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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아시아 신학 순례 09]
교회와현장 (2020년 12월호)

 

  동남아시아 신학(2) - 인도네시아, 필리핀
  

본문

 

인도네시아, 필리핀 신학의 전개

동남아시아를 지역적으로 구분해보면, 말레이반도를 중심으로 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대표적인 군도(群島)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그리고 인도차이나반도를 중심으로 한 5개국(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태국) 등 크게 세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번 글에서 소개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군도라는 지역적 특성 외에도 역사적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1 첫째, 두 나라는 그리스도교가 상당한 세를 이루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서구 식민지였고, 근대 서구 선교운동을 통하여 그리스도교가 전래되었으며, 그리스도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로는 예외적으로 그리스도교, 특히 가톨릭이 사실상 국교의 위상을 지닐 정도이고, 따라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가톨릭의 영향력이 큰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유사한 면이 나타난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에서 이슬람 신자가 가장 많이 사는 국가로 이슬람교가 사실상 국교와 같은 위상을 지니지만, 가톨릭과 개신교를 합한 그리스도인 또한 인구의 약 10%, 무려 3,000만 명 정도에 이른다.
이처럼 긴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상당한 수의 그리스도인이 있는 동남아시아의 두 군도 국가에서는 이에 걸맞게 신학도 발달했다. 그곳에 파송된 선교사들 중 현지 신학교에서 대학원생으로 공부하는 경우도 많은데,2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 최고(最古)의 개신교 신학교인 자카르타신학교(Jakarta Theological Seminary, 1934)를 들 수 있다. 또한 족자카르타에 있는 인도네시아 최고의 국립대학교인 가자마다대학교(Universitas Gadjah Mada, UGM)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이 대학교는 종교 계열 학교가 아닌 국립대학교이면서도 다종교 사회에 관한 연구를 위해 영어로 진행되는 석사/박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연구 지원 속에서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수학하고 있다.3 이런 면에서 두 나라는 우리의 통상적인 예측과는 달리 결코 복음화율이나 기독교의 문화 수준이 뒤떨어진 곳이 아니다.
둘째, 두 나라 모두 식민지를 경험하였으며, 이런 경험은 오늘날 두 나라의 종교와 정치 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항해 시대 포르투갈 상인의 상륙 이후 인도네시아는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이후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인도네시아는 영국과 일본의 지배를 간헐적으로 받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는데, 네덜란드의 식민정책은 요약하면 식민지 수탈과 비(非)동화정책이었다.4 비동화정책에 따라, 네덜란드의 언어와 종교(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는 인도네시아에 뿌리내리지 못했고, 대신 이슬람교가 반(反)식민주의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면서 민족종교로 자리잡게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군도로서 다양한 집단이 모여 살았는데, 식민지 통치를 통해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윤곽이 형성되었다.
한편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사실상 개신교 국가인 미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는데, 스페인과 미국 모두 언어를 필두로 문화와 종교를 전파하는 데 힘을 썼다. 그 결과 필리핀에는 스페인과 미국의 문화 및 종교가 뿌리를 내렸고, 비록 반식민주의운동과 반그리스도교운동 및 독립교회운동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결국 그리스도교가 민족종교로 정착하였다. 필리핀도 인도네시아와 마찬가지로 군도로서 다양한 집단이 모여 살았는데, 식민지 통치를 통해 오늘날 필리핀의 윤곽이 형성되었다.
셋째, 두 나라 모두 군도 국가로서 언어, 인종, 문화, 종교 등이 다양하다. 따라서 이런 기본적인 다양성이 국가 정체성이라는 일치성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가 정치를 포함한 국가 전반에 걸친 핵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한편 인도네시아의 이슬람교와 필리핀의 가톨릭은 국교의 위상을 누리는 지배적인 종교이다 보니, 명목상의 교인도 많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이슬람교인을 두 종류로 나누는데, 민속종교와 습합된 ‘아방간’(Abangan, 명목상의 이슬람교인)과 이슬람의 규율을 준수하려는 ‘산트리’(Santri, 적극적인 이슬람교인)이다.5
이러한 배경에서 두 나라의 신학은 주로 교회와 국가, 다양성과 일치성의 조화, 빈부의 차이, 민주화 등을 중요 주제로 삼았고, 최근에는 여성신학, 원주민(indigenous)신학, 생명신학 등으로 연구 영역이 확산되고 있다.

