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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아시아 기독교] 아시아 신학 순례 03
교회와현장 (2020년 6월호)

 

  중국 신학(1) 중국 본토에서 전개된 네 가지 흐름
  

본문

 

중국 신학의 전개
중국은 여러모로 중요한 곳이며, 그리스도교 선교의 관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중국교회의 기원은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동진운동 중 하나인 시리아교회의 선교, 즉 경교(景敎)로 거슬러 올라간다. 심지어 중국교회의 기원을 사도 도마로까지 소급하려는 대담한 주장도 없지 않다.1
경교 연구는 1625년 서안(西安)의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발굴과 1908년 펠리오(Paul E. Pelliot)의 둔황 문서 발견을 통해 큰 전기를 이루었다. 하지만 경교 연구, 특히 경교 신학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일부 학자들에 의해서 명맥이 이어져 왔을 뿐, 여전히 본격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후 몽골제국의 종교관용정책으로 인하여, 경교 및 가톨릭을 포함한 그리스도교가 몽골제국에서 활동했다. 당시 중국은 몽골제국의 중추인 원나라를 이루고 있었기에, 중국에서도 그리스도교가 활동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중국교회 연구, 특히 중국 신학 연구 역시 본격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중국 신학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명·청기(明淸期)의 가톨릭 선교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중국 신학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가톨릭 선교사의 신학과 현지 그리스도인의 신학이다. 전자는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의 『천주실의』(天主實義)로 대표되고, 후자로는 초기 중국 그리스도인 3대 학자로 손꼽히는 서광계(徐光啟), 이지조(李之藻), 양정균(楊廷筠)의 신학을 들 수 있다. 중국 학자들의 신학은 최초의 중국 토착화신학이라고 할 수 있고, 최근 관련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당대 그리스도교 문헌을 집대성한 『명말청초야소회사상문헌휘편』(明末淸初耶酥會思想文獻彙編)이 편찬되어 관련 연구 발전의 일대 전기를 마련했는데, 편집자가 바로 한국계 학자인 정안덕(鄭安德)이라는 사실은 한·중 그리스도교 연구사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2
중국 신학이 다시금 활성화된 시점은 서구 제국주의의 세계 진출기에 이루어진 서구 근대 개신교 선교운동의 중국 선교였다. 앞서 설명한 가톨릭 선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선교사의 신학과 현지 그리스도인의 신학이 나타났다. 개신교 선교 초기 현지 그리스도인의 신학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중국 최초의 개신교 전도자 양발(梁發, 량파, Liang Fa)의 신학과, 그의 영향을 받고 태평천국운동을 일으킨 홍수전(洪秀全, 훙슈취안, Hong Xiuquan)의 신학 등을 들 수 있다.3
20세기 이후의 최근 중국 신학을 요약하면,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선교사 신학을 충실히 이어가려는 기성교회의 신학, 중국 토착교회의 토착신학, 중국 공산화 이후에 대두된 삼자[애국]신학, 그리고 20세기 말 학계를 중심으로 등장한 한어신학(漢語神學) 등이다. 중국 공산화 이후 그리스도교가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소위 후기교파(post-denominational) 교회 시대가 도래했는데, 이 후기교파 교회는 사실상 이전의 개신교 전통에 속한 교회가 다수를 이룬다. 이 다수파 안에는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신학 유형이 모두 나타나고, 가톨릭을 포함한 여타 교파는 주로 첫 번째 유형과 네 번째 유형으로 나타난다.
최근 중국교회와 중국 신학에 관한 연구물이 중국 내외에서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는데, 특히 신학의 본문과 맥락을 연결하는 관점에서 중국 신학 통사를 기술한 클로에 스타(Chloë Starr)의 『중국 신학: 본문과 맥락』이 주목할 만하다.4 본 연재에서는 방대한 중국 신학 가운데 시기적으로는 최근의 중국 신학을 다루고, 지역적으로는 중국 본토를 중심으로 하며, 기타 지역은 다음 연재에서 다루기로 한다.

