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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24년 1월호)

 

  박근원 박사의 삶과 신학: 비빔밥 신학과 오이쿠메네 신학실천
  

본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큰 인물이 세상을 떠나면 그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인물이 추모 글을 쓴다. 그러나 이 추모 글을 쓰는 나는 그렇지 못하다. 박사님과 무려 30여 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보내며 심부름도 하고, 공부도 하고, 여러 작업을 같이 했는데, 이 때문이 아닐까 한다. 간단하게 일상에서 보아온 박사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회상하고, 그분의 신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박사님은 외모에서 풍기는 넉넉하고 배포 있는 분위기와 달리 소심한 편이다. 그럼에도 정치적인 역량이 있다. 늘 학교나 교단에서, 그리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비롯한 많은 기관에서 중책을 맡아 여러 일을 기획하고 추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심한 탓인지 사람을 만나고 무언가를 결정할 때 자주 고심하곤 했다. 친한 사람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람 만나는 것을 즐겨 하지도 않았다.
박사님이 사람을 키우고 관계를 맺는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박사님은 학기 시험 중에 늘 작은 과제를 내준다. 그런데 ‘잘했다, 못했다’ 평가하는 대신 “이 책 한번 읽어봐라.”라고 하면서 책 제목을 알려준다. 다른 학생들은 열이면 열, 시험도 끝났는데 읽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박사님이 읽으라고 했으니 읽고 소감을 적어 그분의 사물함에 넣는다. 그러면 박사님은 강의 시간도 아닌데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는 한마디를 하신다. “이 책도 읽어보라고.” 이런 세월이 10여 년이다.
박사님은 문명하고 무슨 원수가 진 것은 아닌 듯한데, 휴대전화도 없고 컴퓨터도 일절 하지 않았다. 본인은 문명에 대한 저항감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여기저기서 만나자는 연락이 오는 것과 컴퓨터 자판을 치는 것이 귀찮아서인 듯했다. 아무튼 연락할 일이 많고, 원고지에 쓴 글을 타이핑해서 보내야 하기에 이런 일 때문에 얼마간 박사님은 내가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래저래 내 삶은 운명처럼 박사님과 얽히게 되었으며, 평생 박사님으로부터 큰 가르침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 무엇보다 넘어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노인들이 욕실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넘어져서 뼈를 다치면 쉬이 낫지 않아서 누워 생활하다가 그대로 운명하곤 한다. 박사님도 넘어져서 오랫동안 요양 병원 신세를 지다가 주님께로 가셨다. 두 가지 마음이 들었다. 더 고통받지 않고 잘 가셨다 하는 마음과 장례식장에는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박사님의 일상을 말할 때 인사동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20년 가까이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이면 박사님을 따라 인사동의 한 허름한 식당에 갔다. 허름하지만 별난 식당이다. 온갖 저명인사들이 저녁 시간에 와서 대화의 꽃을 피운다. 예술가, 한학자, 철학 교수, 진품명품 감정사…. 한바탕 미니 강연과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그 토론의 마지막이 종종 박사님의 짤막한 논평으로 맺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학문의 향연이 끝나면 자리를 같이한 성악가의 노래가 이어진다. 그곳에서 대가들의 이야기를 이것저것 얻어들은 것은 내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가끔 종로 바닥의 어깨 같은 사람이 술 한잔하러 식당에 들어온다.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박사님께 “박사님, 건강하십니까?” 하며 꾸벅 인사를 한다. 박사님은 그때마다 그의 등을 툭툭 치며 묻는다. “어머니는 좀 나아지셨는가?”
나하고는 이틀 저녁이지만, 박사님은 더 자주 식당에 가서 그렇게 생활했다. 음식은 언제나 따끈한 두부 한 모에 볶은 김치, 그리고 맥주 한두 병이다. 처음에는 말을 못 했지만 속으로 많이 놀랐다. 아니, 이분이 목사 맞나? 도무지 대신학자 같지도 않고, 경건한 분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알게 되었다. 대학자 맞다. 목사 맞다. 경건한 분 맞다. 니체의 책 제목대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분이다. 저녁 9시 반쯤 서서히 일어나신다. 그런데 아주 기분이 좋은 날에는 가끔 조용히 노래를 부르신다. 아무도 시비하지 않는다. 박사님이 부르는 노래는 〈부용산〉 하나뿐이다. 왜 이 슬픈 사연의 노래를 좋아하는지는 모른다. 언젠가 사랑하는 첫딸을 잃은 아픔을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힌 적이 있다. 그 때문일까?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뿐더러, 예배도 삶도 구원의 축제임을 강조하는 박사님의 그림자일까?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 박기동 작사․안성현 작곡, 〈부용산〉


