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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이달의추천글 >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을 기록하다 12 (마지막회)]
이달의추천글 (2020년 9월호)

 

  늦봄 단상-<그대 오르는 언덕>
  

본문

 

늦봄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의 마지막 트랙에 수록된 노래 <그대 오르는 언덕>, 이 곡을 소개하는 것으로 12회에 걸친 이 연재 글의 끝을 채운다.
오십이 넘게 작곡가로 살아온 마당에 다시 대학 시절에 만든 곡을 소개하는 것이니, 음악적 연유로 기착(寄着)해 볼 때 그다지 자랑스러운 곡은 아니다. 다만, 다시 되돌아간다 해도 어김없이 같은 선택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는 ‘우리’가 몹시도 그리워서, 그리 촉촉한 눈빛의 청춘이었던 겨우 스물 몇 살의 ‘우리’가 감당해야 했던 그 고단한 무게를 오십이 넘은 ‘우리’가 대견하다, 기특하다, 참 잘했다, 그리 토닥여 주고파서, 그 무섭던 시절의 ‘우리’가 집에 몰래 와 있을 아비처럼 의지했던 늦봄이 몹시도 그리워서, 정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이 시대를 기어이 살아낼 이 땅의 늦봄 마니아들에게 이 마지막 글을 쓴다.

