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한국 사회와 교회의 길을 찾는 신학대화 01]
교회와현장 (2021년 3월호)

 

  한완상 박사와의 대화
  동고(同苦)의 하나님, 비움의 그리스도를 따라

본문

 

* 새길기독사회문화원, 크리스챤아카데미, 「기독교사상」은 지난 2020년 12월부터 “한국 사회와 교회의 길을 찾는 신학대화”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신학대화는 한국 기독교가 일구어온 사회참여적 신학 전통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함으로써 교회가 다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려는 시도로 기획되었다.
이번 호에 게재하는 한완상 박사와 김희헌 박사의 대화는 2020년 12월 8일 경동교회에서 진행되었다. 최만자, 김경재, 이삼열, 서광선, 이경숙 등 원로 학자들과 최순양, 정경일, 이상철, 이숙진, 박지은 등 소장 학자들의 대화가 이어질 예정이다. ‐편집자


대담자 소개 / 한완상 박사는 비판적 지식인이자 대승적 종교인이다. 1936년에 태어나 일제의 무단통치, 해방 후의 좌우 갈등과 한국전쟁 등 민족의 비극과 참상을 경험한 그는 ‘사회 의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키웠다. 대구에서 YMCA 고등부 활동을 하면서 김재준의 『낙수』와 안병무의 「야성」을 읽었으며, 슈바이처의 생명경외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거쳐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유학하는 동안,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변화 열기 속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저항적 비폭력운동을 비롯한 진보적 사회사상을 습득한다.
테네시 공대에서 3년간 교편생활 후 1970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하여 유신 시대의 억압적 상황에서 진보적 지식인에게 주어진 고난을 겪었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를 기반으로 함께 활동한 동료 학자들과 1976년에 해직을 당한 후, 1980년 복직할 때까지 대한기독교서회 편집고문으로 일하며 많은 글을 썼다. 이 시기 「기독교사상」을 통해서 발표한 “서울대 연구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살아 있는 글”은 『민중과 지식인』 등 그의 초기 사상을 대표하는 책으로 나온다.
1980년 복직되었지만, 이어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3년형을 선고받는다. 1년여의 복역 후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그는 2차 해직 기간을 에모리대학 연구교수로, 뉴욕 유니온신학대학원 학생으로 유배 생활을 했다. 1984년 8월 복권과 함께 복직하여 1993년까지 서울대 교수로서 비판적 사회사상을 가르쳤으며, 퇴임 후 3개 대학 총장으로 교육행정에 임했다. 한국교회 개혁의 바람을 안고 1987년 평신도 공동체인 새길교회를 창립해 지금껏 예수따르미의 신앙과 삶을 나누고 있다. 김영삼 정부에서 통일부총리를 비롯하여 이후 세 민주정부에서 공직생활을 하였다. 사회학자로서, 그리스도인 지성인으로서 한국 사회와 교회에 대한 성찰을 담은 30여 권의 책을 냈다.
김희헌 박사는 한신대학교와 미국 클레어몬트대학원에서 조직신학과 종교철학을 연구했다. 현재 향린교회 담임목사로 일하면서 한국민중신학회, 평화와신학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

김희헌 크리스챤아카데미와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이 공동 주최하고 「기독교사상」에서 지면을 마련해준 그리스도교 원로와의 신학대화 첫 번째 시간을 한완상 선생님과 함께 갖게 되어 기쁩니다. 몇 년 전 회고록을 내셨는데, 젊은 세대가 독자이기를 바라셨습니다. 이 대화도 선생님의 지혜를 미래 세대와 나누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한완상 제가 기독교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대화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기독교사상」, 크리스챤아카데미,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이 함께한 신학대화에 참여하게 되어 더 기쁩니다. 세 기관은 제 삶의 여정에서 특별한 인연이 있는 예수운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자로서 시대, 사회, 인간을 읽다

