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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22년 11월호)

 

  제11차 WCC 카를스루에 총회, 그리고 여성
  

본문

 

대한민국 부산에서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총회가 열렸던 2013년, 필자는 교환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 부산총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미국 기독교인들의 다양한 총회 후기를 접할 수 있었다. 총회 성경공부 교재를 집필한 고 케이티 캐넌(Katie G. Cannon) 교수를 대신해 총회에 참석한 미국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PCUSA) 대표단을 비롯한 총회 참가자들은 WCC 부산총회를 반대하는 시위와 그로 인해 발생한 해프닝을 언급하기도 했고, 여러 가지 면에서 편리했던 한국의 기반 시설에 대해 놀라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나 현재 독일에서 유학 중인 필자가 처음으로 참석하게 된 제11차 WCC 카를스루에 총회는 스탭으로 참여하는 내부자의 시선과 한인 디아스포라라는 외부자의 시선이 함께 겹쳐지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정의로운 여남 공동체 사전대회(Just Community of Women and Men)

필자는 2018년 10월 자메이카 킹스턴(Kingston)에서 열린 ‘여성과 함께하는 교회 10년 운동’(The Decade of the Churches in Solidarity with Women, DCSW)의 20주년 기념 국제협의회에 참석했는데, 그 인연으로 제11차 총회 여남 사전대회 준비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작년 11월, 준비팀은 처음 제네바에서 대면으로 모였고, 그 이후로는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여러 가지 실무를 온라인으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별로 규율과 상황이 달라 세계 각지에서 오는 참가자의 비자를 발급하는 일을 비롯한 여러 행정적인 업무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본격적인 총회 일정에 앞서 8월 29일과 30일 이틀간 사전대회가 열렸다. 사전대회는 ‘청년, 장애인, 선주민(Indigenous), 여남’ 총 4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그중 하나인 여남 사전대회는 지난 부산 총회부터 남성과 함께하는 ‘정의로운 여남 공동체 사전대회’로 열렸다. 사전대회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드리는 예배를 시작으로, 여남 사전대회는 먼저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는(Visiting our wounds) 작업을 진행하였다. 부산총회 이후 성평등 이슈와 관련하여 정리한 성 정의 원칙(Gender Justice Principles), 행동 준칙(Code of Conduct), 그리고 DCSW를 통해 마련된 전략 보고서, 여성 순례팀의 분쟁지역 방문 보고서와 정교회 여성 미팅에 대한 보고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여남 사전대회를 통해 각 지역별로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나 이슈들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전 세계 모든 지역과 교회 안팎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과 학대, 팬데믹 상황으로 더욱 강화되는 젠더 기반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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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여남 사전대회 행정팀 소속이라 일정별로 필요한 사항을 조율하는 일을 맡다 보니 대회의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점심시간 이후 진행된 성경공부 시간만큼은 온전히 참석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었다. 사도행전 8장 26-39절의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만남을 주제로 한 성경공부는 참가자들에게 포용과 변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고민하게 하는 도전이 되었다.
이후에는 지역별 성폭력 반대 운동에 관한 내용을 설명하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필자는 한국 상황에 대해 소개할 기회를 가졌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안으로 성차별적·가부장적 문화에 저항하는 교회 여성 네트워크 ‘움트다’와 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착용한 ‘로멜라 칼라’(Romella collar)1를 소개하며, 자매애가 계속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이후 이어진 시간에는 ‘검은 목요일’(Thursdays in Black) 캠페인과 관련해 세계 각지에서 성폭력 반대 태피스트리(Tapestry, 색실을 짜 넣어 그림을 표현하는 직물 공예)를 폭포처럼 이어붙인 작업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NCCK 여성위원회와 한국여성신학회가 주관한 예배에서는 한국 참가자들이 만든 소중한 태피스트리를 봉헌하는 시간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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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대회 이튿날은 아시아기독교협의회(Christian Conference of Asia, CCA) 문정은 목사가 인도한 오전 예배를 시작으로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이슈를 다루는 분리 세션이 있었다. 오후에는 총회 본 기간 중 이뤄지는 ‘에큐메니컬 대화’, ‘젠더 이슈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안내되었고, 총회 보고서를 오랜 시간에 걸쳐 작성했다. 사전대회의 대미를 장식했던 마지막 연합 모임에서는 각 사전대회의 보고서가 낭독되었다. 태평양 연안 지역의 청년들이 전통춤 공연을 통해 환경 재난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며 사전대회가 마무리되었다.

