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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나의 목회 수기]
교회와현장 (2024년 1월호)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목회
  

본문

 

목회 46년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학교 다닐 때의 경험이다. 풀리지 않는 어려운 수학 문제라도 해답을 먼저 살짝 보고 나면 풀어갈 수 있는 길이 뒤늦게 보인다. 답을 알면 답답해하거나 방황할 이유가 없다.
나는 2023년 4월 감리교회에서 46년 목회를 마치고 정년퇴임을 한 원로목사로 살고 있다. 1977년 4월부터 거의 반세기 동안의 목회를 돌아보면 한마디로 기적이었다.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는 의미에서 기적이 아니라, 나 자신의 배경이나 능력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사역과 삶을 살아왔음이 기적이다.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가르치고 도와주며 인도하신 은혜였으니 내 삶에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해답이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나는 1952년 8월 천년고도 신라의 도읍지 경주에서 태어났다. 6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엄마’, ‘물’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나를 집에서는 언어장애인인 줄 알았다.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니 지금도 꽤 많이 기억나는 아버지와 관계된 일들은 대략 내가 4-5살 때의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우리 집의 종교는 샤머니즘이었다. 어머니는 매년 4월 초파일마다 절에 가서 가족들의 이름으로 등불을 밝히고, 해마다 여러 차례 조상 제사를 지내셨다. 정초에는 점쟁이를 찾아가 한 해의 운수를 묻고, 가정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집 안방 벽에 모셔놓은 아버지의 ‘혼백’ 앞에 정화수나 밥상을 차려놓고 기도를 올리셨다. 어머니의 최우선 과제는 자식 공부가 아니라 자식들 굶기지 않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5학년 때 딱 한 번 ‘상’이라고 평가한 통지표를 받았을 뿐, 언제나 ‘중’이었다. 4학년 때까지 국어책을 시원스럽게 읽지 못하여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다. 친구들이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던 날 나는 동네 앞산에 올라가 화목용 솔방울을 따야 했다. 어머니는 나를 중학교에 보낼 생각도 하지 않으셨고, 나 스스로도 중학교에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정원 미달인 어느 중학교의 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해주셔서 중학교에 입학할 기회가 생겼다. 중학교 생활 3년은 내게 큰 변화를 일으켰다. 2등으로 졸업하면서 재단 이사장상을 수상한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그곳에서 우수함을 인정받았다.
고등학교 1학년인 1968년 6월 19일, 친구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후 회사에 들어가 일하다가 부산 청산학원에서 재수에 도전하여 1972년 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했다. 3학년 때에는 학생회장에 당선되었고, 군사독재 유신헌법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하다가 몇 차례 유치장에 들어갔고,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으나 1년 뒤에 복학하여 졸업했다. 1977년부터는 시골 교회 담임목회 2년, 군목 3년, 광림교회 부목사 6년, 안산광림교회 개척 담임 12년, 왕십리(꽃재)교회 담임 3년, 종교교회 20년을 거쳤다. 목회는 기적의 연속이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훈련을 통해 배우게 하시고 연단시키셔서 새로운 사역지로 인도하셨다. 1979년 4월 광주 보병학교와 행정학교에서 4개월간 훈련과 교육을 받은 후에 군목으로 자대 배치를 받으면서 이를 깨달았다. 하나님은 훈련, 배움, 연단 후에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셨다. 때로는 훈련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다음에 어떤 임무가 주어질지 몰라 답답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당면한 오늘은 끝이 없는 동굴이 아니라 반드시 끝이 있는 터널이다.

