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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19년 11월호)

 

  신학교육의 중국화에 대한 담론
  

본문

 

* 중국교회는 오늘날 전례 없는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 그중에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장 두드러진 이슈는 ‘기독교 중국화’이다. ‘기독교 중국화’는 많은 주제를 포함하지만, 신학의 중국화는 가장 중요한 대목 중 하나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독교사상」은 진링협화(金陵協和)신학원 부교수 얜시위(嚴錫禹)의 짧은 글을 소개한다. 이 글은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와 중국기독교협회, 즉 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천풍」 2019년 2월호에 실려 있다. 「천풍」 2019년 2월호 특집 주제는 ‘중국교회의 신학교육 발전’이며, 「기독교사상」 7월호에서 간략히 소개한 바 있다.
이 글은 필자와 연락이 되지 않아 전문이 아닌 요약된 형태로 소개한다. 독자 제위의 양해를 구한다. 번역은 문영걸 소장(미도중국선교연구소)이 맡았다. - 편집자 주



신학교육이란
국가주석 시진핑은 “교육은 인류의 오늘을 결정하며 동시에 미래도 결정한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중국 기독교 신학교육에 적용되는 것이다. 기독교 중국화를 전폭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오늘, 신학교육은 필연적으로 풍향계와 엔진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중국화란 무엇인가? 기독교 중국화는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가? 기독교 중국화의 목표는 어디에 있는가?
신학교육의 목적은 한편으로는 중국 전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신학을 창출하는 것이다. 중국의 신학교육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바는 삼자(三自)원칙, 자주적인 학교운영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전제하에서 토착적인 신학을 성장시키는 교육이다. 이러한 교육을 위하여 2,000년 동안의 세계 기독교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동시에 중국의 역사, 문화, 전통 및 국민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자가 없으면 신학교육이라고 말할 수 없고, 후자가 없으면 식민적인 신학교육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오늘날 중국의 신학교육을 돌아보면, 서양을 중시하고 중국을 경시하는 현상이 아직도 보편적이다. 최근 신학교들에 변화가 생겼는데 그것은 곧 중국의 우수한 전통문화들이 신학교육 강당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목들은 아직까지는 전통문화 지식에 대한 이해에만 국한되어 있다. 신학교육의 핵심 과목들은 아직까지는 중국교회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신학교육은 신학적인 동시에 교육적인 것이다
1980년대에 교회가 회복되고 목회자가 극심하게 부족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중국교회는 신학교육을 발전시키기 시작하였다. 그 목적은 “거둘 곡식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적은” 중국교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었다. 때문에 신학교들이 회복된 이후 신학교육은 목회자 훈련을 기본 패턴으로 삼았는데 아직도 그 패턴을 돌파하지 못하였다.
중국의 신학교육은 여전히 교회 전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을 핵심 직능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직업양성’을 신학교육의 최대 목표로 삼고 신학교육이 감당하는 본토신학적 직능을 소홀히 한다면, 이는 곧 신학교육의 본질을 깊이 연구하고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뿐만 아니라 신학교육의 중국화 추진도 방해할 것이다.
교육은 단지 지식의 전달에 그치지 않는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신학교육도 단지 신학적 지식의 전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바는 신학교육이 독립적인 사유능력을 구비하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 체제를 인정하며, 진취심이 있는 일꾼을 더욱 많이 양성하라는 것이다.

중국 신학교육의 이념을 발전시켜야 한다
교육을 전제로 한 신학은 토착적일 수밖에 없고, 그 목적은 중국교회의 실천에 부응하고자 함이며, 중국 신도들의 영성 경험을 한데 묶고, 중국교회의 발전 궤적을 돌아보는 것이다. 만약 신학에 본토적인 요소들이 빠져 있다면, 이런 종류의 신학은 단지 공중누각에 불과하고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추상적인 이념에 불과하다.
서양신학은 그 역사가 유구하고, 사상과 체계가 방대하며, 천태만상을 포괄하고 있어 동양의 학자들로 하여금 동경하게 만든다. 하지만 신학교육 종사자라면 이러한 신학들이 모두 그 당시 그 현지 교회의 실천 문제에 대응하여 생겼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설명하는 바는, 신학이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고 신학이 주체가 아니며 교회야말로 주체라는 것이다.
중국 신학교육의 최종 목적은 토착적 신학을 창출하고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신학교육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양신학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해야 하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지닌 특징을 투철하게 이해해야 하며, 현대사회의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고, 성서 원전을 오늘날 중국교회의 생존 환경에 놓고 읽어야 하며, 그리스도 정신으로 하여금 현대 중국에서 입각할 토양을 찾게 해야 한다. 신학교들은 교과목을 설정할 때 상당한 과목들을 본토 문화를 학습하고 현실문제에 대응하는 데 배당해야 한다.
물론 신학교육의 중국화는 장기적인 명제이고 한번에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신학적 사고와 신학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중국교회를 마음에 품으며 중국이 처한 사회적 현실에서 이탈하지 않고 중국의 전통문화에 입각하여 변함없는 길을 견지해간다면, 반드시 세계교회 신학이라는 정원에서 중국신학의 꽃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11월호(통권 7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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