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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21년 1월호)

 

  강희남 목사 인터뷰
  

본문

 

* 이 글은 1990년대 통일운동을 이끈 통일운동가 강희남 목사(1920-2009)와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1950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강희남은 문익환 목사와 함께 1985년에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을 결성하였으며,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해체 후 1990년에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을 결성하였다. 이 인터뷰에서 강희남은 민통련, 전민련의 결성과 활동, 통일운동의 과제 등을 이야기한다.
이 인터뷰는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은 한신대 프로젝트(“한국 개신교가 한국 근현대의 사회·문화적 변동에 끼친 영향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 연구는 2002년부터 3년 동안 진행되었는데 인터뷰를 언제 어디서 했는지는 불분명하다.(인터뷰 내용상 2002년으로 추정된다.) 강희남을 인터뷰한 조순 박사는 당시 한신대학교 학술원 연구교수였다. ‐편집자 주


조순 먼저 목사님의 인생 과정, 목회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십시오.

강희남 나는 본래 김제 백산면 농촌에서 태어났는데, 우리 집은 유교 집안이었어요. 젊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항일운동을 하고 그랬어요. 항일운동 같은 것을 모르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항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냈는데 나중에야 그것이 참 부끄러운 일인지 알고, 8·15 후부터라도 내가 지난날 항일운동 같은 것을 모르고 지낸 것을 속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목사가 된 이후로 무엇인가 좀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승만 때도 그랬지만 특히 5·16 이후로 박정희 때, 이 불의한 정권에서 그때 목사님들이 솔찬히 말들을 하긴 했어요. 그렇지만 이렇게 총칼로 나라를 빼앗은 불의한 정권에 대해서 농촌 이웃 교회들 중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목사는 하나님의 집을 지키는 번견(番犬)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나님 집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나는 번견이야. 집을 지키는 개야, 개.’ 그래서 ‘도적이 오는 것을 보고 짖으면 자기 일은 끝나는 거야. 짖기만 하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그 개로서 짖는 역할을 하는 목사들이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짖는 것이 나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박정희 때 짖으면 잡아갔어요. 그렇지만 같이하던 목사님들이 있긴 있었어요. 전북에도 제법 있었어요. 하지만 우후죽순으로 나왔다가 다 들어갔어요. 왜냐하면 목회는 편안하게 안보를 해야 하는데 목사가 만약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양 무리는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어요.
내가 처음에 나왔을 때는 한 열댓 분 정도가 나왔어요. 그때는 참 신이 났어요. 1975년 박정희 때를 그렇게 지냈어요. 그러나 나중에는 다 들어갔어요. 교회가 염려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목회철학이 달라. 내가 교회의 주인이 아니야.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야. 그러니까 나는 개로서 짖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교회가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는 일이야. 이것이 나의 목회관이야.”라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다른 목사님들은, 자기가 교회의 주인이니 자기가 잘못하면 교회가 망한다는 거예요. 나는 안 된다, 그런 목회관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나는 혁명적인 사람이에요. 아주 혁신적인 사람이죠. 기질이 그래요. 남이 생각지 않는 것을 생각해내요. 목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을 지키는 번견이라는 착상도 다른 목사님들은 못 해요. 그러나 난 그런 착상을 한 거예요. 그래서 감옥에 간다고 생각하고 교회에서 설교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에 나가서 강연도 했어요.