판차실라(Pancasila)의 나라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가 건국되면서,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Sukarno)가 다양성과 일치성을 이루기 위해 내세운 공식적이고 기초적인 국정 철학이 바로 ‘판차실라’이다. 판차실라는 산스크리트어 단어인 판차(panca, 다섯)와 실라(sila, 원리)의 합성어로, 인도네시아 통치의 기본 5개념이다. 그 내용은 (1)일신론 신앙, (2)정의롭고 문명화된 인류, (3)인도네시아의 일치, (4)협의/대표제에 있어서 내적 지혜에 의한 민주주의, (5)인도네시아 전 국민(인민)을 위한 사회 정의 등이다.
판차실라 중 일신론 신앙에 대해 간단한 설명이 필요하다. 판차실라는 제1항인 일신론 신앙을 통해 신생독립국가인 인도네시아 국민의 일치를 추구했다. 이런 맥락에서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교, 가톨릭, 개신교, 힌두교, 불교, 그리고 최근에 추가된 유교(공자교) 등 6개 종교가 공인되고 있다.
그러나 제1항은 몇 가지 질문을 안고 있다. 첫째,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종교가 6가지 범주에 다 수렴될 수 있는가? 즉 인도네시아에 존재하는 많은 정령신앙적인 민속종교들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둘째, 6개의 공인 종교는 제1항의 상위 개념과 어떤 관계를 맺고 또한 상호 간에는 어떤 관계를 맺는가? 즉 일신론 신앙이라는 조항 아래에서 개별 종교의 실질적인 자유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문제가 있다. 셋째,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 혹은 이슬람교가 주도하는 국가를 만들려는 정치 운동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이 문제는 수카르노 시대(구질서, Orde Lama)와 수하르토 시대(신질서, Orde Baru) 이후에 새로운 시대(개혁기, Reformasi)가 들어서면서 오히려 더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규대는 그리스도교 선교가 한편으로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슬람교와의 협력 가능성을 찾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6 즉 인도네시아가 그리스도교-이슬람교 대화의 한 사례가 될 가능성이 있다. 냉전 시대에 그리스도교-사회주의(혹은 공산주의) 대화가 중요했다면, 탈냉전 시대에는 공산권-비공산권의 대립 구도가 이슬람권-비이슬람권의 대립 구도로 대체된 상황(헌팅턴 식의 문명충돌론)인 만큼 그리스도교-이슬람교 대화가 중요하다.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인도네시아의 종교는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후기 식민주의 시대에 두 가지 과제를 안게 되었다. 하나는 신생국가인 인도네시아의 건국에 기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와 사회에 대해 건전한 예언적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전자가 교회와 국가 간의 친밀한 관계를 의미한다면, 후자는 긴장 관계를 의미한다.
먼저 전자에 대해서 살펴보자. 건국 초기에 주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인도네시아 건국에 기여했다. 가령 교사요 법률가였던 물리아(T. S. G. Moelia)는 인도네시아 건국 이전부터 에큐메니컬 대회에 참여했고, 선교사로부터 현지교회 지도자로 지도력이 조속히 이양될 것을 강조했으며, 민족주의적 사명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건국 후 자카르타신학교, 인도네시아 성서공회, 인도네시아 교회협의회 등의 설립에 기여했다. 의사 출신인 레이메나(Johannes Leimena)는 그리스도교 정당을 설립하는 한편, 다룰 이슬람(Darul Islam, 인도네시아를 이슬람 국가로 만들려는 집단), 공산주의, 지역주의, 세속주의 등을 경계했다. 최고위급 군인이었던 시마투팡(Tahi Bonar Simatupang)은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건전한 교회가 되려면 이중적 씨름(double wrestle), 즉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에 대해서 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7 그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 회장을 역임했고, 1975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위원회 선교자금 사건을 조사하기 위하여 세계교회협의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내한한 바 있다.8
