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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아시아 기독교] 아시아 신학 순례 05
교회와현장 (2020년 8월호)

 

  가깝고도 먼 일본 신학
  

본문

 

일본 신학의 전개
일본 복음화는 근현대 서구 선교운동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다. 먼저 16세기에 시작된 가톨릭 선교는 단기간의 폭발적인 성장과 뒤이은 장기간의 혹독한 박해로 이어졌다. 그리고 19세기 일본의 개국 과정에서는 박해기 동안 신앙을 유지했던 ‘은둔 그리스도인’[隠れキリシタン/かくれキリシタン(Kakure Kirishitan) 혹은 潛伏キリシタン(Senpuku Kirishitan)]의 존재가 드러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개국 이후 가톨릭교회는 전반적으로 낮은 자세로 교회를 운영했고, 신학 발전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가톨릭교회는 점차 종교대화 신학을 중심으로 신학을 발전시켰고, 최근에는 사회참여적 신학도 시도했다.
한편 동방정교회의 선교는 개국 직후 러시아정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동방정교회는 제국주의의 각축기에 러일전쟁 등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부침했고, 종전 이후에도 소수 종파로서의 위상은 크게 변화가 없다. 최근 들어 아시아 국가 내에서 정교회가 활성화되고 있으니, 일본에서도 정교회 신학 보급과 지역신학 형성을 기대해볼 만하다.
개신교 선교도 개국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대표적 제국인 영국에 의해서 개국된 중국과 달리, 일본은 신흥 강대국인 미국에 의해서 문호가 개방되었다. 개국 이후 미국과 일본 모두가 신진 제국으로 나서면서, 미일 관계는 복잡하고도 기나긴 애증 관계를 이어왔다. 이런 관계가 일본의 정치 및 종교, 특히 개신교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개신교는 가톨릭교회나 동방정교회와 달리 일관성 있는 체제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서 매우 복잡했다. 첫째, 개신교의 이미지는 이중적이었다. 개신교는 가톨릭교회의 반국가적 종교라는 낙인 효과의 영향을 일정 부분 받게 되었다. 따라서 개신교는, 한편으로는 서구 근대화의 핵심으로 간주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화혼양재(和魂洋才)의 관점에서 서구 근대화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심지어 경계해야 할 정신으로 비춰졌다.
둘째, 개신교 사역과 근대화의 관계는 양가적이었다. 개신교는 선교사가 주도한 근대화 프로그램을 통해 교회 규모 이상으로 영향력을 미쳤다. 가령 전통적인 삼중선교 사역(교회, 교육, 의료) 중 교육 선교는 교육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았다. 서정민은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주의’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종교 신앙으로서의 기독교만이 아니라 사상체계, 혹은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독교”의 영향력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선교사가 주도한 근대화 프로그램은 정부가 주도한 근대화 프로그램에 밀리면서, 의료 선교는 초창기부터 위축되었다.1
셋째, 개신교 선교사와 일본교회 사이에는 우호적/비우호적 관계가 동시에 나타났다. 그 결과 일본교회의 판도는 극도로 복잡해졌다. 먼저 일본 기성교회는 선교사의 전통을 이어받는 교파주의 기성교회와 일본인 주도의 기성교회 두 갈래로 나뉘었는데, 후자는 일본 그리스도교의 초창기 교회일치운동의 주요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 일본인 주도의 토착교회도 나타났는데, 대표적인 것이 무교회주의(無教会主義, nonchurch movement)이고, 이것은 수많은 토착교회의 원조가 되었다.2
이와 더불어 일본 신학도 매우 다양하고 독특한 양상을 보였다. 첫째, 일찍부터 신학이 상당 수준으로 발전했다. 일본 신학은 다른 선교지와 마찬가지로 선교사 신학의 전래와 수용을 통해 발전해왔고, 또한 적극적 서구화와 아시아적 제국주의의 맥락에서 서구 신학의 적극적 수용과 국수주의적 신학 형성이라는 특징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일찍부터 자유주의 신학이 소개되었고, 보수 신학계에서도 바르트 신학이 유행하는 등 다소 진보적인 경향을 보였다. 대조적으로, 한국에서는 바르트 신학이 보수 신학이 아니라 진보 신학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것은 한국교회의 상대적인 보수화 경향을 말해준다.
둘째, 제도권 신학과 더불어 비제도권 신학, 특히 평신도 신학이 발달했다. 일본 선교 초창기에 외국인 선교사뿐 아니라 외국인 평신도들이 주로 학교를 통해서 일본교회의 초기 지도자들을 배출했고, 그 결과 일본 평신도들이 선교사 및 기성교회와 별도로 신학과 사역, 특히 교육 사역을 주도했다. 이런 맥락에서 평신도 신학자들의 대학을 배경으로 한 신학이 발전하여, 비제도권 신학과 제도권 신학이 일본 신학계의 양축이 되었다. 평신도 신학은 신학이나 종교학을 넘어 인문학적 특성을 보였다. 최근 대두된 중국의 한어신학과의 비교연구도 유의미할 것이다.
셋째, 일본교회는 성장의 부침을 거듭하다가 결국 만성적 약세 현상을 보였는데, 이것은 교회적 과제요 신학적 주제가 되었다. 가령 일본교회의 성장에 대한 연구, 특히 일본교회와 서구 근대화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는 연구는 초창기 일본교회사에 관심을 보인 야마지 아이잔(山路愛山)부터 최근의 후루야 야스오(古屋安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3 일본교회의 성격에 대한 연구도 몰락한 무사계급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주의에 대한 주장부터 넓은 의미의 민중교회사를 논한 도히 아키오(土肥昭夫)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일본 신학은 교회 신학 혹은 제도권 신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대신, 다양한 신학–전통문화와의 만남을 탐구하는 신학, 전통종교와의 종교대화 신학, 대(對)사회적 측면을 강조하는 신학, 형용사적 신학 혹은 소유격의 신학 등–이 등장했다. 이제 제도권 신학, 다양한 신학, 일본 신학 자체의 의미를 묻는 신학적 노력의 순서로 살펴보자.

