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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나의 목회 수기]
교회와현장 (2020년 8월호)

 

  목회 50년 회고–목회는 은혜이다
  

본문

 

목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목회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년의 세월이 흘러 은퇴를 하였으니 세월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음을 새삼 느낀다. 만 21세의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사명감과 열정 하나로 첫 목회를 시작한 것이 바로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런데 어느덧 49년 2개월을 목회하고 은퇴하였으니, 생각해보면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아니지 않은가!
은퇴 후 제일 많이 드는 생각은 ‘목회는 은혜’라는 것이다. 본래 신앙생활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목회야말로 정말 시종이 은혜이다.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은혜요, 목회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목회를 시작한 것이 은혜요, 목회 여정 속에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다 감당할 수 있게 하신 것이 은혜요, 목회를 하면서 목회자인 나 자신이 변하고 목회가 변한 것이 은혜요, 많은 성도들이 구원받고 은혜받게 하신 것이 은혜요, 국내외 복음 사역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신 것이 은혜요, 건강하게 목회를 마치고 원로 목사로 추대된 것 모두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50년의 목회 여정에서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였지만, 개인적인 경험이 절대적 진리이거나 모든 사람에게 보편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복음을 위해 땀흘리며 기도하는 후배 목회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간추려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왜 목회를 하려고 했나
우리 집안에는 목회자가 없다. 가까운 친척 중에도 없다. 내가 알기로는 어렸을 때 내가 살던 시골 동네에서 목사가 된 사람도 없었다. 또한 나에게 목사가 되라고 한 사람도 없었으며, 오히려 집안에서는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찍부터 목사가 되겠다고 마음먹게 된 결정적 계기는 성령 체험 때문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부흥회에서 성령 체험을 한 뒤, 하나님께서 나를 주님의 종으로 부르셨다고 확신하여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했다. 그전까지는 법관이 되거나 정치가가 되려는 생각을 하고 했었는데, 그때의 성령 체험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훗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깊이 깨달았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생명까지 주셨는데, 그렇다면 나는 마땅히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찬송가 <웬말인가 날 위하여>(143장)에 나오는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라는 가사처럼 주님께 내 몸을 드리기로 했다. 청년 시절 교회 마룻바닥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고 기도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목사 안수를 받기 1년 전 40일 금식기도를 할 때에도 다른 기도보다는 이왕 주님께 바친 몸이니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어렸을 때 출석하던 교회 목사님이 존경스럽고 훌륭해 보였고, 당시에 유명한 부흥사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을 흠모하는 마음이 커서 나도 그분들처럼 목사가 되고 부흥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어떤 목회를 하려고 했나–시작과 진행, 그리고 변화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작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지만, 내가 목사가 되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교회를 하고 세계적인 목사가 되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목사, 위대한 부흥사가 되려고 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석 달 전에 태어난 나는 가난한 농촌에서 어렵게 자라면서 성공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고, 게다가 큰 교회를 하는 것이 성공한 목회요,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학교에서 목회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지 못하기도 했고, 내가 목회를 시작하던 1970년대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도약과 더불어 교회도 크게 부흥하던 시기였으며, 그때 한국교회 성장에 큰 영향을 준 미국의 대형 교회들은 당시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모델이 되었기에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나는 신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작은 시골교회의 담임목회자로 시작하여 두 곳의 시골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군목으로 사역했다. 제대 후에는 서울에서 교인도 없고 돈도 없는 상황에서 빈손으로 교회를 개척하여 18년 동안 목회하다가, 지금의 신도시로 교회를 이전하여 내가 개척 설립한 교회에서만 40년을 목회하고 은퇴하였다.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개척 1년 만에 자립했고 이후 세 번의 건축을 하였다. 나는 목회하는 동안 꾸준히 국내외 부흥회를 인도하고, 신학교에서 강의도 하였으며, 교단 임원, 대학교 이사, 해외선교 단체장 등을 맡아 일했다. 2010년에는 「서울신문」에서 ‘존경받는 목회자 대상’을 받기도 했다.
나는 대형 교회를 꿈꾸면서 열심히 목회했다.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내 목회 철학이 잘못되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목회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 기저에는 성서의 말씀들이 있다.
변화를 이끈 결정적인 말씀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다. 이 구절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가장 정확한 말씀임을 깨닫고는, 신앙생활은 ‘자기 성취’의 과정이 아니라 ‘자아 죽음’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라고 말씀하셨다. 신앙생활은 ‘자기 성취’(self-achievement)가 아니라 ‘자기 부인’(self-denial)이다. 그러므로 자기 성취는 성공이 아니라 죄악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을 뜻한다.(빌 2:6-8)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주님은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마 6:10)
몇몇 성서 구절들의 참뜻을 깨닫고 난 후, 내가 큰 교회를 하고 위대한 목사가 되려고 했던 것은 ‘거룩한 비전’이 아니라 내 ‘야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 야망을 버릴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야망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민수기 20장 1-13절의 말씀 또한 나의 목회와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광야에 이르러 물이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자 모세가 바위를 쳐서 물이 솟아나게 한 일, 소위 ‘므리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처럼 행하라는 의미이다. 곧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너도 나타내라는 뜻이다.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예수처럼’ 살라는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누구에게든지. 이 말씀을 깨닫고 성령의 절대적인 도우심으로 그렇게 살려고 기도하고 노력했다. 아직도 온전히 그렇게 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 인생과 목회를 바꾸어놓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참고할 만한 경험들
목회하면서 내가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 중에서 목회에 혹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을 나누어보려고 한다. 목회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처럼 내 경험이 절대적 진리이거나 보편성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후배 목회자들에게 참고거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게 적어본다.

