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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교회와 현장] 선언문
교회와현장 (2020년 2월호)

 

  3・1혁명 100주년 기념 한국기독교인 선언
  - 성탄절, 자유와 상생과 평화를 위하여 -

본문

 

* 이 글은 “3・1혁명 100주년 기념 한국기독교인 선언”의 전문이다. ‘3・1운동’을 ‘3・1혁명’으로 지칭한 이 선언문은 2019년 12월 17일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발표되었으며, 기독교계 주요 인사들이 뜻을 합쳐 발의자로 참여했다. - 편집자 주


돌아보고 내다보며
100년 전 우리 민족은 분연히 일어나 일제의 불의한 식민지배에 대항하여 자유와 독립, 정의와 민주,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선언하는 3・1혁명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3・1혁명은 지나온 역사에서 우리 겨레의 혼과 얼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열어갈 미래의 역사에서도 이 나라를 이끌어 갈 기본 가치임을 확인한다. 우리의 초기 기독교회와 신앙의 선현들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믿고,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3・1혁명의 과업에 적극 참여하였다. 나아가 이 땅의 복음 전파에 헌신하던,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선교회와 모 교회들이 연대하여 이 일에 동참하고 지원한 것을 기쁘고 감사하게 여긴다.
3・1혁명의 정신은 1945년의 해방 이후에도 면면히 이어져 왔다. 이 정신은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등과 최근의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되었다. 3・1혁명 정신의 귀중한 열매는 역사발전의 결과를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국가들 중 우리 대한민국만이 급속한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기업들은 현대 기술문명을 최전선에서 당차게 이끌어 가는가 하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펼치는 한류와 문화예술은 세계인들에게 매력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우리는 배웠고 또 알게 되었다. 역경과 고난은 공동의 결단과 헌신을 통해 희망의 그루터기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이루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시어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음을 믿는다. 성탄일은 바로 이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우리 고난의 역사 가운데 성육(成肉)하여 임재하신 복된 날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제국에서 해방되는 출애굽 역사 내내 그들과 함께하며 자유의 길로 이끄셨듯이, 우리 겨레 역사 가운데서도 임재하셔서 해방과 자유, 풍요의 길로 이끄셨다. 우리는 3・1혁명을 비롯하여 이 땅의 온갖 역경과 변화의 역사 속에 임재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동시에 우리는 이 역사 과정에서 우리가 범한 허물과 오류도 솔직하게 반성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의 허물과 오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 땅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되기를 갈망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그 뜻이 이 한반도에 성취될 수 있도록 그 길을 예비하는 일에 우리 동포들의 결단과 동참을 호소하려 한다. 3・1혁명 100주년의 성탄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신앙적 애국 그리고 애국적 신앙의 마음을 모아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날을 내다보고자 한다.

죄책고백과 소금과 빛의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하여
3・1혁명은 자주독립, 자유민주, 평화적 인류공영의 시대를 꿈꾸었다. 이 꿈은 소중했으나 소중했던 만큼 그 실현에는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기미독립선언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의 독립운동은 이념과 노선갈등으로 분열되었고 이를 악용한 일제 식민통치는 더욱 극악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해방을 맞았으나 외세의 책략과 민족 내부의 분열, 민족 역량의 결집 부족 등으로 남북분단을 겪어야 했다. 뒤이은 한국전쟁은 파멸적인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남북 간의 적대적 갈등의 구조화를 초래하였다. 전후의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북의 공산독재와 남의 반공독재 사이에 벌어진 무한대결과 적대적 공생관계는 남북을 불문하고 국민들에게 심각한 인권 유린과 무고한 희생을 강요하였다. 다행히 남한의 경우 수많은 항쟁과 의로운 희생의 결과로 이제야 진정한 민주공화국체제를 정립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항쟁과 희생의 주역들을 기억하며 감사할 일이다.

