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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아시아 신학 순례 12](마지막회)
교회와현장 (2021년 3월호)

 

  아시아 신학 회고와 전망
  

본문

 

아시아 신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일반적으로 신학은 신앙고백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하고, 예배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성도들의 신앙감(sensus fidelium)이 신앙고백의 바탕이 되고, 이것이 정교화되어 신학이 된다는 입장이다. 결국 신앙심과 신학은 같이 간다는 의미이다. 한편 후자의 경우, 신앙의 토대는 예배인데 예배드리는 바가 바로 믿는 바(lex orandi, lex credendi)이고, 이것이 발전되어 신학이 된다는 입장이다. 즉 기도가 공식적인 신조 형성보다 앞섰다는 이야기다. 결국 예배와 신학은 같이 간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신앙고백을 하며 예배를 드릴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여느 지역보다 일찍 형성된 아시아 교회가 많은 굴곡을 겪으면서 크게 성장하지 못한 가운데, 아시아 교회의 역사나 신학이 주목받지 못하거나 연구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아시아 신학은 한편으로 잊혀졌고, 다른 한편으로 근현대 그리스도교의 주류 세력인 서구 교회의 신학에 의해서 압도되었다.
다행인 것은 20세기 후반부터 아시아 신학의 중요성과 의의가 아시아를 배경으로 사역한 일부 서구 선교사들과 아시아 신학자들에 의해 각광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런 움직임은 아시아 신학의 재기 혹은 현대 아시아 신학의 탄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후 아시아 신학 연구가 지속·발전해왔으며, 최근에는 일종의 학문적 붐을 일으킨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하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고, 서구 신학자나 아시아 신학자 모두가 아시아 신학에 관심을 갖거나 공감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아시아 신학에 대한 무관심과 관성적으로 서구적 관점에서 아시아 신학을 보려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시아 신학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나는 잊혀진 이전의 아시아 신학을 연구하는, 곧 아시아 신학의 과거를 연구하려는 흐름이다. 다른 하나는 아시아의 현실을 토대로 그 현실에 응답하려는, 곧 아시아 신학의 현재를 다루는 흐름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아시아의 미래를 전망하며 그 미래를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연결시키려는, 아시아 신학의 미래를 다루는 연구이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 아시아 신학의 과거를 다루는 연구가 한 단계 발전하기 시작했다. 즉 국내의 아시아 신학이 무지의 단계를 벗어나(1단계), 외국 학자들의 학문적 성과에 의존하는 간접적인 이해의 단계를 거쳐(2단계), 해당 지역의 원어를 이해하고 1차 사료를 활용하여 본격적인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3단계) 이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아시아 신학을 연구하는 프로젝트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 글은 지난 1년간의 연재를 정리하는 일종의 결론으로서, 아시아 신학을 회고하며 그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하고, 그것에 근거해 미래를 전망해보고자 한다.

아시아 신학의 특징(1): 무엇을?

아시아 신학은 무엇을 다루는가? 다시 말해 아시아 신학의 과제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의 현실을 토대로 그 현실에 응답하는 신학이다. 즉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의, 아시아에 의한, 아시아를 위한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초기의 아시아 신학은 논외로 하더라도, 서구의 선교운동으로 인하여 아시아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한 근현대 이후에도 아시아 신학의 발전은 부진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아시아 신학을 시도한 현지인이 당시 신학을 주도한 서구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신학적 정교화에 서툴렀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이런 맥락에서 출현한 교회와 신학을 대중종교(공식적, 교리 중심의 종교에 비해서 비공식적, 대중적 종교를 가리키는 말로 토착종교 혹은 민속종교라고도 한다.) 혹은 소수종파로 분류하는 것이 통례이다.1 다른 하나는 아시아 교회의 주류 신학자들이 아시아 신학을 형성하기보다는 서구 신학을 수용하는 일에 주력했기 때문이다.(이로 인한 괴리를 서구 신학의 절대성 혹은 아시아 신학의 상대성 등의 논리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지속되었다.)
아시아 신학의 과제는 무엇일까? 여러 학자의 다양한 언급에서 공통분모를 간추리면 크게 다섯 가지, 곧 가난, 다양한 문화, 활발한 전통종교(특히 세계종교), 비주류 종교로서의 위상, 민족주의를 들 수 있다.(일반적으로는 가난, 문화, 종교가 아시아 신학의 주제로 자주 언급되었지만, 비주류 종교로서의 위상과 민족주의 문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주제이다.) 이 주제들은 그것에 대한 개인의 신학적 입장이 어떻든 간에 외면할 수 없으며, 설사 외면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는 아시아 신학의 큰 물줄기인 해방신학, 문화 신학, 종교간 대화 신학, 교회성장 신학, 민족주의 신학을 간략히 살펴본다.

