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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18년 11월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1)
  

본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신학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접한 책이 안병무 교수의 『역사와 증언』이다. 1970년 초반에는 작은 문고판으로 나왔고, 당시 인기가 많아 수십 번의 복쇄를 해야 했다. 이후 몇 번의 저자 편집을 통해 책의 부피도 늘어나고 내용 또한 민중해방신학적 관점을 통해 훨씬 풍부해졌다. 그리고 책 제목도 『역사와 해석』으로 바뀌었다. 나는 서구신학자 중에서도 성서 전체를 이렇게 깊이 있게, 동시에 일목요연하게 해석해놓은 책을 보지 못했다. 수십 번을 읽어도 항상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그래서 14년간 향린교회 목회를 하는 동안 새 교우들과의 성서공부 주교재로 사용하였다.
나는 지금도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 첫 장의 제목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도상의 나그네.” 이는 나이 19세에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의 문을 두드린 나의 뇌리에 콘크리트 바닥의 철심처럼 꽉 박힌 글귀이자 나의 삶을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신앙의 푯대였다. 사람들은 내가 진보 교회의 대명사 격인 향린교회 목사라고 하면 나를 쉽게 ‘운동권 목사’로 분류한다. 물론 그렇다! 지금도 나는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땅에 정의, 평화, 생명의 가치가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 건설의 운동가이다. 동시에 내면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사색하기를 좋아하고 특히 혼자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간 안식년을 맞아 프랑스의 테제, 스코틀랜드의 아이오나, 영국, 독일의 부루더호프 공동체를 비롯해 미국 내의 여러 공동체를 찾아다녔고, 네팔의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를 5번 완주했으며, 스페인 산티아고 까미노 길을 걷기도 했다. 2년 전에는 33일 동안 생장드폴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거쳐 묵시나까지 900km의 프랑스 길을 걸었고, 작년에는 한 달 동안 리스본에서 산티아고까지 750km를 걸었다. 지금은 37일 여정으로 이룬에서 산티아고까지 북쪽 해안가를 따라 걷는 중이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혼잡을 피해 겨울에 걸었으나, 북쪽 해안길은 겨울에 걷기에는 날씨로 인해 위험하기에 가을에 걷고 있다. 열흘 정도가 지난 지금, 이곳은 다행히 우리나라 가을 날씨처럼 청명하다.

까미노의 유래
‘까미노’(camino)는 스페인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산티아고(Santiago) 또한 성 야고보(Saint James)의 갈리시아 지방 발음이 변형된 이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 야고보는 포르투갈 길을 따라 전도하던 중 성모 마리아의 환상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가 거기서 죽었다. 야고보의 제자들이 그의 시신을 당시 세계의 끝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묻었고, 그 무덤 위에 지금의 성당이 세워져 있다. 콤포스텔라(Compostella)는 라틴어로 ‘별들의 운동장’(Compus+Stella)을 뜻하는데, 하늘의 운하가 바다 끝에서 지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는 사실은 세간에 알려져 있지 않다가 9세기경에 처음 알려졌고, 이후 로마와 예루살렘에 이어 기독교인들의 순례지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로 순례자들이 끊이지는 않았지만, 12세기에 유럽 각 지역,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이곳을 찾아 나서는 순례 신앙운동이 열풍처럼 불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전쟁, 페스트, 종교개혁 분쟁 등으로 말미암아 중지되고 말았는데, 1980년대 후반부터 교황청과 유럽연합이 이곳을 역사적 장소로 명명하면서 다시금 순례운동이 시작되었다. 작년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순례자 수가 30만 명을 넘어섰는데, 1985년까지만 해도 이곳을 찾은 순례자의 수는 1년에 수백 명에 지나지 않았다.