교회 신학 혹은 제도권 신학
일본 신학은 여타 선교지와 마찬가지로 교회 신학 혹은 제도권 신학의 특성을 나타냈다. 일본교회는 주로 미국교회의 영향을 받았지만, 일본 신학은 유럽 신학, 특히 독일 신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독일 신학의 영향은 제도권 신학이나 비제도권 신학 모두에 나타났다.
초창기 일본 신학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일본교회는 초기부터 선교사(특히 독일계)를 통하여 자유주의 신학을 접했다. 둘째, 일본교회에는 초기부터 민족주의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는 성향이 나타났고, 이런 성향은 교회와 신학을 넘어 정치 분야로 확산되었으며, 급기야 황국(皇國)을 신국(神國)과 동일시하는 국수주의적 신학인 소위 ‘일본적 기독교’까지 나왔다. 이런 맥락에서 개신교 초기부터 다양한 논쟁이 벌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기독론을 둘러싼 보수/진보 신학 간의 “에비단조-우에무라 마사히사 신학 논쟁”(海老名弾正と植村正久の神學論爭)이다.4 이런 논쟁이 발생한 자체가 초창기 일본 신학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한편 제도권 신학 중에는 위에서 언급한 우에무라 마사히사, 타카쿠라 토쿠타로(高倉徳太郎), 쿠마노 요시타카(熊野義孝)로 이어지는 중심축이 있다. 특히 쿠마노 요시타카는 이종성, 지동식, 문익환, 박봉랑 등이 일본에 유학할 당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이들 중에서 초창기 조직신학 서적인 『복음적 기독교』(福音的基督敎)를 저술했고, 바르트 신학을 널리 보급한 타카쿠라 토쿠타로를 살펴보자. 그가 주장한 ‘복음적 기독교’란 다음과 같다.

宗敎改革者(종교개혁자)들에 依(의)하여 徹底的(철저적)으로 살려진 福音的(복음적) 基督敎(기독교), 聖書(성서)의 宗敎(종교)로서의 그리스도敎(교)의 根本(근본) 特色(특색)은 그것이 <말씀>의 宗敎(종교)요 宗敎的(종교적)인 意味(의미)로 原罪(원죄)를 認定(인정)하는 宗敎(종교)요, 絶對的(절대적) 恩寵(은총)과 召命(소명)에 사는 것을 主張(주장)하는 宗敎(종교)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왔다. 우리는 그러한 意味(의미)로서의 福音的(복음적) 基督敎(기독교)를 現代(현대)의 基督敎界(기독교계)에 呼訴(호소)하고 싶은 것이다. 또 이 基督敎(기독교)의 眞理(진리)에 있어서 나의 祖國(조국)을 근심하고 또 同胞(동포)를 사랑하고 싶다. 이것이 우리 一生(일생)의 切願(절원)이다.5

