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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한국 사회와 교회의 길을 찾는 신학대화 06]
교회와현장 (2021년 8월호)

 

  포기하면 안 됩니다! 첫 여성 구약학자 이경숙의 삶과 신학
  

본문

 

* 새길기독사회문화원, 크리스챤아카데미, 「기독교사상」은 “한국 사회와 교회의 길을 찾는 신학대화”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신학대화는 한국 기독교가 일구어온 사회참여적 신학 전통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함으로써 교회가 다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려는 시도로 기획되었다.-편집자

대담자 소개 / 이경숙 교수는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기독교학과 대학원과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구약을 공부했다. 목원대를 거쳐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로 가르치다가 정년퇴임했다. 이화여대 인문대 학장, 신학대학원장, 대학원장 및 부총장, 한국여성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구약성서의 여성들』, 『구약성서의 하나님·역사·여성』, 『생존과 희망의 구약성서』 등이 있고, 공저로 『기독교와 세계』, 『여성이 읽는 성서: 구약성서개론』, 『한국을 사랑한 메리 스크랜튼』, Global Bible Commentary 등이 있다.
박지은 박사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와 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미국 밴더빌트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와 “탈식민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아가서와 잠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강사이며, 인문학 밴드 대구와 카레, 평화와 신학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공저로 『21세기 세계 여성신학의 동향』, 『혐오와 여성신학』, 『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 등이 있다.
두 신학자의 대화는 2021년 4월 13일 경동교회에서 진행되었다.



영문학도에서 ‘통가죽 가방’을 든 신학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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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 선생님과 대화하게 되어 제자로서 영광입니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학부 때 이대 기독교학과에 구약 교수님이 안 계셨는데, 제가 대학원에 입학한 해에 선생님께서 구약 교수님으로 오셔서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선생님의 통가죽 가방입니다. 각지고 투박한 통가죽 가방을 늘 들고 다니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경숙 그 가방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통가죽 가방은 독일에서 공부하면서부터 계속 들고 다녔어요. 독일 교수들은 평생 같은 가방을 그렇게 들고 다닙니다. 나도 은퇴할 때까지 계속 들고 다녀야지 했는데, 너무 무거워서 어느 날 아주 섭섭한 마음으로 버렸어요.
박지은 통가죽 가방 외에도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생님께서는 영문과 출신에다 본래 기독교인도 아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구약을 전공하시기까지 인생의 어떤 전환점이 있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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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 이화여대에 입학한 것이 결정적이었어요. 이대 학생은 모두 채플을 들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매일 30분씩 채플이 있었어요. 또 매 학기 들어야 하는 기독교문학이라는 필수교양 과목도 있었습니다. 채플에 참석하고 기독교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성서에 대한 관심이 생겼지요. 또 영문학을 제대로 하려면 성서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학년이 되었을 때 친구 소개로 허혁 교수님을 알게 되었어요. 허혁 교수님이 지도하시는 성서공부 소그룹에 갔다가 성서에 관한 흥미와 관심이 생겼습니다.
박지은 허혁 교수님은 신약을 전공하셨는데, 구약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이유가 있었을까요?
이경숙 한번은 허혁 교수님이 창세기 1장과 2장을 비교해 주셨습니다. 그때 성서를 학문적으로 읽는 기쁨, 눈이 확 뜨이는 희열을 느꼈어요. 성서는 그냥 열심히 읽기만 하면 되는 신앙의 책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공부해보니 메시지가 다양하게 전달된 책이구나, 그렇게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성서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생겨났어요. 그때가 2학년 말이었는데 3, 4학년 때는 내가 영문과 학생인지 기독교학과 학생인지 모를 정도로 성서공부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래도 기독교 집안이 아니었기에 구약을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그런데 허혁 교수님, 함께했던 선배와 동료들이 구약을 전공하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내 생각에도 신약보다는 구약 이야기들이 영미 소설이나 신화와 많이 연결되어 있는 게 재미있어서 구약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구약의 의미, 구약과 신약의 관계