_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방기하거나 획책한 잘못
우리 한국 기독교회는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기에 국내의 봉건체제와 식민외세 통치에 맞서서 분연히 저항의 불길을 당겼다. 이 땅의 고난받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정의와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며 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막상 해방과 독립으로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자 독재체제 유지와 외세 의존을 정당화하거나 편을 드는 사태가 발생했다. 참으로 가슴을 칠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아가 한국 기독교회는 분단체제하에서 북한의 형제자매들에 대해 깊은 적대감을 품어온 지가 오래되었다. 반공의 이념을 이웃사랑의 계명보다 앞세워 군부독재와 적대적 냉전체제를 정당화하는 잘못을 범했다. 세계적으로는 이미 한 세대 전에 냉전체제가 붕괴되었으며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 무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냉전사고가 여전하여 생각이 다르면 상대를 ‘용공’ 혹은 ‘종북’이라고 매도하였고 이 행태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용공이나 종북이라는 딱지는 이 나라에서 함께 살 수 없다는 뜻이며 많은 이들이 이 용공이란 이름으로 매도당하고 탄압받았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성도들을 선동하여 정치적 광기의 광장으로 끌어내는 거짓 선지자들의 발호에 대해서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라는 첫째 계명은 하나님 이외에 인간이 만든 어떤 이념이나 체제나 맘몬이나 권력일지라도 신앙의 이름으로 신격화하거나 절대화하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 중 일부는 지금 십계명에 반하는 반성경적이고 반복음적인 폭거와 오만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지르고 있으니, 이야말로 신성모독의 죄를 범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_기독교회의 분열과 갈등에 대한 잘못
우리는 한국의 기독교회가 한국 사회의 정치적 민주화 및 경제적 성장과 함께 세계 근대 교회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급격한 양적 성장을 이룬 것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여파로 세계 교회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교파 분열과 교회 분열이 있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탐욕적 교권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교회 선거의 부정과 타락, 이해 당사자 간의 고소 고발의 난무, 이권 집단화 등이 여기저기에서 발생하고 있다. 교회가 세상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고 있다는 질타를 사회로부터 받고 있다. 이러한 일탈의 배후에는 신앙의 성숙이 아니라 교세의 양적 성장이 가치의 척도가 되는 타락한 번영신학이 흉물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이 번영신학 또는 성공신앙은 양적 성장과 물량주의적 재원 축적과 정치 권력적 성공을 찬양하고 있다. 이 흐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회의 소수자는 소외되고 있으며 세속사회와 다를 바 없이 성폭력과 갑질 행태가 일상이 되었다. 심지어 목회도 부와 권력의 세속적 행태를 따라 세습의 길로 치닫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한국 기독교회가 복음의 기본으로 돌아가 십자가 고난의 신앙과 고난에서 승리하는 부활 희망의 신앙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_‘소금’과 ‘빛’의 기독교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하여
이런 현실은 교회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포기하거나 방기한 결과이다. 진실로 교회는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존재 이유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공동체로 사는 데 있다. 교회는 세상에 스며들어 세상이 썩지 않도록 희생과 회생의 역할을 해야 할 존재이다. 하지만 그 교회가 오히려 스스로 부패하고 맛을 잃어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거나 기피하고 비난하는 대상이 되었다. 소금이 못 되니 자연스럽게 빛의 역할도 할 수 없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라는 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이자 은혜의 선물이다. 소금은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신 주님의 십자가의 소금이요, 빛은 십자가의 주님이 승리하고 새 피조물을 만드신 부활의 빛이다. 우리는 고백하고 결단한다. 우리 모두 맘몬주의의 교만과 가식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보여주신 대로 겸손과 희생의 공동체로 거듭나자. 세상의 권력 투쟁에서 파생되는 지배이념이나 진영논리의 허황된 환상에 매몰되지 말자. 악을 이기고 승리하신 주님의 부활 희망만을 믿고 전파하기로 결단하자.

