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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21년 10월호)

 

  전주시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의 건립 과정과 전시 구상
  

본문

 

1892년 1월,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는 조선 땅에 7명의 선교사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당시 한강 이남에서 가장 컸던 인구 5만 명의 도시 전주에 선교기지를 세웠다.
시간이 지나며 조선 말의 전주는 선교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선교사들의 헌신과 봉사 위에 교회, 병원, 학교가 세워져 의료선교와 교육선교도 영역을 넓혀갔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고 전주를 발전시켰던 이들의 공헌은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이들의 흔적 역시 개발에 밀려 사라져가고 있었다.
전주시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이하 기념관)의 설립은 주민들과 고락을 같이한 선교사들의 정신을 되살리는 일이다. 이 글은 부족하게나마 기념관의 설립 배경, 기념관 설립을 위한 노력, 기념관의 의의와 역할 등을 정리하는 소고(小考)이다.

전주의 선교 역사

전라북도 전주에 첫발을 딛은 선교사는 7명이었다. 이들 ‘7인의 선발대’ 각 사람의 이름은 테이트(Lewis Boyd Tate, 崔義德), 테이트의 여동생 마티 테이트(Mattie S. Tate, 최마태), 린니 데이비스(Linnie Davis), 레이놀즈(W. D. Reynolds, 李訥瑞)와 팻시 볼링(Patsy Bolling) 부부, 전킨(William McCleery Junkin, 全緯廉)과 메리 레이번(Mary Leyburn) 부부이다.1
1893년 6월, 레이놀즈의 비서 정해원 씨가 초가 한 채를 매입했다. 전주천 건너편 완산 칠봉 아래 용머리고개 기슭 은송리에 있는 아담한 집이었다. 이 집은 호남 지역 최초의 기독교 선교기지인 은송리교회가 되었다.(은송리교회 터에는 이를 기념하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1897년, 선교사들은 그곳 은송리의 초가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가옥 두 채를 더 사들여 예배당과 선교사 숙소를 만들고자 하였으나, 조정은 조선왕조의 발상지 전주의 봉산인 완산에 교회를 짓지 못하게 했다. 선교사들은 은송리 서쪽의 화산 지역 일대를 대신 받아 이전하게 되었다. 결국 1899년부터는 전주 화산에 선교본부 이전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전주에는 선교사 숙소와 서문교회, 예수병원, 신흥학교, 기전학교가 세워졌다. 이곳에서 시작된 복음선교와 의료선교, 교육선교는 전주 지역의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기념관의 설립 배경

선교사들의 헌신이 기초가 되어 발전한 전주이지만, 지금은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일부나마 보존하고 있지만, 초기 선교사들이 활동했던 흔적은 개발에 밀려 헐리고 소멸해가는 실정이다. 전북의 기독교가 도민과 고락을 같이하며 의료선교와 교육선교로 지역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는데, 그 정신이 잊혀지고 있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전주의 기독교 역사자료와 유적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절실했다. 이것이 기념관 설립의 첫 번째 배경이다.
기념관 설립의 두 번째 배경은 근대 전주의 기독교 역사자료와 유적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전주의 기독교는 복음선교뿐만 아니라 사회선교를 병행했으며, 이들이 세운 예수병원과 신흥학교, 기전학교는 지역의 근대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주의 선교 유산은 종교적인 유산일 뿐 아니라 전북의 근대사와 현대사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사적 자원이라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전주의 기독교 유산은 재평가되어야 하며,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발굴과 연구, 관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기념관은 전주의 중요한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 한국 기독교사에서 핵심 지역인 전주에 기독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기념관이 세워진다면, 많은 기독교인이 전주를 방문할 것이다. 기념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다. 기념관은 선교 교육의 공간, 영성 체험의 공간으로서 전주의 중요한 관광 자원이 될 것이다. 기념관은 전주의 기독교 유산을 관리하고 연구할 뿐 아니라 경제적인 가치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

