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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21년 4월호)

 

  교회가 자초한 낙태죄 '무법' 상태
  

본문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가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판결하며 개정 시한을 2020년 12월 31일로 정했다. 2021년 현재 개정 시한이 지났는데도 아직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 낙태죄가 효력을 상실함에 따라 사회 혼란이 심각하다. 기독교계와 낙태 반대 단체들의 계속되는 낙태죄 폐지 반대 운동이 형법 개정 논의까지 막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생명윤리를 강조하면서 ‘교회와 세속의 싸움’이라고 선언한 보수 교계 일부와 관련 단체들이 자초한 상황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평등법)1 발의(發議)가 중단된 과정도 상황이 비슷하다. 종교적 신념만을 강조하는 보수 교계 일부와 반동성애 단체의 조직적 반대가 종단 간의 불화로 이어지면서 재발의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국회에 발의된 건강가정기본법 논의 역시 이 법이 평등법 제정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교계와 단체들의 반발에 막혀 있다. 모든 종교의 가치인 평등한 인권과 복지를 위한 법을 한국교회가 가로막고 있는 모양새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교계의 낙태죄 폐지 반대가 만들어낸 비극

낙태죄 처벌 조항 폐지를 극렬히 반대하던 보수 교계의 노력은 이전만도 못한 최악의 결과를 자초했다. 처벌 규정이 효력을 상실한 지 한참이 지나도록 후속 입법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낙태 처벌 자체가 어렵고 불법 낙태약 거래가 급증하는 부작용만 커지고 있다.2
그럼에도 낙태죄 처벌조항의 삭제를 반대하던 일부 보수 교계와 언론의 ‘생명 보호’라는 신념과 관련법 개정 반대 입장은 여전히 단호하다. 헌법재판소(헌재)가 지난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조항은 형법 제269조 제1항의 임신한 여성의 자기낙태죄와 제270조 제1항의 업무상 동의낙태죄 중 ‘의사’ 부분에만 해당될 뿐 제269조의 제2항, 제3항에 대해서는 효력을 부인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기낙태죄 처벌 중지가 낙태를 시행한 행위자 모두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3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임신 5주차 태아의 낙태시술로 기소돼 하급심, 2심에서 유죄가 인정됐던 산부인과 의사에게 전격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인용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형벌에 관한 법률조항의 위헌 결정을 한 것”이므로 “위헌 결정이 선고된 조항은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특히 “이 사건은 대법원이 직접 재판하기에 충분하다고 인정된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할 경우 일반적으로는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내 다시 심리하도록 하지만, 형사소송법상 판결이 충분하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직접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4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재판장 최한돈, 백주연, 박세영)에서도 같은 판례가 나왔다. 재판부는 지난 2018년에 22-23주 된 태아를 유도분만으로 낙태한 혐의(업무상 촉탁 낙태죄)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헌재가 낙태죄 개정시한을 결정한 직후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피고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이 항고했던 사건이었는데 다시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검찰은 1심의 무죄 결정을 두고 “(헌재의 결정에 따른)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에 이뤄졌으므로 낙태죄를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1심의 (법률 공백에 따른 무죄) 결정에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라고 밝혔다.5 지금은 ‘낙태죄 무법 상태’라고 선언하는 법원의 판단으로 읽히는 대목들이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교계의 낙태죄 폐지 반대 운동은 후속 입법에도 차질을 주고 있다. 국회는 지난 2월에 열린 임시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공임신중절을 의료행위로 보고 시술 비용을 국민건강 보험에서 급여화하는 의안(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을 다룰 예정이었지만 교계의 반대로 논의를 미뤘다. 임부의 건강을 위해 공적체계 내에서 임신중절 약(미프진)의 사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약계의 건의6에 대해서는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다. 생명 존중이라는 기독교계의 신념에 기초한 낙태죄 폐지 반대 운동이 결과적으로는 임부의 건강을 위협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기독교계가 막은 복지법안