1) 아시아의 해방신학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나라별로 해방신학의 이름이 다르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이유는 아시아 각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고, 민중의 고난의 경험이 다르며, 해방의 미래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피터 판(Peter C. Phan)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고난의 구체적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해방신학도 다양하다고 하면서, 그 다양성을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따라서 흑인 신학(인종차별에 대항하는), 아프리카 신학(문화적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남미 신학(경제적 억압에 대항하는), 다양한 여성 신학(가부장 제도와 남성중심주의에 대항하는), 달릿 신학(카스트 제도에 대항하는), 부족 신학(주변화와 소수 부족의 착취에 대항하는), 민중신학(독재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 신학(국가안보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생태 신학(환경악화에 대항하는) 등이다.2

판이 언급한 대다수의 신학은 아시아 해방신학에 해당하며, 이외에도 일본의 부라쿠민 신학, 재일교포 거류민 신학, 타이완의 본토 신학, 타이완적 한(恨) 신학[M-kam-goan(毋甘願) 신학], 민족자결 신학 등이 있다. 특히 타이완, 필리핀, 한국의 교회는 국가와의 투쟁 과정에서 해방신학적 노력에 관한 문서를 많이 배출했는데, 이를 본격적으로 분석한 아시아 해방신학 혹은 아시아 정치신학 연구가 요청된다.3

2) 아시아 문화 신학은 아시아인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기존의 신학과 선교는 아시아인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선별적으로 선택하는 입장을 취했다. 심지어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생기면 한 사람의 아시아인(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인도인 등)이 사라진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위에서 언급한 피터 판은 이런 정체성의 문제, 곧 아시아인의 정체성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간의 긴장 관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 가지 용어를 검토한다.4 즉 아시아인 그리스도인(Asian Christian)이냐, 그리스도인 아시아인(Christian Asian)이냐, 아시아인이면서 그리스도인 혹은 그리스도인이면서 아시아인(Asian-Christian)이냐는 문제이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우선시하며 아시아인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경우인데, 아시아 교회 다수의 입장이었다. 두 번째는 반대로 아시아인의 정체성을 우선시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경우인데, 아시아 교회 소수의 입장이었다. 세 번째는 아시아인의 정체성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모두를 견지하는 경우인데, 하이픈(hyphen)적 관계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론적 설명으로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 아시아 신학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소수의 선교사가 두 번째 입장(Christian Asian)을 취했는데, 오늘날 점차 다수의 아시아 신학자가 이 입장을 취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시아 신학자들이 자기 정체성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것을 신학의 출발점과 자원으로 삼는다.(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 온갖 종족들이 가지고 들어갈 것 중에는 신학도 포함될 것이다.)
아시아 문화 신학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볼 점은 아시아 문화가 신학적 형식과 내용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서구 신학이 이론(theory)과 문헌(document)이라는 특징을 보이는 데 반해, 아시아 신학은 이야기(story)와 예술(art)이라는 특징이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아시아 신학에서 이야기 신학, 예술 신학 등이 중요한 신학으로 등장한 것이다.

