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한국 사회와 교회의 길을 찾는 신학대화 02]
교회와현장 (2021년 4월호)

 

  1세대와 3세대 여성신학자, '차이'와 '연대'를 말하다
  

본문

 

대담자 소개 / 최만자 선생은 1943년 만주에서 출생했고, 해방 후 한반도로 돌아와 부산에서 성장했다.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구약성서신학을 전공했으며, 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생 시절부터 YWCA에 참여하면서 수십 년 동안 간사, 실행위원, 부서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89년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 표, 1992년 한국여성신학회 회장, 1999년 아시아기독교여성문화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하는 한편 다양한 교회 여성 활동을 통해 한국 여성신학의 확장에 공헌했다. 평신도 교회인 새길교회에서 말씀증거자, 신학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여성주의적 설교를 시도했으며,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는 『새하늘 새땅 새여성』, 『이 여인을 기억하라』, 『여성의 삶, 그리고 신학』, 『출애굽을 여는 여인들』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의 『성서에 나타난 여성의 희생』이 있다.
최순양 박사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감신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드류대학교에서 “알 수 없는 하나님을 닮은 알 수 없는 인간”(The Non-Knowing Self and ‘The Impossible’ Other)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2009년에 조직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 연구 관심사는 부정신학적 신론과 인간론이고, 여성신학에서는 주디스 버틀러와 가야트리 스피박의 이론을 접목시켜 여성주체론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협성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화여대 대학교회에서 청년부 담당 목사로 일하고 있다. 또한 평화교회연구소에서 여성신학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스피박의 서발턴(하위주체)의 관점에서 바라본 아시아 여성신학과 민중신학적 담론에 대한 문제제기”와 “쥬디스 버틀러의 젠더 수행성과 취약성, 이에 대한 신학적 적용” 등이 있고, 공저로는 『한국신학의 선구자들』, 『21세기 세계 여성신학의 동향』, 『아픔 넘어: 고통의 인문학』 등이 있다. 두 여성 신학자의 대화는 2020년 12월 15일 경동교회에서 진행되었다.




최순양 최만자 선생님은 제가 학생 시절 많이 듣고 뵙던 여성신학 교수님이셨습니다. 지적이면서 차분하시고 예리하면서 인자하신 인상을 주셨던 분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여성신학자 중 한 분이신 선생님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 선생님은 여성신학 1세대 원로 신학자이시고, 저는 3세대 여성신학자입니다. 저는 여성들이 서로의 차이점과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흩어지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데, 여성으로서의 공통점에 기초해 자매애를 형성한 1세대 여성신학자이신 선생님과 여성신학에 대해 나눌 대화가 기대됩니다.

gisang2104_11.jpg

최만자 처음 이 대화를 제안받았을 때 ‘원로와의 대화’라고 해서 ‘원로가 누구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원로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원로로 지칭되니까, ‘아, 이제 내가 정말 원로가 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아무튼 이렇게 최순양 박사님과 대화하게 되어 반갑고 기쁩니다.

코로나19 시대의 신앙과 신학

최순양 요즘 상황에서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인데, 우선 코로나19로 인해 선생님의 신앙과 신학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최만자 코로나19 팬데믹은 예기치 않았고 상상도 못했던 일이기에 굉장히 당황스럽고 혼란스럽습니다. 처음에는 몇 달 지나면 끝나겠지 했는데, 이렇게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어 불안감이 커집니다. 코로나19는 인간이 저지른 자연 착취와 기후변화로 인해 야생과 인간 생활 영역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동물에게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져 발생한 인수공통 감염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19 앞에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생태계 회복을 위한 행동이 절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삶의 방식이 거의 온라인에 의존하게 된 것도 큰 변화입니다. 비대면 방식에 가장 예민한 종교는 기독교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예배해야 할지, 교회 공간의 의미는 무엇인지, 덩치만 큰 대형교회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등등 고민할 게 많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신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모두 뒤집히고 있습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교회란 무엇이고 예배의 의미와 본질은 무엇인지, 공동체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성서와 교회 전통에 비추어 다시 생각하고, 지금까지 절대적 기준이나 가치로 삼아왔던 것들에 대한 해체와 재정립이 절실합니다.
그동안의 한국교회를 돌아보면 정말 예수와 상관없는 종교가 되었다 할 정도로 물질주의, 성장주의, 탐욕으로 가득했던 것을 반성하게 됩니다. 신앙의 본질 회복과 함께 새롭게 직면한 현실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것도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특히 재난으로 인해 가장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우선적 관심을 갖는 것, 그리고 생명, 정의, 평화의 가치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 이 시대에 교회에 주어진 책임과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순양 공감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더 힘들어진 사람들 중에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먹이고 보살피는 일이 배로 늘어났으니까요. 저도 그랬고요. 코로나19는 약자들에게 더 힘겨운 무게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교회도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선교와 목회로 전환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여성신학의 고유성과 ‘보살핌의 윤리’

