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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추천글 (2020년 5월호)

 

  생명과 평화, 하나됨으로 발현되는 5·18정신
  

본문

 

5·18 40주년을 맞이한다. 몇 해 전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헌시로 바친 <5·18은 민족의 지평선입니다>를 다시 읽는다. 5·18은 “헛된 옛사랑이 아니라”, “첫사랑의 검은 눈동자–역사의 당당한 키스”라는 말이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더 다가서는 것을 느낀다. 갈라진 나라, 헝클어진 나라, 그러나 40년 전 ‘오월광주’, 그리고 대한민국이 우리에게 화두로 던진 ‘생명과 평화와 하나됨’의 대동세상을 우러러 상기한다.
쓰라린 슬픔과 아픔 속에서도 서로 등을 기대며 살고, 때로는 몸을 던져 저녁노을처럼 붉게 타올랐던 1980년 오월의 대동세상! 오늘은 「기독교사상」 독자들과 함께 그 오월의 실체와 아픔,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찾아가 다시 손을 잡아본다.

5·18은 민족의 지평선입니다

5·18은
더 이상 허수아비를 세울 수 없는-
더 이상 총칼을 불러들일 수 없는
온갖 곡식 온갖 생명의 모가지들이 파도치는
광막한 우리 겨레 지평선입니다

이제 5・18은 무덤이 아닙니다
저 지평선에 뿌려질 둥근 씨앗입니다
남부여대 멀리 가는 우리들 씨종자입니다

헛된 옛사랑이 아닙니다
첫사랑의 검은 눈동자-
역사의 당당한 키스입니다

피묻은 깃발이 아닙니다
우리들 하늘에 펄럭이는 생명과 평화의,
둘로 찢어짐이 아닌 하나됨의 깃발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70년이 넘도록 기도하는
정든 산 돌고 돌아 민주주의의 고향입니다

아 생명과 평화와 하나됨의 지평선으로
펼쳐지는 오월이여! 내일이여! 바로 우리들이여!