몇 번 그렇게 하고 나니까 감옥에 가게 됐어요. 모두 다 그런 것을 두려워서 못했지만, 나는 ‘아니다. 내가 저 불의한 박정희란 놈에게 도전장을 내고 싸우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명색이 목사이고 저 상대는 폭군인데 싸워서 내가 감옥에 갔다고 하면 사람들이 누구보고 나쁘다고 할 것이냐? 그렇다고 하면 내가 감옥에 가는 그 자세가 이 지역사회 사람들에게 하나의 교육적인 것이 되는 거야. 누구 보고 나쁘다고 할 것이냐?’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목회하면서 지역사회 사람들에게 다소 보여주고 하니까 지역사회 사람들이 그래요. “강 목사만 같으면 벌써 통일된다.” 나는 ‘박정희와 싸우다가 내가 감옥에 가면 그 몸짓이 국민들에게 교육이 되는 것이야. 그래서 내가 목회하는 대상은 교회 울타리 안에 있는 교인들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수천 명, 수만 명에 대해 나는 간접적인 목회자로서 책임이 있는 것이야. 이 사람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르고 무엇이 나라사랑인지 가르쳐줄 책임이 목사에게 있는 것이야. 양 무리만 생각하는 그런 목회는 아니다. 내가 박정희와 더불어 싸우다 감옥에 붙들려 가면 이것이 간접적으로 지역사회에게 보여주는 것이야. 박정희를 나쁘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으니까, 목사들도 말하지 않으니 나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잡혀갔지요. 그전에도 박정희를 나쁘다고 많이 얘기했는데 내가 가만히 볼 때 박 정권이 참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양일동 씨의 통일당이라는 게 있었어요. 그때 전주에서 연차대회를 한다고, 야당에서 한자리하던 양일동 씨가 나를 강사로 오라고 그래요. “정당 집회를 하는 데 목사가 무슨 강의를 하냐. 나는 못 간다.” 그러니까 내 성향을 양일동 씨가 알아서 강제로 끌고 갔는데, 거기에 정치가들이 다 모였어요. 그런데 그날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아주 정확하게 박정희에 대해서 얘기했어요. 물론 그전에도 했지요. 그전에 전국 기장 청년회가 전주에서 모임을 가졌어요. 그때도 내가 박정희를 호지명과 비교해서 말했으니까. 그때는 호지명에 대해서 말을 못 했어요. 호지명을 말하면 잡아가거나 큰일났어요. 그러나 나는 잡아가든지 말든지 호지명과 박정희를 비교해서 청년들에게 말했어요. “호지명 같은 사람은 결혼도 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자신을 바친 사람이 아니냐?” 이런 얘기를 했어요.
양일동 씨 초청으로 간 그날, 연설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잡혀갔어요. 처음에 나는 ‘민주화운동이 첫째다. 통일운동은 제2차 문제다. 다급한 것은 민주화운동이다. 계급모순부터 해결하고 민족모순은 나중에 한다.’고 생각하면서 통일운동은 별로 관심하지 않고 민주화운동에만 열중하다가 나중에 깨달은 바가 있어요. ‘이 민주화운동, 계급투쟁, 계급문제 이 모순이 통일운동과 동전의 양면이야. 손바닥하고 손등은 같은 거야.’ 그것을 깨달은 다음에 ‘아! 그렇다. 통일이 안 되면 민중해방도 될 수가 없다.’고 확신했어요. 그래서 통일운동에 늦게야 뛰어든 것이 1990-91년도부터였어요.
그런데 문익환 목사가 어디서 만나서 정당을 하나 하자고 그래요. 그래서 나는 정당 같은 일은 관심이 없다고 하니, 그러면 무슨 국민운동을 하자고 그래요. “아, 그건 좋다. 내가 지금까지 하는 일이 그렇다.” 그래서 만든 것이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이었어요. 그때 민통련 창립멤버 중 괜찮은 사람이 참 많았어요. 장기표, 이부영, 이해학 목사. 이창복, 윤관웅, 이두수, 예장 교회 목사 이런 분들이었어요. 임채정 국회의원도 창립멤버였는데 그때는 제법 잘했어요. 나는 돈도 못 내고 그러는데 문익환 목사는 돈도 알아서 잘 내고요. 문익환 목사가 의장이고 내가 대의원 총회 의장이라고 그렇게 했어요.
얼마 있다가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라는 문제가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민통련에서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 쪽으로 간다고 그래요. 그 회의를 할 때 나는 촌에 사니까 참석을 못 했어요. 그런데 올라와 보니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그래요. 나는 ‘이것은 안 되는 일이다. 우리 민통련은 어느 정당 이런 데 속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나도 개인적으로는 김대중과 친하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할지언정 공식적으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문익환 목사라든지 다 그렇게 했단 말이에요. 그래도 나는 ‘개인적으로는 나도 그렇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어요. 그때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어요. 비판적 지지 때문에. 이재오도 같이했었는데 나갔어요. 많이들 나갔어요.
사람들이 많이 나가 우리 민통련이 분열 상태에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그때 우리 민통련이 발전적인 해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해체를 해야 한다고 하니 깜짝 놀라요. 이창복이 총무하고 문익환 목사가 의장을 했는데, 우리 민통련이 책임지고 발전적인 해체를 하자고 내가 몇 번이고 말하니, 나중에는 내 말에 긍정을 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해체하는 쪽으로 갔어요.