3) 아시아 종교간 대화 신학은 가장 논란이 많은 분야이다. 그나마 아시아 문화 신학은 문화와 종교를 구분함으로써 어느 정도 문화를 수용할 여지가 있었지만, 타종교를 수용하는 문제는 아직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문화와 종교를 구분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문화 신학과 종교간 대화 신학은 경계선이 불분명할 때가 많다.
더구나 아시아 종교간 대화 신학은 독특한 상황에 놓여 있다. 아시아는 아프리카와는 달리 세계종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와 연관성이 깊은 유대교, 이슬람교는 물론이고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등 아시아에서 탄생한 세계종교가 즐비하다. 이 밖에 민족종교 성격을 지니면서도 규모가 큰 이란의 조로아스터교, 일본의 신도(神道) 등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종교의 부흥, 근본주의 및 정치화 등의 현상으로 종교 갈등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아시아 종교간 대화 신학은 종교 내적인 종교간의 만남은 물론이고 종교 외적인 종교간의 연대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해방, 문화, 종교 등의 주제는 현실 세계에서 서로 얽혀 있다. 따라서 위에서 문화 신학과 종교간 대화 신학이 구분하기 어렵다고 한 것처럼, 문화 신학과 해방신학, 해방신학과 종교간 대화 신학도 구분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송천성(C. S. Song)은 『아시아인의 심성과 신학』(Third-Eye Theology: Theology in Formation in Asian Settings)에서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서구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사물과 현상의 표면 밑에 숨겨진 뜻을 간파하게 해주는 지각(知覺)과 직관(直觀)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이런 신학을 불교 용어를 빌려 ‘제3의 눈 신학’이라고 부른 바 있다. 이 신학은 아시아 문화에 토대를 두지만, 이 신학에서 씨름할 문제는 “아시아의 가난과 불의와 착취”이다.5 따라서 제3의 눈 신학은 문화 신학이면서 또한 해방신학이다. 이런 맥락에서 송천성도 문화 신학자이면서 또한 해방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해방신학과 종교간 대화 신학의 연관성도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가령 한국의 3·1운동이 그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아시아 신학에서 해방신학, 문화 신학, 종교간 대화 신학은 상호 연결되면서 다양한 신학을 형성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해방, 문화, 종교라는 세 주제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내용이다. 그리고 아래에서 다룰 두 가지 주제 역시 어느 정도는 알려진 내용이다. 다만 여기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 두 가지 분야를 동시에 봐야 아시아 교회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4) 아시아 교회성장 신학은 아시아 교회의 성패, 아니 생사가 달린 문제이다. 아시아의 기독교는 필리핀처럼 사실상 국교의 위상을 지닌 경우도 있고, 한국처럼 주류 종교를 자처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비주류의 소수 종교이며 그로 인해 약세에 놓인 종교이다. 따라서 교회성장 신학은 아시아 신학 가운데 매우 절실하고 시급한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성장학으로 알려진 교회개척 중심적 선교학이 원래 아시아(인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아시아 교회의 역사적 현실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물론 미국 혹은 한국에서 변질된 형태로 나타난 실용주의적 교회성장학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은 겨자씨 같은 아시아 교회가 계속 겨자씨로만 남는 것도 아시아 교회나 사회를 위해서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수 종교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소수 종교로서의 현실이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건설 역군으로서 역할을 하는 데 절대적인 장애가 되는 것을 타개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아시아 교회가 소수 종교로서 경험한 바를 신학화하는 일도 결코 외면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사실상 절대적인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심지어 시대착오적인 중세적 기독교 세계를 염원하는 주장이 난무하는 한국교회의 경우, 아시아 교회의 보편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설사 인식한다고 해도 체감 온도가 매우 낮다. 그 결과 오늘날 아시아 선교 현장에서 한국 선교와 아시아 교회 간의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교회는 아시아 대다수 국가의 교회들이 종교 자유와 다수 종교의 위상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 박해와 소수 종교라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
아시아 교회의 열세는 아시아 신학에 다음과 같은 여러 질문을 제기한다. 먼저 아시아 교회의 건전한 성장과 발전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또한 아시아 교회는 소수 종교로서 어떻게 사회적 역할(공공신학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런 역할을 감당하려면 반드시 교회성장이 선행되어야 하는가? 사회적 기여와 교회성장 사이에는 우선순위가 있는가, 혹은 그 둘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가? 아시아 교회가 소수 종교로 남아 있어도 교회 내외적인 과제를 주도적·주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 즉 아시아 교회는 소수 종교이면서 선교의 대상이 아닌 선교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교회성장이 절대악이 아닌 것처럼, 교회 정체나 쇠퇴가 절대선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교회 분열이 심각한 아시아 교회의 현실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은 이상일 뿐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이요 요청이 아닌가? 아시아 교회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은 주체적인 결단인가 외부적인 요청인가?