자주독립 구현과 진정한 민주공화국 실현을 위하여
_자유 민주와 자주적 공동번영의 의지

3・1혁명은 자못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주국가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그때 우리는 불의한 일제 식민통치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무능하고 부패한 왕정체제도 포기했다. 3・1혁명을 계승한 상해 임시정부는 대한제국 대신 대한민국을 출범시켰다. 이 3・1혁명은 강대국들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전후 처리에서 대한민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게 만드는 역사적 근거가 되었다. 동시에 3・1혁명의 자주독립과 인류공영 정신은 해방 후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로 계승되었다. 요약컨대 3・1혁명의 정신은 우리 민족의 핏줄에 도도하게 흐르면서 민족역사의 온갖 질곡을 헤쳐 나가는 기본 동력이 되었다. 나아가 이 정신이 전후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급속한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의 견인력으로 작동했음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나라가 자주독립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세의존이 여전히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궤변을 쏟아내는 자들이 여전히 우리 내부에 똬리를 틀고 있다. 최근에 벌어진 한일 간의 갈등 와중에 매국적 주장을 부끄러움도 없이 내뱉는 무리가 그러한 예이다. 이들은 일제시기 대동아전쟁기의 군수공업화가 전후 대한민국 산업화의 기초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일제 식민통치 정당화에 열을 올리는 일본 국수주의자들의 망발에 동조하고 있다. 단언컨대 일제하 군수공업화의 잔재는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을 통해 남한으로부터 철저히 단절되었다. 일제의 어떤 잔재도 전후의 한국 산업화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완전히 잿더미가 된 폐허 위에서 우리 국민은 자립, 자주, 민주의 정신으로 불사조처럼 일어나 오늘의 민주화와 산업화를 일구어 낸 것이다. 이들은 일제가 저지른 ‘종군위안부’라는 극악무도한 성노예화도 이런저런 망발로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아직도 식민주의적 부역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집단들의 곡학아세가 가소로울 따름이다.

_패배주의적인 종속에서 벗어나 열린 자주의 공동체로
강대국의 억압과 착취를 막고 자유롭고 평안하게 삶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민족 자주성의 확립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민족이든 이 자주성을 심고 아름답게 꽃피우려면 그만한 힘을 갖추어야 한다. 자주적 힘이 결여된다면 식민화와 종속으로 퇴락하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민족자주의 힘이 국민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기틀임을 확신한다. 민족자주의 힘은 삶을 풍요롭게 영위할 수 있는 경제발전과 경제민주화와 복지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민족자주의 힘은 인류공영을 자신 있게 담보할 수 있는 상생의 평화공동체를 건설하는 기초로서의 힘이다. 3・1혁명이 주창한 자주, 상생, 평화의 가치는 프랑스혁명이 내세웠던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와 일맥상통하며 향후 세계인의 귀감이 되었다. 우리는 힘 있는 튼튼한 자주를 원한다. 그 힘은 약소국을 강탈하거나 착취하는 제국주의적 힘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자립갱생하면서 어려운 이웃 나라를 도우며 인권과 정의가 신장되도록 격려하며 세계평화 수립에 헌신하는 힘이다. 이로써 진정한 자주 선진국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힘 있고 열린 민족자주의 원칙을 오늘의 분단 현실을 극복하는 데에도 적용하려고 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분단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경이로운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발전을 이룬 점에 주목한다. 이것은 분단을 운명적인 종속구조로 보지 않고 극복해야 할 아픔의 현장으로, 또 변화시켜야 할 희망의 디딤돌로 생각하고 대처한 민족 내적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분단 때문에 강한 자극을 받았음도 분명하다. 3・1정신으로 무장한 대한민국은 남북의 대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승리자의 사명을 자각하고 있었다. 군사적 대결이나 적대적 갈등을 고조시켜 무력으로 승리를 이루겠다는 군사적 방식이 아니다. 자유와 인권, 정의와 복지, 평화와 안보라는 가치관 경쟁의 방식을 선택한 결과라고 믿는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도 분단 상황을 관리하고 극복하는 데 필요한 지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유엔군 및 주한미군의 주둔은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현재적 지위와 미래적 역할에 대해 우리는 슬기롭게 평가해야 한다.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전시작전권을 이양받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유엔군이나 주한미군은 지난날 냉전적 대결의 보호자 내지 첨병이었다. 앞으로는 동북아지역의 공동안보와 평화를 지키고 보장할 활력소로 전환되어야 한다. 미군주둔 비용 부담도 이러한 합리성과 자주성의 기초를 전제로 해서 다루어져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한다. 한반도의 당사자국들만 아니라 동북아체제에 관심이 있는 주변 국가들 역시 이 일에 적극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_세계를 끌어안는 애국의 교회로
이 땅에 터 잡은 기독교회는 이 겨레를 사랑하는 애국교회이다. 이 한반도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라고 부름받고 보냄받은 사명을 감사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배타적인 민족주의나 폐쇄적인 국가주의를 배격한다. 국수주의에 빠지면 극단적인 경우 반인륜적이고 집단적인 범죄에 빠져들 수 있다. 우리는 나치즘, 파시즘, 스탈린주의 등의 흉악범죄에 직간접으로 동조하거나 정당화하는 잘못을 범한 교회들의 아프고 슬픈 역사를 알고 있다. 교회는 온 세계를 통치하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받은 공동체이다. 한국 교회는 한반도와 동북아 및 온 세계와 함께 하나님의 공의와 평화를 심고 가꾸는 일에 연대하며 그 일을 위하여 공생 공존해야 한다.
교회에 관해 분명히 할 것이 있다. 교회는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성경 말씀을 자기존재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교회는 육신으로서는 애국의 교회이지만 영적으로서는 하나님의 공동체이다. 기독교회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을 넘어서 사는 종말적 공동체이다. 하나님이 우리나라 편이 되어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또한 그 길에 굳게 서기를 결단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애국하는 길이며 동시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이다.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복지사회를 위하여
_열린 시민사회의 등장