총회 주요 프로그램

1) 에큐메니컬 대화(Ecumenical Conversation)
투표권이 있는 총대와 고문 그룹(Advisor Group)이 참여할 수 있는 에큐메니컬 대화 주제 중 필자가 참여한 주제는 20번으로 배정된 ‘격차에 신경쓰기: 일치와 화해에서 성 정의 지켜내기’(Minding the Gaps: Safeguarding Gender Justice in Unity and Reconciliation)였다. 에큐메니컬 대화는 총 4일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하나의 주제에 관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며 하나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필자는 4명의 자문 위원(Resource Person) 중 한 명으로 참여해 성평등 이슈에 대한 아시아 여성의 시각을 담아내는 역할을 맡았다. 에큐메니컬 대화에서 소그룹의 밀도 있는 의견들이 개진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참석 인원이 저조하였고 협소한 장소와 소란한 환경으로 실질적인 대화가 이뤄지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참석자 중에 아시아 남성을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아시아 지역 모임에서는 그동안 WCC 총회가 유럽 중심이라고 성토해왔지만, 사실 다양한 주제에 아시아인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 자신의 의지 문제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한반도 평화나 산업선교와 같이 한국의 핵심 이슈인 워크숍에는 많은 인원이 참여하였지만, 동시에 그 인원들이 흩어져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다른 이슈에는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뼈아픈 자각이 들었다. 이와 동시에 지역 에큐메니컬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에큐메니컬 대화의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특히 재정적인 영역에서의 양성평등에 대해 강하게 언급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총회 결과 회의록에는 재정에 관한 내용이 하나도 언급되지 않아서 팀원들과 함께 실망하기도 했다.

2) 인카운터 프로그램(Encounter Program)
인카운터 프로그램은 독일의 지역 교회와 연계하여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연동교회 영어 어린이부 사역을 독일 에큐메니컬 단체인 복음선교연대(Evangelical Mission in Solidarity, EMS)에 소개하면서 교회 교육과 관련된 “여성과 남성, 가족, 젠더 다양성”(Women, Men, Family, Gender Diversity)을 주제로 하는 인카운터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되었고, 가브리엘레 마이어(Gabriele Mayer) 목사와 독일 감리교회의 로즈마리 베너(Rosemarie Wenner) 감독이 기획하는 모임에 참여했다. 그 가운데 두 개 프로그램의 패널과 진행자로 참여했는데, 먼저 패널로 참여했던 프로그램은 9월 2일에 있었던 ‘성경 속의 가족과 오늘’(Families in the Bible and Today)이었다. 필자를 포함한 세 명의 패널과 두 명의 진행자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었는데, 레인보우 필그림(Rainbow Pilgrims)의 일환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성경과 현실 목회에서 찾아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인카운터 프로그램의 패널이자 참석자로 온 공간 엘리사벳의 오현선 대표(전 호남신대 교수)와도 반갑게 교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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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세계여목사회(IAWM)2 소속 김은하 목사가 패널로 참여한 여성 사역자들과 강단(Called to Preach)에 대한 인카운터 프로그램에도 참석했는데, 함께 참석한 루마니아 정교회 사제는 본인의 교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예술가 올가 그레체아누(Olga Greceanu)를 언급하며, 오히려 현대에 보수화되어 버린 교회 안의 여성 사역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감리교 소속의 아동사역 담당자 카린(Karin)과 함께 진행자로 독일 교인이나 목회자에게도 생소한 ‘Messy Church’3(독일어로는 Kirche Kunterbunt)라는 개념의 가족 중심의 교회를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준비했던 좌석이 꽉 찰 만큼 청중이 모여서 많은 질문이 이어졌는데, 독일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인 선교사나 이민 2세대로 지역 교회를 섬기고 있는 한인 사역자들이 활발하게 질문을 던지는 모습에서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유럽의 교회가 노쇠해가고 있다는 선입견을 일거에 날릴 수는 없었지만, 다양한 형식으로 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3) 네트워킹 존 프로그램(Networking Zone Program)
총회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네트워킹 존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열렸는데, 총회 이튿날인 9월 1일에는 여성 순례팀이 방문했던 기록을 모은 『탈바꿈, 정의, 평화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들』(Her-Stories of Transformation, Justice, and Peace)의 전자책4 출판 기념회에 패널로 참석했다. 이 시간에는 특히 한국의 분단 상황과 구조적인 성차별 간의 관련성을 설명했는데, 패널 진행을 맡은 남아공의 신약학자 사로지니(Sarojini) 교수가 피해자 호명(calling names)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군대 성폭력의 피해자였던 고 이예람 중사의 이름을 불렀다.
그다음 날 필자는 YWCA의 이한빛 간사 대신 여성 순례팀의 한국 방문 내용을 요약하는 자리에 섰다. 정의기억연대의 일본군 성노예제 해결을 위한 수요 집회와 미군 부대 근처 성매매 여성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두레방에 관한 내용을 요약해서 전했다. 또한 정의연 활동가의 메시지를 전달받아 이번 총회 주제인 ‘화해’가 피해자에게는 오히려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날 함께 했던 패널들은 북미에서 실종되거나 살해된 선주민 여성들의 아픔과 장애 여성이 겪는 이중적인 차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수단 남부나 나이지리아와 같은 분쟁 지역에서 성폭력과 학대에 가장 취약하게 노출되는 여성들의 현실과 거기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목회자의 무기력한 모습 등 가슴 절절한 고백들을 함께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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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이야기: 생태와 평화를 향한 발걸음