5) 아시아 민족주의 신학이 본격화될 필요가 있다. 물론 아시아 신학의 민족주의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보편종교이기에 전파가 가능하지만 민족종교여야 수용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선교 현장에서 교회가 보편성에만 머물면 외래종교가 되고, 특수성에만 매달리면 국수주의적 종교가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잘 간파하고 다루려면, 그리스도교와 민족주의의 관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세련된 이론이 필요하다.
근현대 서구 선교운동의 대표적인 선교 정책이 바로 ‘삼자(三自) 정책’이다. 삼자 정책은 자전(스스로 전도), 자립(스스로 재정 감당), 자치(스스로 지도력 행사) 등 주로 교회 내적인 과제를 강조하지만, 암묵적으로 민족주의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물론 이에 대한 명시적인 강조는 없다.)6 중국의 경우, 공산화 이후에 중국교회가 정부에게 교회의 민족주의적 태도를 분명히 밝히는 과정에서 기존의 ‘삼자교회’라는 용어에 ‘애국’이라는 단어를 첨가하여 ‘삼자애국교회’로 개칭한 바 있다.
아시아 교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아시아 민족주의 신학이 개발되어야 하나 아직 미진한 상태이고, 그 결과 아시아 교회 역사에서 민족주의 문제는 여전히 애매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정교분리라는 소극적인 입장과, 다른 한편으로는 국수주의적 민족종교라는 적극적인 입장이 함께 나타난다. 인도의 힌두교, 인도네시아의 이슬람교, 스리랑카의 불교, 일본의 신도 등이 종교의 정치화 문제를 드러내는데, 최근 한국의 그리스도교도 한 사례로 손꼽을 수 있다. 더구나 다인종 사회인 아시아의 경우, 자칫 민족주의가 주류 인종이 비주류 인종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 신학의 특징(2): 어떻게?

그렇다면 아시아 신학은 이런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어떻게 신학을 구성했는가? 첫째,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의 상황에서 시작하였다. 이것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아에서 상황화라는 신학 개념이 나왔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즉 텍스트 위주의 서구 신학과는 달리, 콘텍스트 위주의 신학을 시도한 것이다. 상황화 신학은 아시아 신학이 서구 신학으로 역수출되고, 세계 신학으로 확산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상황의 중요성을 초기 아시아 신학에 적용하기도 하는데, 이 입장에 의하면 아시아 교회는 서구 교회와 교리적 기질이 다르고 따라서 신학의 방법이나 내용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아시아 신학을 서구교회 중심의 시각에서 보고 이단시하거나 미흡한 신학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아시아 신학을 아시아 신학 자체의 관점에서 볼 때 서구 신학이 놓치거나 보지 못하는 측면을 다룰 수 있다고 보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존 잉글랜드(John C. England)는 이런 차이를 서구와 아시아 간에 근본적으로 자리한 ‘거리’(distance)라는 단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서구 중심적 기존 신학과 아시아 신학은 여러 가지 면(장소, 문화, 신학적 경험 등)에서 차이가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아시아 신학에 타자성(the Other)이 나타난다고 설명하며, 따라서 아시아 신학은 서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발상지인 이스라엘에서 아시아로 직접 건너뛰기(a leap from Israel to Asia)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7
둘째,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의 자원을 주목하였다.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의 문화와 종교를 적극적으로 신학화하려 하였고, 이것은 아시아 문화와 종교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로 연결된다. 가령, 초우(Alexander Chow)는 아시아 신학이 인간성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입장을 지니고 종교와 윤리의 연계성을 강조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동방정교 신학의 ‘신화’(神化, theosis, 신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이 신처럼 되게 하려고 한다는 개념)와 연결지으려고 시도하였다.8 이런 맥락에서 아시아 신학은 성서를 한 축으로 하고, 아시아의 문헌(문학, 철학, 혹은 경전)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문헌비교적 해석학, 곧 간문헌적 해석학(intertextual hermeneutics)을 활성화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문화적으로는 간문화적 해석학(intercultural hermeneutics)이, 종교적으로는 간종교적 해석학(interreligious hermeneutics)이 시도되고 있다.9 이 분야는 아직 초보 단계이지만, 그리스도교의 자기 비판이나 전향적인 선교를 위해서 반드시 개발해야 할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추구하였다. 아시아 신학은 에큐메니컬 운동의 주요 개념인 ‘교회의 일치, 인류의 갱신’의 실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즉 인류 전체의 문제를 직면한 후 교회의 일치를 이루어 이를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경험을 해왔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지역 조직이 가장 먼저 생긴 것이 아시아인데, 그 조직이 바로 아시아기독교협의회(Christian Conference of Asia, CCA)이다. 또한 가톨릭의 경우도 아시아주교회의(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FABC)가 지역 조직으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아시아 신학은 교회와 사회가 함께 사는 길은 일치임을 보여왔다. 이로 인해 아시아 교회가 큰 혜택을 입었지만, 이에 대한 인식은 아직 매우 낮다. 따라서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의 구체적인 역사와 내용을 아시아 교회에 소개하고 동원하는 대중화의 과제를 안고 있다.
넷째,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추구하였다. 아시아 신학은 탁상공론의 신학이 되기에는 너무나 절박한 상황에서 출현하였다. 따라서 일부 아시아 신학자는 서구 신학이 이론에 치우치는 것을 비판하고 신학의 실천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서구의 ‘신학’(theology=theos+logos)이란 단어 중에서 ‘학’(logos)을 동아시아 용어인 ‘도’(道) 혹은 남아시아 용어인 ‘법’(dharma)으로 대체하기도 한다.10
따라서 아시아 신학은 현장 신학이고, 대안 신학이며, 현실 신학이다. 신학적 주제도 칭의보다는 정의, 화목보다는 평화, 영생보다는 생명 등 보다 현실적인 용어로 치환된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에큐메니컬 신학 중 대표적인 포괄적(umbrella) 신학인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JPIC) 관련 대회가 1989년, 1990년, 2013년 등 연속적으로 아시아의 나라인 한국에서 개최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11 이처럼 현장성이 강한 신학은 특별한 신학자 상(像)을 요청한다. 이에 대한 질문은 아래 항으로 연결된다.

