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에 목사가 되었을 때 저는 ‘장례예배 때 마지막 말씀을 전하는 신성한 의무를 어떻게 수행해야 하나’ 하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목사로서 보낸 첫날, 일흔 살의 노련한 교회 지도자 힐이 제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우리 목사일세. 우리에게 할 일을 말해주면 따르겠네.” 힐의 신뢰가 제게 인도할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겨우 두 달 뒤에 힐의 아내 앨머가 제게 전화를 해서 힐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죽음 앞에서 저는 앨머나 교회를 위해서 어떤 유익한 일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후 이틀 동안 장례 절차가 진행될 때 저는 몇 마디 말씀을 전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앨머 곁에 앉아 손을 잡고 슬픔을 나누었습니다. 앨머는 제가 없었다면 그 시간을 잘 넘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유창한 말이나 위엄 있는 몸짓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예수님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익한 일을 하려고 애쓰는 데 분주하여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조용히 앉아 임마누엘의 임재에 잠기는 신성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잊지 맙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