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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이달의추천글 > [조선과 대한민국 사이에 낀 성서 단어 10 (마지막회)]
이달의추천글 (2020년 12월호)

 

  받은 것이자 일구어야 할 ‘기업’(基業)
  

본문

 

믿음의 가정에서 모태신앙을 가지고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그냥 부르는 찬송가가 많았다. 명절이나 추도식 등에 평신도이신 아버지의 인도로 가정예배를 드렸는데, 음치인 아버지는 몇 장의 찬송가만 애용하셨다. 그중 하나가 현행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이다.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라는데, 그 가사에서 말하는 ‘기업’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을 말할 때 쓰는 ‘기업’이라면 생명보다 귀하다고는 안 할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도대체 뭔지 알 수 없었다. 설교 때에 목사님께서는 ‘기업’은 ‘유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성서 구절이 많았다. ‘기업’은 19세기 말 성서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에는 일반인들이 다 아는 단어여서 썼을 텐데, 현대에 사는 나는 알 수 없는 단어였던 것이다.
대기업, 중소기업을 말할 때는 ‘기업’(企業)이라고 쓴다. 이때 기(企)는 ‘꾀하다’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이익을 내기 위해서 어떤 일을 꾀하는 단체라는 의미이다. 반면 성서에서 말하는 기업은 ‘基業’이라고 쓴다. 이때 기(基)는 터, 기초라는 뜻이고, 업(業)은 일, 생계라는 뜻의 단어이다. 그러니 우선 ‘기업’(基業)은 한 사람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밑바탕이라는 말이다.

왕의 조종기업(祖宗基業)

기업은 본래 왕에게만 사용하던 단어로, ‘나라’이자 ‘왕위’를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기업이라는 말보다 조종기업(祖宗基業)이라는 단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의 왕을 ‘태조, 정조’의 예처럼 ‘–조’라고 하기도 하고 ‘세종, 숙종’의 예처럼 ‘–종’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을 떠올려 보면 조종기업의 의미를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조종기업은 역대 왕들로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왕의 일, 즉 왕업(王業)이다. 그러니 왕에게 기업은 ‘나라’이다. 『성종실록』 1년 2월 22일 기사에 “우리 태조(太祖)께서 큰 기업을 창조하시니”라 한 대목이 있다. ‘조선’을 ‘큰 기업’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 왕정 국가에서 ‘나라’는 곧 ‘왕’이다. 그러니 ‘기업’은 ‘왕의 자리’, 즉 ‘왕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새 왕이 등극하면 그 왕이 ‘나라’ 혹은 ‘왕위’를 이어받았다는 의미로 ‘기업을 이어받았다’라고 표현한다. 예컨대 “지금 전하께서는 선왕의 큰 기업을 이어받으셨는데 선왕의 뜻을 천명하고 선왕의 일을 계술하는 일이 바로 이러한 부분에 달려 있으니”(『순조실록』 1년 2월 23년)라는 식이다.
왕들은 그 나라가 멸망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실정(失政)으로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도 않아야 하고, 외세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나라가 망하였다거나 나라가 공격을 받았다는 의미로 ‘기업이 망한다’, ‘기업이 어렵다’ 하고 표현했다. “상께서는 200년 기업의 어려운 운세가 이때에 닥쳐온 것을 유념하시어 더욱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정사와 형벌에 대한 법을 닦아 밝히소서.”(『광해군일기』 1년 10월 17일)라는 예처럼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험에 처하게 된 상황을 기업이 어려워졌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기업은 ‘소명’이자 ‘일구어야 할 것’이기도 했다. 한 나라의 왕이 된 사람은 나라를 다스린다. 즉 정사(政事)를 펼친다. 그 특정한 일을 하라고 부름을 받았다. 그래서 기업은 때로 ‘소명’이라는 의미도 된다. 소명을 받은 사람은 최선을 다하여 받은 것을 잘 일구고 계승해야 할 것이다. ‘기업’은 잘 ‘일구어야 할’ ‘업무’인 것이다. 후대 왕은 그래서 날마다 노력하여야 했고 신하들도 끊임없이 그것을 말하였다. 예를 들어 정조가 쓴 일기에는 “아, 나라의 복록(福祿)이 거듭 이르니 사람들은 모두 형통하고 태평할 기회라 말하지만, 기업(基業)은 어렵고도 중대하니 나는 두렵고 조심스런 마음 절로 간절하다.”(『일성록』 정조 2년 6월 2일)라고 했다. ‘기업’은 물려받은 ‘나라’요, 그 나라를 다스리는 ‘정사’이기도 하니 “기업은 어렵고도 중대하다.”라면서 두렵고 간절한 마음으로 잘하려고 노력하려는 자세를 표현한 것이다.
기업은 ‘업적’이고 ‘명성’이며 ‘이어야 할 것’이기도 하다. 왕이 자기의 일을 잘하면 그것이 그 왕의 업적이 된다. 그래서 기업은 땅이나 재물 같은 물질적인 것 외에 비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다. 선왕들이 이룩한 ‘업적’과 이로 얻은 ‘명성’도 ‘기업’이다. 후대 왕은 선왕의 업적과 명성을 ‘이어’ 흠이 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승정원일기』 영조 즉위년
9월 24일 기사에 “지금 오직 우리 전하에게 바라는 것은 선왕이 남기신 뜻과 업적을 잘 계승하여 힘차게 분발하고… 영원히 지속될 종사(宗社)의 기업(基業)을 실추시키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한 것처럼 왕은 선왕의 업적을 이어야 한다면서 ‘기업’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사람이 살아갈 ‘몫’