그때 해체식을 한 후에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 생겨났어요. 향린교회에서 오전에 해체식을 했는데 전혀 섭섭한 마음 없이 전부 기쁜 마음으로 해체를 하고, 오후에는 연세대 대강당에 가서 모임을 가진 거예요. 그때가 전두환 때인데 나는 그 모임에 대해서 걱정이 많았어요. 이것이 어떻게 될 것인가 염려가 되었는데, 가보니까 그 대강당이 꽉 찼어요. 4-5천 명이 모였어요. 깜짝 놀랐지요. 그것을 보고 이 민족은 희망이 있다고 느꼈어요. 나는 그렇게 못 모일 줄 알았는데 꽉 찼어요. 어찌나 기쁜지. 나는 그때 흥분이 돼서 “예수님 탄생과 석가모니 탄생만이 성탄절이 아니다. 오늘은 우리 민중의 통일의 옥동자가 탄생하는 날이다. 오늘이 성탄절이다.”라고 말했어요. 우리는 모두 이선으로 물러나고, 이창복과 이부영이 책임을 맡았어요. 내가 발전적으로 해체하자고 했던 것이 100% 성공했어요.
그렇게 하다가 문익환 목사가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의장을 하다가 사건이 생겨서 내가 부의장을 하다가 의장을 했어요. 그때부터 내가 10년 동안을 했어요. 내가 범민련을 할 때는 어디에다가 전화를 못 했어요. 전화하면 안 돼요. 통일운동을 하면서 기막힌 서러움도 많이 당했어요. 지금의 통일운동, 통일연대, 지금 사람들은 다 복 받은 사람들이에요. 통일운동을 하면서 서러움의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얼마쯤 지나서 이해학 목사, 이창복, 조성우 이런 사람들 한 30여 명이 떨어져 나갔어요. 그 사람들은 나가면서 “우리는 북과 관계없는 새통체(새로운 통일운동체)를 한다.”라고 했어요. 아니 이놈들이 나보고 북과 관계한다고 간첩이라고, 고정간첩 1호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통일운동 안 된다.’는 것은 사실이었어요. 될 수가 없었어요. 범민족대회라는 것 한 번씩 하는 그거밖에는. 어디 광고 한 장 붙일 수도 없고. 「한겨레신문」은 우리 범민련이 뭐 한다고 돈을 주고 광고를 실어달래도 안 해줬어요.
새통체 하는 것은 안기부 놈들이 배후에서 다 도와주는 거였어요. 결국 우리는 몇 사람 안 남았어요. 기막히게 서러운 일이었어요. 우리는 8·15 범민족대회 전에 통일선봉대라는 것을 보내서 남한 전체를 해마다 돌고 그랬어요. 그런데 새통체에서 보낸 통일선봉대 수가 훨씬 많았어요. 대전에서 서로 만나서 한남대학에서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나 서러움을 당했는지. 운동하는 사람들끼리 말이에요. 엊그제 우리와 같이하던 사람들끼리 말이에요. 거기서 40명의 젊은 사람들이 창피를 당하고 모두 혈서를 썼어요. 그전에도 혈서를 쓴 적이 있었어요. 그것은 우리의 적인 안기부를 향해서 쓴 것인데, 그해는 40명이 새통체를 향해서 썼어요. 그때 내가 그것을 한양대 벽에 붙여놓고 통곡을 했어요. 타협은 절대 죽어도, 조금이라도 못한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이창복, 이해학, 조성모, 박순경 모두 가버렸어요. 타협하는 거 나는 못 한다, 나 한 사람 남아도 범민련 한다고 다짐했어요.
구십몇 년도에는 우리 남은 사람들 중 서른두 명이 저놈들한테 붙들려갔어요. 우리같이 작은 단체에서 서른두 명이 붙들려갔어요. 김영삼이가 우리를 아주 말살하려고, 씨를 말리려고 했어요. 그런 서러움을 겪고 내가 범민련을 지켜왔어요.
첫째로 우리 범민련이 주장하는 것은 연방제예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연방제인데, 1국가 2체제, 2지방정부 이것을 북쪽에서 김일성 주석이 말했다고 해서 말하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나 나는 이것은 옳다고 생각했어요. ‘북은 사회주의체제, 남은 자본주의체제 그대로 가는 거다.
1국가 2체제니까 2지방정부야. 그리고 대통령만 돌아가면서 2년마다 한 번씩이든지 하고, 국회는 연합국회를 하고 중앙에 두는 거다. 아, 이거 얼마나 좋은 것인가. 북에서는 고려연방제라고 하는데 나는 이름을 다르게 해서라도.’라고 생각한 거에요.