1
이 글을 쓰는 쉰여섯의 류형선은 <그대 오르는 언덕>을 만든 스물여섯의 류형선을 존경한다. 치기(稚氣)가 아니라 진심이다. 세상에는 나의 존경을 받을 사람이 허다하지만, 나를 그리 우직하게 다룰 줄 알았던 스물여섯의 나를 상회하는 이는 없다.
여리고 미숙한 인생인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스물여섯에는 제법 용기 있게 나를 다루었다. 성큼성큼 뚜벅뚜벅 단백하게 나를 이끌고 갔다. 아닌 것에 대한 거부 의지는 확고했고, 옳은 것에 대한 소신은 뚜렷했다. 능력은 부족했으나 의지는 강했고, 눈이 가 닿는 범위는 좁았으나, 눈 속에 담긴 것은 맑고 순전했다. 값싼 욕망에 흔들리기보다 긴 호흡의 가치지향적인 선택으로 나를 견고하게 부추길 줄 알았던 그 청년이 어느새 쉰 중반이 되어서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1같은 시절을 겨우 살아내고 있다. 서른 해 전의 청년 류형선의 눈빛을 정면으로 조우하기가 가히 두렵고, 두려운 만큼 몹시 그립다.
서른 해 전 봄, 조간신문에 꽉 채워진 글자 몇 개가 부족한 잠을 깨웠다. ‘문익환 목사 방북.’
그해 벽두에 발표한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에서 늦봄이 토해낸 몽유적 상상과 넋두리! 그래, 바로 이것이었다. 그를 따르던 무리들조차 달가워하지 않았던, 참으로 외롭고 고단한 선택이라는 게 직감으로 왔다.
스물여섯의 내 오감은 끝을 모르게 번민하는 상념들로 몹시 떨렸다.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음대 학생장과 음악대학생 연합조직 의장직을 겸했던 나는 그날의 일정을 모두 접고 집에서 운영하던 다방의 뮤직박스 안에 처박혔다. 철장에 갇힌 수인처럼, 기타 한 대 의지해서 한 평 남짓한 뮤직박스 골방의 하루를 꽉 채워 겨우 써낸 노래가 <그대 오르는 언덕>이다. 이른바 ‘문익환 방북 헌정곡’이다.
이후로 나는 400곡이 넘는 작품을 써서 발표했다. 앞 작품보다 진전된 성취가 뒤 작품에 반드시 배어 나와야 수행 가능한 전업 작곡가 인생을 서른 해 넘게 타박타박 살았다. 일테면 내가 쓴 400여 곡은 400개의 진전된 밀도의 음악적 성취여야 했다. 그러니 서른 해 전 학생 시절에 쓴 이 노래가 지금의 감각과 밀도로 맘에 쏙 들 리가 없다. 다시 쓴다면 전혀 다른 감수성으로 써낼 노랫말과 가락이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이 노래의 작사・작곡가로 내 이름을 기억한다. 내게는 뮤직박스 골방에서 보낸 하루의 결실일 뿐이지만, 민주화와 통일운동 과정에서 내가 다 알 수 없는 허다한 사연으로 많은 이들이 이 노랠 불렀다. 특히 문익환과 같은 고백으로 살아가는 진보적·개혁적 기독교인들이 이 노래의 존재 이유를 가장 온전하게 승인해주었다. 그러니 이 노래는 엄밀하게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니어야 이 노래의 가치가 제대로 보인다.
노래를 부른 김원중은 <바위섬>, <직녀에게>를 부른 가수이다. 그는 1993년, 2000년, 2011년 이렇게 총 세 번에 걸쳐 <그대 오르는 언덕>을 녹음했다. 그때마다 내가 디렉터로 동행했다. <뜨거운 마음> 음반 속의 음원은 그중에 가장 늦게 녹음된 것인데, 오십을 훌쩍 넘겨 찾아온 성대결절과 몸살감기에 시달린 탓에 그의 세 번의 녹음 중에 가장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녹음한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느낌은 가장 좋다는 주변의 평이 지배적이다. 본인도 그리 수긍한다. 약간 쉰 듯 갈라지는 목소리지만 삶의 저변에서 길어 올린 깊은 성음이 내 귀에도 더없이 좋다.
악보와 음원을 들어볼 수 있는 동영상 주소를 걸어두었다. 끝까지 잘 들어보시라. 음악이 끝날 무렵 문익환 목사의 음성이 들릴 것이다. 이곡이 실려 있는 음반의 제목이 왜 <뜨거운 마음>인지 늦봄이 직접 일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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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91년 4월 24일, 그날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나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 창립 ‘몇’ 주년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아서 아침부터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유가협은 수평적으로 자주 비교되곤 하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와는 정서 자체가 달랐다. 