최순양 평생 여성신학을 연구하며 실천해오셨는데, 어떻게 여성신학을 하게 되셨는지요? 선생님께 여성신학은 무엇인가요?
최만자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교회에도 서구 여성신학이 소개되면서 ‘한국교회여성연합회’나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를 중심으로 여성 신학에 관한 이야기들이 조금씩 나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처음 듣는 소리라 여성들이 많이 모였지요. 내가 여성신학을 처음 접한 것은 1979년 12월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여신학사협의회’라는 모임에서 였습니다. ‘아시아교회여성연합회’와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신학을 공부한 여성들을 격려하고 여성신학적 의식을 갖도록 하려는 의도로 모임 을 추진했습니다. 그 모임에서 장상 선생님이 창세기 2, 3장에 대한 필리스 트리블의 여성신학적 재해석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남성중심적 성서해석이 오늘날까지 여성 억압을 있게 했다는 것을 여성신학적 해석을 들으며 알게 되었죠. 너무 충격적이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당시 장로교 중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외에 아직 여성 성직 안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여성 안수 배제가 얼마나 억압적인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토론이 있었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1980년 4월에 한국여신학자협의회가 창립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여성신학을 ‘두 번째로 새롭게 발견한 복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신앙의 이력을 조금 이야기하면, 나는 15살 때 부산의 한 오순절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내 마음속에 가난으로 인한 분노가 늘 있었어요. 가난하니까 어머니는 주변으로부터 냉대를 당하셨고 나는 학교에서 차별을 당했거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이 성 적표를 조작하신 적이 있습니다. 부잣집 아이들 성적을 올리려고 내 성적을 내린 거죠. 그런 경험을 하면서 불평등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컸습니다. 또한 우리 어머니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도 생각했습니다. 정의로운 세상이라는 이상을 갖게 된 거죠. 그러다 우연히 어느 교회 부흥회를 갔는데, 예수는 가난한 자, 힘없는 자를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라는 메시지를 들은 거예요. ‘아, 예수가 그런 분이구나!’ 믿게 되면서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오순절교회가 뜨거웠던 만큼 내 신앙도 뜨거워서, 꼭 신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것이 내가 ‘첫 번째로 발견한 복음’이었습니다.
신학을 하게 된 후에도 여성차별 사회에서 경험한 여러 모순에 대한 해답을 성서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그때까지 신학교에서 가르쳐준 게 없었어요. YWCA 활동을 하면서 여성문제를 많이 보게 되었지만, 그것을 사회문제로만 보았지 신앙적으로 해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카데미하우스 모임에서 여성차별에 대한 성서 메시지를 들으면서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하게 된 거예요. 여성신학에 들어 있는 평등, 정의, 자유, 평화의 가치를 발견하면서 여성 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신학은 억눌린 여성에게 언어를 주었습니다. 여성 안수 문제만 해도 신앙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는데, 한번은 노정선 목사님이 YWCA에 오셔서, “여성차별은 죄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여성 차별이 신앙의 차원에서 죄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여성신학은 여성문제를 신앙적, 신학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모인 한국여신학자협의회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매주 회원 집에서 돌아가며 모여 로즈마리 류터(Rosemary R. Ruether), 엘리자베스 피오렌자(Elisabeth S. Fiorenza), 레티 러셀(Letty M. Russell) 등 서구 여성신학자들의 책을 함께 읽고 현실 교회의 문제를 토론했어요. 여성신학의 언어를 배우면서, ‘그전에는 내가 말 을 할 줄 모르는 농아였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성신학은 모든 관계의 바른 회복이 창조의 원래 상태를 회복하는 것임을 깨우쳐주었습니다. 그래서 정의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려면 여성신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확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대로 살고 있습니다.

