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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아시아 기독교] 아시아 신학 순례 05
교회와현장 (2020년 9월호)

 

  인도 신학, 다양성과 일치의 신학적 파노라마
  

본문

 

인도 신학의 전개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인도는 문화적으로는 세계 4대 고대문명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이고, 종교적으로는 힌두교를 비롯한 4개 종교의 발상지이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선교가 일찍부터 이루어진 곳이다. 인도의 면적은 세계 7위이고 인구는 세계 2위인데, 2020년대 중반에는 중국 인구를 추월할 전망이다. 또한 인도는 인구 대국일뿐 아니라 2,000여 인종이 공존하는 다인종 국가이고, 25세 이하 인구가 절반이 넘는 젊은 국가이다. 한마디로 인도는 복잡다단하면서도 동시에 오랜 역사와 활기가 넘치는 나라이다. 인도 신학은 이런 배경에서 생성되고 펼쳐져 왔다.
인도에는 여러 차례 선교가 이루어졌다. 인도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사도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아시아의 사도’라고 불리는 도마가 직접 인도에 선교했고, 심지어 중국까지 갔다는 전승이 있다. 도마의 선교에 이어 동방교회(특히 시리아교회)의 선교가 있었고, 이후 대항해 시대에 서구 국가들의 동진과 더불어 가톨릭 선교가 이루어졌으며, 근대에는 개신교 선교도 진행되었다. 놀랍게도, 인도교회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할 뿐 아니라, 시대별로 등장한 다양한 전통의 교회들이 오늘날까지 존속한다. 그 결과, 오늘날 인도교회에는 대부분의 주류 종파가 공존하고, 특히 인도 동방교회는 20세기 후반부터 다시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인도의 사회와 교회는 만화경과 같은 다양한 양상을 띠는데, 이런 특성은 인도 신학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먼저 사회적 상황에 따른 인도 신학의 모습을 살펴보자. 첫째, 인도 신학은 아시아의 공통 문제인 다양한 종교・문화, 가난이라는 양대 주제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인도의 대표적인 신학은 종교대화 신학과 해방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인도 신학은 다인종 사회 및 카스트 제도와 씨름하고 있다. 그 결과, 다양한 광의의 민중 신학 혹은 ‘다중/인민 신학’(theology of people)이 등장했다.1 가령 수평적 차원에서는 인도 소수 부족의 ‘원주민 신학’(Tribal theology)을, 수직적 차원에서는 카스트 제도 밖 소외게층인 천민(outcaste)의 ‘달리트 신학’(Dalit theology)을 들 수 있다. 또한 여기에 지구촌의 공통 문제인 여성, 노동자, 장애인 등의 과제도 포함된다.
셋째, 인도 신학은 인도 민족주의의 이중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인도 민족주의는 국내적으로는 사회 내의 주류 인종과 비주류 인종 간의 갈등으로 나타났고, 국제적으로는 제국과 식민지 간의 투쟁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20세기 전반에는 아리안족과 힌두교를 중심으로 하는 반제국주의적 성향의 힌두 민족주의가 등장했는데, 이를 ‘힌두트바’(Hindutva, Hinduness)라 한다. 인도에서 종교와 정치 관계는 매우 민감한 문제로, 국가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도는 1947년 독립했지만, 독립과 동시에 힌두교 중심의 인도와 이슬람교 중심의 파키스탄으로 분립되었다. 그리고 파키스탄은 1972년 다시 동서로 나뉘면서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가 되었다. 한편 인도는 독립 후인 1950년에 헌법이 완성되었는데, 헌법상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세속 민주공화국을
표명하였지만, 사실상 힌두교를 국교로 삼으려는 시도로 인해 문제가 이어져 왔다. 이런 맥락에서, 인도 신학은 개종 등 종교 갈등을 다루는 종교와 사회 연구, 그리고 인도의 탈식민지화에 따른 후기식민주의(post-colonial) 연구를 주요 분야로 삼고 있다. 개종과 관련한 연구로는 김창환의 『정체성을 추구하며: 인도의 종교 개종 논쟁』(In Search of Identity: Debates on Religious Conversion in India)을 들 수 있다.2
이제 인도교회의 특성에 따른 인도 신학의 모습을 살펴보자. 첫째, 인도교회는 유구한 선교의 역사가 있고 현재 다양한 종파가 공존하기에 인도 신학은 교회 내외적으로 에큐메니컬 신학이 주요하게 나타난다. 인도의 에큐메니컬 신학은 내적으로는 과거 선교 역사에 나타난 종파 간 선교 경쟁 및 현재 인도교회 판도에서의 종파 간 협력과 일치를 다루고, 외적으로는 인도교회가 사회의 변화를 위해 타 종교 및 타 이데올로기와 연대하면서, 종교대화 신학과 해방신학이 밀접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둘째, 인도교회는 사회의 병폐를 답습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인도 신학은 그에 따라 교회, 신학, 선교 및 사역의 방향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셋째, 인도 전체 인구를 대략 13억 6,400만 명이라고 하면, 총인구 대비 그리스도인은 약 2.3%에 불과하지만, 숫자로는 약 3,128만 명에 이른다는 점에서 인도교회는 아시아의 교회 중 매우 크고 중요하며, 그에 따라 수준 높은 신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더구나 인도 신학은 인도 공용어 중 하나인 영어를 통해 세계화되었고, 평신도 신학자의 비중이 높다는 특성을 보인다.
이렇듯 인도 신학의 여정은 다양성과 일치의 신학적 파노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인도 신학을 근현대 중심으로 간추려본다.3 현지 신학의 선구자 격인 선교사 신학, 현지 신학 중 종교대화 신학, 광의의 민중 신학, 에큐메니컬 신학을 차례로 살펴보자.