10・26사태로 박정희의 유신독재정권이 무너지자 이 나라에는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민주화운동의 서곡을 알리는 ‘서울의 봄’이 그것이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이 땅의 봄은 그러나 너무도 짧았으며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들고 있었다.
1979년 10월 26일에 시작되어 1980년 5월 17일에 막을 내린 서울의 봄, 한국 민주주의 봄. 직접선거를 통한 총학생회의 부활과 함께 대학가에는 학원자율화운동이 일어나고 연일 시국성토가 계속되었다. 계엄철폐를 외치는 우렁찬 함성과 정부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규하 대통령의 과도정부는 12・12쿠데타를 통해 급부상한 신군부 세력에게 완전히 발목이 잡힌 상태였다.
12・12쿠데타는 군부 내 ‘하나회’ 조직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한국 현대사 최대의 반란사태이다.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이 정승화 참모총장을 강제연행하면서 지휘계통을 무시한 하극상의 전형을 보였다. 전두환은 상관인 정승화 참모총장을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납치, 거기 있는 부하들을 사살하고 한 나라의 국가질서를 뒤흔들어놓았다. 육사 11기부터 20기까지 망라된 하나회는 전두환, 노태우, 박준병, 최세창 등 총 281명의 장교가 가입된, 군법상으로 분명히 불법집단이었다.
부마항쟁 이후 신군부의 표적은 ‘광주’였다. 시나리오대로(이 시나리오도 며칠 못 가서 분노한 시민들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계엄군이 들이닥쳤다. 1980년 5월 13일 밤에 이미 상무대 31사단 병력을 투입시킨 신군부는 18일 전북 금마에 주둔한 특전사 7여단(7공수) 병력 686명을 전남대와 조선대 교정부터 쏟아부었다. 전쟁터도 아닌 평화로운 광주에서 박달나무 곤봉과 총칼, 탱크로 충정 작전, 이른바 ‘화려한 휴가’를 개시한 것이다.
5월 18일, 공수부대는 일반 시민들이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진압 방법으로 광주 금남로와 충장로 일대를 무자비하게 들쑤셔댔다. 버스터미널과 대인시장에서도 대혼란이 벌어졌다. 최루탄이 무차별 발사되고 공수부대가 휘젓고 다녀 시장 상인과 가정주부, 학생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었다. 이날 오후 병력 258명을 추가 투입한 특전사 11여단(11공수)은 19일 자정께 1,146명을 광주에 증파했다. 20일 새벽에는 특전사 제3여단(3공수) 병력을 증파, 총 3,405명의 병력을 진주시켰다. 여기에다 수도 서울을 지켜야 할 20사단 병력들이 열차와 군용비행기로 공수되었다. 병력 현황은 장교 284명, 사병 4,482명, 총 4,766명.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물론 이 군인들 또한 완전무장을 한 최정예 부대였다.
7공수, 11공수, 3공수 부대원 8,171명과 20사단 병력 4,766명이 추가된 1만 2,937명의 병력, 광주에 주둔하고 있던 31향토사단 병력에다 경찰 10개 중대 병력 1,925명까지 합한다면, 대략 2만여 명 이상의 병력이 10일 동안 광주 시위현장에 투입되었다. 당시 광주 인구가 80만이었으니, 40명당 한 명 꼴로 전투병력이 달라붙은 셈이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주저앉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200명, 300명씩 금남로, 충장로, 제봉로, 광주역 광장으로 무리지어 다니면서 “전두환 물러가라”, “계엄해제하라”를 외쳤다. “민주주의가 말살됐다”, “공수부대가 부녀자까지도 때려죽였다”라고 울부짖었다. 18일 하루 동안만도 학생과 시민 400명을 붙잡아서 군용트럭에 실어갔다. 심지어 출근시간 시내버스 안까지 뛰어 올라가 젊은 직장인들도 무차별 끌어내렸다.
저녁 무렵에는 시외버스공용터미널과 무등경기장 스탠드 아래쪽에서 10여 구의 시체가 쌓여 있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들의 만행을 목격한 계림동 성당 조비오 신부는 “사제의 입장이었지만 총을 들어 계엄군을 쏘고 싶었다.”라고 당시를 회고할 정도였다.
