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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나의 목회 수기]
교회와현장 (2021년 3월호)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로서의 목회
  

본문

 

나의 목회 이야기를 지면에 펼치는 것은 지난 44년간의 목회생활을 회고하는 의미 있는 일이지만, 먼저 퇴임한 목회자로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목회 여정 중에 경험한 희로애락 또는 성취와 실패, 영욕의 평범한 이야기를 넘어 좀 더 특징적인 면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행여나 내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지난날의 목회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자연스럽게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6·25전쟁 중에 아버지를 잃고 홀로 되신 어머니가 5남매를 어렵게 키우셨고, 그중 하나는 목사로 만들어야겠다는 염원과 기도가 나를 목회자로 만든 출발점이었다. 전쟁 후 가장을 잃고 가난한 환경에서 지속된 나의 신앙은 어린 시절의 고난을 이겨낼 큰 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는 데 좋은 연단이자 밑거름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장로인 어머니와 훗날 목사가 된 맏형이 보여준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며 생활하였기에 자연스럽게 교회생활에 적응하면서 나의 신앙은 점점 뿌리를 내렸고, 성실한 교회생활로 청년 시절까지 신앙의 기초를 다졌다. 이 모든 과정이 지금까지의 목회 여정에 큰 자양분이 되었다.

44년의 시간, 다섯 교회에서의 목회 여정

나의 목회 사역은 1974년 신학생 4학년 초기에 시작하여 2017년 4월 은퇴하기까지 44년간 다섯 교회에서 지속되었다. 첫 목회지는 충청남도 보령에 있는 재정교회였다. 버스 길도 나지 않은 첩첩의 산골 마을에 세워진 작은 교회였다. 그 지역에서 목회를 먼저 시작한 신학교 동기의 소개로 그곳에 부임해보니, 교인은 남자 집사 한 명과 여자 교인 스무 명 남짓에 아이들 몇 명이 전부였다.
첫 목회의 시작, 신학대학 4학년 학생이 무얼 얼마나 할 수 있었겠는가? 신학교에서 배운 것만 가지고는 애당초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청년 시절까지 고향에 있는 교회를 섬기며 보고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설교하고 교인들을 섬겼다. 어려운 교회 형편에 생활비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학부를 마무리하고 대학원에서 학업을 이어갈 때 또한 혼자 힘으로 학비를 조달해야 하는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여건에서 시작된 2년 반의 첫 목회 생활은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깨닫는 시간이자 동시에 그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보충해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또한 인내와 절제, 겸허함을 배웠고, 나 자신을 연마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 교회는 경기도 연천의 한 농촌에 있는 은대리교회였다. 38선보다 더 북쪽에서 북한을 마주보고 있는 군부대 밀집지역이었는데, 이 교회 역시 전과 비슷한 규모의 미자립교회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 후 북에서 내려온 난민과 군인 가족, 인근 부대의 군인들이 주요 구성원이었기 때문이다. 건축한 지 얼마 안 된 조그마한 교회 건물이 있었고, 우리 가족이 살아야 할 여덟 평짜리 사택이 있었다. 그 사택은 최전선에서 불어오는 추위와 비바람을 막아내기에는 턱없이 노후한, 이미 낡을 대로 낡은 말집이었다. 교회에서 주는 근소한 생활비에 소속 지방회에서 주는 미자립교회 보조금을 보태 두 아이를 키웠고, 여러 어려움들을 이겨내며 그런대로 평탄한 목회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두 교회에서 각각 2년 반씩 5년간 경험한 목회생활은 한마디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 고난의 길은 나만 걸어야 하는 특별하고 특이한 길이 아니라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 주어진 길이었기에 그 모든 어려움을 사명감으로 능히 이겨낼 수 있었다. 그 열매였을까? 보다 형편이 좋은 세 번째 교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 번째 교회는 충남 서산에 있는 성연교회였다. 역사가 깊고 저력이 있기로 소문난 교회였다. 교회 안에서는 양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내적인 면을 다졌고, 교회 밖으로는 선교, 봉사, 복지 프로그램을 통해 선교를 확장시켜 나갔다. 교인들이 모든 면에서 목회자의 리더십에 순응하여 주었기에 목회 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 감사한 것은 주위 사람들의 적극적인 협력 속에 10년이라는 장기간의 목회를 계획하고 실천해나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성연교회에서의 목회는 나에게 긍정적 사고와 자신감과 추진력을 길러주었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성연교회는 목회자로서의 필수적인 비타민(자양분)을 골고루 섭취하게 해주어 앞으로 펼쳐나갈 목회의 터전을 견고히 닦아준 고마운 교회였다.
네 번째 교회는 당진에 있는 기지시교회였다. 당진이 산업단지의 메카로 자리잡으면서 이 지역에도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고요한 농촌 지역에 이곳저곳 아파트가 세워지면서 인구가 유입되고, 점진적인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교세도 자연적으로 확장되었다. 나이 든 교인이 주류를 이루던 교회에 젊은 층의 교인이 새로 들어오면서 교회가 활기를 얻고 성장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른 자연적인 성장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았고, 목회 방식을 더욱 새롭게 하여 날로 발전하는 지역의 변화에 발맞추는 목회 프로그램을 운용하였다. 변화를 거듭해나가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그에 대응하는 차원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그 목표를 위해 5개년 장기발전 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그곳에서 13년을 활기차게 사역하였다.
