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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한희철 목사의 내가 친 밑줄 35]
교회와현장 (2019년 11월호)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같이
  

본문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나의 갈증에 바다를 주지 마세요,
빛을 청할 때 하늘을 주지 마세요,
다만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를,
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같이,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같이.
- 올라브 하우게,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몸과 마음이 젖은 솜 같이 무겁고 눅눅할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며칠 사이로 연이어 치르는 장례, 몸의 피곤함보다는 마음의 허전함이 더 힘든 일이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함께 지내던 교우를 떠나보내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이어지고 있는 가을 심방도 만만한 일정이 아니다. 교우들의 가정 가정을 찾아가 예배를 드린다. 갈수록 교우들 가정을 찾아가는 것이 드문 일이 되고 있지만 부임하여 처음으로 갖는 심방, 처음을 핑계 삼아서라도 그러고 싶었다. 교우들의 삶의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기도의 제목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낀다.
노(老)권사님의 입관예배를 드리고 돌아와 책상에 앉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마음이 그런 것인지 몸이 그런 것인지 으슬으슬 한기마저 느껴진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래선 안 되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신을 차릴 겸 커피를 타며 음악을 틀었다. 지네트 느뵈의 바이올린 연주, 풋풋하지만 당차고 자유롭다. 커피 잔을 들고 책장 앞에 섰다. 책장 앞에 선다고 모든 책이 말을 걸어오는 것은 아니다. 달리는 창밖으로 풍경이 지나가듯, 무심하게 지나간다. 분명 마음에 닿았던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새롭게 말을 걸어오는 제목들은 의외로 드물다. 특별한 일 아니면 ‘나를 깨우지 마세요’, 단잠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마침 지친 나를 안다는 듯 ‘원한다면 나와 이야기를 나눌래요?’ 하며 말을 걸어오는 책이 있었다.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였다. 전부를 달라는, 전부를 주겠다는 투의 책들도 아주 없지 않은데, ‘내게 전부를 주지 마세요’ 하는 말은 나직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다가왔다. 올라브 하우게의 시선집을 다시 꺼내게 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노르웨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노르웨이의 국민 시인으로 자리매김이 된 사람, 책을 열자 하우게의 흑백사진이 먼저 반긴다. 마치 한 그루 고목의 그루터기 같다. 책장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있는 모습이 말을 잊은 침묵 자체 같다. 침묵으로 빚은 글을 들려주듯 사진 옆에 적혀 있는 시가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였다.
작곡가 그리그의 작품 <페르귄트>로 익숙할 뿐, 노르웨이는 내게 미답의 땅이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면 그리움으로 찾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 그럴까, 시의 한 구절 한 구절이 그 땅을 걸어가는 것처럼 다가온다. 빙하의 땅을 천천히 걸어가는 것 같다. 그러던 중 마지막 구절이 마음을 맴돈다. 마음 주변을 서성인다. 더는 걸음을 옮길 수 없을 만큼의 절경 앞에 선 느낌이다.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처럼, 내 목마름을 알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 된다는 것은 국그릇에 한 통의 소금을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무미건조한 세상을 향해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같이 그렇게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2019년 11월호(통권 7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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