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교회와 현장]
교회와현장 (2022년 4월호)

 

  한국YWCA 창립 100주년 기념 좌담회(下)
  

본문

 

(上에서 이어짐) [클릭]

시민운동 단체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다

김흥수 1970년대에 여성단체가 많이 등장하지요. 예컨대 50년대의 대한부인회처럼, 70년대에는 새마을부녀회같은 단체들이 생기면서 정부 시책을 선전하고 어떻게 보면 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거죠. Y는 어땠습니까? 일반 부인회들과는 다르게 정치와 거리를 좀 두고 여권운동이나 교육사업을 시작하는데, 당시 Y 내부에서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 하는 문제로 갈등이 없었나요?
구정혜 해방 후 좌익과 우익이 혼란스럽던 시기에 Y는 비정치적인 단체로, 여성운동을 하는 단체로 간다고 정했지요. 당시 지도력이 그것을 확고히 했죠. 어느 누구라고 할 수는 없어요.
김흥수 1970년대 들어서 파출부 교육을 시작하고 소비자운동을 하면서 시민운동 단체라는 이미지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때가 Y의 변혁기였네요. 1975년은 세계 여성의 해였고, 서구 여성운동이 국내에 유입되었지요. Y에서는 가족법개정운동도 하고,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 기술교육 등 남자들이 하던 도배, 타일, 페인트 등을 가르쳤단 말이죠. 또 1972년은 Y 50주년이잖아요. 50주년을 맞으며 Y가 굉장히 달라진 것 같아요.
원영희 70년대는 제 기억 속에 소비자운동을 굉장히 열심히 한 시기로 남아 있어요. 간사들이 밥솥을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요. 불량제품을 바꿔주는 문화를 시민들이 처음으로 만들어갔지요. 사람들이 소비자운동을 그렇게 표현했더라고요. ‘이건 소비자인권운동이다.’ 그래서 인권으로 개념을 정했어요.
김흥수 그렇게 70년대의 여권운동, 소비자운동, 시민운동 등으로 Y가 시민운동 단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거죠. 80년대가 되면 군사정권이 강화되고 시민들의 반정부운동도 거세지는데, Y 내부에서 ‘우리가 정치에도 개입해야 하지 않나’ 하는 요청이나 항의가 없었나요?
구정혜 초창기에는 청년Y, 학생Y가 지역Y와 같은 수준에서 연합회에 소속되어 있었어요. 그러다 격동의 70년대 후반에 사회참여라든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청년운동이 크게 일어났지요. 학생Y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것이 Y의 어른 지도자들 눈에는 굉장히 우려되고 걱정스러운 상황이었어요. 그래도 청년들은 정치적 활동이 필요하다고 계속 요구했는데 그때 어떤 결정이 내려지냐면, 청년Y를 지역Y로 다 보내게 됩니다. 원래 어떤 대학교 학생회 Y라고 하면 서울Y와 같은 지위로 연합회에 소속되는데, 그 이후로 학생Y는 모두 지역Y에 소속되어 관리받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60년대 말, 학생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기독학생단체를 통합해야 한다는 요구가 세계적으로 있을 때 Y는 독자적 활동을 결의하고 통합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대학YMCA는 KSCM(한국기독학생회)과 통합하여 KSCF를 결성했고요. Y는 ‘여성 지도력의 배출’과 여성운동을 중요한 목적으로 계속 수행하기 위해 그러한 결정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 이후 그런 교류가 끊어지다 보니 에큐메니컬 정신 등을 유입받을 통로가 사라져서 좀 약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에큐메니컬한 단체들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지역에 소속되면서 학생Y 운동은 힘을 잃어갔지요. 그 결과 정치적으로 중립을 택하는 비정치화 노선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군사정권 때도 그래서 적극적인 활동이나 개입보다는 시국을 위한 철야기도회, 새벽기도회 등을 했어요. 인권 차원에서 최루탄 반대는 했지만요. 직접적 개입보다는 그런 기독성으로 참여한 것 같습니다.
원영희 당시 대학Y 활동을 하니까 정말 외롭더라고요. 교회는 교회대로 대학부를 없애버렸어요. 학생운동을 계속 하니 경찰서로 장로님들이 계속 끌려가니까. 당시 학생들을 다 지역으로 보내버리고 연합회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Y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Y(young) 청년성을 거의 죽인 것 같아요. 이건 정말 회개할 일입니다. 그렇게 청년들이 떠나고 시간이 흘러 이렇게 귀한 분들이 창립 100주년 직전에 오신 거죠. (서다미 회장 쪽을 보며) 간신히 잡았어요.
김흥수 Y의 정체성 중 하나인 학생과 청년이 시국의 영향으로 위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어떠세요?
서다미 지금 생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지금까지 Y가 변화해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연합회의 결정에 휘둘리지 않고, 청년이 스스로 행동을 취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구조가 바뀌고 있어요. 연합회가 항상 옳은 결정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조금씩 청년이 힘을 얻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런 제도도 생기고요.

