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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19년 4월호)

 

  문동환 박사, 새 하늘과 새 땅의 생명공동체를 일구어온 생애
  

본문

 

* 2019년 3월 9일, 민주화운동과 기독교교육학의 거목 문동환 목사가 소천하였다. 이 글은 3월 12일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예배당에서 거행된 장례예식에서 김성재 목사(한신대학교 석좌교수, 전 문화관광부 장관)가 소개한 고인의 약력이다. 고인은 남양주 마석의 모란공원에 잠들어 있다. - 편집자 주

문동환 박사님은 1921년 5월 5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부친 문재린 목사님과 모친 김신묵 여사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민족 독립운동과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였던 명동촌에서 성장하면서, 어려서부터 민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삶과 김약연 목사님의 영향으로 목사로서의 사명에 뜻을 두었습니다.
1938년 은진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동경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던 중, 태평양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귀국해서 감격 속에 해방을 맞았습니다.
1947년에 서울의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웨스턴신학교, 프린스턴신학교를 거쳐 하트퍼드신학대학에서 종교교육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61년 한국에 돌아와 모교인 한국신학대학 신학과(종교교육 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같은 해 12월 헤리엇 페이 핀치백(Harriett Faye Pinchbeck, 문혜림) 여사와 결혼했습니다.

문동환 박사님은 “나와 세계”(자아확립)이라는 과목을 통해 신학생들에게 자신들 내면의 자아를 성찰하게 하고 새로운 눈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바로 보게 했습니다. 이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은 당위적 교리신앙에서 자유한 자의 신앙으로 생에 놀라운 변화를 깨닫고 경험하며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문동환 박사님을 ‘생에 놀라운 변화의 선생님’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문동환 박사님은 성경과 교리 중심의 전통적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성경을 삶의 경험과 만남의 깨달음 과정으로 학습하는 새로운 방법의 기독교교육을 하였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는 1969년 문동환 박사님의 이런 새로운 기독교교육 방법을 교단의 “교회교육지침서”로 채택했습니다. 이후 문동환 박사님은 기장 교단의 신학인 ‘하나님 선교 신학’에 근거해서 “사회선언지침”, “신앙고백”, “선교정책” 등 교단의 기본 정책인 4대 정책문서 작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1970-71년에 문동환 박사님은 학내 사정으로 교수직을 사임하고 미국에 가서 약 1년간 연구생활을 하였는데, 이때 새롭게 태동된 흑인해방신학,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 여성해방신학, 그리고 브라질의 해방교육학자인 파울로 프레이리(P. Freire)의 ‘피압박자의 교육학’(Pedagogy of the Oppressed)을 깊이 연구하고 귀국해서 교수로 복직했습니다. 이후 문동환 박사님은 한신대에서 해방신학과 인간해방기독교교육을 가르치시고, 한국 교계와 신학계에 해방신학을 널리 알렸습니다.
또한 문동환 박사님은 1971년 대한기독교교육협회를 통해 기장, 예장(통합), 감리교, 성결교 등 4대 교단의 기독교교육학자들과 공동으로 ‘경험과 깨달음’ 중심의 새로운 교회교육 커리큘럼을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주일학교 커리큘럼을 번역한 ‘통일공과’와 ‘계단공과’만을 사용하던 한국교회가 처음으로 독자적이고 에큐메니컬적으로 교회교육 커리큘럼을 만들어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문동환 박사님은 1967년부터 서울의 수도교회에서 목회를 했는데, 수도교회 예배당 전면 벽에 십자가 대신 지게 위에 깨어진 지구가 놓여 있는 부조상을 설치하고, 자본주의와 산업사회에서 이기적 탐욕으로 죽어가는 인류와 지구를 살리는 생명의 신앙공동체를 강조했습니다. 또한 예배 마지막 축도 때는 교회 뒷문을 활짝 열고 전 교인이 뒤로 돌아서서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이런 문동환 박사님의 목회에 대해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신선한 신앙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1972년 문동환 박사님은 설교로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집을 개방해서 뜻을 함께하는 교회 청년들과 제자들과 함께 ‘새벽의 집’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새벽의 집’ 공동체 생활에 참여했습니다. 이때 교계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놀람과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에 공동체 운동이 여러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새벽의 집’ 공동체 생활은 재산을 공동소유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가사노동도 함께 하는 생활이었기 때문에 유신정권으로부터 공산집단이라는 오해도 받았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문동환 박사님은 미국으로 망명을 가게 되어 ‘새벽의 집’ 공동체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73년 문동환 박사님은 박형규 목사님과 젊은 목회자들이 수도권 빈민들을 위해 설립한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으시고, 청계천 빈민들의 현장에서 민중 의식화 교육을 하였습니다. 이때 안병무 교수님, 현영학 교수님도 함께 빈민 현장에 와서 민중과 더불어 하나 되어 생활하는 민중예수를 새롭게 발견하고 이 깨달음을 신학적으로 증언하는 민중신학을 태동시켰습니다.
