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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24년 1월호)

 

  정교회 예전신학을 알고 싶다: 스테파노스 알렉소풀로스 교수와의 인터뷰
  

본문

 

인터뷰어: 문화랑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날짜 및 장소 2023년 8월 31일, 온라인

* 이 글은 정교회의 떠오르는 예전신학자, 스테파노스 알렉소풀로스(Stefanos Alexopoulos) 교수와의 서면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알렉소풀로스 교수는 미국가톨릭대학교(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의 예전학 교수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 정교회의 대표적인 예전 신학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인터뷰를 직접 기획하고 번역한 문화랑 교수에게 감사드린다.-편집자

문화랑 먼저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귀한 시간 내어주신 스테파노스 알렉소풀로스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예전적 무게감과 풍성함이 있고 세계적으로 대단한 예전학자들을 배출한 정교회는 저 같은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에게 무언가 신비롭고 탐구하고픈 생각을 줍니다. 그만큼 예배와 예전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오늘 정교회 신자가 아닌 외부인의 입장에서 정교회 예전신학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을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먼저 교수님의 학문적 여정과 학자로서 성장하는 데 영향을 준 요인을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교수님이 공부하셨던 학교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시고, 특히 전공 분야로 예전학을 왜 선택하셨는지를 설명해주십시오.
스테파노스 알렉소풀로스(이하 ‘스테파노스’) 저는 보스턴에 있는 헬레닉대학(Hellenic College)에서 학사 과정을, 홀리크로스 그리스정교회 신학대학(Holy Cross Greek Orthodox School ofTheology)에서 목회학 석사 과정(M.Div.)을 이수했습니다. 그리고 예전학의 명문인 노트르담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예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학자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제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 교회가 나에게 맡긴 공동체의 예배 인도에 대해 깊이 연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예전에 대한 사랑을 전수해준 사제 멘토들(priest-mentors)이 있는데, 이는 큰 복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사제인 성직자 가문 출신이어서 자라는 동안 예전적 경험에 푹 빠졌습니다. 이분들의 영향으로 예전을 보다 전문적으로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 분야 최고 교수진을 보유하고 있는 노트르담대학교에서 보다 깊은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랑 교수님의 책 Orthodox Christian Spirituality 101(정교회 영성 입문)에 대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보통 예배학자들은 예배와 신자의 영성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정교회 영성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정교회에서 예배와 영성은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스테파노스 저는 예전/예배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기념하는 의식, 복음의 예전적 경축으로 정의합니다. 이처럼 예전/예배는 영성과 직접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가집니다. 예전적 교회라고 불리는 정교회에서 예전/예배와 영성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실재/조건이며, 저는 이 둘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예배의 경험은 이상적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더 가까운 관계 안으로 인도하며, 이는 우리를 그리고 우리 삶의 방식을 변화시킵니다. 예배의 경험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이상적인 방식으로 빛을 발하며, 바울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라고 말한 대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저는 정교회의 영성이 전례적 영성(liturgical spirituality)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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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랑 예배학은 신학의 타분과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회의 경우 성서신학, 조직신학 등의 분과와 비교해서 그 중요성이 간과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단순히 실천신학에 속하는 소분과로 말입니다. 정교회에서 예전학의 위상은 신학의 타분과와 비교해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요?