타카쿠라 토쿠타로는 제도권 신학자이면서도 비판적으로 서구 신학을 수용했다. 그가 말하는 ‘복음적 기독교’는 결국 종교개혁자의 종교인데, 그에 의하면 종교개혁자의 종교는 점차 약화되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변증법적 신학(혹은 신정통주의 신학)에 의해서 재기되었다. 그는 독일과 스위스에서 여러 변증법적 신학자들이 나왔지만, 영미권에서는 포사이트(P. T. Forsyth)를 제외하고 그런 움직임이 없다고 비판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미국 신학에 대해, “要(요)컨대 그러한 功利的(공리적) 基督敎(기독교)는 그리스도敎(교)의 美國化(미국화)라고도 할 만한 것이어서 基督敎(기독교)의 眞理(진리)를 輕視(경시)하여 이것을 淺薄(천박)하게 만드는 것이다.”6라고 비판했다.
타카쿠라 토쿠타로가 말한 ‘복음적 기독교’의 첫 번째 특징은 성서의 종교인데, 그의 성서관은 바르트를 연상시킨다. 그는 “聖書無謬(성서무류)의 信仰(신앙)에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많은 矛盾(모순)이 있다.”라면서, “救拯的[구증적(=구원적)] 眞理(진리)를 保證(보증)하는 点(점)에 있어서 聖書(성서)가 完全(완전)하면, 우리들은 聖書(성서)에서 宗敎(종교)에 있어서의 絶對(절대) 權威(권위)를 認定(인정)하여도 可(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7 그는 『복음적 기독교』에서 바르트를 한 번 언급할 뿐, 바르트의 작품을 직접 인용하지는 않는다.8 그러나 자신이 개척한 시나노마치교회(信濃町教会, 戶山教会의 후신) 목회 중에 바르트 신학을 높이 평가하였고, 교회도 그런 분위기를 이어갔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의 창설자 최태용도 일본 유학 시절 그에게 배웠고, 한국에 바르트를소개한 신학자 중 하나였다.
여하튼 20세기 2/4분기 이후 바르트 신학은 일본 신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바르트 신학은 초월을 지향하는데, 이런 지향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즉 세상과 비판적 거리를 두는 사회 비판적인 신학과 세상에서 초연한 결과 오히려 나타나게 된 사회 현상유지(status quo)적인 신학이다. 종전 이전 일본의 경우, 후자가 강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국수주의적 신학이 등장했지만, 독일과 달리 고백교회가 없었다. 낙운해에 의하면, “대동아공영권의 기독교도들에게 보내는 서한”(1944년 부활절)의 원안을 기초한 인물은 당시 저명한 주류 신학자들로 세 사람 모두 바르트 신학자였지만, 소수의 바르트 신학자들이 저항의 목소리도 냈다. 곧 에콘 헤셀(Egon Hessel)과 스즈키 마사히사(鈴木正久) 등이다. 전자는 독일 선교사였다가 독일 고백교회 무급(無給) 선교사로 전환했고, 후자는 전후 “제2차 대전하의 일본기독교단의 책임에 대한 고백”(1967)을 작성했다.9 주류 교회가 아닌 홀리네스교회(ホーリネス教会, 성결교회)의 저항도 주목해야 한다.

