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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아시아 기독교] 시리아 교회와 아시아 07
교회와현장 (2019년 10월호)

 

  4세기 시리아 교회의 시인 신학자 에프렘
  

본문

 

성서 해설자, 성령의 하프, 성(聖) 에프렘은 느치빈(니시비스)에서 태어나 거기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성 요셉과 성 아브라함의 제자가 되었다. 주님이 오신 지 363년이 되는 해에 그는 우르하이(에데사)로 왔다. 그는 미므레(‘대구 시’)와 마드로쉐(‘운율 시’)와 수기요토(‘대화 시’)를 지었다. 그리고 브나트 키요모(‘언약맺은 아들들’)와 여성들, 그리고 남녀 동정(童貞)들을 가르쳤다. 그는 우르하이에서 죽었다.(Ish・aq Armalat)1

시리아 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에프렘(Ephrem Syrus, 303-373)을 들 수 있다. 지난 9월호에서 소개한 4세기 초 페르시아의 주교 아프라핫(Aphrahat), 그리고 앞으로 소개할 5-6세기 신학자 세룩의 야아쿠브(Ya’qub of Serugh, 451-521)와 함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토양에서 순수하게 아시아 신학을 전개한 신학자가 바로 에프렘이다.2 1-2세기의 문헌들을 살펴보면 그리스어 전통의 그리스도 교회의 영향이 시리아 교회에서 많이 감지되는 것이 사실이나, 이들은 그러한 영향을 받지 않은 신학자들로 알려져 있다. 지난 6월호에서 소개한 2세기 시리아 교회의 첫 노래집 『솔로몬 송가』와 7월호와 8월호에서 소개한 『도마행전』이 시리아어로 쓰여진 초기 시리아 교회의 작품이지만, 이들 작품이 그리스어로 번역됨과 동시에 널리 유통되었다는 것은 시리아 교회가 그리스어 전통의 그리스도 교회와 밀접하게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프렘은 당시 희랍의 영향하에서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토양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아시아 신학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는 신학자이자 동시에 대구법(對句法)을 사용하여 수많은 시를 쓴 시인이기도 하다.

에프렘의 생애와 저작
에프렘은 시리아 교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신학자이지만, 그는 ‘에프라임’(Ephrayim) 혹은 ‘아프렘’(Aphrem)이라고 불릴 만큼 명확한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태어난 해도 정확하지 않으나, 대략 4세기 초 터키 동남부 니시비스(Nisibis)에서 태어나서 생애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4 에프렘이 여러 주교들을 도와 일했을 교회의 세례단은 지금도 니시비스에 남아 있다.
에프렘이 태어난 니시비스는 당시 느치빈(Ns·ibin)이라고 불렀으며 현재는 누사이빈(Nusaybin)이라 부른다. 니시비스는 당시 로마제국의 동쪽 끝에 있었고, 지금의 이란과 이라크를 지배하던 페르시아 사산제국 편에서 보자면 서쪽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5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제국 내 기독교인 보호를 의무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적국인 페르시아에 있는 시리아 교회 교인들을 보호하고자 기독교인들을 잘 대해달라는 편지를 사산제국에 보내기도 했다. 그러자 당시 사산제국을 다스리던 샤푸르 2세(ShapurⅡ, 309-379)는 이것을 내정간섭이라고 선언하고 제국 내 기독교인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등 교회를 박해하였다. 심지어 샤푸르 2세는 교회를 파괴하는 일을 일삼았는데, 이것을 로마와 싸우는 한 방식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갈등을 빚은 두 제국은 이 문제를 계기로 평화협정을 맺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숨을 거두고(337년), 샤푸르 2세는 로마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338년에 전략적 요충지인 니시비스를 공략하여 함락시키고자 하였으나 실패하고 만다. 이후 샤푸르 2세는 346년과 350년에도 그곳을 차지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363년, 결국 로마의 황제 율리아누스를 전투에서 죽이고 이 도시를 차지한다.
바로 그해에 니시비스에 있던 모든 시리아 교회의 교인들은 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져 있는 시리아 교회의 중심지 우르하이(에데사)로 이주한다. 이때 에프렘도 함께 그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샤푸르 2세의 박해와 얽혀 있는 니시비스에 대한 추억을 『니시비스 찬가』에서 노래한다. 그리고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을 우르하이에서 보내면서 무수한 시를 집필한다. 또한 당시 우르하이에 번성하던 아리우스주의자들이나 마니교 등과 같은 이단들을 공격하는 『반(反)이단 찬가』도 썼다. 그는 약 300만 행의 시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전체 저작 가운데 약 90%에 해당한다.
그는 특별히 정교한 운율을 맞추어 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시 형식은 고대 수메르 시대부터 성서를 통해 메소포타미아에 전해 내려오는 전형적인 대구법을 사용하였다. 이런 면에서 수많은 그의 시는 아시아 신학의 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시리아어로 쓴 그의 시는 장르상 ‘마드로쉐’(madroshe)라고 부른다. 또한 그는 산문도 운을 맞추어 많이 썼는데 이러한 산문을 장르상 ‘미므레’(mimre)라고 부른다. 특히 그의 시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후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붙여 내놓은 시도 엄청나게 많았다.
지금껏 전승된 그의 시는 여러 묶음으로 전해 내려온다.6 이 가운데 (1) 『성탄 찬가』, (2) 『금식 찬가』, (3) 『니시비스 찬가』, (4) 『왕의 신부 찬가』, (5) 『교회 찬가』, (6) 『동정(童貞) 찬가』, (7) 『신앙 찬가』, (8) 『반(反)이단 찬가』, (9) 『낙원 찬가』가 대표적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찬가도 있는데, 이수민 박사가 역주한 『마르 에프렘의 낙원의 찬가』(2010)가 그것이다. 이 책은 시리아어가 함께 실려 있는 『낙원 찬가』의 유일한 한국어 비평 편집본이다. 에프렘은 또한 『창세기 주해』와 『출애굽기 주해』와 같은 성서 주해도 썼다. 그리고 지난 3월호에서 소개한 시리아 교회의 연합복음서 『디아테사론』의 주해도 썼다.