기성교회의 신학
가톨릭 및 개신교 등 교파 교회의 경우 선교와 교회의 발전 과정에서 기성세력(the establishment)이 등장했다. 이 기성세력의 중심은 선교사는 물론이고 새롭게 대두한 현지교회 지도자를 포함한다. 그리고 기성세력을 핵으로 하여 교회가 구성되었다. 기성교회의 신학은 주로 서구 신학의 충실한 전수, 수용, 번역, 보급 등을 통하여 신생교회의 중심 신학으로 자리잡았다. 넓은 의미에서 ‘수입신학’, ‘번역신학’ 등으로 불리는 이 신학은 신학의 역사적 전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 문제가 파생된다고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특정 신학이 보편 신학으로 오인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정착한 신학이 새로운 신학 작업, 곧 자신학화 작업을 방해하거나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여하튼 기성교회의 신학은 신생교회의 중심 신학이 된다는 점에서, 적어도 초기에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신생교회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요소이다. 중국 기성교회의 신학자는 많지만, 특히 남경의 금릉신학교와 산동(山東) 북중국신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한 가옥명(賈玉銘, 지아유밍, Jia Yuming)의 신학이 널리 보급되었다. 가옥명은 미국의 스트롱(A. H. Strong)과 호지(A. A. Hodge)의 신학에 기초하여 그의 신학을 전개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선교사를 통해 도입된 서구 신학과 그 전통을 잇는 기성교회의 신학은 흔히 ‘정통신학’ 혹은 ‘복음적인 신학’으로 불리면서 신생교회의 중심 신학으로 정착하는데, 이런 과정은 인근 선교지에서도 반복된다. 그 결과 인근 선교지의 신생교회들 간에 신학적 공통성이 나타나고, 먼저 선교가 이뤄진 지역의 선교 결과물이 선교 네트워크를 통하여 후발 지역의 선교에 활용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가령 중국의 그리스도교 문헌이 한국 선교 초기에 원문 혹은 한글 번역본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이에 대한 옥성득의 연구가 있다.5 그리고 최근 김현우와 김석주는 한·중 그리스도교 문헌을 비교 연구하는 과정에서, 한국 가톨릭교회 최초의 호교론이라고 불리는 이벽의 『성교요지』(聖敎要旨)가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 우리에게 『만국공법』(萬國公法)으로 잘 알려진 중국 개신교 선교사 마틴(William A. P. Martin, 丁韙良)의 『인자신법 상자쌍천』(認字新法 常字雙千, The Analytical Reader: A Short Method for Learning to Read and Write Chinese)을 후대에 제3자가 필사한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6 또한 가옥명의 조직신학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 장로교회의 초기 신학교육에서 핵심 교재가 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7
중국 기성교회의 신학은 중국 공산화 이후에도 신학 발전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중국교회, 특히 가정교회나 심지어 삼자애국교회의 중심 신학으로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은 중국교회의 보수적인 신학적 성향과 개혁개방 이후 중국 선교에 참여한 한국교회의 보수적인 신학적 성향이 만나 신학적 공감대를 이루기도 했다.

토착신학
중국교회의 독립은 몇 가지 점에서 진행되었다. 하나는 조직적 독립이다. 이는 삼자정책[三自政策, 자전, 자립(자양), 자치]의 발전 과정으로서, 교회 기구의 독립을 뜻한다. 당시 중국 기성교회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교회 기구의 독립은 1927년 중화기독교회(中華基督敎會, Church of Christ in China)의 설립으로 완성되었다. 물론 아예 처음부터 선교사와 거리를 두고 독자적 노선을 걸은 교회도 있었다.
다른 하나는 신학적 독립이다. 중국 기성교회는 소위 정통신학의 토착화 작업과 더불어 다양한 새로운 신학, 가령 자유주의 신학이나 민족주의적 신학, 사회주의 신학 등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시도들은 대개 초보적 단계에 머물렀다. 한편 중국 토착교회는 기성교회의 정통신학을 수용하면서도, 토착신학을 생산했다. 이런 토착신학은 당시 중국 토착교회의 특징을 반영하는 한편, 중국 신학 토착화 작업의 일부가 되었다.
토착신학은 특히 교회론과 성령론에서 독특한 해석을 보여주었다. 첫째, 교회론에서 몇 가지 특징을 나타냈다. 이 신학은 공동체를 강조하거나(심지어 공산주의적 공동생활을 강조), 특정 지역에 교회는 하나만 존재한다는 지방교회론을 강조하거나, 성직자 중심의 직제 전통과 달리 평신도 중심의 직제를 강조하거나, 선교사의 교파주의와 거리를 두는 초교파성을 강조하는 등 다양했다. 둘째, 성령론 역시 몇 가지 특징을 나타냈는데, 선교 초기에 자주 나타나는 치유를 강조하거나, 영육 이원론적인 이해를 강조하거나, 귀신론을 강조하는 등 다양했다.
중국 기성교회의 신학뿐 아니라, 중국 토착교회의 신학도 한국에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워치만 니(倪析聲, 니투오솅, Watchman Nee)와 위트리스 리(李常受, 리챵쇼우, Witness Lee)의 신학을 들 수 있다. 전자는 그의 대표작 『영에 속한 사람』(The Spiritual Man)의 한글 번역본 등을 통해서, 후자는 ‘지방교회’를 통해서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친 바 있다.

