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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20년 6월호)

 

  YMCA와의 만남: 우리 모두 하나 되게 하소서
  

본문

 

목포YMCA(이하 목포Y) 사무총장으로서 그간의 활동을 되돌아보는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 곳에서 실무 책임자로 20여 년 일하다 퇴임한 사람으로서 YMCA운동(이하 Y운동)을 펼쳐나가며 어떤 생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 회고해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필자는 1998년 여름부터 목포Y에서 일을 시작하여 2019년 12월에 정년퇴임을 했다. 목포Y에서 일하게 된 계기, Y와 예수 알아가기, 예수 제자로서의 Y운동 순으로 회상을 공유한다.

YMCA와의 인연과 만남
필자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목포연동교회를 다녔다.(지금도 그 교회 소속이다.) 가끔 새벽기도도 다니면서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인생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해 겨울, 화엄사로 2개월 정도 출가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특별히 성서의 산상수훈을 좋아해 즐겨 읽었다.
학생운동의 계기도 교회 다락방에서 시작되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내려온 선배가 일본어 공부를 하자고 해서 참석했다. 일어로 된 사회과학 서적을 공부하는 독서모임이었고, 그 장소가 연동교회 2층 다락방이었다. 필자는 대학을 다니며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제적과 구속을 두 번 당했다. 먼저 1980년 5월 18일 계엄포고령으로 인해 당일 새벽 2시에 구속되어 목포 보안대, 헌병대, 광주 상무대에 있다가 108일 만에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그러나 출소한 지 30여 일 만에 군대에 강제 징집되었다. 사상을 적색에서 녹색으로 바꾼다는, 소위 ‘녹화사업’의 대상이 된 것이다.
1983년 군 제대 후 선배의 소개로 서울 서대문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선교교육원에 입학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제적당한 학생들이 모여서 신학과 사회과학 등을 공부하는 곳이었다. 서남동 박사가 원장이셨고 박현채, 김성재 교수 등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분들이 강사로 함께했다. 당시 독재정권하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고민하고 토론했던 시간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1984년 학원 자율화 조치가 시행되어 대학에 복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선배들과 상의하여 선교교육원을 그만두고 대학에 복학했다. 그 뒤 총학생회 활동 등 민주화운동으로 다시 구속되고 제적되었다.
집행유예로 출소한 후 필자는 연동교회에서 노동자들과 야학을 하며 노동운동을 했다. 목포 조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면서는 노동자들의 잔업수당을 싸움을 통해 함께 받아냈다. 1987년 11월 노동자 대투쟁 때는 야학에 다닌 동료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만드는 일을 지원했다. 1988년 5월 「한겨레」 신문 창간 때에는 동료들과 함께 목포지국을 운영했다. 1991년에는 인천제철 내 하청회사에서 포크레인 기사로 일했다. 그러나 임금인상 관련 파업으로 해고되었고, 그 뒤 주안공단에서 일했다.
필자는 1994년 목포로 귀향했다. 생계를 위해 개인회사를 다니다 1998년 여름, 지역 선후배들의 제안과 추천, Y이사회를 통해 목포Y 총무로 일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목포Y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 민주화운동, 선교교육원이라는 고리가 인연이 된 것 같다. 19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을 해오던 기독교 청년운동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YMCA와 예수 알아가기
밖에서만 보던 Y에 들어와서 처음 느낀 인상은 이러했다. 반독재 민주화를 위한 학생운동, 노동운동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Y는 조금은 느슨한 운동체로 보였다. 그러나 1년 정도 전국간사회, 전국사무총장협의회를 참석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전국Y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30년 경력의 전문지도력들도 많았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Y 관계자가 9명, 이상재 서울Y 총무, 조만식 평양Y 총무, 35년간 Y의 연경반에서 강의한 유영모 선생 등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인물들의 역사와 자취가 있는 곳이었다,
Y에서 창조적인 운동을 펼쳐가기 위해 Y의 정신적 멘토인 예수를 깊이 알고 싶었다. 그 후 Y활동 20년은 두 축으로 이루어졌다. Y와 예수 알아가기,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기였다. Y를 알기 위해 한국Y전국연맹 간사학교와 아시아태평양Y연맹 중견간사학교를 다녔다. 전국연맹의 간사학교는 시기별로 약간 차이가 있지만 통상 두 학기(8주)를 합숙하며 공부한 후 간사논문을 쓰고 졸업하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치면 YMCA의 정간사가 된다. 과목은 주로 신학, 한국Y와 세계Y의 역사, 한국Y목적문, 시민사회운동론, 청소년운동론 등이다.
