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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20년 9월호)

 

  내가 만난 아시아 신학자들
  

본문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는 선교를 중심 과제로 삼는다. 1957년 창립 때부터 복음의 공동 증거를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선교는 교회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교회는 선교를 복음 증거의 당위적 사명으로 이해한다. 교회는 여러 종류의 선교단체를 만들기도 하고 독특한 선교정책을 창안해내기도 한다. 내국인에게는 전도라는 방법으로, 이방인에게는 선교라는 명분을 내세워 복음을 전파한다. 브루너(Emil Brunner)는 “불은 타기 위해 존재하듯 교회는 선교를 위해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교회의 정체성을 잘 요약한 명구라 하겠다.

선교의 열정
19세기 말과 20세기에 걸쳐 전개된 세계선교의 열정은 에큐메니컬 운동의 발전에 주요 동력이 되었다. 아시아교회는 피선교지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에큐메니컬 지도자들을 배출하였다. 이들은 에큐메니컬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백방으로 활약하였다. 많은 기독교 역사가들은 에큐메니컬 운동의 확산을 높게 평가한다. 이런 흐름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만난 아시아 신학자들은 선교를 중대한 연구와 실천의 과제로 삼고 있다. 그 이야기를 짤막하게 간추려보고자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선교단체들은 영국에서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792년 Baptist Missionary Society를 시작으로 London Missionary Society(1795), Church Missionary Society(1795)가 이어졌고 Dutch Mission(1799),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1804), London Society for Promoting Christianity among the Jews(1809),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1810), Edinburgh Medical Missionary Society(1814), American Baptist Missionary Board(1814), Basel Mission(1815), American Bible Society(1816), 그리고 Berlin Society(1824) 등이 설립되었다.
1907년에는 The National Missionary Society of India가 피선교지인 인도에서 발족되었다. 그리고 1936년 The Anglican Society in China가 중국에서 설립되었다. 아시아는 최적의 선교지로 알려지면서 선교와 관련된 많은 일화를 남겼다.
아시아 개신교의 선교 역사는 서방 선교사들에 의해서 비롯되었다. 서방 개신교 선교사들은 아시아를 선교지로 삼아 인도(1793), 스리랑카(1804), 중국(1807), 미얀마(1813), 태국(1831), 인도네시아(1833), 일본(1859), 한국(1884), 필리핀(1899), 라오스(1902), 베트남(1911), 캄보디아(1911) 등지에 복음을 전했으며 아시아에 여러 교파의 교회를 세웠다. 이들은 또한 교회와 함께 학교와 병원, 그리고 출판사와 구제기구 등 을 설립하여 서구 문명의 가교 역할로 삼았다.
1910년 에든버러에서 개최된 세계선교사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에는 1,200여 명이 참석하였다. 그중 17명이 인도, 중국, 일본과 한국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역사적인 모임에 동참하였다.
세계 도처로 파송받은 많은 서방 선교사들은 피선교지 지도자들과 함께 벤(Henry Venn)이 주창한 삼자원칙(three-self principle)을 선교의 한 방안으로 채택하였다. 중국교회의 삼자애국운동도 이 원칙을 원용한 것이다. 자립(自立, self-support), 자치(自治, self-government), 자전(自傳, self-propagation)으로 대표되는 삼자원칙이 아시아에 소개된 점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선교 초창기인 1890년에 네비우스가 방한하여 삼자원칙을 직접 소개해주었다.

아시아 선교 주제의 핵심
1) 사랑과 우애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사대회 때 아시아 지도자들은 많은 활약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인도성공회 최초로 주교 서품을 받은 아자리아(V. S. Azariah)는 이 대회의 강연자로 초청받아 인상적인 강연을 하였다. 한국에서는 윤치호가 참석하였다. “선교사와 현지 동역자와의 협력 문제”라는 주제의 강연 요지를 정리해본다. 그는 먼저 양자 간의 협력은 개인적이거나 행정적이거나 영적인 면에서 일치를 지향해야 하고, 그 다리 역할은 그리스도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리스도는 주인이나 선생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요 형제라는 신앙고백이 먼저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아자리아는 “그렇다면 선교사들은 현지 동역자들을 친구나 형제로 대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함으로써 참석자들을 긴장시켰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만 보더라도 성장한 아들은 친구로 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를 폈다. 선교사들은 더 이상 어른이나 주인 행세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한 것이다. 마치 친구처럼 사랑과 우정을 기반으로 신뢰를 확고하게 형성하라는 권고이다.
