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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19년 12월호)

 

  「복음과 세계」福音と世界 편집 동향: 2019년 8–10월호
  

본문

 

2019년 8월호–현대의 바벨탑: 반 올림픽·반 만국박람회

일본의 두 도시에서 각각 국제적 이벤트가 개최된다. 2020년에는 도쿄 올림픽이, 2025년에는 오사카 만국 박람회(이하, 엑스포)가 열린다. 편집부에서는 이러한 행사를 앞두고, 다섯 편의 논고와 한 편의 취재 기사로 이루어진 특집을 통하여 ‘땅’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 노예노동과 기술신앙의 상징인 ‘바벨탑’의 현대판, 올림픽 및 엑스포를 배척할 것을 주장한다.
아리즈미 와타루(有住航) 목사는 “혼란(balal)의 백성으로 산다: 올림픽·엑스포에 반대하는 해방신학”이라는 논고에서 바벨탑이 상징하는 것은 ‘하나의 말’로 사람들을 옭아매어 ‘하나의 백성’으로 관리하는 것이며, 바벨탑의 현대판이 올림픽과 엑스포라고 말한다. ‘대접’(일본어: 오모테나시)이나 ‘최첨단 기술’이라는 ‘하나의 말’ 아래에 국가주의와 경제성장을 향한 꿈을 불러일으켜서 사람들을 ‘하나의 백성’으로 만들고 관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리즈미는 바벨탑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사람들의 말을 혼란(balal)시켜서 흩뜨린 것은 벌을 내린 것이 아니라, 모두를 하나로 수렴하여 이루어지는 지배로부터 해방시킨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하며, 우리가 해방을 추구하는 혼란의 백성이 되어서 ‘현대의 바벨탑’에 저항해야 함을 호소한다.
사회사상사 및 노동운동사 연구자인 이리에 키미야스(入江公康)의 논고 “‘고대의 폐허로서의 근대’의 폐허: 보이콧 2020”은 올림픽을 향한 빈정거림으로 일관된 글이다. 이리에에 따르면, 나치는 고대 로마를 모방한 베를린을 만들려 했는데, 그것은 폐허의 영원성에 투영되어 있는 권력을 가지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현재 도쿄에는 올림픽 스타디움을 비롯한 대규모 건축물들이 세워지고 있다. 이리에는 거기에서 고대 로마에 대한 동경을 읽는데, 그것은 영원성이 없는, 한때의 폐허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리에는 이권이 얽힌 거액의 자금이 사용되는 올림픽을 비판하고, 그 자금을 ‘폐허’인 세계유산, 그리고 ‘세계유산’인 ‘모든 사람들’의 기본 소득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 번째 논고 “참가하지 않을 용기: 오사카 엑스포를 둘러싼 단편적 고찰”에서 오사카부립대학 교원 사카이 타카시(酒井隆史)는 공원 등 공적 공간에서 큰 행사를 개최하고, 이를 기회로 공적 공간을 상업 공간으로 전환하여 사유화한 뒤 보다 큰 개발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 네오 자유주의적 정책임을 설명하며, 오사카 엑스포도 그러한 정책의 흐름 위에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최근 일본이 주최하는 거대 행사에는 그 목적과 이념이 아닌 ‘경제 효과’라는 본심이 당당히 드러나 있고, 오사카 엑스포는 카지노 및 리조트 개발과 결합시키는 형태로 경제적 성장에 대한 기대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성장 논리에 근거한 지배적 게임에 참가해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데, 그러한 게임에 참가하지 않을 권리도 확보해야 한다고 사카이는 주장한다.