지금의 아메리카는 연방제예요. 러시아도 연방제예요. 영국도 연방제예요. 그런데 왜 우리는 못합니까? 북에서 말했기 때문입니까? 북에서 먼저 말하면 우리가 따라가면 안 되는 것입니까? 북에서 주장하는 것이라도 좋은 것이면 따라가야지요. 우리 민족을 위해서 말이에요. 그런데 연방제를 굳이 말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에요. 못하게 하니까. 왜 그러냐면 양키 놈들이 흡수통일을 주장하기 때문이에요. 독일이 흡수통일된 것이 우리에게는 아주 걸림돌이에요. 그 나라가 그렇게 했으니까 우리도 흡수통일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것이 아주 철저해요. 그러니까 우리 관의 보안세력이 다 그렇게 가는 거예요. 그래서 연방제를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통일운동은 괜찮은데 연방제를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때 나는 공식석상에서 “흡수통일은 내가 피를 흘리고 죽어도 막는다. 북한 동족은 지금 현재 자주 국가다. 그런데 흡수통일 해서 북한까지 끌어들여서 양키 놈들의 노예로 만들려고 하느냐? 남쪽이 종노릇하는 것도 원통한 일인데 북한의 내 동족까지 끌어들여서 양키 놈들의 노예로 만드느냐? 흡수통일은 내가 죽어도 못한다.”라고 주장했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지금은 남쪽에서 연방제 말하는 단체가 하나도 없어요.
내가 범민련을 떠난 후 범민족대회도 못 해요. 내가 10차 범민족대회까지 하고 떠났어요. 지금 11차 범민족대회를 해야 하는데 없어요. 범민족대회를 하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이 민족회의예요.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들이 참여해 1년에 한 번씩 범민족대회를 하는데 이 민족대회가 서로 같이 만나서 대회를 하는 것이에요. 이거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런데 그거 못하게 하니까 10년 동안 내가 문서로만 연락해서 형식으로만 한 거예요. 그렇게라도 해야 역사가, 통일운동 역사가 얼마나 뜻있는 것인가를 알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범민족대회도 못 하고, 연방제라는 말은 지금 범민련 규약에서 삭제해버렸어요. 이것이 통일운동입니까? 나보고 지금 범민련에서 자꾸 들어오라고 해요. 내가 이렇게 하는데도 자기들이 나를 명예의장이라고 해놓고. 나는 가지 않아요. 나는 타협주의자들하고는 안 해요. 죽어도 안 해요. 작년에 독일을 갔다 왔어요. 6·15 행사가 있어서 다녀왔어요. 그런데 내가 독일을 갈 때 나를 명예의장에서 싹 지워버렸어요. 왜냐하면 내가 가서 일이라도 저지르면 안기부에서 이거 범민련이 져야 할 책임이 아니냐고 할 테니까 그것이 무서워서 싹 지워버린 거예요. 그리고 내가 무사히 돌아오니까 다시금 명예의장으로 만들었어요.
바로 이런 사람들이에요. 이게 도대체 뭐냔 말이에요. 운동도 아니에요. 연방제같이 좋은 통일운동 방법이 또 어디 있어요? 그런데 싹 지워버리고. 지금 ‘통일연대’도 연방제에 대해서 절대 말 안 해요. 못해요. 그러면 결국은 이것이 양키 놈들 CIA의 명령에 복종하는 거예요. 이런 것은 사이비 통일운동에 다름 아니에요. 우리 운동에 지금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고 있는 거예요. 나 같은 사람은 밀어내고 자기들이 다 해서 한번에 북한에 300명씩 간다고 그래요.
그래서 얼마 전에 우리 민족 연방제 통일연구회를 몇 사람과 함께 만들었어요. 우리가 지금 이런 것을 만들어서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에요. 일은 못 해도 우리 통일운동의 정통성을 잇는 기관의 이름이라도 역사적 기록에 남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일은 못 해요. 저 사람들이 전부 다 하니까 발붙일 틈이 없어요. 그러나 나중에 우리 자손들이라도 이것을 역사적으로 볼 때, 저렇게 사이비가 흐르고 있어도 정통성을 지키려는 몇 사람들, 연방제 통일연구회라는 이름의, 연방제라는 것을 붙여서 했던 단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옳은 것이에요. 이런 것을 우리 자손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고 전부 사이비 거짓 단체만 있다면 이 민족 통일운동사라는 것이 일제 때와 똑같은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연맥을 이어가기 위해서 하는 것이에요.
연방제 통일연구회를 만들고 나서 얼마 전에 LA에서 노길남 씨가 하는 민족통신 인터넷을 통해 북의 범민련 의장 안경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띄웠어요. 그거 안기부 놈들이 다 봐요. 전부 봐요. 그래도 띄웠어요. 이것은 나대로의 운동의 정통성을 밝히고자 함이에요. 나보고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에요. 그러나 우리 생각을 알리기 위해서 띄운 것이
에요.
