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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추천글 (2021년 11월호)

 

  4·3을 통한 기독교 주체의 회심을 향하여
  

본문

 

“한국 기독교 4·3 담론의 형성과 재형성에 관한 연구: 타자를 통한 주체의 회심을 향하여”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신학과, 2021


들어가며

1948년 무렵에 발생한 4·3은 제주 사회는 물론 한국 근현대사에서 비극으로 손꼽히는 사건이다. 남조선로동당 무장대와 토벌대 및 계엄군의 충돌 속에서 주민 다수의 죽음이 발생하였지만, 억울한 죽음에 대한 애도를 표현할 수 없는 시대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약 30년이 지나 1980년대에 이르러 4·3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2014년에는 국가 추념일로 지정되기도 하였지만, 4·3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 사람들이 갈등의 한 축으로 기독교를 지목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스컴과 출판물을 통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4·3과 한국 기독교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기독교의 한 측에서는 4·3이 ‘폭동’이라고, 다른 한 측에서는 4·3의 비극이 기독교의 ‘과오’이자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간극은 4·3과 기독교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의문을 발생시킨다. 이는 4·3과 관련하여 기독교가 취하는 입장, 서 있는 위치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필자가 ‘4·3과 기독교’와 관련하여 처음 가졌던 질문은 단순하다. ‘제주도의 저조한 복음화율이 4·3 당시 발생한 폭력 때문인가?’ 이러한 질문에서 파생된 질문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사실은 기독교의 관점에서 4·3을 해석하는 다양한 담론들이 발생하였고, 이러한 담론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4·3 담론의 발생과 충돌은 기독교와 4·3의 관계성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에 대한 명징한 논증 없이 4·3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가중되는 혼란은 결국 기독교가 설명하는 4·3에 대한 사실이 과연 진실인가에 대한 의문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에 필자는 4·3과 기독교의 관련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주력하여 다룬 부분은 4·3 당시 기독교의 상황, 이후 4·3에 대한 국가의 인식이 달라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독교의 4·3 인식이다. 이와 더불어 ‘기독교‐4·3’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서북청년단’의 존재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4·3 논의가 대부분 이 서북청년단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북청년단과 기독교가 관련이 있기에 4·3 당시 발생한 죽음에 기독교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명확한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에 필자는 왜 기독교와 4·3의 관련성이 서북청년단을 통해 설명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기독교의 4·3 담론 형성 과정을 살펴보았다.

기독교 4·3 담론과 그 특징

기독교의 4·3 인식, 그리고 이에 대한 차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담론’이라는 용어로 묶어서 설명하였다. 여기서 사용하는 담론이라는 용어의 맥락은 대상에 대한 지식의 생성을 통해 나타난 견고한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식의 집합체가 권력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기독교 4·3 담론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였다.
필자는 4·3과 관련하여 생성된 담론을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이 세 담론을 각각 ‘공산 폭동론’, ‘서청 책임론’, ‘기독교 동참론’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세 가지 담론에 대한 설명을 논문 4장 “기독교 4·3 담론의 특징”에 담았다. 먼저 공산 폭동론은 4·3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설명하는 담론이다. 이는 4·3 직후 정권이 주장한 담론과 주의를 같이한다. 이 담론에서 기독교는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중심으로 4·3을 설명한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이 발생시킨 폭동’에 의해 기독교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은 제주 기독교 역사를 서술하는 단행본에서도 나타난다.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가졌으며, 이에 교회에 폭력을 가했다는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4·3을 ‘공산 폭동’으로 보는 이러한 관점은 4·3 당시 나타난 토벌대의 행위에 대해서도 지지하는 입장을 보인다.
서청 책임론은 서북청년단 중 기독교인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므로, 4·3의 폭력에 기독교도 책임이 있음을 주장하는 담론이다. 서북청년단은 1946년에 출범한 우익 청년단체로, ‘서북’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월남한 이북 5도 청년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단체이다. 이들이 공산주의와의 투쟁이라는 명목으로 ‘테러 행위’를 하였기에, 사람들은 서북청년단을 일종의 ‘폭력 단체’로 인식하였다. 이들이 정권에 의해 제주에 파견되어 소요 진압을 명분으로 폭력 사태를 일으켰는데, 이들 중 기독교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4·3에서 나타난 비극의 책임을 기독교에도 둔다. 이러한 시각이 기독교 4·3 담론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기독교 동참론은 기독교가 4·3 당시 발생했던 학살에 개입했다는 관점을 나타내는 담론이다. 4·3 당시 발생한 피해에 기독교가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방식으로 동참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은 기독교의 반성 및 화해를 기조로 하며, 기독교인의 성찰을 촉구하는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이 담론에서 나타나는 기독교의 위치는 ‘심판자’ 또는 ‘판단자’이다. 기독교 동참론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기독교가 4·3의 진행 과정에서 정죄하고 판단하는 ‘심판자’로 있었다는 사실을 회개하고 반성한다.
필자는 위의 세 가지 담론을 정리하며, 각각 ‘투쟁’, ‘전가’, ‘용서’ 담론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앞서 공산 폭동론에서 기독교는 4·3이 공산주의자들의 주도로 발생한 ‘폭동’이며, 이에 맞서 투쟁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한다. 특히 기독교는 공산주의자들이 반(反)기독교적인 정서를 지닌 집단이라는 이해하에, 자신들의 입지를 굳건히 하는 데 저해가 되는 ‘폭동’을 응징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었다. 서청 책임론은 4·3에서 발생한 폭력의 문제를 일부 기독교, 특히 서북 기독교에 한정된 책임으로 전가시킬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동참론은 ‘판단자’로서의 기독교의 모습을 반성하고 있으나, 이 안에서 화해의 주체, 용서의 주체가 역전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하였다.