스테파노스 저는 예전신학(liturgical theology), 더 일반적으로 예전이 모든 신학 연구의 핵심이라고 믿습니다. 정교회 예전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누구인지, 우리가 그분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분과 우리의 관계는 어떠한지, 성찬례가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를 고도로 작업된 신학적 언어로 표현합니다.(예를 들면 대바실리우스와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성찬 기도들을 한번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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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텍스트들은 매우 성서적이며, 성서에 대한 직간접적인 언급으로 가득 차 있고, 이는 교회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즉 예전 연구에서는 성서학, 교부학, 교회사, 목회신학 등 다양한 신학 연구 분야가 만나서 상호 작용합니다. 저는 예전이 다른 모든 신학 분야를 아우르는 중심축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예전학을 중심으로 다른 신학 분과들이 회전한다는 말이지요. 예배하는 방식은 예배하는 공동체의 신앙, 신학적 유산, 역사, 목회적 전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문화랑 예배학에 대해 질문하기 전에 먼저 정교회의 성례전적 우주관(perspective on the cosmology as a sacramental entity)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개신교에서는 말씀과 성만찬의 균형을 강조하지만, 설교에 쏟는 관심과 열정에 비하면 성례는 그 중요성이 간과되면서 일종의 부록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성례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요. 그런데 알렉산더 슈메만(Alexander Schmemann)의 저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예배』(For the Life of the World)를 보면, 우주 만물을 성례전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 칼뱅도 『기독교강요』에서 성례전적 우주관(sacramental cosmology)을 언급했는데요. 정교회의 성례론적 우주관과 아울러 성례전성(sacramentality)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례론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이것이 필수적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스테파노스 성례전성의 개념은 인류 역사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건, 즉 창조와 성육신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물질성(materiality)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좋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후자의 경우 말씀은 역사 속으로 들어가 물질을 취하고 인간의 본성을 취하셔서 그것을 구원하고 신격화(deification)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저는 성례전을 일곱 개로 제한하는 스콜라적 중세 개념과는 다르게 이해합니다. 성례와 교회의 모든 성례전적 행위는 구원이 단지 인류뿐 아니라 전체 창조물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례를 바라보면 성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집니다. 성례전에서는 단순하고 변변찮게 창조된 요소들(물, 포도주, 빵, 기름) 자체가 성화되고, 하나님 은총을 전달하는 수단이 되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신비를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러한 요소들의 속성(물=생명/깨끗게 함, 빵과 포도주=영양 공급, 기름=치유)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영적/신앙 여정에서 성례전적 삶의 효과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례전성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정교회가 환경의 청지기로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지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문화랑 정교회의 예배와 서방교회 예배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각자의 강점과 약점이 있을텐데요. 로버트 태프트(Robert Taft)가 동서방 예전을 비교하는 책들을 내기도 했고요.
스테파노스 저는 단지 저의 전통인 정교회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뿐입니다. 특히 예전이라는 용어는 매우 예전적인 것부터 거의 비(非)예전적인 것까지 매우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방신학자인 제가 ‘서방교회’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정교회 예전을 실제로 행하고 연구하면서 저는 ‘예전’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의례적으로 기념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예전이란 그리스도의 구원의 실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손길, 그 구원에 참여하라는 하나님의 초대에 대한 우리의 응답을 공동체적이고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저는 ‘예전’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손을 내미시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례에 참여함으로써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경험합니다. 혈루병을 앓는 여인의 경우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지고 치유됩니다. 예배하는 공동체 안에 하나님이 현존하신다는 이러한 예전적 경험의 충만함은 제가 정교회 전통 중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교회 예전 전통의 위험은 의식이 왜 행해지는지,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의식을 진행할 때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의식주의(ritualism)라고 부릅니다.
문화랑 정교회의 예전은 타교파의 예전에 비해서 초대교회에서 내려오는 역사적 전통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오랫동안 전통을 지킬 수 있었던 내적인 힘은 무엇인지요? 더욱이 정교회가 역사적 뿌리에 충실하면서 전례의 창의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스테파노스 예전적 전통은 정적이지 않고 역동적입니다. 전례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것이 실제로 역사적 사건, 교리적 논쟁, 문화적 상황에 영향을 받은 창조적 발전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발전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지만 항상 사도적 경험(apostolic experience)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제가 정교회의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도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예배/예전의 연속성입니다. 예를 들어 정교회의 성찬례는 이천 년 동안의 정교회의 역사적 방향을 반영하며 고도로 의례화되어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여전히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하신 다락방 식탁 교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빵과 포도주는 성반(paten) 위에, 잔(chalice)은 탁자(제단) 위에 제공되며, ‘받아 먹고 마시라.’는 말이 우리가 하는 일의 중심입니다. 축성된 빵과 포도주,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제자들이 엠마오로 함께 여행하던 분께서 빵을 떼실 때 그들의 눈이 열려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되었던 방식으로 경험됩니다.
