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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0 - 1906
- 1907 - 1927
- 1928 - 1938
- 1939 - 1947
- 1948 - 1972
- 1973 - 1986
- 1987 - 현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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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회의 창립 목적은 "조선어로 기독교 서적과 전도지와 정기간행물의 잡지류를 발행하여 전국에 보급하기 위하여"라고 기록되어 있다. 창립 이후 20여 년 동안 기독교서회의 기독교 문서운동은 복음 전파로 개종자들을 얻음과 동시에 신문명을 소개하여 계몽을 돕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외국 서적들 가운데 기독교를 알리는 간단한 내용의 책들과 신앙생활의 방법, 신조들을 가르치는 책자들을 많이 출판하였고 대량의 전도지를 인쇄하여 널리 반포하였다. 서회는 밀러의 [산수책]을 비롯하여 일반교양, 위생, 계몽, 어린이, 어학, 지리, 상식. 소설, 사상서적 등 다방면의 책들을 발행하여 한국 민족의 근대화를 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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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 |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 기독교 문서 출판을 취한 '三文社'를 설립하고, 배재학당 지하실에 '미이미활판소' 설치 |
1889 |
미이미활판소 운영을 위해 중국에서 올링거(F. Ohlinger) 선교사 내한 |
10월, 장로교 의료선교사 헤론(J. W. Heron)의 제안으로 서울 정동 언더우드 목사 사택(그레이하우스 자리)에서 장로교회와 감리교 선교사들이 기독교 문서 출판사 설립을 의논하기 위해 비공식 회합 |
1890 |
'The Korean Religious Track Society' 창립(6월 25일) |
초대 회장 올링거, 부회장에 헐버트(H. B. Hullbert), 서기 언더우드 (H. G. Underwood), 스크랜튼(W .B. Scranton)을 선임하고, 팬윅(M. C. Fenwick), 아펜젤러(H. G. Appenzeller), 게일(J. S. Gale), 레이놀즈(W. D. Reynokds), 기포드(D .E. Gifford) 등 선교사 12명으로 구성된 재단이사회를 조직하고 헌장을 통과시킴. 임시 사무소는 빈톤(C. C. Vinton)의 집에 설치 |
6월, 최초의 간행물로 언더우드 선교사가 번역한 [셩교촬리(聖敎撮理)], [쟝원량우샹론(張袁兩友相論)] 발간 |
1891 |
1월, The Korean Religious Track Society의 한국명칭을 '죠션셩교셔회'(朝鮮聖敎書會)로 결정 |
1892 |
한국 최초의 노래집이자 찬송가인 [찬미가] 발행 |
1893 |
서적 판매소를 전국 세 곳으로 확장하여 서울은 빈톤, 평양은 마펫, 부산은 베어드가 관리 |
2대 회장으로 언더우드 취임 |
1894 |
한국 최초의 번역 소설 [인가긔도] 등 12종 발행 |
1895 |
존 버니언의 [텬료력뎡] 발행 |
1896 |
8월, 고종 황제 탄신을 축하하는 예배에서 부를 찬송가 6곡을 만들어 발표 |
1897 |
노병선의 [파혹진션론] 발행 |
한국 최초의 한영, 영한사전인 [한영 뎐] 발행 |
1899 |
한국 최초의 생리학 교과서인 [젼톄공용문답] 발행 |
1900 |
최초의 공식 사무실을 성서공회 건물 안에 설치, 독자 건물을 위한 모금운동 착수 |
1903 |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밀러(E. H. Miller)의 [산수책](Elements of Arithmetic PartⅠ)을 비롯하여 폐병, 회충 등의 예방 치료, 태모의 위생에 관한 책들 출간 |
1904 |
길선주의 목사의 [해타론] 발행 |
1905 |
기독교서회 대지 구입자금으로 국내외 선교사 150명이 약 6,000원의 기부금 찬조 |
서적 판매 25만부 돌파 |
[계단공과] 발행 |
총등 산수 교과서인 [삼산초학] 발행 |
옥중전도문고(The prison Library) 발행하여 이원긍, 이상재, 이승만 등 저명인사 개종에 도움 |
1906 |
종로 2가 84-8 소재의 대지 및 목조건물을 1,586원에 매입 |