gisang2204_04.jpg

김흥수 훨씬 활동하기가 좋으시겠네요. 그 후에 Y목적문이 바뀌잖아요. 목적문에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이라는 말이 들어오면서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일들이 일어나지요. 목적문이 만들어질 때 이런 주제들로 인해 반발이 있었을 것 같은데, 이게 90년대 후반의 일인가요? YMCA는 1976년에 목적문이 만들어질 때 ‘민중’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지도자 중에 반발하는 사람이 계셨습니다.
구정혜 네 맞아요. 현재 목적문은 97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원영희 반발까지는 아니었고, 그보다 창피했던 일은, 1997년 전국대회에서 목적문의 “젊은 여성들이 하나님을 창조와 역사의 주로 믿으며”에서 “젊은”을 빼자는 제안이 있었어요. 그 제안은 결국 부결되었지만요.
구정혜 정체성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방금 말씀하신 그 “젊은”을 빼고는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김흥수 90년대 후반에 Y의 정체성이 확실해지고 평화라는 주제가 들어가면서 분단에 대한 관심이 커졌죠. 그와 관련해서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남북관계와 관련된 활동은 90년대부터 진행된 것이죠?
원영희 Y는 80년대부터 평화(통일)운동의 일환으로 북한을 돕는 여러 활동을 했어요. 내복 보내기, 비타민 보내기 등 아주 소소한 활동을 끊임없이 했죠. 80년대에 이미 구호품을 모아서 보낸 기억도 있고요. 그런 평화운동은 그 이후로 한 번도 멈춘 적 없어요. 정부가 바뀌면 더 많이 도와야 한다거나 덜 도와야 한다는 등 의견이 분분하여 시끄러운데, 우리는 그저 통일은 꼭 이루어져야 하고 굶는 어린아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뿐이었죠. 구호품을 보내지 못할 때에는 계속 모아두었다가 통로가 생기면 즉시 준비해서 보냈습니다. 그렇게 한 번도 끈을 놓친 적이 없어요. 종전선언에 동참하는 등 지속적으로 평화통일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어요. 세계Y 총회까지 이 이슈를 들고 가기도 했습니다. 두 번 정도 결의문을 냈지요. 세계Y도 북한 어린이들을 같이 돕자고요.
김흥수 세계Y 총회에서 반대가 없었나요? 2018년 제가 YMCA전국연맹 이사장이던 시절 태국 치앙마이에서 세계YMCA 총회가 있었어요. 그때 우리가 평양에 세계YMCA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는 결의문을 올렸어요. 그런데 반대가 많더라고요. ‘지금 평화 문제가 남북에만 있느냐’는 거였죠. 그래서 통과시키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원영희 그러셨군요. 나이로비 총회 때 한국YWCA가 결의문을 상정해서 제가 발표했는데, 아프리카에서 반대했어요. ‘북한보다 우리가 가난하다’는 게 이유였어요. ‘북한보다 우리를 도우라’는 거였죠. 어쨌든 북한 어린이를 돕자는 한국Y의 결의문이 통과되어서 세계Y가 북한의 굶는 '인민'들을 향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요. 제가 세계Y 이사로 당선된 그다음 총회는 2011년 스위스에서 열렸는데, 또 결의문을 올려서 제가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인 걸 모르는 나라가 참 많더군요. 그걸 알리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UNSCR) 1325호를 들어 탈북한 여성과 아동들이 중국 변경에서 착취당하며 성노예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죠.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도 발표했어요. 그때는 약간의 질문은 있었지만 반대는 없었어요. ‘DMZ라는 게 있고, 한국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 중’이라는 걸 알렸더니 세계Y에서 한국에 와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2012년이 한국Y 90주년이라, 그 기념으로 ITI(International Training Institute)라는 교육프로그램을 세계Y와 함께 서울에서 개최했어요. 국제 리더십 프로그램이죠. 그걸 개최하게 되면서 세계Y에 가입된 30여 개국에서 50명 정도 회원들이 와서 DMZ를 방문했습니다. “아직 같은 민족끼리 총을 들고 있는 나라가 있다니!” 하며 깜짝 놀라더라고요. 그렇게 평화운동을 세계Y와 같이 했죠. 2019년 요하네스버그 총회에는 한반도평화협정 체결을 지지하고 북한의 아동과 모성 건강을 지원하자는 결의문을 제출하였고,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표결로 통과되었어요. 한반도 분단과 평화체제에 대한 관심이 계속 높아져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죠.
2015년 태국 방콕 세계대회에서는 탈핵을 주제로 결의문을 냈어요. 핵무기, 핵발전은 안 됩니다. 탈핵 결의문은 지금 세계Y 부회장을 하고 있는 한미미 선생님과 일본Y가 함께 발표했습니다. 그때 이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뒤였거든요.