삼자[애국]신학
중국 공산화는 중국교회에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중국교회는 제국주의 중단과 공산주의 국가 탄생이라는 새로운 상황에서 어떻게 진정한 교회로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중국교회가 한편으로 외래종교의 탈을 벗고 민족종교로 거듭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식 ‘그리스도교와 마르크스주의의 대화’를 통하여 공산주의 체제하의 교회로 변모하는 것이다. 즉 중국교회는 반제국주의와 공산주의체제를 인정하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야 했다.
중국교회는 중국 공산화 이전에도 나름 삼자정책을 통해 독립성을 추구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공산화라는 상황은 중국교회가 ‘삼자교회’를 넘어서 ‘삼자애국교회’로 변화할 것을 요청했다. 즉 중국교회가 ‘애교’(愛敎)에서 ‘애교애국’(愛敎愛國)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입장은 1951년 ‘중국기독교재신중국건설중노력적도경’(中國基督敎在新中國建設中努力的途徑) 혹은 간단히 ‘그리스도교 선언’(The Christian Manifesto) ‘삼자선언’(The Three-Self Manifesto)이라고 부르는 선언을 통해 표명되었다.
삼자애국교회는 주로 개신교 전통에 속한 교회들로 구성되었는데, 조직적 측면에서 양회를 구성했다. 양회는 ‘삼자애국운동’(1954년 설립)과 ‘중국기독교협회’(1980년 설립, 1991년 세계교회협의회 가입)로 구성되는데, 전자는 주로 대외 업무, 후자는 주로 대내 업무를 맡는다. 가톨릭교회도 이와 유사한 대응기관을 설립했다. 또한 삼자애국교회는 새로운 상황에 응답하는 신학 작업에 몰두했다. 중국 공산화 이전에도 이미 삼자[애국]신학과 친화성을 나타내고, 삼자[애국]신학으로 이어지는 입장을 지닌 교회 지도자와 신학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중국 기성교회의 신학의 한 축을 이루면서, 애국적 신학과 사회주의적 신학을 추구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오요종(吳耀宗, 우야오종, Y. T. Wu), 조자신(趙紫宸, 쟈오지첸, T. C. Chao), 진숭계(陳崇桂, 첸총귀, Marcus Cheng/Chen Chonggui), 등유지(鄧裕志, 등유쥐, Cora Deng) 등인데, 이들은 ‘그리스도교 선언’의 서명자이기도 하다.
이들 1세대를 뒤이어, 정광훈(丁光訓, 딩광순, K. H. Ting)이 최근까지 제2세대 지도자로 삼자애국교회를 이끌며 본격적인 삼자[애국]신학 작업을 시도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삼자애국교회의 1, 2세대 교회 지도자와 신학자 가운데 상당수가 성공회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별도의 심층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성공회가 감독제라는 위계질서적 교회정치체제를 지닌 교회라는 점에서, 그런 성공회적 특성이 일관성과 통제가 요청되는 삼자애국교회의 상황에 적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자[애국]신학은 중국식 ‘그리스도교와 마르크스주의의 대화’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삼자[애국]신학의 대표적 신학자는 정광훈이라 할 수 있는데, 그의 신학은 본격적인 신학서적보다는 다양한 글을 통해 표명되었다. 가령 그의 대표작인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니다』(No Longer Strangers), 『사랑은 끝이 없다』(Love Never Ends), 『하나님은 사랑이시다』(God is Love) 등은 모두 저술 모음집이다.8 정광훈은 새로운 신학을 위하여 신학을 과감하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9
정광훈을 포함한 삼자[애국]신학의 신학적 특성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창조론 중심의 신학이다. 교회와 세계의 비연속성보다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계시라는 특수성보다 세계라는 보편성에서부터 신학을 시작한다. 둘째, 사랑 중심의 신학이다. 그리스도인과 여타 시민의 비연속성보다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믿음이라는 특수성보다 사랑이라는 보편성에서부터 신학을 시작한다. 셋째, 공산주의하의 신학이다. 그리스도교와 공산주의의 비연속성보다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양자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것에서부터 신학을 시작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주적 그리스도’(The Cosmic Christ), ‘공동지대’(Common Ground) 등의 개념이 나왔다.10
큰 틀에서 볼 때, 삼자[애국]신학 이전의 중국 신학이 특수성을 추구했다면, 삼자[애국]신학은 보편성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삼자[애국]신학이 후기교파 교회 시대의 산물이고,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하여 세계 교회와의 교류를 재개했기 때문에, 에큐메니컬 신학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와 더불어 삼자[애국]신학이 그리스도인 기층(grassroots)으로까지 저변을 확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엘리트 신학적인 특성도 나타나고, 중국교회의 일반적인 보수성을 고려할 때 자유신학 혹은 진보신학으로 이해된다.

