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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아시아 신학 순례 10]
교회와현장 (2021년 1월호)

 

  동남아시아 신학(3) - 인도차이나
  

본문

 

인도차이나 신학의 전개

동남아시아의 중요한 한 축은 인도차이나반도이다. 인도차이나는 글자 그대로 인도와 차이나(중국)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이 지역에 속한 나라는 모두 7개국이다. 동쪽으로부터 대략 반시계 방향으로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버마),1 태국,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 및 싱가포르가 놓여 있다. 우리는 이미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신학을 살펴보았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나머지 5개국을 둘러볼 것이다.
인도차이나의 그리스도교 역사는 제국주의, 민족주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냉전, 동서 해빙(Détente) 및 동유럽 중심의 공산권 붕괴 등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래서 인도차이나 신학은 이런 역사적인 맥락에서 구성되었다. 유구한 그리스도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가령 현지 지도자(특히 신학자) 양성 소홀, 정치사회적 격변과 이에 따른 교회의 부침 등-인도차이나 신학은 부진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차이나 5개국은 각기 다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첫째, 인종적으로 다인종 사회인데, 주류 인종은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자신들의 종교, 문화, 언어 등을 고수하려 하기 때문에, 인도차이나 종교 역사에서 후발주자인 그리스도교는 주류 인종의 종교로 정착하지 못했다. 둘째, 종교적으로 불교가 대표적인 종교인데, 민족적·국가적 정체성의 핵심을 이룰 정도이다. 인도차이나 국가들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불교 이외의 종교(특히 그리스도교)에 실질적인 제한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정치적으로 보면, 태국을 제외한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은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를 경험한 역사가 있고, 현재는 각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후기사회주의 혹은 중국식 개방형 사회주의의 양상을 띠고 있다. 넷째, 그리스도교 종파 중에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대세를 이룬다. 가톨릭의 역사는 유구한데, 베트남을 제외하면 교세나 사회적 영향력이 크지 않다. 개신교의 역사는 19세기 전후로 시작되며, 국가별로 특정 교단의 영향력이 크다. 가령 미얀마에서는 침례교,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에서는 ‘크리스천&미셔너리 얼라이언스’(Christian&Missionary Alliance, C&MA), 태국에서는 미국 장로교가 주요 교단이다. 오늘날은 오순절/은사주의, 독립교회 등이 진출하면서 개신교의 판도가 다양해졌다. 위에서 언급한 ‘크리스천&미셔너리 얼라이언스’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교단인데, 설립자는 심슨(A. B. Simpson)이다. 이 교단은 국내선교를 강조하는 ‘크리스천 얼라이언스’와 세계선교를 강조하는 ‘복음주의 미셔너리 얼라이언스’가 통합된 조직으로 케직사경회 신학을 따르는 복음주의 교단인데, 처음에는 세계선교를 강조하는 선교운동으로 시작했다가 교단으로 발전했다. 이 교단은 복음 전도 중심의 선교에 주력하여 사회선교 전통이 약한 편이고, 그런 전통이 선교지에도 남았지만, 최근에는 구호 및 개발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상의 공통점으로 인하여 인도차이나 그리스도교는 다수 종교인 불교를 전제로 한 종교, 주류 인종이 아닌 비주류 인종 중심의 종교, 사회주의(공산주의)와 그리스도교의 대화가 중요한 종교, 다양한 판도를 지닌 종교(개신교의 경우)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따라서 인도차이나 신학의 우선적인 과제는 종교 간 대화, 소수 종교로서의 위상 확보, 사회주의(공산주의)와 그리스도교의 대화, 에큐메니컬 운동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주목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더 있다. 첫째, 인도차이나 각국의 그리스도교가 제국주의, 민족주의, 냉전 등의 격변을 겪으면서 고난의 길을 걸어왔지만, 최근 들어 교회성장을 보인다는 점이다. 통계를 통해 최근 50년간의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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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미얀마의 경우는 그리스도인 비율이 거의 10%에 이르고, 대부분 국가의 연평균 성장률이 2%를 넘으며, 급성장하는 교단으로는 오순절/은사주의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유독 태국에서는 눈에 띄게 정교회가 성장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인도차이나는 비주류 인종인 소수민족이 많은 지역이다. 이들이 국내의 정권투쟁이나 베트남전쟁 동원 등 국내외 정치상황에 연루되면서 대규모 난민 사태가 발생했다. 가령 전자로는 미얀마의 로힝야(Rohingya)족, 후자로는 라오스의 몽(Hmong)족을 들 수 있다. 더구나 이들 소수민족이 주류 종교가 아닌 그리스도교를 믿는 경우, 인종/정치/종교가 삼중으로 얽혀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이런 상황은 인종청소로 이어지기도 했다. 따라서 인도차이나 신학에서 난민을 비롯한 이주민에 대한 디아스포라 신학이 절실히 요구된다.
셋째, 인도차이나 국가 중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를 경험한 국가들은 캄보디아식 후기사회주의 혹은 베트남식 개방형 사회주의의 양상을 띠는데, 두 모델 모두 한국교회의 통일 연구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중 베트남식 개방형 사회주의는 소련식보다는 중국식에 가까운 것으로, 경제 변화를 추구할 뿐 정치 변화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베트남: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대화의 신학