전주의 선교 역사는 한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관광 자원으로서의 경제적 가치도 높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수용되어 전파될 당시, 전주는 복음을 선포할 주요 지역으로 선택되었다. 전주는 선교기지(Mission Station)가 구축되어 지역 민중과 호흡하며 가장 모범적인 선교활동을 펼쳐온 지역이다. 전주의 선교활동은 선교역사뿐 아니라 지역의 근대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문교회, 신흥학교, 기전학교, 예수병원은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과정의 역사적 시기마다 의미 있는 역할을 했으며, 지역민의 요람과 안식처가 되고, 지금도 그 위치를 그대로 유지한 채 서로 긴밀한 연계 속에서 입체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중심에 위치한 초기 선교사들의 사택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정주 공간으로서, 종교 사적일 뿐 아니라 한국 근대 건축사와 의료사, 교육사 등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 유산이다. 선교사의 주택과 묘역이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조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전북의 기독교 역사·문화 자원은 종교를 떠나 지역의 문화와 삶의 양식, 교육, 의료 역사에 큰 의미를 갖는 중요한 유산이자 관광 자원이다.

기념관 설립을 위한 노력

기념관에 대한 관심이 한동안 주춤했다가 다시 시작된 것은 2013년경이다. 기독교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함께 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이 크게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2007년 출범했다가 한동안 잠잠하던 사단법인 전북기독교성지화사업추진협의회도 다시 활성화되었다. 이들은 협의회의 목적과 이념을 새롭게 고민하여 정관을 개정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 전북의 선교 유산을 관리하고 기독교 체험관을 갖추겠다고 밝혀 놓았다.

(본 법인은) 전북 초기 선교의 유적지를 보존 및 복원하고 기독교 정착 과정의 역사적인 자료를 수집하여 고증하며, 희생정신과 선교정신을 함양하고 선교 중심 복음의 성지 상징성을 부각하여 한국의 기독교성지로 조성함으로 기독교 전통 문화 정립과 기독교 체험관을 갖추어 기독교인의 신앙의 성장과 일반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목적이 있다.-전북기독교성지화사업추진협의회 정관 제2조

이에 따라 기념관 건립 계획이 조금씩 모양을 갖추어갔고, 2017년 12월에는 기념관 조성 사업 계획서가 전주시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업 승인을 받았다. 2018년 10월 17일에는 전주시청으로부터 건축 허가를 받았고, 2020년 5월 29일에 착공 감사예배를 드렸다. 당시 예배에는 송하진 전북도지사를 비롯한 여러 기관장들과 교계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전북 기독교계 전체가 한마음으로 기념관 건축에 참여한 것이다. 기념관은 예수병원으로부터 제공받은 부지에 지상 4층, 지하 2층 규모로 세워지며, 현재 60% 정도 공사가 진행되었다. 기념관은 2022년 4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기념관 건물의 설계 의미

기념관의 설계는 심미성과 상징성을 모두 고려했다. 전체적으로 기념관은 시설의 성격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추는 모습으로 설계되었다. 들린 공간은 기독교의 열린 가치를 형상화한다. 삼각형의 중심 중정은 하늘의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역사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있다. 인간과 소통하는 장소인 기념관은 하나님과도 소통하는 장소이며, 천국에 소망을 두는 영성 아래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가치를 담은 공간이다. 이는 단순하고 추상적인 중정이 아니라, 역사 정신이 함유된 영성적 공간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은혜의 강림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삼각형 구조로 설계된 건물은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처럼 하나님과 나, 그리고 우리들이 하나 됨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하였다. 건물로 들어오는 자연 채광은 성령의 조명을 상징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설계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믿음·소망·사랑을 말한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말씀을 중심으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기념관은 실용성도 겸비했다. 주변의 지형, 지세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지를 조성하였으며, 건물의 형태 역시 주변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주차장과 조경시설을 창조적으로 구분하였고, 진입 도로는 기존의 도로를 최대한 이용했으며 보행 동선을 가급적 차량 동선과 분리시켜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특히 예수병원의 육교와 연계성을 확보하는 등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길을 냈다.