김흥수 2020년과 21년의 운동 정책을 살펴보니 ‘탈핵생명운동’, ‘성평등운동’, ‘평화통일운동’, ‘청년·청소년운동’ 등이 있네요. 이것들이 작년까지의 중요한 핵심사업이자 목표였는데 이 중에서 성과가 가장 큰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원영희 탈핵운동이죠. 어제 우연히 TV를 봤는데,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프로그램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다루더라고요. 그 처참한 사고의 결과가 화면에 나오는데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끔찍해서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제 남편은 원자력 발전 없이 어떻게 사냐고, 다른 운동을 해도 탈핵은 참으라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어제 그걸 보고 시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김흥수 탈핵생명운동은 언제부터 했나요?
구정혜 탈핵운동은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했습니다. 후쿠시마 이후인 거죠. 고리원전이나 노후한 핵발전소가 있는 부산과 경남 지역 중심으로 그전부터 계속해서 노후 핵발전소 폐쇄 운동을 해왔는데, 후쿠시마 사고 이후 총회에서 이 운동을 전국적으로 하자고 제안했어요. 생명운동 관점에서 ‘핵과 신앙은 양립할 수 없다’는 구호를 내걸고 운동을 시작한 것이죠. 전국 Y가 다 찬성하고 함께했어요. 탈핵운동에서는 인식개선이 가장 중요해요. 회장님 말씀처럼 원전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전국적인 캠페인과 인식개선 교육, 활동가 교육을 계속 진행했어요. 고리1호기 폐쇄를 위해 10만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어요. 당시 Y 회원이 10만 명 정도 되었거든요. 그렇게 거의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 부산시장에게 전달했지요.
원영희 후쿠시마 사고 3주년인 2014년부터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명동 한국YWCA 회관 앞에서 매주 화(火)요일에 ‘탈핵 불의날 캠페인’을 제251차까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6년간 했어요. 명동 앞에서 핵발전소와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자료를 나눠주고 서명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지나가시는 분들이 ‘쓸데없는 짓 한다’, ‘원전 없으면 어떻게 살래?’, ‘전기값 오르면 너희가 줄 거냐!’ 하며 야단을 쳤어요.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흘러 5년째 되었을 즈음에는 모두가 자발적으로 와서 서명을 했어요. 또 탈핵 관련해서 독일 연수와 같은 활동가 교육도 진행했어요. 그 결과 고리 1호기가 영구정지된 일에 한국Y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탈핵운동계에서 평가를 하지요. 탈핵이라고 하면 소수의 전문적 운동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Y가 탈핵운동을 대중운동으로 바꾸었다는 평가도 받지요. 요즘에는 탈핵에 정치적인 프레임이 씌어서 내부에서도 지역에서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정치권보다 저희가 훨씬 먼저 시작했어요. 대선이든 지선이든 탈핵을 정치 의제로 만들고 국정과제로 만든 건 우리예요.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탈핵이 국정과제로 들어간 상황입니다. 아무튼 이게 지금은 정치적인 문제가 되어서 어른들은 ‘왜 여당의 일을 너희가 하느냐’고 해요. 그런데 사실 여당보다 우리가 먼저 한 것이거든요. 탈핵은 생명운동의 관점에서 하는 것이고, 올해도 2022-23년 중심으로 기후운동과 관련하여 전국적인 운동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YWCA 운동의 ‘C’ 때문에 우리는 모든 운동의 바탕에 생명이라는 가치를 둡니다. 생명 이슈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물론 다양한 가치가 있지만 예수께서 생명을 버려서까지 우리를 구하셨는데, 그 생명 사랑을 우리가 다 받고 있는데, 생명 논리로 모든 운동을 접근해야지 정치나 경제의 논리로 우리의 운동에 접근하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저희는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았고, 어떤 경제적 이익도 추구하지 않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지상 명령,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야 한다는 사명으로 운동하고 있습니다. 탈핵도 생명 논리로 다가가야죠. 핵이 얼마나 위험하고 얼마나 생명을 많이 죽입니까. 이제 더 이상 그 원전을 돌리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결국 생명환경운동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운동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운동이 바로 탈핵·탈원전 운동인 것이죠.