김희헌 선생님은 30여 권의 책을 쓰셨고, 사회학과 신학, 정치와 종교가 어우러진 통합적 사상을 구축해 오셨습니다. 우선 사회학자로서 시대, 사회, 인간을 읽어내는 방법론은 무엇이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한완상 1962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미국 사회는 격변기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세 가지 혁명이 동시에 터졌는데, 첫째는 마틴 루터 킹 목사 중심의 흑인민권운동이었고, 둘째는 신좌파운동이었습니다. 대학에 진보적 담론들이 확산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흐름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이었습니다.
킹 목사는 처음에는 미국 자본주의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미국 제국주의의 패권은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미국 내 인종주의 모순을 격파하는 민권운동을 주도하면서, 국내 정치세력이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로 향할 수밖에 없다고 그의 생각이 진화하면서 베트남전쟁을 정면으로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민권운동을 지지하던 미국교회 지도자들이 킹 목사를 말렸어요. ‘당신, 그러다 좌파가 되면 민권운동도 영향받는다.’는 식으로 만류했는데, 킹 목사는 ‘나는 길게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짧게, 충격적으로, 보람 있게, 역사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곧 총격으로 살해당했지요. 그런 격변기에 유학 가서 사회학 공부를 한 것입니다.

gisang2103_08.jpg

미국 사회의 격변을 직접 보면서 마르크스의 계급 결정론, 계급 환원론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즉자적 계급이 혁명에 직접 영향을 주는 독립변수는 아닐 거라고 판단한 것이죠. 대신 독립변수와 변혁 세력 간의 상징적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노동자 계급이라 해도 계급의식을 가지고 불의한 구조를 바꾸겠다는 의지와 실천이 없으면 변혁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죽은 계급입니다. 대자적 계급이 아니라 즉자적 계급인 것이죠. 그러니까 그때 저는 특정 계급에 속해 있다는 객관적 지표보다 그 사람의 계급의식이 그의 구체적 삶을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변혁으로 나아가게 하는 자원이라고 본 거예요. 그것을 어떻게 객관적, 과학적으로 증명하느냐가 고민이었지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기독교적인 영향이 매우 컸어요. 역사적 예수는 단지 일탈자(deviant)가 아니라 사회적 낙인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비동조자(nonconformist)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박사 논문을 쓸 때 일탈자와 비동조자가 권력 주체의 입장에서 볼 때는 똑같지만 일탈자나 비동조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전혀 다른 거라고 주장했어요. 일탈자와 비동조자가 혁명운동에 뛰어들 수 있는 가능성을 성향과 연관시켜 본 것이지요.
이때 중요한 개념이 사회학에서 말하는 ‘준거집단’이에요, 준거집단은 내가 현재 속해 있는 집단은 아니지만 속하고 싶은 집단이에요. 속하고 싶은 집단이기 때문에 그 집단의 규범과 가치를 미리 알고 익히려 합니다. 그것을 사회학에서 전문용어로 ‘예견적 사회화’(anticipatory socialization)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론을 사용하면서 자꾸 예수님이 생각나는 거예요. 예수님은 서기관, 바리새파, 사두개파 같은 소속집단과 자주 충돌했거든요. 내가 세우려는 왕국은 너희들의 폭력적 권력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다! 이게 예수님의 재판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의 준거집단은 하나님 나라였어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루고 싶은 나라, 이미 자기 자신은 멤버라고 생각하는 나라인 것이죠.
박사 논문을 쓰면서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으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예수님은 당시 제도화된 종교집단의 소리가 아니라 전혀 다른 소리에 장단을 맞췄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기존 권력집단의 규범 체계하에서 반체제적 범죄자로 낙인찍히고 처형당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김희헌 사회학을 하실 때도 신학적 사유를 하셨군요. 한국에 돌아오신 다음에는 어떻게 사회학을 하셨나요?
한완상 귀국 후 서울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면서 ‘사회학적 인간’(Homo Sociologicus)을 비판했습니다. 이것은 독일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Ralf Dahrendorf)의 이론인데, 사회가 인간에게 역할이라는 마스크를 씌운다는 거예요. 연극을 할 때 마스크를 쓴 사람이 대본대로 웃고, 울고 하면서 연기하면 관객이 손뼉을 쳐주잖아요. 사회학적 인간도 사회라는 무대에서 역할을 잘해서 박수를 받아야만 사회의 성숙한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는 거예요.
저는 예수님을 사회학적 인간의 마스크를 훌훌 벗어던진 분으로 봤어요.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두개파처럼 마스크를 열심히 써서 사회학적 인간으로서 100점 만점을 맞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회칠한 무덤’,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질타하셨지요. 나는 그 질타를 듣고 ‘예수님이 당신의 준거집단인 하나님 나라의 입장에서 비판하시는구나.’ 하고 느낀 거예요. 이런 생각을 사회학자들과도, 신학자들과도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아마 사회학자들은 내가 너무 신학적이라고 말할 것이고, 신학자들은 내가 너무 사회학적이라고 말할 거예요.
김희헌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사회적 의식을 형성하는 일에서 종교가 하는 역할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인간의 의식 형성을 전인적 차원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보는 것을 비판합니다. 그것은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적 세계관이 완전히 분리되면서 비종교적 사유가 과학적 사유처럼 된 것과도 관련된다고 봅니다. 특정 소속집단의 사람들에게는 자기 정체성과 의식이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을 준거집단으로 도약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도약에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한완상 진부하게 말하면, ‘복음의 힘’이지요. 예수님의 복음은 항상 잘못된 마스크를 쓰고 연기하는 소속집단에서 탈출하라고 요구합니다. 그 요구에 응하지 않고 제도 속에서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고, 목사가 되고, 총회장이 되고 하면서 예수님의 복음을 잃어버리는 것이죠. 본질을 놓치는 거예요. 제가 말한 “예수 없는 예수교회”는 그런 생각에서 나왔어요.
김희헌 1978년에 내신 『민중과 지식인』에서부터 계속 가지고 계신 문제의식처럼 느껴집니다.
한완상 그렇죠. 사회학계에서도, 신학계에서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을 오늘 이야기한 겁니다.