이것이 성찬례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나포라(anaphora, ‘떠오름’, ‘상승’, ‘봉헌’을 뜻하는 그리스어이며, ‘성찬 기도’를 가리킨다.-옮긴이)에서 우리는 엠마오 도상의 그리스도께서 성서의 예언에 대해 그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신적 경륜(구원 역사)을 기억합니다. 또한 떡을 떼실 때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알아보았던 것처럼 떼어진 빵과 나누어진 잔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바울이 설교했던 아테네에서 정교회가 성장하고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 그곳에서 기독교가 중단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정교회의 경험과 귀중한 유산인 이러한 연속성의 한 예일 뿐입니다.
문화랑 정교회 성만찬의 신학적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로마가톨릭, 개신교와 차별화되는 특징이 무엇일까요?
스테파노스 다시 한번 저는 정교회적 이해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정교회의 성례적 생활은 하나님의 은총이 세례, 견진(chrismation), 성찬이라는 세 가지 성례전을 중심으로 탄생부터 죽음까지 삶의 모든 측면에 임한다는 사실을 잘 나타냅니다. 우리는 성례전적 생활(sacramental life)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도록 부르심을 받습니다. 성례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가 임재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우리가 성례전의 신학적 중요성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깨달으려면 니콜라스 카바실라스(Nicholas Kabasilas)의 『그리스도 안의 삶』(The Life in Christ)을 읽을 것을 제안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죄 없이 이 물(세례)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성유(견진성사)로 인해 그분의 은총에 참여하고, 잔치(성찬)로 인해 그분이 사셨던 것과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다가올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God)과 함께 신들(gods)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례전은 마술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응답과 반응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시너지(synergy)입니다. “이것은 신비(the Mysteries)가 부여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이지만, 분명히 인간도 노력으로 함께 기여합니다.”
문화랑 레오니드 우스펜스키(Leonid Ouspensky)는 『정교회의 이콘신학』(La Théologie de l’Icône dans l’Église Orthodoxe)이라는 책을 통해서 이콘의 역사와 신학에 대하여 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 전통, 특히 개신교인들은 이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역사적이면서도 신학적인 논의를 하자면 책 몇 권 분량으로도 부족하겠지만, 서방 전통 특히 개신교 신자들을 위해서 이콘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혹시 관상(, 테오리아)의 방법론과 이콘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스테파노스 우리가 이콘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신학적 표현은 제7차 에큐메니컬 공의회(787)의 맥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및 성인)는 역사적 실체(entity)이기 때문에 이콘으로 묘사될 수 있다는 겁니다. 성육신의 실재(reality)는 그리스도와 그의 삶과 사역에 나타난 사건을 묘사할 수 있게 해줍니다. 만약 그 당시에 카메라가 있었다면 우리는 그의 스냅숏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콘들은 그것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이콘을 공경합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니케아신경에 따르면 오직 하나님만이 경배받으십니다. 이콘을 숭배한다는 것은 그곳에 묘사된 인물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에 입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고, 그림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표현하게 하는 매체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이와 잉크를 숭배하는 것도 아니고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인들의 이미지를 공경(경의를 표함)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영웅이자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이기 때문입니다.
문화랑 정교회 전통에서 성도들의 개인 기도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요? 교회는 개인의 기도 생활을 어떻게 지도하고 있는지요? 혹시 관상의 방법론이 정교회의 기도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스테파노스 기도는 정교회의 삶과 영성의 중심입니다. 개인 기도는 공적 기도에서 흘러나와 공적 기도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개인의 생활에서 공적 기도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정교회에는 개인 기도와 관상(contemplation)의 실천에 대해 발표한 탁월한 자료가 있습니다. 고(故) 칼리스토스 웨어(Kallistos Ware)의 “기도란 무엇인가”(What Is Prayer?)라는 유튜브 영상을 추천합니다. 다음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http://bit.ly/3t33oln)
문화랑 정교회의 부정신학[apophatic methodology(Via negativa)]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부정신학적 전통이 예배와 예전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정교회 성도들에게 예배란 무엇인가요?