초급 지리 교과서인 [초학디지]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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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2가에 자리잡은 기독교서회는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외국의 원조, 한국인들의 이례적인 기독교 수용열 그리고 매서인을 비롯한 다양한 방법의 전도와 선교의 파격적인 성공이 어우러져 국내에서 기독교계 안팎을 막론하고 가장 큰 근대적 출판사로 성장하였다. 3.1운동 직후 우리 사회에는 민족 자결의식과 기독교에 관한 호기심, 그리고 교육열이 전례없이 고조되었다. 국민들의 지식수준은 높아졌고 이로 인해 독서인구도 늘어갔다. 좋은 서적을 많이 출판해 줄 것을 바라는 요청과 기대가 날로 커져가는 가운데 서회는 기독교의 부흥운동에 발맞추어 전도지를 비롯한 신학서적과 수준 높은 일반 교양서적 발간에 박차를 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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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 |
종로 2가 건물을 수리하여 이전 |
서회의 한국 명칭을 '죠션예수교서회'(朝鮮耶蘇敎書會)로 개칭하여 현판 |
중학교 수학교과서인 [산학신편] 발행 |
1908 |
한국 역사책인 [대한력], 생물학 교재 [식물도셜], 천문학 교과서 [텬문략해] 발행 |
장로교와 감리교 공용 [찬숑가] 발행. 이후 1931년까지 40종 발행 |
1909 |
2월, 한국인 이용균(이모세) 씨를 판매부장으로 채용 |
1910 |
초대 총무로 구세군의 본윅(Gerald Bonwick) 사관이 취임하여 서회의 기본 조직을 갖춤. 그는 27년간 서회를 위해 헌신함 |
세계사 책인 [만국통감](총4권) 발행. 1권은 1910년, 2-3권은 1911년, 4권은 1912년 발행 |
1905년 창간된 The Korea Mission Field를 맡아 발행하기 시작. 1942년까지 발행함 |
한 해 동안 전도용 소책자 21만 부, 책 3만 4천 부, 전도지 318만 부 발행 |
1911 |
종로2가 건물을 2층 양옥으로 신축하여 개관 |
한국 초기의 결혼관을 보여 주는 [고영규전] 발행 |
1912 |
1896년부터 임의로 '서회주일'을 지키는 교회들이 있었는데, 매년 1월 셋째 주일을 '서회주일'로 지켜 기도하며 헌금할 것을 전국 교회와 기관들이 총회적으로 결정 |
박봉의 교역자들을 위한 '교역자 문고 운동'을 전개하여 '목사장서'(54권 1세트)를 배포 |
대화식 비교종교론 [성산명경] 발행 |
1913 |
[주일학교 연구] 발행 |
기도월력과 선교사 수첩 발행 |
1915 |
주간지 [긔독신보](기독신보) 위탁 발행 - 장로교와 감리교의 통합 주간지(1933년 폐간) |
1916 |
조선예수교서회의 영어명칭을 'The Korean Religious Book and Track Society'로 개칭 |
1917 |
성서잡지 Bible Magazine 발간 |
1918 |
1월, [주일학교 연구](Sunday School Magazine) 계간 발행 |
[성서연구지], [성경잡지], [신학지남] 등 정기간행물 위탁 간행 |
1919 |
조선예수교서회의 영어명칭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The Christian Literature Society of Korea'로 개칭 |
장로교 최초의 목회학 저서인 [목사지법] 발행 |
연합공의회 자금으로 [합동찬송가] 발행. 무곡찬송가, 유곡찬송가 발간 |
1920 |
선교사들을 위한 무료 계간지 The Korea Bookman 발행 |
산술책인 [고등산학신편] 발행 |
1921 |
기독교서회 '대약진 운동' 전개 |
[이솝우언] 발행 |
1922 |
한국 최초의 비교종교론 저서 [만종일련] 발행 |
1923 |
기독교서회 새 사옥 건축 사업 입안 |
1924 |
스와인하트(M. L. Swinehert) 대령 미국으로 건축비 모금운동을 위해 귀국 |
조직적인 도서 출판을 위해 편집부를 신설하여 편집부원 W. M. 클라크, R. A. 하디 목사 임명, 보조원 김필수, 오천영, 최성현, 김태원 목사 임명 |
1925 |
종로2가 건물 인근의 자투리 땅을 추가 매입 |
1926 |
상해에서 활동중이던 군(Gunn)이 새 건물 설계를 맡음 |
신간 63종을 비롯 총 97종, 140여만 권의 서적 출판 |
1927 |