베트남은 여러모로 한국과 유사한 면이 있다. 남북 분단기 시절, 한국은 남베트남(베트남공화국)과 동질감을 느꼈고, 베트남전쟁에 남베트남을 위해 참전하기도 했다. 이후 통일된 베트남은 독일과 더불어 한국의 통일을 위한 연구 사례로 삼을 수 있다. 물론 같은 통일이라도 독일과 베트남의 통일은 성격이 다르다.
통일 이전의 베트남 신학은 베트남 문화와의 관계 형성을 위한 토착화신학이 대표적인 분야였다. 이미 초기 가톨릭 선교사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가 가톨릭 교리를 토착화하여 서술함으로써 토착화신학의 효시를 이뤘다. 베트남 디아스포라 학자인 판(Peter C. Phan)은 『선교와 교리문답서: 17세기 베트남의 알렉상드르 드 로드와 문화화』(Mission and Catechesis: Alexandre de Rhodes and Inculturation in Seventeenth-Century Vietnam)에서 드 로드의 선교신학을 토착화의 발전된 개념인 문화화의 관점에서 재조명했다.
드 로드의 토착화신학은 크게 두 가지 유산을 남겼다. 하나는 새로운 베트남 문자 탄생에 기여한 것이다.3 베트남 문자에는 세 종류가 있다. 중국의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거나(쯔뇨, chu nho), 뜻을 표시하는 한자와 음을 표시하는 한자를 병용 표기하거나(쯔놈, chu nom, 한국의 이두와 비슷), 베트남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쯔쿠옥응으, chu quoc ngu) 것이다. 세 번째 표기법은 드 로드의 스승이 발명했는데, 드 로드의 『사전』(Dictionarium)과 『교리문답서』(Catechismus)를 통해서 널리 보급되었고, 여러 선교사에 의해서 발전되다가, 훗날 프랑스 식민정부 정책에 의해 대중화하면서 오늘날 베트남 문자가 되었다.
드 로드의 두 번째 기여는 ‘문화화’라고 할 수 있다. 판에 의하면, 그는 문화화 신학을 위해 다음과 같이 노력했다.