내가 범민련을 떠난 이후로 관계하는 통일운동 단체로는 서울의 ‘실천연대’라는 것이 있어요.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라는 작은 단체인데, 젊은 대학생들이 일을 참 잘해요. 이 사람들은 오염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김양무정신계승사업회’라는 것이 있어요. 김양무는 나하고 같이 일을 하다가 암으로 죽었어요. 광주 사람인데 그 사람은 진짜예요. 거기에 내가 관계해요. 그리고 ‘주미철’이라고, 주한 미군 철수하라는 작은 단체가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섞이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은 순수해요. 그래서 이 사람들과는 관계하고 그래요.

조순 계속해서 통일운동을 하시면서 가장 획기적인 일이라든지 기억에 생생한 것이 있으면 소개해주십시오.

강희남 문익환 목사와 나는 철학이 안 맞아서 범민련을 하면서도 항상 싸웠어요. 문익환 목사는 관하고 같이 협조해서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나는 못 해요. 20년 동안 외교적인 차원에서 볼 때 북한에서 말하는 것은 한 마디도 버릴 것이 없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자주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남북회의 하고 왔지요. 북한 사람들이 옳은 말을 한 것이에요. 우리와 이렇게 대화를 하려면 양키들과 남한이 합해서 훈련하는 거 하지 말라는 북한의 그 말은 옳은 말이에요. 우리 남북이 이렇게 서로 같이하려면 양키와 같이하는 훈련이라도 폐기하라는 말은 옳지 않은가요? 남쪽에서 간 놈들은 그런 말에 대답을 못 해요. 안 하겠다는 말을 못 해요. 그러니까 이번 회의가 그럭저럭 끝나고 만 거예요.
그런데 범사에 그래요. 나는 북한 안에서 인권 문제가 어떻다는 것은 몰라요. 그러나 외교적으로 북한이 하는 말은 옳을 것이에요. 이번에 핵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은 동시적으로 같이하자고 해요. 그런데 저 부시라는 놈은 너희가 모두 싹 없애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해놓으면 우리가 그때 해준다고 해요. 이에 북쪽에서는 안 된다고 하고. 우리가 동시적으로 이렇게 하나씩 해결해나가자 그것은 옳은 말이에요. 그런데 남쪽에서는 제대로 말을 못 해요. 양키 놈들 눈치보고 노예 노릇을 하는 놈들이라서 말을 못 해요. 남쪽의 불쌍한 사람들이 양키 놈들의 개노릇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양키 놈들과 싸우는 것이 바로 통일운동이에요.
통일운동 한다고 해서 학자들이 통일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을 말하고 하지만, 양키들과의 관계를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잡지에 글 쓰는 사람들도 못 해요. 그들이 양키 놈들과의 관계를 말하지 않고 통일운동을 아무리 수사학적으로 백번 말해야 그것은 빈 수레이고 소용없는 소리예요. 그 사람들이 글 쓰는 것을 보면 가증스러워요. 우리나라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양키 놈들이 우리 땅에서 물러가고 우리가 같이 모여서 민족자결주의를 행사하고 우리끼리 앉아서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야 해요. 이런 말이 정통이에요. 이런 말을 않고는 아무리 통일운동에 대한 이론을 말해도 모두 소용없는 짓이에요. 그래서 나는 통일운동은 양키 놈들과 싸우는 일이라고 봐요.
그렇다면 양키 놈들이 물러나느냐? 안 물러나요. 그러나 내가 양키 놈들과 싸우는 것은, 통일운동 하는 것은 통일이 된다고 해서가 아니에요.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통일도 안 되고 이런 운동도 없다는 것은 우리 현대 민족사가 죽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통일은 안 되지만 통일운동을 하면서 이렇게 희생을 당한 기록이 있어야 하고, 이 기록을 우리 자손들에게 보여주어야 해요. 우리 자손들에게 그때 우리 선조들이 통일은 못 했을지라도 통일운동을 정의롭게 했다는 기록을 남겨줘야 해요. 이것이 나의 철학이에요.