자주독립의 주체는 자주적 민주시민이다. 3・1선언은 자주적 시민사회의 비전을 선포했다. 해방 후의 자주적 시민사회 수립을 위한 역사적 과정은 이 땅과 이 겨레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있었음을 고백한다. 해방 직후 국민 대다수는 의존적 소작농이었다. 여러 해의 토지개혁조치를 거쳐 자주적 자영농으로 탈바꿈하는 혁명적 변화가 발생했다. 비록 과정이 더디고 굴곡이 많았지만 자주적 농민사회의 등장과 확대는 대한민국의 급속한 발전을 설명할 핵심 요인이다. 한국의 자영농은 산업화에 필요한 사회정치적 안정의 기반이었다. 그들의 저축은 산업발전에 필요한 주요 자본이 되었으며 그들의 자녀 교육 열정은 수출주도 산업화에 양질의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군부독재 때문이 아니라, 군부독재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고 말해야 한다. 자영농의 자녀들은 자주적 노동자이자 시민으로 성장하였고 이들은 민주적 시민사회 형성의 견인차가 되었다. 3・1혁명정신에 바탕을 둔 대한민국 헌법하에서 민주적 주권의식을 가지고 성장한 이들은 군사독재의 억압적 통치와 갖가지 공작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3・1혁명이 꿈꾸던 자유민주체제를 경제발전과 함께 이룩한 주축 세력이었다.