그[드 로드]는 베트남 문화와 자신의 문화 사이의 차이와 토착 문화에 적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깊이 인식했을 뿐 아니라, 당시 베트남-[북쪽의] 통킹과 [남쪽의] 코친차이나 모두-의 삶의 모든 측면에 대해 실제로 익숙하게 되고자 무진 애를 썼다. 그는 또한 베트남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될 교리문답서의 방법을 고안하고 실행했다.4

쉬라이터(Robert J. Schreiter)가 판의 『선교와 교리문답서』 서문에서 간명하게 말했듯이, 드 로드는 진정한 문화화의 모범인데, 그 문화에 적합한 형태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뿐 아니라 나아가 그 문화의 건설에까지 기여했다.5 이런 맥락에서 이전에는 선교와 식민주의라는 관점에서 그를 비난했으나, 최근에는 베트남 공산정권이 나서서 그의 역사적 업적을 인정하고자 파손된 기념비를 복원하고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6
한편 통일 이후 베트남의 그리스도교는-신학을 포함하여-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했다. 분단기에 북베트남교회는 교인들의 탈북으로 인해 공동화 현상을 겪었고, 남베트남교회는 북으로부터의 종교 난민 증가, 친정부적 성향, 반공주의 강화 등의 특성을 보였다. 이런 양상은 우리나라와 여러모로 닮은 꼴이라고 할 수 있다. 북베트남교회는 종교 본연의 최소한의 임무조차 감당하기 어려웠고, 남베트남교회는 예언적 기능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종교의 예언적 기능에 관하여 손꼽히는 사건은 그리스도교가 아닌 불교의 사례로, 1963년 독재정권의 불교 탄압에 맞섰던 틱광둑(Thich Quang Duc, 釋廣德) 스님의 분신(소신공양)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은 반정부 시위, 군사 쿠데타로 이어졌다.7
통일 이후 베트남의 전반적인 종교정책은 신앙(믿음, belief)과 종교(religion)로 나뉜다.8 전자는 내적 신념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외적 조직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는 거시적으로는 무신론 이데올로기이기에 반종교적(반그리스도교적)이지만, 미시적으로는 인권의 일환으로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공산국가들은 헌법과 법률의 반종교적 조항을 신앙/비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내용으로 바꾸고, 종교단체를 통제하기 위한 등록법을 포함시켰다. 이런 상황은 러시아, 몽골, 중국, 베트남 등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통일 이후 베트남 그리스도교는 ‘공산주의 사회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사역할 것인가?’라는 교회론적·선교학적 질문에 봉착해 있다. 이 질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통제 사회인 공산국가에서 자유와 통제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이 문제는 여러 공산국가에서 선교사가 추방되어 인근 지역으로 재배치되는 오늘날의 상황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가 인간 해방을 내세우는 만큼 교회의 긍정적인 사회참여를 통해 교회와 국가 간의 만남의 장을 여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도안(Nguyen Y Doan)은 프랑스 유학 중 전쟁이 일어난 베트남으로 귀국하여 반전평화운동을 벌였고, 통일 이후에는 새로운 환경에서 성속(聖俗)을 연결하는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는 통일 이후에 애국에 대한 깊은 의미를 따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서, 교회와 국가는 각각의 영역이 있어서 구분되기도 하지만, 삶에는 종교 여부에 상관없이 공통된 부분이 있기에 일상성과 종교성을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9