조선시대에 ‘기업’이라는 단어는 왕에게만 쓰고, 일반인에게는 ‘유업’(遺業)이라고 썼다. 그러다가 대한제국기 무렵부터 서서히 일반 백성도 ‘기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일반인에게까지 넓혀 기업의 의미를 조금 더 살펴보자.
기업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밑바탕이라 하였다. 모든 사람은 다 자기 ‘몫’의 생계수단을 갖고 있다. 그 자기 ‘몫’을 자기 ‘기업’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땅이 있어서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기술이 있어서 그 기술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지위가 있어서 그 지위를 유지하는 동안 월급 등을 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땅’을 기업이라 말하기도 하고, ‘기술’을 기업이라 말하기도 하고, ‘지위’를 기업이라 말할 수도 있다. ‘자식’의 봉양을 받아 살아가게 될 때는 ‘자식’을 ‘기업’이라 할 수도 있다.
기업의 핵심은 ‘관계’에 있다. 농경사회에서 기업은 땅인 경우가 많았다. 땅은 사람이 죽어도 남는 것이라, 기업은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게 되는 것이었다. 부모로부터 자식이 물려받는다는 맥락에서 ‘기업’은 요즘말로 ‘유산’이라는 단어와 같다고 설명하기도 하는 것이다. 부모 세대에서 그 땅을 경작하여 그곳의 소출로 온 가족을 부양하다가 늙게 되면, 자식 세대가 그 땅을 이어받아 경작하여 그 소출로 부모와 자식 등 온 가족을 부양한다. 그래서 ‘기업’은 어떤 활약으로 획득되는 것이라기보다 ‘부자(父子) 관계’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유형의 재산이나 사업체이든, 무형의 과업이나 명성이든 부모의 기업이 자식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기업을 얻을 자’라고 하고, 자식들이 부모의 기업을 나누어 가지게 되기 때문에 자식을 ‘기업에 참여하게 되는 자’라고 하는 것이다.
기업에서는 상속자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상속자라야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자식이 상속자가 되지만, 친자식이 없으면 신임하는 누군가를 상속자로 지정한다. 그렇게 상속자로 지정되면 기업을 받을 수 있다. 또 상속자는 기업을 잃지 않아야 하는 의무를 진다. 이것이 그의 사명이다. 왕에게 기업이 나라나 왕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선왕들이 이룩한 업적이나 명성이기도 한 것처럼, 일반인에게 기업은 물려받은 집이나 땅이나 재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조상들이 쌓아놓은 업적이나 덕망으로 이룩한 명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상들의 명성에 흠이 가지 않도록 후세는 조상의 교훈을 기억하며 그 명성을 이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상속자가 허랑방탕하고 부도덕하게 살면 물려받은 집이며 토지를 팔아 없애버릴 수 있고, 이어온 명성에 먹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태롭고도 창피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한마디로 상속자에게 ‘기업’은 ‘가꾸어야’ 할 대상이요, ‘일구어야’ 할 대상이요, ‘이어야’ 할 대상이다.

