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교회와 현장] 교계 포커스
교회와현장 (2019년 1월호)

 

  양심적 병역거부를 교회가 반대할 일일까?
  

본문

 

현대 세계는 1919년 5월 29일에 시작되었다. 그날은 200년 이상 세계를 지배해왔던 뉴턴(Isaac Newton)의 유클리드(Euclid) 기하학의 직선과 갈릴레오의 절대시간 개념에 기초한 우주론에 상당한 오차가 있다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주장하던 상대성 이론이 증명된 날이었다.1 - 폴 존슨

이렇게 새로운 세계를 여는 이론을 입증해낸 사람은 영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아서 에딩턴(Arthur Stanley Eddington)이었다. 그는 전쟁 중인 조국의 징집을 종교적 이유로 거부하면서 이를 증명하는 것으로 복무를 대신하겠다고 했다. 서아프리카 기니만의 프린시페(Principe)섬과 브라질의 소브랄(Sobral)에서 개기일식 때 별을 관측하면 태양 부근을 지나면서 별빛이 약간 휘어지는(중력 렌즈 효과) 모습을 통해 상대성 이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었고, 독일은 적국(敵國)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군 재판소는 에딩턴에게 일식탐사를 조건으로 병역면제를 결정했다.
그로부터 꼭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대법원의 첫 판결(2016도10912)이 내려지고, 그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한 시민단체는 병역거부 인정이 난민 유입까지 유발한다며 반대 시위를 벌였고,2 또 다른 단체는 대법원장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대다수의 교회 연합기구들도 일제히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하면서 비난 여론에 가세하는 형국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

많은 기독교 단체가 병역의무를 대신하는 대체복무제도 도입에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병역기피에 악용될 소지와 이로 인한 안보 문제, 동성애자들이나 특정 종교 집단에 유리하게 작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즉각 논평을 내고 “법질서를 무너뜨린 판결이며, ‘특정 종교의 병역기피’라고 말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도 분단국가라는 안보 현실을 무시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실제적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특정 종교인이 99%를 차지하고 있다.”라는 말로 여호와의 증인을 경계했다.3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은, 여호와의 증인에 가입문의가 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여호와의 증인에 가입하면 대박이라는 뜻으로 비트코인(Bitcoin)에 빗댄 ‘여증코인’이라는 유행어도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병역거부자 대부분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라는 점에서 한국교회가 경계심을 갖는 것은 넉넉히 이해된다. 유엔인권위원회(UNCHR)의 60차 보고서(2004년)를 보더라도 한국의 병역거부 수감자 521명 중 518명(99.4%)이 종교적 병역거부자였다. 미국, 영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메노나이트(Mennonite), 퀘이커(Quakers) 신도가 대부분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다.
그러나 교회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에서부터 법원 판결, 대체복무제까지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은 지나치다. 헌법재판소가 군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조항(병역법 제5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2011헌바379)에서 내린 헌법불합치 결정(2018. 6. 28.)은 존중되어야 한다. 헌법은 곧 국가의 최고 법규인 까닭이다. 더구나 스포츠로 국위를 선양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병역특례제도도 대체복무와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여기에는 이의가 없다. 한국교회는 소수의 이단 종파를 경계하고 탄압하는 이기적 집단이라는 호된 질책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용어가 ‘양심적 병역거부’인 이유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도 많은 기독교 단체가 불편해하는 용어이다. 그래서 교계 일각에서는 ‘종교적 병역거부’나 ‘소종파의 병역거부’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도 ‘(양심 때문에 병역거부를 한다고 하면) 군필자들은 비양심적인 인간이 된 셈’이라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양심적’이라는 용어의 변경 및 폐지에 대한 게시글이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이 용어는 국민의 생각과 판결의 표현이 맞지 않다면 곤란하다는 점에서 수정될 소지가 많다고 본다.
그러나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류준구 판사)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두 명에게 ‘무죄’를 선고한(2016. 6. 14.) 판결문을 살펴보면 법원이 사용한 용어가 ‘양심적 병역거부’일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종교, 특히 그중 기독교의 본질이 그가 믿는 신의 명령에 따라 죄를 짓지 않고 생활해 사후 신이 약속한 내세를 보장받는 것이라고 할 때, 위 종파의 독실한 신자에게 신에게 죄를 짓는 행위라고 믿는 군대 입영을 무조건 강제하는 것은 그의 인격적 존재 가치를 허무는 것으로, 종교의 자유뿐 아니라 양심의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앞서서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의 구체화라고 볼 수 있다고 정리한 결정에 근거한 것으로, 종교적 이유만이 아니라 또 다른 개인적 신념도 포괄한다는 논지이다. 이는 각자 옳다고 믿는다는 뜻의 양심(conscience)에 따라 결정했다는 뜻이지 선량한 마음(良心)을 추구해 결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재판부는 나아가 이런 개인적 신념에 따른 의무 이행을 ‘국방의 의무란 군에 입대하는 것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각하고 가정과 사회 각자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는 소극적 국가안전보장 행위도 포함’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 말은 ‘군 입대’라는 적극적 행위 외에도 여성·장애인·노인·청소년, 군 면제자, 군 전역자 등을 포함한 모든 국민은 항상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실제로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이행하고 있는 셈이라는 뜻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으로 바라보면 평화운동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누리면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이라는 전향적인 판단이다. 영국 군 재판소가 에딩턴에게 (적국을 포함해도) 공익을 위해 일하는 조건으로 병역면제를 결정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시대의 흐름이 바꾼 국방의 개념

