
2018 초연하게 맞고 싶은 병 289
2019 충남문화재단 대표이사 290

에필로그 _절박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다 292

부록_네 가지의 고민 또는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