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서머가 네 살이었을 때 저는 아이를 데리고 미술관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들꽃이 가득한 초원에 바람이 부는 날을 표현한 멀티미디어 풍경화가 있었습니다. 하늘에 회색 천 뭉치를 붙여놓아, 불길한 느낌의 구름이 캔버스에서 더욱 돋보였습니다. 밝게 채색된 수많은 꽃이 녹색 풀밭에서 소용돌이치며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서머는 한참이나 그 그림 옆에 꼼짝 않고 서 있었습니다.
저는 서머의 예술 활동을 독려하고 싶어서, 집에 가면 그 그림을 그릴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서머는 “못 해요. 하지만 그림에 맞춰 춤출 수는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놀랍게도 서머는 곧 발끝을 세우고 발레 수업에서 배운 동작을 선보이며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제 딸은 그림의 형식이 아니라 그림의 본질적인 의도, 그러니까 초원에서 부는 바람을 포착한 것입니다.
이 경험으로 인해 저는 성서 단어에 너무 열중하느라 성서가 말하는 핵심을 놓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눅 10:29 참조)라고 묻던 율법 교사처럼 우리는 단어에 정신이 팔려 쉽게 집중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점을 이해하시며, 우리가 주님을 찾으면 성서의 충만함을 누릴 수 있도록 계속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