에프렘의 신학
에프렘은 조직적으로 그의 신학을 서술한 적이 없다.7 그의 신학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하느님이 지으신 피조물 곧 자연을 바라보며 그분의 신비를 읽는 창조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신비’(로조, ra-za-’)라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말은 시리아어에서 ‘상징’(mysterium)나 ‘예형’(typus)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8 세상의 온갖 피조물은 그분의 상징이고 신비이며 예형9이라는 것이다.

그대 눈 돌리는 곳 어디든 / 거기에 그분의 신비 있어라
그대 읽는 것 무엇이든 / 거기에 그분의 상징 있어라 (『동정 찬가』 20.12)


여기서 ‘눈 돌리는 곳’은 자연을 가리키고, ‘읽는 것’은 성서를 말한다. 자연과 성서 어디를 보고 읽든 그분의 상징을 찾을 수 있다는 자연신학이다. 동시에 그의 신학은 성서신학이다. 상징(또는 신비)이라는 렌즈로 무수히 성서를 인용하며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구약은 신약의 예형이다. 에프렘에게 구약 속의 모든 사건은 메시아를 넌지시 말하는 예형이다. 물론 이것은 신약에 이미 들어 있는 내용이지만 에프렘은 이 관점으로 구약과 신약을 잇는 성서신학을 더 발전시킨다.

찬양 받으소서, 자비로우신 분이여! / 낙원 옆에 있는 생명나무
그리로 가는 길 막고 있는 칼을 / 보고 계신 이여!
그분은 오셔서 상처 입은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리하여 / 자신의 옆구리를 여시어
낙원에 이르는 길을 여셨습니다. (『성탄 찬가』 8.4)


이렇게 구약과 신약은 그의 노래 속에서 하나가 된다. 창에 찔린 메시아의 옆구리에 난 상처는 낙원에 이르는 길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벌어진 십자가는 바로 생명의 십자가이다. 다음과 같이 십자가는 ‘요셉의 뼈’에서 예형으로 이미 등장한다.

누구든 광야에서 [요셉의] 뼈에 닿는 자는 부정하오
모세는 이렇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 뼈는 그를 부정하게 하지 않았다
사십 년 동안 뼈는 진영 안에서 [광야를] 함께 돌아다녔다
교회의 예형으로 그렇게 묘사된 것이다
그렇게 날마다 모든 이에게 선포되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의 죽음이–
진영에서 함께 [광야를] 돌아다닌
바로 생명의 십자가를 말한다 (『니시비스 찬가』 48.6)


진영 안에서 40년 동안 광야를 돌아다닌 뼈는 요셉의 뼈를 가리킨다. 이 뼈가 바로 십자가의 예형, 즉 생명의 십자가이다. 이렇게 에프렘에게 구약은 이미 메시아의 십자가를 넌지시 말하는 신약이 된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죽음의 십자가가 아니라 생명의 십자가이다. 생명신학이다. 그러면서 그는 ‘감춤’(카시요토)과 ‘보임’(갈리요토)과 ‘입음’(탈베슈토)이라는 세 이미지로 메시아의 성육신(成肉身)을 설명한다.
10

우리가 안다는 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탐색할 수나 있을까? 모든 것 다 아시는 그분의 탄생을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종이
만드신 분이 어떤 분인지 헤아려볼 수나 있을까? (『신앙 찬가』 1.16)


그는 우리가 메시아의 탄생을 탐색조차 할 수 없다고 노래한다. 그분의 탄생은 감추어진 신비이기 때문이다.