민중, 민중신학, 한국교회

gisang2103_09.jpg

김희헌 1970년 서울대에 오셔서 6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시다가 1976년에 1차 해직을 당하시고, 4년 후에 또 해직당하셨습니다. 76년에 해직당하시고 나서 「기독교사상」 편집고문으로 계시면서 4년 동안 생산하신 글의 양이 엄청납니다. 당시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를 통해서 유신체제에 도전하는 학자로서 행동하시면서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도 연루되어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당시 민중신학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고 민중론 형성에도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그 시대의 경험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완상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라는 공동체가 있었던 것은 제게 커다란 축복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부터 미국 대학의 한국 기독교인 학자들끼리 모임을 가졌는데, 그 사람들이 돌아와 신학대학과 세속 대학에서 교수가 되면서 기독자교수협의회 회원이 되었습니다. 저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회원이 되어 열심히 활동했어요. 이 공동체가 저에게 축복인 이유는 역설적으로 박정희 정권이 민중신학을 만들어낼 동력을 우리에게 준 것이기 때문이에요. 공화당 정부가 반정부 지식인, 교수들을 대학에서 축출하기 위해 만든 법 때문에 기독자교수협의회 사람들이 집중포화를 받았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독자교수협의회가 윤리종말론적 공동체로서 더 강하게 결속할 수 있었어요. 한 달에 한 번 회원 집에서 모일 때는 초대교회 신자들이 카타콤에서 모였을 때처럼 뜨거웠어요. 위험한데도 서로 자기들 집에 초대해 모이려고 했어요.
유신체제의 위협 속에서 역사의 예수에 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당시 안병무 교수는 갈릴리 지역 민중의 저항운동과 예루살렘 사제 계급의 갈등을 많이 생각하신 것 같고, 서남동 교수는 예수를 한 맺힌 민중과 동고(同苦)하는 ‘한의 사제’로 보신 것 같습니다. 서 교수 말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부자는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주기도문을 기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은 빚진 자를 탕감해주는 것인데, 날마다 이자 놀음하며 돈 버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이에요. 현영학 교수는 권력자를 희화화하고 놀리면서 쏟아내는 한국 탈춤의 말을 예언자적인 발언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새끼 나귀를 타고 가시는 예수의 행진을 가장 극적인 탈춤 형식으로 생각했어요. 저는 ‘당시 팔레스타인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이 예수운동을 수용했을까? 어떻게 참여했을까? 사회적 갈등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것에 관심이 컸죠. 우리는 모일 때마다 민중과 예수,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관계 같은 것에 대해 토론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눈물 날 정도로 기쁘고 즐거웠어요. 그래서 ‘이것이 카타콤의 경험일 것이다. 그리고 종말론적 희망공동체일 것이다.’라고 생각한 거예요.