실천신학의 안테나

박근원의 신학은 세 시기로 구분 지을 수 있다. 그는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목회를 하다 귀국하여 실천신학을 가르치며 목사후보생 교육을 맡았다. 이때부터 50대 초반까지를 첫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왕성하게 서구의 실천신학 교과서들을 번역하여 소개하고, 교역의 현장에 필요한 많은 자료를 펴낸 때이다. 두 번째는 대략 50대 말까지의 시기이다. 박사님은 실천신학만이 아니라 신학 자체의 본질과 과제를 고민하며 ‘실천신학’에서부터 ‘신학실천’에 대한 개념을 정립한다. 세 번째 시기는 대략 60대부터로, 예배조정위원을 맡은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부산 총회 그리고 그 이후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신학실천의 궁극적 지향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마침내 그의 신학적 사고가 ‘오이쿠메네 실천’에 이른 때이다.
학위를 마치고 목회하던 중에 신학교의 부름을 받고 돌아온 박근원은 자신이 배운 것들을 학부와 대학원에서 나눈다. 신학생뿐 아니라 교단 차원에서도 목회자 계속 교육을 맡아 가르쳤다. 막 귀국해서는 무엇을 가르칠지 몰라 당황도 했지만, 그래도 한국 실정에 시급한 것을 가르치기 위해 여러 실천신학 분야의 교재들을 번역하고 자신의 글들을 모아 교재로 내기도 했다. 그의 고뇌를 들어보면, 당시(1960-70년대)는 한국교회에 학문적인 실천신학에 대한 안내서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서구의 다양한 영역과 사조의 실천신학을 부지런히 소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박근원은 여느 실천신학자들처럼 자신이 전공한 예배학이나 설교학, 목회학 등의 한정된 분야만을 번역하지 않았다. 그의 실천신학 영역은 실로 다양했다. 기독교의 전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어느 분야의 신학자인지 말하기 어렵다. 아울러 박근원은 해외 학술서 번역만 한 것이 아니라 『오늘의 설교론』, 『오늘의 예배론』처럼 실천신학, 선교, 문화, 관혼상제 등 전 분야에 걸쳐 세계적인 안목을 담으면서도 우리의 현장에 적합한 교과서 같은 책과 교재들을 내고 글을 썼다. 그러면서 ‘신학의 주체화’, ‘신학의 통전화’, ‘신학의 현장화’라는 자기만의 신학을 구축해갔다. 그 토대는 ‘한국-개혁교회-에큐메니컬’ 신학이었다. 우리의 문화 위에서, 개혁교회 전통을 가지고, 세계교회와 호흡하며 연대하자는 것이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60여 권의 책을 번역하거나 저술하고 교역 자료를 펴냈으며 셀 수 없는 논문, 서평, 논평 등을 썼다.
여기서도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말하고 싶다.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면 책상에 바르게 앉아서 몇 시간이고 집중한다. 그런데 내가 평생 보아온 박사님은 언제나 등받이가 높은 안락의자에 3분의 1쯤 몸을 기대고 앉아 책을 무릎이나 배 위에 놓은 상태로 하루 내내 있다. 여름에는 에어컨도 선풍기도 틀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린 채 그 자세로 있다.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주무시는 것 같기도 하고, 깊은 명상에 잠긴 것 같기도 하다. 집중해서 책을 읽거나 원고지에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기한 일이다. 하루의 해가 저물고 일어날 때면 여지없이 책상에 글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실천신학에서 비빔밥 신학실천으로