민가협은 구속되어 있는 이들의 석방을 위한 가족 모임이지만, 유가협은 아들과 딸이 온몸을 던져 갈망했던 세상이 도래한다 해도 두 번 다시 실체를 마주할 수 없는, ‘남겨진 이로 살아가는 아픔’이 깊고 짙게 배인 유족 모임이다. 어줍은 재능이나마 그들 곁에 설 수 있어서 아이처럼 좋았다. 함께 준비한 악단과 가수들도 다 같은 마음이었다.
당시 이런 성격의 공연은 대부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소속 총학생회의 ‘동원 관객’으로 채워졌다. 공연의 양식 자체가 민족민주운동의 문화 예술적 표현 방식이었으니, 일반 관객들의 폭넓은 참여가 쉽지 않았다. 그날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로부터 학생 관객들을 대거 동원해주겠다는 약조를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 시간은 다가오는데, 천 명 이상 밀어닥칠 것으로 기대했던 학생 관객들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150여 명의 관객만 앉아 있는 대강당은 허허롭기 짝이 없었다.
공연 시작 30분 전에 주최 측으로부터 비보가 날아왔다. 명지대학교 1학년 학생인 강경대 군이 연세대학교에서 시위하던 중 시위 진압을 위해 만들어진 경찰 조직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몰매를 맞고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해 한 대학생을 구타해 죽인 사건이다. 유가협의 창립 몇 주년 기념 공연을 치르는 바로 그 날,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유가협 신규회원이 늘어난 것이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에서는 즉각 규탄집회를 열었고, 시위를 마치는 대로 유가협 공연에 동원 관객들을 이끌고 오겠다고 전해왔다. 우린 고심 끝에 기다리기로 했다. 이미 공연 시간은 넘겼고, 공연을 기다리는 애꿎은 150여 명의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사회를 맡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해직교사 주현신(현 과천교회 위임목사) 선생이 마이크를 잡고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노래놀이로 관객들과 놀아주었다. 연세대 학생 관객들이 올 때까지 땜빵용 즉석무대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음악감독인 나를 무대로 부르더니 <그대 오르는 언덕>을 불러보라고 시키는 것이 아닌가! 관객의 박수는 이미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 무대 중앙으로 나가 보니 객석 맨 앞자리에 늦봄이 앉아 있었다. 늦봄은 당연하게도 유가협 회장이었다. 지극히 ‘목사’ 늦봄다운 자리였다.
시간 때우기 용도의 즉석무대였지만, 늦봄 앞에 선 나는 샛바람에 사시나무 떨 듯 몹시 떨었다. 겨우 스물여덟이었던 나의 수줍고 쑥스럽기 비할 데 없는 즉석 헌정노래를, 악보를 통해 익히 알고 있던 늦봄은 더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들었다.
노래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려는데 사회자가 내 팔을 붙들어 다시 무대로 내보냈다. 늦봄이 객석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늦봄은 무대 중앙에서 내 오른손을 위아래 두 손으로 포개 잡았다. 그리고 적당히 쉰 다정한 음성으로 시 한 편을 읊어주었다. 나의 방북 헌정곡에 대한 그의 애틋한 응답의 세레모니였다.
새색시의 첫날밤처럼 내 가슴은 전후좌우로 심하게 요동치고 있어서, 내 귀엔 마지막 한 구절만 새겨졌다.