김희헌 그동안 한국교회와 민중신학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1970년대와 80년대의 교회는 민중신학에 꽤 열려 있었는데, 90년대 교회가 신자유주의 체제에 흡수되면서 더 멀어진 것 같습니다. 민중신학과 한국교회의 관계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한완상 더 긴 안목으로 역사를 봐야 합니다. 100여 년 전, 3·1운동 당시 기독교는 한국에 들어온 지 20-30년밖에 안 되었어요. 몽양 여운형은 지금은 가장 보수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모교회인 승동교회에 3년간 조사로 있다가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해에 가서 독립운동을 했지요. 그리고 당시 새문안교회는 지금의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모교회인데, 그 교회의 30대 장로였던 우사 김규식은 3·1운동을 일으키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사랑을 빼앗긴 조국에 대한 사랑과 같다고 확신하며 살았기 때문에, 민중신학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민중신학을 실천한 사람들이에요. 1970년대와 80년대 민중신학자들은 그 실천을 계승했지만, 왜 그들의 후배들은 그것을 잇지 못하는가? 후배 세대를 나무라는 것처럼 들릴까 봐 염려되지만, 선배 세대가 가졌던 고민을 후배 세대가 머리만이 아니라 삶으로도 이해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희헌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기도 하고 사회 환경의 변화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개신교 역사가 140년 정도 되는데, 과거에는 사회에서 존중받는 기독교적 가치가 있었고, 존경받는 사회 지도자 가운데 기독교인도 꽤 많았지요. 반면에 지금은 기독교의 가치가 흐려져 버린 듯합니다. 특별히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국교회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생존주의와 성장주의에 녹아버렸습니다.
한완상 한국 기독교 역사 초기에는 피억압 민족의 고통에 동고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어서 기독교인 가운데 애국자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1945년 8월 15일부터 시작된 분단질서에서는 일제강점 36년 동안 애국자를 핍박했던 세력이 다시 권력 주체로 들어앉았지요. 그 과정에서 북쪽에서 대거 남하한 개신교 세력이 냉전 세력으로 돌변했고요. 그들이 분단 시대의 정치 주도 세력과 공조하면서 대형교회가 되었습니다. 분단이 고착되어야만 권력이 보장되고 강화되는 정치 현실이 50년 이상 지속되었는데, 그것을 더 지속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군사적으로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강화한 것이 신자유주의입니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권력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초기 민중신학자들은 친일, 냉전 세력과 싸우다 고생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신학자들은 신자유주의적인 불평등이 제도화되면서 생긴 아픔만 보고,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아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지금의 진보적 신학자들은 ‘좌우를 보지 말고 높낮이를 보자.’는 것 같아요. 높낮이는 계급모순인데,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빨간색’이 칠해져 잡혀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분단을 지속시키는 프레임은 신자유주의 프레임이라기보다는 이념적 좌우 프레임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다른 소리를 하면 지금도 ‘빨갱이다!’라는 소리가 나오는 거죠. 몽양 여운형 선생이나 우사 김규식 선생이 지금 살아 계신다면 빨갱이 취급을 당할 겁니다.
김희헌 이념적 색깔론은 이제 정치에서는 약화된 게 아닐까요?
한완상 분단이 지속되는 한 절대로 끝나지 않는 것이 색깔론입니다. 분단모순은 계급모순, 성 모순 등의 배후에 있으면서 그 모순들을 악화시키고 고통을 가중합니다.
김희헌 분단과 평화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이야기 나누도록 하지요.