_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는 공정사회를 위하여
현재 우리 사회는 성장과 분배의 부조화가 심각하며 계층 간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수출대체산업화를 위한 재벌기업 중점 육성전략은 세계시장의 극심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었지만 내적으로는 양극화의 위험을 근본적으로 배태하고 있었다. 인공지능 기술문명의 발달 역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로봇에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다수의 젊은이들은 취업기회의 급격한 감소와 주변화로 시달리고 있으며 자주적 삶을 영위할 기초 재화의 확보조차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심화되는 양극화로 노인 세대는 불평하고 젊은 세대는 분개하고 있다. 양극화의 질곡을 메꾸거나 완화할 중산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양극화는 민주적이며 정의로운 공동체의 유지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되고 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과감한 제도개혁의 외침이 도처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 개혁은 정부는 물론 기업과 노동현장, 대학과 종교사회까지 모든 관련 공동체가 함께 나서야 할 공공의 과제이다. 정부와 기업을 비롯한 모든 공공영역이 사회적 책임을 공유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사회적으로 형성된 모든 소유권에는 개인적 기여분과 공동체의 기여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 각 영역에서 자신의 특성에 따라 공공성을 어떻게 실현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 공공성에는 인간의 개발욕구 실현과 함께 창조질서 보전의 공공적 조화도 포함되어 있다.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자연의 파괴를 피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실천되어야 한다. 이 일에 우리 모두가 역사적 주체로 나서야 한다. 우리 후손들에게 파괴된 환경과 피폐한 삶을 유산으로 넘겨주는 비극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_기독교회를 화해공동체로
한국의 기독교회는 두 가지의 화해 사역을 위임받고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 먼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이른바 하나님과의 화해 사역이다. 개인의 영혼구원이라는 이 선교의 사명에 모든 기독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하며 헌신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도 화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 화해의 사역을 기독교회에 맨 먼저 부여하셨다. 이것은 역사구원이고 사회구원이며 환경생태계의 구원이다. 인간사회의 양극화만이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멀어진 것이 더 근원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교회는 이런 두 차원의 화해를 촉진하기 위한 화해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 화해의 기본 조건은 신뢰의 회복이다. 교회가 화해의 광장이 되려면 사람들이 교회의 화해 사역의 자격을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개혁과 사회개혁보다 교회개혁이 더 시급한 이유이다.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공간은 단지 중립지대가 아니다. 화해의 궁극적인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교회가 서야 할 화해의 공간은 하나님의 공의가 중심이 된 공간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공의를 중심으로 삼으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 사회의 불공정을 질타하고, 비민주성을 고발하고, 온갖 압제와 차별을 비판하고, 파당 짓기와 당파적 대결을 거부할 것이다. 우리가 선 자리는 하나님의 공의가 역사하는 자리이며 우리에게 부여된 예언자적 사명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평화와 통일의 공동체를 위하여
_먼저 평화 속에 공존을

3・1혁명선언에는 일찍이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동북아 평화를 동전의 양면으로 이해하는 혜안이 담겨 있었다. 분단의 비극 60여 년을 겪으면서 우리는 남북한의 통일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동북아 국가들과의 평화공동체 형성과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먼저 평화로운 공존을 선언한다. 남북이 사상,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의 민족공동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평화적 상생을 도모해야 한다.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선언했다. 바람직한 선언이다. 북에는 사회주의체제가 있고 남에는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남한이 북한을 자기 체제처럼 만들거나, 북한이 남한을 자기 체제처럼 바꾸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무력적 수단에 의한 흡수통일이나 적화통일은 망상에 불과하다. 오늘날 핵전쟁의 위협 속에서 전쟁의 결과는 공멸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평화공존의 과정을 시작하면서 전쟁이나 폭력적 대결이 아닌 평화적 경쟁에 나서는 것이 옳다. 양 체제의 공존은 양 체제가 이제부터 상호 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하여 가치관 경쟁에 돌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1정신을 비롯하여 우리가 선진적으로 발전시키고 성취해온 자주와 민주, 공정과 정의, 인권과 상생, 신앙의 자유를 포함한 온갖 자유, 복지와 행복, 교육과 훈련 등 모든 가능한 분야에서 평화적 교류협력에 참여해야 한다. 이것이 평화공존의 취지이다. 당연히 그 과정은 공정해야 하고 자유로워야 하며 평화적이어야 한다.