다양한 신학(1): 일본 전통문화와의 만남을 탐구하는 신학
일본 신학 중 세계적으로 알려진 신학은 기타모리 가조(北森嘉蔵)의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神の痛みの神學)이다. 이 신학은 한편으로 그리스도교 전통의 차원에서 루터의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을 새롭게 해석했고, 다른 한편으로 일본 문화의 ‘쯔라사’(つらさ, 괴로움) 개념을 신학화했다.10 이런 신학 구성 방식은 아시아 신학의 한 가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아픔’이란 주제를 종전 이전에 구상했고, 종전 직후인 1946년에 출간했다. 칼 미할슨(Carl Michalson)이 그의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한 일본의 기여』(Japanese Contributions to Christian Theology)에서 이 신학을 소개함으로써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고, 여러 나라에 번역되었다.
그런데 이 신학과 관련하여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이 신학이 아픔의 주제를 다루면서 당시 전쟁 가운데 아픔을 겪었던 일본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는 평가가 있는데, 과연 그 아픔이 ‘누구의’ ‘어떤’ 아픔인가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곧 아픔의 추상성 문제이다. 아시아 신학, 특히 상황화의 관점에서 역사의 구체적 맥락은 매우 중요한데도 말이다.
이밖에 아시아 문화, 특히 태국 문화와 그리스도교를 접목하려고 했던 코스케 코야마(일본식으로 코야마 코스케, 小山晃佑, Kosuke Koyama)를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신학(2): 일본 전통종교와의 종교대화 신학
일본 신학은 일본 전통종교, 특히 불교와의 종교대화의 신학을 활발하게 진행해왔다. 가톨릭 학자들의 연구가 일찍부터 이뤄졌는데, 선교사였던 후고 에노미야-라살(Hugo Makibi Enomiya-Lasalle)의 선(禪) 연구서는 한국에도 번역된 바 있다.11 이후 세대 중에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는 일본 불교의 연기(緣起)를 ‘프론트 구조’(front structure)라는 개념을 통해서 현대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설명하려 했고, 이 구조를 통하여 그리스도교의 신관을 재해석하는 등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는 1988년에 『프론트 구조의 철학』(フロント構造の哲學)을 발간했고, 곧이어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선교학 교수 테오 준더마이어(Theo Sundermeier)의 권유로 독일어 축약본인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잇는 가교로서의 프론트 구조』(Die Front-Struktur als Bruecke vom buddhistischen zum christlichen Denken)를 출간했다. 마침 이 소책자는 미국 종교학자 레너드 스위들러(Leonard Swidler)의 관심을 끌어, 그의 장문의 서문과 번역을 통해 영어판으로 출간되었고, 이 영어판은 우리말로 번역되었다.12 결국 이 소책자는 일본-독일-미국-한국으
로 전 세계를 한 바퀴 돈 셈인데, 아시아 신학의 세계 교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신학(3): 대(對)사회적 측면을 강조하는 신학
일본 신학의 특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사회적인 신학이다. 이런 특징은 두 가지 면으로 나타난다. 첫째, 사회 비판적 신학이다. 종전 이전에는 가가와 토요히코(賀川豊彦) 같은 ‘기독교 사회주의’자가 활동했고,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관계는 중요한 신학적, 교회적 주제가 되었다. 종전 이후에는 일본교회가 전쟁 책임을 고백하면서, 스스로를 사회의 주류보다는 양심적 소수자로 자리매김했고, 이에 따라 민주화, 천황제 반대, 평화, 반핵 등 다양한 운동을 전개해나갔다. 일본 그리스도교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하고, 일종의 망명지 역할을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둘째, 사회와의 문화 교류적 신학이다. 이 분야에는 제도권 신학과 비제도권 신학이 모두 기여했다. 가령 무교회주의 창시자이자 평신도 신학자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와 그의 제자들의 작품이 일본에서 널리 읽혔고, 한국에서는 그의 제자요 평신도 성서신학자인 쿠로사키 코우키치(黑崎幸吉)의 성서주해가 한때 널리 읽혔다. 그런데 비제도권 신학의 범위는 매우 넓어, 그리스도교 예술가, 대표적으로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같은 작가가 그리스도교와 사회의 교류에 크게 기여했다. 심지어 비제도권 신학자의 작품들이 일반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한편 제도권 신학자들도 이 분야에 크게 기여했다. 가령 마사오 타케나카(일본식으로 타케나카 마사오, 竹中正男, Masao Takenaka)는 한편으로 에큐메니컬 신학 발전에 기여했고, 다른 한편으로 에큐메니컬 신학의 일환으로 그리스도교와 예술, 특히 일본 예술의 관계를 신학화하는 데 기여했다.13 비교적 최근에는 후카이 토모아키(深井智朗)가 『신학을 다시묻다: 사회사를 통해 본 신학의 기능과 의미』(神學の起源: 社會における機能)에서, ‘교회의 학문’이라는 신학의 전통적인 틀을 넘어 “일종의 ‘학문사’(學問史)”라는 새로운 틀을 통해서 신학과 사회의 대화 가능성을 타진했다.14