교회는 필요한가

김희헌 한국교회가 한 세대 가까이 성장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기독교 정신과 가치가 실종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 절망한 기독교인들이 꽤 많습니다. 1987년 이후 참여해오신 평신도 공동체인 새길교회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시면, 새롭게 출발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길교회를 창립하시면서 선생님이 생각하셨던 예수 정신의 핵심은 무엇이고 신앙공동체의 과제는 무엇이었는지요?
한완상 그때 저는 친일 냉전 세력이 된 한국교회가 번영신학에 따라 값싼 축복만을 던지는 거대 교회로 변질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의 대안은 무엇일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진보적 평신도 교회를 만든 것이죠. 그런데 이제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그때 저는 한국교회의 잘못된 모습에 대한 조그마한 대안만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것은, ‘과연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고 운영할 계획을 하셨을까?’라는 물음입니다. 예수님이 한 60세까지 사셨다면 교회를 만드셨을까? 사도 바울처럼 교회를 만드셨을까? 다시 말해, 교회가 예수님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가? 그것이 요즘 제가 하는 고민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인해 좌우 차이만 아니라 계급 차이로 인해 이중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코로나19 때문에 가장 고생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밑바닥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지금 교회를 또 해야 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겁니다. 지금 지식인들이 대안적 교회를 시작하려 하면서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보면, 회의주의나 영지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신앙으로 치우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신앙이 제도 교회의 신앙과 맞지 않으니까 대안 교회를 생각하는 거예요. 저도 30여 년 전에 그런 수준에서 생각하지 않았나 반성해요.
물론 새길교회를 시작할 때는 집사, 장로, 목사 같은 제도 없이 평신도가 설교도 하고 목회도 하고, 지적인 문제 제기도 하고 대안도 시도하는 그런 열린 교회를 만들면 좋겠다는 순수하고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그 나름대로 보람은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르네상스나 종교개혁 때보다 더 깊은 변화를 촉구하는 지금의 코로나19 시대에는 교회가 정말 필요한가를 묻게 됩니다.

gisang2103_10.jpg

김희헌 저는 교회를 전제하고 말씀드렸는데, 선생님은 교회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시네요. 한국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로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한국교회가 보이고 있는 절망스러운 모습 중 하나는 기독교의 이름으로 혐오 담론이 제조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국교회 대부분이 거기 휩쓸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한완상 내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근본주의 교회들을 보고 놀라는 것은 인간 사회를 너무 획일적으로 양분한다는 것입니다. 양분하기 제일 쉬운 게 남자/여자 분류인데, 성 이분법의 중간에 끼어들 수 있는 어떤 실체도 처음부터 아예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 근본주의의 영향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모든 이분법에는 문제와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에 검은 것과 흰 것만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흑과 백 사이에 많은 색조가 있듯이, 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지개처럼 LGBTQ 범주도 있는 겁니다. 저는 지금 사실을 말하는 것이지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싶고, 그것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하고 싶은 기독인들은 그 근거로 성서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듭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핵심 이슈는 동성애가 아니고 폭력이었습니다. 자기들의 공동체를 찾아온 낯선 사람들을 성적으로 집단폭행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동성애를 성적 쾌락을 위한 선택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선택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표트르 차이콥스키나 레너드 번스타인 같은 사람도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들은 선택해서가 아니라 타고난 자기 욕구에 따라서 동성애자로 외롭고 괴롭게 살았습니다. 그 고통 때문에 그들의 음악 예술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김희헌 오늘날 소수자에 관한 태도는 종교윤리의 시금석이 되었는데, 한국교회가 이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대했으면 합니다. 과학적 지식을 올바로 갖는 일이 필요하지만, 종교적 성찰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자격이 피조물인 우리에게 있는지, 익숙하지 않은 것과 혐오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를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그려보면서, 혐오를 정당화하는 방식보다 자신을 깨뜨려서 타인을 용납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영적 성숙을 위한 합당한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평화의 신학