박지은 첫 여성 구약 신학자신데, 저도 구약을 공부하면서 유대인의 책인 구약을 왜 공부하냐는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에게 구약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경숙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WCC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 몇몇 외국 여성들, 특히 아랍 여성들이 나에게 불만스럽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여자인 당신이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도 우리가 보기에는 이상하다. 그나마 신약을 전공한다면 이해하겠지만, 한국에는 너희 문화가 있고 종교도 있을 텐데, 왜 유대인의 경전인 구약성서를 공부하느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은 저에게 굉장한 도전이었고, ‘나는 왜 구약을 하고 있지? 흥미로워서? 대학에서 직장 얻으려고?’ 이런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답을 하려면 결국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관계를 논해야 하는데, 매우 어렵고 복잡한 문제예요. 그래도 구약성서의 중요성을 짧게 말해본다면, 우선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유대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유대인이었죠.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가 새로 생겨났지만, 예수도 바울도 유대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바울,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서를 공부해야만 합니다. 이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것인지 보여주는 재미있는 경험이 있어요. 내가 대학 다닐 때 기독교문학 수업에서 중간시험을 보는데 ‘예수는 유대인인가?’라는 문제가 나왔어요. ○, ×로 답하는 질문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가 정답이었어요.
박지은 지금은 이해가 안 가는 답입니다.
이경숙 그러니까요. 공부하면 할수록 예수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박지은 선생님께서는 한 학술제에서 “기독교와 유대교의 연속과 단절, 문화적 소통을 위하여”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강연하셨고, 나중에 논문도 발표하셨습니다. 그 강연에서 기독교 우월주의가 반유대주의 그리고 유대인 혐오와 학살로 이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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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이는 참으로 오래된 어려운 문제입니다. 나는 독일에서 공부했는데, 이 나라에서 엄청난 유대인 억압과 학살이 있었잖아요. 이것이 나에게는 커다란 수수께끼였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종교개혁도 일으킨 사람들인데, 어떻게 유대인을 그토록 무지막지하게 학살할 수 있었을까? 이 문제가 독일에서 공부하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박사과정이 끝나갈 즈음에 ‘유대주의’라는 과목을 들었어요. 기독교인이 구약을 보는 관점과 유대인이 신약을 보는 관점을 다루었는데 참 흥미로웠습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였지요. 사두개파, 바리새파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한 아류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성장하더니 유대인을 내쫓고 학살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사실 구약과 신약의 관계는 기독교가 잉태되자마자 제기된 문제였습니다. 예를 들어 마르시온은 구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내세웠지요. 하지만 결국 교부들은 구약을 폐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정경으로 선언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도 로마서 11장 17-21절에서 기독교는 유대교라는 뿌리에 접붙여진 가지이기에, ‘가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있어야 가지를 지탱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유대교와 구약성서 없이 기독교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기독교가 교만하거나 우쭐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우월주의가 결국 유대인 학살이라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박지은 기독교의 흑역사인 듯합니다.
이경숙 그렇지요. 내가 아주 민망하게 여기는 것은 유대인 학살의 이론을 정립할 때 앞장서서 작업한 사람들 중에 신학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독일의 그 잘났다는 신학자들이 히틀러 정권에 봉사했던 것이지요. 이는 독일신학의 오점이고 치욕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아무리 우월하다고 하더라도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몇백만 명씩 학살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요. 우리는 유대인이 될 수 없고, 유대인이 우리를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대교를 존중해야 합니다. 기독교만 우월하다는 자세는 잘못된 것입니다. 자신의 종교가 더 낫다는 것을 주장하고 증명하려는 태도는 전쟁만을 야기할 뿐입니다.
신약은 구약 없이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2이사야의 ‘고난의 종’ 이야기를 빼놓고 어떻게 예수의 고난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 부분을 잘 정리하지 못한 채 기독교 우월주의만 강조하는 듯합니다. 이 점이 너무 안타까워서 정리해보려고 강연을 하고 논문도 발표한 것입니다. 물론 요즘 유대인이 잘못하는 것도 많이 있지요. 이슬람에 대해 특히 그렇고요. 그러나 종교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문제지요. 종교라는 이름으로 일어나는 전쟁을 얼마나 많이 목격했습니까? 우리는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폭력을 성찰하고, 다른 종교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기독교인이니까 신약이 우선적으로 중요하지만 구약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구약 모두를 통해 기독교의 본질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박지은 한국 기독교가 새겨들어야 할 말씀인 듯합니다.