저놈들은 절대 안 떠나요. 자기들의 본토를 버리면 버렸지 절대 남한은 안 버려요. 저들의 아시아 제패, 세계 제패에 이 남한 교두보가 그들에게 생명선이에요. 그런데 김대중 정부가 양키들이 영원히 주둔할 수 있도록 했고, 지금 노무현도 자기 본의는 아니지만 할 수 없어 해요. 정부가 저렇게 지지하는데 양키 놈들이 떠날 것 같아요? 정부와 민간이 같이 힘을 합해서 ‘양키 고 홈!’ 해도 떠나지 않을 텐데, 우리 힘없는 민간이 떠나라고 해서 그들이 떠날 것 같아요? 정부가 끼고 앉아 있는데. 그러면 통일이 안 되는 거예요.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지 간에 양키는 떠나라고 하기 전에는 안 돼요.
나는 노무현에게 너무 실망했어요. 처음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알았어요. 내가 노무현에게 투표를 했는데 이때 신문에 났어요. 40년 동안 투표를 안 하던 강희남 목사가 투표한다고. 과거에는 주민등록증 없이 살았어요. 박정희 때에 주민등록증을 찢어버렸으니까. 내가 이런 놈들의 나라에서 국민 노릇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주민등록증은 곧 국민 노릇 한다는 것이에요. 주민등록증 없이 살다가 김대중 때에 주민등록증을 신청했어요. 40년 만에. 그런데 김대중 때는 내가 감옥에 있을 때라서 대선 투표를 못 했어요. 그런데 작년에는 했어요. 그렇게 내가 지지를 했던 사람인데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에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사람이어야 해요. 이 자기 자신의 사람이라는 것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대개 사람들은 본래 자기 자신을 버리고 말아요. 가령 노무현이라면 노무현은 노무현으로서의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 이건 안 되는 거예요. 대통령을 해도 본래 자기 자신의 사람으로의, 노무현으로서의 대통령을 해야 하는데 청와대에 들어가면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이 돼요. 이건 안 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나의 철학이에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노무현에 대해서 너무 실망해서 그렇고, 통일운동에 대해서는 그런 정도에요.

조순 통일운동과 기독교 신앙과는 어떤 관련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강희남 예수님 당시에 사마리아가 가운데 있고 북쪽에 갈릴리가 있고 남쪽에 유대가 있었는데, 갈릴리 사람들이 유대를 가려면 사마리아를 통하지 않고 저 요단강을 건너서 베뢰아 지방으로 돌아서 여리고로 해서 예루살렘에 갔어요. 빙 돌아서 간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도 처음 예루살렘에 갈 적에는 돌아갔어요. 그런데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더불어 갈릴리로 되돌아가는데 예수님께서 결정을 했어요. ‘이제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사마리아로 직통해서 가자.’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사마리아 지경을 통과해야 하겠다고 했어요.
나는 여기에서 예수님의 통일운동을 보게 돼요. 요한복음 4장을 가지고 예수님의 통일운동이라는 설교를 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에요. 기원전 700-800년경에 앗시리아 사람들에게 사마리아가 정복당하고 그들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식민지가 되면서 그 사람들의 피가 섞였어요. 그러자 유대 사람들은 이방인의 피가 섞여 하나님의 자손이 아니라고 하면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따돌리고 그 지경에 들어가기만 해도 더러움을 타는 것으로 여겼어요.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만나서 얘기도 안 했어요. 그런데 예수께서는 700-800년 동안 내려온 관례를 깼어요.
사마리아에 들어가니까 수가성의 여인이 나왔어요. 예수께서 물 한 그릇 달라고 하니, 그녀가 당신은 보아하니 유대인인데 유대인이면서 사마리아 사람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해요.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기에 예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본 거예요. 여기서 예수께서 그동안 막혔던 담을 뚫은 것이에요. 거기서 2-3일을 머물렀는데 다른 유대인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에요. 그렇게 파격적으로 예수께서는 통일운동을 하신 분이에요.
나는 ‘하나님께서는 북한 같은 곳에서도 지금 선교를 하고 계시는지 몰라.’ 하고 생각하는데, 우리 교회들은 북한을 아주 악마시해요. 양키 놈들의 교육이 그래서 그래요. 우리 정부가 양키 놈들의 똘마니이기 때문에 8·15 이후로 거의 반세기가 넘어 60년 가까이 되는데도 양키 놈들에게 전부 다 세뇌가 되어서 북한을 그렇게 보는 거예요.
현실을 사는 사람이 있고, 미래를 사는 사람이 있어요. 나는 목사들이 현실을 사는 것으로 봐요. 그때그때 적당히 살아요. 나는 현실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사는 사람이에요. 미래를 사는 사람이므로 현실에서는 어디 가든지 대접을 받지 못해요. 좋은 소리 하면 대접받는데, 뭐 좋은 소리를 해야지 말이에요. 내가 이렇게 살아요. 우리가 역사적으로 진실을 말하면 빨갱이가 되고 거짓을 말하면 애국자가 되니 우리가 남의 종노릇하는 것을 벗어나게 생겼어요? 우리가 주인 노릇 하는 백성이 되겠어요? 못 되는 거예요. 그러니 원통한 일이에요.
