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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19년 10월호)

 

  평화의 길을 따라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기
  

본문

 

* 이 글은 고텐바시 일본YMCA동맹 국제청소년센터 도잔소에서 열린 제20회 아시아태평양YMCA 총회(2019. 9. 2-6)에서 스티븐 리퍼(Steven Leeper)가 행한 주제강연이다. 강연자 스티븐 리퍼는 히로시마평화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평화문화마을 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다. 번역은 한국YMCA전국연맹 양다은 간사가 하였다. - 편집자 주


1984년부터 제 인생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아는 한, 히로시마는 ‘평화문화’라는 개념의 발상지입니다. 저는 히로시마시가 평화문화센터를 만든 1967년 전에는 평화문화에 대한 언급을 찾지 못했습니다. 1976년 평화문화센터는 평화문화재단이 되었고, 저는 2007년부터 2013년까지 6년 동안 이 재단의 의장을 맡았습니다. 이 재단으로 평화문화라는 용어가 탄생했지만 재단 웹 사이트에는 평화문화의 정의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평화문화’(peace culture) 혹은 ‘평화의 문화’(culture of peace)라는 용어는 히로시마 외에도 유엔과 그 주변에서 사용됩니다. 유엔 웹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는 첫 번째 언급은 1989년 유네스코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유엔 웹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평화문화의 정의는 2005년에 아담스(David Adams)가 작성했습니다.

평화의 문화는 폭력과 폭력적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통합적 접근 방식이며, 전쟁과 폭력의 문화에 대한 대안으로서 평화 교육, 지속 가능한 경제와 사회 발전의 촉진, 인권 존중, 남녀 평등, 민주적 참여, 관용,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 및 군축에 기반한다.

보시다시피 이 정의는 최소화되어 있으며 모호합니다. 평화를 위한 교육이 필요하고 지속 가능성을 증진시켜야 한다고 말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담겨 있지 있습니다. 인권, 성 평등, 민주주의, 관용,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과 군축을 요구한다고 말하지만, 평화문화와 현재 우리의 생활방식 사이에 어떤 구체적인 차이가 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평화문화’는 부적절하게 정의되어 있으며, 일반 대중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자금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제가 아는 한, 평화문화는 오늘날 지구상에 있는 국가들을 이끌어가는,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지도자들 대다수의 머릿속에는 없는 개념입니다.
물론 ‘평화’라는 용어는 수백 명의 필자들이 수백 가지 방식으로 정의하였지만, 제가 가장 선호하는 정의는 당연하게도 제가 내린 정의입니다. 저는 평화를 ‘사회 건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몸은 약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됩니다. 각각의 세포들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깨끗한 물을 섭취하며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때, 그리고 조직이나 장기가 다치거나 손상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이러한 상태를 ‘건강’이라고 부릅니다. 평화는 가족, 교실, 회사, 도시나 국가 등 구성원들의 건강과 복지가 달성된 곳에서 발견되지만, ‘평화문화’는 본질적으로 식물과 동물 등을 포함한 지구 전체를 건강과 행복의 상태로 회복하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2015년부터 저는 ‘평화문화마을’(Peace Culture Village, PCV)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평화문화마을은 평화를 훈련하는 캠프인데, 자연과의 평화, 지역사회의 평화, 내면의 평화(또는 자신과의 평화)라는 세 가지 평화 분야에 주력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지속가능하고 즐거운 대안을 개발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로 이 마을을 고안한 것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방식이 지속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방사선, 플라스틱 및 수천 가지 독성 물질로 공기와 물, 토양을 채우고 있습니다. 온난화와 기후 불안정이 지속되어 이미 많은 지역의 식품 생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다를 뜨겁게 하고, 산성화시키고, 플라스틱으로 가득 채웠으며, 이로 인해 이미 수많은 산호초가, 수많은 지역이 죽고 있습니다. 2007년 Science지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우리가 현재 삶의 방식을 유지한다면 2048년에는 바다에 물고기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다가 죽으면 우리 모두가 죽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산소의 50%는 바다에서 얻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힘과 돈을 위로 분배하는 시스템에서 살고 있기에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격차는 우리의 정치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경쟁을 숭배하는 사회 시스템에 살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싸움과 승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약한 자를 보살피거나 긴급한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환경적 붕괴를 향해 표류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자동차를 운전하고, 건물을 냉방하며, 쇠고기를 먹고, 대부분의 돈을 군대에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삶의 방식에 있어 효과적이고도 즐거운 대안이 무엇인지 비전이 없기 때문이고, 그 대안에 이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지만, 아무도 저를 믿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평화문화가 그 본질상 어떤 이에게 하향식으로 강요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평화롭지 못한 모든 사람을 죽이거나 감옥에 가둠으로써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실제로 전쟁문화는 살인과 수감에 훨씬 뛰어나므로 우리가 폭력 게임을 시작한다면 평화문화는 패배할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인간 의식의 신속하고 급진적인 진화입니다. 