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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20년 1월호)

 

  「천풍」天風을 통한 중국 기독교 이슈 소개: 2019년 8–10월호
  

본문

 

「천풍」은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이하 ‘삼자’로 약칭)와 중국기독교협회(이 두 기관을 중국기독교양회라고 통칭함, 이하 ‘양회’로 약칭)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이다. 필자는 「천풍」 2019년 8-10월호 특집 주제와 그 토론 내용을 요약하며 중국 기독교의 최근 이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2019년 8월호–사모의 역할
8월호 토론코너(衆議苑)의 주제는 “전도사모, 특별한 신분, 어려운 역할, 그 누가 이해할까?”(傳道師母, 角色難當, 誰能理解?)이다. 사모는 그 특별한 신분 때문에 교회 신도들의 각별한 주목을 받는다. 사모들에게는 어떠한 직분이 주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오히려 교회에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막중한 책임을 감당하고 있으며, 목사 혹은 전도사들의 중요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묵묵히 수고를 감당하는 사모들의 애환을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편집부는 이 주제를 가지고 4편의 글을 실어 집중 토론하였다.
푸젠성 삼자 부주석 및 푸젠신학원 부원장 하오즈강(蒿志强)은 “머리를 숙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사모의 형상이다”(俯首是最美的師母形象)라는 글을 기고하여, 사모는 목사 남편과 협력하여 봉사하고, 움직임과 멈춤, 밖에서와 안에서, 빠름과 느림(一靜一動, 一內一外, 一慢一快)에서 합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오즈강은 본인이 섬긴 선배 목사의 사모를 통해 다음 세 가지를 가장 아름다운 사모의 모습으로 꼽았다. 첫째, 평범함 속에서의 비범함, 즉 묵묵히 침착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 사모는 전임 사역자들이 해야 할 교회의 사역을 직접 감당했지만 교회의 ‘무명 영웅’으로 잠잠했으며, 한 목사의 아내이지만 또한 모든 사람들의 종이었다. 둘째, 침묵 속에서의 부르짖음, 즉 온유하고 인내하며 중보기도를 하는 용사의 모습이다. 사모는 모든 사람을 마음에 품는 중보기도자이고,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상담자이다. 셋째, 무위(無爲) 속에서의 유위(有爲), 즉 평생 충성하지만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다. 사모는 일생 동안 특정한 직책 없이 일하지만, 그래서 아무런 공훈도 없어 보이지만, 그 위치의 특별함으로 인해 성직자인 남편과 공동으로 목회를 하는 것이다.
헤이룽쟝성 하얼빈시 난강교회 목사 사오산(邵珊)은 “사모는 무거운 짐을 지고도 여전히 후회 없이 전진한다”(師母, 負重依舊無悔前行)는 글을 기고하였다. 사모는 견결하게 찾고 인내하는 존재로서 자신이 목사와 결혼하여 사모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목사의 아내로서 사모는 신성한 책임을 안고 있지만, 그 뒤에는 수고와 어려움이 있으며,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피땀과 눈물도 있다. 사모들은 아내로서 남편을 잘 섬기고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잘 훈육하는 책임을 감당할 뿐만 아니라 가정과 목회라는 이중적인 부담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우수한 사모가 되기 위하여 최소한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데, 먼저 신앙적으로 교회와 신도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또한 교회와 신도들을 잘 섬기기 위해서는 가정과 자녀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목사인 남편들은 아내를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위난성 쿤밍 삼일국제교회 목사 정후이(鄭慧)는 “사모의 고독을 반드시 관심해야 한다”(師母的孤獨値得關注)는 글을 기고하여, 사모의 ‘모’(母)는 영광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같은 책임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성서에서 전형적인 사모의 유형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에녹의 아내에게서 사모와 비슷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면, 누가 에녹의 아내와 동행했을까?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300년 동안 자녀들과 가정의 중책은 당연히 아내에게 맡겨졌을 것이다. 만일 사모가 없었다면 에녹은 ‘하나님과의 동행’과 ‘자녀와 가정’, 이 둘 사이에서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흔히 교회에서 사모를 가장 고독한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모를 ‘교회의 큰 며느리’, ‘반 목사’, ‘목사의 목사’라고 부르듯이 사모에 대한 교회의 기대는 매우 높다. 그러나 사모가 봉착한 문제는 남편에게마저도 이야기할 수 없어 외로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교회와 신도들은 사모에 대해 관심하고 기도로 중보해야 한다. 사모들을 위한 전문기관의 심리상담도 필요하다.
쓰촨성 더양시 작가연맹회원 둥위안징(董元靜)은 “돕는 자, 마땅히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幇助者, 應得更多的關愛)라는 글을 기고하였다. 사모에게 주어진 ‘돕는 자’(幇助者)라는 이름은 영광스러운 이름일 뿐만 아니라 힘겹고 어려운 선택이기도 하고, 변함없는 끈기와 감당을 뜻한다고도 말하였다. 하나님이 여자를 만드실 때 이미 돕는 자로 만드셨다.(창 2:20, 22)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사모는 언제나 돕는 자이다. 하지만 언제나 남편을 드러나게 하고 자신은 남편 뒤에서 묵묵히, 그리스도의 영광 속에 자신을 감추어야 하는 존재이다.