하나님은 한쪽 문을 닫으면 반드시 다른 쪽 문을 여신다

나의 목회 46년 이야기를 다 쓸 수 없으므로 마지막 20년 종교교회 사역을 중심으로 쓴다. 종교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자 나를 아는 목회자들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조상이 순교를 한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온 것도 아닌데, 백 년이 넘은 중심적인 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받았으니 그런 시선으로 나를 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철저한 훈련과 연단을 통과하게 하셨다.
광림교회에서 6년간 부목사 사역을 마치고 1987년 12월 개척하여 창립한 안산광림교회 목회에 아내와 나는 뼈를 묻겠다는 각오를 했다. 340평 땅에 반지하 1층, 지상 1층, 중층까지 합해서 187평의 새 예배당에 교인은 없었지만 개척은 신바람이 났다. 처음 3년간은 매년 갑절로 부흥했다. 자신감과 희망에 부풀어 안산 시민 10분의 1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교회 창립 10여 년이 되어갈 무렵 안산시 고잔동 220만 평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종교부지 3,400평이 조성되었다. 추첨으로 분양을 결정하는 날 교회 대표로 나가셨던 장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동산교회로 낙찰되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이 일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며 노력했는지 아시잖아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을 보니 안산에서 저의 사명이 끝난 것일 수도 있겠군요.’ ‘하나님이 한쪽 문을 닫으시면 반드시 다른 쪽의 문을 여신다는 말처럼, 저를 새로운 임지로 인도하실 수도 있겠네요.’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 했던가. 신기하게도 몇 달 뒤인 1999년 가을, 서울 왕십리감리교회(현 꽃재감리교회) 선임 장로님이 교회를 방문하여 담임목사 청빙 의사를 전하셨다.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하고 가까운 두 분에게 조언을 구했다. 한 분은 당시 감리교신학대학 총장 염필형 교수님이셨고, 다른 한 분은 충남제일교회를 섬긴 조성근 목사님이셨다. 염 총장님은 나의 대학원 논문을 지도해주셨으며 졸업 후 유학을 적극 권유하셨던 분이고, 조 목사님은 나와 같은 해에 신학대학을 졸업했으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으로서 졸업 후 대전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큰 교회를 섬기고 계셨다. 두 분은 왕십리감리교회의 청빙을 아주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잘된 일이라고 축하해주셨다.
1999년 12월 첫째 주일, 안산광림교회 개척 12주년 감사예배를 드린 후 유기성 목사님을 후임자로 모셔놓고 왕십리감리교회로 임지를 옮겼다. 둥지에서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새가 자라면 어미 새는 둥지에 있는 새끼에게 더 이상 먹이를 주지 않고 둥지 곁가지에 앉아 새끼가 둥지에서 나오도록 유인한다. 하나님은 그런 어미 새와 같이 나를 안산에서 왕십리로 이끌어내셨다.
왕십리감리교회는 백 년이 가까운 역사를 가졌고 열아홉 분의 장로님이 섬기고 있는 교회였다. 지금까지 내가 섬겨온 교회와는 결이 많이 달랐다. 또한 당시 교회에서 운영해오던 신용협동조합이 부도가 나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태였다. 나는 2000년 4월 정년 은퇴를 앞둔 담임목사의 후임으로 청빙된 것이다.
부임 초기에 나는 관리부장 장로님의 의견을 따라 담임목사 사무실과 예배당 강단의 일부를 변경했다. 이것은 실수의 시작이었다. 그 장로님은 “시간이 지나면 바꾸고 싶어도 쉽지 않으니 지금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하셨으나, 성급하게 바꾸는 모습이 이전 담임목사의 흔적을 지우려는 의도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이후의 목회에 여러 가지 제동이 걸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러 해 동안 담임목사 중심의 목회를 해온 나에게 역사가 긴 교회에서 제도적인 목회를 배우고 훈련하는 계기가 생긴 것이다.
부임 후 일주일이 지난 12월 19일 주일, 아직 담임목사로 취임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1년을 결산하는 당회가 열렸다. 당회는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특히 부도난 신협에 연루된 적지 않은 가정과 교우들이 몹시 힘들어했다. 당회가 진행되는 동안 한 성도는 씩씩거리며 웃옷을 벗어던졌고, 어떤 분은 팔을 걷어붙이며 일어나기도 하셨다. 이대로 회무를 진행할 수 없겠다 판단하고 말했다. “여러분, 잠시 기도한 후에 계속하겠습니다. 우리가 문제해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망각한 것 같습니다. 이곳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전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회의하고 있습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내가 기도를 인도하기 시작하자 모든 교우들이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게 기도하고 난 다음 회의가 큰 어려움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날 깊은 영적 교훈을 깨달았다. 상황이 다급해지면 흥분할 수 있고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모두 예수님의 양들이다. 양들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그렇다. 목회자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면 교우들은 반드시 주님의 양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킨다. 그러나 만약 목회자가 이리처럼 변하여 양들과 싸우며 이기려고 들면, 양들은 더 이상 양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나운 존재로 변신한다. 목회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여야 한다. 2002년 연말, 3년간의 훈련이 끝나갈 무렵 교회는 점차 안정되고 목회는 제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다.