즉, 지구인들(Earthlings)은 평화문화를 이해하고 전쟁문화보다 평화문화를 선호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진화는 절망적일 만큼 느리게 진행되었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인류세(人類世)에 살고 있습니다. 단어의 정의로 볼 때, 이는 우리 인간이 우리 자신의 진화를 조절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결정하기만 하면 상당히 빠르게 진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정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즉,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속도로 의사소통을 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레이디 가가(Lady Gaga, 미국의 가수 겸 배우), K-pop 밴드와 같은 힘이 결정하기만 하면, 우리 모두를 평화문화로 쉽게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정보, 우리의 진화는 여전히 전쟁문화에 의해 통제됩니다. 평균적으로 일본인은 정보의 90%를 일본의 주류 미디어 회사인 덴쓰(Dentsu)를 통해 얻습니다. 미국인들은 6개의 미디어 대기업을 통해 정보의 90%를 얻습니다. 여러분들이 속해 있는 모든 국가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리라 확신합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람들은 부유하고 강력한 엘리트들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부유하고 강력한 그 엘리트들은 압도적인 경쟁 우위에 있으며 또한 전쟁문화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첫째, 전파되어야 하는 평화문화의 필수 요소는 무엇인가? 둘째, 인간의 진화를 평화문화의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방식에서 우리가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가?
저는 전쟁문화와 평화문화의 차이점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화문화의 본질은 두 가지 요소에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평화문화의 목표입니다. 그 목표는 앞서 언급한 보편적 건강과 복지입니다. 한 가정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만약 당신이 어떤 하위 그룹을 희생시키면서 또 다른 하위 그룹을 위해 일한다면 당신은 전쟁문화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평화문화의 목표는 지구와 지구 위 모든 사람의 건강, 즉 보편적 건강과 복지여야 합니다.
두 번째 요소는 의사결정 방법, 즉 모든 당사자의 만족과 이익을 위한 비폭력적 갈등 해소입니다. 전쟁문화에서 갈등은 이기거나 지는 기회로 여겨집니다. 사람들은 편을 만들고, 결정은 권력 경쟁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권력은 돈, 미디어, 투표 또는 총알의 형태를 취하기도 하는데,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은 집니다.
모든 평화문화에서 갈등은 모든 당사자를 만족시키며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여겨집니다. 우리는 이기고 지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토론, 협상, 타협, 주고받기 또는 모든 이해 당사자가 필요한 것을 얻도록 도움으로써 문제를 해결합니다. 여기서 이해 당사자는 지구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의 후손들을 항상 포함합니다.
이것이 평화문화의 두 가지 필수 요소입니다. 모든 사람이 비폭력적 갈등 해소를 통한 보편적인 복지에 대해 믿고 행동하기 시작했다면, 우리는 이 행성을 에덴 동산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서로에 대한 생각이나 지구에 대한 생각, 미래에 대한 생각 없이 이기적으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길로 계속 나아간다면, 지구가 우리 종을 완전히 버릴 때까지 우리는 더 깊고 깊은 지옥으로 뛰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기에서 거기로 갈까요? 어떻게 전쟁문화를 졸업하고 평화의 문화에 이를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주요하고도 급박한 두 가지 임무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규모의 자립적이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산업 농업을 포기하고, 후쿠오카 마사노부(Masanobu Fukuoka)가 쓴 The One-Straw Revolution(『짚 한오라기의 혁명』), 빌 몰리슨(Bill Mollison)이 쓴 Introduction to Per-maculture(영속농업 소개),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가 쓴 Soil not Oil(석유가 아니라 토양), 마사토시 후나바시(Masatoshi Funabashi)의 ‘군집생태학적 농업 프로젝트’(synecoculture)에서 설명하는 농업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석유 의존도를 급격하게 줄이고 이 지구와 사회를 수렵 및 채집 단계로 되돌려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지난 1만 년 동안 전체주의적 농업(totalitarian agriculture)에서 발전시킨 모든 과학, 기술 및 지혜를 적절히 활용해야 하지만, 전체주의적 농업 자체는 포기해야 합니다.