현재 베트남 신학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통일 이후 신학교육이 재개되어 유일하게 공인된 베트남신학교 이외에도 다른 신학교가 증가하였다는 것과 연구기관들도 설립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하노이에 있는 사회과학원 산하의 베트남종교연구원에는 많은 연구원이 소속되어 있고, 학술지도 발간하고 있으며, 국제교류가 이뤄지고 있다.10
한편 베트남 신학과 관련하여 한국 신학이 관심을 기울일 분야가 있다.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할 당시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 문제가 최근 거론되고 있는데, 한국 신학은 평화와 화해의 신학을, 한국전쟁을 넘어 베트남전쟁에도 적용할 것을 요청받게 될 것이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종교민족주의와 신학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는 베트남과 태국이라는 상대적인 강국 사이에 놓여 있다. 세 나라 모두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의 역사가 있고, 현재는 다양한 정치 체제를 채택하면서 불안정한 이행기를 겪고 있다.
20세기 후반에는 종교의 미래에 대한 이론 중 문명이 발달하면 종교가 사라진다는 서구식 세속화 이론이 도전을 받으면서, 종교는 사라지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 내에서 그 역할을 하게 된다는 종교의 재성화(re-sacralization) 이론이 등장했다. 이 이론은 냉전 이후의 세계적 갈등 요인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문명(특히 종교)이라고 주장한다. 헌팅턴(Samuel Huntington)식 문명충돌론과 그 궤를 같이한다. 문명충돌론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례가 종교민족주의인데, 인도차이나의 혼란스러운 이행기에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세 나라의 신학은 충분히 체계화되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11 세 나라 중 미얀마가 국가 규모나 그리스도교 교세 측면에서 우위에 있기에 미얀마 신학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다른 두 나라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미얀마 그리스도교는 ‘선교와 식민주의’라는 관점에서 외래 종교, 외세 종속적인 반민족주의적 종교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미얀마의 중심 세력인 불교 민족주의자들은 미얀마 그리스도교가 외래 종교이자 외세종속적 종교이기 때문에, 1966년 서구 선교사들이 출국한 이후 그리스도교는 급속히 쇠퇴하고 불교로 개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망(Pum Za Mang)에 의하면, 예상과는 달리 미얀마 그리스도교는 고난 중에 신앙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성장세를 보이면서 토착 그리스도교로 정착해나갔다.12 바로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는 보편주의와 특수주의라는 이중적 특징을 지니고, 따라서 특수주의 중 하나인 민족주의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망이 주장하기를, 종교적 개종에는 선교사 활동, 전통종교, 사회변화 및 정치적 각성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는데, 소수민족인 친(Chin)족의 경우 개종은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민족적 정체성과 그리스도교가 서로 밀접하게 뒤섞인다.13 결국 주류 인종인 바마르(Bamar)족과 불교의 관계나 비주류 인종인 친족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나 모두 종교민족주의에 속한다. 이런 점에서 종교 및 인종 갈등에 대한 화해 신학이 요청된다.