수하르토가 판차실라를 국정 철학을 넘어 시민종교로 삼고자 했을 때,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등이 반발한 역사가 있다.9 국가는 종교정책을 통해 종교를 단일화하여 통솔하려 하고, 개별 종교는 종교 자유를 확보하려고 하기에 통상 갈등이 발생하는데, 인도네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의 그리스도교는 건국에 기여하고 판차실라의 우산 아래에서 신학 작업을 하면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과 어용신학으로 전락하는 것을 분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그리스도교는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면서, 점차 외래종교 혹은 식민주의 종교에서 민족종교로 전환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런 분위기와의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20세기 3/4분기의 부흥운동을 통하여 교회 성장을 이루기도 했다.10 이런 성장은 신학의 판도에 변화를 가져왔다. 인도네시아 개신교 신학은 초창기에 네덜란드계 개혁신학의 영향을 받았고 신학 교육은 에큐메니컬 관계망 속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부흥운동 이후 미국계 오순절 신학과 복음주의 신학이 인도네시아 개신교 신학의 일부를 차지하게 되었다.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G12와 셀교회 운동’(예수 그리스도가 12명을 제자로 삼았듯이 12명이 최적화된 제자훈련 및 교회성장 단위라는 주장)의 중심지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인데, 운동의 적극적 성격으로 인해 기성 교회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제 후자에 대해서 살펴보자. 인도네시아는 독립 이후, 독재와 빈부 차이, 다종교성 등의 문제를 겪어왔다. 이런 맥락에서 예왕고에(A. A. Yewangoe)는 『아시아의 십자가 신학: 아시아의 압도적인 가난과 다면적 종교성을 직면하는 아시아 그리스도인의 고난관』(Theologia Crucis in Asia: Asian Christian Views on Suffering in the Face of Overwhelming Poverty and Multifaceted Religiosity in Asia)에서 인도네시아 신학을 아시아 민중신학의 일부로 자리매김했다. 예왕고에는 자신의 책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인간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참여(인도네시아의 경우는 ‘혁명’과 개발 계획을 통한 참여)는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영합(conformity) 혹은 부적절함(irrelevance)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제4세계 혹은 원주민과 관련된 문제가 주목받고 있는데, 대표적인 다인종 국가로 수많은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이 문제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주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소수민족의 민속종교의 인정 요구에 어떻게 기여하고, 이런 노력이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복음전도의 과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를 숙고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도네시아의 개발 계획이 국가 단위로 진행되면서 소수민족이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소수민족의 권리 신장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나아가서 인도네시아 생태신학의 발전으로 연결된다. 최근에는 이슬람에서도 ‘이슬람 생태주의’(Green Islam)를 추진하고 있다.11 생태신학은 지구가 인종, 종교의 차이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이 함께 사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종교 간 대화 및 연대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다종교, 다인종, 다소수민족, 원시림 등 다양한 생태학적 문제를 안고 있는 만큼, 과연 인도네시아 신학이 생태신학의 선두주자가 될 것인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주요 선교지 중 하나로 그동안 전개된 선교의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슬람교 다음가는 그리스도교의 위상(2대 종교), 3,000만 명에 이르는 그리스도인(약 10%), 유구한 그리스도교 역사 및 상대적으로 발전된 신학 등 인도네시아 그리스도교의 현실이 반영된 보다 객관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와 관련하여 민족사적으로도 기억해야 할 비극적인 역사와 감동적인 역사도 있다. 즉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된 한국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포로감시원 등 비인도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패전 후 전쟁범죄자로 몰려 일본인보다 더 심하게 처벌당한 과거가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양칠성(梁七星, 1919-49)처럼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가담하여 독립 영웅이 된 일도 있다.12