[간이편물법]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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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는 일본의 침략정책이 노골화됨에 따라 한국 민족과 한국 교회가 일본의 강제와 억압 아래서 신음하였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유화정책을 종영하면서 교회와 교회 관련 학교, 기관에 대한 감시와 압력을 가중시켰다. 한편 교회에서는 자발적인 개인 전도열이 식어 갔고 한국인들은 점점 빈곤해졌으며 따라서 교회도 가난해지고 학교 교육을 받는 일도 힘들어졌다. 기독교서회 역시 모든 기능이 정지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기독교서회는 신학, 영성의 함양, 사회과학에 관한 다양한 도서들을 출판하였으며 전도지나 그림, 카드, 지도 등을 제작 판매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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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 |
재단법인체 인가 취득 |
32명의 서회 이사중 김필수, 최재학, 전필순, 장락도, 김인영, 차재명 등 6인의 한국인 이사 참여 |
평양신학교 교수들이 번역한 940쪽 분량의 한국 교회 최초의 종합사전 [성경사전] 발행 |
1929 |
사옥 신축공사로 피어선성경학교 임시 사무실로 이주 |
1930 |
전국주일학교연합회와 공동책임으로 월간 [종교교육] 발행 |
스탠리 존서의 [인도 도상의 그리스도], 글로버의 [력사상의 그리스도], 하디의 [신약전서 총론] 등 발행 |
1931 |
종로2가에 5층 높이의 현대식 회관 준공(건축감독 - 북장로회 선교부 스윈하트 대령). 기독교 주요 기관들이 입주함 |
6월, [신뎡찬숑가] 발행 |
1933 |
스털커(James Stalker)의 [그리스도의 행적]을 출판하여 140만 부 판매 |
1935 |
맹인용 [점자찬송가] 발행 |
조선총독부에 의해 [기독신보] 발행권 상실 |
모략에 의해 찬송가 판권 상실 |
C. A. 클라크의 [목사필휴] 발행 |
'50주년을 위한 50원' 기부운동(50/50 모금운동) 전개. 1945년까지 10년 동안 75,000원 목표 |
1936 |
칼뱅에 관한 최초의 단행본 [칼빈의 생애와 그 사업] 발행 |
W. B. 다우슨의 [과학으로 본 성경] 발행 |
1937 |
[성경고유명사사전] 발행 |
잡지 [기독교종교교육] 발행을 주일학교연합회에 이관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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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한글 탄압은 곧 기독교 탄압으로 연결되었기에 서회의 성경보급운동, 쪽복음운동, 한글신문, 주일학교 교재, 찬송가 보급 등은 민족운동이자 정치운동으로 받아들여졌다. 조선기독교서회로 이름을 바꾼 서회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선교사 주관 시대를 마감하고 한국인에 의한 연합기관으로 새출발을 하였으나 일본 관헌의 감시와 관리 아래서 서회 건물의 모든 기물이 수탈당하였고 출판은 일절 중단되었고 그나마 태평양전쟁 선포와 더불의 서회는 적산(敵産) 취급을 받아서 건물이 크게 훼손되었다. 하지만 찬송가 통일을 위한 연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선교운동과 정치운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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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
'조선기독교서회'로 개칭 |
평생회원 확대운동 전개 |
서회가 발행해 오던 주일학교연합회의 [주일학교 소식]을 연합회 해산으로 인해 서회로 이관 |
아동문고 착수 |
1940 |
창립 50주년 기념식(YMCA 대강당과 체육관) 개최. 그동안 700여 종의 서적 발행, 4,470만 권 판매, 단편 전도지 2,800만 매 발행 |
50주년 기념설교집 발행 |
'50/50 모금운동' 5년 만에 5만여 원 모금. 1945년까지 75,000원 목표 |
1941 |
양주삼 총무 취임. 오문환, 백낙준 협력 |
1942 |
5월, 일제가 기독교서회의 재산을 적산(敵産)으로 선언하고 관리인을 파송하여 한국인 직원들을 해고함으로써 출판사업이 중단되고, 비품과 기물들을 약탈당함. 1948년 8월에 적산 조치 해제됨 |
일제의 압력으로 양주삼 총무 사퇴 |
1945 |
양주삼 목사가 미군정의 적산관리인에 의해 서회 관리인으로 임명됨 |