여성신학과의 만남, 그 치열한 현장에서

박지은 선생님께서는 「기독교사상」에 연재하신 글을 모아 『구약의 여성들』이라는 책을 1994년에 출간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성신학회 회장도 역임하셨습니다. 여성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요?
이경숙 유학 갔던 괴팅겐에서는 여성신학이 그렇게 활발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쾰른에서 활동하던 도로테 죌레가 학생들 사이에 유명했어요. 기숙사 남학생들이 내 방에 ‘죌레’라고 문패를 달아주면서, 죌레처럼 유명해지라고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전반적으로 독일 사회는 한국에 비해 남녀가 평등한 사회였기에 남녀차별이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1981년에 귀국해서 보니, 우리 사회의 남녀차별이 너무 심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당시 목원대 신학과의 여학생은 전체의 10퍼센트 정도였습니다. 남성 위주, 목회자 위주로 가르치는 데다 여성들은 안수 받기도, 목회자가 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여학생들 스스로도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여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왜 이 똑똑한 여학생들이 교회에서 사역하기가 힘든가? 이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박순경 교수님이 1980년에 여신학자협의회를 창립하시고 회장도 맡으시면서 여성신학자들을 모아 격려하고 계셨는데, 제자인 나에게도 참여하도록 권유하셨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에 이화여대로 오게 되었는데, 제자들이 전부 여자다 보니 여성 의식이 저절로 고취되었습니다. 한국 교계에서 여성신학이 대두되는 시기와 제가 한국에서 여성신학자로서 활동하던 시기가 자연스럽게 맞아서 여성신학적 성서해석에 뛰어들게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여성 구약학자는 내가 유일했기 때문에 강연 요청이 많았고 글을 써달라는 부탁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적극적으로 여성안수 문제, 희년 문제 등 외부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박지은 여성신학을 위해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또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힘드셨던 건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경숙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여성 시각의 성서해석이 활발해서, 좋은 논문들이 한국에 많이 소개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1993년에 이화여대에 이화여성신학연구소가 설립되었어요. 이 연구소를 통해 해리슨, 트리블, 피오렌자, 곽푸이란, 죌레, 엑숨, 바커 등 해외 유명 여성신학자들을 초청해 강연을 들을 수 있었고, 정기적으로 소식지도 출간해 국내 여성신학자들의 구심점 역할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특히 한국교회 여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야심차게 기획했어요. 당시 교회 여성 대부분이 주로 심방이나 교회 주방봉사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봉사의 내용이 달라져야 한다, 여성도 가르칠 수 있고 설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큰 기대를 가지고 준비했습니다.
1996년부터 내가 연구소 소장을 맡으면서 ‘여성이 읽는 성서’라는 성서 공부 프로그램을 만들어 열정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첫해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참가한 여성들은 ‘성서를 이렇게 읽을 수 있다니! 이 이야기가 여성 억압의 현실을 고발하는 본문이었다니! 이런 해석이 교회에 필요하다!’ 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프로그램이 지속되지 못했다는 거예요. 교육받은 여성들이 교회로 돌아가면 쓰임을 받지 못하고 배척당해 심리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어요. 우리 여성신학연구소의 성서 공부가 한국교회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못하면서 교회와 연구소의 괴리가 점점 커졌어요.
박지은 너무도 안타까운 현실이었네요.
이경숙 우리로서는 힘이 빠지는 상황이었어요. 참가자가 계속 늘어나 그 씨앗이 널리 퍼지기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참가자 숫자가 계속 줄어들었습니다. 여성들이 자기 교회 가서 목사님한테 지적당하고, ‘미리암처럼 문둥병에 걸린다’, ‘성서에서 여성은 잠잠하라고 했다’ 같은 말을 들으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그래도 한 3년 계속하다가 결국 그 이상은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인원수 채우기도 너무 힘들었고, 또 교회 여성들도 견디기 힘들다고 해서 그렇게 되었어요. 그때가 1990년대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박지은 또 다른 어려운 점은 없으셨는지요?