gisang2104_12.jpg

최순양 선생님께서 평생토록 연구해오신 한국 여성신학은 민중신학이나 아시아 여성신학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어떤 독특성 또는 고유성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뭘까요?
최만자 사실 한국 여성신학은 민중 신학이나 아시아 여성신학보다는 서구 여성신학과의 차이가 더 큽니다. 민중신학이나 아시아 여성신학은 서구 강대국에 의한 억압과 착취 경험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서구 신학과 차별성을 갖거든요. 물론 방금 한국여신학자협의회의 경험을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 여성신학이 서구 여성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우리의 경험에서 우리의 여성신학을 주체적으로 정립해야 한다.”라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여성 억압의 기본구조를 무엇으로 보는가에 따라 서구 여성신학과 한국 및 아시아 여성신학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서구 여성신학은 대체로 인류 역사에서 고정화된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와 이데올로기를 여성 억압의 핵심 구조로 파악했습니다. 반면 제3 세계 여성신학은 성차별을 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사회구조와 연결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아시아 여성은 식민주의, 자국의 엘리트 집단, 남성 중심 가족제도, 전통문화와 관습에 의한 복합적 착취와 억압과 차별의 경험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시아 사 람들은 가난과 질병, 사회적 배제의 고통을 당하고 있고요. 그래서 한국 여성신학과 아시아 여성신학은 제3세계 여성의 억압과 차별 경험으로 부터 출발했습니다. 여성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서구 여성신학의 방법론이 아시아와 한국 여성신학에서는 육체적, 생리학적 경험뿐 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억압의 경험을 포괄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각자 처한 계급, 인종, 민족 등의 상황에 따라 경험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게 된 거죠. 특히 한국 여성신학은 분단과 빈곤의 현실을 초래한 원인이 제국주의의 지배, 자본의 착취, 독재 권력의 억압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중심 문제로 삼는 1세계 여성신학과 달리 한국 여성신학은 성차별만이 아니라 계급문제, 분단구조로 인한 여성의 억압도 동시에 다루는 변혁적 신학이 되었습니다.
아시아 여성신학의 또 한 가지 특성은 아시아 여성들의 기독교 경험에 여성해방, 인간해방의 차원과 여성 억압의 차원이 이중적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중성이 자칫 기독교의 가부장적 여성 억압을 은폐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시아 여성에게 기독교의 해방적인 면은 살려내면서도 억압적인 면은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순양 모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3세대 여성신학자인 저는 모성을 여성의 특성으로 강조하는 것이 여성을 고정된 성역할에 가두는 게 아닌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을 ‘어머니’ 상으로만 강조하거나 여성만을 돌봄의 주체로 이해하기보다는 남성과 여성 모두 돌봄자, 양육자라고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최만자 그 물음은 여성 문제의 핵심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여성 문제의 많은 부분이 그 요인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 박사님 말씀처럼 남녀 모두 돌봄자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사실 모성, 돌봄, 양육 같은 가치와 기능은 인류를 유지, 존속시켜온 힘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여성에게만 강요해왔다는 것, 그리고 모성성을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사용해왔다는 거예요.
가부장제 사회의 작동 원리는 이원론적 구조입니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이원화한 것이죠. 우리가 지금 남성성, 여성성이라고 하는 것은 남성중심적, 가부장적 가치체계에 의해서 형성된 것입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여성적인 것을 대체로 수동성, 생산능력, 대지, 감성, 수용성, 부드러움 같은 것들로 봅니다. 반면 남성적인 것은 태양, 추진력, 외향성, 힘, 이성, 공격성, 초월성, 변화의 추진력 같은 걸로 보죠. 그리고 여기에 가치를 부여해 남성적인 것을 우월한 것으로, 여성적인 것을 열등한 것으로 보면서 여성을 열등하고 부차적인 존재로 규정해온 것이 가부장제의 여성관입니다.
제가 쓴 책 『여성의 삶, 그리고 신학』에서 캐롤 길리건(Carol Gilligan) 의 주장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길리건은 남녀 이원론을 극복하는 대안적 개념으로 ‘보살핌의 윤리’를 주장합니다. 그는 서구 전통을 지배해 왔던 도덕철학과 발달이론을 ‘정의의 윤리’로 표현하고, 그것에 대비되는 보살핌의 윤리를 제시합니다. 길리건에 따르면 남성적 윤리인 정의의 윤리는 권리와 규칙을 중심으로 하는,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반면 보살핌의 윤리는 관계성이라는 도덕적 개념을 중심으로 하고, 구체적 상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보살핌의 윤리는 어떤 추상적 원리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보살피는 활동, 누구나 하는 일상의 경험과 도덕에 기반을 둡니다.
길리건은 두 윤리 모두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왔는데, 보살핌의 윤리는 주로 여성의 삶의 영역에서, 정의의 윤리는 남성의 삶의 영역에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남성적 윤리인 정의의 윤리는 우월한 것으로 인정받으며 삶의 지배적 기준이 된 반면, 여성적 윤리인 보살핌의 윤리는 열등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침묵당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길리건은 여성적 윤리인 보살핌의 윤리가 심리학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주장합니다. 여성적 심리 성향인 보살핌의 윤리가 오늘의 파괴된 세상, 가부장적, 남성중심적 모순을 넘어 미래 대안적 가치와 삶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길리건의 주장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보살핌’을 여성‘만’의 특성으로 인정해온 가부장제 사회에서 보살핌의 윤리가 과연 여성 억압을 넘어설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저는 길리건의 글을 읽고 가부장제가 규정한 남성·여성 이분법을 넘어서는 대안적 가치를 신학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길리건의 보살핌의 윤리에 대한 신학적 응답으로 ‘연민, 살림, 지혜’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최순양 길리건의 이론을 활용해 신학적 제안을 하신 거군요. 연민, 살림, 지혜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gisang2104_13.jpg