1946 |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의 찬송가 통일을 위한 합동연구위원회 조직. 수입금 중 10%는 세 교단에 주고 3%는 한국기독교연합사업에 보조하기로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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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기쁨을 안고 재건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서회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큰 손실과 타격을 입었다. 특히 1950년 화재로 서회 건물 내 수십만 권의 책이 모두 소실되었다. 일제 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설립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새 시대를 여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살피면서 소망을 가지고 인고의 세월을 견뎌냈다. 한편 해방 전 평신도의 신앙 교양과 영성 함양에 관련된 책들을 위주로 출판하던 서회는 1960년대 이후 한국 신학의 미래를 위해 보다 깊이 있는 신학서적 출판에 무게를 두게 되었고, 이 분야에서 국내의 출판을 대표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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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
3월, 해방 후 최초의 정식 이사회 개최. 이사장 남궁혁 박사, 부이사장 아펜젤러(A. R. Appenzeller), 총무 김춘배 목사, 협동총무 프레이저 목사 임명 |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재단법인 대한기독교서회'로 개칭 |
8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재단법인 인가 취득. 재단이사 명단 : W.A.린턴, 방훈, 남궁혁, M.O.벅클더, 김희운, 김종대, 프래이저, 양주삼, 함태영 |
1949 |
1월, 월간 [기독교가정] 창간. 한국전쟁 중 정간되었다가 1954년 1월 [새가정]으로 복간 |
3월, 프린스턴신학교 명예교수인 찰스 어드만의 성서주석 시리즈 중 [사도행전]을 첫 책으로 발행. 1954년 6월 전17권 완간 |
6월, 한글교육과 문서선교를 목적으로 서회 건물 내에 대한기독교계명협회 설립. 서회는 협회 서적을 위탁 출판 |
8월, 장로교의 [신편찬송가], 감리교의 [신정찬송가], 성결교의 [복음찬송]을 묶은 3교파 공용 [합동찬송가] 발행 |
1950 |
6월, [새벗] 창간호 인쇄 중에 한국전쟁 발발 |
9월, 한국전쟁으로 기독교서회 종로 건물에 화재 발생, 벽돌담과 바닥만 남기고 대부분의 기물과 서적 및 자료 소실 |
1951 |
3월, 2개월 동안 종로 건물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1.4 후퇴와 함께 부산으로 피난, 광복동에 셋집을 내어 임시 사무소로 사용 |
스탠리 존스의 [그리스도와 인간고], 한국인 설교집 [고난의 극복] 등 발행 |
1952 |
1월, 아동잡지 [새벗] 창간호 발행. 편집위원 : 최석주 전택부 표재환 강소천 이희제 |
인쇄시설이 열악하여 대구 및 일본 동경의 인쇄소 이용 |
7월, 부산 창선동 소재 건물을 매입하여 사무실을 개설. 이듬해 화재로 상당수 서적 소실 |
[크리쓰머쓰 각본집] 발행 |
1953 |
[기독교대사전] 간행 계획을 확정하고 수록될 어휘 수집 작업에 착수 |
9월, 서울로 돌아와 2개월간 종로 건물 수리 후 집무 시작. 기독교연합협회 및 기독교방송국이 서회 건물로 이전 |
한국전쟁으로 정간되었던 [기독교가정]을 [새가정]으로 개칭하여 복간 |
1954 |
1월, [기독교대사전] 편집 사업 착수.1958년 조판 |
3월, 프레이저 협동총무 은퇴 및 귀국, 후임으로 감리교 선교사 사우어(Sauer)목사 임명 |
한국전쟁으로 정간된 [기독교가정]의 뒤를 잇는 [새가정] 발행 |
어드만 주석 시리즈(전17권) 완간 |
1955 |
[기독교서회 65주년 및 선교 70년 기념 설교집] 간행 |
한국인에 의한 전 15권의 [신약성서주석] 간행 계획 확정 |
[나운영 데스칸트 곡집] 발행 |
1956 |
2월, 신학교졸업논문상 제정 |
1957 |
월간 [새가정]의 판권과 경영을 가정생활위원회에 이양 |
8월, 월간 [기독교사상] 창간 |
김정준의 [에큐메니칼 운동해설] 발행 |
1958 |
평생회원인 오긍선 박사와 함태영 박사를 명예이사로 추대 |
전국신학대학협의회(KAATS)와 협력하여 신학교재 출판 시작 |
C. S. 루이스의 [내가 믿는 기독교] 발행 |
1959 |
웨스트민스터 존 녹스 출판사의 평신도 성서주석 시리즈를 번역한 [구약성서주석](전14권) 발간 시작. 1969년 완간 |
1960 |
대한기독교서회 70주년. 그간 1,013종의 서적 발행. 총 부수는 5,077만여 권에 이름 |
100인의 집필진이 6년에 걸쳐 [기독교 대사전] 발행. 1972년 개정판 [그리스도교 대사전] 발행 |
[서회 70주년 기념 설교 논문집] 출간 |
[선교 70주년 기념 신약성서주석] 착수 |
[점자찬송가] 1937년 이후 계속 발행 |