2019년 9월호–사설 집회처소(私設聚會點)
9월호 토론코너의 주제는 “사설 집회처소를 어떻게 연합하고 인도할 것인가?”(私設聚會點, 如何團結引導?)이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중국교회에는 일부 미등록 사설 집회처소가 장기간 존재해왔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경배드리고 복음을 간증하며, 사설 집회처소를 규범화하고 최대한의 단결을 촉진하며, 악의적인 사람들의 이단사교 전파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주제를 가지고 편집부는 5편의 글을 실어 집중 토론하였다.
푸젠성 기독교 삼자 주석, 푸젠신학원 원장 웨칭화(岳淸華)은 “기본을 공고히 하고 건강하게 하며, 효과적으로 인솔하자”(固本强身, 有效帶領)라는 글을 기고하여, 교회 내부를 강화하고 관리를 규범화하여 조화로운 교회를 이루어나가고 신도들을 단결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첫째, 기독교 양회 체제에 있는 교회들을 잘 운영하는 것이 사설 집회처소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선결 조건이다. 삼자 원칙을 준수하고, 교회 자체의 전반적인 수준을 향상시키며, 건강하고 질서 있는 교회로 발전해야만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교회가 되고, 더욱 많은 신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 둘째, 나라와 교회를 사랑하는(愛國愛敎) 인재들을 양성하는 일은 사설 집회처소의 신도들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기초이다. 셋째, 사설 집회처소를 맑고 깨끗하게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1) 애국단체와 기초교회의 역할을 발휘하여 사설 집회처소 신도들을 쟁취하고, 정책 법규로 지원과 격려를 보장해야 한다. (2) 소통과 이해를 통해 성격이 다른 사설 집회처소에 대해 서로 다른 대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3) 후속 조치와 서비스를 잘하여 지속적으로 단합한 사설 집회처소들과 소통하여 오해를 해소하고 단결을 증진하며, 법률과 법규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사설 집회처소의 발전을 도와야 한다.
쟝쑤성 난징시 기독교협회 회장 리란청(李蘭成)은 “사설 집회처소들을 단결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團結私設聚會點,我們可以做什么?)라는 글을 기고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면의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법을 배우고 준수하며, 관련 부서와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현지 기독교 사설 집회처소의 분포 상황과 유형들을 파악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둘째, 신도들을 심방하며 ‘만남과 지도의 목회’를 실행해야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1) 관련 부서와 양회와 소통하고 협조하고, (2) 목자의 마음으로 심방하고 위로하고 인도하며, (3) 심방이 이루어진 후에는 관련 부서들과 교류, 공유하여 중보기도와 지지를 받아야 한다. 셋째, 사설 집회처소의 신도들을 훈련반, 학습반에 방청하거나 참여하게 하여 애국애교(愛國愛敎), 준법준수(遵紀守法)의 예를 보여주어야 한다.(롬 13:1) 넷째, 사설 집회처소의 형제자매들을 합법적인 예배처소로 인도하고 영접해야 한다. 법에 따라 등록된 교회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고, ‘사도 전승의 유일한 거룩한 공회’이며, 법률적 보호를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는 교회이다.