다양한 신학 (4): 형용사적 신학 혹은 소유격의 신학
일본 신학의 또 다른 특징은 형용사적 신학 혹은 소유격의 신학이 점차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소수자 신학을 예로 들어보자. 인종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순혈주의(純血主義)가 주를 이룬다. 일본의 소수자인 부라쿠민(部落民), 아이누(アイヌ)족, 나아가 재일한국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본인 이민자였다가 귀국한 ‘니세이’(二世)까지 차별받는다. 이런 맥락에서 아이누 신학, 부라쿠민 신학, 재일한국인 신학 등이 나왔다. 가령 구리바야시 테루오(栗林輝夫)의 『가시관의 신학: 피차별부락해방과 그리스도교』(荊冠の神學: 被差別部落解放とキリスト敎)는 일본 내 소수자의 어려움에 관한 한 예로, 민중해방운동가인 가가와 토요히코가 막상 부라쿠민의 부락해방운동에 대해서 인종적 편견으로 인해 반대했던 ‘가가와 문제’(Kagawa Problem)를 언급한다.15 재일한국인 신학인 이인하의『기류민의 신학』도 빼놓을 수 없다.16

일본 신학의 정체성 자체를 묻는 신학
마지막으로 일본 신학의 특징 중 한 가지 언급할 것은 일본 신학자들 중 일부가 일본 신학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데 부담을 느꼈다는 점이다. 후루야 야스오는 그가 편집한 『일본신학사』(日本神學史) 일본어판에서 1990년대에 가서야 비로소 일본 신학사가 처음 나오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 1960년대에 일본 신학에 대한 연구가 몇몇 서구 신학자들과 일본 신학자들에 의해서 본격화하기 시작했지만, 막상 이들 중 일본 신학자들이 아직 일본 신학이 미숙한 단계라서 신학사를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취했다.17 둘째, 『일본신학사』 집필조차 테오 준더마이어의 권유로 1985년부터 시작되었고,18 더구나 이 책은 단독 필자가 아닌, 4명의 신학자의 집필과 그의 편집으로 이뤄진 공동작업이었다. 여하튼 이런 신학사의 출간은 한국의 경우(1982)와 비교할 때, 늦은 감이 있다.
한편 후루야 야스오는 『일본의 신학』(日本の神學) 머리말에서 일본의 신학을 논하면서, 일본의 신학은 구미 신학을 본받는 일본에서의 신학(Theological Studies in Japan)이나 구미 신학을 일본화하는 일본적 신학(Japanese Theology)이 아니라, “‘일본’을 대상으로 하는 신학”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일본적 신학’이라는 용어는 제국주의 말기의 국수주의적 신학을 연상시키기에 경계해야 하고, ‘일본의 신학’이라고 할 때, 그 ‘의’는 소유격이 아니라 목적격이라고 주장했다. 즉 그는 일본 신학이 ‘일본’을 전반적이고 근본적으로 대상화하는 작업이요, 일본 지성의 자립을 성취하는 작업이라고 본 것이다.19 그는 일본 신학의 국가 종속의 과거를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들에게 일본 신학은 교회적 작업을 넘어 정신사 혹은 사상사적 작업이고, 이런 분야가 일본 신학의 관심사 중 일부이다.