내가 하나님의 선교, ‘미시오 데이’의 신앙에서 통일운동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해요. 통일운동하는 대학생들 놓고 너희들은 교회 가면 안 된다고. 목사로서 젊은 사람들에게 교회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나 하나뿐이에요. 이 교회라고 하는 것이 요즘엔 조금 나아졌지만 몇십 년 전만 해도 다 아니었어요. 내가 대학생들 보고 “너희들은 교회 가면 안 된다. 지금 이렇게 정의롭게 민족과 국가를 위해 분신자살하고 투신자살하는 젊은 사람들이 있다. 너희들은 다 그런 정신의 사람들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을 모른다. 교회를 다니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들을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보실 때 ‘나의 진실과 나의 정의와 나의 사랑을 행하는 너희들은 교회 안에는 없어도 나의 백성인 것이다.’라고 판단하신다.” 하고 말해요. 너희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너희가 이런 정신을 갖고 이렇게 살고 있는데 교회 가서 목사들의 썩은 정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고.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없어요. 믿으면 잘산다고, 만사형통 한다고, 사업이 잘된다고 하니. 자본을 늘리려는 정신을 갖고 예배당에 다니는 것은 기독교인이 아니에요.
사회주의적인 것을 한마디라도 하는 목사가 없어요. 교회의 모델이 자본주의예요. 예수는 사회주의자이고 공산주의자인데. 자본주의 모델로 만들어서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아서 사업이 확장된다고 하니, 내가 운동하는 것은 썩은 놈의 정신을 가진 교회들을 바로잡는 일인 거예요. 지금까지의 기독교에는 통일도 없고 민족 역사도 없어요. 유대인들의 백성이고 양키 놈들의 백성이에요. 따라서 목사들은 통일운동을 꼭 해야 한다고 봐요. 그러려면 먼저 민족관이 뚜렷해야 해요. 우리는 민족관이 없어요. 지금 교회라는 것에는 이 민족의 역사가 없고 민족도 없어요. 민족이 있으면 북한 동족에게 어떻게 그렇게 해요? 그래서 내가 혀가 닳도록 말하는 것은 어느 단체보다도 바로 교회가 통일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내 강토, 내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가 통일운동에 앞장서야 하는데 오히려 교회가 통일운동을 못 하게 하고 있어요. 통일운동이라고 하면 양키 놈들에게 붙어서 흡수통일이나 하자고 하는 것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바로 서야 하고 목사들이 세뇌가 다시 되어야 해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교회가 통일운동을 해야 해요. 예수께서는 통일운동을 하신 것이에요. 북에 대한 관례를 고쳐야 해요. 양키 놈들의 교육을 그대로 받아서 북한 정권을 없애려는 것은 안 돼요. 교회가 민족관과 역사관을 바로 갖고 역사의 진실을 알도록 해야 해요. 이것을 위해서 교회의 통일운동이 아주 필요한 것이에요.

조순 마지막으로 저희 기독교인들이 통일을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제가 무엇일까요?

강희남 통일운동에서 양키 놈들과의 관계가 첫째 문제예요. 그리고 나의 통일운동의 철학에 소위 ‘더블 아이덴티티’라는 것이 있어요, 이중적인 자기 주체 말이에요. 지금 교회가 인식하는 것도 그렇고, 보수 진영에서도 그렇고, 또 북한은 북한대로 그렇고, ‘자기 절대주의’이고 ‘나만 옳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반세기가 지나도록 북은 북대로 자기들이 유일사상이요, 남한은 남한대로 우리밖에 없고 북쪽 사람들은 없어져야 한다고 해요. 이것을 지양하고 민족으로 돌아가면 돼요. 민족은 다 하나이지 않아요?
그런고로 민족을 파고 들어가면 지금까지 평행선으로 달리던 것이 서로 만날 수가 있어요. 민족이라는 것은 하나이니까 민족을 내세우고, 체제나 이념 같은 것은 뒤로해야 해요. ‘더블 아이덴티티’라는 것은 나만이 주체가 아니고 저쪽도 하나의 주체로 인정하고 주체와 주체로서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더블 아이덴티티예요. 남쪽에서는 북쪽의 아이덴티티를 인정하고, 북쪽에서는 남쪽의 아이덴티티를 인정하면 민족의 이름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남북 관계를 부버의 ‘I-Thou’(나-당신) 관계로 보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I-it’(나-그것)의 관계, 나는 나인데 북쪽은 it으로 봐요. 그것은 인격이 아니고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이에요. 또 북쪽은 남쪽을 it으로 취급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I-it’의 문화는 망하는 문화예요.