계엄군이 계속 투입되고 진압작전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시민들의 분노는 들끓었다. 이 분노는 마침내 전남지역 전역으로 번져나가 해남, 영암, 목포, 무안, 장흥, 강진, 함평, 화순, 완도 등지에서도 항쟁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광주로 달려가자, 우리 형제들이 다 죽는다” 하는 구호를 외치며 이들 시군 지역에서도 광주를 향해 진격하는 시위차량이 줄을 이었다. 라디오와 TV와 신문이 끊긴 광주, 19일 오후 6시부터는 시외버스와 기차마저 완전히 끊겨 먼 바다에 있는 ‘섬’처럼 고립된 광주를 향하여 도내 지방 시위대들이 ‘광주출정’ 길에 오른 것이었다.
20일은 광주시민 모두가 계엄군의 총칼에 맞서 최대의 민중봉기를 일으킨 날이었다. 하늘에는 중무장한 군용헬기가 쉴새없이 돌고 있는 가운데, 오후 7시에 전남도청 앞에 저지선을 쳐놓고 도열해 있던 계엄공수부대를 향하여 일제히 차량시위가 전개되었다. 시내 거의 모든 거리를 꽉 매운 시위군중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시민항쟁의 대장정에 올랐다. 금남로의 경우 20만여 명 이상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계엄군의 탱크와 총칼을 향하여 거센 파도처럼 대응했다. 학생들과 혼연일체가 된 시민들은 <애국가>, <봉선화>, <선구자>, <전우가> 등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1980년 5월 21일(수)은 음력으로 사월 초파일. 이날은 신분과 계층, 나이와 직업에 관계없이 당시 광주시민의 반쯤을 넘어서는 40만여 명 이상의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칼과 맞서 싸우기 위해 무장항쟁을 감행한 날이었다. 오후 1시, 도청 앞 공수부대의 집단발포로 숨진 사람만도 54명, 총상을 입은 부상자만도 500명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렇게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훗날 노래로도 널리 불려진 ‘해방광주’, 광주운명공동체가 찾아왔다.
광주 최후의 날인 5월 27일. 이날 새벽에 전남 도청작전에 투입된 병력은 3개 공수여단과 특공부대 병력 376명, 공격부대인 보병 2개 사단병력 5,036명, 봉쇄부대 병력 769명 등 총 6,172명이었다. 외곽 전투에 참여한 병력까지 합하면 무려 2만여 명이었으며, 헬기와 F5폭격기까지 띄웠음을 감안한다면 공군 병력도 대량 참가한 셈이었다. 이날 아침 7시까지 광주 상공을 가득 메우며 가로질러 비행하던 무장헬기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였으며, 그 사이 제트폭격기가 날았다. 역시 베트남전쟁에서 맹위를 떨친 건쉽, 코브라, 올챙이형 무장헬기와 CH47기 등의 군용헬기가 광주 하늘을 까맣게 뒤덮었다.
당시 5・18 희생자들을 들여다보자. 정부가 인정・집계발표(2001. 12. 18.)한 5・18광주항쟁 당시 사망자 수는 민간인 168명, 군인 23명, 경찰 4명 등 총 195명이었다. 총상 및 칼에 의한 자상, 구타・고문 등으로 인한 부상자는 모두 4,782명이었다. 그러나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제4차 보상신고 때까지 신고된 행방불명자(행불자)는 406명이었으나, 정부가 인정한 희생자는 겨우 70명뿐이었다. 피해 가족들과 정부의 조사가 많은 차이를 보인 셈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고 확인되지 않은 행불자를 모두 합한다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는 정부 집계를 훨씬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구천에서 떠돌고 있는 암매장된 시민들, 비밀 화장터에서 소각된 것으로 추정된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망월동 옛 묘역(제3묘지)에서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된 오월영령들. 이곳을 찾은 스리랑카 태생의 시인 바실 페르난도(Basil Fernando)는 <희생자들의 묘지>(Graveyard of the victims)라는 시를 남겼다. 스리랑카 대법원 판사로서 베트남난민구제위원회UN난민고등법무관을 지냈으며, 현재 홍콩 아시아인권위원회위원장과 아시아법률센터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그는 무덤 위에 풀을 뜯는 메뚜기를 보고 오월영령이 ‘민주주의 파수꾼’으로 대한민국을 지켜준다고 노래했다.