가능성 앞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지니
그대는 온통 가능성일 뿐이니


그 한마디는 이후로 여리고 미숙한 제자들에게 보내는 나의 애정 깃든 아포리즘으로 널리 쓰였다. 나와 가까운 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가슴에 새겨봤음직한 명제이다. 스물여덟 해를 보낸 지금도 적당히 쉰 그 목소리가 생생하다.

3
1994년 1월 18일, 어느 집 식탁에 초대받아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에 저녁 뉴스로 늦봄의 서거 소식을 들었다. 나와 같이 아비 잃은 심정이었을 가까운 벗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수유리 한신대학교 빈소로 달려갔다.
골반 아래 어딘가에서 시작된 구멍 하나가 빈소에 가까워질수록 명료해지더니 급기야 수습 불가능한 수준의 큰 구멍으로 가슴을 뚫었다. 그 구멍은 장례식 내내 아무리 빈소에 가까이 있어 봐도 메꾸어지지 않았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그 구멍의 이쪽과 저쪽을 오갈 뿐이었다. 그 때마다 시리디 시린 통증이 배어 나왔다.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그 생각뿐이었다. 나는 빈소 근처의 여관을 잡아 두 번째 헌정노래를 만들었다. 늦봄 추모곡 <늦봄 가시는 길목>, 악보의 일부만 여기 싣는다.
가능한 슬프디 슬프게 빚었다. 할 수 있는 한 아프디 아프게 빚었다. 곡을 쓰는 내내 울었고, 과히 울어서 쑥스러운 부분들이 군데군데 있었으나 한 치도 되새김질하지 않았다. 늦봄이 우리 곁을 떠났는데, 멀쩡하게 돌아가는 세상이 한없이 야속해서, 세상의 울음보 한복판을 쿡 건드리고 싶었다.
빚은 노래를 합창과 관현악으로 편곡했다. 아비 잃은 심정으로 발길 모은 80여 음악인을 모아 합창연습을 시켰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아 알아서 모인 음대 학생들을 한데 모아 관현악 연습도 시켰다. 처음 솔로는 노래모임 새하늘새땅의 방기순에게 맡겼는데, 그도 내내 늦봄 마니아로 살아온 가수이다.
이레 뒤, 찬 겨울 한신대 교정에 눈보라가 흩날렸다. 눈보라가 몸부림치는 가운데 늦봄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늦봄 추모가 <늦봄 가시는 길목>을 연주할 때는, 불과 닷새 전에 만든 음악이니 음과 음의 역학관계를 뼛속까지 암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내 악보에 눈길을 내려놓고 지휘를 했다. 합창하는 이들이 펑펑 울며 노래하는 모습을, 객석의 흐느낌을, 그 주변으로 눈보라가 흩날리는 광경을 도저히 지켜볼 자신이 없었던 탓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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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는 늦봄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늦봄을 더 알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떠났고, 떠난 후로 그를 논거로 생성된 것들이 많았지만 내가 별로 궁금해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늦봄을 회자한 것들이 많을수록 궁금증은 더해졌다.
그의 시(詩)가 나의 궁금증을 채워주지 않을까. 그 시에 노랫가락을 얹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면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이고, 감추어진 것들이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내 안에 어렴풋한 실루엣으로 남은 늦봄의 형상이 보다 생생한 이미지로 구체화되지 않을까. 그것을 나처럼 늦봄이 궁금한 사람들과 더불어 애틋하게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찬송가의 가락에 음수율을 맞추어 그가 노랫말을 쓴 『늦봄 문익환 옥중 성가집』에 더덕더덕 배어 있는 외로움의 흔적을 놓고 볼 때, 나 같은 늦봄 마니아를 작곡가로 곁에 두는 것이 늦봄에게 꼭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까…. 시도 때도 없이 이런 생각에 잠겼다. 늦봄 문익환 헌정음반 을 만들게 된 내 개인의 소치(所致)는 이러했다.3
늦봄 사후 여섯 해를 넘겨 2000년 7월에 늦봄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열두 곡 모두 늦봄의 시에 류형선이 가락을 붙여 만든 모음곡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총무 배태진 목사)의 도움을 받아서 몇 곡의 편곡을 보강하고, 문성근의 시 낭송 <잠꼬대 아닌 잠꼬대> 트랙을 추가하고, 재킷을 새롭게 다시 만들어 리메이킹한 것은 2011년 5월의 일이다.
굳이 이 음반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을 낱낱이 꾹꾹 눌러 쓴다. 김용우·김원중·문성근·송정미·새하늘새땅·윤정희·이정열·전경옥·정태춘·조수아·홍순관 등의 걸출한 가수들이 참여했다. 정은주·박우진·이종혁·조성우·곽수환·함춘호·박달준·김주리·신창렬·권형석·진성수·정혜심·김동석 등이 국악기와 현악기와 포리듬(4rhythm) 연주로 참여했고, 최용석·김준범·노은아·방기순·정길수·조계연·조상근·정진희·한포근 등이 코러스로 참여했다. 작곡가 이지상과 최정배가 편곡으로 일손을 덜어주어 어눌한 가락에 근사한 옷이 입혀졌다. 임재만이 리메이킹 음원의 음향감독으로 참여했다.
편곡과 건반 연주를 맡은 신현정은 2011년 리메이킹 음원 녹음에 참여하면서 ‘어린 현정이를 만난 기분’이라며 수선스레 즐거워했다. 2000년 초판의 음향감독 김승용은 이 음반의 레코딩 믹싱을 전담하면서 음향오퍼레이터 인생의 변곡점으로 삼겠다며 작심하고 덤벼들었다. 둘 다 지금은 고인(故人)이 되었다.
2014년에 나는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을 맡아 일했다. 한창 일하던 중, 국립국악원장의 강력한 제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나의 연임 승인이 나지 않았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을 용납하면서, 국악원장과 내가 함께 꾸었던 허다한 꿈과 실현 가능한 것으로 가슴 방망이질 하며 계획한 산더미 같은 일들을 일거에 내려놓고, 나는 2016년 4월에 예술감독직을 마감했다.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다. 국악원장을 연임시켜 놓고 그의 손과 발 노릇을 할 예술감독의 연임을 장관은 왜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6개월이 지난 후 그해 10월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SBS 8시 뉴스에 내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보도되기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정부의 문화지원 사업을 심사하는 민간 전문가들을 선정할 때 참여시켜서는 안 되는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정부 입맛에 맞는 심사위원단을 꾸려서 문화 통제를 강화하려 한 사건이다. 연극·문학·미술·음악 등 각 분야에 걸쳐 총 19명으로 된 그 전문가 블랙리스트 명단에 전통예술 분야에서 오로지 나의 이름 하나만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 이유도 매우 간결했다.

류형선(문익환 방북헌정, <뜨거운 마음> 제작)

5
이 연재글은 총 12회로, 1년이 약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서너 번쯤 바쁘고 방만한 나의 일정 탓에 빠지기도 했지만, 횟수는 열두 번을 꽉 채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 알 수 없는 상태로 시작했다. 쓰다 보면 어렴풋한 생각의 조박들이 실체의 언어를 입을 것 같았다. 다 쓰고 보니, 결국 2011년 <뜨거운 마음> 리메이킹 앨범 재킷에 쓴 나의 글을 길게 늘려 쓴 듯하다. 그 글을 빌려오는 것으로 이 연재를 갈무리한다.