김희헌 한국교회가 길을 잃은 이유는 역사의식의 실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교회 대부분이 종교적 게토에 갇혀 있거나 반동적 방식으로 역사에 참여해왔습니다. 한국교회가 살기 위해서는 역사를 호흡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분단 상황의 우리 사회가 ‘적대적 공생’의 틀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오랫동안 말씀해 오셨습니다. 아울러 그것을 극복할 방안으로 ‘우아한 패배’, ‘발악(發惡)이 아닌 발선(發善)의 신학’과 같은 화두들을 많이 던져 주셨습니다. 얼마 전 선생님과 대화했을 때도 민중신학이 다시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역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제안도 해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완상 분단 상황에서 적대적 공생관계가 작동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적대적 공생관계란, 한마디로 이런 겁니다. 적대적 관계의 두 집단, 두 체제, 두 국가, 두 정당은 공생하지 못합니다. 상대방을 제거해야 할 적, 때려 죽여야 할 주적으로 보니까, 그리고 악으로 보니까 공생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남북관계에서는 이상하게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작동해 왔어요. 이유는 이런 것이죠. 분단이 타율적으로, 즉 강대국의 패권 경쟁의 결과로 생겼기에 처음엔 억울했겠지요. 그런데 북과 남의 지배세력은 명분 없는 분단을 종식하는 것보다 분단을 지속시켜야 그들의 권력이 유지된다는 이상한 관계를 경험적으로 알게 된 거예요. 북과 남의 지배세력은 자신들에게 위기가 생기면 상대방을 악마화함으로써 체제 내의 모순을 극복해왔어요. 이점에서는 남북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희한한 것은, 남의 지배집단이나 북의 지배집단에게는 상대방을 도와주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의도는 상대를 제거하는 것이에요. 의도는 제거하는 것인데 결과는 도와주는 것이니 희한하다는 겁니다. 의도와 다른 결과가 생기는 것과 관련해 흥미로운 사회학 용어가 있습니다. 사회학에서는 ‘잠재적 기능’(latent function)과 ‘명시적 기능’(manifest function)을 구별합니다. 명시적 기능은 명백하게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기능입니다. ‘악한 것’, ‘좋은 것’처럼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반면 잠재적 기능은 이런 겁니다. “범죄도 순기능을 한다. 왜냐면 범죄를 해야 경찰이 먹고살기 때문이다.” “질병도 순기능을 한다. 질병이 있어야 의사, 간호사가 먹고살고 의학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즉 의도하지 않는 잠재적인 기능이지요. 남북 간의 적대적 공생관계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상대방을 도와주게 된 잠재적 기능인 것이죠. 이런 적대적 공생관계가 분단 상황에서 한 70년간 계속되니까, 이제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어떨 때는 일부러 ‘너희들이 좀 쳐들어와라. 좀 분란을 일으켜라.’ 그런 수준까지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식인이 침묵하고, 교회가 침묵하고, 언론이 침묵하니까 국민은 모르는 겁니다.
김희헌 그런 현실에서 기독교 신앙과 신학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한완상 요한복음이 기록하는 부활한 그리스도는 공관복음에서 말하는 부활한 그리스도보다도 절망하고 두려워하며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훨씬 더 따뜻하게 먹이고 더 현실적으로 돌보십니다. 그런 모습은 인류 역사의 혁명가들에게서는 볼 수 없습니다. 특히 폭력 혁명에서는 더욱 볼 수 없지요. 볼셰비키 혁명이 70년 만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폭력으로 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에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겨내는 길은 ‘발선’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발선이 무엇이냐면, 내 것을 빼앗아 치부하는 사람들이 배고플 때 ‘너희도 굶어봐. 배고파 죽어봐.’ 하고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먹을 것을 주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냐면, 은유적으로 이야기해 숯불을 머리 위에 얹어놓는 겁니다. 숯불을 머리 위에 얹어놓으면 얼굴이 벌겋게 되잖아요. 하나님이 주신 부끄러움의 능력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줄 알면 악을 반복하지 못할 것 아닙니까. 악이 자기의 악을 스스로 해체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폭력이 필요 없지요.
베드로가 칼을 뽑아 말고의 귀를 잘랐을 때 예수님의 입에서 터져 나온 메시지는 영원히 우리를 감동시키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깰 수 있는 변혁적 힘입니다.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마 26:52) 폭력을 쓰는 사람은 반드시 폭력으로 망하게 되어 있는데, 왜 너희는, 왜 수제자인 너 베드로는 ‘경호실장’ 노릇을 하려느냐 하고 나무라신 거죠. 아마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것이 늘 마음에 아팠겠지만,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는 예수님의 단호한 말씀이 초대교회를 움직인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그 메시지를 잊은 것 같아요.
김희헌 적대적 공생관계를 극복해나가는 ‘우아한 패배’라든가 ‘발선’은 기독교 내부 용어인 것 같지만, 사실 우리 역사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처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 너머, ‘공동창조’의 희망