성서에서 ‘기업’을 사용하는 예

성서에서 ‘기업’이라는 단어는 신약보다는 구약에 월등히 자주 나온다. 약속의 ‘땅’을 언급하면서 많이 사용된 탓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이 땅을 받아 거기서 살고 그곳에서 나는 것으로 먹고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후에 그 후손들이 이집트에 가서 살다가 결국 가나안에 다시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주께서 가나안 땅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주셨다는 것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가나안 정복전쟁을 하고 각 지파별로 그 가나안 땅 중 특정 구역을 ‘기업’으로 받아 정착하기까지, ‘기업’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몫으로 주신 ‘땅’이라는 맥락에서 매우 자주 언급된다.

창 17: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레 20:24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내가 그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사람마다 자기의 몫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 몫을 자기의 기업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가나안의 어느 지역을 자기 몫으로, 즉 ‘기업’으로 챙긴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기 몫을 챙기셨는데, 땅이 아니라 ‘사람’을 자기 몫으로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몫으로 챙기셨고, 상징적으로 이스라엘 중에서 특히 ‘레위 지파’ 사람들을 자기 몫, 즉 ‘기업’으로 챙기셨다. 좀 더 세부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맡기셔서 그 ‘직분’을 ‘기업’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하게 하셨다. 그래서 레위인은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신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수 13:33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수 18:7 레위 사람은 너희 중에 분깃이 없나니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됨이며

구약성서에서 ‘기업’과 관련하여 특히 많이 나오는 서술어는 ‘무르다’라는 단어이다. 우리가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결정적인 잘못으로 질 상황에 처하면 상대편에게 방금 놓은 수를 ‘물러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상대가 물러주면 다시금 살아 게임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기업’은 선조로부터 이어온 것이기도 하고, 지금 생계를 위한 밑천이 되기도 하므로, 이 기업을 잃는 것이야말로 후손들에게는 매우 불명예스러운 일이고 스스로의 생존을 위협받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중 어떤 사람이 경제적인 문제로 ‘기업’으로 받은 땅을 팔게 되면, 가까운 친척이 대신 그 땅을 산 사람으로부터 되사게 된다. 그 땅을 산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미 산 것을 ‘물러주는’ 것이요, 그 땅값을 대신 낸 사람은 ‘기업을 무른 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결국 기업의 원소유주는 다시금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조상들의 명예도 실추시키지 않게 된다.

레 25:25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기업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 되고, 그 수단에 의지하여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혹자에게는 땅이나 재물이, 혹자에게는 기술이, 혹자에게는 상속되는 직위가 그런 것이며, 자식의 보호와 봉양에 의해 살아가면 자식이 기업이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우리가 만약 어떤 이의 보호와 봉양을 받아 살아간다면 그 ‘어떤 이’가 우리의 ‘기업’이 된다. 주님께서는 주님 자신이 우리의 기업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속량함을 얻어 살게 되었고, 주께서 주신 것으로 살고 있으니 ‘주님이 우리의 기업’이 되는 것이다. 어려서 아무 뜻도 모르고 불렀던 찬송가의 가사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가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된다.
부르심을 받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부자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자녀는 부모의 ‘기업’을 받게 될 것이기에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받은 이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이신 주께서 소유하신 것을 자녀인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주는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왕국, 즉 ‘천국’을 기업으로 받고, 주께서 다스리시는 것처럼 우리도 ‘다스리는 일’을 할 왕들이다. 또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아버지와 함께 사는’ 약속을 받았다. 그래서 ‘주님’도, ‘천국’도, ‘영생’도 우리의 ‘몫’이요 우리의 ‘기업’이다. 기업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면 이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모두 은혜로 이해될 것이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엡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딤후 2:11-12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며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히 9: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연재를 마치며