박근원의 제2기 신학에서는 먼저 그의 다양하고 깊은 신학적 만남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는 성서와 전통을 대변하는 신학자들, 개혁교회 신학자들, 유럽 신학자들, 영미 신학자들 그리고 전경연, 문익환, 서남동, 안병무, 유동식 같은 한국 신학자들을 만났다. 이미 세상을 떠난 신학자들은 책을 통해 만났지만, 그 외의 많은 신학자는 직접 만나 대화하고 우정을 쌓았다. 이것은 그가 성서와 전통, 그리고 전위(前衛)신학 등 다양한 문화와 신학을 호흡하고 수용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박근원은 제3세계 신학자들과 만나며 신학의 방법과 목표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되었다. “신학은 강단의 이론이 아니다. 이 세계를 해방하는 실천을 위한 것이다.” 이 간단한 한 마디가 신학의 방법과 목표를 분명히 한다. 신학은 방법상 ‘도구적’이다. 그리고 그 목표는 이 세계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라서 박근원의 ‘신학실천’으로, 그리고 더 발전해서 ‘오이쿠메네 실천’이 되었다. 무엇보다 ‘Doing Theology’의 발상자인 대만 출신의 세계적 신학자 송천성(C. S. Song)과의 만남은 그의 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실천신학자요 서구 신학을 공부한 신학자로 출발한 박근원은 자신의 신학을 형성해가며 신학의 삼위일체를 추구한다. 신학의 주체화, 신학의 통전화, 신학의 현장화가 그것이다. ‘신학의 주체화’는 송천성의 ‘전위신학’(Theology of Transposition)처럼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영성의 자리에서 신학하는 행위이다. ‘신학의 통전화’는 세분화된 분과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실천하기 위해 전체 신학 분과들을 통전하여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신학의 현장화’는 말 그대로 신학이 추상이 아니고 교회의 교역과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선교에 활용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신학의 실용주의가 아니다. 신학의 본디 기능이다. 바로 신학의 주체화, 신학의 통전화, 신학의 현장화를 통합적으로 개념화한 것이 ‘신학실천’인데, 이것이 ‘오이쿠메네 실천’으로 발전한다.
여기서 박근원의 신학실천은 비빔밥이나 김치 신학이 된다. ‘기초신학’이라고 할까? ‘통전적인 신학’이라고 할까? ‘통합신학’이라고 할까? 이 용어들은 애매하며 오해의 여지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학문의 추세와 맥을 같이한다. 그동안 서구에서 형성되어 근대를 거친 신학은 전문적인 ‘분과 신학’이다. 신학이 성서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처럼 세분화되고 전문 영역으로 게토화되고 그 안에서도 다시 세분화, 전문 영역화가 되었다. 예를 들면 성서신학도 구약신학, 신약신학, 성서언어학, 성서고고학 등으로 세분화, 전문화된 것이다. 이 때문에 심지어는 같은 신학자들끼리도 자신의 전문 영역 외의 신학은 낯설게 느낀다. 박근원은 이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전문적인 분야의 연구는 계속되어야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통틀어 하나님 신앙을 매개하고 하나님의 의지, 곧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모든 분과 신학 영역이 통합되어 실천을 지향하는 ‘통째’ 신학으로 신학이 전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지 신학의 영역에서만 이런 실천을 위한 통째 학문을 생각한 것이 아니다. 그는 모든 학문이 그러해야 한다고 봤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민중적, 생태적, 실천적’을 위한 통째 학문으로 그 토대가 마련되어야 하고 통합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이미 신학 영역 밖에서는 활발하게 이뤼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학문 간 또는 학제 간의 협력과 공동연구에서 ‘진화생물학’이 ‘통섭’(consilience)하여 주도권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통섭』의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은 생물학이 여러 영역의 학문을 통전해서 인류와 지구의 생명 문제를 제시하고 평가하고, 그 윤리적인 가치 등을 마련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박근원은 그 일을 생물학이 아니라 종교, 무엇보다 기독교 신학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전된 신학이 인문, 사회, 자연과학의 영역을 자신 안에 담아 비비거나 버무려서, 거기서 터져나오는 통찰과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이쿠메네 신학실천

이후 박근원은 오이쿠메네 신학의 개념과 목표에 눈을 떴다. 이를 박근원의 제3기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에큐메니컬 운동에 관심하고 운명처럼 거기에 몸담게 된 것은 한신에서 이미 에큐메니컬적 안목으로 여러 문제와 씨름한 것이 계기였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신학과 흐름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기에 박근원은 한국교회가 공인하는 「리마 문서」나 「리마 예식서」도 번역하게 되었다. 「리마 문서」는 전 세계교회가 ‘세례, 성만찬 그리고 교역 직제’에서의 차이점을 서로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이해를 확장해가는 큰 계기가 되었다.
박근원은 ‘에큐메니컬 신학’이 아닌 ‘오이쿠메네 신학’을 말한다. 이 둘은 비슷하지만, 그 지평에서 그리고 추구하는 목표의 크기에서 차이가 있다. 둘 다 그 목표는 ‘일치’이다. 그러나 오이쿠메네 신학은 혁명적인 차원에서 일치를 추구한다. 오이쿠메네 신학은 교회의 일치만이 아니라 인종, 문화, 종교 등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인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까지 포괄하는 온 생명 차원의 일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교회 운동이 그 차원에까지 이르고 있는데, 이 오이쿠메네 사고가 전 신학에 스며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오이쿠메네를 실천하는 것이 신학인데, 이럴 때 신학은 ‘Doing Theology’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오이쿠메네를 향해 전체 신학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을 통합하고 동원하여 실천하는 것이 박근원의 ‘비빔밥 신학’이다. 이 신학실천이 다름 아닌 오이쿠메네 실천(praxis)이다.
박근원의 신학은 근본에서 변화된 신학의 모형이다. 이론 신학에서 모든 해방신학의 방법인 Doing Theology로, 기독교 이천 년의 교회 신학에서 온 우주 생명의 샬롬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오이쿠메네 신학으로 옮겨갔다. 하나님의 오이쿠메네를 향해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나아가도록 훈련하고 실천하는 오이쿠메네 신학실천이 박근원의 신학이다.
이 오이쿠메네 신학에 대해서 많은 염려가 있다. 그러면 현실 교회는 무엇인가? 기독교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이에 대해서 박근원은 오이쿠메네 사고로 전환하지 않으면 지구촌의 미래는 없다며 오이쿠메네 신학을 대안으로 주창한다. 우리가 독선을 가지고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 기독교의 미래가 그야말로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교회 중심의 신학과 사고와 삶을 넘어 하나님 중심의 오이쿠메네로 향하는 방향 전환! 박근원은 이것이 오늘 우리의 회개이며 희망이라고 강조한다.