희생자들의 묘지
― 코리아의 남녘 광주 5・18묘지

모든 것들은 / 썩어서 없어진다 //
옛날이나 먼 미래에도 / 그것은 인과응보의 법칙 //
탱크와 총칼 따위도 / 썩어서 없어진다 //
상처 입은 / 몸뚱이처럼 그렇게 //
헌데 이 무덤들은 / 무엇이란 말인가 //
이곳이 끝내 보여주려는 것은 / 정녕 무엇이란 말인가 //
불의의 모든 폭력을 / 거부하는 이 모래의 땅- //
썩을 수 없는 눈물은 / 풀잎들을 자라게 하고 //
메뚜기 떼는 또한 / 파수(把守)를 서고 있나니


그리고 광주의 시인 김준태는 광주항쟁의 10일간을 장시로 압축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에서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피투성이 도시” 속에서, 그러나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광주시민과 이 땅 민중들의 뿌리 깊은 에너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기뻐한다. 가장 절망의 순간에 어쩌면 ‘환희의 순간’을 찾은 것일까. 음악가 베토벤이 귀가 완전히 먹었을 때 교향곡 제9번 4악장 <환희의 송가>를 작곡, 연주한 것처럼…. 광주시민들이 광주와 무등산을, 계엄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청춘의 도시”를 다시 세우고 있음을 본 것이다. 역사는 분노(사실 분노보다 더 깊은 사랑이 어디에 있으랴)를 통해서 위대한 사랑과 생명, 하나됨의 세상을 얻어내는 힘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 (중략) …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不死鳥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 (중략) …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역사는 발전한다.’는 말이 예증하듯, 5・18은 엄청난 상처였으나 마침내 민주주의의 승리로 이어졌다. 12・12와 5・17 쿠테타에 이어 광주학살을 자행한 신군부 세력이 민족과 민주주의에 준거한 역사적 단죄를 피할 수 없었음이 그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기적 재판’을 받기 위해 ‘나란히’ 법정에 서야 했다. 1996년, 대법원은 판결을 내리면서 “우리나라는 제헌헌법의 제정을 통하여 국민주권주의, 자유민주주의, 국민의 기본권 보장, 법치주의 등을 국가의 근본이념 및 기본원리로 하는 헌법질서를 수립한 이래…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는 것”이라고 명백히 선언했다.
1980년 5월 이후 계속된 ‘오월싸움’은 어김없이 모든 시민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먼저 5・18은 시인 김정환이 노래했듯이 “끝까지 우리들 인간성을 배반하지 않았던” 나눔과 베풂의 문화를 창출한 공동선(共同善)의 전범(典範)을 보여주었다. 계엄군이 투입된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광주시민들끼리는 살인, 강도, 절도사건 하나 없이 모두가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운명공동체(시민공동체)를 아름답게 재현했는데 그것이 이후 한국 사회 시민운동의 도덕적 모델이 되었다.
둘째로 분단국가에서는 여차하면 레드콤플렉스를 악용하는 군부세력이 출몰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5・18의 경험을 통해서 시민대중은 국토와 민족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저버리지 않는 역사적 길을 찾기 시작했다. 셋째는 외세에 의존하는 단순한 환상에서 벗어나 ‘주권국가’를 향한 의지가 확실한 목소리로 표출되었다는 점이고, 네 번째는 서로 다른 성격의 운동이 종국에 하나로 만나는 연대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다섯째로는 대구2・28운동, 1948년의 여순사건과 제주4・3사건, 거창민간인학살사건의 재조명과 역사재평가운동 등이 그것이다. 여섯째로는 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이 각 종파를 초월하여 ‘함께하는 나라사랑운동’이 큰 족적을 남기었다.
따라서 그렇다. 이 땅의 민주주의운동과 통일운동에 온몸을 바친 젊은 영혼들을 잊어서는 안 되리라. “잊지 말자. 그리고 기억하자!”라는 경구가 말해주듯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만큼이라도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으니 말이다. 5・18의 연장선상에서 촉발된 1987년 ‘6월항쟁’에 동참한 대다수 국민들의 결집된 역량이 마침내 나라 발전에 커다란 활력소를 불어넣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의 소중한 자산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부르짖고, 싸우고, 정신을 잃지 않으려 했으니 5・18은 우리나라 전체 구성원과 해외 700만 동포,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의 민주주의의 교과서로 읽혀지면서 자유와 평화, 인권운동으로 보편성과 영원성을 부여받고 있다.
해마다 오월 그날이 돌아오면 노래처럼 입술에 올리고 싶은 슬로건이 있다. “오월에서 민주주의로! 오월에서 통일로!”가 그것이다. 결국 이 말에서 엿볼 수 있는 5・18의 진정한 의미는 갈라짐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하나됨’ 속에서만이 완성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서로 손잡고 서로를 위로하며 어루만져주는 세상”, 이것이 진정 오월정신이며 대동세상, 함께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빠스(1914-98)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의 장시 <태양의 돌>에서 중심테마로 삼은 말 “나는 너다 그리고 너는 나다”를 경구(警句)로 전하면서 평화, 남과 북이 하나 되는 세상을 꿈꾸며 노래한 나의 시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로 이 글을 마친다. 「기독교사상」 독자들의 건강과 사랑과 평화를 빌어본다.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한 놈을 업어주니 또 한 놈이
자기도 업어주라고 운다
그래, 에라 모르겠다!
두 놈을 같이 업어주니
두 놈이 같이 기분 좋아라 웃는다
남과 북도 그랬으면 좋겠다.