기념관에 담길 다양한 콘텐츠

구약성서 에스라에서 유다 총독 세스바살은 유다를 재건하며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강제로 탈취해간 유물들을 되찾았다.(스 1:7-11) 기념관에 들어설 전시물들도 이와 같다. 전북 지역의 교회와 학교, 병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지만 지금은 잊혀진 인물들의 자료를 되찾아 전시할 것이다.
기념관에는 가장 먼저 한국 기독교의 시작을 다루게 된다. 선교사의 푸른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이 연출되고 복음의 전래와 선교사 언더우드(H. G. Underwood, 元杜尤)의 기도 내용이 그래픽 패널로 소개된다.
그 뒤로는 초기에 내한한 선교사 7인의 활동을 중심으로 예수병원, 신흥학교, 기전학교, 서문교회와 기타 지역의 선교 기록을 찾아서 전시할 것이다.
또한 ‘전주에 심은 복음의 씨앗’이란 주제로 1892년 전주에 도착한 선교사 7인의 사진과 활약상을 소개하고 그들의 유품과 유물, 기록물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그리고 전주 지역 최초의 예배당이 된 은송리 초가집을 재현하여 전시하고, 동학혁명과 청일전쟁 후에 전주에서의 본격적인 복음전파 내용을 전시하며, 당시 해리슨 선교사(W. B. Harrison)가 가르쳤던 찬송가 563장을 음향으로 연출한다.
‘전주에 새겨진 십자가의 길’이라는 주제의 전시 공간에는 전주 서문교회 이야기, 1908년 12월에 별세한 전킨 선교사 기념 종각 설립 이야기를 담게 되며, 1910년 4월 구약성서 완역에 크게 기여한 레이놀즈 목사의 번역 작업과 김인전 목사의 주도로 이루어진 3·1운동의 거사일람표가 설치될 것이다. 또한 양반집 자제로 태어났으나, 전주성 밖에 거주하던 거지들과 어울려다니며 그들을 도운 이거두리(이보한)가 자주 불렀던 찬송가 260장이 음향으로 연출되며 거지대장으로 불린 이거두리의 출생과 신앙생활, 묘비명을 전시한다. 거리의 성자 방해인 선생의 교육활동, 거지와 고아, 나환자를 위한 헌신적인 봉사 및 유물과 유품도 소개될 것이다.
기념관에는 예수병원의 역사와 함께 마티 잉골드(Mattie B. Ingold)를 비롯하여 의료선교 역사를 담아내는 공간도 준비하고 있다. 예수병원의 제12대 병원장 설대위(David John Seel)는 1971년에 예수병원을 현대식 병원으로 신축하였다. 1978년에 그는 의학도서실을 건축하였고, 2009년 11월에는 우리나라 민간 의료기관 중 최초로 의학박물관을 등록했다. 의료와 봉사 나눔, 섬김의 선교활동을 선도하는 예수병원은 개원 100주년 기념으로 예수병원의 역사자료실이라는 의미 있는 체계를 세웠다. 예수병원의 역사자료실은 121년간 무한 사랑이라는 꿈의 역사를 간직한 유형적 자산이자 소중한 유물을 간직한 곳으로서 의료 분야와 생명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예수병원은 최초의 재활병동을 신축하고 재활치료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기념관에는 이러한 예수병원의 역사를 소개하고, 잉골드, 포사이드, 바울, 설대위 원장의 아름다운 희생의 삶을 담아낼 것이다.2
또한 의학전시관에는 푸른 눈의 여의사 마티 잉골드의 의료활동과 선교활동을 담아내고, 그녀가 기록한 일기를 비롯한 유물들, 관련된 주요 에피소드를 이미지 영상으로 연출하여 소개할 것이다. 특히 의료 혁명을 이끈 예수병원이 간직한 다양한 도구들(시력검사 도구, 수술 도구, 청진기, 현미경, 진찰대 등), 각종 제약기와 진단기 및 치료기(방사선심부치료기, 치과치료기 등)가 전시된다. 특히 문화재청 근대문화유산 의료분야목록에 포함된 설립자 마티 잉골드의 진료사진(1898), 방광내시경과 요도확장기(1930), 안과수술 기구(1948), 종양심부치료 기록지(1955) 등은 매우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러한 근현대 의료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들이 전시될 것이다.
기념관에는 호남 최초의 전주서문교회를 통해 퍼져간 복음의 역사를 담아서 보여줄 것이다. 전주서문교회는 1893년 레이놀즈 선교사의 파송을 받은 정해원이 설립한 호남 최초의 교회이다. 1897년 7월 17일 레이놀즈 목사의 집례로 남자 2명과 여자 3명이 세례를 받았다.3 1905년 9월 서문 밖 현재의 위치에 780평을 구입하여 건평 50평의 기와 지붕이 올라간 벽돌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1908년 8월에 김필수를 장로로 장립하여 비로소 당회가 조직되었다.
기념관에는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영명학교와 멜본딘여학교(Mel-Bohl-Deen Girls’ School)를 통한 학원선교의 역사를 담아 보여줄 것이다. 신흥학교는 1900년 9월에 레이놀즈 선교사의 사택에서 그의 부인 팻시 볼링과 함께 교과과정을 세워 가르친 것이 시작이다. 1906년 기존의 신흥학교 자리에 있던 회현당으로 이전하였고, 1907년 3월에는 교육담당선교사 니스벳 부부(Nisbet, John Samuel)가 부임하여 정식 학교로 운영하였다. 신흥학교의 강단은 등록문화재 제172호로 지정되어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4