한국YWCA의 특수성

김흥수 Y가 70년대 이후에는 여러 기술교육이나 소비자보호운동, 여권 신장, 가족법 개정 등 주로 여성과 관련된 일을 많이 했지요. 그런데 탈핵생명운동은 남녀가 구분되는 운동이 아니니까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한국 사회 전체에 필요한 운동을 해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우리 사회에서 YMCA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막상 물어보면 뭘 하는 단체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해요. YWCA는 여성운동 단체라는 이미지와 정체성이 있어서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성운동만은 아니고, 청년운동이나 기독운동, 국제관계 등 여러 정체성이 있지요. 이 정체성과 관련해서 제가 요즘 YMCA를 볼 때 우려되는 것으로,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지의 Y에서 헌장이나 규정에서 ‘C’(christian)를 빼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시민운동에 신앙고백적 언어가 필요 없다는 것이죠. YWCA는 어떤가요? 한국YWCA가 기독교적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해왔는지 말씀해 주시죠.

gisang2204_05jpg

서다미 사실 YWCA에서 ‘C’는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Y가 종교성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회원들의 종교가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다 포용하고 ‘C의 정신’으로 활동하니까 한국Y에서는 굳이 ‘C’를 빼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종교 대신 정신을 강조하고, 종교를 전혀 강요하지 않으니 누구나 자유롭게 활동합니다. 한국Y는 ‘C’ 문제에 관한 한 흔들릴 여지가 없습니다.
원영희 Y는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과거 태국에서 Y 세계대회를 할 때 영국 대표가 딱 한 명 왔더라고요. 30대 청년이었어요. 어떻게 혼자 오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영국 전체에 Y 회원 수가 20명도 안 된다고 대답하더군요.
김흥수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Y 회원 수가 20명도 안 된다니요?
원영희 말 그대로예요. 영국 전체에서 Y 회원 수가 그렇게 적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문을 닫을 수는 없겠죠. Y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니 상징적인 의미가 있잖아요. 그래서 세계Y에서 그 청년을 키우는 것이죠. 그 친구가 저랑 세계Y 이사를 같이 했어요. 회원들이 다 그 친구에게 어디로 갔냐고 물었더니 유럽연합에 Y에서 ‘C’를 뺀 단체가 생겨서 유럽 각국 Y의 많은 회원들이 거기로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100년 넘은 Y가 유럽에 많은데 말이지요. 2007년 나이로비 총회에서, 그리고 12년 뒤인 2019년 요하네스버그 총회에서 나온 헌장 개정안은 충격이었어요. ‘세계Y 헌장 전문에서 성부, 성자, 성령을 빼고 모든 종교를 받아들이자.’라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두 번이나 나온 거예요. 나이로비에서는 정말 엄청나게 불붙은 듯 싸워 부결되었고, 요하네스버그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부결되었어요. 다음에 같은 개정안이 나오면 바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한국Y는 ‘C’가 없으면 흩어집니다. 제가 ‘한국YWCA의 미래를 위한 95개 논제’라는 소책자를 하나씩 들고 전국을 돌면서 기도순례를 하고 있거든요. 여기 보면 우리 목적문의 제일 끝에 우리의 목표는 ‘정의, 평화,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세상 건설’이라고 했어요. 95개 논제의 끝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35개 지역을 순회했는데, 회원 누구나 그 사실에 감사하고 우리의 ‘C’ 정체성이 흐트러질까 봐 걱정합니다. 52개 Y가 ‘C’를 단단히 붙들고 있어요.