기독교 4·3 담론에 대한 비판

앞서 살펴보았듯이 필자는 4·3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입장을 세 가지의 담론, 즉 ‘공산 폭동론’과 ‘서청 책임론’, ‘기독교 동참론’이라고 정리하였다. 이러한 구분의 목적은 각 담론에 내재된 특성을 설명하며, 이에 대한 비판점을 명확하게 제기하는 데 있다. 이에 대해서는 논문 5장 “기독교 4·3 담론에 대한 비판”에 담았다. 먼저 공산 폭동론은 기독교가 이념을 잣대로 하여 4·3을 판단하였다는 점을 비판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이념은 기독교에 있어 일종의 신념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실제 4·3 당시 기독교가 4·3과 관련하여 어떠한 활동을 하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미미하게 나타난다. 4·3에서 발생한 제주 기독교의 피해를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피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당시 제주 기독교의 피해는 진압을 위해 파견된 군경 등의 토벌대로 인한 피해, 남조선로동당의 무장대로 인한 피해와 비슷한 맥락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4·3을 ‘공산 폭동’으로 보며 기독교인의 피해 및 진압 활동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발생시킬 수 있다. ‘당시 4·3 진압 활동에 나선 사람들 중 기독교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데, 과연 이들의 진압 활동을 그들의 ‘신앙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는가?’ 반복하자면 4·3 당시 발생한 죽음이 기독교인의 이념에 의해 발생한 것인가, 혹은 신앙에 의해 발생한 것인가를 따졌을 때,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가. 이는 결국 기독교인이 이념을 위해 자행하는 폭력을 신앙으로 묵인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파생시킨다.
서청 책임론 또한 한계를 지닌다. 필자는 특히 서청 책임론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서청 책임론은 서북청년단 중 기독교인이 포함되어 있기에 그들이 행한 폭력에 기독교 또한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이 전체 기독교가 ‘서북 기독교’, 혹은 서청의 본거지로 여겨지는 영락교회 등 일부 기독교에 책임을 전가하는 담론일 수 있다는 문제는 앞서도 제기한 바 있다. 실제 서북청년단과 기독교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는 희박하다. 김병희의 저서에 나타나는 목사 한경직의 발언을 제외하고, 서북청년단과 기독교의 관계성을 나타낼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따라서 서북청년단이 과연 한국 기독교를 대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겨날 수 있다. 더 나아가 서북청년단 중 기독교인이 포함되어 있기에 기독교가 4·3의 가해자라고 주장한다면, 반대로 서북청년단 대다수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가정했을 때 기독교와 4·3의 관련성을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 또한 던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동참론에서 주장하는 기독교의 ‘죄책’ 또한 한계를 지닌다. 지난 2018년 4·3 70주년을 근간으로 4·3과 기독교의 화해를 주장했던 기독교는 책임을 통한 화해와 용서를 언급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기독교가 4·3에 행한 잘못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징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용서와 화해를 말하고 있다. 이전에 4·3에 있어 기독교가 ‘판단자’로 위치했다면, 이제 기독교는 ‘화해자’의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켰다. ‘화해’와 ‘용서’라는 좋은 단어 속에서 4·3의 주체들은 이제 ‘화해 당하는 주체’로 자리하게 된다. ‘공산주의자’라는 사회적 낙인 속에 침묵을 강요당했던 4·3의 주체들은, 이제 기독교가 주창하는 정의에 호응하기를 요구당하는 주체, 즉 대상으로서 기능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4·3과 관련하여 형성된 기독교 4·3 담론은 저마다의 비판점을 지니고 있다. 필자가 각 담론에 대한 비판점을 살펴보는 이유는, 이러한 비판을 상쇄할 수 있는 기독교의 새로운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거나, 이를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도리어 4·3과 관련하여 기독교가 나타낼 수 있는 진정한 반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이를 찾아가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기독교 4·3 담론을 통해 본 기독교의 주체성