기념관의 성격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념관을 단순한 전시 공간으로 오해하거나 기념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 기념관은 단순히 전시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전시 대상의 수집, 조사와 연구, 발굴, 관리까지의 전 과정이 총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뿐만 아니라 기념관은 선교 교육과 영성 체험, 타 기관과의 교류·협력, 홍보에 더해 간접적인 선교와 현장체험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지역교회와 연계하여 만들어가는 종합적인 마당의 성격도 갖고 있다. 기념관은 연구 및 전시 기관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영성교육 공간과 체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지속적이고 창조적인 연구가 진행될 것이다.
물론 기념관은 일차적으로는 전시에 충실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기념관은 더 체계적이교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연구 및 조사, 유물 수집 및 구입, 전시 및 교육, 홍보 및 교류·협력이 선순환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기념관은 기독교의 역사와 문화가 한국의 근대화에 미친 영향, 선교와 교육을 통해 드러난 시대정신, 교회와 지역사회의 유대관계 등을 주로 연구하게 될 것이다. 복음이 공동체 속에서 상생의 역할을 했고, 미신과 문맹을 타파했던 사실을 학술적으로 밝히고, 이를 널리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5 전북 지역사회의 문화 정체성과 복음의 정체성, 생명을 살리는 의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을 수집하여 보존함으로써 기념관이 그리스도의 빛이 되게 할 것이다.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기념관의 위상에 걸맞은 소장품을 확보하기 위해 수집과 발굴 활동이 이루어진다. 수집된 유물들은 유물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소장품으로 적합한지 검토한 후 전시 여부가 결정되며, 이를 통과한 소장품은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된다. 유물의 손상 방지와 보존을 위해서는 보존처리 및 상태 점검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기념관 지하 1층에는 충분한 수집 공간을 마련하였으며 전문 인력이 유물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기념관은 비공식적인 교육기관의 기능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교육적 역할과 함께 영성을 훈련하고 선교 비전을 체험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자 한다. 특히 기념관은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기독교인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교육자료 개발을 진행할 것이다. 또한 어린이·청소년·대학생·청년·성인·외국인·비기독교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대상에게 맞춤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할 것이다. 이에 더해 기념관의 홍보자료를 이용하여 교회의 성장과 구원 역사에 기여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앞으로 기념관은 지역사회 속에 녹아들 것이다. 기념관을 통해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기독교의 사회적 공헌을 새롭게 조명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교회의 소중함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자 한다. 수준 높은 문화행사 및 영성 프로그램을 통해 기념관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참여형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인지도를 높여갈 것이다. 기독교 관련 유물과 기록물, 예수병원의 의학 장비, 사진 및 소장품의 전시뿐 아니라 성서와 관련한 영화, 오페라, 오라토리오, 뮤지컬 공연(방애인, 이거두리)을 열며, 학술 행사, 성경 판소리 창작대회, 영어 성경 암송대회, 찬송가 경연대회 등 기독교 관련 행사를 기획하여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방향으로 운영할 것이다.6 이를 통해 봉사의 정신으로 여러 분야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던 과거의 의미와 가치를 오늘날에 구현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의 문화를 주도하고 시대정신을 함양하는 중요한 문화 마당을 펼치고자 한다. 기념관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전주 시민, 전북 도민 및 일반 관광객들에게도 지역의 근대사를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기독교가 지역사회에 미친 선한 영향력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지속적으로 갱신을 거듭해나갈 것이다.
기념관은 기독교 문화유산의 핵심 성지, 순례지로 발돋움하고 전주권 성지순례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어 지역경제에 이바지할 것이다. 이는 전주의 풍부한 기독교 역사·문화자원을 지역의 자연자원, 전통문화자원과 연계하여 경쟁력 있는 신성장 관광프로그램을 개발·육성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전주와 전북이 생명력 있는 지역으로 변하고 소득 증대와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에도 일조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맞춤형 전략을 수립하여 운영할 계획이다.