_적대관계의 청산과 교류협력의 무대로
세계적 냉전은 이미 종결되었고 무한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의 새로운 대결이 판을 휩쓸고 있다. 국가 이기주의가 미국을 출발점으로 웅위를 떨치면서 세계 곳곳을 위협과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아쉽게도 남북 간의 적대관계는 오랜 과거이자 지금의 현실이다. 언제까지 이런 적대적 대결을 끌고 갈 것인가? 북한은 북핵 문제의 화약고를 안고 있으며 남한은 주변 국가와의 갈등이 그치질 않고 있다. 남과 북은 민족공동체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미래 통일조국의 주체로서 공동의 살길을 진지하게 찾아야 한다. 끝없는 의심과 갈등으로 미래를 위해 쏟아야 할 역량을 소모하지 말고,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질적으로 경쟁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 바로 지난 과거의 아픔과 분노와 대결의 역사를 한꺼번에 해소할 수는 없다. 먼저 현실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바탕 위에서 과거의 원한을 하나하나 해소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갈등의 잔재들을 보다 유연하고 그러면서도 철저하게 청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독일의 경우와 달리 동족상잔의 엄청난 전쟁 후유증을 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대한민국이 경제발전과 정치적 민주화와 기술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남북의 평화공존도 이루어 내리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_기독교회를 평화공동체의 모범으로
한국의 기독교회는 지정학적 차원에서 두 가지의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하나는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복음화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의 국제적 연대 확장이다.
본래 우리 겨레의 복음화는 북한 땅에서 불붙기 시작했다. 그 불은 분단으로 인해 남한 땅으로 옮겨져 활발하게 타올랐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북한 땅에서도 확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북한 복음화의 과업은 남한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사적 소명이다. 하지만 남한교회를 북한에 이식하는 것은 복음을 빙자한 흡수통일이라는 오해만 받게 된다. 그러므로 남한 교회의 봉사는 북한이 원하고 북한 사회가 도움을 요청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컨대 북한의 동네마다 설립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군 단위 보건소를 한국 교회가 맡아 개수하고 전문 인력을 파송하여 열악한 북한 주민의 건강을 살필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는 복지 지향의 선교를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것도 평화공존 시대의 남북 교회가 해봄직한 일이다.
동시에 한국의 기독교회는 이미 쌓아놓은 해외 기독교회들과의 국제적 유대관계를 심화 확대하여 평화공존의 국제적 지원을 두텁게 해야 한다. 복음주의 세계 교회들 및 에큐메니컬 진영의 세계 교회들과의 연대를 효율적이며 지속가능한 협력의 틀로 정착하는 과업도 수행해야 한다. 특히 동북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마중물로 주변 4강 국가들의 기독교회 공동체들과 더불어 동북아 평화와 안보의 민간 차원 연대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 기독교회의 다짐
우리는 2019년 성탄을 맞이하여 3・1혁명 100주년에 주시는 성탄의 은총과 복을 갈구하며 이 한반도에 평화와 공의의 주님께서 성육(成肉)하시기를 기원한다. 우리는 이 간구의 마음을 담아 우리의 다짐을 엄숙히 밝히려 한다.

첫째, 우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의 계기마다 그리스도께서 부여하신 사명을 성실하게 수행할 것이다. 1919년의 3・1혁명은 내부의 봉건압제와 외부로부터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면서 우리 겨레를 질곡에서 벗어나게 하고 민족의 구원과 해방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이 일에 기독교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을 기억하며 기뻐한다. 지난 군부독재 시절에도 분연히 일어나 이 땅의 민주화와 경제성장 그리고 인권보호에 앞장섰다. 이 모든 것은 이 겨레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이며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서만 가능했음을 고백하고 감사를 드린다. 이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는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시대마다 한국 교회에 부여되는 사명을 성실히 감당할 것을 다짐한다.

둘째, 우리는 이 사회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공의와 평화는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일그러졌고, 그 결과 양극화라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높은 곳을 깎고 낮은 곳을 메우며 굽은 길은 곧게 하여 평화를 맞아들이는 제사장적 사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다. 양극화는 사회의 화합과 일치를 방해하고 극단주의로 치닫게 하며 분열과 적대적 갈등을 유발하는 악의 고리임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양극화를 해소할 복음의 메시지를 중심축으로 세우고 교회공동체가 먼저 경제민주화와 복지사회 실천의 모범을 보이도록 하고자 한다.