보수 기독교계의 평등법 제정 반대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반대도 낙태죄 폐지 반대와 맥락이 비슷하다.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은 여성가족부가 2018년부터 추진해온 내용인데, 법안 명칭에 명시된 ‘건강가정’이 한부모·미혼모 가정 등을 온전하지 못한 가정으로 비치게 하는 차별적 용어라는 의미에서 명칭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하는 변경안이 제시되었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사항이기도 했다. 여성가족부는 각종 사유로 결혼하지 못한 동거 커플 등 가족처럼 친밀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납세의무를 다하고 있지만 양육·돌봄을 비롯한 사회복지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정을 구제하는 것이 이 법안의 개정 요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수 교계에서는 이 가족정책기본법이 가족의 개념에 비혼이나 동거 형태를 포함시켜 동성커플, 동성혼인을 법적으로 인정하려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개정안에 명시된 ‘다양한 가족’이라는 용어가 가족의 범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새 법안이 ‘가족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금지’와 ‘평등한 가족관계’ 등을 강조함으로써 동성혼 가족 형태를 합법화하고, 동성결혼 반대 표현 등을 금지하는 평등법을 가족정책기본법에서 먼저 도입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7
보수 교계의 ‘가족정책기본법’ 반대 운동은 낙태죄 처벌 조항 폐지 반대 운동 때와 비슷하다.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은 일간신문에 게재한 법안 개정 반대 광고(2021. 2. 9, 「조선일보」)와 기자회견(2021. 2. 10.)을 통해 “이 법안의 몇몇 조항 및 개정 방향으로 볼 때 향후 동성결혼 합법화로 가는 근거가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법안에 명시된 ‘다양한 가족’이란 용어는 LGBT(성적 소수자) 가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8
한국교회총연합도 뒤이어 성명(2021. 2. 15.)을 내고 “전통적 가족과 가정 밖에 방치된 이들에 대한 복지적 혜택은 현행법으로도 충분하다.”라고 주장했다. 또 정부의 대체입법은 “양성평등을 기초로 해 혼인과 가족제도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헌법 제36조에 정면 도전하는 위헌적 입법 시도”라며 반대 운동에 힘을 실었다.9 그동안 정책집에서 ‘다양한 가족’은 미혼·한부모·조손·다문화 가정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해왔다는 정부의 해명도 소용이 없었다. 이러한 보수 진영의 입법 반대 운동은 SNS를 통해 확산되었고,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결국 지난 2월 전체회의에서 다룰 예정이었던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논의를 미뤄야만 했다.

교계 내부에서 종단 간의 불화로 번진 ‘평등법’ 제정

교계 내부에서도 ‘약자보호’와 ‘역차별’로 갈린 평등법 입법은 종단간의 불화를 일으키며 발의(發議)조차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종단 간 불화는 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의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보수 기독교계의 반대 입장을 반영하는 ‘종교기관 예외조항’을 삽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되었다. 이상민 의원은 차별의 개념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사회적신분 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보수 교계가 문제삼았던 ‘성적지향’이라는 규정은 그대로 둔 대신에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특정한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집회, 단체 또는 그 단체에 소속된 기관에서 해당 종교의 교리, 신조, 신앙에 따른 그 종교의 본질적인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행위는 차별로 보지 않는다.”라는 예외 규정(법4조4항)을 삽입했다. 이는 보수 교계 인사의 의견 수렴을 거쳐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10
종교 예외규정 삽입 과정에 교계 일부와 협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그동안 평등법 제정에 찬성의 뜻을 밝혀온 불교를 비롯한 타 종단은 즉각 불쾌감을 표시했다. 작년 12월 16일, 대한불교조계종(조계종)은 대변인(삼혜, 총무원 기획실장)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평등법’은 인권위원회의 최초 법률안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며, 종교 간 갈등과 증오 범죄를 부추기는 매우 위험한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조계종은 특히 이 법안은 “특정 종교계와의 타협에 의한 결과물이며, 보편성과 타당성을 상실했다.”라면서 기독교계의 의견 반영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11 민주당은 해명을 위한 조계종과의 간담회를 가졌으나, 불교계는 “더 이상 불교계를 향한 (기독교계의) 폭력적인 차별을 감내하기 어려운 사항”이라는 불만을 표시하며 “독소 조항을 뺀 국가인권위원회의 평등법 초안 원안으로 발의할 수 있도록 해달라.”라고 요구했다.12
원불교의 반대는 더 강경하다. 원불교인권위는 입장문을 내고 “종교 단체의 혐오 표현은 신앙의 자유가 아닌 존재에 대한 부정”이라며 “종교 단체의 혐오 표현에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고, 이어 평등법 발의를 아예 중단하고 해당 독소 조항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평등법 발의는 민주당 내에서조차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보수 교계가 반대 입장을 완화한 것도 아니다. 지난 2월 18일에도 ‘한국교회반동성애교단연합’은 이상민 의원의 사무실 앞에서 “국민의 입을 막는 독재 평등법을 당장 철회하라.”라며 규탄 집회를 가졌다. 더구나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보궐선거를 앞두고 제기된 ‘퀴어 이슈’는 평등법 발의 자체를 정치권의 금기어로 만들어놓고 있다.