이경숙 많이 있었지요. 기독교학과와 관련된 어려움도 있었어요. 많은 목사님들이 이화여대는 ‘이단’을 가르치는 학교다, 여성신학은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하면서 기독교학과까지 거부하시더라고요. 그 장벽을 뚫는 것이 너무 힘들어 가슴 아프고 슬펐습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들이 너무 많고 심각해서, 여성신학연구소를 통해 조금이나마 새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나 봐요. 우리가 너무 미약했는지도 모르고요. 결국 우리 연구소는 학술 연구지를 내는 데 주력하면서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시 여신학자협의회는 계속 활발히 활동했고 한국여성신학회도 창립되었습니다. 김윤옥, 최만자, 최영실 선생님, 젊었던 정현경 선생님 등 모두 열심이었지요. 우리 연구소는 연구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속도를 조금 늦추었어요. 교회 여성들과의 직접적 만남은 실패한 셈이지만, 일단 학문적으로 지평을 넓혀놓고 그 학문적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 여성들에게 다가가게 하는, 그러니까 조금 더 장기전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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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이대 대강당 앞에서 기독교학과를 위해 ‘기도’하던 사람들이 기억납니다. (웃음) 아무래도 선생님께서 몸담고 계셨기에 이화여대 이야기를 계속하게 됩니다. 제게 고무적인 것은 신학대학원에 들어오는 분들입니다. 대학원 과정을 통해 변하고 활동하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습니까? 또한 그 학생들을 가르치시면서 어떤 보람이 있었는지요?
이경숙 신학대학원은 나름 꾸준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와서 좋은 영향도 받고, 여성신학을 위해 활약하는 졸업생들을 보면 참 대견합니다. 하지만 대학원 상황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신학교에 비해 등록금도 비싸고, 졸업 후 목회할 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또 교회에서 이대 신학대학원은 신학적으로 너무 진보적이라며 반대하는 경우도 아직 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 변화되고 성숙해서 여성신학을 위해 애쓰는 것을 보면 신통합니다. 제자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니 미래는 희망적입니다. ‘이들이 뿌린 씨앗이 어디선가 묵묵히 자라고 있을 것이다.’ 하고 생각하며 보람을 느낍니다.
박지은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저희가 활발히 활동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는 것이 선생님의 제자들인 저희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나도 가끔 그동안 한국교회를 변화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 듯해서 내 교직 생활 33년이 허망하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성숙하지 못하고, 또 우리 사회 도처에 여성에 대한 장벽이 여전히 높은 것을 보면 우울하고 죄책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바뀔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성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이 마음을 열고 여성신학의 시각을 받아들인다면 교회 안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새 시대가 열릴 테니까요.
박지은 1세대 여성 신학자들의 투쟁과 헌신으로 저희 세대는 선생님 세대보다 좀 더 수월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아직도 도처에 한계가 있다는 선생님 말씀에도 공감합니다. 제 경험은 아닌데, 여성의 시각으로 논문을 써서 제출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혹은 ‘비학문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때도 있다고 합니다.
이경숙 여성신학에 대한 거부는 지속되고 있지요.
박지은 저를 포함해서 여성신학자들, 지금도 여성신학을 고민하며 공부하고 있는 신학도들에게 힘이 되는 말씀, 혹은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이경숙 포기하면 안 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지요. 나는 여성신학 1세대는 아니고 2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세대는 박순경, 손승희, 장상 선생님 같은 분들이고, 나는 그분들 제자니까요. 선배 교수님들 덕분에 저희는 여성신학을 배우고, 여러 서구 학자들을 초대해 좋은 강연도 듣고, 중요한 책들도 많이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박지은 박사 세대는 3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구약 여성신학자로는 혼자였어요. 혼자라 대접받은 것도 있었지만 참 힘들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몇 분이 더 오시기는 했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이제 숫자가 늘어났으니 같이 힘을 합치면 좋을 듯합니다. 그래서 내가 ‘구약, 구여신 좀 모이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박지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구여신’ 소개를 잠깐 부탁드립니다.
이경숙 구약 여성 신학자.
박지은 줄여서 구여신! 이름만 들으면 여신으로 들립니다. (웃음)
이경숙 맞아요, 여신. 우리가 신이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끼리 좋아하는 이름인데, 어쨌든 한 10명 정도 됩니다. 구약으로 박사학위 한 여성들 모임입니다. 그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으고 있는데, 그중에 신학교에서 정식 교원이 된 사람은 아직도 너무 적습니다. 여성이라서, 너무 진보적이라서, 교단 배경이 없어서, 또 심지어는 여성신학을 해서 등등 신학교에서 이들을 채용하지 않는 이유가 너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나도 구여신을 챙기며 가끔 밥도 사주려는 것입니다. 이번에 좋은 책이 한 권 나왔죠?
박지은 네, 저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구여신 학자들 중심으로 『이런 악한 일을 내게 하지 말라』는 책을 냈고, 어떻게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경숙 구여신의 이영미 교수가 주동이 되어 책을 엮었고 구약학회가 지원해 출판했으니 참으로 모범적인 사례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신학계에서 남녀가 서로 협력해 책을 내고 신학교에서 교재로 쓰고 하면 미래는 현재보다 분명히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2021년 한국에서 구약신학을 한다는 것은…