아자리아는 또한 선교사들 입에 익은 “우리 돈, 우리 통제”라는 말들이 현지교회의 자립 정신을 저해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인도의 전통적 종교 성향인 명상과 기도, 그리고 신에 대한 순종이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인내와 온유와 겸손과 자기부정으로 연계되어야 할 것도 제안하였다. 사랑과 우애를 협력의 고리로 삼아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고, 함께 예배하며, 함께 배우는 참다운 생명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선교라고 강조하였다. 아자리아는 일부 선교사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희생의 모범이 되고 있다는 칭송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십시오!”라는 말로 강연을 마치자 여기저기서 큰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아자리아가 말하는 선교의 핵심은 사랑과 우애 위에 그리스도가 다리 역할을 해야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2) 복음의 토착화
나일스(D. T. Niles)는 아시아가 배출한 대표적인 에큐메니컬 지도자이다. 그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를 창설한 중심인물로 이 기구의 초대 총무를 역임하였다. 스리랑카의 감리교 목사인 그는 아시아 신생 독립국들이 나라 건설(Nation Building)과 정체성 확립을 위해 국력을 집중하는 시기에 총무로 활약하였다.
나일스는 서방 선교사들이 아시아에 전해준 기독교는 마치 복음을 화분에 담아 옮겨놓은 것과 같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므로 껍데기인 화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시아 토양에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복음의 전달자인 선교사들이 교회를 독점하려는 행태를 과감하게 빗댄 말이자 아시아교회는 자율적인 복음 이식을 통해 토착화한 교회로 성장해야 함을 피력한 말이다. 그의 저서 A Testament of Faith(1970)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아시아인의 입장을 토착화의 관점에서 풀어가고 있다.
나일스는 선교가 무엇인지를 요약하기를, 한 거지가 또 다른 거지에게 아무개 집에 가면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듯, 서로의 정보를 나누고 어느 지역이 선교하기에 적절한지의 노하우를 극대화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나일스는 명 설교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가 말하기를, 설교자란 ‘종’이요 ‘메신저’일 뿐이다. 종과 메신저는 주인의 심부름을 성실하게 이행하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괜히 이러쿵저러쿵 사족을 달지 말라는 것이다. 바로 선교사들에게 일침을 가한 말이다.

3) 복음의 공동 증거
토마스(M. M. Thomas)는 인도의 성 도마교회(Mar Thoma Church) 평신도이다. 그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신학자요 존경받는 에큐메니컬 지도자로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그는 나일스와 함께 CCA를 창설하였으며,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토마스는 급변하는 아시아 상황에서 복음을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를 신학적 화두로 삼아 전심전력했다. 특히 정치적인 억압과 경제적인 착취, 그리고 문화적인 차별과 소외가 극심하게 일어나는 아시아적 상황에서 복음의 공동 증거 방안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는 Response to Tyranny(1979)라는 저서에서 아시아교회는 혁명적인 아시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게토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아시아교회는 하루 빨리 게토주의(ghettoism)을 벗어나 아시아의 혁명적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세속적 영성을 기반으로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윤리적 가치를 실천할 것을 촉구했다.
토마스는 기독교인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에 종사하는 비신자들과 연대하고 기독교인의 올바른 품성과 행동을 통해 사회 변혁에 한몫을 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그는 ‘교회와 사회’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에큐메니컬 지도자로 높이 평가받는다.
베트남 전쟁은 아시아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베트남 전쟁이 보여준 도미노 현상은 인도차이나 지역으로 번지면서 이 지역 기독교인들은 큰 박해를 받았다. 토마스는 전쟁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한 이재민 보호, 의료봉사, 농촌재건, 기반시설 복구와 같은 현안을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울 것을 제안했다.