일본 신학의 전망
일본 신학은 한국교회에도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한국 신학의 역사가 수입신학기에서 토착신학기로 넘어가는 과정에 일본 유학파의 역할이 컸기 때문인데, 당시에 대한 연구도, 그 이후의 일본 신학에 대한 소개도 미진하다. 그 결과 일본 신학은 가깝고도 먼 신학이 되었다.
이제 일본 신학에 대해 전망해보자. 첫째, 일본 신학은 ‘일본적 기독교’ 신학이라는 제국주의 말기의 국수주의적 신학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방안을 찾기를 바란다. 가령 본격적 신학서적은 아니지만 세계적 구약성서학자 타카미츠 무라오카(村岡崇光)의 고백적인 『나의 비아 돌로로사: 아시아에서 따라간 일본제국주의의 흔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20 둘째, 일본 신학은 서구 학자들의 힘을 입어 국제화, 특히 서구 교회와의 교류에 성공한 면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아시아 신학과는 교류가 활발하지 않아 이 분야가 활성화되기 바란다. 셋째, 신학의 우선적인 책임이 교회에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기에, 일본 신학이 교회 신학 혹은 제도권 신학에서도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넷째, 일본 신학은 타카쿠라 토쿠타로, 기타모리 가조, 코스케 코야마, 구리바야시 테루오, 이인하 등 중요한 신학들을 인정하는 일에 인색한 면을 보여주는데, 이런 내향성 혹은 편향성이 극복되길 바란다. 한마디로 일본 신학이 기존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여 본격적인 일본 신학, 아시아 신학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1 서정민, “일본 프로테스탄트 신학교육의 역사와 현재 고(考)”, 「한국신학논총」 16(2017): 59.
2 마크 R. 멀린스(Mark R. Mullins), 김성건·이숙희 옮김, 『일본의 종교: 토착교회 운동』(다산출판사, 2019).
3 Aizan Yamaji, Essays on the Modern Japanese Church: Christianity in Meiji Japan, translated by Graham Squires(Ann Arbor, MI: University of Michigan Center for Japanese Studies, 1999); 후루야 야스오·오키 히데오, 권영국 옮김, 『일본의 신학』(대한기독교서회, 1994), 227. 야마지 아이잔은 일본교회사 전문가는 아니라 이 분야에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최근 관련 연구가 나오고 있다. 한편 『일본의 신학』 일본어판은 1989년 요단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4 古屋安雄, 土肥昭夫, 佐藤敏夫, 八木誠一, 小田垣雅也, 『日本神學史』(東京: ヨルダン社, 1992), 36-44.
5 타카쿠라 도쿠타로, 전호윤 옮김, 『복음적 기독교』[설우사, 단기4283년(1950)], 168-169. 번역본이 최근까지 출간되었다. 이 책을 일본 최초의 조직신학서로 보는 입장도 있다. 번역문은 다소 윤문했다.
6 타카쿠라 도쿠타로, 위의 책, 147, 151. 언급된 학자들의 원어명은 일본어판의 참고문헌(한글 번역본에는 생략)에서 확인할 수 있다.
7 타카쿠라 도쿠타로, 위의 책, 12, 13.
8 J. Nelson Jennings, Theology in Japan: Takakura Tokutaro(1885-1934)(Lanham, Maryland: University Press of America, 2005), 188-190, 271.
9 낙운해, “일본에서의 바르트 신학 수용–1920년대 후반부터 1945년까지”, 미간행 발표논문, 칼 바르트 교회교의학 완역 기념 학술대회(2018년 5월 19일).
10 北森嘉蔵, 박석규 옮김,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양서각, 1987). 영어판을 저본으로 삼은 번역본도 나왔다. 기타모리 가조, 이원재 옮김,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새물결플러스, 2017).
11 후고·에노미야-라쌀, 이남영·정은순 옮김,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본 禪道: 깨달음에로의 길』(분도출판사, 1974).
12 야기 세이이치·레너드 스위들러, 이찬수 옮김, 『불교와 그리스도를 잇다』(분도출판사, 1996).
13 Masao Takenaka, Cross & Circle(Hong Kong: Christian Conference of Asia, Urban Rural Mission, 1990); 다께나까 마사오, 김기석 옮김, 『하느님은 밥이시다』(다산글방, 1991).
14 후카이 토모아키, 홍이표 옮김, 『신학을 다시 묻다: 사회사를 통해 본 신학의 기능과 의미』(비아, 2018), 13. 그는 한때 촉망받았으나, 연구와 관련한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사실상 중도하차했다.
15 구리바야시 데루오, 서정민·조재국 옮김, 『차별받는 그리스도–가시관의 신학』(다산글방, 1994), 391-407; 栗林輝夫, 『荊冠の神學: 被差別部落解放とキリスト敎』(東京: 新敎出版社, 1991). 한글 번역본의 제목은 다소 변형되어, 부라쿠민이 부각되지 않는다.
16 이인하, 양현혜 편역, 『기류민의 신학: 일본인들이 말하는 ‘재일 조선인’의 사회와 역사적 맥락에서』(대한기독교서회, 1998).
17 古屋安雄, 『日本神學史』, 7-18.
18 古屋安雄, 위의 책, 1. 원고는 일본어로 먼저 작성되었지만, 출간은 독일어판(1991), 일본어판(1992), 영어판(1997) 순으로 이루어졌다.
19 후루야 야스오·오키 히데오, 권영국 옮김, 『일본의 신학』(대한기독교서회, 1994), 14. 『일본 신학사』와 비슷한 시기에 작성되었다.
20 타카미츠 무라오카, 강범하 옮김, 『나의 비아 돌로로사: 아시아에서 따라간 일본제국주의의 흔적』(겨자나무, 2019).



안교성 | 교회사를 전공하였다. 『한국교회와 최근의 신학적 도전』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0년 8월호(통권 7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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