전체주의적 농업이란 한 사람이 어떤 땅에 쌀을 경작하겠다고 결정하면, 거기서는 쌀만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을 뜻합니다. 물론 그것은 옥수수, 감자, 토마토 또는 다른 작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문제는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서 특정 종류의 식물만 허용될 수 있다는 결정에서 비롯됩니다. 이 결정은 곧 엄청난 양의 노동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그 외의 다른 모든 식물과 동물을 막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땅을 일구어 경작하고, 비옥하게 하고, 물을 대고, 잡초를 제거하고, 곤충을 죽여야 합니다. 대규모의 전체주의적 농업은 원래 노예제도로 인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트랙터와 다른 농기계들뿐만 아니라 비료, 살충제 및 제초제로 가능한 상황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석유에 의존하는 물질입니다. 오늘날 1칼로리의 음식을 생산하려면 10칼로리의 석유가 필요합니다. 지구 온난화와 석유가 언젠가는 고갈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오늘날의 농업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좋은 소식은,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더 많은 일을 하고 자연에 반하는 일을 더 적게 하면, 훨씬 적은 일로 훨씬 많은 음식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나쁜 소식은, 이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라는 것입니다. 대자연은 우리가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 농업과 삶의 다른 모든 측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우리의 음식, 의복, 도구, 에너지 및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소규모 공동체로 전환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노트북, 휴대폰과 교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을 생산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에너지, 운송 및 통신 기능을 지원할 잉여자원을 충분히 생산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우리는 잃어버릴지 모를 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산업, 특히 산업 농업에서 석유를 거의 또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폐기물을 거의 또는 전혀 방출하지 않는 생활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활방식을 극적이고 급진적으로 바꿔야 하지만 개인이나 가정 단위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지역사회에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과제는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며, 그러한 공동체 내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즐기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지역사회가 구축되고 있습니다. 평화문화마을을 시작한 후, 우리는 일본 내에 이와 유사한 다수의 공동체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전 세계로 보자면 수백, 아마도 수천 개의 공동체가 구축되고 있겠지요. 그러나 현재의 진척 속도로는 인류 대다수가 지속 가능한 공동체에 살기 전에 멸종될 것입니다. 따라서 더 시급한 과제이자 이 일의 전제가 되는, 그래서 실질적으로 첫 번째 과제는 지속 가능성과 비폭력적 갈등 해소에 관한 전 세계 인류의 의식을 높이는 것입니다. 제가 간단하고 구체적인 제안을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한 수백만 달러의 캠페인입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핵무기 폐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첫 번째 문제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다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제가 히로시마에서 왔기 때문에 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핵무기의 위협은 분명 우리가 가장 손쉽게 직면하는 세계적 문제입니다. 아홉 나라가 마음만 먹는다면 일주일 정도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핵무기는 다른 문제의 해결을 막는 치열하고 치명적인 경쟁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모든 세계적 문제는 세계적 협력을 요구할 것이며, 서로를 전멸시키겠다고 위협하면서 그 수준의 협력을 달성할 수는 없습니다. 핵무기는 적대감을 발산합니다. 그것은 장기적인 인간 생존과 절대적으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존을 향한 우리의 첫 단계는 그것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국가 차원에서 핵무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100%의 공감대를 이미 형성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조차도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해 노력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6조에 동의함으로써, 모든 핵무기 국가들은 핵무장 전면 해제를 이루기 위해 선의를 가지고 협상하기로 합의했습니다. 2000년 NPT 재검토 회의에서 그들은 핵무기를 제거하겠다고 명백하게 약속했습니다. 핵무기를 가진 국가들이 핵 군축 약속을 이행하지 않자 2017년 7월 122개 국가들은 핵무기금지조약(TPNW)을 채택했습니다. 그해 12월, 핵무기폐지국제캠페인(ICAN)은 이 협약의 채택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에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핵무기 제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핵무기, 핵전쟁 및 인류의 멸종은 일반 대중에게 전혀 인기가 없는 사항입니다.