현지 신학의 선구자 격인 선교사 신학
인도교회는 굳이 사도 도마 전승의 역사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인도의 첫 번째 교회인 인도 동방교회는 그 기원이 ‘성(聖) 도마 그리스도인’(Saint Thomas Christians) 혹은 ‘나스라니’(Nasrani)4로 소급되는데, 적어도 4세기 혹은 6세기부터 구체적인 역사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만일 4세기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인도 동방교회는 네스토리우스(Nestorius) 논쟁이 일어난 시기보다도 일찍 설립된 셈이다.5 이후 인도 동방교회는 교회적 차원에서 모교회인 동방교회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고위 성직자를 공급받았으며, 전통에 충실했다. 보통 선교지 교회의 발전 양상은 모교회 모방 혹은 토착화의 두 가지 상반된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인도 동방교회는 주로 전자에 속했다.
한편 모교회인 동방교회가 점차 다양한 종파로 분화됨에 따라, 인도 동방교회와 모교회의 관계도 복잡해졌다. 더구나 선교 후발주자인 가톨릭교회와 그 뒤를 이은 개신교, 특히 성공회가 불신자를 대상으로 한 전도와 더불어 기존 교회인 인도 동방교회의 개종을 추구하면서, 교회 판도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 결과, 오늘날 인도 동방교회는 다양한 종파로 분화되었다.
그런데 인도 동방교회는 초기에 현지와 관계를 정립할 때, 소수 종교 집단으로서 사회 변혁보다는 사회 적응 전략을 택했고, 그 결과 인도의 기존 문화, 특히 카스트 제도를 인정하면서 스스로 중간 계층에 해당되는 새로운 변종 카스트가 되었다. 오늘날 인도 동방교회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세계교회 및 인도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일익을 담당하면서 많은 에큐메니컬 운동가를 배출했다.
가톨릭의 선교는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포르투갈은 선교 ‘보호권’(padroado)에도 불구하고 현지인 선교에 주력하지 않았고, 교회 정치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오히려 가톨릭교회 ‘포교성성’ 산하의 선교회가 다양한 선교 전략을 보였다. 가령 하위층 위주 선교로는 어부들(Paravar)이나 천민을 대상으로 한 선교가 이뤄졌고, 상위층 위주 선교로는 카스트 제도의 정점을 이루는 브라만 선교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사제들도 상위층 위주 사제(Brahminical sanyasis)와 하위층 위주 사제(pandarasamis)로 나뉘었다.6 그 결과 이중계층적 성직자, 이중계층적 교회라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한편 개신교 선교는 전통적인 삼중 선교 사역(교회, 교육, 의료)에 집중했는데,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식민주의와 선교라는 선교학적 문제의 전형적인 사례가 되었다.7
오늘날 하위층 위주의 선교는 교회 내적이고 보수적인 신학인 교회 성장학과 교회 외적이고 진보적인 신학인 광의의 민중 신학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상위층 위주의 선교는 종교대화 신학으로 이어졌다. 주로 전자는 인도 동방교회와 개신교가, 후자는 가톨릭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전자에 있어서, 교회성장학은 인도 선교사 출신의 풀러신학교 선교학 교수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이 집단개종 현상에 주목한 피켓(J. Waskom Pickett)의 이론을 발전시킨 것이다.8
이 신학은 복음전파는 문화적 적합성이 중요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를 벗어나지 않고 복음을 수용할 때 그 수용도가 높아지고, 따라서 복음전파는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종족 단위로 이뤄져야 한다는 소위 ‘동질 집단 원리’(Homogenous Unity Principle)를 주장했다. 이 신학은 기존의 ‘선교 기지’(mission compound) 중심적 선교가 선교사와 선교사 주변의 현지인들로 구성된 종교적 게토를 생산하는 데 그치는 문제점을 타개하고, 현지 종족들의 삶을 중심으로 한 선교 방식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동질 집단 원리’는 복음이 인간의 이질성을 극복하는 보편주의보다 오히려 인간의 동질성에 영합하는 특수주의를 강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즉 이것은 일종의 현상유지적 신학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포레스터(Duncan B. Forrester)는 영국 개신교 선교 사례를 중심으로, 선교가 카스트 제도에 대해 지니는 태도를 문제 삼았다. 결국 선교사가 선교를 하면서 카스트 제도를 인정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인데, 이것은 궁극적으로 종교 메시지가 사회적 상황과 무관한 채 전해질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선교학적 문제로 수렴된다.9
후자에 있어서,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인 데 노빌리(Roberto de Nobili)의 브라만 선교, 곧 현지 문화 긍정적인 적응(accommodation, adaptation) 선교는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중국 선교와 더불어 현지 종교를 긍정적으로 보면서 기독교는 현지 종교의 부족한 점을 보충해 준다는 입장인 보충론(fulfillment) 선교 전략의 효시가 되었다. 그가 인도 신학에 미치는 영향은 오늘날도 여전하다. 개신교에서도 보충론적 입장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파커(John N. Farquhar)의 『힌두교의 왕관』(The Crown of Hinduism)을 들 수 있다.10 그의 주장은 한마디로 그리스도교가 힌두교를 완성시킨다는 것이다.