맺는말

2022년 개관 예정인 기념관은 전북 지역의 교회가 지역사회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도록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초기에 내한한 7인의 선교사들이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고, 전북지역의 위대한 유산으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전라북도의 4,000여 교회, 50만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건립하는 이 기념관은 민족의 숨결, 역사의 흔적인 기독교 문화유산을 거룩한 빛으로 비추게 될 것이다.
기독교 문화유산은 우리의 신앙 선진들의 거룩한 영성과 흔적, 삶이 배인 고귀한 자산이다. 이러한 거룩한 흔적과 유물이 방치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고, 이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중심적 역할을 할 기념관이 생기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영적 후손인 우리가 신앙의 선진들이 남겨준 소중한 문화유산과 유물, 유적들을 찾아내고 복원하는 일에 힘써, 이를 후대에 물려주고 신앙의 역사적 뿌리를 든든히 세워나가기를 소망한다.

주(註)
1 서종표 편저, 『전킨선교사』(전킨기념사업회, 2021), 55.
2 “1971년 12월 미국장로교회에 보낸 설대위(Seel Dr. David J.)의 편지”, 설대위,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씨』(예수병원, 2007), 183.
3 전주서문역사자료집 참고.
4 김수진, 『호남기독교100년사』(쿰란출판사, 1998), 166.
5 김권정, “한국의 기독교박물관, 현황과 기능”, 「기독교사상」 734호(2020. 2).
6 전주시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은 총 6층 규모(지하 2층, 지상 4층)로 설계되었다. 지하 2층에는 기계실을 비롯한 기반 기설, 지하 1층에는 수장고와 관리실, 지상 1층에는 현관, 로비, 안내데스크, 북카페, 화장실, 지상 2층에는 상설전시실, 지상 3층에는 의학박물관 전시실, 영상관, 사료실, 지상 4층에는 채플실, 휴게라운지, 세미나실, 독서 휴게공간, 화장실이 있다.


최원탁| 미국 하워드대학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기다림이 좋은 이유』, 『자신감의 비결』, 『이야기의 힘』, 『의로움의 힘』 등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전주현암교회 원로목사이며, 전라북도기독교문화유산보존협회 회장, 전북기독교성지화사업추진협의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11월호(통권 7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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