1) 빈손으로 신학교에 가서 수석 졸업: 신학교에 입학할 때 집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했다. 믿음으로 혼자 시작한 길, 고생도 했지만 하나님은 결국 수석으로 졸업하게 하셨다.
2) 믿음으로 세운 예산과 초과 결산: 목회 첫해에 예산을 세우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예산을 짜보니 전년도 결산 대비 600%가 증가한 액수였다. 하나님은 전년도 대비 640%를 결산하게 하셨다.
3) 오병이어로 개척 1년 만에 자립: 군목으로 제대한 후에 아무리 기도하고 기다려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병이어’를 드리자고 마음먹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결혼 패물과 아이 돌반지밖에 없었다. 그것을 팔고 빚을 얻어 교인이 한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개척을 시작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실제로 개인이나 교회의 후원 없이 교회를 시작했는데, 1년 만에 자립할 수 있었다.
4)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성전 이전: 서울 변두리에서 신도시로 교회를 이전하기로 하고 교회에서 특별기도를 시작한 지 4년 만에 응답을 받았다. 신도시 개발지구 경계에 있는 산을 사서 새 성전을 건축하였는데, 건축을 마치고 나니 교회 주변이 모두 개발되어 요지가 되었다.
5) 심고 거둠의 법칙: ‘심는 대로 거둔다.’는 갈라디아서 6장 7절의 말씀과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고린도후서 9장 6절의 말씀을 굳게 믿었다. 군목으로 있을 때 결혼하였는데, 당시 생활비가 적자여서 10의 2조를 드리기 시작했고, 제대 후 빈손으로 교회를 개척할 때는 정말 굶어 죽게 생겨서 10의 3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하나님은 필요한 모든 것을 풍족하게 채워주셨다.
먼저 심어야 거둘 수 있기에 나와 교회에 필요한 것들을 다른 곳에 먼저 심었다. 옷이 필요해서 옷을, 차가 필요해서 차를, 아이들 교육을 위해 다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심었다. 치료를 위해 다른 사람의 치료비를 내주고, 가족을 위한 거처가 필요할 때 다른 사람의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우리 교회 건축을 위해서 다른 교회 예배당 건축을 도왔고, 교회 건축 중에 완공을 하지 못하게 되자 처지가 비슷한 다른 교회의 완공을 도왔다. 건축 후에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다른 교회의 건축 빚을 갚아주었다. 해외에 수십 개의 예배당도 건축하여 봉헌했다. 나보다 앞서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간 선배 동역자인 원로목사님들을 명절 때마다 대접했고, 우리 부부의 믿음의 아버지들이라 할 수 있는, 어렸을 때의 담임목사님들을 매달 모셔서 설교를 부탁드리고 식사를 대접하였으며, 교단 은급비보다 많은 사례비를 드렸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심은 것만 주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심지 않은 것들을 은혜로 주신다. 심지 않은 것도 은혜로 주시는데 하물며 심은 것을 아니 주시겠는가.(시 126:6)
6) 물질의 욕심을 버리고 정확하게: 목회에서 물질 관리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이다. 나는 목회 사례비를 더 달라고 해본 적이 없고, 재정 부서에서 세운 사례비 예산을 항상 낮추느라 실갱이를 하는 일이 많았다. 10년 이상 강제로 동결하기도 했고, 은퇴 후 원로목사 예우 사례도 재정 부서에서 세운 원안에서 반 강제적으로 절반 이하로 낮추었다. 그 때문에 회의를 다시 해야 한다고 큰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심방은 목회자로서의 공식 활동이니, 그에 따르는 사례비는 받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실천했으며, 부흥회 사례비도 받지 않았다. 출장에 따른 여비, 선교비 등 교회에서 공적으로 지급받은 돈은 사용하고 난 후 남은 돈을 정확하게 반납했다. 종교인 과세 제도가 시행된 이후에는 목회비 내역이 투명하게 드러나도록 법인카드를 사용했다.
7) 복음적 강해설교: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테크닉이 아니라 그 설교에 담고 있는 내용이다. 아무리 설교 기술이 뛰어나도 진리를 전하지 않는다면, 꽹과리 소리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복음을 그대로 전하거나 적어도 복음적인 설교를 하려고 힘썼다. 복음만이 죄인을 구원할 수 있고 성도들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율법적인 설교나 윤리적・교훈적 설교, 성공의 원리를 일러주는 설교나 철학 강의와 같은 설교, 사회・문화・정치적인 설교는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생명이 없는 죽은 설교이다. 십자가가 없는 설교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전 2:2) 그리고 매 주일 강해설교를 하는 것이 좋다. 성서 여기저기에 있는 특정한 구절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해당 성서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다룬 강해설교가 좋다. 그러면 성서를 깊이 있게 알게 되고 성서적 설교를 하게 된다. 나는 요한복음을 가지고 4년 동안 매 주일마다 강해설교를 했는데, 너무나도 큰 은혜를 경험했다.