종교대화 신학 혹은 문화 신학
그리스도교는 복음 전파 과정에서 선교지의 다양한 종교·문화와 만나게 된다. 따라서 양자의 만남은 현지 신학의 첫 번째 관문이다. 선교사들이 현지 종교·문화를 대하는 태도는 부정적인 백지론(tabula rasa)부터 긍정적인 보충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태도는 현지 그리스도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현대의 종교대화 신학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인도 종교·문화의 중심은 다름 아닌 힌두교요 브라만 문화이다. 더구나 힌두교와 브라만 문화는 단순히 중심을 차지하는 정도를 넘어 압도적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와 힌두교 및 힌두 문화의 만남, 그리고 그에 따른 신학은 가장 본질적이고 우선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신학과 현지의 주류 종교·문화의 만남의 신학은 아시아 전반에 걸쳐 나타나지만, 특히 인도 아대륙, 즉 인도(힌두교),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이슬람교), 스리랑카(불교) 등에 고루 나타난다. 인도아대륙 신학 중 인도 신학 이외의 것은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그리스도교와 힌두교의 만남의 신학의 역사는 위에서 언급한 데 노
빌리로부터 유구하다. 특히 근현대 인도 신학에 주목할 만한 사건은 두 가지이다. 첫째, ‘벵갈 르네상스’(Bengali Renaissance)라는 운동으로, 인도 주류 문화인 힌두 문화의 개혁과 부흥을 통해 인도 사회를 변화하려는 노력이었다. 이 가운데는 로이(Ram Mohan Roy)로 소급되는 그리스도교적 요소가 반영된 일신론적 개혁 운동 ‘브라모 사마지’(Brahmo Samaj)가 있다. 역으로 라마바이(Pantita Ramabai)는 힌두교적 요소를 그리스도교에 접목시킨 ‘묵티 선교’(Mukti Mission)를 설립했다. 사실 19세기 말 이래 인도 신학의 주류는 그리스도교와 힌두교의 만남의 신학이었다. 가령 초창기 인도 신학 역사서인 보이드(Robin Boyd)의 『인도 그리스도교 신학 입문』(An Introduction to Indian Christian Theology)에 나오는 신학들은 거의 이런 신학–힌두교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이고, 책 마지막 부분에 부록처럼 토마스(M. M. Thomas)의 행동 신학이 간단하게 소개된다.11 이 책은 1969년에 발간되었고 1975년에 수정본이 나왔는데, 이질적인 토마스의 신학을 다룬 부분은 수정본에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1960년대 말까지 이 분야의 신학이 인도 신학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절대적이었다.
둘째, 1938년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탐바람(Tambaram) 대회 개최 직전에 차카라이(Vengal Chakkarai)를 필두로 한 일단의 인도 신학자들이 『인도 그리스도교 재고』(Rethinking Christianity in India)를 출간한 일이다.12 이들을 ‘그리스도교 재고 집단’(Rethinking Christianity Group 혹은 Madras Rethinking Group)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바르트의 관점에서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 입장을 취한 평신도 선교학자 크래머(Hendrik Kraemer)에 반발했다. 이 책은 1932년 출간된 『선교의 재고』(Rethinking Missions)를 연상시키는데, 『선교의 재고』가 전통적인 선교 방식을 비판했다면 『인도 그리스도교 재고』는 전통적인 선교 신학을 비판했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행동은 그리스도교와 힌두교의 만남의 신학을 강화했다.

