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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20년 4월호)

 

  조선시대 사람들의 역병 인식
  

본문

 

조선시대의 역병 인식
조선시대 사람들은 역병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아마도 주기적으로 찾아와 대규모 인명을 살상하는 역병은 기근이나 전쟁과 같이, 무섭지만 피할 수 없는 재난의 하나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그것에 대처하는 여러 방식들을 발달시켜야 했다. 전통사회에서 삶은 가혹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역병(疫病, epidemic disease)은 어떤 인구 집단에서 빈도 이상으로 일어나는 질병을 말하는 것으로, 전염을 통해 집단적으로 발병하기에 ‘돌림병’이라고도 불렸고, 환자를 모질게도 고통스럽게 하기에 ‘모진 병’이라고도 불렸다.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 20세기 초에 발생한 스페인독감은 물론이거니와 오늘날 21세기에도 사스, 신종 플루, 에볼라 출혈열, 메르스 등 여러 이름의 역병들이 유행하여 전 세계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킨 바 있지만, 적어도 우리는 역병의 발생 원인, 감염 경로, 대응 방식 등에 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다. 물론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의 비가시성으로 인해 역병은 실제 이상의 상상적 불안과 공포를 일으키지만 말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역병의 원인이나 감염 경로, 대응 방식에 대해 막연히 추정하기만 할 뿐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금 한국 사회는 ‘COVID19’(‘코로나19’로 더 잘 알려진)로 명명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흉흉하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어떤 역병이 유행했을까? 조선 후기만 보아도 천연두, 홍역, 콜레라 등이 창궐했다. 역병은 갑자기 발생하여 사회를 온통 불안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가 일정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소멸되곤 했다. 아니면 전염성은 강해지면서도 독성은 완화되어 일정 나이의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겪게 되는 소아병(천연두, 홍역 등)으로 정착되기도 했다. 일반 백성들의 경우 역병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음은 물론이지만, 지배층이라고 해서 그것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왕가를 비롯해 사대부 가문에서도 역병에 대한 두려움은 크고 일상적이었다.
조선시대 사람들도 역병이 환자를 매개로 인접한 사람들에게 전파된다는 것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역병이 돌면 환자를 격리하거나 발병 지역을 피해 피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주는 불안과 전염의 두려움 때문에 유랑민이 급증하거나 시체를 집단적으로 방치하는 참상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역병은 광범위하게 사회적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인간관계를 단절시키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다른 한편, 역병은 기존의 사회적 관계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세계관을 붕괴시키고 이를 새롭게 재구성하도록 만드는 촉매로도 작용했다. 역병과 함께 인간 사회는 해체와 재구성을 거듭하며 공진화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역병을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했는지 필기와 야담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물론 필기・야담의 역병 기록 대부분은 상상적・신비적 내용이고, 그 기록자의 대부분은 사대부 남성들이다. 하지만 필기・야담에 수록된 이러한 신이한 이야기들의 근원을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서 우리는 당대 민중들의 상상세계를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필기·야담 속에 기록된 역병 체험