논고 “그 빛에 주의하라!: ‘참가하는 것’에 의의가 있을 것인가?”에서 오츠마여자대학(大妻女子大學) 교수인 다나카 토우코(田中東子)는 여성 운동선수들의 올림픽 혹은 스포츠 참가 방식의 역사적 변천에 주목한다. 다나카에 의하면, 근대 초기 올림픽에서는 여성 선수들을 배척했지만 여성 선수들의 의지나 페미니즘 운동 등으로 점차 참가율이 증가하였다. 또한 여성 선수들에 대한 표상(表象)도 ‘여성성’의 강조에서 운동선수로서 정당한 취급을 받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전 지구적 자본주의하에서 여성 운동선수들은 미디어 속 성공의 표상으로 빛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올림픽과 카지노 엑스포는 현대의 바벨탑인가?: 과학기술과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라는 제목을 붙인 논고에서 고베대학 교수 츠카하라 토우고(塚原東吾)는 과학사 연구자의 시점에서 올림픽과 엑스포를 고찰하며 프로테스탄트 신학이 답해야 할 과제를 제시한다. 그 과제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이론화하는 것, 국가와 상업주의와 스포츠의 관계 혹은 자본이나 카지노, 스포츠나 인간 존재 자체의 ‘악’과의 관계를 현대 언어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마지막 글 “생활 against 올림픽: 거리의 예술가 이치무라 미사코가 본 경치”는 노숙 생활을 하는 예술가 이치무라 미사코에 대한 취재를 정리한 기사이다. 이치무라는 도쿄 올림픽 개최가 결정되면서부터 관리인들이 공원에서 노숙자를 밀어내기 시작하였다고 말한다. 그것은 평창을 포함한 전 세계 올림픽 개최지에서 발생하는 일이며, 성화 봉송 등 올림픽 반대자 간의 관계도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예술 작품 등을 가져와 저항을 계속하는 이치무라는 저항 수단에 대해서, 강함을 지향하면 자신도 배제 구조에 가담하게 되기 때문에 약한 채로 투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9년 9월호–‘오키나와’라는 질문
9월호 특집은 미군 기지가 있는 오키나와에 대한 문제를 다시 살펴보자는 다섯 편의 글로 구성되었다.
일본학술진흥회 해외특별연구원 모리 게이스케(森啓輔)는 논고 “식민지 통치성에서 오키나와 및 자기 자신을 응시하기 위해서”에서 이 글의 목적이 미군 기지와 관련하여 자유를 제한당한 오키나와를 거울로 삼아,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실천하고자 할 때 유용한 “현상을 진단하기 위한 ‘연장궤’를 폭넓게 제시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모리가 다루는 ‘연장궤’는 ‘식민지 통치성 연구’이다. 거기에는 세 가지 흐름이 있는데, 모리는 어떤 대항(혹은 저항)의 실천적 모습은 그것이 일어난 특정한 영역에서의 통치 실천과 구체적으로 관련지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이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중요한 점이라고 말한다. 또한 기지 문제를 둘러싼 법이나 의회 정치로 이루어진 통치뿐만 아니라, 보다 광의의 정치 과정에서 이루어진 구체적인 통치 과정을 살펴보는 관점에서 현재의 오키나와를 응시하는 것이 식민지 통치성에서 오키나와와 자기 자신을 보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논한다.
모리와 마찬가지로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인 도이 토모요시(土井智義)는 “외국인 문제와 오키나와 사회”라는 논고에서 우선 미국 통치기의 오키나와(류큐)에서, 그리고 오키나와 시정권이 일본에게 반환(1972년)된 시점에서 어떻게 오키나와의 ‘외국인’(비류큐인) 범위가 변화되었는지를 논하였다. 법적인 구분으로 살펴보면, 미군 통치기에는 ‘미군 관계자/류큐인/비류큐인(외국인)’으로 나누었으며, 시정권 반환 후에는 ‘미군 관계자/일본 국민(오키나와 현민)/재일외국인’이라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이는 기본적으로는 세 부류의 편성이 유지된 것인데, 미국의 패권 아래에서 주민의 생활과 복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외국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배제하는 제도와 감성이 이후에도 유지되고 있다고 논한다.