기독교는 외래 종교로서 한국이라는 토양에 정착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는 곧 한국 사람들에게 ‘기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입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는 스스로도 한국이라는 조건과 연계하여 기독교를 규정하고 이를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해방 이후의 한국 상황, 특히 4·3에 있어서 기독교가 주체로서 나타내 보였던 행위는 주로 ‘이념’과 관련되어 있었다. 이는 ‘반공주의’가 기독교가 주장하는 중심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된 당시의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 기독교는 정권 건설 및 향후 한국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기독교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이후 4·3에서 나타난 기독교인의 대응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기독교는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선도자이며, 사회 내에서 정의를 규정하고 이를 수호하는 집단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기독교의 자의식은 이후 사회가 4·3을 민중 항쟁 또는 민간인 학살로 정의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발휘되었다. 4·3 당시 발생한 피해의 실태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기독교는 4·3의 현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시도하였다.
4·3에 대한 기독교의 인식과 대응은 결국 기독교가 추구하는 주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한국 기독교는 지난 역사에서 권력자, 이념의 수호자, 정의로운 관용자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의 주체상은 곧 기독교가 지향하는 ‘엘리트’, ‘지도자’로서의 자의식과도 일치한다. 이렇듯 기독교가 스스로를 주체화하는 방식 안에서 ‘신앙’에 대한 물음 또는 가치를 찾기는 어렵다. ‘피해자’ 또는 ‘희생자’로 규정되어 권력이 세운 기준에 따라 폭력을 감내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기독교 또한 ‘권력자’로 등장하였다. 당시의 국가 권력이 지니고 있던 요소들은 기독교의 주체성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기독교가 4·3을 중심으로 생성시킨 담론은 이러한 기독교의 주체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기독교로부터 제기된 담론이 제주, 그리고 한국 사회에 나타내는 긍정적인 효과는 미미하다. 이와 더불어 4·3을 경험했던 이들은 기독교에 대해 별다른 지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가 4·3과 관련하여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4·3과 마주할 때 기독교는 어떠한 주체이어야 하는가.’ 사실 4·3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4·3의 주체들은 그들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다른 주체에 의해 해석 당하였다. 이들을 ‘폭도’, ‘희생자’, ‘처벌의 대상’, ‘해원의 대상’으로 규정한 이들은 기독교와 같은 해석의 주체들이었다
기독교는 어떠한 주체성을 가져야 하는가. 논문 6장 “기독교 4·3 담론을 통해 본 기독교의 주체성”에서 필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필자는 기독교가 수동적인 책임을 통해 기독교의 주체성을 자각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수동적 책임은 ‘타자에 의해 움직이는 주체’로서의 책임을 의미한다. 기독교가 ‘용서자’와 ‘화해자’임을 드러내며 기독교로서의 소임을 다했다고 자각하는 것은 진정한 책임이 아니다. 오히려 4·3이 기독교에 얼굴을 드러냈을 때 방관하지 않으며, 4·3이 행하는 발화에 응답하는 것이 기독교가 가져야 할 책임이다. 이와 더불어 기독교는 타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주체로서 기능해야 한다. 4·3의 죽음은 이념 혹은 사회의 안녕을 유지한다는 목적 아래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정당화는 앞으로도 신념 또는 이념으로 인한 살인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4·3의 죽음을 ‘희생’으로 인식하는 것 또한 ‘죽음’에 성격을 부여하는 것일 수 있다. 이는 결국 죽음 자체의 성격뿐만 아니라 죽음을 발생시킨 요소들을 희석하기도 한다. 이에 기독교는 죽음에 대한 정당화, 죽음의 본질을 흩뜨리는 것들을 파헤치고 본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타자가 요구하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명령이 곧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4·3은 약한 타자의 얼굴로 기독교를 마주한다. 그러나 그 약함 안에 깃들어 있는 권위가 있다. 이 얼굴을 마주할 때, 기독교는 기독교 주체의 약함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주체 인식을 통해서 타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지난 역사 안에서 한국 기독교는 4·3에 대한 담론을 형성시키며 기독교의 주체성을 확립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4·3의 주체들을 죽음의 자리에 홀로 남겨두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독교는 4·3을 죽음의 자리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곧 기독교가 쌓아 올린 4·3에 대한 담론을 해체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나가며