캄(Zam Khat Kham)은 불교 중심의 버마 민족주의 앞에서 풍전등화의 처지에 있는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정체성을 유지하고 증언할 것인가에 대해 신학적 응답을 한다. 그는 종교개혁가 루터의 두 왕국설(곧 하나님께서 세상 통치를 위해 국가와 교회 모두를 사용한다는 사회사상)에 기초하여 개인의 증언, 직업을 통한 사회 봉사, 권세에 대한 순종, 환란 중의 인내 등을 현실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그는 심지어 환란 중에 인내하는 방법으로 중보기도 같은 구체적인 종교 행위도 추천하고 있다.14 소수종교의 현실이 반영된 신학이다.
한편 미얀마 신학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도 답변하고자 한다. 먼저 빅(Edmund Za Bik)은 전통신학 중 하나인 개혁신학을 미얀마적 시각에서 비판한다. 그는 개혁신학의 특징으로 하나님 중심성(the Centrality of God), 그리스도 중심성(Christocentricity), 다양성(Pluri-formity)을 손꼽으면서, 특히 후자를 중시한다. 그는 개혁신학이 결코 획일적이지 않고, 따라서 다양성을 위해서는 양자택일의 인식론을 지양하고 아시아 종교의 영적 통찰력과 가치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15 또한 아웅(Salai Hla Aung)은 미래 신학의 주요 주제인 생태를 다룬다. 그는 종교와 과학의 이분법, 생태 문제가 첨예하게 나타나는 개발도상국(후진국)인 미얀마의 상황 등을 염두에 두고 생태신학을 추구한다.16 다만 논증 과정에서 미얀마적 맥락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미얀마의 이전 수도요 최대 도시인 양곤[Yangon(Rangoon), 현 수도는 네피도(Nayphidaw)]에는 침례교 계통의 유서 깊은 미얀마신학교(Myan-mar Institute of Theology)가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사정권기에 정부가 대학교육을 통제하고 약화시켰는데, 이때 통제가 덜한 신학교가 학문성 높은 교육기관의 역할을 했으며, 최근에는 여성의 신학교 진학율이 높다는 점이다. 미얀마의 대표적인 여성신학자로는 미얀마신학교 학장을 역임한 안나 마이 사이 파(Anna May Say Pa)를 들 수 있는데, 그녀는 미얀마 사회의 약자와 억압에 대해서 구약의 예언자 전통을 강조하는 에큐메니컬 해석학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미얀마 신학과 관련하여 반드시 기억할 인물은 평신도 지도자 우쪼딴(U Kyaw Than)으로 그는 세계기독학생총연맹(WSCF)의 부총무와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총무 등을 역임하면서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한편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지역의 한국교회 선교와 관련된 사안 중 하나는 한국교회가 특히 캄보디아에서 신학교 설립 등 신학교육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이다. 이런 선교적 노력이 현지 교회와 연합하여 현지 신학자를 양성하는 등 현지 신학 발전에 어떻게 기여하는가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태국: 다양한 에큐메니컬 문제를 다루는 신학