사회사상사 연구자인 오오하타 린(大畑凜)의 논고 “진압과 회귀: 반혁명으로서의 현재”는 일본의 논단에서 지적 헤게모니를 형성하는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岸政彦)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전개된 글이다. 오오하타는 기시가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의 불평등한 관계를 오키나와인과 일본인(내지인)의 이분법적 대립 관계로 환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오하타는, 오키나와 사회에는 이 두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이분법으로는 오키나와 사회를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분법은 정부가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괴멸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입하는 인종적 분단선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그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미군기지의 일본 본토 이전론과 공범 관계를 갖게 되며, 기지를 ‘현실’로 감수함으로써 ‘진압의 프로세스’(반혁명)에 가담하게 된다고 말하였다. 오오하타는 현장에서 생기는 갈등을 하나의 논점으로 환원한 적이 없었던 지난 사반세기에 걸친 반기지 투쟁의 역사를 마주보는 것만이 진압의 프로세스에 말려들지 않고 이상(理想)과 미래를 바라보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오키나와대학 교원인 나리사다 요우코(成定洋子)는 논고 “오키나와 여성을 둘러싼 문화 표상의 정치학”에서 세 가지 논의를 중심으로, 본질주의 및 주체 형성을 둘러싼 오키나와 여성의 문화 표상과 관련된 정치학을 검토한다. 우선 나리사다는 ‘종교에서 여성의 우위’성을 둘러싼 문화 표상을 사례로 들면서, 그것이 비역사화·본질화됨으로써 현대적인 성차별 문제가 왜소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오키나와 종교를 ‘본질주의를 넘어선 여성지배형 종교’라고 표현한 세리드(Susan Sered)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오키나와 여성은 단지 본질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탈본질화됨으로써 본질화되었음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피해자·희생자로서 본질화되어 온 오키나와의 방직 여공을 노동 주체로서 인식한 히가(比嘉倫子)의 연구를 언급하며 히가가 여공 경험을 종속 또는 저항의 틀에 가두어 본질화하지 않고, 여공이 자유의지를 가진 노동 주체이면서 차별과 지배를 당하는 존재였다는 이중 주체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 점에 주목한다. 나리사다는 어떤 대상의 표상은 그것을 본질화하지 않고, 복잡한 관계를 그것이 놓인 문맥 속에서 이해해야만 한다고 결론 짓는다.
논고 “폭력에 의지하지 않는 저항의 회로를 열다: 메도루마 슌의 『눈 안쪽의 숲』을 둘러싸고”에서 오키나와국제대학 준교수 무라카미 요우코(村上陽子)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저항의 회로를 어떻게 열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무라카미는 성폭력 문제를 깊이 있게 고찰한 오키나와의 작가 메도루마 슌(目取眞俊)을 주목한다. 무라카미에 의하면, 메도루마 문학에서는 미군이나 일본에 폭력적인 저항을 시도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한편, 폭력적인 저항으로는 구제되지 않는 아픈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등장한다. 무라카미는 후자의 존재가 폭력의 유혹을 억제하는 역할을 짊어지고 있다고 본다. 피해자의 아픔에 입각해 소리를 지르면서, 비폭력적인 저항을 형성해가는 것 외에는 저항의 회로가 없다는 것이다.