타이난신학교 학장과 WCC 신학기금의 책임자로 활약한 대만 신학자 쇼키 코(Shoki Coe 혹은 C. H. Hwang)는 ‘텍스트와 컨텍스트’라는 선교신학적 패러다임을 창안했는데, 토마스는 기독교의 진수인 텍스트(text)를 컨텍스트(context)에 공동 증거(witnesses together) 함으로써 쇼키 코의 이론을 적극 수용하고 실천하였다. 1975년 간디(Indira Gandhi) 수상이 인도 전역에 국가긴급조치를 선포하자, 토마스는 그 조치의 부당성을 정면으로 지적하였다. 선량한 시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근본적으로 해치는 일이기 때문에 당장 철폐하라고 맞선 것이다. 토마스는 당국과 대결하면서 소수 종교에 불과한 기독교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어떻게 행동하였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4) 아시아 민담(folktale)을 통한 복음 이해
대만 신학자 송천성(C. S. Song)은 WCC와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등에서 요직을 맡아 활약한 인물이다. 현재 그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머물면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송천성은 아시아의 민담을 신학의 주제로 삼는다. 대표적으로는 1981년 CCA 뱅갈로 총회 때 행한 나일스 기념강연을 들 수 있는데, “The Tears of Lady Meng”이라는 주제의 강연은 WCC가 소책자로 발간하여 널리 보급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 강연에서 중국 진시황제 때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일어난 이야기를 소재로 선교신학적인 해설을 하였다. 그 내용은 이렇다.
진시황제는 만리장성을 성공적으로 축성하기 위해서는 10리마다 살아 있는 사람 한 명을 성곽에 묻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소문이 전국으로 퍼지게 되자 백성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그러자 한 원주민 현자가 황제에게 묘안을 제시한다. 현자가 제안하기를, ‘만리’에 해당하는 ‘만’(萬)이란 성을 가진 사람을 찾아 성축할 때 함께 쌓으면 더 이상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고도 성을 무난히 완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자 진시황제는 군인들을 풀어 만씨를 찾아오게 한다. 마침 혼례를 끝낸 만씨가 신부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군인들이 들이닥쳐 신랑을 끌고 간다. 남편을 빼앗긴 어린 신부는 눈물과 한숨으로 얼마쯤 지내다가 남편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맹 부인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남편의 뼈라도 찾고자 이리저리 헤매다가 커다란 성곽을 발견했다. 그러나 남편의 뼈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어 성곽 밑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한다. 그러자 갑자기 성의 일부가 와르르 무너지고 맹 부인은 남편의 뼈를 찾아내게 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진시황제는 맹치앙(Meng Chiang)이라는 부인을 직접 만나보고 싶어 한다. 마침내 맹 부인을 보는 순간 그녀의 얼굴과 몸매에 매료되어 왕비로 삼게 된다. 맹 부인은 체념하고 황제에게 세 가지 소원을 간청한다. 부인이 간청한 소원 세 가지는 전 남편의 영예를 위해 49재를 지내주고, 황제와 대신들 모두 장례식에 참석하며, 호숫가에 49척 높이의 망대를 세워달라는 것이었다. 황제는 이 소원을 즉석에서 수락한다.
마침내 모든 소원이 이뤄지자 맹 부인은 망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황제가 얼마나 잔악한지를 큰 소리로 외치고 호수로 뛰어내려 죽는다. 황제는 대노하여 군인들에게 맹 부인의 시체를 건져 토막을 내게 하고 뼈를 골라 가루로 만들어 호수 물에 뿌리도록 한다. 그러자 뼛가루가 갑자기 은어로 변해 호수를 가득 메운다. 맹 부인의 정절과 아름다운 마음씨는 후대에 널리 알려지고 계속 전해 내려온다.
송천성은 이 민담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안보를 빙자해 성을 쌓는 일, 무고한 백성들의 희생, 맹 부인의 눈물, 눈물의 힘, 진실과의 만남, 대미를 장식한 이야기 등으로 나누어 감동적인 강연을 마친다. 송천성은 아시아에 있는 수많은 민담들을 선교신학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아시아신학의 독특성을 돋보이게 해줄 것이라고 장담한다.
송천성은 CCA가 강조하는 ‘아시아인의 눈으로 성서 읽기’(Reading the Bible through Asian Eyes)를 높게 평가한다. 얼마동안 우리는 제3의 눈, 즉 서방 사람들의 틀 안에서 그들의 시각에 매몰되어 성서를 읽었다. 때로는 착시현상을 경험한 것도 사실이다. 송천성은 이런 민담을 통해 아시아인의 눈으로 아시아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나갈 것을 권장한다.