태국은 20세기 인도차이나의 전반적인 상황과는 다소 다른 국가이다. 태국은 주변 나라들과는 달리 식민지가 된 적이 없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의 역사도 없다. 따라서 태국은 인도차이나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정세를 유지해왔다. 태국은 오히려 인도차이나에서 지속적으로 벌어진 전쟁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는 이웃 나라로서 전쟁 특수와 퇴폐문화라는 경제 발전의 명암을 경험하였다. 또한 불교가 국교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절대적인 위상을 점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태국 신학의 주제는 다양하다.
태국 개신교의 경우, 선교 초기에 장로교가 주요 교단이었고, 이후 장로교 중심의 태국교회들이 모여 1934년 연합 교단인 시얌교회(The Church in Siam)를 결성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태국 개신교의 대표적 교단인 태국기독교총회(Church of Christ in Thailand)가 되었다. 태국기독교총회는 장로교, 특히 미국북장로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다양한 면을 나타냈다.
첫째, 미국북장로교와 마찬가지로 에큐메니컬 운동에 적극적이다. 해방 후 첫 선교사라는 최찬영 목사는 태국에 가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선교에 익숙할 뿐 선교사가 아닌 현지 교회가 주도하는 새로운 에큐메니컬 선교에 익숙하지 않아 곤경에 처했음을 토로할 정도였다.17 당시 최찬영 선교사는 물론이고 선교 본부도 선교사가 주도하는 전통적인 선교에만 익숙했는데, 선교를 현지 교회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교회 간의 협력사역으로 이해하는 에큐메니컬 선교관에 따라 태국교회가 최 선교사에게 태국교회의 지도를 받도록 하자 적지 않게 당황한 것이다. 선교사 시대는 지나고 선교동역자의 시대가 다다른 것이다.
태국 신학은 다양한 에큐메니컬 문제를 신학화했다. 태국은 태국기독교총회, 교단 및 선교단체 협의체인 태국복음주의협회(The Evangelical Fellowship of Thailand, EFT), 태국침례교연맹 등 3개 개신교 조직이 태국개신교위원회(The Committee of Protestant Churches in Thailand)를 구성하여 에큐메니컬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다양한 에큐메니컬 신학 중 사회윤리신학자요 세계교회협의회 개발국(Commission on the Churches’ Participation in Development) 총무였던 스리상(Koson Srisang)은 에큐메니컬 운동의 사회윤리에서 권력, 참여, 구체적인 상황 등에 대한 심화 연구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이런 연구에는 제3세계, 특히 태국과 관련된 관광에 대한 신학적 성찰도 포함된다.18 이 밖에도 종교 간의 대화 신학이 중요해서, 관련된 그리스도교 내외의 모임이 빈번하게 개최되었다. 가령 현대 영성가로 유명한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이 수도원 세미나 기간 중 사망한 곳도 바로 방콕 인근 지역의 수양관이었다. 물론 1972-73년에 걸쳐 “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이라는 역사적인 주제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세계선교와전도위원회(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회의가 개최된 곳도 바로 방콕이었다.
둘째, 장로교는 전통적으로 교리에 민감하고 신학 발전을 중시하는데, 태국 신학은 예상 외로 신학 작업이 활발하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한 답을 얻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자. 먼저 로르군파이와 퐁바린(Seree Lorgunpai and Sanurak Fongvarin)은 태국의 신학교육이 기금 및 교원 부족, 낮은 영어 구사력 등의 이유로 아직 수준이 높지 않고, 태국 그리스도인은 대개 영어 번역본인 신학 서적을 잘 읽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주로 교회 내 성경학교에서 공부하며, 학자보다는 존경받는 목회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19 한편 코야마(Kosuke Koyama)는 신학생 중 한 명이 서구 중심의 이론을 교실에서 공부할 때는 도대체 능률이 나지 않다가, 전도여행으로 현장에 나가자 매우 창조적이 되어 능수능란하게 일한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자기와 학생의 위치가 반대가 되어 “그는 교수가 되었고 나는 눈이 충혈된 학생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학교가 그에게 혹은 그가 학교(전통적인 ‘서양 커리큘럼’을 가진)에 적응하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신학의 학문적 탁월성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그것의 가치는 사람에게 봉사하는 탁월성의 의미로 발휘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20 20세기 선교계에서 비판받았던 학교 중심의 서구식 신학교육의 문제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태국은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가 아니지만, 종교를 통제하는 면에서는 여타 인도차이나 국가들과 공통점을 보인다. 태국에서 종교단체가 등록하지 않으면 불법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초창기에 개인적으로 에큐메니컬 운동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태국의 에큐메니컬 교회와 협력한 사례가 있다. 현재 태국에는 위에서 언급한 3개 개신교 조직 이외에 태국안식교, 태국가톨릭주교회의 등 총 5개 조직이 등록되어 다양성이 확보된 편인데, 수많은 미등록 교회들로 인하여 혼란이 일고 있다. 이 분야에서도 건전한 에큐메니컬 신학이 필요하다.