마지막 사역지인 홍성제일교회는 충절의 고장으로 알려진 곳으로, 정부의 주요 행정기관이 많이 있는 고장이었다. 그래서 외부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 지역이었고, 그로 인해 원래 자리를 잡고 살았던 사람들이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과 텃세를 강하게 가진 곳이었다. 홍성제일교회는 1900년경에 서양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교회로 1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내포 지역의 모태 교회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부설유치원은 홍성 사설교육기관의 효시요 자부심이었다. 물론 교세도 지방회에서 가장 큰 교회였다.
그렇지만 이 교회는 배타적인 특성으로 목회하기가 매우 힘든 곳이었다. 긴 역사만큼이나 많은 목회자들의 이런저런 모습을 보았던 교인들은 어떤 목회자가 부임해도 목회자를 선뜻 신뢰하지 않았고, 새로운 목회 프로그램에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아 목회자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거쳐왔던 교회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일지라도 당황하거나 실의에 빠져 목회 열정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으로 나 자신을 일깨웠고, 마지막이 될 목회지에서 나의 모든 열정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명을 다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교인들과 소통이 이루어지고 나의 뜻과 의지가 전달되면서, 새로운 목회 정책에 교인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교회 분위기도 점차 변해갔다. 이에 용기와 힘을 얻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목회라는 생각으로 지역사회에 걸맞는 목회 프레임을 새로 짜며 작은 일부터 하나씩 추진하였다. 교인들을 상대로 은사와 재능을 조사하고, 리더와 인력들을 적소에 배치하여 교회 안팎에 필요한 일들을 분담시켰다. 크게는 선교, 교육, 영성, 문화, 복지 등의 분야로 나누고, 세부적으로는 유치원, 노인대학, 성서대학, 음악학교, 전도훈련, 산악회, 자원봉사활동 등으로 운영하였다. 그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다른 교회들과는 차별화된 모습, 특성이 있는 교회로서 자리매김을 하였고, 무엇보다 정적인 교회에서 동적인 교회로 크게 변화했다. 그렇게 17년간 홍성제일교회에서 여한이 없을 정도로 모든 열정을 쏟은 후, 44년의 행복한 목회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7년 4월에 은퇴하였다.
나의 목회 여정은 크게 세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처음 두 교회(재정교회, 은대리교회)에서는 5년간(각각 2년 반) 사역하였는데, 목회의 첫 시작이었던 이때는 교세가 약했고 목회를 경험하고 익히면서 기초를 쌓는 입문기였다고 할 수 있다. 초기 사역의 경험과 기반을 가지고 새롭게 출발한 성연교회와 기지시교회(각각 10년, 13년)에서의 목회는 교세가 상당한 수준이어서, 보다 열정을 가지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사역을 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교회가 계속 성장했고 마음껏 목회 철학과 꿈을 펼쳐 왕성한 목회 사역을 수행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마지막으로 홍성제일교회에서의 17년간의 사역은 지난날의 목회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열정을 쏟아부어 건강한 몸과 뿌듯한 마음으로 은퇴를 맞이한 결실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간의 교회 사역을 뒤돌아보면, 잘한 부분도 물론 있겠으나 잘못한 것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우선 나 자신에 대해 더 엄격하지 못했다. 힘들었던 초년 목회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중대형 교회에서 목회했기에, 때로는 성장과 성취에서 오는 만족감으로 인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더 나은 성장과 발전을 위해 열정을 불사르지 못한 점, 더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무엇보다 자기 성장과 훈련을 위한 경건의 실천과 지성, 감성, 인성을 위한 연단에 태만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교우들에게 소통과 이해와 용서를 구하기보다는 절제되지 못한 감정 이입의 모습을 모이기도 했고, 갈등도 없지 않았다. 나아가 지역사회의 그늘진 곳이나 소외된 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 그들에 대한 배려와 섬김과 나눔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그간 내가 전개해온 목회가 혹여나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이 아닌 ‘나’ 중심의 사역이 아니었는가도 자문해본다.
모든 면에서 많이 부족한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44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주어진 목회사역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내 자신의 노력과 능력이라 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그것은 순전히 나를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목사와 교수 활동