‘기독교란 무엇인가.’ 이는 복음을 세계 각지에 전하고자 하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물음이다. 기독교는 이러한 물음을 토대로 선교지에 신앙을 뿌리내리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의 노력은 주로 사회 안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로, 선도해 나가는 엘리트로서의 위치를 선점하고자 기독교는 노력하였다.
그 결과 기독교는 당대 정치와 사회 지도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고자 지향했던 이념에 자신들의 신념을 맞춰 나갔다. 이러한 상황은 해방 직후 기독교가 ‘반공주의’라는 이념을 기독교의 신앙과 동일시하는 형태로도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의 본질과는 벗어난 성격으로, 오히려 이러한 주체성을 사람들이 기독교의 주체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4·3은 이러한 기독교의 주체성을 드러내주는 예시이다. 4·3은 국내의 정치 상황이 바뀌고 흐름이 전환되는 시기마다 ‘폭동’으로, ‘항쟁’으로, ‘학살’로 정의당하였다. 그리고 기독교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4·3에 대한 해석을 발생시키고 이를 담론화하였다. 4·3을 대상의 자리에 놓고, 기독교는 모든 시기 ‘해석자’이자 ‘판단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해 나갔다.
4·3은 기독교의 이러한 주체성을 폭로하고 있다. 기독교가 스스로에게 고정된 주체상을 덧씌웠지만, 이를 4·3이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폭로는 오히려 기독교가 본질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 4·3을 통해 기독교는 타자의 위에 서서 군림하는 주체가 아닌, 마주친 타자들에게 반응하는 수동적인 주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4·3은 기독교에게 ‘살인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이는 그간 4·3에서 자행되었던 살인의 정당화를 기독교는 부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타인의 죽음을 외면할 수 없다. 이렇듯 타자들의 명령에 수동적으로 응답하려는, 죽음 위에 덧씌운 가치들을 걷어내고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움직임이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주체성이다.

고민희|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를 전공하며 제주 기독교를 연구했다. 현재 서울기독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게시물은 대한기독교서회님에 의해 2021-11-30 09:11:44 문화·신학·목회에서 복사 됨]

 
 
 

2021년 12월호(통권 7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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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단상-<그대 오르는 언덕>

늦봄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의 마지막 트랙에 수록된 노래 <그대 오르는 언덕>, 이 곡을 소개하는 것으로 12회에 걸친 이 연재 글의 끝을 채운다. 오십이 넘게 작곡가로 살아온 마당에 다시 대학 시절에 만든 곡을 소개하는 것이니, 음악적 연유로 기착(寄着)해 볼 때 그다지 자랑스러운 곡은 아니다. 다만,...
류형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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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이 쓴 선교소설들

| 국민문학이라는 것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 그믐날, 수유리 봉황각에 좌파 문인 여덟 명이 모였다. 흔히 ‘봉황각 좌담회’라 불리는데, ‘문학가의 자기비판’이라는 명분 아래 일제하에서의 굴신 또는 훼절을 짚고 넘어가자는 취지로 모인 자리였다. 사회는 김남천. 임화와 함께 해방기 좌파 문학 운동을 이끌...
표언복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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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의 꿈, 윷판바위에서 윷놀이까지

<전략> 훌륭민첩 유곡권실 싀외조모 출상잇서 머나먼 산천길을 가마로 나려와서 실셩대곡 고여도 한말삼 아람업네 인 일장 츈몽이라 망극을 뒤로두고 심란을 푸러보세 우리종회 이노름은 조샹님네 음덕으로 쥬션은 유곡권실 장기도 장시고 <중략> 지모실간 최실이는 모친출상 지나고서 망극은...
이윤선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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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기독인연대의 코로나19 대응 캠페인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지역감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2020년 2월 말, 대구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지역 내 의료진과 병상 수가 순식간에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도 부족한 상태였기에 도시 전체는 공포로 얼어붙었다. 이런 상황에서 타 지역 의료진들이 모...
박성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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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과 지지로 엇갈린 교회의 ‘세속정치’와 ‘비움’

기독 정당의 국회 진출은 21대 국회에서도 실패했다. 극우 성향의 반정부 집회를 주도하면서 정치세력화를 꿈꾸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중심이 된 기독자유통일당(대표 고영일)은 지난 4월 15일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1.83%(51만 3,159표)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앞선 총선에서 받았던 성적(전신인 기독자유당 2....
김광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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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평화, 하나됨으로 발현되는 5·18정신

5·18 40주년을 맞이한다. 몇 해 전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헌시로 바친 <5·18은 민족의 지평선입니다>를 다시 읽는다. 5·18은 “헛된 옛사랑이 아니라”, “첫사랑의 검은 눈동자–역사의 당당한 키스”라는 말이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더 다가서는 것을 느낀다. 갈라진 나라, 헝클어진 나라, 그러나 40년 전 ‘오월광주’, ...
김준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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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의 대역병 인플루엔자와 조선총독부의 대응

* 이 글은 필자의 논문 “1918년 독감과 조선총독부 방역정책”, 「인문논총」(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7) 74권 1호: 163-214를 발췌·요약하고, 다른 자료들을 참고하여 보완·재구성한 것이다.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 흔히 ‘스페인 독감’(Spanish flu)이라고 불리는 ‘1918년 인플루엔...
김택중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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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호(통권 7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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