김흥수 이것이 한국Y의 특성 중 하나인 듯하네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한국Y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또 다른 특징은 무엇인가요? 한국 Y의 독특성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원영희 예를 들어 미국Y와 비교하면 한국Y는 소소한 시민운동을 많이 했어요. 미국Y는 회원 숫자가 가장 많은 Y인데, 인구 밀집도로 보면 실질적 회원 규모는 한국Y가 1위입니다. 그러니까 세계Y가 우리나라를 신기하게 보는 것이죠. ‘C’도 변함없고 말이죠. 회원 수가 크게 오르락내리락하지도 않고, 또 변함없이 이 코로나 시대를 잘 견디고 있는 한국Y는 뭔가 하고 말이에요. 우리의 특징은 ‘C’가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C’는 일본Y에서도 두드러져요. 2015년 세계Y 총회 개최국인 태국Y 또한 정말 ‘C’가 강합니다. 한국Y는 세계Y의 어떤 Y보다 ‘C’운동에 강합니다.
다만 우리 한국Y는 아직도 여성운동이 약해요. 어떤 나라 Y를 보면 여러 나라에서 여성폭력추방운동을 한다고 Y 건물에 홍보물이나 슬로건을 도배하다시피 해 놓았는데 말이죠.(웃음) 우리는 여성운동이 여전히 약한 편입니다. 요즘 우리 한국Y의 여성운동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보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김흥수 한국Y가 여성운동이 약하다고요?
구정혜 두드러진 활동이 적다는 것이지요. 한국 여성운동의 초창기에는 Y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전문적인 여성단체가 많고, 환경운동 등 특정 분야는 전문적인 운동으로 세분화되다 보니 저희가 주도권을 가지고 치고 나가는 활동이 여성운동 영역에서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지속적으로 여성인권이나 성평등이라는 가치를 저희가 전개하는 여러 운동의 기반으로 삼고 있고, 여전히 청년들을 포함한 회원 모두가 여성운동의 주제를 중요하게 여기고 실행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성별 임금 격차를 없애는 ‘동일임금 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하며 법 개정이라는 성과를 이뤘고, 선거 때마다 진행하는 정책 제안 활동과 상시적으로 진행하는 정부기관에 대한 모니터링 등을 통해 성평등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전개해오고 있습니다. 특별히 올해에는 온·오프라인에서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개발해 보려고 합니다. 또한 현장에서도 Y가 여성 일자리 개발이나 성폭력상담소와 센터 운영 등 여성 권리 향상과 여성 폭력 추방 등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Y가 추진한 ‘파출부’는 직업개발 차원에서 진행한 여성운동이지만, 90년대 이후부터는 돌봄노동운동이라는 방향으로 갑니다. 지난 2021년에 국회를 통과한 가사노동자 고용 관련 법률을 제정하는 데에도 Y가 많은 역할을 했지요. 2000년대 들어서는 직업을 안내하는 수준이 아니라 인권운동으로서 진행하는 중이에요. 전국의 중점운동에서는 빠졌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돌봄운동에 대한 수요가 많습니다.