광의의 민중 신학 혹은 사회 신학
인도 신학에서 광의의 민중 신학에 속하는 대표적인 신학은 달리트 신학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1891년 인구조사를 통해 비로소 처음으로 카스트 제도에 대한 표준적인 분류체계가 마련되었다.13 이로 인해 카스트 제도의 문제가 공식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달리트는 아리안족의 인도 도래 이전부터 생존해왔던 원주민으로 천민을 통칭한다.
달리트 신학은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고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신조어이다. 한국의 민중 신학에서 ‘민중’을 어떻게 정의하고 규정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듯, 달리트 신학도 마찬가지이다. 달리트 신학은 일반적으로 1981년 니르말(Arvind P. Nirmal)이 발표한 논문을 기원으로 보는데, 니르말은 1988년 “그리스도교 달리트 신학을 향해”(Towards a Christian Dalit Theology)라는 논문에서 그 사상을 더욱 발전시켰다고 한다.14
달리트 신학과 더불어 소외계층을 다루면서도 인종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 원주민 신학(혹은 부족 신학)이다. 인도의 헌법도 소외계층을 둘로 나누는데, 하나는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로 천민이고, 다른 하나는 지정 원주민(혹은 지정 부족, Scheduled Tribes)으로 주로 북인도에 사는 원주민이다.(이런 분류가 정확하고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전자는 달리트 신학, 후자는 원주민 신학과 연결되며, 교회의 주요 구성원을 살펴보아도 남인도교회(Church of South India)는 달리트가, 북인도교회(Church of North India)는 원주민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유사한 특성을 보인다.
달리트 신학과 원주민 신학을 필두로 한 광의의 민중 신학에서는 다음의 영역 또한 중요하게 다룬다. 첫째, 달리트 신학과 원주민 신학은 제4세계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4세계란 국가 내의 소외집단으로 정치적 발언권을 갖지 못하는 집단(under-represented group)을 말하는데, 이런 부류는 아시아에 많다. 이런 맥락에서 제4세계 신학은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발언권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둘째, 성차별과 관련된 여성, 경제와 관련된 노동계층, 또한 장애인 등 다양한 소외집단에 대한 신학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달리트 신학과 원주민 신학은 주로 신분제와 인종의 관점에서 연구하는데, 달리트나 원주민 안에도 여성 문제가 있고, 달리트나 원주민 밖에도 노동 문제나 장애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에큐메니컬 신학
인도교회는 역사가 길듯이, 선교 역사도 길고, 선교 운동의 자녀라고 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역사도 길다. 인도교회의 지도자들, 나아가 인도 신학자들은 일찍부터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해 교회와 선교에 대해서 선교사들의 입장이 아닌 현지 그리스도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19세기 말 아시아, 특히 중국, 일본, 인도에 국가별 에큐메니컬 대회가 열렸고, 이런 대회에 현지 그리스도인이 참여해 발언권을 얻기 시작했다. 