송천성은 The Compassionate God(1982)이라는 저서에서 하나님의 자비가 아시아 역사 속에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를 유교와 불교의 관점에서 밝힌다. 그의 이런 시도는 아시아의 풍부한 전통문화와 민담을 신학의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5) 이웃 종교와의 대화
아시아는 세계 종교의 발상지로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신도교, 전통종교 등 다양한 종교를 신봉하는 이웃들이 어울려 사는 대륙이다. 종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지만 때로는 예상치 않게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맹신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을 무시하고 갈등과 반목, 심지어 살상까지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은 아시아인을 평화롭게 살도록 만드는 원초적인 힘이 된다.
WCC는 1970년대 초부터 이웃 종교와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배후에는 인도의 탁월한 신학자 사마르타(Stanley J. Samartha)가 있고, 그의 뒤를 계승한 스리랑카의 신학자 아리아라자(S. Wesley Ariarajah)가 있다.
사마르타는 12년 동안 WCC에서 근무하면서 종교 간 대화 프로그램 책임자로 활약하였으며, WCC에서 은퇴한 후 인도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치며 여러 지도자를 배출하였다. 그는 1992년 12월 야요디아의 이슬람 바브리 사원이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파괴되는 것을 목격한다. 사마르타는 그가 이제까지 주창해온 종교 간 대화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비애를 느낀다.
그는 이 사건을 보면서 자기 종교에만 집착하는 신학이나 맹신이 얼마나 무섭고 허망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사마르타는 종교 다원화 사회에서 모두 평화롭게 살기 위한 방안으로 ‘환대의 신학’(Theology of Hospitality)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그는 환대가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나갈 힘이 될 것으로 확신하며, 종교 다원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환대가 신뢰를 쌓는 기본임을 강조한다.
사마르타는 1973년 방콕에서 “WCC 타 종교와의 대화”가 개최될 때 불교 지도자가 강연한 일을 거듭 회상한다. 또한 1938년 인도의 탐바람에서 모인 국제선교대회 때 힌두교 지도자가 강연한 것을 연상한다. 그는 서로를 환대하는 이런 시도가 모든 종교인들의 일상생활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마르타는 Between Two Cultures: Ecumenical Ministry in a Pluralist World(1996)라는 저서에서 동서양을 오가며 활약했던 자신의 에큐메니컬 운동 경험을 소상하게 피력한다. 기독교와 맑스주의의 대화, 기독교와 유대교의 대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대화,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는 물론 모든 종교 지도자들과
학자, 그리고 활동가들을 모아 함께 대화하면서 기독교의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이웃 종교나 이념이 담고 있는 진수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배워야 함을 촉구한다.
사마르타는 아시아가 모범을 보인 이웃 종교와의 대화가 점차 에큐메니컬 운동의 한 축으로 확대된 것을 매우 만족스럽게 여긴다. 이웃 종교와의 대화를 강조하는 사마르타의 신학적 명제는 그리스도 중심이라기보다는 신 중심에 쏠려 있다. 아마도 그런 신학적 자세를 가져야 이웃 종교를 이해하고 환대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영성을 따라 기도와 명상과 관용과 우애로 서로를 보듬게 된다면, 대화는 자연스럽게 진전될 것으로 전망한다. 사마르타의 환대의 신학은 영성을 모티브로 삼는다.
사마르타의 뒤를 이은 아리아라자는 WCC에서 오랫동안 종교 간 대화 프로그램 책임자와 부총무로 활동했으며, 이후에는 미국 드루대학교 초빙교수로 후학을 가르쳤다. 아리아라자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종교 간 대화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아리아라자의 신학적 관심은 힌두교 연구이다. 그는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을 힌두교 이웃들과 어울려 지낸 생생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아리아라자는 Not Without My Neighbour(1999)라는 저서로 큰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의 요지는, 세상은 그리스도인들끼리만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웃 종교인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기타 이웃 종교 신봉자들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차원에서 그는 이웃 종교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를 이 책에 담고 있다.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기도하고, 서로 결혼하고, 대화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때로는 전도하고, 협력하는 일련의 일상생활을 우리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아리아라자는 이웃 종교와의 대화를 위한 단계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대화에 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야 한다. 둘째, 하나의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식한다. 셋째, 문화적으로 서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이런 단계를 거치다 보면 더욱 폭넓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리아라자는 대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평화로운 생활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선교적 관심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선교를 해야 하나? 하나님이 우리의 이웃과 함께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없기 때문인가?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이웃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사랑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만일 하나님이 이들과 함께한다면 기독교인의 메시지가 이들의 종교생활에 어떤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가? 선교 이후는? 선교를 성취하고 나면? 선교란? 선교는 제자직의 완성이고 치유이며 새 생활 또는 새 생명이고 구원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열일곱 살에 구원받았다고 하면, 그 사람의 남은 생애는 도대체 어떻게 된단 말인가?