새로운 100년을 향하여

김흥수 100주년을 맞으면서 미래를 자주 내다보실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과제는 어떻게 정리하고 계신가요?
원영희 서다미 회장이 먼저 ‘RE100’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 어때요?
서다미 탈핵기후생명운동의 전국 캐치프레이즈가 ‘RE100’입니다. 청년들이 주체가 되어서 하고 있어요. 한국Y는 기후위기를 인류의 시대적, 역사적 과제로 보았습니다. ‘RE100’은 ‘다시’(RE) 시작되는 ‘100’년을 맞이하여 탈핵기후생명운동을 전국 중점운동으로 삼아, 재생에너지 100%를 이루자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 캠페인(Renewable Energy 100)에 동참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캐치프레이즈입니다.
일단 기후위기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청년들이 앞장서고 주도해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의 결과를 고스란히 맞는 사람들은 바로 다음 세대와 청년들이니까요. 청년들이 더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게 하고 이게 정말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부터 첫걸음을 딛으려 합니다. 청년들이 더욱 심각성을 느끼고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쪽으로 대학Y가 활동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삶에서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를 실천하는 ‘나부터 RE100’, 청년이 기후정의를 세우는 주체로서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 등을 포함한 ‘우리 RE100’, 지역별 기후정책 수립에 여성의 참여를 높이는 것을 포함한 ‘지역 RE100’, 성평등한 탈핵기후정책을 제안하고 기후위기 시대 남북협력체제구축과 에너지 전환과정에서 여성의 일자리 창출을 촉구하는 ‘코리아 RE100’으로 운동을 확산해 나가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구정혜 100주년을 맞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가장 크게 추진한 것은 법인의 재구조화입니다. ‘재구조화가 도대체 뭔가?’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한국Y는 연합회를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단체로 100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역 분권의 시대가 되면서 중앙집권적 시민운동은 맞지 않다고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지역Y가 활동하도록 연합회로부터 독립시키는 게 큰 과제가 된 것이죠. 그러기 위한 법적·제도적 바탕이 미약해서 그것을 새로 만들어가면서 하는 상황입니다. 이걸 2023년까지 집중해서 진행하는 중입니다.
원영희 지역Y를 독립된 법인으로 세우는 작업을 어느 시민단체보다 먼저 시작한 것인데, 하다 보니 우리나라 민법에 꼭 있어야 하는 사항이 없는 경우가 많이 발견되더라고요. 시민단체의 구조를 더 공익에 맞게, 더 투명하게 바꾸며 변호사와 자문단, 국회의원 등과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민법이 개정되어야 하는 부분이 드러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펼치는 운동은 정의, 평화, 생명운동으로 가면서 NGO의 구조 발전을 위한 범사회적이면서 국가적인 운동까지 서서히 확장해 나가고 있어요. 차츰차츰 빈틈이 채워지는 쪽으로 민법이 개정되면 다음에 재구조화하는 다른 시민단체가 도움을 받아 편리하게 그 작업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런 일까지 우리의 지경이 넓어졌어요. 감사한 일입니다. 1920년대 초만해도 570여 개의 단체가 있었다는 것처럼 지금은 셀 수 없는 시민단체가 있는데, 과연 어떻게들 있는지,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들이 운동할 수 있는 바탕을 법적으로 제대로 마련할 수 있도록 공헌한다면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운동과 사명일 것 같습니다. 재구조화가 한국Y를 넘어서 다른 비영리법인이나 단체들에게도 모델이 되고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게 저희의 큰 과제입니다.