국방의무에 관한 국민의 의식도 많이 변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조사에 따르면[조사 기간 및 대상: 2016. 4. 19-21,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 표본오차: ±3.1%포인트(95% 신뢰수준)], 응답자의 72%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답하면서도,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에 70%가 찬성했다. 찬성한 이유는 ‘감옥보다는 낫다’(26%), ‘국민 의무를 다해야 한다’(16%), ‘다른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14%), ‘개인의 선택이나 인권 문제’(12%), ‘감옥은 심하다·가혹하다’(8%) 순이었다. 이는 2013년에 실시했던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 76%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68%가 대체복무 도입에 찬성했던 것과 비슷한 결과였다.
국방의무의 대체복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현재 전 세계에서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59개국이다. 이 가운데 20여 나라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운영 중이거나 도입했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나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스, 스위스 등 강대국들이 많지만,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대만도 이미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였다.
안보에 관한 개념이 바뀌고 있음도 인식해야 한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1994년 ‘인간 안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도록 하는 모든 것’을 안보 위협으로 규정한 바 있다. 또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UNHRC)는 2006년부터 우리 정부에 대체복무제 등 입법 조처를 권고해오고 있으며, 2015년에는 수감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전원 석방을 권고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2012년 기준으로 전 세계 각국에 수감되어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723명 가운데 669명(92.5%)을 수감 중인 나라였고, 상황은 지금도 비슷하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휴전 중인 나라, 전쟁이 끝나지 않은 우리나라의 국방의무를 다른 나라와 일률적으로 비교할 문제는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군 대체복무제도가 안보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우려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1950년부터 2016년 말까지 양심적 병역거부로 처벌받은 사람은 1만 8,800여 명에 이른다. 이를 토대로 병력 손실을 산출해보면 1년에 약 280명이다. 군 복무기간을 1년 6개월로 계산한다면 국군 전체 병력 손실은 연평균 420여 명에 불과하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더라도 병역거부자가 특별히 늘어날 것 같지도 않다. 대만의 경우 국방의 의무를 대신하는, 상대적으로 긴 대체복무제를 시행했지만 할당 인원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미래의 전쟁은 전략, 전술 무기의 개발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미 군의 운용이나 편제도 이에 대비해 개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머지않아 전문 기능이 필요한 전략무기 운용을 위한 모병제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래전부터 군 지휘부에서는 병사들에게 짧은 복무 기간에 만족할 만큼의 전투능력을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군 대체복무제 도입은 오히려 모병을 통한 강군 육성과 안보 강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개인적 신념이 존중되는 사회

기독교 소수종파인 퀘이커 교도였던 아서 에딩턴이 종교적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신청하자 애국심에 근거하여 그를 비난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영국 병무청은 에딩턴을 기소했다. 그러나 영국 군 재판소는 에딩턴에게 일식탐사를 조건으로 12개월의 병역면제를 판결했다. 이렇게 개인의 신념을 보장하는 ‘인간 안보’의 개념은 이미 100년 전부터 만들어지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한 세기가 지난 대한민국에서는 법원이 내린 병역거부 무죄 판결을 비난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많은 교회 연합기구가 반대론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은 더 부끄럽다. 지난해 민족화해주일에 한국교회는 조선그리스도교련맹과 함께한 공동기도문(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018년 8・15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문”)을 통해 “믿음의 눈으로 보니 분열과 대결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이 평화와 통일 번영의 시작점으로 존재합니다.”라고 고백했다. 교회는 국가주의, 군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회만이라도 ‘믿음의 눈’으로 다양한 개인적 신념을 존중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국가의 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1 폴 존슨, 조윤정 역, 『모던 타임스 Ⅰ』(살림, 2009), 12. 재인용
2 「데일리뉴스」(www.newdaily.co.kr) 보도(2018. 11. 18.)
3 「기독일보」(www.christiandaily.co.kr) 보도(2018. 11. 2.)


김광수 |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하였다. CBS에서 기자, 사회부장, 정치부장, 보도국장을 역임하였으며, 부산CBS 본부장, 강원CBS 본부장을 지냈다. 현재 (주)기독일보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9년 7월호(통권 727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