투쟁의 나라 필리핀

필리핀은 다양한 역사적 경험을 겪은 만큼,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필리핀은 군도로서, 다인종, 다언어, 다종교 사회이다. 근대 이후에는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가 되어 장구한 식민체제를 경험했고, 그 결과 남미에 버금갈 정도로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큰 나라이면서도 동시에 이슬람교와 민속종교 등이 활발한 다종교 사회이다. 그리고 식민 시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투쟁이 계속되는 곳이다. 식민 시대에는 독립투쟁이 벌어졌고, 독립 이후에도 반독재투쟁과 이슬람 분리투쟁 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최근 필리핀의 대표적인 신학 중 하나가 ‘투쟁신학’(Theology of Struggle)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투쟁신학이라는 명칭이 유행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투쟁신학의 역사는 유구하며 투쟁의 양상도 다양하다. 먼저 스페인이 통치하던 1872년에 필리핀의 가톨릭 사제 세 명이 중심이 되어 독립투쟁에 나선 역사가 있다. 이런 전통은 1986년 마르코스(Ferdinand Marcos)의 독재정치에 항거하여 일어난 반독재 시민혁명[People Power Revolution 혹은 EDSA(Epifanio Delos Santos Avenue) Revolution]에서 신(Jaime Lachica Sin) 추기경이 지도력을 발휘한 것으로 이어진다. 필리핀은 가톨릭의 아시아주교회의(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FABC, 1972)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 또한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통치 국가가 바뀌는 와중에 독립투쟁이 일어났는데,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 유산 중 하나로 자생적인 독립교회운동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이 운동이 필리핀 그리스도교 중에서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필리핀의 역사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 오랜 식민통치는 말할 것도 없고, 후기 식민주의 시대에도 식민 잔재는 남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엘리트 정치 혹은 엘리트 민주주의이다. 이런 정치적 특성은 식민통치를 거쳐 독립 이후의 독재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다. 위에서 언급한 시민혁명 이후에도 강도 높은 개혁은 실패했으며, 결국 엘리트 민주주의가 복원되었다. 정영국은 시민혁명의 부진한 결과에 대해 “변화 없는 땅에서의 변화”라고 명명하면서, 진정한 개혁 없는 변화란 사실상 불가능함을 시사했다.13 이런 맥락에서 필리핀의 민주주의는 약세를 유지하면서, 우익의 반동과 좌익의 준동이 이어져왔다. 거기에 강경 이슬람계 반군도 필리핀 정치를 위협하는 주요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필리핀은 정치적 혼란뿐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우리나라 민중신학의 범주 아래에서 다양한 신학이 제시되듯이, 투쟁신학의 범주 아래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신학이 광범위하게 다뤄지고 있다. 여기에서 필리핀의 투쟁신학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필리핀의 투쟁신학이 우리나라의 민중신학이나 남미의 해방신학과 다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이 남성 주도적 성격이 강한 데 비해, 투쟁신학에서는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투쟁신학은 여성신학과 연결되어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런 맥락에서 투쟁신학을 널리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여성이 상당 부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메리노수녀회의 수녀 파벨라(Virginia Fabella)를 들 수 있다. 그녀는 미국에서 기존의 서구적 여성신학(feminist theolgy)과 차별화된 제3세계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비서구적 여성신학(womanist theology, Asian feminist theology, mujerista theology 등)을 연구했고, 이후 제3세계신학자 에큐메니컬협의회에서 일하면서 특히 아시아 여성신학과 신학에 관한 다수의 서적을 편집하는 등 이 분야를 폭넓게 소개했다.14 가령 『고난과 동정으로: 제3세계 여성의 신학하기』(With Passion and Compassion: Third World Women Doing Theology), 『풍성한 인간성을 위한 아시아의 투쟁』(Asia’s Struggle for Full Humanity), 『아시아 그리스도교 영성: 전통 재주장하기』(Asian Christian Spirituality: Reclaiming Traditions) 등이다.15