신학대학 시절, 목회수련생으로서 어떠한 목회자가 될 것인가를 고민했다. 실력 있는 목회자로서 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서를 잘 이해하고 해석해서 가르치는 말씀 중심의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심한 이후부터 성서학(특히 신약학과 헬라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1974년 목원대학 신학부를 마치고 성서를 학문적으로 더 연구하고자 1975년에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 입학한 후 신약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Th.M.)를 취득하였다. 연세대에서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신학으로 학문의 세계를 넓힐 수 있었던 나는 다시 보수적인 신학 전통의 평택대 신학전문대학원에서의 신학박사(Ph.D.) 과정을 마쳤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진보와 보수의 균형적인 학문성을 겸비한 후, 목회자로서의 사명과 교수로서의 소양을 가지고 교회와 학교 사이를 오가며 균형 잡힌 사역을 펼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의 목회와 학교에서의 강의는 나에게 서로 동떨어져 있는 영역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다. 후진들을 가르치기 위해 더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물들을 설교를 비롯한 목회 전반에 적용시켰다. 이렇게 학문적인 욕구와 성취, 활동이 목회에도 활용되어 좀 더 활기찬 목회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학부 시절부터 꿈꿔오던 바를 실현한 것이기에 지금 생각해도 뿌듯함과 보람을 느낀다. 목회와 학문(교회와 학교)은 두 갈래의 기찻길처럼 서로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결코 멀어지지 않고, 그 간격을 유지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내 삶의 현장이었다. 현재 목회 일선에서는 은퇴했으나, 아직까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계속하고 있다.