교역자 대상의 북클럽 회원제도를 일반 독자에게까지 개방. 북클럽 회원은 10%, 농촌교우들을 위해 12월에는 30% 할인 판매함 |
1961 |
[현대총서] 시리즈 발간 시작. 1975년까지 전 24권 |
4월, 교계 문필자 연수회 개최. 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적과 정기간행물을 비판하고 토론함 |
1962 |
6월, 격월간 묵상집 [다락방] 발간 시작 |
10월, 찬송가연구위원회 설치(위원 : 마경일 안광국 곽안전 안신영 박태준 서정태 오영필 엄요섭) |
선교사들을 위한 통신 형식의 간행물 Korea Calling 발간 |
'평신도신앙총서' 발행 시작. 1993년까지 전 5권 |
1963 |
기독교사상의 글들을 골라 5개 책명으로 편집한 [기독교사상 강좌] 발행 |
1964 |
서회 저작상 제도를 설치하여 매 3년마다 우수한 저작과 번역서의 저자 및 역자를 표창하기로 결정.
제1회 저작상에는 지원용 박사([루터의 사상]), 번역상에는 이창배 씨(밀톤의 [실락원]) 선정 |
그리스도인이 직면하는 현실의 문제에 대한 해설과 해결지침을 다룬 소책자 [생활문고] 시리즈 발간 |
[복음주의 신학총서] 시리즈 발행 시작. 1990년까지 전 33권 |
문서 전도와 병행한 방송 전도를 위해 기독교방송을 통한 프로그램 진행 |
1965 |
선교 70주년 기념 논문인 영문판 [Korea Struggles for Faith]가 16인 집필 논문으로 발행 |
11월, 부산 창선동 건물 매각대금으로 증안동에 3층 규모의 사무소를 신축하여 봉헌 |
1967 |
최초의 한국인 총무이자 해방 후 1대 총무인 김춘배 목사 은퇴, 후임에 조선출 목사 선출 |
[한국의 강단](전10권) 발행 |
6월, 창립 77주년 및 기독교사상 창간 10주년 기념식 개최. 저작상 전경연 박사([로마서 강해]), 번역상 김관석 목사([조직신학]) 수상 |
9월, 점자 잡지 [새빛] 창간 |
12월, [개편찬송가] 발행 |
1968 |
11월, 종로구 연지동의 기독교회관 투자를 위해 부산사무소 매각 |
[새벗문고] 시리즈 발행 시작. 전 34권 |
[계명문고] 시리즈 발행 시작. 전 86권 |
[현대신서] 시리즈 발행 시작. 1991년까지 전 150권 발행 |
1969 |
2월, 대한기독교계명협회와 통합하여 협회는 서회 내에 계명협회사업위원회가 됨. 계명협회 총무였던 심재원 씨가 기독교서회 협동 총무로 취임 |
협동위원으로 이영민, 맹기영, 성갑식 선출 |
11월, 찬송가위원회 요청으로 [개편찬송가]에 부흥성가 20장을 부록으로 첨가 |
1970 |
1월, 서적출판과 임대로 사업자등록증 발급받음. 120-82-00159 |
2월, '현대사상사' 설립. 이듬해 2월 등록신고 |
3월, 서울시 도시계획에 따라 종로2가 건물이 헐리면서 연지동의 기독교회관 3층으로 이전 |
개정된 정관이 문공부의 인가를 얻어 법인 등기 완료 |
11월, 마포구 신수동 93-16번지에 서고 건물 준공 |
1971 |
9월, 월간지 [새벗]을 농민선교회로 이관 |
[현대사상총서] 시리즈 발간 시작. 1993년까지 전 42권 |
9월, 기독교대한복음교회를 회원교단으로 받아들임(장성환 목사 파송) |
1972 |
3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구세군을 회원교단으로 받아들임 |
5월, 종로2가 서회 회관 건립 기공식 거행(지하 2층, 지상 12층으로 계획) |
7월, 협동총무 곽안전 선교사 은퇴하여 미국으로 귀국 |
9월 '故 채필근 목사 기념 저작상' 제정 |
한국 개신교 선교 70주년 기념 [신약성서주석] 완간 |
10월, 서회와 신학교육위원회 공동저작으로 [그리스도교 대사전] 간행. [신약성서주석] 완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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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출판을 위한 해외 선교부와 외국 교회의 보조가 눈에 띄게 줄어 자립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모색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종로2가에 건물을 지어 입주하였고, 1975년에는 마침내 자립 예산을 책정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 이후 대내외적인 상황들로 인해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였지만 합동찬송가를 보급하고 저작상과 문학상을 제정하고 신학대학협회를 후원하는 등 문서선교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으며, 다양하고 수준 높은 성경·찬송, 신학서적, 평신도와 목회자를 위한 신앙도서를 기획하고 출판하는 데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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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