1974년 문동환 박사님은 WCC 프로젝트로서 변화된 세계에서 현장 중심의 새로운 신학교육 모델 연구를 위해 한국신학대학 부설로 선교신학대학원을 개설하고 원장으로 재직하였습니다. 이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모두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서 자신들의 직업생활의 경험과 성서를 접목시키는 공동연구를 했습니다. 이 공동연구 과정에는 신학교수만이 아니라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문화예술, 법학, 자연과학 분야의 교수들도 함께 참여해서 학생들과 대화했습니다. 그러나 유신정권의 탄압으로 1975년 이 대학원은 폐쇄되었고, 문동환 박사님은 해직되었습니다. 이후 해직교수 및 민주인사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교회인 갈릴리교회를 공동목회하였고, 기장 교단이 해직교수와 제적학생들을 위해서 만든 선교교육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민중교육을 발전시켰습니다.
1976년 3월 문동환 박사님은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3・1 민주구국선언문’ 사건으로 투옥되어 2년 가까이 복역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갇힌 민중들의 아픔을 깊이 느끼고 이들과 함께 ‘아파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민중들의 고통 체험을 통해 민중신학과 민중교육을 발전시키고, 석방된 후 민중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동일방직 및 와이에이치(YH) 노조원의 투쟁을 지원하다 다시 투옥되어 복역했습니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자 한국신학대학에 복직했으나,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다시 해직된 후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과 더불어 이민자 목회생활을 하다가 1985년에 한국에 돌아와 한신대에 복직했습니다.
1986년 한신대에서 정년퇴임한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화운동을 했던 젊은 청년 활동가들과 함께 평화민주당 창당에 합류해서, 평화민주통일연구회(평민연) 이사장으로 활동했습니다. 1988년에 국회에 진출해서 평화민주당 수석부총재를 역임했고, 국회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이후 1991년 부인 문혜림 여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국으로 가서 노년을 보내면서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성서연구에 주력하였습니다. 문동환 박사님은 그동안 민중신학에서 민중의 눈과 역사로 성서를 보는 성서연구를 계속 발전시키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다가 이때 성서연구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고국에서 밀려나 저임금 노동자로 팔려가는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그런 비참한 삶의 구조적 원인인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민중신학을 더욱 심화시킨 ‘이민자 신학’, ‘떠돌이 신학’ 연구에 매진하였습니다. 문동환 박사님은 구약은 떠돌이 히브리들, 신약은 예수 민중 떠돌이들이 중심이라는 깨달음에서 성서와 기독교 역사를 떠돌이 역사로 꿰뚫는 『바벨탑과 떠돌이』를 펴냈습니다. 그리고 문동환 박사님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여러 공동체들을 방문하였고 새로운 공동체 생활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2013년 귀국 후 딸의 집에 기거하면서 ‘바벨탑과 떠돌이’ 연구에서 새롭게 발견한 예수 탐구를 시작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기독교가 잘못된 것은 바울이 예수를 헬라와 로마의 사상 및 세계관으로 잘못 해석해서 예수의 복음이 바울기독교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바울의 비판을 통해 예수의 생명공동체 복음을 회복시키려는 연구 결과로 『예수냐 바울이냐』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성서와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 것으로 교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시기에 문동환 박사님은 연로하시고 몸이 아프셔서 거동이 불편했지만 계속해서 제자들과 생명공동체에 대한 토론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내 문혜림 여사가 1986년부터 의정부 미군부대 주변 여인들을 돌보는 두레방을 운영했는데, 이 두레방 여인들의 삶의 이야기에서 민중생명공동체의 희망을 보고 두레방 여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민중신학적으로 해석한 『두레방 여인들』을 2017년에 펴냈습니다.
이렇게 문동환 박사님은 90대 후반의 고령으로 병상에 누워 계시면서도 자본주의와 산업사회의 이기적 물질 탐욕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생명문화공동체를 탐구하고, 우리 민족이 분단의 질곡을 극복하고 새로운 한반도 평화공동체가 되게 하는, 곧 성서가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생명공동체를 일구어가는 노력을 계속하셨습니다.

문동환 박사님은 신앙과 생각과 언행과 삶이 일치한 분이었습니다. 문동환 박사님은 학생들이 억압된 자아의 굴레를 깨고 하나님과 역사 안에서 ‘생에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며 성장하게 하는 참된 스승이셨고, 민중과 떠돌이들의 목자이셨고, 민중신학과 민중교육의 실천적 선구자이셨고, 민주화운동과 평화통일운동의 거목이셨습니다. 또한 아픔과 질곡의 한반도 100년의 역사를 사랑으로 껴안고 용서와 화해와 평화의 역사를 실천한 사도였습니다.
문동환 박사님은 2019년 3월 9일 22시, 임종예배 시 모든 가족들의 감사와 사랑과 존경의 찬송을 들으며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문동환 박사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 2019년 3월 12일, 제자 김성재 삼가 드림

 
 
 

2019년 6월호(통권 7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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