아시아 신학의 특징(3): 누가?

루터는 생명을 내건 종교개혁을 추진해 나가면서, 고난의 신학, 십자가의 신학을 추구하였다. 그는 바른 신학의 세 가지 조건으로 기도, 묵상, 시련(oratio, meditatio, tentatio)을 꼽았다. 아시아는 바로 이런 시련의 장이었다. 가령 서구에서 초연적(超然的)인 신 개념이 등장하면서 이에 걸맞는 초연적인 신학이 득세했다면,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고난의 현장에 개입해서 해방을 이루게 하시는 신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이에 걸맞는 참여적 신학이 득세하였다. 루터가 서구 신학자이지만 절박한 현실에 응답하면서 시련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아시아 신학자들도 현실에 응답하면서 시련의 신학자로 변모해갔다.
이런 맥락에서 아시아 신학은 저항의 신학, 투옥의 신학, 추방의 신학, 망명의 신학 등으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수많은 아시아 신학자가 저항자요, 수감자요, 추방자요, 망명자가 되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시에 아시아 신학은 민중의 힘, 정의의 힘, 평화의 힘, 생명의 힘을 보여주었다.
또한 아시아 신학은 현장성을 갖기 때문에, 아시아 신학자 중에는 유독 평신도 신학자가 많다. 가령 한국의 유영모, 김교신 및 함석헌,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Uchimura Kanzo), 인도의 토마스(M. M. Thomas), 인도네시아의 시마투팡(Tahi Bonar Simatupang), 미얀마의 우쪼딴(U Kyaw Than)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평신도 신학자에 대한 연구를 제외한다면 아시아 신학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