박지은 선생님이 쓰신 『구약성서의 하나님·역사·여성』을 읽어보면, 학문적 연구를 넘어 정의, 평화, 해방, 생태와 같은 실천적 문제들도 고민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구약의 민간종교 차원에 대한 언급은 이웃종교와 갈등을 넘어 공생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줍니다. 그래서 2021년 한국 사회에서 구약성서를 공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오늘의 우리 사회에는 혐오 문제도 심각하고, 정의, 평화, 통일, 환경 문제 등 고민할 것이 많은데, 구약성서가 이 문제들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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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 중요하고 또 광범위한 질문입니다. 우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서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신비한 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성서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역사를, 즉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그 메시지가 선포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유목민 시절, 가나안 정착과 왕조시대, 분열 및 포로기 시대 등 역사적 상황에 따라 선포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야훼 하느님을 유일신 하느님으로 선포한 것도 바벨론 포로기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목민 시절과 왕국 시대의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단일신이었는데, 국가가 사라지면서 이스라엘을 패망시킨 바벨론도 야훼 하느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 점은 십계명 중 첫 계명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제1계명인 ‘너에게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말씀에서 ‘너에게’(출 20:3, 신 5:7)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너’는 이스라엘입니다. ‘너에게’,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에게는 ‘나’, 즉 야훼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다른 나라에서 다른 신을 숭배하는 것을 금하고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제1계명에서 ‘너에게’라는 언급을 생략한 채, 마치 그 계명을 절대 진리인 것처럼 말하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기독교를 믿어야 한다고 강요하고 억압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구약성서의 메시지를 해석할 때 그것이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어떤 신학적 의도로 선포되었는지, 그리고 그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 세 가지 모두를 입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평면적으로 성서 한 구절만 가지고 그것을 절대 진리인 것처럼 왜곡하면 성서 메시지도 왜곡되고 하느님도 왜곡되어 버립니다. 또 성서를 읽고 해석하면서 우리의 상황도 봐야만 합니다. 왜냐면 성서의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 기독교인을 위한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오래전에 쓰인 책이지만 우리는 이를 입체적으로 읽고 우리 상황에 적용해야 합니다.
박지은 종교다원주의 문제와도 연관될 것 같은데요, 『구약성서의 여성들』에서 다루셨던 주제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경숙 『구약성서의 여성들』은 ‘구약성서 속에 숨겨져 있는 여성들의 한을 계속 풀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독교사상」에 연재한 글을 모아 낸 책입니다. 나는 그 책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성서 속 여성들을 발굴해 우리 이야기로 풀어 들려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사울 시대의 엔돌이라는 무당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제대로 해석하고 우리나라 무당 이야기를 새롭게 조명하면 한국의 기독교와 무속의 관계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성서에 있는 이야기를 우리 구미에 맞지 않으면 그냥 덮어두고, 이용 가치가 있으면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지요. 가령 모세를 비방하다가 문둥병을 얻은 미리암 이야기를 이용해, 목사님을 비방하면 문둥병을 얻는다고 협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박지은 저도 그 책에서 엔돌의 무당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하며 흥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경숙 엔돌의 무당도, 우리나라 무당도 기본적으로는 ‘위로’와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평신도의 위로를 담당해야 할 교회가 무속과 무당을 무조건 배척합니다. 무속과 무당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하고 비판해야 할 것은 비판해야 합니다. 외국 학자들이 오히려 무속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무속을 우리 민족의 종교적 심성의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올바로 응답하기 위해서라도 무속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은 가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엔돌의 무당 이야기를 다루었어요.