김희헌 살아가면서 어떤 때는 의도적인 치우침을 지닌 열정(passion)의 삶을, 또 어떤 때는 여러 갈망이 평정과 조화를 이룬 온전한(integral) 삶을 추구하곤 합니다. 이제 팔십 대 중반이신데, 어떤 삶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번 자택에서 뵈었을 때, 선생님은 “가치 있게 죽는 길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하셨는데, 삶과 죽음에 대해 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한완상 이 나이가 되니까 죽음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생각하고, 잘 때 기도하면서도 생각합니다. 내게 위로를 주는 말씀 중 하나는 겟세마네에서 예수님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다는 거예요. 물론 더 큰 힘이 되는 것은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그다음 말씀이지만요. 아무튼 예수님도 죽음에 대해서는 초연하지 못하고 불안해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피땀을 흘리시며 “이 잔을 꼭 마셔야 합니까? 내가 꼭 죽어야 합니까? 이제 겨우 서른 초반이고 할 일도 많은데 왜 지금 내가 죽어야 합니까?”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이야기하신 것이겠죠. 죽음을 생각하면 늘 겁이 납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어머님 돌아가시고, 또 장모님 돌아가실 때 무엇을 느꼈냐면, 돌아가시기 전에는 그렇게 불안해하시던 분들이 돌아가신 후에는 얼굴이 너무 편안해 보이는 거예요. 두 어르신이 그렇게 편안한 얼굴로 돌아가실 수 있었던 힘은 죽음 너머에 대한 어떤 희망, 죽음이 끝이 아니고 전혀 알 수는 없지만 새로운 시작이라는 믿음 때문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문동환 박사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찾아뵙고 말씀드렸어요. “문 박사님, 제가 오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해도 될까요?” 그랬더니 “좋아요. 해보세요.”라고 답하세요. 그래서 “박사님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바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에요.”라고 하니까, 괜찮으시대요. 그래서 빌립보서에 나오는 바울의 이야기를 해드렸어요. 저는 감옥에 있을 때부터 빌립보서를 좋아했는데, 빌립보서를 보면 바울의 사생관이 나와요. 바울은 죽음을 선택의 문제로 봐요.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운명의 문제로 보죠. 그래서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다가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바울은 죽는 것과 사는 것을 선택의 문제로 보고 어느 것을 선택할지 고민해요. ‘내가 세운 교회를 살아서 돌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죽으면 더 좋은 새로운 지평의 세계가 열린다. 그래서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해요.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죽음에 대한 공포의 핵심이 폭력 아닙니까? 부활이 이긴 적은 죽음이라고 했잖아요. 사망의 권세를 이긴 게 부활 아닙니까? 그런 말씀을 드렸는데, 나중에 문 박사 딸이 아버지가 제 이야기를 좋아하셨다고 해요.
우리가 죽고 나면 천당에 가서 내 영혼만 영생할 거라는 이야기, 그건 기독교답지 않은 이야기예요. 그게 아니라, 거기서 쉬었다가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손을 잡고 공동창조(co-creation)를 위해 세상으로 내려가는 것이에요. 파루시아(parousia)에요. 그러면 데살로니가전서에 나오는 공중에 들림을 받는 것은 뭘까요? 그건 은유예요. 공중에서 들림받는 것 같은 상태에서 만날 수 있는 기쁨의 은유에요. 은유를 사실로 받아들이면 안 되죠. 파루시아 때 우리의 썩어질 육체의 몸이 썩지 않는 부활의 몸으로 바뀌면서 공동창조의 파트너가 되는 거예요. 우리는 객체로 남아 있으면서 하나님이 다시 창조하시는 것을 구경하는 게 아닙니다. 함께 창조자로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부활 내러티브에 천당 가서 거기서 영원히 거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삶의 끝이 비참하게 되는 것이 제일 불행한 것입니다. 내가 죽음을 준비한다고 한 말은 예수님과 같이 공동창조자로서 ‘협동적 종말’(collaborative eschaton), 즉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인간이 협동해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기쁨을 미리 앞당겨 체험한다는 이야기예요. 일종의 ‘예견적 사회화’를 통해서 부활 예수와 그의 따르미들이 함께 협동적 참여의 기쁨을 맛본다는 뜻이죠. 그것을 우리가 살아 있을 때 경험하면 좋지만, 살아 있을 때 다 못해도 육신이 죽은 후 그 길이 열린다는 것, 그 소망을 바라봅니다.
김희헌 산 자와 죽은 자의 한(恨)과 꿈을 공동체적으로 풀어가게 하시는 근거로서 하나님을 보자는 취지의 말씀에 신학적으로 깊이 공감합니다. 거기에는 삶의 또 다른 존재 방식인 ‘죽음’을 오늘의 ‘생명적 현실’로 경험할 가능성도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이후’를 살기 위한 지혜