2019년 10월호–한반도와 일본 사이
편집부가 네 편의 논고와 한 편의 취재 기사로 구성된 10월호 특집을 기획한 것은 올해 3월이었는데, 그 시기 한반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과 언론의 보도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후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되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화해와 평화 구축을 단념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편집부는 설명한다.
리츠메이칸대학(立命館大學)에서 가르치는 구라하시 고우헤이(倉橋耕平)는 논고 “언어의 배치를 보다: 역사수정주의와 아이치 트리엔날레 사건을 둘러싸고”에서 역사수정주의가 취하는 언어의 전략을 지켜보는 것이 중요함을 논하고 있다. 올해 개최된 국제적 현대예술 축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기획 중 하나인 <표현의 부자유전(不自由展)·그 후>에서는 일본군 위안부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되었는데, 여기에 협박을 포함한 각종 항의가 쇄도한 결과 전시가 중지되었다. 구라하시는, 현 정부가 채택한 역사수정주의의 전략은 어떠한 역사적 사실에 관하여 “확정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등의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그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의 사고를 정지시켜 서서히 자신들이 하는 말의 영향력을 널리 퍼뜨리는 방법이며, 이번 사건에서는 ‘역사의 부정’이라는 사건의 본질이 모호해지고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로 논의가 왜소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수정주의 전략이 승리를 얻고 있다고 주장한다.
논고 “위안부를 망각시키는 식민지주의와 포스트 페미니즘: 『제국의 위안부』, 스피박, 포스트 콜로니얼”에서 나고야시립대학(名古屋市立大學) 교원 기쿠치 나츠노(菊地夏野)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드러난 박유하의 주장과 일본 아베 정권이 진행하는 여성 활약정책 등을 비판한다. 기쿠치는,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 병사가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는 박유하의 주장은 권력 관계 및 성폭력 피해를 무효화하는 것이며, 성폭력에 대한 사회의 이해를 뒤틀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아베 정권의 여성정책에 관하여 ‘평등정책’이 아니고, 여성차별적인 고용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이루어지는 ‘경제정책’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박유하의 주장이 페미니즘으로 오독되는 것과 아베 정권의 여성정책을 여성에게 다정하다고 오독하는 일본의 포스트 페미니즘적 상황이 관련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위안부 피해 여성의 목소리가 묻히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쿠치는 성폭력 피해를 마주하고, 국가와 식민주의의 억압에 대하여 입장이 다른 사람과도 연대를 모색하는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그러한 페미니즘의 가능성을 위안부 피해자와 그 지원운동에서 찾고 있다.
일본기독교단에서 파견되어 서울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나가오 유키(長尾有起)는 “일본과 절망과 나와 한국”이라는 논고에서, 일본인이 생각하는 한국의 반일 감정과 한국인이 실제로 가진 반일 감정이 엇갈림을 지적한다. 나가오는, 한국의 반일 감정은 일본인이 아니라 아베 정권에 대한 정당한 분노의 표명이며, 일본이 생각하는 한국의 반일 감정에는 전쟁 가해자적 관점이 결여되어 있고, 인종차별적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나가오는 인종차별이 남아 있는 것은 식민주의 의식이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 책임은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나가오는 <표현의 부자유전> 전시가 중단된 일에 깊은 절망을 느낀다고 말했으며, 그 절망을 공유하는 동료가 있다면 한반도 사람들과 다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오늘날의 현상을 함께 타파하자고 일본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일본 국적의 재일 코리안 3세 가네무라 시온(金村詩恩)은 “나는 저 가운뎃점에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논고에서 앞선 세 편의 글과는 달리, ‘재일 한국·조선인’이라는 존재에 초점을 맞춘다. 제목에서 말하는 ‘가운뎃점’이란 ‘재일 한국·조선인’이라는 단어 속의 ‘·’을 가리킨다.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그리고 4·3사건으로 농락당한 가족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아직 그러한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네무라는 남북한의 대립 관계가 반영된 ‘재일 한국·조선인’이라는 표현 속의 ‘·’에, 그 ‘어느 쪽도 아닌’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과 조선인 중 어느 하나에 속할 것을 재촉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미완의 2·8 독립선언: 재일본한국YMCA에 묻는 100년째 질문”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기사는 2·8 독립선언이 행해진 재일본한국YMCA를 방문하고 쓴 편집부의 취재 기사이다. 그곳에 설치된 ‘2·8독립선언기념자료실’의 다즈케(田附和久) 실장은 현재 한일관계가 악화된 이유가 일본 측이 역사를 마주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2·8 독립선언이 당시 식민 종주국의 수도인 도쿄에서 발표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역사를 마주보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편집부는 이를 언급하며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민주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후 세계 평화와 인류의 문화에 공헌할 것을 선언한 2·8독립선언에 담긴 윤리적 지성이야말로 현재 일본 정부에 없는 요소라고 지적한다.


이상훈 | 재일 코리안 3세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했다. 박사학위 논문은 “기독교 선교를 위한 디아스포라의 비판적 아이덴티티 형성”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9년 12월호(통권 7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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