구정혜 다른 과제는 한국Y연합회의 구조개편입니다. 청년 중심, 지역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는 것인데 작년에 이러한 구조개편을 결정했고, 올해 처음 총회에서 그에 맞게 이사를 새로 구성했어요. 이것은 시작입니다. 청년들이 의사결정 구조에 들어오면서 청년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청년들이 어떻게 이 과정에 잘 정착할 수 있을까가 이면의 과제이고요. 잘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새로운 100년의 비전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미래를 위한 95개 논제’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토론하기 위한 내용인데요, 그 95개 논제를 통해 계속해서 정체성에 대해서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100년 이후에 궁극적으로는 이런 시민단체가 없어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한국Y가 어떻게 존재하며, 어떤 운동을 하면서 회원들과 이 일을 해나갈 것인가, 그게 우리의 과제이지요. 이를 정리하는 게 자원활동가와 실무활동가 모두의 과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 경우를 말씀드릴게요. 저는 대학생과 청년들을 바라보고 활동하는 사람이라 어떻게 하면 그들을 Y에 더 유입시키고 안정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지를 찾아보고 연구하는 게 목표입니다. 청년들이 사실 연합회 안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다가 실무활동가까지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러한 성장의 기회와 길이 잘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저희가 ‘사람책방’이라는 청년글로컬네트워크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이를 넘어 어떻게 청년들이 직접 세계Y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을지, 어떻게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게 청년들의 과제일 것 같아요.
원영희 한국Y는 시민운동 단체이고, 분명 크리스천 시민운동가들이 모여 시민운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운동을 하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사명과 상관없는 사역은 할 이유가 없겠지요. 모든 우리 운동과 활동의 잣대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일이어야 합니다. 목적문에 비추어 의사결정을 하는 진지함에 우리의 지속성이 달렸습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세상의 논리는 세상의 논리일 뿐이고, 우리는 생명 논리로 모든 것에 다가간다는 말씀이죠. 성폭력 반대든, 청년 살리기든, 정의로운 일은 생명의 논리로 해야 합니다. 통일을 위한 북한 돕기 역시 생명을 살리는 일이니 평화 문제도 생명의 논리로 다가갈 겁니다.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시급한 탈핵운동도 생명 논리로 다가갈 일입니다. 경제 논리는 결코 안 됩니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 그리고 생명을 위해 더 이상은 안 돼요. 생명 논리로 지속적인 기독교 시민운동을 해야 합니다. 특별히 여성을 향해, 청년을 향해 변화를 주도하는 Y가 되면 좋겠습니다. 기도를 부탁합니다.
김흥수 100주년을 맞은 한국Y가 한편으로는 효율적이고 개방적인 운동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Y의 정체성, 즉 생명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정의·평화·생명 프로그램을 과제로 삼고 새로운 100년을 시작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Y의 과거를 잘 알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과제를 가지고 일할지 전망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Y는 한국교회의 중요한 일원이고 한국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며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갈 한국Y의 행보가 뜻깊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Y 회원들과 지도력을 발휘하시는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gisang2204_06.jpg

 
 
 

2022년 4월호(통권 760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