빛이 옷 입었다 눈 안에서 찬란한 모습으로
그리고 나아간다 창조된 세상 찾아 나서려고–
몸을 입으신 우리 구세주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그리고 나아간다 온 세상 거룩하게 하려고– (『신앙 찬가』 73.16-17)


요한복음의 선언처럼 빛으로 오신 메시아는 그냥 오시지 않고 몸을 입고 오신다. 그 모습은 초라하다. 그러나 그분이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온 세상을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에프렘이 말하는 인간의 자유의지
그렇다면 메시아가 오기 전 이 세상 곧 에덴동산에서는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까? 에덴동산의 나무를 언급하면서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두 나무를 하느님은 낙원에 두셨다
하나는 생명나무, 또 하나는 지혜나무–
선한 이들이 모두 복 받을 한 쌍의 샘이라
영광스런 이 두 나무로 /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으니
죽음 없는 생명과 빗나가지 않는 지혜를 주신 까닭이라

아담은 그분이 주신 명료한 지식으로
하와와 짐승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그분은 감춘 것 드러내지 않으셨으니 / 감춰진 그 지식은
별들 저 너머부터 세상 안에 있는 것까지 모두 탐구하여야만
오직 얻을 수 있으리니–

어떤 노력 없이는 얻을 수 없는 / 그런 왕관을 그분은 준비해 두셨다
얻고자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왕관 둘이라
그가 이기면 왕관을 씌워줄 나무 둘이라
이겨 내는 그 순간 / 한 나무의 열매 먹고 생명을 얻었을 텐데
다른 나무 열매 먹고 지식을 얻었을 텐데
생명을 얻어 어떤 해도 받지 않았을 텐데
지혜를 얻어 저 멀리 헤매지 않았을 텐데–

바르신 분은 왕관을 아담에게 거저 주고 싶지 않으셨다
고생하지 않고도 그는 낙원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셨다, 하느님은 / 아담이 원하기만 하면 이겨낼 수 있다는 것
바르신 분 / 그를 그렇게 들어올리고 싶으셨으니
천상 존재들의 층계가 은총으로 높아 보여도
인간이 의지를 자유롭게 그러나 제대로 쓰기만 하면
왕관을 얻는 것은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낙원 찬가』 12.15-18)11


에프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위와 같이 설명한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에프렘에게 에덴동산에서 인간(첫째 아담)이 사용한 자유의지란 바로 신이 되고 싶어 하는 잘못된 욕망이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은 인간이 신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리하여 그분은 당신의 아들에게 [몸이라는] 옷을 입히셔서 보내셨다. 인간의 그 욕망을 허락하시려고–.”(『니시비스 찬가』 69.12)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어찌 보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분은 둘째 아담 메시아를 보내신 것이다.(『동정 찬가』 48.15-18)

자유의지로 아담의 아름다움은 추하게 되었다
그가, 곧 사람이 신이 되고자 한 까닭이다

그러나 추한 그의 모습은 아름답게 되었다, 당신의 은총으로–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고자 오신 것이다

신성(神性)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 내려왔다
인성(人性)을 [아래에서 위로] 끌어올리려고–

이렇게 아들은 추한 종을 아름답게 하셨다
그렇게 그는 신이 되었다
그토록 그가 바라던 대로–


위와 같이 에프렘은, 에덴동산에서 신이 되고자 하였으나 실패한 첫째 인간의 사건을 둘째 인간의 성육신(成肉身) 사건의 성공으로 재해석한다. 즉 구약의 실패를 신약의 성공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실패는 궁극적인 실패가 아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입었던 ‘가죽옷’(오르)이 상징하는 것처럼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자유롭게, 그러나 제대로 사용할 때 ‘빛’(오르)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에덴동산에서 살던 그 온전한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다.(『낙원 찬가』 7.5, 7.10, 9.28, 14.8)
우리 기독교인들은 ‘빛의 자녀’(엡 5:8)요, ‘하느님의 자녀’(요일 3:1-2)이다. 시리아어로 ‘자녀’라고 번역하는 ‘바르’(bar)나 ‘바트’(ba[r]t)는 ‘아들’이나 ‘딸’이라는 뜻도 있지만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 혹은 ‘어떤 영역에 속해 있는’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자녀’라는 말은 시리아어로 읽자면 ‘하느님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이’ 혹은 ‘하느님의 영역에 속해 있는 이’라는 뜻이다.