조선시대에도 역병은 여러 차례 유행했다. 특히 동서양의 문명 교류가 활발했던 17세기와 19세기는 ‘전염병의 시대’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역병의 피해가 참혹한 시기였다.1 물론 그 이전이나 그 사이라고 해서 역병이 유행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조선 초부터 무사귀신(無祀鬼神)에게 국가가 집단적으로 제사를 지낸 여제(厲祭) 또한 역병으로 제사를 지낼 가족/친지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방법이 아니었던가.2 유교적 예교국가(禮敎國家)를 지향한 조선왕조에서 제사체제 바깥에 소외된 자가 있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짐이었고 공동체 전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숙제였다. 전쟁, 기근, 정변 등이 빈번하게 발생한 고려 말-조선 초는 또한 주기적으로 역병이 유행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처럼 역병의 유행에는 정해진 시기가 따로 없지만, 그것이 신이담(神異談)의 형태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 『어우야담』(於于野談)부터인 것 같다. 『어우야담』이 저술된 17세기 초는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쟁, 이로 인한 기근과 역병으로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한 직후였다. <종랑(終娘)의 시신을 묻어준 무사(武士)>라는 이야기는 역병이 돌아 시체를 매장하고 제사를 지내줄 친지조차 남지 않은 ‘종랑’이라는 여인의 혼령이 무사를 꾀고, 이에 그 전말을 알게 된 무사가 예를 갖춰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러주자 복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3
이미 죽은 여성이 남성을 유혹해 장례를 치르게 하는 이야기는 『금오신화』의 <만복사저포기>에도 나타나거니와, 왜구의 침략에 죽은 귀녀(鬼女)와 달리 종랑은 역병으로 죽었다. 굳이 양자의 차이를 논하자면
<만복사저포기>의 귀녀가 억울하게 죽어 사회적 신원(伸冤)을 바라는 원귀(冤鬼)라면, 『어우야담』의 종랑은 무차별적인 재난에 휩쓸려 집단적으로 죽은 여귀(厲鬼)라는 점에 있다. 귀신이 된 원인이 다르니, 분노의 대상도 다르고 해결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튼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와서야 공동체를 파괴하는 역병의 문제가 형상화되기에 이르렀다. <종랑의 시신을 묻어준 무사> 이야기는 인륜질서를 파괴하는 역병의 참혹함을 고발하면서도, 역병의 두려움을 이기고 시신을 정당하게 매장해준 무사를 통해 그래야 인륜질서가 회복될 수 있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18세기 초반에 저술된 임방의 『천예록』은 62편 중 10편 내외가 역병에 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17세기 들어 크게 창궐한 천연두에 관한 민간전승이 많이 수집되어 있다. 임방은 송시열의 제자이자 고위 관료를 지낸 인물이었는데, 유학자로서 그는 인간의 잘못 때문에 음양의 조화가 어그러져 나쁜 기운이 쌓이고 그것이 역병을 일으킨다는 역학적 병인론(易學的 病因論)을 지지했다. 하지만 이런 초탈하고 초개인적인 병인론만 가지고는 천연두 같은 역병이 불러일으키는 두려움과 고통에 대응하기란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죽은 선비 김생이 마마귀신이 되었고, 옛 친구가 극진히 호소하고 제문을 지어 바치자 저승으로 데려갈 아이들의 생명을 살려주었다는 이야기를 수록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마마귀신이라는 초자연적 존재에 의해 두창(천연두)이 일어난다는 민간의 신이적 병인론(神異的 病因論)을 인정하면서도, 그 마마귀신이 예측 불가능하고 냉혹한 존재가 아니라 도덕적이고 온정적인 존재임을 강조해서 전달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말미에 임방은 “정말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지 못하겠지만, 지금 두 선비가 맞닥뜨린 사건을 보면 마마를 퍼뜨리는 귀신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4라고 말한다.
이처럼 죽은 선비가 두창(천연두)을 관장하는 마마귀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조선 중후기 필기・야담집에 두루 수록되어 있다. 평소 강직하던 선비가 저승에서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금오신화』의 <남염부주지>와 같은 유형의 이야기에서부터 보인다. 그런데 천연두가 유행하던 시대에 맞게 변형된 이러한 이야기들이 노리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이와 같은 신이담은 미지의 영역이자 불가해한 영역이었던 역병을 가시화하고 인간화한다. 역병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대상을 가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실제보다 더 큰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역병을 불러일으키는 원인과 대상이 가시화되고 인간화된다면, 막연한 공포와 불안은 많이 진정될 것이다.
물론 역병을 일으키는 귀신이 모두 이와 같은 형상인 것은 아니다. 역병을 일으키는 귀신이 무섭고 기괴한 형상으로 묘사된 경우도 있고, 가난한 노파나 고아처럼 소외된 주변인처럼 형상화되는 경우도 있다. 이 차이는 역병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고, 거기에 따른 대응 방식의 차이를 보여줄 것이다.