스테파노스 일반적으로 신학은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우리가 신이거나, 하나님이 신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고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연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방식에 기초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긍정적인 방식(positive way)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긍정적인 표현인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으로 나타내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탐구’하는 또 다른 방법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닌 것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에게 시작과 끝이 있다.”라는 것을 제외하는 부정신학적인 진술입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우리가 하나님을 관계의 관점에서 본다는 점에서 예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개인 기도와 공적 예배 모두 개인, 공동체, 하나님 사이의 관계의 표현이며 대화입니다. 이 관계는 이전 답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전이 그리스도 안의 구원을 의례적으로 경축하는 것이므로 그리스도 안의 구원 가운데 살고, 경험하고, 성장하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문화랑 동방정교회에서 신격화(deification)는 굉장히 중요한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공적 예전과 성례전 그리고 신격화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스테파노스 신격화는 구원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정교회 신학과 영성의 핵심입니다. 신격화는 성육신의 경험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성삼위일체의 제2위인 말씀은 그것을 회복하고 구속하기 위해 인간 본성, 즉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승천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사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와 목적지, 즉 하나님과의 연합을 가리킵니다. 신격화는 다름 아닌 하나님과의 연합, 즉 하나님의 모양(likeness)을 이루는 것입니다.(창세기에 나오는 형상과 모양을 회복하는 개념을 말한다.-옮긴이) 교부 문헌에서 성육신을 논할 때 언급하는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아타나시우스, 이레네우스 등)라는 표현은 신격화에 대한 이해를 말합니다. 즉 우리가 ‘되어야 할 운명’으로 되어가는 중(becoming what we are destined to be)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모든 전례 거행의 중심이 되는 교회의 성례 생활에서 그러한 현실을 살고 경험하며 성장합니다. 예전이라는 것은 단순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로의 움직임이자 접근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접근하시는 하나의 상황입니다.(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특권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중심은 성찬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우리의 성화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갈 2:20)
문화랑 저명한 예배 역사학자이자, ‘버라카상’(Berakah Award, 북미 예전 학회에서 예전학의 발전에 공헌한 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옮긴이) 수상자인 맥스웰 존슨(Maxwell Johnson) 교수님과 함께 집필하신 Introduction to Eastern Christian Liturgies(동방 기독교 예전 입문)는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교회 예전에 관한 이 귀중한 입문서가 전 세계적으로 출판될 수 있었던 것에 감사드립니다.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의 특징과 장점을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테파노스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은 비잔틴 시대뿐 아니라 모든 동방 기독교 전통의 예전에 대하여 포괄적으로 소개하는 최초의 노력이라는 점에서 매우 독특합니다.
다양한 동방 기독교 전통과 그 예전 유산을 식별하는 서문 다음에 이어지는 각 장은 주제별[기독교 입문과 화해, 성찬 예전, 전례주년(Liturgical Year)과 성무일도(Liturgy of the Hours), 혼인과 성품성사(Holy Orders), 병자성사 및 기독교 장례]로 되어 있으며, 다양한 동방 기독교 예전 전통에 대한 비교 연구를 가능하게 합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동방 기독교 예배의 정신과 예전적 영성에 대해 논의합니다. 여기에는 모든 동방 기독교 전통을 포괄하는 각각의 예전 전통에 대한 주제별 참고문헌이 수록되어 있어 해당 주제를 더 깊이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문화랑 정교회의 관점에서 타교단의 찬송 혹은 현대적 음악의 발흥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정교회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예배 음악의 요건은 무엇인지요?
스테파노스 오늘날 새로운 찬송가는 활발하게 작곡되고 있으며 정교회의 지역 교회에서도 매우 빈번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어권 세계의 새로운 찬송가는 비잔틴 음악의 규범과 8음 체계를 따릅니다.