여성교육과 여성운동

박지은 선생님은 이화여대 대학원장과 부총장을 하시면서 여성교육에 헌신하셨기에 우리 사회의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시대가 변했는데 ‘여대’가 굳이 필요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경숙 그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었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이대를 남녀공학으로 바꾸는 것이 어떠냐는 말을 들으셨을 때 김활란 박사님이 “우리나라 국회에 여성 국회의원이 반이 될 때, 그때 이화대학은 남녀공학으로 바뀝니다.”라고 답하셨다고 해요. 진짜 멋있는 답변이에요. 이화여대는 나름의 역할이 있어서 아직은 여자대학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상 이화여대가 남녀공학이 되는 순간 이화여대는 남자 학교가 되어버리고 여자는 뒷전으로 밀려날 것입니다.
물론 여자대학의 어려움도 많습니다. 여학생들이 기피하기도 하고, 또 여성문제를 제기하는 이화여대에 대한 남성들의 거부감도 무척 강합니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여자대학으로 살아남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 폄하 사건들을 보면서 아직은 여자대학이 사회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여성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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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 저도 선생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또 하나 관련될 수도 있는 질문인데, 요즘 젊은 세대의 여성운동이 너무 과격하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고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경숙 나는 과도기라고 봅니다. 다양한 움직임이 있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떤 전략이 더 좋을지 꾸준히 고려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양극단만 있지 중도가 없는 듯해 걱정입니다. 스스로 자정하는 때가 오겠지요. 지금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과도기라고 생각합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한국교회

박지은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서 활동하셨는데, 이에 대해서도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이경숙 신앙과 직제 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개인으로서 굉장히 명예로운 일이고 행운이었는데,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WCC에서 온 위원이 나를 만난 후 추천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동의했습니다. 아마 내가 독일어를 하고 영어도 약간 하는 여자 신학자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때 나는 신앙과 직제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교회사나 선교학을 전공한 사람이 위원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신앙과 직제에서 8년 정도 활동했는데, 교회사 지식도 별로 없고, 또 세계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몰라서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터키나 시리아 등 근동 지역 정교회의 상황을 직접 보고 알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고 있었는데 한국교회는 오히려 부흥하고 있어서 세계교회가 한국교회를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그즈음 한국교회 열성파들이 저지른 과오와 실책도 많이 알려져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또 세계교회를 위해서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지 고심하느라 머리가 복잡했던 시기였습니다. 한국교회가 같은 뿌리의 정교회나 가톨릭을 다른 종교처럼 취급하는 것, 다른 종교와의 대화, 여성 안수 등등 한국교회가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세계교회의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토론하고 논의했습니다. 많이 배우고 안목이 넓어진 시기였지만, 동시에 나 자신과 한국교회에 대한 자괴감이 컸던 시절이었습니다.
박지은 한국교회의 민낯을 보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삶과 한국교회