최만자 ‘연민’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기에 연민은 인간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연민은 대상에 대한 감정입니다. 특히 그 대상이 고통당하고 있을 때 솟구치는 감정입니다. 약한 존재를 향한 감정이입, 자기 동일화를 통해 타자의 고통을 자 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관계적 자아의 연민은 모든 남성과 여성이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할 가치입니다.
‘살림’은 생명과 직결되는 개념입니다. 생명을 있게 하고, 생명 되게 하고, 생명으로 살게 하는 모든 형태의 삶을 포함하는 존재론적이면서 실천적인 개념이 살림입니다. 한국 여성신학을 ‘살림이스트’(Salimist) 신학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살림살이’라는 말도 있지만, 생명을 살리고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힘, 그게 살림입니다. 나는 살림은 예수의 삶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참사람, 사람다운 사람에게 주신 영원의 방식이 살림이니까요. 또한 살림에는 노동의 특성이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살려내진 못하잖아요. 살림은 움직이고,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노동을 통해 이뤄내는 것이기에, 죽임의 위기 상황에서도 생겨나고, 가사노동, 질병과 장애, 일상의 삶에서도 요청되는 것입니다. 도로테 죌레 (Dorothee Sölle)가 “하나님도 노동하는 분이다.”라고 했듯이, 노동은 나의 생존과 타인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저는 살림이 매우 중요한 인류의 대안적 가치 중 하나 라고 생각합니다.
‘지혜’는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진리를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얻어내는 것입니다. 주어진 규범과 원칙에 따라 진리나 정의를 규정하는 일반적 법질서와 다르게, 개개인의 구체적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이 지혜의 특징입니다. 지혜는 생활 속의 관계성, 생활 속의 정의를 알려줍니다. 지혜는 사회제도의 원칙이나 공정성 문제를 개인의 요구와 통합적으로 이루어갑니다. 지혜는 대체로 민중의 언어이고 힘없는 자의 언어입니다. 민담에 들어 있는 수많은 지혜의 이야기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혜는 약한 자를 보호하는 언어이며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언어입니다. 지혜는 생활 속에서 돌봄의 힘으로 작용합니다.
오늘의 시대가 요구하는 보살핌, 돌봄의 문제를 기독교 신학에서도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순양 길리건은 보살핌의 윤리를 여성적인 것으로 설명했는데, 선생님은 그것을 예수와 하나님의 속성으로 설명하신 점에서 더 확장적이고 대안적인 것 같습니다.