성숙을 지향하는 마지막 목회가 시작되다

종교교회는 내 목회의 거의 절반인 20년, 성숙을 지향한 마지막 목회의 장이었다. 2002년 12월경 한 지인으로부터 종교교회 담임목사로 추천해도 되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그분에게 한 가지를 요청했다. “만약 내가 종교교회 담임목사 청빙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지금 섬기는 교회에서 목회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으니 최종 결정이 되기까지 비밀을 지켜주면 어떤 결과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분은 고맙게도 약속을 지켜주셨고, 2003년 1월 말경 청빙 결정을 통보받기까지 내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2003년 3월 23일 주일 오후, 종교교회 22대 담임목사 취임식이 이루어지는 순간까지 나는 두 가지 일을 해야만 했다. 첫째는 왕십리감리교회 후임목사 청빙을 돕는 일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장로님들이 열심히 기도하며 일하신 결과, 내가 종교교회에 취임하는 날 새 담임목사가 부임했다. 둘째, 종교교회의 목회 비전을 세우는 일이었다. 부임하기까지 두 달 동안 종교교회의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기도하는 중에 네 가지 평범한 비전을 세웠고, 취임사에서 이 비전을 선포했다. 비전이란 목회하는 동안 꾸준히 집중하여 나아갈 방향을 의미하는데, 성령께서 영감을 주셔서 ‘다리가 되는 교회’, ‘중심이 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라는 비전을 확정하게 하셨다.
첫째 비전은 ‘다리’이다. 교회 이름인 ‘종교’(宗橋)의 의미를 따른 것으로 크게는 땅과 하늘을 잇고, 교회와 세상을 이으며, 남과 북을 잇는다는 뜻이고, 작게는 교회와 교회, 신학교와 신학교, 너와 나를 잇겠다는 사명이다. ‘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진 구원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 비전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용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해하며 하나가 되어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이다. 한국에 전파된 미국 북감리교회와 남감리교회가 1930년 12월 하나의 감리교회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종교교회 양주삼 목사와 윤치호 선생이 이 다리의 정신으로 통합의 역할을 다했다.
목회 46년 동안 나는 교단 정치이든, 사회 정치이든 정치에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대학생 때에는 학생회장으로서 시위를 주도하기도 하고 여러 차례 유치장 신세도 지고 무기정학 처분도 받았지만, 목회를 시작하고 군목으로 입대하기 전 기도하며 결심했다. 그 이후 교회 안이든 밖이든 내 편 네 편으로 나누어 싸우는 정치에 가담하지 않았다. 집에서부터 화합을 실현했다. 아내가 장로회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첫째 사위는 장로교회 목회자이고, 둘째 사위는 감리교 목회자로 헌신하고 있다.
종교교회는 매년 봄과 가을, 두 번의 부흥회를 열어 타교단의 목사님들을 강사로 초청하고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았다. 교단 안에서도 협성, 목원, 감신 3개 신학대학 출신 목회자들과 격의 없이 함께 일하며 섬겼고, 교파를 초월한 목회자 모임에 나가 교제했다. 특별히 숭실대학교를 중심으로 통일 석․박사과정으로 진행되는 기독교통일지도자센터, 미래목회포럼, 소망교도소,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등 부족하지만 서로 힘을 모아 섬기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 다리가 되려고 노력했다.
둘째 비전은 ‘중심’이다. 교회가 위치한 광화문의 지정학적 의미를 담은 것이다. 광화문은 서울의 중심이자 대한민국의 중심이다. 대한민국 지도를 남북으로 절반 접으면 그 중심에 종교교회가 있다. ‘중심’의 비전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말씀 선포가 한국교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 일을 위해 CTS, CBS 텔레비전(TV) 방송에서 계속 설교하면서 방향과 내용을 고린도전서 2장 2절 말씀을 중심으로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했다. 성령께서는 모든 사역자가 이 복음에 전념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게 하셨다.(행 5:42, 고전 12:3)
다음으로는 사람을 양육하는 일이다. 복음으로 충만한 인물들이 일어나 세상의 일꾼이 되고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일해야 교회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 20년 목회에서 제일 먼저 집중한 곳이 청년부와 교회학교였다. 교회에서는 꾸준히 장학사업을 했는데 고등학교와 대학교, 대학원 1, 2학기 학생에게 매년 1억 원 이상을 지급했다. 장학금의 재원은 교우들이 장례식이 끝난 후에 감사헌금 대신 장학헌금으로 봉헌하여 충당했다. 코로나 팬데믹 3년 동안 청년부와 교회학교의 출석률이 현저히 줄었지만 장학금 지원은 계속되었고, 섬기는 사역자들을 한 사람도 줄이지 않고 동역할 수 있었다.
셋째 비전은 ‘선교’이다. 선교는 종교교회가 미국 남감리교회 선교의 중심 거점이었던 데에서 비롯된 비전이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지상명령(마 28:20)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당부한 사도행전 1장 8절과 동일한데, 그 내용은 ‘오직 선교’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는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된다.’ 선교는 교회나 개인이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종교교회는 1980년대 일본에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내가 부임하던 당시 그분은 이미 은퇴한 원로목사님이셨고, 그 뒤를 잇는 해외선교사를 파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2003년 3월 23일 주일 오후, 담임목사 취임식에서 선포한 이 비전으로 인하여 제2기 해외선교가 열렸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교우들이 몽골 의료 단기선교를 시작했고, 이어서 교회는 몽골, 인도네시아, 멕시코, 네팔 등 외국으로 7명의 전임 선교사를 파송했다. 현지인을 서울로 초청하여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3년 혹은 7년을 공부하게 하고 교회현장에서 훈련한 후 본국으로 파송한 선교사도 여러 명이다. 그리고 국내외 목회자와 해외선교사를 포함하여 매년 교회에서 지원하는 선교비가 7억 원 정도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교회 자체적으로 매년 봄과 가을에 두 차례 전도대회를 열어 집중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전도 대상자를 초청하는 일을 계속했다.
넷째 비전은 ‘성장’이다. 성장은 사실 별도의 비전이 될 수 없다. 위의 세 가지 비전을 성실하고 책임 있게 수행함으로 맺어지는 열매가 ‘성장’이다. 한 영혼의 가치가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복음을 믿음으로 전하는데, 열매가 맺히든 맺히지 않든지 전하는 것만으로 ‘내가 할 일을 다했다.’고 하면 그것은 구원에 대한 간절함이 결여된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고,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나약한 아기 예수로 오셔서 십자가에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그 일을 이루셨다. 생명으로 생명을 사신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구원받은 성도의 사명이 여기에 있다. 복음을 전하고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와 금식 등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종교교회에서 하나님은 20년 동안 꾸준히 성장의 열매를 보게 하셨다. 주일 장년예배에 출석하는 교우가 870명에서 1,900명으로 늘어났고, 주일 오후 3시에 신설된 청년예배에는 코로나19 유행 전 350명이 출석하게 되었으며, 주중 소그룹 모임인 속회는 300명에서 700명으로 성장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 3:6, 8)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와 생명을 바쳐 복음을 전함으로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고 우리가 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라는 말씀대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한 교회와 개인을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신다. 비전은 교회와 성도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방향이다. 목회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집중하여 헌신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신다.