12월, 종로2가 84-8번지에 기독교서회 회관(지하 2층, 지상 6층) 완공 |
1974 |
[현대기독교사상전집] 발행 |
1975 |
미국 NCC 극동위원회와 기독교서회 사업에 가담하던 해외선교부 본부의 원조 종결, 자립 예산 책정 |
서적 판매 연간 100만 부 돌파 |
1976 |
저작상과 문학상을 매 3년에서 매년 수상하기로 결정 |
3월, '대한기독교출판사' 설립. 5월 등록신고 |
[다락방]에 이어 [한영 대조 다락방] 발간 시작 |
[성의 정치학] 발행 |
1977 |
11월, [기독교사상] 창간 20주년 기념강연회를 부산, 대구, 전주에서 개최(강사 : 김동길, 한완상) |
아동잡지 [새벗]을 기독교서회에서 다시 맡아 복간 |
[실천신학총서] 발간 시작. 1981년까지 전 12권 |
한국출판공로상(편집부문) 수상 |
1978 |
7월, 전국신학대학협회(KAATS)에 보조금 100만원 지급. 이듬해 200만원 지급 |
미주 지역에 4개 특약점 개설 |
서적 판매 연간 150만부 돌파 |
기독교서회 한국출판공로상 수상 |
9월, 사택으로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를 매입 |
1979 |
[기독교사상] 250호 기념 세미나 실시 |
점자 잡지 [새빛] 폐간 |
12월, 한국어린이통일찬송가위원회에서 편집한 [어린이찬송가] 출판 |
조직의 개선을 위해 국장제도 도입. 출판국, 영업국, 사무국 설치 |
수탁서적 포함 160만 부 출판 실적 |
1980 |
4월, 조선출 목사 총무 사임, 성갑식 목사 총무 취임 |
1981 |
[새벗] 판권과 [새벗문고] 2만 3천여 권을 성서교재간행사에 이양 |
양평동에 새 서고 마련 |
저작상에 이장식 교수([기독교와 국가]), 문학상에 김경수 목사([노래 중의 노래]) 수상 |
1982 |
문학상에 황금찬 시인([기도의 마음 자리]) 수상 |
1983 |
[기독교사상] 통권 300호 발행 기념식 |
12월, [통일찬송가] 발행으로 한국 교회 공용 찬송가 보급 |
[기독교사상] 시리즈 발행 시작. 1998년까지 전 15권 |
1984 |
기독교서회 노동조합 조직 |
7월, [대한기독교서회 백년사] 출간 |
1985 |
1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169-1 토지 매입 |
[기독교사상]이 필화사건으로 6개월간 정간되고, 편집주간 조만 목사 사임 |
1986 |
[기독교사상] 복간 |
활판 인쇄에서 전자조판 인쇄로 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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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개신교 최초의 문서선교 기관으로 설립된 이후 서회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냉전시기를 거치면서 기독교의 문서선교기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를 선도하는 문화적 산실로서 교회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120여 년이 흐른 현재에도 서회는 신학서적과 평신도 서적 출간, 정기간행물 기독교사상과 다락방 발행, 한국 교회의 통일된 찬송가 보급이라는 본연의 책무에 충실하는 한편, 21세기 변화된 시대 상황에 앞서가고자 전자책 등 디지털 컨텐츠의 제작과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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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
5월, 강남구 삼성동에 기독교서회 제2회관(지하 3층, 지상 6층) 준공 및 사무실 이전 |
6월, [한국기독교 100년사 대계](전4권) 간행 |
1988 |
1월, 제4대 총무 성갑식 목사 퇴임 및 제5대 총무 김소영 목사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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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이사회와 위원총회에서 개정된 정관이 문공부장관의 승인 얻음(사장제 도입) |
6월, 김소영 목사 초대 사장에 취임 |
12월, [기독교사상] 영인본 10년분 발간(1957년 8월호~1967년 7월호) |
1989 |
11월, 종로 5가 기독교회관 1층에 직매장 '기독교서회' 개장 |
3월,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편집위원회 발족 |