여성의 차이와 연대

최순양 얼마 전 윤미향 의원과 이용수 할머니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위안부 당사자, 위안부를 대변한 여성운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운동 초기에는 고통당하는 위안부 여성의 목소리를 지식인이나 여성 리더십 집단이 대신 말하며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목소리의 차이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최만자 사회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을 지식인이 대변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들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이 그동안 목소리 없는 자들을 위해 헌신해온 역사를 알고 있는 저로서는, 이번 일이 마구잡이식으로 매도되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속이 상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정의연 활동가들이 노력하지 않았다면 역사적으로 묻혀버렸을 수도 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오키나와에 살고 계셨던 배봉기 할머니가 한 기자의 오랜 설득 끝에 인터뷰를 하시면서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 11월 16일 37개 여성단체가 모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했는데, 이때 앞장섰던 사람들 중에는 교회 여성이 많았습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일을 많이 했어요.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나는 위안부 피해자다.”라며 신분을 밝히고 인터뷰를 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 후 국내 위안부 피해자 신고 전화가 개통되고, 도쿄의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신고 전화도 개통되었죠. 1992년 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작되어 28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한국 정부가 움직이면서 전국 시청과 구청에 피해자 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1992년 8월 1일에는 “제1회 정신대 문제 아시아 연대회의” 가 열리면서 아시아의 위안부 피해자와의 연합활동도 시작했습니다. 1993년에는 북한 위안부 피해자 면담 실태조사도 이루어졌죠. 한국 정부는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생활 안전 지원법을 공포했습니다. 1995년에는 영화 〈낮은 목소리〉가 상영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죠.
정대협의 기념비적 활동은 2000년 도쿄에서 개최한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이었습니다. 실제 법적 효과는 없었지만, 외국의 변호사와 검사, 판사들이 참여한 법정에서 일왕 히로히토를 ‘전범자’로 규정하며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활동을 계기로 정대협 활동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게 되었고, 유엔 인권위원회 의제로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2011년 12월 14일에 정기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으면서 일본 대사관 앞에 평화비를 제막했습니다. 2012년에는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이 개관했고요. 2018년 7월 11일 정대협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을 통합한 ‘정의기억연대’가 출범합니다. 이로써 정대협 활동은 위안부 문제를 넘어 여성 인권과 정의를 연대라는 개념 아래 포괄하는 운동으로 발전한 것이지요. 나는 이렇게 오랜 세월 쌓아온 정의연의 역사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초창기 활동을 보아온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어떻게든 충분한 토론을 통해 갈등을 잘 극복하면 좋겠습니다.
정의연이 30주년을 맞게 되었는데, 이제 위안부 운동의 주체는 젊은 세대로 넘어갔습니다. 우리 세대 중 참여했던 이들이 젊은 세대가 너무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서 참 듣기 가 좋았고,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gisang2104_14.jpg