12월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있는 달이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 예수이시다.
죄는 어떻게 해결되는가? 자신이 죗값을 치르거나 아니면 ‘대등한’ 인물로 ‘대속’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2020년 3월호–복음의 핵심 개념어 ‘속’(贖)] 그래서 참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참 인간’이 되어 ‘인간’인 우리를 대속(代贖)하여 주셨다. 예수께서 ‘희생’이 되어 완전한 피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2020년 7월호–희생(犧牲)되셨다가 아니라 희생‘이’ 되셨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우리 죄를 ‘자복’하여 ‘사유’하심을 입었고, 죄인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바뀌었다.[2020년 10월호–‘자복’(自服)한 자가 받는 ‘사죄’(赦罪), 그리고 ‘사유’(赦宥)] 이제 예수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우리는 이미 주님이라는 ‘기업’을 누리고 있고, 또 앞으로 영생과 천국을 기업으로 약속받았다. 우리는 ‘완악’하고 ‘패역’하였지만 주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시어 그 약속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2020년 11월호–‘완악’(頑惡)하고 ‘패역’(悖逆)한 ‘자식’] 주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이다.[2020년 5월호–‘신실’(信實)을 통해 보는 하나님의 속성] 우리는 주의 나라에 갈 때까지 주의 명령을 받은 ‘사자’(使者)로 주의 일을 하며 살아가다가[2020년 6월호–전권 위임 대리인 ‘사’(使): ‘천사’에서 ‘사역’까지], 기업으로 받은 천국에 이르러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서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성서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서를 제쳐놓고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성서는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져 있고, 언어는 각종 정치, 사회, 문화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단절되기도 한다. “조선과 대한민국 사이에 낀 성서 단어”라는 연재명으로 지금까지 열 차례 글을 이어왔다.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당시 사용되던 단어의 뜻이 오늘날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함으로써 성서의 오묘한 말씀이 온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였다. 앞으로도 언어는 변하겠지만 성서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는 이 성서를 통해서 하나님과 동행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성서의 단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 나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 서신혜 교수님의 연재 “조선과 대한민국 사이에 낀 성서 단어”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좋은 글 보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부

서신혜 | 고전문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후 신학(M.Div.)을 공부하였다. 저서로 『한국 전통의 돈의 문학사, 나눔의 문화사』 등이 있다. 한양대학교 인문대학 부교수이다.

[이 게시물은 대한기독교서회님에 의해 2020-12-30 17:40:19 성서와설교에서 복사 됨]

 
 
 

2020년 12월호(통권 7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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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1920년대 진화적 창조론과 1930년대 박형룡의 반진화론

한국교회와 평양신학교는 1920년대까지 오래된 지구론과 점진적 창조론을 수용하고 가르쳤다. 1890년대 소책자나 신문 사설을 보면, 변증의 대상이 유교인이었으므로, 무극태극-음양오행설에 의한 진화론적 물질론을 반박하고, 시계-시계공이나 집-목수 비유로 천지만물을 보고 그것을 지으신 창조주를 알 수 있다는 자...
옥성득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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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된 무당

| 시작의 변 가지가지는 슬픔이요 굽이굽이는 눈물인디 / 첩첩산중 고드름은 봄바람이라 십오일 날 해방이 올 줄을 누가 알까 / 하늘에는 서기가 돌고 문전 문전에 태극기라 / 대한민국 만세소리 삼천만 동포가 춤을 춘다 / 해당화야 해당화야 명사십리 해당화야 니 꽃 진다고 설워마라 / 니 꽃은 ...
이윤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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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성교서회의 초기 역사 재고찰

| 연구 동기: 업무 경력과 관심사가 논문 주제로 발전하다 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대학원에서 “한·중 기독교 지식의 생산 및 유통구조에 관한 연구: 1880-1910년대 中・朝 聖敎書會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내가 이 주제를 발견하고 학위논문으로 발전시킨 계기는 대학원 교과...
이고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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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에클레시아를 추구한 목회 여정

신영복의 『담론』에 그가 감옥에서 읽었다는 어느 불구자 산모 이야기가 있다. 산모는 깜깜한 밤에 혼자서 아이를 낳는다. 산모는 그 무거운 몸으로 급히 불을 켜서 자기가 낳은 아기를 비추어 본다. 혹시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그게 두려워서이다. “산모는 자기가 불구라는 사실을 통절하게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하태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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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민족주의와 105인 사건, 1911-1915

1911년 10월 12일 평북 선천의 신성중학교 학생 2명이 총독 살해음모죄로 체포되면서 시작된 ‘조선음모사건’은 1912년 9월 28일 서울지방법원 1심에서 105인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105인 사건’으로 알려졌다. 1913년 11월 대구고등법원...
옥성득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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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지치지 않아라 -<고마운 사랑아>

빈틈없이 열아홉 해를 거쳐온 옛일을 오늘 일처럼 쓰는 이 글은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에 담긴 노래 열한 곡에 관한 것이다. 그 노래들은 모두 늦봄의 시(詩)를 마음으로 품고 쓴 몸뚱이 가락들이다. 늦봄의 시가 작곡가의 속내에 콕 와서 박힌 것들, 박혀서 떠나지 않은 것들, 굳은살처럼 이미 내 인생의 ...
류형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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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윤리’의 변화와 갱신에 대하여

그대의 자식이나 배우자가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지 않은 일을 자신의 의지대로 바꾸려 하고 있다. 또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들은 그대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존재다. 그대가 이 유한성의 법...
박충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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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호(통권 7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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