총회 이튿날인 9월 1일에는 또한 배현주 목사(전 부산장신대 교수)가 인도하는 창조절에 관한 성경공부 시간이 있었다. 독일 개신교협의회(EKD) 장학 프로그램 담당자와 장학생인 러시아 및 루마니아 정교회 박사 과정생들과 함께 참석하여 생명과 환경에 관한 심도 있는 토론을 할 수 있었다. 팬데믹을 통해 이루어진 많은 반성과 성찰 가운데 특히 독일 내에서 루마니아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육류 가공 공정에 대한 반성이 인상 깊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환경을 보호하는 나라로 잘 알려진 독일임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력 착취와 생명 경시가 행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의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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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프로그램으로 9월 4일 주일에 루트비히스부르크(Ludwigsburg) 시를 방문했는데 독일 뷔르템베르크 주교회에 속한 루트비히스부르크 노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의 평양노회가 지난 부산 총회 이후 협력 관계를 맺고 상호교류를 하는 뜻깊은 장소였다. 파트너십을 맺을 당시 노회의 한국 위원장이었던 엘케 당엘마이어-뱅숑(Elke Dangelmaier-Vinçon) 목사가 자신의 평범했던 외할아버지의 일대기를 통해 프랑스와 독일의 견원지간(犬猿之間)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두 나라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갈등의 골이 깊어졌지만, 프랑스 몽벨리아르(Montbéliard) 시장과 독일 루트비히스부르크 시장은 서로를 향한 증오심을 끊어내기 위해서 교류하고 만날 것을 함께 다짐하였다. 도시 간 교류 프로그램은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당시 프랑스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대통령이 루트비히스부르크 시에서 젊은 독일 청년들을 위해 연설을 하면서 결국 화해 무드가 조성되었고, 몇 개월 뒤 두 나라가 공식적인 협정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는 청소년 교류 기관들까지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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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상대방을 알게 되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 엘케 목사는 이러한 희망적인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두 나라가 분쟁 관계에서 협력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필자는 이 프로그램에서 한국과 독일의 선교협력에 대한 이야기만을 들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실상 그것 이상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화해와 통일을 소망하는 우리 한반도에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다.
다음 날인 9월 5일에는 카를스루에 시내에 있는 성 스데반 성당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주최로 평화통일 월요기도회가 있었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에 냉방 시설이 전혀 없었던 예배당에서 아름다운 국악 선율이 이어졌다. 기장 총회장 김은경 목사가 빵을 네 덩이로 나누며 진행된 성찬은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참가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지극히 작은 이들의 연대