김준태 | 1948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였으며, 월간 「詩人」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참깨를 털면서』,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등과 영역 시집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Gwangju, Cross of Our Nation), 일역 시집 『광주로 가는 길』(光州へ行く道)이 있다. 5・18기념재단 10대 이사장으로 봉직하였으며, 조선대 초빙교수를 지냈다.

 
 
 

2020년 6월호(통권 7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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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민족주의와 105인 사건, 1911-1915

1911년 10월 12일 평북 선천의 신성중학교 학생 2명이 총독 살해음모죄로 체포되면서 시작된 ‘조선음모사건’은 1912년 9월 28일 서울지방법원 1심에서 105인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105인 사건’으로 알려졌다. 1913년 11월 대구고등법원...
옥성득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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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지치지 않아라 -<고마운 사랑아>

빈틈없이 열아홉 해를 거쳐온 옛일을 오늘 일처럼 쓰는 이 글은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에 담긴 노래 열한 곡에 관한 것이다. 그 노래들은 모두 늦봄의 시(詩)를 마음으로 품고 쓴 몸뚱이 가락들이다. 늦봄의 시가 작곡가의 속내에 콕 와서 박힌 것들, 박혀서 떠나지 않은 것들, 굳은살처럼 이미 내 인생의 ...
류형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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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윤리’의 변화와 갱신에 대하여

그대의 자식이나 배우자가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지 않은 일을 자신의 의지대로 바꾸려 하고 있다. 또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들은 그대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존재다. 그대가 이 유한성의 법...
박충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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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넘어 주께로 더 가까이

나에게는 두 분의 스승이 계신다. 한 분은 홍정길 목사님이고, 한 분은 박철수 목사님이다. 하지만 스승이 두 분뿐이라고 말하면 우선 이만열, 손봉호 교수님과 내가 졸업한 신대원(합신) 교수님들이 섭섭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손봉호, 이만열 교수님은 내가 총신대 학부 시절에 철학과 한국사를 가르치시...
강경민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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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문명의 시작과 간략한 중국어 성서 번역사

한글 문명의 시작과 언문 사용 양상 1443년에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1446년 반포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리글은 누구나 즐겁고 행복하게 받아들여서 쓰던 문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상당한 반대가 있었고, 그 바탕에는 새로 창제한 말에 대한 멸시의 태도가 깔려 있습니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의 ...
전무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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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시대의 질문에 직면하라-장로회 교단들의 제103회기 총회를 돌아보며

‘가나안교인’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성도는 이제 거의 없다. 포털사이트 이용자들이 직접 등록하는 오픈사전에는 이 단어를 “교회에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명 ‘안 나가’를 거꾸로 지칭해 부르는 개신교 이탈현상을 지칭한 신조어”라고 설명하며 일반명사로 등재하고 있다. 총회에 보고된...
김광수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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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로 본 한국 개신교인들의 신앙관과 동성애에 대한 인식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하 기사연, 이사장 윤길수, 원장 김영주)은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7일까지 10일간 전국 16개 시도, 만 20-69세 성인 남녀 1,000명(개신교인 800명, 비개신교인 200명)을 대상으로 ‘신앙관, 개헌, 남북관계 및 통일, 동성애’에 대한 개신교인의 인식조사를 진행하고, ‘2018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
박재형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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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70년이나 머뭇거린 만남과 화해

광화문 광장에서 ‘4370’이라는 숫자를 보았을 때,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옆에서 누군가, 제주4・3사건을 70년 만에 전국적으로 추도하는 기회를 맞게 되어 조합된 숫자라고 일러주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두 세대가 넘게 걸린 셈이다. 또한 제주교회가 4・3을 대면하는 데도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
김인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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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의 아루샤 선교대회, “제자도를 향한 부르심”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사대회의 맥을 이어 거의 10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에큐메니컬 선교대회가 2018년 3월 8-13일, 아프리카 탄자니아 아루샤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갈라디아서 5장 25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에 기초한 “성령 안에서 선교-변혁적 제자도로의 부르심”(Moving in t...
최상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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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호(통권 7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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