내가 상대방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은 자기가 이용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에요. 지금 자본주의 문화가 이런 문화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의식개혁을 해야 돼요. 의식개혁이 뭐냐고 부버에게 물어보면 ‘I-Thou’ 관계인 것이에요. ‘Thou’는 당신인데 하나님보고 당신이라고 한 것이에요. 내가 조순 목사를 당신으로,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남북 간에 이 철학이 필요한 것이에요. 이것이 더블 아이덴티티예요. ‘당신’으로 대해야 하지 ‘그것’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회가 앞장서야 돼요.
나는 부버의 철학이 참으로 기가 막힌 철학이라고 생각해요. 이 세상이 구원을 얻는 데는 다른 신학보다 부버의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부버의 철학을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우리 교회가 이 부버의 철학을 알고, 남쪽 북쪽이 이것을 다 알면 이념과 체제가 문제되지 않을 거예요. 북쪽도 내 동족이고 서로 같은 민족이니까, 서로 상대편을 형제로 알아야 해요. 이렇게 이 철학이 자꾸 번져가게 되면 통일이 가까워 오는 것이에요. 그러면 지금까지 나만 잘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쪽도 단점이 있지만 장점도 있지 않냐, 나의 자본주의체제에서도 좋은 것이 있지만 나쁜 것도 있지 않냐, 이쪽도 나쁜 것 버리고 저쪽도 나쁜 것 버리고 좋은 것만 가지고 접근하면 되지 않냐 생각해야 돼요. 이런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돼요. 장차 교회가 각성되어야 해요. 교회가 꽉 막혔어요.
내가 신학교에 다닐 때는 졸업하면 8할이 농촌으로 들어갔어요. 그러면 농촌에 가서 농민 목회를 할 수 있는 농민신학을 가르쳐야 되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신학교 있을 때부터 오늘날까지 신학교에 농민신학이라는 말이 없어요. 바르트 신학이 어쩌고, 브루너 신학이 어쩌고, 틸리히 신학이 어쩌고…. 바르트, 브루너가 뭐예요? 틸리히, 불트만 이런 사람들이 뭐예요? 다 가진 놈들, 돈 있는 놈들, 기득권자, 우리 제3세계 사람들 피 빨아 착취해서 잘살게 된 놈들의 자손들이 한 이런 신학을 우리가 신학이라고 배워야 해요? 몰트만의 신학이나 본회퍼의 신학은 좀 낫긴 하지만 바르트의 신학이 뭐예요? 유럽 사람들의 신학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에겐 아무 소용이 없어요.
구티에레즈는 유럽에서 11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가서는 그것 다 버리고 해방신학을 만들었어요. 우리가 하려면 흑인신학, 해방신학, 농민신학, 민중신학을 해야 해요. 내가 교수라면 농민신학을 만들 거예요. 나는 기독교농민회 이사장을 4년 동안 했어요. 신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농민신학을 만들어서 기독교 농민들을 가르쳤어요.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수련회 때 농민신학을 강의했어요. 그렇지만 신학교들은 농민신학의 ‘농’ 자도 몰라요. 유럽의 신학만 가르치고 앉았어요. 신학교 교수들이 이 죽은 놈의 짓, 썩은 놈의 짓을 하지 말아야 돼요. 우리가 우리의 신학을 만들어야 해요.
나는 절의(節義)신학도 필요하다고 봐요. 사육신 같은 그런 절의 말이에요. 지금 근대에 와서 음독자살하고 분신자살하는 이 민족정의, 민족정기 이런 걸 신학교에서 신학으로 만들어서 가르치자는 거예요. 우리 피부에 와닿는 신학 말이에요. 농민신학, 인권신학이 절실히 필요해요. 그런데 이것을 말하는 사람이 없어요. 외국 놈들이 말하는 그런 신학은 자기들의 생애 정황에서 만든 것이에요. 그것은 잘한 것이에요. 바르트도 그런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와는 상관이 없어요. 왜 그 사람들이 만든 것을 우리가 시간도, 공간도, 문화도 다른데 가르쳐요? 이 썩은 놈의 신학교! 왜 남의 것 수입해놓고 앵무새 노릇 하냐고요. 남의 종노릇밖에 더해요?

조순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년 2월호(통권 7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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