필리핀의 신학적 과제는 정치사회적 변혁뿐 아니라, 문화적 변혁도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필리핀은 식민주의 유산이 강하고, 정체성이 너무 복잡하면서도 분명하지 않다는 평가가 있다. 가령 종교에는 스페인 식민통치가, 세속 문명에는 미국 식민통치가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평가이다. 물론 이런 흑백논리적 주장에 대해서 인류학자 등이 이의를 제기하지만,16 여하튼 필리핀 신학에서 문화신학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편이라서, 이 분야에 분발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 밖에 필리핀 신학에서 주목할 분야는 디아스포라신학이다. 최근에 필리핀은 대표적인 디아스포라 송출국(이주 및 이민 포함)으로 손꼽힌다. 필리핀 디아스포라는 2019년을 기준으로 약 1,200만 명 정도에 이른다.17 필리핀의 총인구가 약 1억 1,000만 명이니, 10%가 넘는 수치이다. 이들이 주로 정착한 나라는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 아랍에미레이트, 일본, 호주, 쿠웨이트, 말레이시아, 카타르, 싱가포르, 영국 등으로(20만 명 이상 기준) 영미권과 아시아(특히 중동권의 부국들)이다. 홍콩의 경우, 총인구 750만 중 필리핀 디아스포라가 무려 20만을 차지해(총인구 대비 약 2.5%), 중요한 인구 문제까지 된 바 있다. 심지어 필리핀교회의 번영신학적인 대중집회에서는 미국 비자를 위해서 여권에 축복을 받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세계화의 문제가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아시아 신학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필리핀은 아시아 신학 발전에 기여했고, 지금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초기에는 필리핀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 가운데 앤더슨(Gerald H. Anderson) 등 선각자들이 아시아 신학이 발전하도록 물꼬를 트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또한 필리핀은 아시아 에큐메니컬 신학 교육의 주요 거점 중 하나이다. 가령 동남아시아신학대학원[Southeast Asian Graduate School of Theology, SEAGST, 1966; 2009년 ATESEA Theological Union(ATU)으로 명칭 변경]은 7개 권역의 27개 신학교가 참여하여 운영되는데, 현재 그 본부가 마닐라에 있다. 이 신학교는 동남아시아신학교육협의회(Association for Theological Education in South East Asia, ATESEA, 1957)가 운영한다. 또한 필리핀 최고(最古)의 개신교 신학교인 연합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 Philippines, 1907)도 아시아 신학의 중심적 연구기관으로 빼놓을 수 없다. 참고로 복음주의 계열에서는 별도의 학교와 협의회를 운영하는데, 각각 아시아신학대학원(Asia Graduate School of Theology, AGST, 1984)과 아시아신학협의회(Asia Theological Association, ATA, 1968)이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신학의 전망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군도 국가로서 다양성과 양극화가 두드러진 나라이다. 양국은 식민통치의 장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쟁취했으며 오늘날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민중의 고난이 해결되지 못한 곳이다. 그러나 오랜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더불어 신학도 발전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 신학들이 해당 국가의 문제에 대해 씨름한 결과가 해당 국가는 물론이고 아시아에도 일정 부분 기여하리라 기대해본다.
특히 양국에는 한국 선교사들이 많다. 과거에는 서구 선교와 아시아 교회의 관계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같은 아시아 국가인 한국의 선교와 아시아 교회의 관계가 중요하다. 이런 새로운 관계가 과연 실제로 어떠한지, 또 어떠해야 할지가 아시아 신학의 새로운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주(註)