한어신학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국의 변화를 가져왔는데, 그리스도교 또한 예외가 아니었으며 몇 가지 중대한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본 연재와 관련하여 몇 가지를 지적한다면, 첫째, 중국교회의 재부흥, 둘째,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종교의 역할에 대한 중국 사회의 긍정적인 태도, 셋째, 중국 신학의 다변화라고 정리할 수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신학은 다양성을 보였다. 먼저 기성교회의 신학, 특히 정통신학은 계속해서 중심 신학의 위상을 지녔다. 이런 신학은 삼자애국교회와 소위 지방 중심의 가정교회,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도시 대형교회 등에 골고루 나타난다. 이런 특징이 바로 중국교회의 일반적인 보수성을 설명해준다. 또한 삼자[애국]신학이 주로 공산주의 체제를 상대로 한 호교론적 역할을 맡으면서 교회와 사회 혹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집중하다 보니, 괄목할 만한 신학적 발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편 중국 지성인 등 새로운 계층 가운데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이 계층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심은 있되 교회 소속을 원하지 않거나 중요시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또한 같은 시기에 중국 사회, 특히 대학을 중심으로 한 중국 학계에서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종교 연구가 활성화되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소위 비제도권 신학 혹은 교회 밖의 신학인 ‘한어신학’(漢語神學, Hanyu theology)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신학이 등장했다. 이 용어는 “1994년에 중국 대륙 학자 류샤오펑(劉小楓, Liu Xiaofeng)이 홍콩의 양시난(楊熙楠, Yang Xinan)과 함께 홍콩 도풍산(道風山)기독교연구센터11에서 기독교 저널 「도풍」(道風)을 복간할 때 ‘한어신학 저널’이라는 부제를 달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한어신학은 한어(漢語)로 진행되는 신학 연구를 총칭한다.”12
오동일에 의하면, 한어신학은 중국 신학의 전통적 방법인 토착화신학과 구별되는데, “토착화신학이 신학의 중국화에 노력했다면, 한어신학은 중국인의 현재적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13 요약하면, 한어신학은 비제도권 신학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정통신학이나 삼자[애국]신학 모두와 구별되고, 현재적 신학이라는 점에서 토착화 신학과 구별되며, 상황화 신학이라는 점에서 삼자[애국]신학과 유사하다. 다만 한어신학과 삼자[애국]신학은 크게는 상황화 신학에 속하지만, 굳이 구분한다면 전자는 개체적・실존적 성격이 강하고, 후자는 집단적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한어신학은 한어신학의 생산자 및 소비자의 한 축을 이루는 교회 밖의 그리스도인 혹은 문화그리스도인의 존재, 문화그리스도인의 교인화, 그리고 정식 학문으로서의 학문성 유지 등의 다양한 요구에 응답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현재 한어신학은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 고전 및 현재 문제작들의 번역 및 소개 작업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문화를 소재로 한 중국학의 일환으로서의 작업 및 중국 사회를 상대로 한 공공신학의 일환으로서의 작업을 하고 있다. 한어신학과 삼자[애국]신학이 중국 사회를 상대로 한 것은 공통이지만, 전자는 시민사회를 상대로 한 사회적 관점이 중요하다면, 후자는 주로 정부를 상대로 한 정치적 관점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중국 신학의 전망
20세기 후반 이후 중국 사회는 급변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전개되는 중국 신학 역시 급변하는 추세이다. 그런 이유로, 중국 신학은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중국 신학이 얼마나 신학의 역사성을 충실히 반영하고, 당대 사회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며, 이런 작업을 통하여 세계 신학과 교류하고 협력할 것인가이다. 중국 신학은 아시아의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신학인 동시에 첨단 신학이다. 그 미래가 기대된다.