이런 복잡한 문제의 해답은 이웃 종교인들로부터 진지하게 듣다 보면 적절한 대화의 방안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아리아라자는 말한다. 그는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이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처럼 사마르타와 아리아라자 두 신학자는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이 우리 일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했다. 아시아 선교는 이처럼 민감한 의제를 착실하게 연구하고 과감하게 실천할 때 풍부한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6) 또 다른 주제들
아시아의 여러 신학자들은 선교를 주제로 다양한 신학적 접근을 하고 있다. 한국의 민중신학자들이 제시한 민중의 해방 모티브는 신선한 신학적 탐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 민중신학의 여러 주제들 가운데 오클로스 이해(안병무), 한의 이해(서남동), 탈춤의 해학 이해(현영학), 민중의 고난 이해(서광선), 민중 메시아 이해(김용복) 등은 아시아 선교신학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일본 신학자 고야마(Kosuke Koyama)는 포드(David F. Ford)가 편집해 내놓은 책 The Modern Theologians Ⅱ(1989)에서 아시아신학의 명제를 (1) 혁명적 사회 변화의 문제, (2) 대량 빈곤의 문제, (3) 인종 및 경제 약자의 문제, (4) 문화의 창조성 및 파괴성 문제, (5) 이웃 종교 신봉자 문제, (6) 교회의 분열 문제 등 여섯 가지로 제시하며 폭넓은 분석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저서 Waterbuf falo Theology(1972)는 고야마가 태국의 파얍대학교 맥길버리신학원에서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여 가르친 내용을 담은 문화신학 분야의 책이지만, 아시아 선교의 내면을 새롭게 조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레만 나일스(D. Preman Niles)는 CCA 초대 총무를 역임한 디 티 나일스의 아들이다. 그는 CCA와 WCC, 그리고 세계선교협의회(CWM)에서 활약한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도자요 신학자이다. 그는 From East and West(2004)라는 저서에서 나눔과 봉사를 선교의 중요한 주제로 제시한다. 프레만은 CWM 총무 경험을 바탕으로 선교는 젊은 사역자를 양성하고 교류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선교를 위한 나눔은 물질과 인재를 동시에 포함하여야 하며 봉사는 선교의 열매를 얻게 하는 수단으로 설명한다.
프레만은 CCA 신학 부서 책임자로 일할 때 1979년 서울에서 민중신학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Minjung Theology(1981)라는 영문판으로 출판해서 전 세계에 보급하였다. 그는 WCC에 재직할 때 정의・평화・창조질서의 보전(JPIC) 프로그램을 주도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질서 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환경 문제를 신학의 주제로 부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일본의 에큐메니컬 지도자요 신학자인 다께나까(Masao Takenaka)는 CCA 창립총회 연사, WCC 뉴델리 총회 강사, WSCF 방갈로 학원선교정책협의회 강사, WCC와 CCA 도시농촌선교회(URM) 위원장으로 활약했다. 그는 아시아 기독교 미술가들이 표현한 예수의 초상과 동양화를 통한 기독교의 메시지를 새롭게 조명했으며, 그가 출간한 Christian Art in Asia(1975)는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다께나까는 아시아인의 시각으로 보는 아시아 문화와 전통을 기독교와 접목시켜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특히 그의 저서 Cross & Circle(1990)은 1950년대부터 여러 에큐메니컬 관련 대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모은 책이다. 1950년대 일본에서 시작한 사업선교의 현장 이야기를 담은 고정 칼럼 “Church Labor Letter”는 선교 현장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런 일화도 있다. 하루는 디 티 나일스와 다께나까가 아시아 문화를 선교와 접목시켜 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자 나일스가 즉석에서 자신은 음악과 찬송을 담당할 터이니 당신은 미술 분야를 맡아 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나일스는 아시아 찬송 여러 곡을 작사하였다. CCA가 주관하는 각종 모임에서는 나일스가 작사한 찬송이 종종 불리고 있다. 다께나까 역시 기독교 미술 관련 저작을 다수 출간하였다. 그는 아시아 기독교 미술품 상당수를 두루 모아 소장하다가 필자가 CCA 총무로 재직할 당시 CCA에 기증하였다. 다께나까는 CCA 부총무를 역임한 론과 앨리슨 부부(Ron and Alison O’Grady)와 함께 1978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아시아기독교미술작가협회를 조직하여 예술을 아시아 선교의 방편으로 끌어들인 선례를 남겼다.