1990 |
4월, 창립 100주년 기념 강연을 대전, 광주, 대구, 원주에서 개최 |
6월, 창립 100주년 기념식 및 국제학술세미나 개최 |
12월, 장학재단 설립 |
1992 |
[기독교사상] 통권 400호 발행 기념식 개최 |
헌장과 정관을 통합한 정관이 문화부 승인을 얻음 |
1995 |
신작 증보찬송가 발행 |
12월, 국제표준도서번호(ISBN) 발행자번호 배정받음. 'ISBN 89-511' |
[기독교사상]이 공보처 우수잡지에 선정 |
1996 |
정진원 장로 제6대 사장에 취임 |
[21세기 신서] 시리즈 발행 시작. 2001년까지 전 7권 |
1998 |
김상근 목사 제7대 사장에 취임 |
[옥중서신(신약주석)]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 |
1999 |
1987년부터 발간되던 [한국기독교학회 신학논총]을 맡아 발행하기 시작함(2011년 현재까지) |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신약편 완간 |
[개신교 윤리사상사]가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 |
2000 |
[기독교사상] 지령 500호 발행 기념식 개최 |
[고대근동의 역사와 종교], [아가페-기독교 사랑의 윤리적 분석]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 |
2001 |
[알기 쉽게 간추린 몰트만 신학]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 |
2002 |
정지강 목사 제8대 사장에 취임 |
2003 |
기독교 전자책도서관 사업 착수 |
4월, 강신찬 이사장 취임 |
5월,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시리즈 첫 책(Ⅰ/1권) 발간. 전 13권 출간 예정 |
[현대사회와 기독교교육]이 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선정
[성어거스틴의 고백록]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 |
2004 |
10월, 홈페이지 clsk.org 오픈 및 통신판매업신고 |
[마르틴 루터의 신학사상과 윤리]가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 |
대한기독교서회미디어 설립에 지분 참여, KTF와 제휴하여 사랑의휴대폰 운동 전개 |
2005 |
4월, 김재열 이사장 취임 |
2006 |
11월, [21세기 찬송가] 발행 |
[바울 신학 탐구], [교회교의학 Ⅳ/3-2], [시편해석]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 |
2007 |
4월, 정려성 이사장 취임 |
9월, [기독교사상] 창간 50주년 기념 세미나 개최 |
[칼 바르트와 동시대성의 신학]이 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선정 |
2008 |
[기독교사상] 지령 600호(12월호) 발행 |
[신뢰와 의혹]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 |
10월, 종로 빌딩에 찬송 성경과 단행본을 판매하는 소규모 상설전시관 개장 |
12월, 기독교한국침례회를 회원교단으로 받아들여 총 9개 교단이 참여. |
2009 |
4월, 박종화 이사장 취임 |
[현대 신학의 흐름]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 |
2010 |
1월, 북클럽 회원제도 부활 |
6월, 창립 120주년 기념 행사 개최, 창립 120주년 기념 학술상 제정 및 시상 |
10월, 전 8권으로 구성된 [본회퍼 선집] 발간 |
[삼위일체론 전통과 실천적 삶]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 |
2011 |
1월, 홈페이지 clsk.org 개편 완료 |
[예술신학], [현대 기독교사상과 포스트모더니티 신학]이 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선정
[본회퍼 선집](전8권)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 |
4월, 임헌택 이사장 취임 |
2012 |
1월, 기독교서회(직영서점) 독립채산제 시행 및 직매사업부로 조직 개편 |
2013 |
4월, 권오준 이사장 취임 |
2014 |
3월, 서진한 목사 제9대 사장에 취임 |
7월, 출판사 '겨자나무' 신규 등록 및 현대사상사와 대한기독교출판사 폐업 신고 |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20여 년 만에 전 56권 완간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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