멘토링은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인다

우리는 한 치 앞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불안해한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가장 확실하고 은혜로운 멘토는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이것이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이유이다. 성령님은 성경을 통해서 깨달음을 주시기도 하고, 믿음의 선배들의 경험을 통해서 갈 길을 깨우쳐주시기도 하며, 환경의 여러 요인을 통해서도 인도하신다. 사도행전 18장 24-28절에서는 고린도교회의 아볼로라는 지도자가 멘토링을 통해 아주 훌륭한 지도자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볼로는 여러 가지로 탁월한 지도자였지만 안타깝게도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그를 조용히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정확하게 풀어주자 그 뒤에 아볼로는 성경을 가지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했다. 아볼로의 변화된 사역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이 주어졌다.
나는 왕십리교회에서 목회하는 동안 시행착오로 이런저런 혼란을 겪었으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종교교회로 임지를 옮겼다. 나에게는 멘토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님과 신촌성결교회 이정익 목사님을 찾아갔다. 두 분은 김형태 목사님과 정진경 목사님의 후임으로 훌륭하게 목회를 하고 계셨다. 고맙게도 목사님들은 기꺼이 90분씩 시간을 내서 아주 자상하게 화목사역에 대해 조언해주셨다. 이분들의 멘토링은 내가 종교교회에서 20년간 화합목회를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지침이 되었다.
종교교회에 부임한 지 몇 년 후, 원로목사님께서 주일 설교 중에 말씀하셨다. “내가 26년간 담임하면서 이루지 못한 주일 1,000명 장년예배를 최 목사님이 이루셔서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나는 받은 멘토링을 따라 매년 여섯 차례 원로목사님을 찾아뵙고 교제했으며, 원로목사님은 매년 내 생일이 되면 우리 부부를 좋은 식당으로 초대하여 분에 넘치는 대접과 금일봉으로 격려해주셨다. 그러면서 “최 목사, 우리는 가족이잖아.”라고 따뜻하게 말씀을 건네셨는데 이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23년 4월 은퇴하고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는 멘토링 사역이다. 후배 목사님들이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 조언을 요청해오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은혜의 경험을 기꺼이 나누고 싶다. 한국교회 목회 생태계는 20-30년 전과 비교할 때 많이 바뀌었지만 교회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영적 원리는 다르지 않다. 그리고 오늘도 나의 기도는 계속된다. 원로목사와 후임 목사의 목회가 이어달리기 하는 선수들이 바통터치를 잘 하여 계속 잘 달리는 것처럼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가 성령과 말씀이 충만함으로 계속 부흥하여, 모든 목회자가 예수님 앞에 서는 그 날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받고 칭찬받는 자리에 함께 있기를 기도한다.

최이우|기독교대한감리회 종교교회 원로목사이다.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설교학을 전공하여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감리교회에서 총 46년간 목회하고 지난 4월 은퇴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지은 책으로는 『흔적: 최이우 목사가 살아온 이야기』가 있다.

 
 
 

2024년 1월호(통권 7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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