최순양 말씀하신 것처럼 윗세대 활동가들이 젊은 활동가들을 믿어주고 지원해주신다면 정의연의 운동이 더 활성화되고 건강해질 것 같습니다.
차이의 문제와 관련해서 저는, 여성들 사이의 계급, 인종, 성정체성 등 차이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여성도 모두 하나는 아니다.’라는 해체적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습니다. 페미니즘 안에서 공통적으로 말할 수 있는 ‘여성’이 없다는 거죠. 여성들 사이의 차이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또 함께 갈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게 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만자 ‘해체적 페미니즘’이 강력하게 대두하면서, 이전의 여성해방운동, 여성인권운동, 여성법적지위향상운동 등이 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 18세기, 19세기 여성해방운동이나 1960년대 네오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을 하나의 동질적 집단으로 상정했고, 그걸 별 문제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페미니즘 또한 보편주의적 기획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나오게 되었지요.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등 여성 내부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나타났는데, 여기에는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들 의 핵심 주장은, 어떤 여성들은 젠더 문제로 인한 불평등만 겪지만 어떤 여성들은 다른 범주의 정체성이 덧붙여져 다른 형태의 여성 억압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W. Crenshaw)는 ‘교차성’ 이론을 도입하면서 기존 페미니즘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여성을 아우를 수 있는 자매애를 강조하지만, 흑인 여성의 입장에서는 그런 동질성은 존재하지 않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크렌쇼는 백인 여성이 인종차별에는 침묵하면서 보편적 여성을 정의한다면 유색 인종 여성은 이질적 타자, 아웃사이더가 되어버린다고 비판했습니다.
여성신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까 아시아 여성신학과 서구 여성신학의 차이를 말했는데, 흑인 여성신학자도 백인 여성신학자가 내세우는 페미니즘을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여성신학을 페미니즘이라고 하지 않고 ‘우머니스트 신학’(Womanist Theology)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머니스트 신학자들은 인종주의, 악마주의(Demonarchy)에 의한 억압과 차별을 여성 억압과 동시에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여성신학, 아시아 여성신학, 남미 여성신학은 이 흑인 여성신학자들이 주장한 ‘차이의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크렌쇼의 교차성 이론을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크렌쇼는, 예를 들면, 레즈비언 여성을 향해 “여성인권이 올라가면 당신의 성소수자적 위치 또한 올라갈 것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그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합니다. 젠더 차별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섹슈얼리티에 따른 위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레즈비언 여성은 해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레즈비언 여성의 정체성은 여성으로도, 성소수자로도 환원될 수 없는 특수한 것이고, 따라서 그 누구도 그 여성에게 여성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어느 것도 유예하지 않은 채 지금 여기서 여성 성소수자로 싸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과거에는 ‘여성’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인식했던 것들이 이제는 “아, 이게 다 다른 거구나.” 하고 알아차리게 되면서 다양한 여성 경험과 차이의 문제가 하나하나 새롭게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순양 여성들 간의 차이, 다른 입장, 다른 정체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최만자 다양한 페미니즘이 어떻게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함께 갈 수 있을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자기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 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여성 내부의 차이에 대한 상호 인정이 중요합니다. ‘여성 우선’ 페미니즘이나 ‘소수자 인권운동’ 페미니즘이나 ‘유리천장 깨기’ 페미니즘이 나, 모두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주창되는 다양한 운동에 사안별로 연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나는 성소수자이지만 여성 우선 페미니즘에도 동의한다면 그 운동에 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젠더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이 여전히 재생산되고 있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에 여성우선 페미니즘의 실천과 성과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여성혐오가 극심하고 청년 여성의 삶의 조건이 취약한 신자유주의 질서에서는 여성우선 페미니즘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90년대생 여성이 사라진다.’라는 끔찍한 세상에서 페미니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이런 절박한 물음 앞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여성은 경제구조에서 차별당하는 동시에 문화 구조에서도 차별당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이런 부정적 상황에서 김진아가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에서 주장한 것에 공감하게 됩니다. 여성 우선과 생존을 강조하는 김진아는 여성들이 비혼, 출산 거부 등을 통해 가부장적 질서를 완전히 무시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이 질서를 뒤흔들면서 개인만의 행복보다는 다른 여성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연대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약자를 배려하자고 합니다. 나는 페미니즘의 초점을 여성 우선과 여성 생존에 두면서 구체적 대안을 찾기 위해 다양한 페미니즘이 연대한다면 페미니즘은 더 진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가부장제 질서는 뒤흔들면서 약자 배려의 윤리는 폐기하지 않는, 그런 페미니즘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최순양 네, 저도 여성운동이 약자를 우선으로 하는 운동으로 이어지며 기반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최순양 선생님은 죽음을 어떻게, 어떤 의미로 해석하시는지요?
최만자 나이가 드니 죽음이 정말 내 문제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죽음 이후에 대한 답은 갖고 있지 못합니다. 사실 나는 죽음 이후보다는 세상을 떠날 때 그동안 살아온 내 삶을 어떻게 돌아볼게 될까를 더 생각합니다. 삶을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내 힘으로만 산 게 아니고, 나를 돌보아주는 어떤 선한 힘 덕분이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겸손해지고, 나를 인도하는 그 선한 힘을 궁극적 존재로 믿고 의지하게 됩니다.
성서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합니다. 죽음 이라는 운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질서에 속합니다. 우리는 그 질서에 따라 살고 죽을 뿐입니다. 시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은 대대로 우리의 거처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죽을 인생들아, 돌아가거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앞에서는 천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순간과도 같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인생은 한 순간의 꿈일 뿐, 아침에 돋아난 한 포기 풀과 같이 사라져 갑니다.(시 90:1-5, 새번역)