1 Daniel H. Bays, A New History of Christianity in China(Chichester: Wiley-Blackwell, 2012), 5.
2 정안덕(鄭安德), 『명말청초야소회사상문헌휘편』(明末淸初耶酥會思想文獻彙編) 전5권(북경: 북경대학종교연구소, 2003).
3 Sukjoo Kim, “Liang Fa’s Quanshi liangyan and Its Impact on the Taiping Movement”(미간행 박사학위 논문, Baylor University, 2011).
4 Chloë Starr, Chinese Theology: Text and Context(New Haven &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16).
5 옥성득, 『한국 기독교 형성사: 한국 종교와 개신교의 만남, 1876-1910』(새물결플러스, 2020), 519-522, 556-566.
6 김현우・김석주, “이벽의 <성교요지>(聖敎要旨)는 위조문헌인가”, 「기독교사상」(2019. 9): 21-31.
7 가옥명, 이눌서(William D. Reynolds) 외 역, 『기독교증험론』, 『신도론』, 『인죄론』, 『구원론』, 『성령론』, 『구세론』[평양: 장로회신학교, 쇼와6년(1931)]. 1권은 이눌서, 2-3권 및 5-6권은 이눌서와 정재면, 4권은 이눌서와 이영태가 번역했다.
8 No Longer Strangers: Selected Writings of K. H. Ting, edited by Raymond L. Whitehead(Maryknoll: Orbis Books, 1989); Love Never Ends: Papers by K. H. Ting, edited by Janice Wickeri(Nanjing: Yilin Press, 2000); God is Love: Collected Writings of Bishop K. H. Ting(Colorado Springs: David C. Cook Communications Ministries International, 2004). 최근에 나온 또 다른 책 역시 모음집이다. Janice and Philip Wickeri eds., A Chinese Contribution to Ecumenical Theology: Selected Writings of Bishop K. H. Ting(Geneva: WCC Publications, 2002).
9 Philip L. Wickeri, Reconstructing Christianity in China: K. H. Ting and the Chinese Church(Maryknoll: Orbis Books, 2015).
10 Edmond Tang, “The Cosmic Christ-The Search for a Chinese Theology”, Studies in World Christianity, 1/2(1995): 131-142; Philip L. Wickeri, Seeking the Common Ground: Protestant Christianity, the Three-Self Movement, and China’s United Front(Maryknoll: Orbis Books, 1988).
11 이 기독교연구센터의 정식 명칭은 ‘한어기독교문화연구소’(漢語基督敎文化硏究所, Institute of Sino-Christian Studies)이다.
12 오동일, 『중국 한어신학 연구』(CLC, 2018), 13.
13 오동일, 위의 책, 13.



안교성 | 교회사를 전공하였다. 『한국교회와 최근의 신학적 도전』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0년 6월호(통권 7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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