실제로 핵무기는 군・산, 전쟁문화 복합체에서 가장 취약한 급소입니다.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 그 약점을 공격해야 하며, 우리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이 비싸고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모든 인류를 하나로 묶도록 고안되고 충분한 재원이 뒷받침된 홍보 캠페인을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전문적인 홍보 컨설턴트와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경험이 풍부하고, 또 성공적인 오바마 캠페인에 참여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그에게, 핵무기 폐지를 요구하는 탄원서에 1억 명의 서명을 모으는 데 드는 비용을 추정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가 세간의 이목을 끄는 캠페인을 전개하면 2020년 10월까지 1억 명의 서명을 얻을 수 있고, 예상 비용은 500-1000만 달러가 든다고 했습니다.
500-1000만 달러는 엄청난 돈처럼 들립니다. 저는 ‘평화를 위한 시장들’(Mayors for Peace)이라는 엔지오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 거의 8,000개의 도시가 회원으로 있으며, 이들 모두는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를 촉진하는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지원해왔습니다. 만일 각 도시가 1,000달러씩만 낸다면–이 금액은 한 도시에 아무것도 아니지요–800만 달러가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탁월한 캠페인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모금은 불가능한 꿈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정도 수준에서 캠페인을 시작하면 전쟁문화, 특히 핵무기로 돈을 버는 회사가 우리 캠페인을 반박하거나 신뢰성을 떨어뜨리도록 만드는 허위 정보 캠페인을 개시하리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핵무기에 대한 반박 사례를 제시하는 일은 매우 쉽습니다. 측정치는 달라질 수 있지만, 몇 안 되는 핵무기, 그러니까 10-15개의 큰 핵무기가 10-15개의 대도시에서 폭발하여 10-15개의 대규모 화염이 발생하면, 500만 톤의 그을음이 대기에 가득 차서 핵 어둠(nuclear darkness)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핵 어둠은 햇빛의 10%를 차단합니다. 쌀, 밀, 옥수수, 대두와 같은 주요 농작물을 생산하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식품을 생산하지 못할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핵 어둠으로 인해 수십 억의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문명은 고작 몇 개의 폭탄 때문에 산산조각 날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과 러시아는 약 2,000개의 탄두를 배치하여 언제든 사용할 수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운명의 기계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를 매우 춥고 깊은 핵 겨울(nuclear winter)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인류의 종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식주나 기타 생필품과 상관없이, 그러한 사회적・경제적 붕괴가 발생하면 우리가 원자력 발전소를 적절히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핵전쟁은 우리 모두를 죽게 할 것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400개가 넘는 원자력 발전소는 매우 정교한 관리와 지속적인 정밀 부품 공급이 필요합니다. 전혀 통제되지 않은 300-400개의 체르노빌이 이 지구를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핵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심지어 미국의 초강경 매파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수많은 돈을 쓰더라도 이 전사들은 인류의 멸종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이 전쟁을 전 세계 대중에게 설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핵 폐기는 우리가 여론에서 이길 수 있는 사례입니다. 우리가 이기면, 인류는 생존을 위해 협력하는 노력으로 함께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영역에서 생존을 위한 협력을 가능하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석유에서 탈피하고, 우리의 환경에서 플라스틱을 제거하며, 폭력과 기후 재난으로 도망치는 난민을 돕고, 산과 바다, 숲과 정글 및 경작 가능한 땅을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데 협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YMCA이기 때문에 제가 이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YMCA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엔지오 중 하나입니다. 전 세계 124개 국가의 전국연맹과 4,500만 명의 회원을 둔 평화문화 단체입니다. Y는 1844년 산업혁명에 의해 착취당하는 청년들을 돕고자 하는 열망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수백 만의 사람들이 믿고 사랑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성장했습니다. Y는 사람들이 몸과 마음과 정신이 더 건강해지도록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성서 연구, 교육, 건강 관리, 어린이 여름캠프에서의 자연 교육 등을 통해서 말이죠.