아시아 신학의 전망

아시아인이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아시아 신학이 시작되었듯이, 아시아인이 신앙을 가지는 한 아시아 신학은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다. 어떤 면에서 아시아 신학은 아직 초보 단계라고 할 수 있으나 과거와는 달리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제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의, 아시아에 의한, 아시아를 위한 신학으로서 본연의 신학 작업을 할 뿐 아니라, 지역 신학의 성과를 세계교회와 교류하면서 세계교회를 풍성하게 하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학은 교회의 성숙과 자기 정체성 확립에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아시아 신학 발전은 아시아 신학교육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12 이미 세계적 신학 개념이 된 상황화가 아시아를 위한 신학교육기금 프로젝트의 배경에서 나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동남아시아신학대학원[Southeast Asian Graduate School of Theology(SEAGST), 2009년 ATESEA Theological Union(ATU)로 개칭]이 아시아 신학 발전에 미친 영향과 같은 사례들이 아시아 여러 곳에서 일어난다면 바람직할 것이다.13
여기에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대 아시아 신학은 그동안 주로 진보적인 학자들이 주도했지만, 복음주의 계열 학자들도 점차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가령 복음주의적 성격의 아시아신학협의회(Asia Theological Association, ATA) 계열 학자들이 집필한 Asian Christian Theology: Evangelical Perspectives(아시아 기독교 신학: 복음주의적 관점들)는 전통적인 교리학 주제인 계시론부터 종말론까지를 재검토할 뿐 아니라 최근의 신학적 주제인 고난, 문화적 정체성, 타종교, 공공신학, 이주, 화해 등을 성찰하고 있다.14 장차 다양한 입장에서 접근하는 연구들이 아시아 신학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기를 기대해본다.
제자의 길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다. 그 가운데 아시아는 유독 무거운 십자가가 있는 현장이다. 세계 최대 인구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세계 최대의 빈민과 사회적 갈등, 문화적·종교적 다양성 등 수많은 문제가 있다. 이런 현실은 역설적으로 교회의 사명이 크고, 교회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경우 성과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듯이,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막 11:17) 오늘날 아시아 교회는 아시아인이 아버지의 집에서 기도하게 되는 비전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곳이 바로 아시아가 되는 비전을 가지고 굳건히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아시아 신학이 감당해야 할 과제이다.

* 안교성 교수님의 연재 “아시아 신학 순례”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좋은 글 보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편집부

주(註)

1 Lian Xi, Redeemed by Fire: The Rise of Popular Christianity in Modern China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10); 마크 R. 멀린스, 김성건·이숙희 옮김, 『일본의 종교: 토착교회 운동』(다산출판사, 2019). 한국교회에 대해서도 호교론적 접근을 넘어 보다 객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2 Peter C. Phan, Asian Christianities: History, Theology, Practice (Maryknoll: Orbis, 2018), 112.
3 지명관은 ‘TK生’이라는 필명으로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세카이」(世界)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韓國からの通信)이라는 연재글을 통해 한국 민주화운동의 현실을 알렸다. 이 글들은 해당 기간의 한국의 「동아일보」과 일본의 「아사히신문」의 기사와 비교하여 당시 역사를 복원하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지명관, 김경희 옮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창비, 2008).
4 Phan, 앞의 책, 20-35.
5 송천성, 성염 옮김, 『아시아인의 심성과 신학』(분도출판사, 1982), 5, 25, 42.
6 식민주의가 민족주의를 탄압하면서도 교육을 통해 지식층을 육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민족지도자를 배출하는 역설을 경험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7 John C. England, Cranes Ever Flying: Introductions to Asian Christian History and Theology (Delhi: ISPCK, 2020), 155-158.
8 Alexander Chow, Theosis, Sino-Christian Theology and the Second Chinese Enlightenment: Heaven and Humanity in Unity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013).
9 D. N. Premnath ed., Border Crossing: Cross-Cultural Hermeneutics (Maryknoll, Ny.: Orbis, 2007); R. S. Sugirtharajah ed., Voices from the Margin: Interpreting the Bible in the Third World (London: SPCK, 1991).
10 England, 앞의 책, ix, 107.
11 1989년 세계개혁교회연맹 서울 총회, 1990년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 [서울] 세계대회,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 부산 총회.
12 Hope S. Antone et al. eds., Asian Handbook for Theological Education and Ecumenism (Oxford: Regnum Books International, 2013).
13 Samuel C. Pearson ed., Supporting Asian Christianity’s Transition from Mission to Church: A History of the Foundation for Theological Education in South East Asia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10).
14 Timoteo D. Gener and Stephen T. Pardue eds., Asian Christian Theology: Evangelical Perspectives (Carlisle, Cumbria: Langham Global Library, 2019).


안교성 | 교회사를 전공하였다. 『한국교회와 최근의 신학적 도전』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 3월호(통권 7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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