국가별 에큐메니컬 대회는 국제 에큐메니컬 대회로 발전했고,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는 현대 에큐메니컬 운동의 이정표가 되었다. 이 대회에 아시아 대표로 선교사들과 아시아교회 지도자들, 즉 중국, 일본 및 인도 교회 지도자들이 참가했다. 한국 대표로는 모펫(Samuel A. Moffett)과 존스(George H. Jones) 등 선교사와 윤치호가 참가했다.15 아시아교회 지도자들은 파격적인 발언을 통해 서구교회와 서구 선교기관에 도전했는데, 가령 인도의 아자리아(V. S. Azariah, 후에 주교)는 선교사들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면서 서구선교(교회)와 비서구교회의 동등성을 강조했다. 윤치호는 선교 자금의 공동 사용까지
주장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아시아교회에 발언권을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아시아 신학의 발전에 기여했고, 역으로 아시아교회도 에큐메니컬 운동의 발전에 기여했다. 아시아기독교협의회(Christian Conference of Asia)는 최초의 권역별 에큐메니컬 기구인데, 아시아교회 간의 에큐메니컬 운동을 위해 1938년 탐바람 대회에서 제안된 내용이 1957년에야 열매를 맺어 생겨난 조직이다. 인도 신학자들은 에큐메니컬 운동과 신학의 발전에 여러모로 기여했다. 가령 위에서 언급한 토마스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 초창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혁명 등 아시아 사회 문제를 신학화했다.16 사마르타(Stanley J. Samartha)는 세계교회협의회의 ‘타 종교 및 타 이데올로기 신봉자들과의 대화 위원회’(sub-unit for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초대 위원장으로 활동했고, 종교대화 신학에 관한 서적도 다수 출간했다.17 한편 김은하의 연구에 의하면, 여성교육가요 에큐메니컬 운동가로 활동한 차코(Sarah Chacko)는 세계교회협의회에 아시아 및 여성적인 요소가 강화되는 데 기여했다.18
또한 아시아에는 연합교회가 많이 탄생했는데, 인도에도 대표적으로 남인도교회(1947)와 북인도교회(1970)가 설립되었다. 이뿐 아니라 인도에는 연합신학교 등 에큐메니컬 연구기관이 많다. 가령 뱅갈로 소재 연합신학교(United Theological College, Bangalore)는 신학교와 기독교 학교의 두 가지 유구한 전통이 수렴되었다. 이 학교는 1910년 신학교육을 위해 설립된 ‘남인도 및 실론 연합신학교’의 후신이고, 동시에 1829년에 설립된 세람포대학교(Serampore College)와 1919년 연계되어 신학사 학위를 수여한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새로운 역사기술(historiography) 정립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그 일환으로 20세기 후반 에큐메니컬 역사, 제3세계 역사, 권역별 역사 등을 발전시켰다. 인도교회도 일찍부터 인도교회사의 새로운 역사기술을 시도했다. 인도는 아시아에서 교회사학회가 가장 먼저 조직(1935)된 나라로(일본 1949년, 한국 1966년), 1950년대부터 연구가 활발했고, 1973년 ‘인도 그리스도교사’(History of Christianity in India) 시리즈를 계획해 1982년 첫 권이 나왔는데 인도교회사(통사)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19 우먼(George Oommen)에 의하면, 새로운 인도 교회사는 1970년대 민족주의적(Nationalistic) 역사를 필두로, 달리트와 원주민(Dalit and Tribal), 여성주의적(Feminist), 후기식민주의적(Post-Colonialist), 서벌턴적(Subalternist), 신민족주의적(Neo-Nationalist) 역사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20