아시다시피 YMCA는 기독교청년회(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의 약자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젊지 않고, 기독교인도 아니며,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사한 정보와 활동을 제공하는 여타의 조직과 구별되는 정체성이 없습니다. 청소년을 지도하고 훈련하는 많은 학교가 있습니다. 노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많은 회사가 있습니다. 자연과 관련된 캠프와 여행을 제공하는 많은 회사가 있습니다. 스파와 살롱, 체력을 길러주는 체육관이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를 홍보하는 많은 교회와 다른 유형의 조직도 있습니다. YMCA가 이에 대해 특별하거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임무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우리를 하나로 묶고 있습니까? 직원과 회원을 열정으로 채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YMCA 자체보다 더 큰 것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저는 적어도 10년 동안 YMCA 지도자들에게 평화문화를 이야기해왔지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가 YMCA의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인 문제란 대부분의 YMCA가 돈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에 대해 아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돈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YMCA가 살아남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과 생존만 중점에 두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자신의 Y연맹이나 사무실 또는 프로그램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Y를 더 큰 미션으로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Y가 너무 ‘기독교적’ 성격을 띠는 것을 염려합니다. 일본의 기독교인이 조직을 지원하기에는 숫자가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미국Y는 평화가 일반 대중에게 익숙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평화문화 또는 핵무기 제거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일을 주저합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군대와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전쟁문화의 사람들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Y는 정치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다시 말해, 회원을 모집하고 기부금을 모으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을 취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좌파 또는 평화 지향적이거나 군대에 반대하거나 주류에서 먼 집단으로 인식되는 일을 두려워합니다.
몇 년 전, 저와 제 아내는 일본YMCA 100년사 책을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오늘날의 일본YMCA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한 역할을 크게 후회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일본의 많은 YMCA들이 생존을 위해 전쟁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중국에서 싸우는 일본 군인들에게 음식과 의복 상자를 보냈습니다. 원수를 포함한 다른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새로운 계명에도 불구하고, 일본YMCA는 전쟁을, 대량 살인을 지지했습니다.
저는 일본만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미국의 Y는 미국의 전쟁을 전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전부는 아닐 테지만, 미국과 일본의 YMCA 회원 대부분은 동일한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는 상대방을 파괴하도록 도와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이는 물론 Y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독일 기독교인, 미국 기독교인, 프랑스 기독교인, 이탈리아 기독교인, 일본 기독교인, 한국 기독교인, 중국 기독교인들이 서로를 적대하며 기도하고 서로를 죽이기 위해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예수는 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결코 성이나 궁전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코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지배권을 위해 경쟁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는 결백했지만 고문과 죽음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살인자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살인자에게 벌을 주거나 심지어 로마제국 전체를 파괴할 수도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이것을, 잘못의 정의와 형벌보다 평화와 사랑이 중요하다고 예수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여깁니다. 예수께서는 악과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친구와 적에 대한 비폭력적인 사랑을 통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후 거의 300년 동안 기독교인들은 평화주의자가 되기를 요청받았습니다. 그들은 로마 군대에서 복무할 수 없었으며, 많은 사람들은 이 이유로 인해 순교자로 죽었습니다. 그 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도움을 받아 기독교를 싸우는 종교로 만들었습니다. 수십 년 안에 모든 로마 군인들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기독교가 예수의 가르침으로 단호히 돌아올 때가 되었다고 강하게 믿기 때문에 오늘 다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근본적인 악이 지배하고 있어서, 우리 종(種)은 문자 그대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 근본적인 악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근본적인 선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예수께서는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이는 기독교인들에게 친구와 적에 대한 비폭력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저는 일평생 YMCA를 알고 지내왔습니다. 캠프에 가기도 했고, Y에서 수영하고, 항해하고, 말을 타는 법도 배웠습니다. 