김희헌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가 살아온 문명의 결과라는 성찰이 커지고 있습니다. 문명의 전환이라는 큰 과제 앞에서 신앙의 전환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한완상 오늘 인류가 당면한 위기에서 우리가 성찰해야 할 것은 지난 500여 년 동안 백인 중심의 기독교 문명이 주도한 세계의 역사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선택은 무엇이고 우리 교회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100여 년밖에 안 되었는데 우리 머릿속에 콱 박힌 게 백인 지배에 대한 숭모 의식입니다. 아까 말한 친일·냉전체제가 자리 잡을 수 있는 터가 기독교였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백인 지배세력이 쉽게 물러가지 않을 거라고 짐작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는 사건은 트럼프가 4년 만에 일으킨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즉 미국 백인의 인종주의적 기득권을 더 확대하려는 시도가 종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제는 백인 중심적 선교 시대는 끝났습니다. 백인 기독교 문명의 종말이 주는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합니다. 이번 팬데믹에 대해 백인 중심의 기독교 세계(Christendom) 나라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희망의 징조는, 우리나라를 위시해 중국, 대만 등 아시아 나라들이 잘 대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비백인 국가에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백인 중심적 사고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김희헌 신학적으로는 지금의 팬데믹 위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한완상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겪는 위기입니다. 옛날에도 비슷한 위기가 있었지만 국지적이었죠. 그때는 세계가 이렇게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전염병이 생기면 그 주위에서만 수백만이 죽었지 전 세계로는 안 번졌었는데, 지금은 전 세계로 번졌잖아요.
최근에 팬데믹에 관해 톰 라이트가 쓴 책을 읽었습니다. 그는 욥의 고난을 언급하면서 욥을 나무라는 친구들의 입장에 서면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욥의 고난은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라는 것입니다. 톰 라이트는 코로나19도 그런 관점에서 보는 것 같은데, 시원한 대답은 아니지요.
저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떤 사람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는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 취약계층이지요, 흑인은 백인보다도 10배 더 많이 죽고 있습니다. 여성도 남성보다 더 피해를 입고 있고요.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하나님, 성육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저는 억울한 고통을 당하는 현장에 반드시 나타나시는 하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님이 출애굽기에 나오는 하나님입니다. 성육신의 하나님은 동고(同苦)의 하나님, 억울하게 더 많이 죽는 사람들의 아픔을 당신의 아픔으로 생각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이 코로나19 위기를 통해 우리 가까이 계시는 동고의 하나님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수님은 성육신을 구체적 말씀으로, 실천적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케노시스로, 비움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데까지, 그리고 당신을 죽인 사람들을 용서하시는 데까지 나아가셨습니다. 여기서 ‘성육신 신학’과 ‘케노시스 신학’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예수’와 ‘부활의 그리스도’도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예수와 그리스도가 분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수가 되었습니다. 성육신과 케노시스가 비극적으로 분리되고 만 것입니다. 동고하시는 하나님, 자기를 비우되 살신성인의 비움으로 나아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잊어버렸어요.
김희헌 민중에 착안한 초기 화두에서부터 코로나19에 대한 대처 방식까지, 사회학적 방법론을 활용하면서도 신학적 해석을 하시고, 큰 원을 그리는 것 같은 일관된 말씀 고맙습니다.
한완상 김 박사, 좋은 질문 감사해요. 우리가 나눈 대화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 나아가야 할 길을 찾는 데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젊은 여러분이 할 일이 더 많습니다.
김희헌 고맙습니다.

 
 
 

2021년 3월호(통권 747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