2006년에는 홍콩에 있는 아시아태평양Y연맹 중견간사학교에 갔다.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미얀마, 인도, 대만,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등
8개국에서 온 15명이 함께 5주 동안 신학과 아시아시민사회, 대안여행, 5・18한국민주화운동, 청소년운동 등을 공부했다. 간사학교를 통해
Y운동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를 알기 위해 매일 성서를 읽고, 한국인의 심성으로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영성분과활동을 했다. 매일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전 30분간은 동료들과 산상수훈을 한 장씩 읽으면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1999년 11월부터는 Y가 수탁 운영하던 문화의집에 공부모임을 꾸렸다. 주역의 대가였던 야산 이달의 손자 이응국 선생을 모시고 주역 공부를 시작했다. 조상 대대로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한국인의 심성과 문화, 역사와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2001년경 동료들과 함께 한국Y간사회 산하의 ‘영성분과’를 만들었다. 2019년 퇴임 때까지 5-10명의 간사들이 매년 5-9회 1박 2일간 영성가를 만나고 마을공동체를 탐방하는 영성순례를 하였다. 내 안의 그리스도를 찾아 평안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것이 간사의 길이라 생각하는 길벗들의 모임이었다. 그래서 모임 이름을 ‘내 안에 그리스도를 찾는 사람들’의 약칭 ‘나찾사’로 했다. 삶 속의 고민을 해결하고, 생활과 일터에서 그리스도가 주는 평화를 얻고, 이웃과 진실하게 만날 수 있는 마음을 기르는 것을 공부 방향으로 했다. 자기와 예수를 알아가는 알차고 소중한 여정 중 하나였다. 홍순명, 김경재, 장회익, 이현주, 임낙경, 심중식, 박영호, 김명수, 이광정 종법사 등을 강사로 모셨다. 특히 심중식을 통해 다석 유영모를 좀 더 깊이 알게 되었으며, 노자와 장자, 유가의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불가의 『금강경』 등을 공부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동양인의 심성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장자』의 좌망(坐忘), 『주역』의 무사무위적연부동(無思無爲寂然不動),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의 경지는 예수의 믿음을 잘 드러내고 있는 ‘십자가와 부활’을 깊이 이해하도록 안내하는 샛별과 같았다. 자선을 베풀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거듭난 이’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였다.
공부 과정에서 토착적 한국 기독교 영성의 큰 맥이라 할 수 있는 도암의 성자 이세종과 이현필, 그 믿음을 잇고자 하는 동광원 제자들을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그들의 신앙과 삶을 보면서 산상수훈을 통해 이심전심으로 알려진 예수의 자기 비움과 순명, 겸손과 순수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음을 예견하고 그것을 피하고 싶은 간절함 속에서도 자신의 뜻대로 하지 말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사람, 십자가 위 죽음의 순간에도 자기를 죽인 사람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한 사람, 예수는 개별아(個別我)를 넘어서 전체, 즉 불이(不二, 둘이 없는 하나)가 된 사람이었다. 내가 알고 이해한 예수는 마음을 깨끗이 하여 참된 자기를 알고 하나님을 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랑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가 된 사람이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참된 자기와 하나님을 알아서 우리 모두 ‘하나 되기’를 원했다. 예수는 ‘하나 됨’을 통해 이 땅에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사랑이 넘치기를 바랐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평화로운 지구촌 공동체를 꿈꾼 사람이었다.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기–YMCA운동
Y와 예수를 공부하면서 필자가 배운 Y운동은 이렇다. Y운동은 예수의 제자로서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인간의 거듭남을 위해 교육・훈련하고, 더불어 사는 생명과 평화의 시민사회공동체 문화를 일구며,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제도를 형성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 나라와 민족, 지구촌에 “우리 모두 하나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계Y의 모토는 ‘우리 모두 하나 되게 하시옵소서.’(요 17:21)이다. 