기후 위기로 그 어느 해보다 무더웠던 유럽의 여름, 독일 카를스루에의 태양은 유난히 뜨거웠다. 한국에서 온 수많은 청년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팬데믹 이후를 사는 그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들의 열정에 탄복하면서도 소모되기만 하는 청춘에 대한 안타까움에 만감이 교차했다. 또한 아시아 지역 모임에서 터져 나온 성토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총회는 유럽에서 열린 총회라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 존재했다. 이 외면할 수 없는 현실 속에 유럽 중심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아시아인으로서 느끼는 소수적 감정5이 점증적으로 이어지는 지점이 있었지만, 동시에 청년들이 바라보고 이해하는 에큐메니컬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11차 카를스루에 총회에서 만난 ‘에큐메니컬’은 다양한 목소리로 만들어지는 합창 같았다. 이따금 이탈한 음으로 인해 ‘불협화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순간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일치의 화음’이 들리기도 했다. 마치 천상의 합창을 듣는 듯 복된 은총에 잠시 숨을 멈추기도 했다.
공식 일정인 폐회 예배가 끝나고 총회 기간 중 가장 든든한 닻이 되어 주었던 에큐메니컬 대화팀끼리 잠시 모여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제안했던 젠더 데스크가 영구적으로 설치된다면 머지않아 어떤 형태로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제안이 거절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 그렇다 해도 총회 기간 내내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2주간의 시간을 마무리하며, 각자 본국으로 돌아가 할 일들에 대해 서로 물었다. 세르비아 정교회 라스코 조빅(Rastco Jovic) 교수는 학생들의 과제를 채점하는 일을, 에큐메니컬 기관 CCA에 속한 룻(Ruth)은 기관 총회를 준비하는 일을, 또 다른 누군가는 학위 논문의 한 챕터를 완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제야 비로소 지난 2주간 우리 삶에 총체적으로 군림하던 총회가 끝났음을 실감하였다. 8년 뒤 새로운 곳에서 열릴 총회에는 그간의 핵전쟁으로 인해 방독면을 쓰고 참석해야 하거나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게 되거나 너무 나이가 들어 지팡이도 짚지 못하고 기어서 참가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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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컬’이라는 낯선 단어와 마주한 지 10년. 계획에도 없던 에큐메니컬 프로그램에 연달아 참여하면서 필자가 서 있는 곳은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여성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달았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지만 어떤 한 지역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뿐만 아니라 오랜 에큐메니컬 역사 속에서 이런 보편적인 경험들이 신학적 언어로 정리되고 나누어져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둔탁한 충격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목회자로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된 것도 북인도의 한 신학교에서 사역하고 있는 여성 교수님이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었다. 20년 전 한국에서 여성 안수가 정말 어렵게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인도도 언젠가는 꼭 한국처럼 여성들이 안수받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아주 큰 북인도의 미조람 지역은 기독교인 인구가 90%에 가깝지만, 마약 중독률은 전 세계 2위에 달할 만큼 모순된 종교성으로 가득한 곳이다. 필자가 그 교단의 총회를 방문했을 당시, 수많은 남성 부흥사의 사진들 가운데 여성 부흥사의 모습은 한 명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욱더 여성 리더십에 관한 질문을 했고, 한류에 대한 간증 집회 자리에서는 필자가 한국의 여성 목회자 후보생이며, 향후 목사 안수를 받을 예정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당시 필자에게는 목사 안수가 선택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예 선택지조차 될 수 없는 막힌 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이 작게라도 내는 어떤 목소리가 누군가에게는 메아리가 되어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작은 자의 편,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다. 한국 여성은 아시아 여성 인권의 측면에서 교회 안의 여성 리더십에 대해서 분명히 내야 할 목소리가 있다. 그 역할을 알고도 침묵한다면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생각했고, 귀국 후 에큐메니컬 학생 운동인 오이코스에 합류하여 한국 내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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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한국 참가자 중 여성들끼리 교단이나 교파에 상관없이 함께 모여 다양한 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저녁 식탁을 기억하며 뜨거웠던 총회를 갈무리하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대다수 에큐메니컬 기관의 실무자들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듣고 새삼 놀랐다. 동시에 우리가 꿈꾸어야 할 에큐메니컬의 모습이 어떤 기관의 자리나 지위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식탁 그 자체임을 되새길 수 있었다.
모임 중에 우머니스트 신학의 대모인 고 케이티 캐넌 교수가 자신의 마지막 수업에 인용했던 문장이 떠올랐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정신적 지주였던 하워드 서먼(Howard Thurman) 박사가 했던 그 말로 글을 마친다.

Do your own thing. Go your own way. And live in such away that God will never regret having made you.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 위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후회하지 않으실 방식으로 살아내리라!)

주(註)
1 로멜라 칼라’는 파키스탄장로교회 소속 여성 목사 ‘로멜라’의 이름을 따서 만든, 탈부착이 가능한 형태의 칼라이다. 로멜라는 파키스탄에서 두 번째로 안수받은 여성 목사임에도, 뿌리 깊은 남녀 차별로 인해 강단에서 설교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움트다’는 회중에게 목회자의 소명을 드러내기 위한 로멜라 칼라를 유튜브 영상으로 소개했고 이러한 로멜라를 비롯해 비슷한 상황에 놓인 세계 여성 목회자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기 위해 WCC 총회 기간 중 100개의 칼라를 사전 제작해 판매했다. 여성 목회자뿐 아니라 남성 목회자들의 열렬한 환호에 힘입어 이틀 만에 완판되었고, 추후 지속적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2 WCC 총회에 앞서 세계여목사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Women Ministers) 행사가 카를스루에에서 열렸다.
3 Messy Church는 2004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현재 전 세계 30개국 5,000여 개의 초교파 교회들이 참여하고 있다.
4 WCC 홈페이지(www.oikoumene.org)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5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에서 언급되는 소수적 감정은 문학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지만, 인종차별이라는 말을 넘어서는 개념으로 보다 심층적인 신학적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캐시 박 홍, 노시내 옮김, 『마이너 필링스』(마티, 2021).


정희경|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서울노회 소속 목사이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에큐메닉스를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EKD 파트너십 장학생으로 마인츠 대학의 신학과 종교학 융합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23년 11월호(통권 7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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