서양 현대음악은 정교회 예배에 포함되지 않고 있습니다.[비록 4부 합창단이 기보법(staff notation)으로 노래하는 예가 있긴 하지만요.] 비잔틴 음악은 그리스 민중 음악과 관련이 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 정교회 음악은 아마도 한 세기 전까지는 그리스 세계의 현대음악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정교회에서는 그 지역 음악이 예배에 사용됩니다. 즉 토착화(inculturation)의 맥락에서 지역 음악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현대(contemporary)라는 용어가 서양 현대음악을 의미한다면, 저는 정교회 예배에서 그러한 음악이 사용된 예를 잘 알지 못합니다.
예배에서 음악은 말씀, 즉 메시지를 섬기는 것이며 그 역할은 메시지를 강조하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순위는 단어/메시지입니다.
문화랑 팬데믹 상황에서 정교회는 어떻게 대처했는지 궁금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 상황에서 예배를 이어가기 위해 온라인 예배, 온라인 성찬, 온라인 세례 등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는 어떠한가요?
스테파노스 팬데믹은 실제로 정교회에 매우 어려운 시기이자 경험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교회가 채택한 주요 방법은 유튜브, 페이스북 및 기타 수단을 통해 예배를 송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성례 생활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으며 이제서야 정교회는 그때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이러한 이슈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테네에서는 “후기 근대의 ‘비물질화된 현실’에서 정교회 신학의 길”(Orthodox Theology in Via in the “Dematerialized Reality” of Late Modernity)에 관한 콘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콘퍼런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https://www.ecclesia.gr/English/theologia100)
제 생각에 온라인으로 성례를 거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반대하는 근거의 핵심은 ‘온라인’ 공동체와 친교(communion)의 개념, 공동체 맥락에서 예배의 실제 ‘물질성’(materiality, 예를 들면 물, 빵, 포도주, 기름의 사용), 그리고 함께함의 필요성입니다. 온라인 상황은 우리에게 공동체 의식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공동체의 대면 경험을 대체하거나 동일시될 수는 없습니다.
문화랑 서구의 많은 교회에서 다음 세대가 감소하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숫자뿐만 아니라 목회자 후보생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교회의 경우는 어떠한가요?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신학생을 어떻게 유치하고 있는지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테파노스 이것은 세계 모든 곳에서 큰 문제이자 도전이며, 거의 모든 교회가 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지역 차원의 예배 공동체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활기차고 활발한 공동체를 만들고 젊은 세대에 영감을 주는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그리고 사실상 모든 사람)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진실하고 정직한 증인을 찾고 있으며 위선에는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입니다. 성직자가 되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감소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이 시대 우리 문화의 극적인 세속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우리 교회가 복음의 활력을 고취하고 전달하는 데 실패했고, 세상과 오늘날의 도전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화랑 제 생각에 정교회 예전학자 가운데 알렉산더 슈메만이 정교회 바운더리를 넘어 가장 유명한 것 같습니다. 한국에 그분의 저서가 번역되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정교회의 예전신학이 발전하는 데 슈메만은 어떤 공헌을 하였나요?
스테파노스 알렉산더 슈메만은 정교회뿐 아니라 기독교 세계에서도 예전신학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해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가톨릭의 예전학자인 케빈 어윈(Kevin Irwin), 데이비드 파거버그(David Fagerberg)와 루터교 예전학자인 고든 래스롭(Gordon Lathrop) 등 현재 예전학계를 주름잡는 전례 신학자들의 저작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슈메만은 전례가 단순히 의식(ritual)이나 규정(rubrics)이 아니라 그것이 거행되는 가운데 교회의 신앙이 제시되는 신학적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예전을 신학적 사건으로 재발견한 것이 슈메만이 예전 신학에 미친 가장 중요한 공헌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또한 예전 경험(liturgical experience)과 삶의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저는 그의 짧지만 강력한 책인 『세상에 생명을 주는 예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매우 영향력 있고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문화랑 많은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기독교사상」 독자들이 정교회 예전신학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4년 1월호(통권 7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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