역병에 대한 세 가지 병인론: 역학적, 경험적, 신이적 병인론
우리는 역병을 일으키는 병원성 미생물을 현미경으로 직접 관찰할 수 있고, 그 전파 경로를 추적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방역체계를 작동할 수 있다. 이런 과학적 병인론이 발전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역병의 발생 원인이나 전염 경로, 대응 방식 등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설명했을까? 역병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었지만, 여기서는 역학적(易學的), 경험적(經驗的), 신이적(神異的) 병인론으로 나누어 설명해보려 한다.
역학적 병인론이란 한대(漢代) 유교의 재이론(災異論)이나 천인감응론(天人感應論), 송대 유교의 음양이기론(陰陽理氣論) 등에 그 논리적 기초를 두는 것으로, 음양오행의 상극이나 인간 사회의 도덕적 결함 때문에 자연의 조화로운 질서가 교란된 것에서 역병의 원인을 찾는 관점을 말한다. 주로 사대부들이 지지한 이 관점에 따르면 역병은 도덕적인 결함이 원인이 될 수 있으나 개인의 도덕성 너머의 초개인적 도덕성 때문에 발생하며, 어떤 귀신의 구체적인 빌미가 그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문종실록』은 황해도 지역을 휩쓴 역병에 대한 상소를 통해 유학자들이 취한 일반적인 병인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번에 황해도 백성들이 역질로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이는 수한(水旱)의 이변으로 음양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어그러진 기운이 바야흐로 성한 탓인데, 다시 무슨 신이 있어 기도로써 이를 능히 모면하겠습니까?”5
물론 역학적 병인론에는 모든 원인을 우주(자연)의 순행 과정의 산물로 보는 자연론적 설명과 개인의 도덕성이 쌓여 공동체 전체의 도덕성을 결정짓는다고 보는 도덕적 설명 사이의 긴장이 있다. 역병의 유행을 우주적 기운의 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이고 초개인적인 사태로 보는 인식과 개인의 도덕성이 쌓이고 쌓여 공동체 전체의 화복을 결정짓는다는 인식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모든 것에는 정해진 운수가 있다는 자연론적인 해석과 그것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도덕적 해석 사이에서 양자를 포괄하여 설명하려 한 조선 유학자들의 독특한 사유방식을 엿볼 수 있다.
경험적 병인론이란 역병의 발생과 유행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얻은 관점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역병이 돌 때 역병이 없는 다른 지역으로 피접을 가거나 환자를 격리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군집할 때 역병에 전염되기 쉽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결한 환경, 오염된 물, 기근이나 전쟁 등이 역병의 온상이 된다는 사실도 경험적으로 알았다. 나아가 호흡을 통해 전염이 발생한다거나 인두접종법 같은 초보적인 면역요법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역병에 대한 경험적 지식은 날이 갈수록 축적되었지만, 그것이 분석과 검증을 거친 합리적 지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컨대 경험적 지식으로 반복되는, 부적을 소지하거나 태워 마시는 식의 처방은 심리적 효용은 있었을지 몰라도, 합리적・과학적 지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역병에 대한 경험론적 지식만으로는 경험의 파편성을 극복하고 체계적인 병인론으로 발전하기가 어렵다.
신이적 병인론이란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나 신이한 존재에 의해 역병이 발생한다는 관점을 말한다. 사실 이 관점은 ‘모든 현상에는 그만한 힘을 지닌 신비한 원인이 있다.’라는 원시적인 사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무속을 통해 이어져온 이 사유는 워낙 뿌리가 깊어 현대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역병이 돌면 이를 누군가의 저주 혹은 역병 걸린 사람의 잘못이라고 탓하거나, 역병을 일으키는 주체보다 더 힘이 센 존재에게 기도해야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따위에서 아직까지도 강력히 남아 있는 신이적 병인론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현대인도 그럴 정도이니, 역병의 공포 앞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던 조선시대 사람들이 신이적 병인론에 더 쉽게 빠져드는 것은 당연하다. 신이적 병인론은 역병의 원인을 가시화・인간화함으로써 실체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를 완화하고 그것을 대응 가능한 질병으로 바꾼다. 그래서 그에 따른 주술적 신앙이나 치료술이–때로 유교적 이념에 반하는 것이라 해도–왕가나 사대부에서조차 암묵적으로 자행된 것이다.
이상의 세 병인론은 과학에 의해 역병의 발생 원리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상호 충돌하면서도 공존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이적 병인론은 근대 이전 역병에 대한 사고의 기반을 이루면서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이제 신이적 병인론을 그 역병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세 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역병에 대한 신이담의 세 가지 유형