8) 찬양곡으로 찬양: 찬양은 설교와 함께 예배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찬양에서 중요한 것은 글자 그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소리나 곡조가 아니라 그 내용이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찬양곡을 선택해서 불러야 한다. 찬양곡이 아닌 찬송가나 복음송을 너무 많이 부르고 있어서 안타깝다. 또한 보혈송을 빼놓지 말고 부르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랑고백 찬양을 많이 불러야 한다.
9) 치유기도: 나는 주일예배 헌금 축복기도 시간과 다른 예배 시간에 교인들에게 아픈 곳에 손을 얹게 하고 치유기도를 해주었다. 감동이 와서 믿음으로 시작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나에게는 그런 은사가 없는가 보다 하고 중단했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해 많은 사람이 치유되었다는 간증을 나중에서야 듣고 그 후부터는 계속했다.
10) 새벽기도 목회: 내 목회는 새벽기도 목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물 붓듯 부어주시는 말씀의 은혜, 영감과 치유를 경험하였고, 주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할 수 있었다. 이는 내 목회의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교회에 와서 5시에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아침 8시까지 기도를 이어갔다. 졸지 않으려고 서서 기도했으며, 건강을 위해 지압매트 위에서 기도했다. 기도 후에는 한 시간가량 부교역자들과 교회에서 탁구를 치고 생식과 과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일과를 시작했다. 이것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한평생 건강하고 영적인 목회를 하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11) 리더를 세울 때는 공정하게: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교회 내에서 리더를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도 힘든 일이다. 리더를 결정할 때에는 일정한 자격조건을 정하고 누구에게든지 공평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리더로 세우면 잘할 사람이 아니라, 잘하는 사람을 리더로 세워야 한다.
12) 목자기도: 중보기도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담임목사를 위한 목자기도이다. 나는 매일 새벽,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날을 정해서 담임목사를 위한 중보기도회를 가졌다.
13) 성전건축의 교훈: 목회를 하다 보면 건축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나는 세 번의 건축을 경험했는데, 마지막 건축할 때 목회 여정에서 제일 힘든 어려움을 겪었다. 주의해야 할 것은 건축업자를 믿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장로이든, 어느 선교회 출신이든, 심지어 다른 교회 건축을 잘했어도 믿지 말고 기도하면서 철저히 감시하고 관리해야 한다.
14) 물의 위험: 수련회나 캠프를 갈 때에는 바다, 강, 계곡 등 물을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나 또한 우리 교인들이 바다에서 두 번, 계곡에서 한 번 죽을 뻔한 위험에 노출되는 경험을 했다.
15) 나눌 때에는 귀한 것으로: 무료로 준다고 싼 것을 주면 주고도 고맙다는 소리를 못 듣는다. 무료로 줄수록 좋은 것을 주어야 한다. 교회에서 카페를 운영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커피를 무료로 제공했는데, 일반 커피보다 더 좋은 원두를 쓰도록 했다. 그래서 호평을 받았다.
16) 탈정치: 나는 평생 교단 정치를 하지 않았다. 정치를 하면 절대선을 추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정도를 걷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7) 은퇴 준비: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은퇴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네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건강, 사역, 동역자, 물질이다. 20년 전부터 기도하며 준비하는 것이 좋다. 나는 20년 전부터 해외 교육선교 사역을 했고, 은퇴 후에도 계속할 계획이다.

다시 목회를 한다면…
첫째, 원주민 선교사 혹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목회를 하고 싶다.
둘째, 사랑 관계 중심의 목회를 하고 싶다. 일 중심, 성장 중심이 아닌 사랑을 매개로 한 관계 중심의 목회를 하고 싶다. 은퇴를 하고 보니, 남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셋째, 더 큰 성령의 역사 속에 목회를 하고 싶다. 인간적으로 동원하는 수단과 방법은 결국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나, 성령이 역사하시면 정말 신비하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유강신 | 기독교대한감리회 목사이다. 저서로 『신앙생활의 원리』가 있다. 용인 수지에 있는 대광교회 원로목사이며, 아시아신학원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8월호(통권 7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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