셋째, 우리는 사랑과 평등이 바탕이 되는 평화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앞장설 것이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살려 먼저 약소국들의 애환에 공감하는 위로의 연대활동을 펼칠 것이다. 강대국들과 약소국들 사이에 실질적인 화해와 평화가 이뤄지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할 것이다. 북한 동포들의 기본 인권과 복지혜택이 확립되도록 돕는 일에도 헌신할 것이다. 모든 나라가 민족자결의 원칙을 존중하며 모든 나라가 자주적 독립의 지위를 누리며 모든 나라가 평화와 상생의 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자주와 평화의 선봉장으로 살기 위해 우리 스스로의 갱신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넷째, 우리는 동북아의 평화와 자주성 확립을 위해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한반도가 아직도 냉전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적 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통탄한다. 남북한을 비롯한 국제적 당사국들은 조속히 평화체제를 정착하기 위한 국제적 조약의 체결에 매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3・1혁명의 자주독립 정신이 100년 후인 지금도 만족할 만큼 달성되지 못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의 비핵화, 전시작전권의 회수,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와 주둔비용 협상, 주변국들과의 정치・경제적 갈등 처리 등에서 자주독립의 자세를 굳건히 유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다섯째, 우리는 부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를 위한 시민적 기구들을 지원하고 필요한 기구들을 육성하는 일에 나설 것이다. 정부 당국과 시민사회 간의 비판적 연대와 협력의 길을 확장하여 이 나라에 선한 공권력이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이를 위하여 책임 있는 시민사회 기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선한 영향력을 확대하기를 바라며 기독교회 역시 이들을 지원하고 이들과 협력하여 공의와 평화가 확장되기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뜻을 같이하는 시민사회의 여러 부문과 상호 협력하고 연대하는 일에도 나설 것이다. 그것이 복음이 성육하는 모습의 하나임을 우리 모두가 확신한다.

우리는 3・1혁명 100주년이 되기까지 이 땅에 몸을 입으시어 우리와 함께하신 임마누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주님은 항상 매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에 성육하셨다. 앞으로도 성탄에 주시는 성육의 은총을 사모하며 이 은총의 역사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동참할 것이다. 성탄의 복이 온 세계만방의 백성들에게 크고 웅대하게 임하시기를 기원하며 함께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자 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장 14절)

2019년 성탄절에, 자유와 상생과 평화를 간구하며
3·1혁명 100주년 기념선언에 동참하는 기독교인 일동



주요 발의자
강경민(일산은혜교회), 강대인(전 방통위원장), 권호경(전 CBS 사장), 김기석(성공회대학교 총장), 김명혁(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명현(전 감리교 지도력개발원 원장), 김상근(KBS 이사장), 김영주(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김용도(전 침례교 회장), 김필수(구세군 사령관), 김흥수(YMCA 이사장),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박경조(대한성공회 전 관구장), 박종화(국민문화재단 이사장), 방인성(하나누리 대표), 백종국(기윤실 이사장), 서진한(대한기독교서회 사장), 손봉호(전 서울대 교수), 신경하(전 감리교 감독회장), 안재웅(전 CCA 총무), 원계순(기장 여신도회장), 유춘자(전 여신학자협의회 총무), 윤경로(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사장), 윤길수(기사연 이사장), 이만열(상지대 이사장), 이문식(복음주의교회연합 대표), 이숙진(기장 여신도회 총무), 이용호(전 고신 총회장), 이홍정(NCCK 총무), 장상(전 이화여대 총장), 전병금(전 기장 총회장), 정지강(전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지형은(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한영수(YWCA 회장), 허원배(NCCK 통일위원장), 황선엽(구세군역사박물관장)

 
 
 

2020년 3월호(통권 7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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