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평화로운 지구촌 시민사회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촌의 현실을 볼 때 이러한 Y의 이상은 꽤 높다 할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생각은 지구적으로, 행동은 지역과 삶터에서, 우리는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면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한국Y는 1976년 유신독재 시절 민중의 복지향상과 삶의 개선을 위해 ‘목적문’을 만들어 존재 이유를 선언했다. “한국기독교청년회는 젊은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삶에 따라 함께 배우고 훈련하며, 역사적 책임의식과 생명에 대한 감성을 일구어,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 일하며, 민중의 복지향상과 민족의 통일 그리고 새 문화 창조에 이바지함으로써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목적문은 1976년 한국Y전국대회에서 채택되었고, 2014년 42차 전국대회에서 보완되었다. 2014년에 연맹 100주년을 맞아 향후 100년을 준비하며 환경과 생태계 문제, 분단극복과 평화공존 등 시대정신을 읽고 ‘생명’과 ‘민족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목적문에 추가한 것이다. 읽을 때마다 가슴 설레고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사명 선언문이다.
목포Y는 1946년 4월 15일 창립되어 현재 2,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목포Y는 1950년대 유치원 등 선구적 교육사업, 1960년대 향토건설사업, 1970년대 시민논단과 회관건립, 1980년대 민주시민의식 개발운동, 1990년대 지방자치와 청소년운동 등을 중심축으로 일해왔다.
실무 책임자로 일하게 되면서 Y와 예수 알기를 통해서 배운 것을 토대로 2006년 목포Y 창립 60주년을 맞아 향후 십수 년의 운동방향을 정했다. 새로운 비전과 운동 방향을 동료들과 함께 모색하고 시민사회에 선포했다. ‘영성회복, 생명존중, 평화사랑을 통한 시민사회공동체 만들기’를 비전으로 했다.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마음인 생명과 평화를 배우는 ‘청소년바른성장운동’과 공존과 공감, 나눔의 ‘사회공동체만들기운동’을 운동의 두 날개로 세웠다.
첫 번째 날개인 청소년바른성장운동의 구체적 실천방안으로는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활동(본관과 청소년수련원), 도전정신과 공동체의식 함양을 위한 심신수련활동(청소년수련원), 자아발견과 재능개발을 위한 청소년동아리육성지원활동(청소년문화센터), 아동청소년성폭력예방활동(청소년성문화센터), 리더십계발과 생태체험을 위한 청소년캠프(본관) 등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또한 시장과 교육감 선거 국면에서 청소년사업위원회를 중심으로 목포시와 도교육청에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을 제안해왔다.
두 번째 날개인 사회공동체만들기운동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하고 싶다. 목포Y에서는 이를 위해 4대 실천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생활 속의 생명평화운동인 삼빔운동, 지방정부와 시민사회 소통운동, 남북평화공존과 통일운동, 지속가능한 지구촌을 위한 자연과의 공생운동 등이다.
먼저 ‘삼빔운동’이란 세 가지를 비우자는 운동으로 빈 마음, 빈 그릇, 빈 손을 뜻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빈 마음은 생각이 부딪힐 때 입장을 바꿔 생각하자는 뜻이고, 빈 그릇은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 지구사랑을 실천하자는 뜻이며, 빈 손은 봉사활동 및 재능과 물질 나눔으로 기쁨을 누리자는 뜻이다. 삼빔운동은 목포Y 회원이 되면 누구나 실천해야 하는 생활수칙이다. 목포Y 전 기관 아침회의는 먼저 산상수훈 읽기로 시작해 한국Y목적문 낭독, 정보공유와 의안처리, 마지막으로 3빔운동을 낭독하고 끝난다. 이 운동은 회원사업위원회가 주관하여 진행한다.
지방정부와 시민사회 소통운동은 시민사업위원회가 주관한다. 최근 4년 동안은 ‘시민논단’이라는 이름으로 목포지역 5・18민주화운동을 재조명했다. 그 당시 시민군들의 증언과 김밥과 음료수 등을 제공한 시민들의 활동에 관한 자료조사 및 발굴, 유적지 보존 문제, 5・18 정신의 현재적 의미 등을 다루었다. 지방선거 때마다 지역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시장 후보들을 대상으로 정책제안을 하고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최근 2018년 6・13 지방선거 때는 ‘민선 7기 정책실현을 위한 목포시민사회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인권, 여성, 장애인, 주민참여, 환경 등 10개 분야 30개 정책과제를 제안했다. 후보자들과는 당선 후 시행 협약식을 체결했다. 당선된 시장과 면담하고 관계 공무원들과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여 이행 여부를 상호 확인하고 논의하고 있다. 현실적인 제약 조건도 많지만 선거 국면을 계기로 지속적으로 지방정부와 시민사회가 거버넌스(협치)하는 새로운 운동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2016년 하반기부터 2017년 3월 10일 탄핵까지는 지역시민단체와 함께 ‘박근혜퇴진운동본부’를 꾸려 목포에 있는 평화광장에서 매주 퇴진과 탄핵을 촉구하는 시위를 했다.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서 12월까지 주 1회 야간자원봉사(19시부터 06시)를 진행했다. 전남지역 6개 Y가 연대하여 한 주에 하루를 담당하였는데, 팽목항이나 진도체육관에서 봉사하는 시민들에게 기부물품을 지급하는 물품관리 및 청소 업무를 주로 하였다. 보석처럼 빛나는 시민들의 자발적 헌신과 봉사를 보면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좀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2017년 3월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거치되었을 때 4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목포지역 세월호공동실천회의’를 결성했다. 