나는 캠프의 상담가로 활동하기도 했고, Y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나는 뉴헤이븐, 코네티컷, 매디슨, 위스콘신, 뉴욕, 애틀랜타, 홋카이도, 교토, 나고야에 있는 Y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히로시마Y의 이사로 있었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가치가 있고 동시에 예수에게도 가치가 있는 새로운 미션이 YMCA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오늘 우리와 함께 있다면, 그분은 돈을 위해 일하거나 Y의 생존을 위해 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중국을 상대로 미국을 위해 일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 반대로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이슬람에 대항하여 기독교를 위해 일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악과 죽음을 물리치라고 우리 모두를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우리 모두에게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이 대화가 특히 기쁩니다. 여러분은 가장 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며, 이 세상을 평화로 이끌어야 한다는 크고도 즉각적인 필요를 느끼는 분들입니다. 1980년대 이래로 우리는 아시아가 부상하고 서구는 쇠퇴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지금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은 주요 사회적・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점점 강해지고 있으며, 반면에 미국과 유럽은 빠르게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두렵습니다. 제가 서양인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일본에서 살았습니다. 아시아의 부상은 매우 행복한 일입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미국과 유럽의 지독한 경쟁 본성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방의 엘리트들은 3세기 이상 세계를 지배해왔으며, 그들은 그 지배력을 동양으로 쉽게 넘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해온 일을 아시아에서 할까 봐 매우 두렵습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예멘, 수단, 소말리아, 콩고를 파괴했으며 이란을 파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중남미에서는 온두라스, 과테말라, 콜롬비아를 파괴했으며 에콰도르, 브라질, 베네수엘라를 파괴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존 볼턴과 네오콘의 다른 전쟁광들은 이란을 파괴하자마자 북한과의 전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아시아인은 폭력을 절대적으로 거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필리핀의 두테르테나 미얀마의 군부와 같은 지도자를 더 받아들이거나, 미국의 북한 침공이나 폭격을 지지한다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싸우기 시작한다면, 미국은 돈과 무기를 보낼 것이고, 이는 중동과 마찬가지로 아시아를 혼란에 빠뜨릴 것입니다. 아시아의 혼란은 미국과 유럽의 권력 엘리트를 매우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아시아에서의 폭력은 아시아의 부상을 더욱 지연시킬 것입니다. 실수하지 마십시오. 미국 기업들은 북한의 자원, 노동, 시장을 착취하기를 원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 그 나라의 많은 부분을 기꺼이 파괴할 것입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현재 이를 막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자국의 전쟁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과 아시아를 진정으로 보호하려면 북한의 무기뿐만 아니라 모든 핵무기를 반대하는 강력한 운동이 필요하며 모든 폭력에 강하게 맞서야 합니다. 서방이 아시아가 서로 싸우도록 유혹하는 것을 피해야 하며 또한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합니다.
아시아가 미국이나 중국의 돈을 얻는 데 계속 집중한다면, 결국 미국이나 중국에 의해 식민지가 될 것입니다. 유일한 희망은 현재의 세계 경제 시스템을 거부하고 모든 폭력을 거부하며 자립적이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장려하는 것입니다. 평화문화를 장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YMCA가 아시아를 시작으로 세계를 위해 할 일입니다. Y는 어디에서나 알려져 있고 신뢰를 받습니다. Y는 평화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평화문화 조직입니다. Y는 공동체를 구축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Y는 폭력 없이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Y는 지속 가능한 평화문화 생활의 모범이 되는 캠프를 전 세계에 걸쳐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Y는 예수를 알고 있습니다. Y는 그분이 우리에게 어떻게 살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Y는 근본적인 악에 대항할 우리의 유일한 희망인 근본적인 선을 증명하고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과 생존을 계속 우선시한다면 Y는 누구도 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친구, 가족,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평화의 왕 예수를 우선 순위로 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자로 만들기 위해 예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분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으로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경쟁하고, 제국을 건축하고 파괴하고, 여자들과 아이들조차도 싸우고 죽이고 살육했습니다. 예수의 메시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살생을 멈추어라. 경쟁할 필요가 없다. 죽음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처럼 오직 서로 사랑하면 된다. 사랑에 초점을 맞추면 악을 물리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당신을 사용하실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약 3세기 동안 예수를 충실히 따랐지만, 이후 그를 잊었습니다. 권력에 대항하여 사랑을 선택하기가 너무도 어려웠기 때문에 그들은 폭력으로 돌아왔습니다. 특히 악을 선으로 갚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의 교훈을 배우지 않으면 죽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독교 엔지오의 회원으로서 아시아와 세계를 새로운 평화문화 시대로 이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우선 순위로 삼으면 여러분은 예수가 인류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10월호(통권 7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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