인도 신학의 전망
인도 신학은 20세기 후반, 특히 1970-80년대 이후 활발해졌다. 인도 신학은 종교대화 신학의 선두주자로서 다른 아시아 신학에 사례를 제공할 수 있다. 인도 신학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고 복잡한 인구 문제를 직면한 신학으로서 광의의 민중 신학을 통해 다른 아시아 신학과 상승 작용을 이룰 수 있다. 인도 신학은 역사성과 다양성을 지닌 신학으로서 교회 간, 교회와 사회 간 에큐메니컬 신학을 통해,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 바로잡습니다 |
이 연재의 지난 호(2020년 8월호) 글 91쪽 첫 번째 줄에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낙운해에 의하면, “대동아공영권의 기독교도들에게 보내는 서”(1994년 부활절)의 원안을 기초한 인물은 ~~~.
이 문장에서 ‘1994년’을 ‘1944년’으로 바로잡습니다.



1 John C. England et al., eds., Asian Christian Theologies: A Research Guide to Authors, Movements, Sources, Vol. 1 Delhi; Quezon City; Maryknoll, New York: ISPCK; Clarentian Publishers; Orbis Books, 2002), 238-241.
2 Sebastian C. H. Kim, In Search of Identity: Debates on Religious Conversion in India(New Delhi: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3 인도 신학에 관한 간단한 입문서로는 다음과 같은 책을 들 수 있다. Robin H. S. Boyd, An Introduction to Indian Christian Theology(New Delhi: ISPCK, 1969; rev. ed., 1975); M. M. Thomas & P. T. Thomas, Towards an Indian Christian Theology: Life and Thought of Some Pioneers(Tiruvalla: The New Day Publications of India, 1992); R. S. Sugirtharajah & Cecil Hargreaves, Readings in Indian Christian Theology, Vol. 1(London: ISPCK, 1993).
4 ‘나스라니’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아랍어로, 그리스어 ‘Ναζωραιοι’에서 파생되었고 영어 ‘Nazarene’에 해당한다. 이 단어는 초기 그리스도교를 1세기 유대교 내의 그리스도교 이단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행 24:5 참조)
5 시릴 B. 퍼스, 임한중 옮김, 『인도교회사』(CLC, 2019), 64.
6 Mark A. Lamport, ed., Encyclopedia of Christianity in the Global South, Vol. 1(Lanham; Boulder; New York; London: Rowman & Littlefield, 2018), 370.
7 Stephen Neill, Colonialism and Christian Missions(New York; Toronto; London; Sydney: McGraw-Hill Book Co., 1966).
8 J. Waskom Pickett, Christian Mass Movements in India: A Study with Recommendations(Nashville: Abingdon Press, 1933); 도널드 맥가브란, 이광순 옮김, 『하나님의 선교 전략』(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도널드 맥가브란, 최동규 외 역, 『교회성장 이해』(대한기독교서회, 2017).
9 Duncan B. Forrester, Caste and Christianity: Attitudes and Policies on Caste of Anglo-Saxon Protestant Missions in India(London and Dublin; Atlantic Highlands, NJ: Curzon Press; Humanities Press, 1980).
10 J. N. Farquhar, The Crown of Hinduism(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13).
11 Boyd, An Introduction to Indian Christian Theology, 311-330.
12 Vengal Chakkarai and G. V. Job et al., Rethinking Christianity in India(Madras: A. N. Sudarisanam, 1938).
13 John C. B. Webster, The Dalit Christians: A History(Delhi: ISPCK, 1992), 8.
14 Sathianathan Clarke et al., “Introduction”, in Dalit Theology in the Twenty-first Century: Discordant Voices, Discerning Pathways edited by Sathianathan Clarke et al.(New Delhi: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15, 미주 10.
15 재한 선교사 참가자 명단은 다음을 볼 것. 김은수,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에서 한국교회의 기여와 과제”, 「선교신학」 39호(2015): 123, 각주 4.
16 M. M. Thomas, My Ecumenical Journey(Trivandrum: The Ecumenical Publishing Centre Private Ltd., 1990); The Christian Response to the Asian Revolution(London: SCM, 1966).
17 S. J. Samartha, Courage for Dialogue: Ecumenical Issues in Inter-Religious Dialogue (Geneva: WCC, 1981).
18 김은하, “세계교회협의회 형성과 여성 에큐메니칼 선구자들의 공헌”(장로회신학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8).
19 김흥수, “아시아기독교사 연구를 찾아서: 한국인 교회사가의 아시아 여행”, 「신학과현장」 22호(2012): 81-86; Robert E. Frykenberg, Christianity in India: From Beginnings to the Present(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19-20. A. Mathias Mundadan, History of Christianity in India, Vol. I: From the Beginning up to the Middle of the Sixteenth Century(Bangalore: Church History Association of India, 1982).
20 George Oommen, “Theoretical Schools in the Historiography of Indian Christianity: 1970s to the Present”, Asian Christian Review, 7/2(Winter, 2013): 34-45.



안교성 | 교회사를 전공하였다. 『한국교회와 최근의 신학적 도전』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0년 9월호(통권 7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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