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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한희철 목사의 내가 친 밑줄 36
교회와현장 (2019년 12월호)

 

  인자는 다 보인다
  

본문

 

오만데 / 한글이 다 숨었는 걸
팔십 넘어 알았다
낫 호미 괭이 속에 / ㄱ ㄱ ㄱ
부침개 접시에 / ㅇ ㅇ ㅇ
달아 놓은 곶감에 / ㅎ ㅎ ㅎ
제아무리 숨어봐라
인자는 다 보인다
- 정을순, <숨바꼭질>


어릴 적 숨바꼭질을 생각하면 지금도 기억 속에서는 흑백의 영상이 재생된다.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 그럼에도 우리가 심심하지 않았던 것은 얼마든지 어울릴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놀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먼지가 풀풀 나는 동네 마당에는 지는 해가 아까울 만큼 아이들의 웃음과 함성이 가득했다. 더 놀고 싶은 발길을 아쉬움으로 돌리게 했던 것은 지는 해보다도 밥 먹으라 외치는 엄마들의 목소리였다.
우리들의 놀이 중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숨바꼭질이었다. 술래가 전봇대에 머리를 대고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를 외친다. 놀이에는 그런 너그러움이 있다. 친구들을 찾아내야 할 술래가 오히려 꼭꼭 숨으라고 외친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술래가 외치는 사이, 나머지 친구들은 세상에서 사라지듯 자기만이 아는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때만큼 가슴에서 뛰는 심장소리를 크게 들은 적이 얼마나 될까? 그때부터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일밖엔 없다. 들킬 때까지. 아무리 찾아도 더는 못 찾을 때 술래는 항복하듯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쳤는데, 그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이 너무 지루하거나 싫어서, 한번쯤은 술래도 해보고 싶어서, 차라리 들켰으면 바랄 때도 있었다.
어쩌면 인생(人生)은 숨바꼭질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마땅히 찾아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인생의 해가 지는데도 아직 친구를 찾아내지 못한 술래처럼 찾을 걸 찾지 못할 때도 있고, 술래가 날 찾질 않아 혼자만의 공간에서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나 망설일 때도 있다. 들키고 싶은 작은 돌멩이처럼 말이다.
위의 시 <숨바꼭질>은 정을순 할머니(83세)가 쓴 글이다. 할머니는 경남 거창군청 문해(文解)교실을 통해 여든 넘어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연필도 안 잡아보고 80년을 보낸 할머니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한글을 배우니 그야말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이다.
왠지 할머니는 술래 같다. 그동안 말로만 주고받던 한글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글을 배웠어야 마땅한 세월은 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너무 늦었다 싶지만 그래도 찾아낸 한글, 할머니는 비로소 술래에서 벗어난다. 할머니 눈에는 세상 ‘오만데’에 한글이 가득하다. 80년 이상을 술래로 지낸 할머니가 찾아낸 한글이니 얼마나 세상이 눈부실까. 모든 순간이 막 꽃봉오리 열리는 희열에 가깝겠다 싶다.
‘인자는 다 보인다’는 할머니의 고백이 우리 고백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상 속에 담긴 하늘의 뜻이 비로소 보인다면. 비로소 술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 한희철 목사님의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울림 있는 글 보내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부

 
 
 

2019년 12월호(통권 7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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