신학의 운명과 은총

박근원은 태어나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신학의 길을 가게 된 것이 운명이라고 고백한다. 이 운명 같은 삶과 신학의 여정을 계시처럼 깨달은 것이 그가 60세 되던 때였다. 박근원은 동학농민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 ‘민학회’가 주관하는 동학 답사를 갔는데, 거기서 자신의 고향인 고창이 동학혁명의 본거지이자 전봉준이 태어난 곳임을 보고는 자신의 태어남과 자람이 우리 역사의 격동기였음을 한순간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동학과 격동의 역사 한복판! 거기서 갈망하는 절실한 그 무엇! 이것이 박근원의 삶과 신학의 여정에서 무의식의 주물(matrix)이 되었다.
가난한 한학자인 할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우며 평생 살았을 박근원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사람은 아버지이다. 새로운 문명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는 어린 박근원에게 영어 교재를 구해다주고 어려운 형편에도 학교를 보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아들에게 전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박근원은 영어와 어학에 두각을 드러냈고 이는 유학 가서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정읍에서 학교를 다니며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불안한 삶 속에서 위안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교회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와 문화에 발을 디디고 싶었기 때문이다. 완고한 유교 집안이었음에도 아버지께서 눈을 감아주셨다. 이제 그는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며 운명처럼 신학의 길을 걷게 된다.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해 마음껏 새로운 세계와 지성의 기쁨을 누리게 된 박근원은 미국 듀북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아퀴나스학원대학 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듀북에서 성공적으로 공부하면서 목회도 할 수 있었던 것은 신학부의 학장이던 슈너커(Calvin Schnucker)와의 인연 그리고 그의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 때문이었다. 박사 과정은 가톨릭 학교에서 했는데, 이곳에서의 배움과 경험은 훗날 박근원이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가톨릭을 이해하고 가톨릭과 대화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한신에서도 수준 높은 신학을 공부했지만, 미국의 이 두 학교에서 그는 더 깊이 있는 신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신에서 이미 학풍으로 자리잡아 그에게도 영향을 준 바르트 신학을 제대로 공부했다. 박근원은 그 신학의 토대 위에서 교회론, 선교론, 교역론의 체계를 세워갔다.
박근원의 에큐메니컬 순례와 여기서 눈뜬 오이쿠메네 신학 및 실천은 지난 2013년 제10차 WCC 부산 총회에서 꽃을 피웠다. 이 총회의 꽃이 바로 예배인데 그가 전체 예배를 기획하고 조정했기 때문이다. 〈아리랑〉 곡조를 배경으로 한 주제가와 우리 가락의 주기도송을 전 세계 참가자들이 함께 부른 것은 일치의 한 성과였다. 한동안 WCC 총회는 신학적인 차이로, 무엇보다 정교회와의 차이 때문에 성만찬을 함께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 총회의 모든 기도에 그동안 세계교회가 이룩한 예배신학을 담아서 그 용어나 내용을 정리했다. 또 늦게 공부한 ‘의례’를 살려내서 상징이 살아 있는 역동적인 기도 모임을 구성할 수 있었다. 부산 총회에서 자신의 오이쿠메네를 향한 여정을 멋진 축제로 마무리한 것이다. 이 부산 총회를 생의 마감으로 생각하며 박근원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 신학 순례의 여정은 험난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정은, 지난 세기 우리 한반도의 험난한 역사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잃어버린 동전을 쓸어 찾으시고 품어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빚은 ‘구원의 축제’였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신학 여정은 운명이며 은총이었다. 여러 사람이 말한다, 이런 신학자는 드물게 나온다고. 그러나 박근원은 말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오이쿠메네 신학실천의 전문가요 참여자라고! 아마 박사님은 하나님 나라를 실천하는 신학자, 무엇보다 오이쿠메네 실천 개념을 손과 발로 화육하여 구체적으로 이 세계를 살려낼 수 있는 신학자가 많이 나오기를 기다리실 것이다.

홍순원|한신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영성수련원 원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성서의 해방실천』, 『문명의 전환과 그리스도교 신앙실천』, 『간지럼 타시는 하나님』 등이 있다.

 
 
 

2024년 1월호(통권 7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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