진실규명 운동, 현장의 유가족지원, 세월호 리본 만들기, 전국에서 찾아오는 시민 안내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남북평화공존과 통일운동은 평화통일위원회가 주관한다. 목포Y의 자체사업과 지역연대사업, 전국연맹 차원의 사업을 했다. 먼저 자체사업으로는 ‘한반도평화공존과 통일방안’에 대한 강좌를 2014년부터 연 2-3회 개최하고 있다. 그동안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노정선 Y전국연맹 평화통일위원장, 장윤재 Y전국연맹 목적과사업위원장, 정지석 국경선평화학교장 등을 강사로 모셨다. 2006년부터는 ‘남북평화공존과 통일기원 이사장기 축구대회와 파크골프대회’를 매년 개최했다. 2015년부터는 파크골프대회만 진행하고 있다. 축구대회는 7-8개 회원교회에서 참가하고, 골프대회는 개신교, 가톨릭, 와이즈맨(Y’s men) 클럽 등 30여 팀 120여 명이 참가한다. 목포지역 차원에서는 2017년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6・15남측위원회목포지부를 결성하였다. 그 뒤 해마다 광복절을 전후하여 목포에서 도라산역까지 ‘통일열차’를 운영하며 시민들의 평화통일 의식을 높이고 있다. 전국연맹 차원에서는 전국Y와 함께 2005년부터 3년간 북한에 6,000대의 통일자전거보내기운동, 그 후 콩기름과 밀가루보내기운동 등을 해왔다.
자연과공생운동은 자연과공생위원회가 주관한다. 이 운동은 한마디로 기후변화에 대응한 이산화탄소 줄이기 운동이다. 환경부 자료에 의하면 운전자가 하루 5-10분 정도 신호대기 시 기어를 중립에 두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드는데, 1년간 지속했을 경우 나무 네 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는 지구 지킴이”라는 스티커를 차에 붙이고, 신호대기 시 기어 중립을 실천하는 시민운동이다. 2016년부터 집중 캠페인을 전개하여 2018년에는 1,000명의 시민이 이 운동에 동참했다.
목포Y는 Y전국연맹의 구성체로서 18세 선거권 보장 등 참정권운동, 북한통일자전거보내기, 밀가루보내기운동 등 사안이 있을 때마다 함께해왔다. 특별한 기억으로는 전국연맹 100주년 때 시민, 청소년, 평화통일 등 분야별 운동 세미나를 한 경험이다. 한국Y의 간사는 간사보를 포함하여 250여 명인데, 필자는 운동 주체로서 ‘간사론’을 발표했다. 새로운 100년을 위한 다양한 사업수행을 위해 운동의 핵심 주체 중 하나인 간사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훈련할 것인가와 간사공동체에 대한 내용이었다. 2016년 한국Y간사회 회장을 하면서 전국연맹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서 ‘간사들의 의견 반영 방식’ 제안과 ‘후보 정책토론회’ 등 간사들의 지혜를 모았다. 2018년 전국사무총장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분기별로 열리는 협의회 회의를 세월호가 있는 목포신항과 성주의 사드 반대 현장 등지에서 개최하며 시대의 아픔을 함께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YMCA 국제대회 참석은 개인적으로는 견문을 넓히고 Y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Y에서 일하는 동안 2004년 싱가포르, 2007년 태국 치앙마이, 2011년 말레이시아 페낭, 2019년 일본 도잔소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Y대회와 200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2010년 홍콩, 2018년 태국에서 열린 Y세계대회에 참가했다. 국제대회 참여를 통해 지구촌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세계적 조직인 Y운동체를 경험할 수 있었다.
대회의 주제는 그 대회의 취지를 드러내는데 남아공 세계대회의 주제는 ‘우분투’(Ubuntu)였다.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라는 뜻이다. 2018년 태국 치앙마이 세계대회에서 한국Y는 남북평화공존과 통일을 위한 비정부기구의 교두보 확보 차원에서 평양에 ‘세계Y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준비 안을 총회에서 다룰 수 있도록 애썼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2019년 일본 도잔소 아시아태평양Y대회에서 한국Y는 일본의 수출규제와 지소미아 문제로 한일 간의 분쟁 국면에서도 갈등의 근원 중 하나인 ‘위안부에 대한 성찰’을 대회의 ‘공동기도문 형식’으로 다루었다. 예수의 제자로서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넘어 ‘인권과 평화’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YMCA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년에 이르는 Y활동을 회고하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명세계에 잠시 머물다 가는 필자의 삶에 함께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선한 자의 밭이나 악한 자의 밭이나 똑같이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이 지구촌의 뭇 생명들과 늘 함께하시어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김재홍 | 목포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목포YMCA 사무총장으로 오랜 기간 일하다 은퇴하였다.

 
 
 

2020년 6월호(통권 7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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