요녕성 다렌시 삼자 부주석 우빙(吳兵)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설 집회처소를 받아들이고 섬겨야 한다”(用愛心接納和服務私設聚會點)라는 글을 기고하여, 기독교 양회 조직은 사랑의 마음으로 교회를 이루고, 사설 집회처소 형제자매들의 생각과 의견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납하고, 일치하는 점은 취하고 차이점은 보류해야 한다. 신앙과 정치적 입장이 일치하지만 신학적으로 서로 달라 분리된 형제자매에게는 최대한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화의 통로를 만들어가야 한다. 둘째, 적극적으로 섬기며 주 안에서 연합해야 한다. 즉 영성 방면의 섬김을 제공하고, 그들의 실질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주며, 교회 목양에 적극적으로 인도해야 한다. 셋째, 정책을 파악하고 법에 따라 인도해야 한다. 종교사업의 법치화는 커다란 흐름이고 국가가 전반적으로 관리의 법치화를 탐색하고 있기에 사설 집회처소의 단결과 인도는 기독교 양회 조직이 반드시 관련 정책 법규에 따라 전개해야 할 사업이다.
진링협화신학원 동문 장위앤라이(張遠來)는 “사설 집회처소의 단결사업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如何做好私設聚會點的團結工作?)라는 글을 기고하여, 모범 사례로 주목시키고 관계 형성으로 연결하며 목양으로 융합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유대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점’(點) 조직은 교회 관리와 목양에 필요한 수단이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 조직은 이단의 침습으로 인해 신앙의 혼란, 분열의 통로가 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면에서 교회의 특징과 점 조직의 특성에 따라 다음 세 가지 방면의 주의가 필요하다. 첫째, 근본을 견고하게 해야 한다.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목양, 즉 관리의 민주화, 재정의 공개화, 치리의 합법화, 말씀의 정통화에 집중하여 매력이 있는 교회가 되어 사설 집회처소들을 흡수해야 한다. 둘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사설 집회처소와 단결하려면 순결한 품격과 신실한 믿음, 진실한 태도, 사랑과 신앙의 열정으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셋째, 목양이 있어야 한다. 단순한 행정 관계가 아니라, 어려울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그들을 섬기고 위로하며, 성서적 해석을 제공하여야 점 조직에 대한 화합의 목양이 이루어진다.
「천풍」 잡지의 편집인 투펑(杜鵬)은 “단결 사업은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團結工作需要有的放矢)라는 글을 기고하여, 신도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신임과 용납을 얻어내는 것이 단결을 위한 불가결의 조건이라고 주장하였다. 사설 집회처소와 단결하는 것은 중국기독교회 목회자들과 신도들 공동의 책임이다. 사설 집회처소의 형성 원인을 분석하고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제기하는 것이 단결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첫째, 목양의 결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설 집회처소에 대한 관심과 목양의 부족으로 오늘날 사설 집회처소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모순과 대립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부 사설 집회처소의 존재는 교회 내부의 모순으로 형성된 것도 있고, 상처받은 일부 목회자나 신도들이 분리하여 나간 경우도 있는데, 기독교 양회 사역자들이 사랑으로 소통하고, 섬김으로 신뢰를 얻고, 인내로써 충돌을 피해야 한다. 셋째, 법에 따라 교회를 운영한다는 이념을 강화해야 한다. 각 지역의 양회는 관련 부서와 협조하여 종교장소 심사허가제도를 충실히 이행하고, 법률적으로 개인과 단체의 권익을 보호하는 동시에 법치사회의 질서도 수호해야 한다. 넷째, 사설 운영 행위를 제재해야 한다. 사설 집회처소에는 많은 신도들이 보지 못한 정황들도 존재하고 있는데, 기독교의 이름을 빌려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경우도 있고, 일부 이단들이 개설한 처소도 있으며, 일부 해외 세력들이 정치적으로 간섭하여 국가의 안전을 파괴하기 위해 세워진 처소도 있다.