박지은 코로나19가 선생님의 삶과 신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요? 코로나 상황에 신학적으로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한국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경숙 어려운 질문입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내 개인적인 삶은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주로 집에 있으면서 혼자 산책하거나 독서하며 지냅니다. 그러다 보니 고립되고 노화가 빨리 오는 듯해서 너무 소극적으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오늘 대담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한국교회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첫째, 신앙적 열정을 조금 줄여야 한다고 봅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신천지 사태라든지 일부 교회가 방역에 협조하지 않은 것이라든지 모두 너무 비정상적이에요. 우리 삶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고 열정이 지나쳐요. 이를 조정하고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에 대한 열정이 지나치면 종교에 악용당하거나 광신도가 될 위험이 있으니까요. 코로나 사태가 열광적인 신앙 태도를 자정하고 상식을 되찾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둘째, 생태계 보전에 대해 신학적으로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환경을 파괴한 인간을 향한 자연의 반발입니다.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 우리의 생활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자연을 파괴하고 자원을 과용하면서 풍요로운 사회만을 지향하면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가 계속 생겨날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양극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농경시대, 산업화시대를 살았습니다. 이제는 정보화시대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고요. 그런데 벌써 코로나 이후를 에이아이(AI)시대라고 해요. ‘후기정보화사회’라고 하나요?
박지은 4차 산업혁명이라고도 얘기합니다.
이경숙 맞아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게 되었어요. 그러니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빠른 변화로 인해 빈부 격차, 사회 양극화가 심화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예를 들면, 무인 자동차 같은 부분이죠. 돈 있는 사람만 편리해진다면 가난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교회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생태계 회복을 위한 자연친화적 신학을 구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AI시대가 가져올 불평등을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인간 사이의 소통과 연대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해졌지요. 인간과 인간은 서로 만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모두 당황하면서 우울감에 시달리게 된 것 같아요. 인간과의 관계 없이는 하느님과의 관계도 없습니다. 하느님이 우리 사이에 오셔야 하고, 인간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인간과 우주 만물이 모두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나, 잘 살았지요?”

박지은 선생님께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이경숙 내가 신학을 하면서 제일 괴로웠던 때는 ‘어떻게 하면 죽어서 천당 갈 수 있어요?’라는 교인들의 질문에 답해야 할 때였습니다. 몇 퍼센트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교인들은 천당 가기 위해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합니다. (웃음) 마르크스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현세의 어려움을 잊고 교회에 무조건 복종하고 충성하면서 죽음 이후를 기대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내세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구약성서에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습니다. 몇 군데 언급이 있지만, 야훼 하느님은 살아 있는 자를 위한 하느님이지 죽음 이후를 다스리는 하느님은 아니라는 것 정도입니다. 구약은 죽으면 ‘음부’에 간다고 할 뿐, 음부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합니다. 유대교 내부에도 천국이나 음부에 관한 내용이 제각각 다르고, 또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다정하게 함께 살았던 사람들, 부모님, 남편, 시어머니, 친구들과의 관계가 죽음으로 인해 완전히 끊어진다고 믿지 않습니다. 내가 죽은 후 그들을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삽니다. 그것이 나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만날 때 ‘나, 잘 살았지요?’라고 묻고 싶습니다. 하느님을 만나서도 ‘저,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하느님’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해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다시 만날 거라는 기대가 바로 이 지상에서의 내 삶을 중요하게 여기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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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 선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도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는 경험을 하고 난 후, 전에는 교리적으로만 다가왔던 부활이 다시 만나겠다는 삶의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경숙 천국, 지옥의 문제를 떠나서, 인간은 자기가 좋아했던 사람들을 다시 보고 싶어 하고, 그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 하기에 죽음으로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후세계에 대한 종교들의 이론도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성서에는 사후세계에 대한 언급이 생각보다 없습니다. 정말 놀라운 측면입니다. 구약에는 거의 없고, 신약에는 천국과 부활 사상이 등장하지만 주로 현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묘지를 굉장히 아름답게 만들어놓는데, 마지막 날에 부활해 다 같이 만나고픈 기대를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나도 늘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 때, 그들 앞에서 떳떳하고 자신 있게 칭찬 듣고 싶은 심정, 이런 것이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어떤 요소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박지은 오늘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힘든 시기에 선생님과 같은 선배님들이 여성신학의 씨앗을 뿌리신 덕분에 오늘 저희가 조금은 덜 힘들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교회와 사회에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더 고민하며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코로나로 힘든 상황인데 이렇게 장시간 대화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경숙 수고 많았어요. 대화를 나누면서 나도 여러 문제들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어 좋았어요.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정경일 원장과 크리스챤아카데미 이상철 원장, 그리고 「기독교사상」에도 감사드립니다.

 
 
 

2021년 8월호(통권 7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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