시편 기자가 인생을 허무하게 보는 것 같지만, 사실 모든 근원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도 누가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하는데, 어디로 돌아가는 걸까, 물음이 생깁니다. 구약신학자 김이곤은 태초에 신이 우리를 위하여 마련한 거처가 있었다고 합니다. 창세기에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창 1:2)라는 말씀이 있는데, 김이곤은 그곳에 하나님이 우리가 머물 거처를 예비하셨다고 해석합니다. 이는 신학적으로 더 깊이 연구되어야 하겠지만, 시편 90편의 “주님은 대대로 우리의 거처이셨습니다.”(시 90:1)라는 표현과도 연결됩니다. 생성, 소멸, 영고성쇠(榮枯盛衰)가 모두 하나님의 집에서 이루어지고, 흙으로 지어진 초개(草芥) 같은 인생은 죽음을 통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죽음 이후 하나님의 집, 우주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gisang2104_15.jpg

물리학자 장회익은 미지의 영역, 신비를 추구하다 도달한 최종의 신비는 늘 함께 있었던 ‘나’이고, 이 나의 대척점에 ‘당신’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신비가 있고, 그 신비는 바로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무한히 열려 있는 신비’라고 표현합니다. 장회익은 하나하나의 ‘낱생명’은 ‘온생명’의 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낱생명은 그 자체로는 온전한 생명이 될 수 없고 오직 온생명과의 연계 아래서만 생명 노릇을 하는 조건부적 존재라고 합니다. 온생명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의 단위라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붙이가 본질에서는 ‘나’나 ‘너’가 아니라 더 ‘큰 나’인 온생명에 속하여 있다고 합니다. 장회익의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무한히 열려 있는 신비’라고 한 표현이 마음에 들었고, 성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주의 온생명 안에 있는 나는 영원히 열려 있는 신비인 하나님에게로, 태초부터 그분의 거처이셨던 우주로 돌아갈 거라고 믿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처럼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최순양 천국에 간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우주로 돌아간다고 하시니, 역시 신학자는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과 대화하다 보니, 저보다 앞선 선생님들이 저를 당신들 어깨에 올려주셨기 때문에, 저는 그분들의 어깨 위에서 앞을 내다보며 신학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해체주의적 페미니즘을 하고 있지만, 저를 받쳐주신 선배 여성신학자들이 계셔서 더 높이, 더 멀리 보며 여성신학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최만자 저도 좋은 후배와 이렇게 만나 대화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고맙습니다.

 
 
 

2021년 4월호(통권 748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