특성화 목회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 만들기

시대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새 시대에는 교회의 모습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교회가 지역사회와는 무관하게 교인들만의 아지트처럼 유지되었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새 시대가 요청하는 열린 교회로 탈바꿈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교회당이 오로지 예배만 드리고 나머지 시간은 굳건히 잠긴 건물로만 존재한다면 교회로서의 진정한 존재 의미와 가치는 상실된다. 교회가 이 세상에 왜 존재하는가? 그 존재 이유를 생각해볼 때, 교회는 세상과 단절된 그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는 열린 교회가 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섬기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교회와 목회자는 그분의 대리자로 세움받았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을 섬기는, 다시 말해 지역사회를 섬기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나의 목회 철학이자 신념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과 지역사회를 향해서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어떤 불신자라도 거리낌 없이 교회 문턱을 넘고 부담 없이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홍성에서 실천한 사례를 간단히 소개한다.
홍성제일교회가 추구한 몇 가지 특성화 중 하나는 노인대학 운영이었다. 1998년도에 설립되어 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 부설 노인대학은 전국적인 모범사례로 홍보될 만큼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매년 수백 명의 나이 든 학생들이 교회를 출입하면서, 그들의 입에서 “교회가 참 좋은 일을 한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간접적인 선교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교회가 교인들만 출입하는 곳이 아니라 일반 지역사회 주민 누구나 들어와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재미있게 여가를 보낼 수 있고, 자연스럽게 예배와 기도에 관심을 갖고 마침내 교인으로 등록하게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간접 선교가 어디 있을까. 물론 이에 투입되는 재원과 인력은 교회가 전적으로 부담했다. 노인대학을 운영할 강사와 직원, 식사 준비 등 여러 가지 일들은 교인들이 조를 짜서 자원봉사로 운영하였다. 봉사자로 참여한 교인들이 기쁜 마음으로 섬김과 나눔을 몸소 실천하며 긍지와 보람을 가지게 되니, 교인들의 신앙생활 훈련, 실천적 영성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또 하나의 특성화는 음악(문화)학교를 운영한 일이다. 음악학교에서 각종 악기를 큰 부담 없이 장기간 배우게 된 교인들은 교회 찬양단이나 성가대에서 활동했다. 더 나아가 지역사회 곳곳과 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지역의 교회에 ‘찾아가는 음악회’를 기획하여 순회연주도 하였다. 교회가 작은 자, 소외된 자, 약자를 섬기며 나눔을 실천하는 정신을 배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후원하는 해외 선교지에 음악선교단을 파송하여 선교사의 사역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교회에서 지원하는 미얀마, 스리랑카, 멕시코 등의 선교지에 음악학교가 설립되어 음악선교사까지 파송되는 곳이 생겨나기도 했다.
해외 선교지에서의 이러한 음악선교는 획기적인 일이었고 성과도 컸다. 이 일을 진행하기 위해 나는 1998년에 평택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하여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이수하였다. 또한 평소 음악을 좋아하고 많은 관심을 가졌기에 몇 가지 악기를 습득하고 다루면서 직간접적으로 교회가 추진하는 특성화 사역에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적용하고 활용하였다. 교회에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목회자 자신이 필요한 학문을 공부하거나 자신의 내재적인 재능을 수련하여 직접 참여하는 방법도 일을 추진해나가는 데 크게 일조할 수 있다.
교회는 지역사회에 문을 개방하고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교회는 교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교회 내외에서 각종 복지·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야 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를 위해서 교회의 더 많은 예산을 아낌없이 투여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점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홍성제일교회의 이러한 활동들이 대내외적으로 알려지며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제정한 ‘제7회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상’(2009. 4. 10.)을 수상하는 기쁨도 교인들과 함께했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한 가정이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구성원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무래도 가장이 아닐까? 같은 원리로, 한 교회의 존재와 의미는 상당 부분 목회자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목회자가 좋은 목회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양떼를 잘 양육할 때 좋은 교회를 이루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비교적 평탄하게 목회의 여정을 마쳤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온 은퇴 목회자로서 그간의 목회 여정을 통해 내가 느끼고 깨달은 교훈 몇 가지를 후배 목회자들에게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1) 목회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사역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2) 영성 훈련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영성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3) 인내하고 기다리라.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뿌린 후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4) 세속적인 성공의 욕심이나 성취에 연연하지 마라. 다만 성실과 최선을 다할 뿐이다.
(5) 나를 극복하라. 나를 비우고 내려놓아야 한다. 이기려고 하지 말고 온유하고 겸손하라.
(6)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연구하고, 도전하고, 노력하는 자가 되라.
(7) 전해 내려오는 철칙대로 세 가지 욕망(돈, 이성, 명예)의 덫을 경계하라. 돈에는 독이 있다.
(8) 정치를 하는 목사가 되지 말고, 목회의 전문가가 되라.
(9) 항상 준비하라. 하나님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준비된 자를 사용하신다.
(10) 특별히 제2의 인생(인생의 후반기)을 위하여 노후를 준비하라.

김대경 |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은퇴 목사이다. 신약학을 전공했으며(Ph.D.), 저서로 『고린도교회와 바울: 고린도전서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등이 있다. 한성신학대학, 평택대학교 강사로 신약학을 가르쳤다. 현재 감리교목회아카데미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충남시민오케스트라 단원(클라리넷)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3월호(통권 7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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