조선시대의 필기・야담에는 역병에 관한 여러 신이담이 수록되어 있다고 앞서 언급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들은 역병을 일으키는 존재를 어떻게 묘사하고 설명하고 있을까? 이야기들을 분류해보면 역병을 일으키는 주체, 즉 역병의 원인은 다음 세 가지로 다르게 포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유형은 하늘의 뜻에 따를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역병을 묘사하고 받아들이는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에서 역병을 퍼뜨리는 존재는 하늘의 명에 따라서 직무를 수행하는 저승의 관리(저승사자)처럼 묘사된다. 하늘의 뜻에 저항하기보다 순응함으로써, 비록 무기력한 대응 방법이긴 해도 역병이 불러일으키는 죽음의 불안은 완화된다. 역병에 걸리는 것도 하늘이 정해준 숙명이며, 삶은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것이니까. 이는 사대부들이 주로 견지한 역학적 병인론과 닮아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역병의 유행을 원한을 품은 여귀(厲鬼)의 소행으로 보고, 이를 잘 대접해야 역병을 물리칠 수 있다는 식의 교훈을 담은 이야기들이다. 분노에 차 있는 혼령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믿음은 원시주술적 관념에 뿌리를 둔 오래된 인식이다. 조선왕조가 여제(厲祭)를 신설하여 여귀를 위무하려 했음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여귀는 초라한 거지소년 행색으로도, 변덕스런 할미의 형상으로도 출몰할 수 있다. 비천하고 초라해 보이는 이웃을 잘 대접하고 그 사람에게 따뜻한 인정을 베푸는 것이 여귀의 분노를 사지 않고 역병의 피해를 막는 길이다. 두 번째 유형의 이야기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대략 이와 같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유형은 역병을 일으키는 존재를 기괴하고 비인간적인 속성을 지닌 괴물로 형상화하고, 이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굳센 기운과 위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야기들이다. 여기서 괴물은 인간과의 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즉 인간화되지 않은 불가해한 자연의 피조물이다. 기괴한 사물성을 체현하고 있는 이 존재에게 인정에의 호소나 자연에의 순응, 도덕적 내성은 통하지 않는다. 단지 괴물보다 더 강한 힘, 주술적 위력만이 이들을 제어할 수 있다. 조선시대 필기・야담집에는 귀신과 역병을 제어하는 힘을 지닌 특별한 인물들이 줄곧 등장하는데, 이는 귀신과 역병을 제어하는 힘에 대한 민중들의 선망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이상으로 조선시대 사람들이 역병을 어떻게 인식하고 상상했으며, 이에 따라 어떻게 형상화했는지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특히 신이적 병인론을 중심으로 역병의 발생 원인과 대응 방식 등을 살펴보았다. ‘코로나19’가 유행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역병은 인간관계를 해체시키는 사회적 질병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역병에 관한 신이담을 통해, 과학적인 치료방법을 발견할 수는 없다 해도 담담하게 역병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배울 수 있다. 즉 이러한 신이담은 과거에 역병 자체를 치료하는 데는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없었겠지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의미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1 17세기와 19세기는 각각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대규모 국제전쟁이 일어나거나 서구 세력의 동점(東漸)이 뚜렷해지던 시기였다. 그러한 국제적 변동과 함께 17세기에는 천연두와 홍역이, 19세기에는 콜레라가 크게 창궐했다. 조선 중기부터 저술된 필기・야담이나 조선 후기의 판소리・설화 등에는 이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다.
2 중국 명나라의 제도를 본따 시행된 여제(厲祭)는 무사귀신(無祀鬼神)을 국가에서 제사 지내주는 유교식 제의이다. 이와 비슷하게 무주고혼(無主孤魂)들을 위로하기 위해 불교식의 수륙재(水陸齋)가 시행되기도 했다. 왕권이 강하고 불심이 깊었던 태종-세종의 통치 기간에는 국가적으로 수륙재가 거행되었으나, 유학자들의 힘이 강해진 문종 이후부터는 여제로 수륙재를 대신하였다.
3 유몽인, 신익철 외 옮김, 『어우야담』(돌베개, 2006), 255-256.
4 임방, 정환국 옮김, 『천예록』(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228.
5 『문종실록』 1451년 9월 19일.



강상순 | 고려대학교에서 고전서사문학을 전공(Ph.D.)하였다. 대표 저서로 『귀신과 괴물』이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0년 5월호(통권 7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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