2019년 10월호–목회자들의 행위 규범(상)
10월호 토론코너의 주제는 “목회자들의 행위 규범에 대하여”(議敎牧人員行爲規範)이다. 목회자의 행위 규범은 바울 서신에서 줄곧 강조되었다. 목자는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외적인 언행과 심사는 내적인 기본 소양의 표현이고, 교회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몸으로 가르치는 것이 말로 전하는 것보다 낫다”(身敎勝於言傳)라는 말은 곧 목회자는 아름다운 언행으로 영성 생명을 표현하며 복음을 간증한다는 뜻이다. 이에 편집부는 3회에 나누어 이 주제를 토론하기로 하고, 10월에서는 4편의 글을 실어 집중 토론하였다.
푸젠성 기독교 삼자위원회 부주석 겸 푸젠신학원 부원장 하오쯔치앙(蒿志强)은 “목회자의 행동과 위인은 마땅히 부름받은 은혜에 합당해야 한다”(敎牧人員行事爲人當與蒙召的恩相稱)라는 글을 기고하여, 바울의 가르침처럼 목회자들의 행함과 위인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 세운 표준에 부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엡 4:1) 첫째로 우선 겸손해야 한다. 모든 품격의 첫 번째인 겸손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며, 일상생활을 하고 직분을 수행할 때 교만해서는 안 된다. 둘째, 온유해야 한다. 셋째, 인내해야 한다. 넷째, 사랑으로 서로 관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평화로 서로 교통하고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결국 바울의 가르침처럼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는 것이다.(살후 1:11-12)
중남신학원 부원장 시오안핑(肖安平)은 “마음속에 규범을 담고 좋은 이미지를 수립하자”(規範在心中, 樹立好形象)라는 글을 기고하여, 목회자는 생활 속에서 내적 생명을 드러내고 행동으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간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요일 3:18, 벧후 1:5-7) 이를 위하여 교회에서는 제도를 수립하여 목회자들의 일상 행위 규범을 제정하고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무와 행위 규범을 독려해야 한다. 동시에 행위 규범은 내적으로 가다듬고 외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목회자의 믿음과 행위, 경건과 생활은 결부되어야 하고, 양호한 형상을 수립하여 그리스도의 모양을 삶으로 표현하여 소명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요녕성 다렌시 양회 부주석 우빙(吳兵)은 “목회자의 언행을 규범하는 것은 신성한 소명의 요구이다”(規範敎牧言行是神性呼召的要求)라는 글을 기고하여, 목회자는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신성한 말씀을 선포하고 강단 아래에서는 그 선포한 말씀을 반드시 삶으로 간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첫째, 성서가 요구하는 바이다. 성서는 목회자의 일상 행위가 어떠해야 하는지 매우 명확하게 요구한다.(벧전 5:1-4) 둘째, 성직 자체가 요구하는 바이다. 목회자는 성직자라는 신성함을 가지고 있기에 삶 속에서 반드시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셋째, 이는 또한 거룩한 요구이기도 하다.(롬 12:1)
저쟝성 항저우시 구러우교회 목사 한위(韓愈)는 “목회 생활은 마땅히 단정해야 한다”(敎牧生活宜端庄)라는 글을 기고하여, 목회자는 단정한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따르고 순종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목회자는 다음 몇 가지 방면에서 단정한 ‘모양’(樣式)이 있어야 한다. 첫째, 공공제도와 교회제도를 준수해야 한다. 목회자는 교회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또한 사회의 일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둘째, 교회 전통의 생활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 중국교회는 그 숫자나 지역적 범위가 방대하기 때문에 일부 지역적인 ‘작은 전통’들이 존재한다. 설령 명확한 성서적 근거가 없다 할지라도 성서와 교리에 위배되지 않고 교회생활과 신도들의 영성에 유익이 되는 것이라면 지속적인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롬 12:17) 셋째, 가족과 자신의 아름다운 영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딤전 3:4, 12) 넷째, 단정한 품성을 배양하는 목적의 ‘목회자 행위 규범’을 형성해야 한다. 새로 제정된 ‘중국 기독교 교회장정’의 목회 생활 규범 조항들이 각 지역별로 목회자 수칙에 기본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문영걸 | 목원대학교(Ph.D.)와 북경대학교(Ph.D.)에서 교회사와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제주반석감리교회 담임목사이며, 미도(美道)중국선교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지식계층의 기독교 이해”, “벽사위정–한중 반기독교 비교 연구”, “서광계의 조선선교계획 전말”, “6・25전쟁과 중국교회”, “조선 남감리회의 시베리아 선교(1920-1931)”, “중국 지식계층의 마르틴 루터 이해”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2019년 1월호(통권 7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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