노래를 통한 테오시스(theosis)
에프렘은 이렇게 자연과 성서를 함께 읽었다. 또 구약과 신약을 하나로 읽었다. 그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발견하고 그 신비를 상징과 예형으로 해석했다. 단지 성서를 읽고 자연을 바라보며 그분의 신비를 음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인간에게 내재한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렇게 자유의지는 구약 속에 있는 에덴동산의 실패 경험을 교훈삼아 신약 속 메시아의 성육신 사건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 그분을 닮아가는 일, ‘테오시스’(theosis)이다.12
5-6세기 시리아 교회의 신학자 세룩의 야아쿠브에 따르면, 에프렘은 수많은 시를 써서 여성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13 비록 그 가락은 잊혔지만, 오래된 그의 여러 시 사본에는 가락의 이름이 붙어 있다.14 이렇게 에프렘이 수많은 시를 쓴 것은 노래를 부르기 위한 것이었다.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분을 닮아가고자 한 것이다.

헤아리라, 그대의 말을. 흠 없는 목소리들이여!
헤아리라 그리고 노래하라, 노래를–
하여 네 노래로, 내 아들아, 기쁘게 하라, 네 주님의 종들을
네 주님이 보상해주시리라 (『신앙 찬가』 23.9)



1 George A. Kiraz, The New Syriac Primer(Piscataway, New Jersey: Gorgias Press, 2013), 81-82.
2 물론 그리스나 라틴 교부들이 에프렘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Ute Possekel, Evidence of Greek Philosophical Concepts in the Writings of Ephrem the Syrian. CSCO 580(Louvain: Peeters, 1999); Yifat Monnikendam, “How Greek is Ephrem’s Syriac? Ephrem’s Commentary on Genesis as a Case Study”, Journal of Early Christian Studies 23.2(2015): 213-244.
3 3세기 우르하이(에데사)의 종교철학자 바르다이잔(Bardaisan)이 시리아어로 『여러 나라의 법』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의 철학은 그리스 철학 전통의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물론 페르시아 천문학의 영향도 깊다. 그에게 그리스도는 로고스이지만 우주의 생성 과정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구원도 그의 십자가 사건으로 생겼다기보다는 오히려 창조 때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나중에 그는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H. J. W. Drijvers, Bardaisan of Edessa: Introduction by Jan Willem Drijvers(Piscataway, New Jersey: Gorgias Press, 2014), 245-252 참조.
4 W. Stewart McCullough, A Short History of Syriac Christianity to the Rise of Islam(Chico, California: Scholars Press, 1982), 58.
5 이하의 내용은 압돌 호세인 자린쿠・루즈베 자린쿠, 태일 옮김, 『페르시아 사산제국 정치사』(예영커뮤니케이션, 2011), 68-73을 참조하라.
6 Sebastian P. Brock & George A. Kiraz, Ephrem the Syrian: Selected Poems Vocalized Syriac Text with English Translation, Introduction, and Notes(Provo, Uta: Brigham Young University Press, 2009), xii.
7 에프렘의 실존적 신학에 대한 글로는 서원모, “시리아 교부 에프렘의 실존적 신학”, 「선교와 신학」 24호(2009): 201-241을 보라.
8 K. Brockelmann, Lexicon Syriacum(Hildesheim・Zürich・New York: Georg Olms Verlag, 1995), 722.
9 Robert Murray, Symbols of Church and Kingdom: A Study in Early Syriac Tradition(London · New York: T&T Clark International, 2004), 290-292 참조.
10 이환진, “에프렘(Ephrem Syrus)의 창세기와 존 웨슬리”, 「신학과 세계」 84호(2015, 겨울): 74-75.
11 이수민 역주, 『마르 에프렘의 낙원의 찬가』(한님성서연구소, 2010), 286-289.
12 Sebastian P. Brock, The Luminous Eye: The Spiritual World Vision of Saint Eph-rem the Syrian(Kalamazoo, Michigan: Cistercian Publications, 1992), 148-154.
13 Susan Ashbrook Harvey, “Revisiting the Daughters of the Covenant: Women’s Choirs and Sacred Song in Ancient Syriac Christianity”, Hugoye: Journal of Syriac Studies 8(July, 2005): 132-133; Jeffrey Wickes, “Between Liturgy and School: Reassessing the Performative Context of Ephrem’s Madra-še-”, Journal of Early Christian Studies 26.1(2018): 32.
14 Ute Possekel, “The Emergence of Syriac Literature to AD 400”, Daniel King ed., The Syriac World(Abingdon, UK: Routledge, 2018), 325.



이환진 |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로 구약을 가르치고 있다. 아시아교회의 토착화에 관심을 기울여 한중일(韓中日) 성서와 시리아 교회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2019년 10월호(통권 7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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