1 특히 ‘인도네시아’(Indonesia)라는 이름 자체가 그리스어 ‘인도’(Indos)와 ‘섬’(nesos)의 합성어로 인도의 섬들, 곧 군도를 의미한다.
2 선교사나 신학자가 아시아 현지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아시아 신학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3 석사 과정은 학교 내에 설립된 ‘종교 및 타문화권 연구소’(Center for Religious and Cross-cultural Studies)에서 운영하고, 박사 과정은 가자마다대학교, 수난카리자가주립이슬람대학교(State Islamic University Sunan Kalijaga, UIN), 두타와짜나기독교대학교(Duta Wacana Christian University, UKDW) 등 3개 대학교의 컨소시엄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4 이규대,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본 인도네시아 이슬람 운동과 기독교 선교”,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2015), 39.
5 A. A. Yewangoe, Theologia Crucis in Asia: Asian Christian Views on Suffering in the Face of Overwhelming Poverty and Multifaceted Religiosity in Asia (Amsterdam: Rodopi, 1987), 225-226.
6 이규대, 위의 논문.
7 John England et al. eds., Asian Christian Theologies: A Research Guide to Authors, Movements, Sources, Vol.Ⅱ(New Delhi: ISPCK/Claretian Publishers/Orbis Books, 2003), 161-167.
8 김흥수, 『자유를 위한 투쟁: 김관석 목사 평전』(대한기독교서회, 2017), 219.
9 Jan Sihar Aritonang & Karel Steenbrink eds., A History of Christianity in Indo-nesia(Leiden; Boston: Brill, 2008), 779.
10 Don Crawford, Miracles in Indonesia: God’s Power Builds His Church!(Wheaton; London: Tyndale House Publishers; Coverdale House Publishers Ltd., 1972); Frank L. Cooley, The Growing Seed: The Christian Church in Indonesia(New York; Wuppertal-Barmen; Jakarta: The Division of Overseas Ministries, NCCUSA; The European Commission for Church and Mission in Indonesia; Christian Publishing House BPK Gunung Mulia, 1982).
11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생태주의를 ‘녹색 이슬람’(Green Islam)이라고 한다. 다음 기사를 참조할 것. www.newmandala.org/green-islam(2020. 10. 27. 접속).
12 양칠성의 일본식 이름은 ‘야나가와 시치세이’이며, 인도네시아 이름은 ‘Komarudin’이다. 친일 논란을 포함하여 양칠성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13 정영국, “제3세계의 시민항쟁과 그 이후 필리핀–2월혁명 이후 변화 없는 땅에서의 변화”, 「역사비평」 39호(1997. 11.): 186-200.
14 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의 제목은 “제3세계신학자 에큐메니컬협의회 내에서 여성의 신학적 인식의 발전”(The Development of Women’s Theological Consciousness within the Ecumenical Association of Third World Theologians)이다. ‘제3세계신학자 에큐메니컬협의회’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을 볼 것. 황홍렬, “제3세계신학자 에큐메니칼협의회(EATWOT)의 역사(1976-1992)와 선교신학적 과제”, 「선교신학」 9호(2004): 1-24.
15 Virginia Fabella ed., Asia’s Struggle for Full Humanity(Maryknoll, NY: Orbis, 1981); Virginia Fabella & Mercy Amba Oduyoye eds., With Passion and Compassion: Third World Women Doing Theology: Reflections from the Women’s Commission of the Ecumenical Association of Third World Theologians(Maryknoll, NY: Orbis, 1988); Virginia Fabella et al. eds., Asian Christian Spirituality: Reclaiming Traditions(Maryknoll, NY: Orbis, 1992).
16 Fenella Cannell, Power and Intimacy in the Christian Philippines(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17 “Overseas Filipinos”, https://en.wikipedia.org/wiki/Overseas_Filipinos(2020. 10. 27. 접속).


안교성 | 교회사를 전공하였다. 『한국교회와 최근의 신학적 도전』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0년 12월호(통권 7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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