탐욕에 대항하는 어휘가 많겠지만, 내 생각은 ‘감동’이다. 탐욕은 감동 없는 삶을 사람에게 강요해야 자신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고, 감동은 그 탐욕 앞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이다. 따라서 음악은 ‘감동 없는 삶에 대한 건조주의보’이다. 이 탐욕스러운 시대를 거슬러 대항하기 위한 나의 음악 전략은 바로 이것이다.
(중략)
나약하고 소심하고 툭 하면 삐치고 불편하면 회피하고 입금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 이 음반에 참여한 음악인들도 그저 그렇게 비루한 인생살이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빚은 음악이 어떻게 감동 없는 삶에 대한 건조주의보일 수 있단 말인가?
역설적으로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쉽게 흔들리고, 튼튼하지 않은 자신이 늘 측은하고, 남루한 생존의 논리 앞에 허망하게 무너져 가는 음악적 자아(自我)를 거머쥐고 끙끙거리는 인생이기에 감동이 절실한 것이다. 그 절실함으로 빚은 음악이 음악인 자신의 인생을 치유하는 에너지일 때, 혹은 욕망보다 가치가 우선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이끄는 힘으로 작용할 때, 비소로 감동 없는 삶에 대한 건조주의보가 될 자격을 얻는다.
(중략)
문익환을 만난 감동의 실체는 무엇일까? … 평온한 안식이거나 유쾌한 일탈이거나 신바람 나는 유희이거나 통렬한 질주이거나. … 음악이 그런 것일 수 있지만, 굳이 문익환을 만나 음악이 덧입을 수 있는 변별력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 ‘역사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이 아닐까 싶다. 문익환을 노래하는 것, 문익환의 시를 만나고, 그의 눈빛과 호흡을 되새김하는 일은 음악인 자신이, 혹은 우리들 모두가 역사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을 덧입는 일이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수위일 것이다. 고결한 수위의 사랑이 다소 부담스러운 분들에게는 내 기억의 세포 속에 오래오래, 참으로 오래 묻어 있는 문익환 목사의 일갈을 추신한다.
“사랑을 가져라. 사랑은 지치지 않는다.”


* 류형선 선생님의 연재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을 기록하다”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울림 있는 글을 보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부


1 백석의 시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에서 빌려옴.
2 늦봄의 장례식 풍경에 관한 세세한 내용은 이 연재의 세 번째 글 “목사로 산다는 것–<뜨거운 마음>”(「기독교사상」, 2019년 8월호)에 실려 있다.
3 늦봄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의 제작 과정에 대한 세세한 내용은 이 연재의 첫 번째 글 “사랑은 지치지 않아라–<고마운 사랑아>”(「기독교사상」, 2019년 6월호)에 실려 있다.



류형선 | 한양대학교 작곡과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예술전문사과정을 졸업했다.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KBS 국악대상을 수상하였다. 작곡가로 살면서 400여 작품을 발표하였고, 음반프로듀서로서 살면서 50종의 음반을 제작하였다. 저서로 북시디 『전
래자장가 <자미잠이>』, 음악에세이 『음악에게 차 한 잔을』 등이 있다. 현재 전라남도립국악단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이며, 경기예술창작소 수석마스터 및 정동극장 이사로 활동 중이다.

 
 
 

2020년 9월호(통권 7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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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론, 무엇이 문제인가

연재를 시작하며 오랫동안 바울을 공부해왔다. 그러던 차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해서 ‘칭의론에 대한 논의’가 관심사로 등장하는 것을 보고, 내 공부의 초점도 거기에 맞추었다. 개신교 신학의 중심 주제에 대한 나 나름의 이해를 갖기 위함이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이 ‘나의 구원’...
강일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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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평등을 위해 권력구조를변혁하는 젊은 여성들, YWCA

제29회 YWCA세계대회가 지난 2019년 11월 17일(日)부터 22일(金)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렸다. ‘젠더 평등을 위해 권력구조를 변혁하는 젊은 여성들’이라는 주제로 모인 이번 대회는 총 80개국의 정식대표 256명을 포함하여 500여 명의 회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세계YWCA는 아시아, 아프리카, ...
최수산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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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진화적 창조론과 1930년대 박형룡의 반진화론