교회는 세상 안에서 자기를 희생하며 살아야 한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국가를 지탱하는 힘은 개인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에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는 자신의 이익만 따지는 이기심과는 다른, 차원 높은 시민의식이다. 자신의 권익침해를 용납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권리도 결코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충돌 없이 살아가는 평등과 상호 존중에 기초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예수의 계명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이처럼 차별 없는 인간관으로 다양한 세상 속에 들어가서 자기를 희생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니었나! 모든 종교의 가치이기도 한 인권, 평등, 복지 관련 입법을 반대하며 ‘교회와 세속의 싸움’이라고 선언하는 일은 결코 하나님의 정의일 수 없다.

주(註)

1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6월 30일에 국회에 입법 권고한 법률안이다. ‘차별금 지법’,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으로도 사용되고 있으나, 이 글에서는 ‘평등법’으 로 칭한다. “인권위 ‘평등법 제정하라’… 차별금지법 입법 권고”, 「한겨레」, 2020년 7월 1일.
2 “낙태 입법 공백에… 활개 치는 불법 낙태약”, 「부산일보」, 2021년 2월 23일.
3 “낙태죄 폐지됐다고?… 중한 벌에 처해질 수 있어”, 「국민일보」, 2021년 1월 19일.
4 “낙태죄 헌법불합치 전 수술한 의사…‘대법 무죄’”, 「한겨레」, 2021년 2월 12일.
5 “헌재 위헌 결정 전 ‘유도분만 낙태’ 의사, 2심도 무죄”, 「뉴스1」, 2021년 2월 24일.
6 “정부는 공적체계 내에서 ‘미프진 사용’ 보장해야”, 「의학신문」, 2021년 2월 22일.
7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은 반헌법적 행위다”, 「기독신문」, 2021년 2월 22일.
8 “복지 구멍 메우기 위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두고, ‘동성혼 합법화’ 억지 주 장 펴는 반동성애 진영”, 「뉴스앤조이」, 2021년 2월 19일.
9 “한교총, 위헌적 입법 시도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반대”, 「연합뉴스」, 2021년 2월 15일.
10 “7년만에 민주당에서도 차별금지법 발의…성적지향 포함·종교는 제외”, 「뉴스1」, 2020년 12월 10일.
11 “민주당 ‘차별금지법안’, 종교기관은 예외?”, 「프레시안」, 2020년 12월 23일.
12 “이상민 의원, 불교계 차별금지법 우려 귀 기울이겠다”, 「법보신문」, 2020년 12월 22일.



김광수 |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하였다. CBS에서 기자, 사회부장, 정치부장, 보도 국장을 역임하였으며, 부산CBS 본부장, 강원CBS 본부장을 지냈다.

 
 
 

2021년 4월호(통권 7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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