인도차이나 신학의 전망

인도차이나는 동남아시아의 여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다인종, 다종교, 다문화 사회이다. 더구나 인도차이나는 아시아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영향이 광범위하게 미친 지역 중 하나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도차이나 신학에는 기존의 아시아 신학의 주제는 물론이고,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대화 및 후기공산주의 사회 연구가 매우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21 무엇보다 인도차이나 그리스도교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신학 발전이 더딘데, 이 분야에 대한 개선이 요청된다.
한국교회는 아시아를 주선교지로 삼아왔다. 동유럽 공산권의 붕괴와 인도차이나의 사회주의 이행기 이후 기존의 선교지인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등에 이어 인도차이나가 새로운 중심으로 각광받아 왔다. 한국교회의 선교가 인도차이나 신학의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또 하나의 아시아 신학의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註)

1 이 국가의 명칭은 논쟁거리 중 하나이다. 사실 ‘미얀마’와 ‘버마’는 같은 어원에서 나온 단어이다. 군사정부가 1989년 식민주의가 연상되는 버마 대신 미얀마를 택한 이후 공식 국명은 미얀마이며, 이런 조치에 반대하는 측은 버마를 선호한다. 국제연합과 대다수 나라가 미얀마를 사용한다.
2 Kenneth R. Ross, et al. ed., Christianity in East and Southeast Asia (Edinburgh: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20), 496-499.
3 Peter C. Phan, Mission and Catechesis: Alexandre de Rhodes and Inculturation in Seventeenth-Century Vietnam (Maryknoll, NY: Orbis, 1998), 31-35.
4 Peter C. Phan, 위의 책, 192. 토착화, 문화화 등 개념에 대한 논의는 191-192의 각주 1-4를 볼 것.
5 Peter C. Phan, 위의 책, xiii.
6 Peter C. Phan, 위의 책, 36.
7 인도차이나 국가의 인명(人名)은 파악하기가 어렵다. 한자 문화권의 전통이 강한 베트남에서는 ‘성’과 ‘이름’을 모두 사용했고, 성을 이름 앞에 표시하는 동아시아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은 이름만 사용해왔고,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부칭이나 지역명, 존칭 등을 추가했다. 최근 들어 성을 도입하는 경향이 있는데, 국가에 따라 성을 이름 앞에 쓰기도 하고 뒤에 쓰기도 한다. 더구나 영어로 표기할 경우, 성과 이름의 순서가 각국의 고유한 순서를 따른 것인지 유럽식을 따른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아시아 신학 연구에서는 성명 확인이 첫 번째 고비이며, 완벽을 기하기 어려운 탓에 전문 서적에도 오류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물론 모든 사람이 성을 갖게 된 것은 인류 역사상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근의 일이다.)
8 Kenneth R. Ross, 앞의 책, 189-192.
9 Nguyen Y Doan, People’s Theology in Vietnam: Collected Meditations (Delhi: ISPCK, 2004), 57, 61.
10 김흥수, “아시아기독교사 연구를 찾아서: 한국인 교회사가의 아시아 여행”, 「신학과 현장」 22집(2012): 72-74.
11 Simon P. K. Enno, “Myanmar Theology”, Dictionary of Third World Theologies, eds. by Virginia Fabella & R. S. Sugirtharajah (Maryknoll: Orbis, 2000), 151.
12 Pum Za Mang, “The Politics of Religious Conversion among the Ethnic Chin in Burma”, Studies in World Christianity 22/2(2016): 149.
13 Pum Za Mang, “Buddhist Nationalism and Burmese Christianity”, Studies in World Christianity 24/3(2018): 188-211.
14 Zam Khat Kham, “Burmese Nationalism and Christianity in Myanmar: Christian Identity and Witness in Myanmar Today” (Unpublished Ph.D. Dissertation, Concordia Seminary Scholarship, 2016), vii, 218.
15 Edmund Za Bik, “The Challenge to Reformed Theololgy: A Perspective from Myanmar”, Toward the Future of Reformed Theology: Tasks, Topics, Tra-ditions, eds. by David Willis & Michael Welker (Grand Rapids: Eerdmans, 1999), 77-78, 83.
16 Salai Hla Aung, God’s Providence in Nature: Theological Reflections on Nature’s
Ecosystem and our Responsibilities (Delhi: ISPCK, 2011).
17 최찬영, 『최찬영 이야기: 해방 후 최초의 선교사 자서전』(죠이선교회, 1995); 임윤택, 『해방 후 최초의 선교사 체험기』(두란노, 2009).
18 Koson Srisang, ed., Perspectives on Political Ethics: An Ecumenical Enquiry (Geneva: WCC, 1983), xi; Koson Srisang, eds., Liberating Discovery: Asian Enquiry into Theological Reflection on Tourism (Bangkok: Ecumenical Coali-tion on Third World Tourism, 1986).
19 Kenneth R. Ross, 앞의 책, 165.
20 고수케 고야마, 이선이 옮김, 『손잡이 없는 십자가』(브엘북스, 2020), 50-52.
21 다음을 참조할 것. 안교성, “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선교신학과 실천의 변화”, 「기독교사상」 725호(2019. 5.): 9-20.


안교성 | 교회사를 전공하였다. 『한국교회와 최근의 신학적 도전』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 2월호(통권 7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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