한국교회와 평양신학교는 1920년대까지 오래된 지구론과 점진적 창조론을 수용하고 가르쳤다. 1890년대 소책자나 신문 사설을 보면, 변증의 대상이 유교인이었으므로, 무극태극-음양오행설에 의한 진화론적 물질론을 반박하고, 시계-시계공이나 집-목수 비유로 천지만물을 보고 그것을 지으신 창조주를 알 수 있다는 자...
옥성득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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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된 무당

| 시작의 변 가지가지는 슬픔이요 굽이굽이는 눈물인디 / 첩첩산중 고드름은 봄바람이라 십오일 날 해방이 올 줄을 누가 알까 / 하늘에는 서기가 돌고 문전 문전에 태극기라 / 대한민국 만세소리 삼천만 동포가 춤을 춘다 / 해당화야 해당화야 명사십리 해당화야 니 꽃 진다고 설워마라 / 니 꽃은 ...
이윤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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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성교서회의 초기 역사 재고찰

| 연구 동기: 업무 경력과 관심사가 논문 주제로 발전하다 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대학원에서 “한·중 기독교 지식의 생산 및 유통구조에 관한 연구: 1880-1910년대 中・朝 聖敎書會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내가 이 주제를 발견하고 학위논문으로 발전시킨 계기는 대학원 교과...
이고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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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에클레시아를 추구한 목회 여정

신영복의 『담론』에 그가 감옥에서 읽었다는 어느 불구자 산모 이야기가 있다. 산모는 깜깜한 밤에 혼자서 아이를 낳는다. 산모는 그 무거운 몸으로 급히 불을 켜서 자기가 낳은 아기를 비추어 본다. 혹시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그게 두려워서이다. “산모는 자기가 불구라는 사실을 통절하게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하태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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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민족주의와 105인 사건, 1911-1915

1911년 10월 12일 평북 선천의 신성중학교 학생 2명이 총독 살해음모죄로 체포되면서 시작된 ‘조선음모사건’은 1912년 9월 28일 서울지방법원 1심에서 105인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105인 사건’으로 알려졌다. 1913년 11월 대구고등법원...
옥성득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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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지치지 않아라 -<고마운 사랑아>

빈틈없이 열아홉 해를 거쳐온 옛일을 오늘 일처럼 쓰는 이 글은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에 담긴 노래 열한 곡에 관한 것이다. 그 노래들은 모두 늦봄의 시(詩)를 마음으로 품고 쓴 몸뚱이 가락들이다. 늦봄의 시가 작곡가의 속내에 콕 와서 박힌 것들, 박혀서 떠나지 않은 것들, 굳은살처럼 이미 내 인생의 ...
류형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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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윤리’의 변화와 갱신에 대하여

그대의 자식이나 배우자가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지 않은 일을 자신의 의지대로 바꾸려 하고 있다. 또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들은 그대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존재다. 그대가 이 유한성의 법...
박충구 | 2019년 5월
48
스승을 넘어 주께로 더 가까이

나에게는 두 분의 스승이 계신다. 한 분은 홍정길 목사님이고, 한 분은 박철수 목사님이다. 하지만 스승이 두 분뿐이라고 말하면 우선 이만열, 손봉호 교수님과 내가 졸업한 신대원(합신) 교수님들이 섭섭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손봉호, 이만열 교수님은 내가 총신대 학부 시절에 철학과 한국사를 가르치시...
강경민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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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문명의 시작과 간략한 중국어 성서 번역사

한글 문명의 시작과 언문 사용 양상 1443년에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1446년 반포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리글은 누구나 즐겁고 행복하게 받아들여서 쓰던 문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상당한 반대가 있었고, 그 바탕에는 새로 창제한 말에 대한 멸시의 태도가 깔려 있습니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의 ...
전무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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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시대의 질문에 직면하라-장로회 교단들의 제103회기 총회를 돌아보며

‘가나안교인’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성도는 이제 거의 없다. 포털사이트 이용자들이 직접 등록하는 오픈사전에는 이 단어를 “교회에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명 ‘안 나가’를 거꾸로 지칭해 부르는 개신교 이탈현상을 지칭한 신조어”라고 설명하며 일반명사로 등재하고 있다. 총회에 보고된...
김광수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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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호(통권 7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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