필리핀 신학자 오라시온(Levi V. Oracion)은 실리만대학교에서 가르치다가 WCC 스태프로 옮겨 신앙과 경제에 관련한 연구에 몰두한 인물이다. 1990년 CCA 총회가 마닐라에서 열렸을 때의 주제강연도 신앙과 경제였다.
오라시온은 God With Us(2001)라는 저서에서 필리핀의 독특한 정치적 상황을 정의와 인권이라는 시각으로 조명한다. 그는 필리핀 신학을 ‘Theology of Struggle’이라고 이름 붙인 신학자이다. 그는 믿음의 근거를 가난, 억압, 무기력으로부터 해방, 희망, 자유로 이어지는 역사적 발전의 모티브로 보았으며, 바울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를 경험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역사의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그는 요즘 신학적 명상을 시로 표현하면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그 밖에 인도의 달릿신학(Dalit Theology)이나 대만의 향토신학(Homeland Theology) 등이 제시한 선교의 핵심 과제들을 아시아교회는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몇 가지 생각
효율적인 선교란 무엇일까? 필자는 이를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와 교회의 선교(missio ecclesiae), 그리고 인간의 선교(missio hominum)로 요약하고 싶다. 이 셋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선교의 요체이다. 선교는 말과 행동을 동시에 수반해야 한다. 또 복음은 삶의 현장으로 녹아 들어가야 한다. 선교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성육신을 교회가 체화하고 심화하는 행동이라 하겠다.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참된 모습을 이 땅에 실현하는 일이다. 예수가 우리와 함께 있음을 확신하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도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눅 17:21)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예수가 이 땅에 성육신하신 목적을 명시한 성서 구절들을 되새겨보자.

‐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눅 5:32)
‐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막 2:17)
‐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 10:10)


복음 증거를 위한 선교는 펠로우십(fellowship), 프렌드십(friendship), 파트너십(partnership), 디사이플십(discipleship)의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 펠로우십을 통해서 프렌드십이 생겨나고, 프렌드십은 파트너십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디사이플십을 성실히 이행하다 보면 선교의 열매는 부수적으로 얻게 될 것이다. 바른 선교를 위해서는 성찰과 반성, 나눔과 섬김, 봉사와 비움이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아시아 선교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 영혼에 필요한 양식을 제공하는 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 서로의 짐을 나눠 지는 일, 사랑으로 보듬고 섬기는 일, 생태계의 위기를 관리하는 일, 문명의 충돌을 막는 일, 폭력이나 살상, 차별이나 인권탄압 문제 등을 깊이 다루어 대안을 모색하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중차대한 선교적 사명, 결코 피할 수 없는 선교적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우리는 이 일에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필자는 평생 에큐메니컬 운동을 하면서 이미 고인이 된 아자리아와디 티 나일스, 그리고 쇼키 코는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나 위에 거명한 여러 신학자들은 KSCF, WSCF, CCA, WCC, WARC, CWM, NCCK, 그리고 YMCA 등의 모임과 사석에서 만나 서로 사귀고 대화하는 동안 많은 감동과 영감을 얻었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안재웅 |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총무와 세계기독학생연맹(WSCF)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무로 19년간 홍콩에서 근무하고 정년 은퇴했다. 현재 (사)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 한국YMCA전국연맹유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9월호(통권 7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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