알베르게
중세시대에는 강도들이 많았기 때문에 순례자들을 보호할 목적의 성곽이 만들어졌다. 또한 순례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도 세워졌다. 산등성 위에는 그런 역할을 하던 탑이나 성곽의 흔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지금도 그런 전통에 따라 순례자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성당이나 병원이 있다.
흔히 순례자용 숙소를 스페인어로 ‘뻬레그리노스 알베르게’라고 하는데, 이를 줄여서 그냥 ‘알베르게’라고 부른다. 순례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숙소는 크게 알베르게, 호스텔, 펜션, 호텔의 네 종류로 나뉜다. 알베르게는 보통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나 성당에서 운영하지만, 개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알베르게도 있다. 그러나 일단 알베르게라는 이름이 붙으면 5-10유로 정도의 금액을 기부금 형태로 받는다. 때로는 ‘까미노의 친구들’이라는 신앙단체에서 알베르게를 운영하기도 한다.
프랑스 길을 걸을 때였다. 겨울이라 숙소가 많이 닫혀 있고 날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다음 마을까지 가려면 두 시간을 더 걸어야 했다. 그런데 마침 개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나타났다. 어느 독일인 부부가 여름에는 자신들이 그곳에서 지내고, 겨울에는 이곳을 알베르게로 내놓은 것이다. 그들은 당일 기부금으로 먹을 것을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음 사람들이 먹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까미노에서는 이처럼 수많은 천사들을 만나곤 한다.
알베르게는 보통 한 방에 2층 침대가 10-20개 정도 놓인 형태이며, 큰 알베르게의 경우에는 100개의 침대가 있는 곳도 있다. 호스텔은 보통 15-20유로 정도인데, 한 방에 6개 혹은 8개의 2층 침대가 놓여 있다. 알베르게와 호스텔 모두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며, 알베르게는 자신의 침낭을 사용해야 하지만, 호스텔은 담요를 하나 준다는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간혹 빈대나 벼룩이 있기에 호스텔에 머무는 사람들도 대부분 자신의 침낭을 사용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알베르게에는 외부에서 음식 재료를 사 와서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부엌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데, 요즘은 동네 상권 활성화를 위해 부엌 사용이 어려워졌다. 마을 식당에서는 저렴한 값에 질 좋은 순례자용 식사(the Pilgrim’s Menu)를 제공하는데, 보통 10유로에 샐러드, 고기나 생선, 디저트, 그리고 물 혹은 포도주 한 잔을 제공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는 포도주 한 병을 통째로 주기도 한다.
알베르게는 들어오는 순서대로 침대를 배정하기 때문에 남녀 혼성이 보통이다. 호스텔 또한 혼성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은 익숙하지 않지만, 유럽인들은 별로 꺼리지 않는다. 그런데 여럿이 함께 잠을 자다 보면 코를 고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고, 몸을 씻고 빨래를 한다 하더라도 옷과 배낭에 배어 있는 쾌쾌한 땀 냄새가 나기도 한다. 2년 전에는 여러 날을 함께 다니던 젊은 한국인 친구가 코를 매우 심하게 골아 애를 먹은 적이 있는데, 어제도 코골이가 한 명 있어 잠을 설쳤다. 또 며칠 전에는 좁은 호스텔 방에서 8명이 자는데, 지하라서 환기가 잘 되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도 했다. 살면서 항상 좋은 일만 겪는 것은 아니듯, 이런 불편함 또한 까미노 순례의 일부이다.
조금 편하게 다니려면 숙소 예약 사이트(예를 들어 부킹닷컴)를 이용하여 40-50유로 정도의 펜션이나 호텔을 이용하면 된다. 알베르게는 예약을 받지 않으며 침대 수가 제한되어 있기에 해당 지역에 늦게 도착하면 숙소를 구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생기는데, 이런 방법을 이용하면 숙소를 구하지 못할 염려는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혼자서 하루 20유로 이상의 방값을 지불하는 것은 순례의 의미를 잃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크레덴샬 혹은 순례자 패스포트라는 것이 있어 묵는 장소마다 도장을 받고, 걷는 거리가 100km가 넘으면 산티아고 순례 본부에서 증명서를 떼어준다. 이 도장은 단지 숙소에서만이 아니라 걷는 길에 있는 음료 가게에서도 받을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길 위에 개인이 작은 장소를 마련하여 도장을 찍고 갈 수 있도록 편의를 베풀기도 한다. 심지어는 과일 같은 것을 준비해놓고 그 옆에 돈 통을 놓아둔 곳도 있다. 100km를 걷고 확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하루에 최소 두 곳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버스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실상 까미노 길에는 특별히 정해진 루트가 없다. 여름에 텐트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에는 자신이 걷는 길이 곧 순례길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젊은 남녀 한 쌍은 겨울인데도 텐트도 없이 다니며 하루 2유로 이상 쓰는 것을 금지하고 집을 두드려 잠자리를 얻는 것을 기준으로 걸어 다니는 경우도 보았다. 표지판이 잘 되어 있고 알베르게가 계속 이어지는 길로 가장 유명한 코스는 프랑스 길이고, 그다음이 포르투갈 길과 북부 해안가 길이다. 순례자의 약 80%가 프랑스 길을 이용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보통 완주를 목적으로 하기에 한 달 이상을 걸어야 하는데, 유럽인들은 휴가를 이용하여 1주일이나 열흘 단위로 걸어 몇 년에 걸쳐 완주하는 경우도 많다. 또 어떤 경우는 아예 자신의 집에서 순례 여정을 시작하고 끝마치는 경우도 많아 몇 개월씩 걷는 사람도 있다.

쩨나루짜 수도원
10kg에 가까운 배낭을 메고 매일 25km 이상의 산길을 걷다 보면 절로 물집이 생긴다. 아마 100명 중 90명은 발에 물집이 생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선 두 번의 순례길에서는 물집이 생기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새 신발 때문인지 첫날부터 물집이 생겨 한동안 고생을 하였다. 물집이 생긴 것을 억지로 참고 이틀을 연속해서 걸었더니 결국 성이 나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악화되고 말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머물게 된 장소가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쩨나루짜(Zenarruza) 수도원이 있는 곳이다. 지금 4일째 이곳에 머무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까미노 길을 걸으면서 수도원을 몇 개 지났지만, 수도원에서 순례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대체로는 아예 공개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새벽 5시 30부터 저녁 9시 30분 사이에 하루 7번 진행되는 기도회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기도회는 주로 그레고리안 형태의 노래로 화답하면서 드리기에 책을 보면서 따라 할 수도 있다. 나로서는 새로운 찬송예배를 접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고 있다.
이 수도원은 10세기 후반에 처음 세워졌고, 성당은 16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세워졌다. 실내 장식과 건축 양식도 매우 흥미롭지만, 성당 안에 있는 두 개의 파이프오르간이 이목을 끈다. 하나는 2층 뒤편에, 다른 하나는 정면 오른쪽에 놓여 있다. 뒤의 것은 17세기 중엽, 앞의 것은 18세기 중엽에 만들어졌다. 바로크 양식이라고 한다. 두 개가 서로 100년의 차이가 있는데, 만든 장소가 같은지 전체 형태가 비슷하고 파이프의 수도 같다. 다만 옛것은 밟는 페달이 없고 무릎으로 누르는 페달이 두 개 있으며, 가운데 소리관이 밖으로 나와 있다. 마치 소프라노와 테너 두 성악가가 노래하듯 앞에 있는 것은 여성 소리가, 뒤에 있는 것은 남성 소리가 나서 묘하게 어울린다.
까미노 길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일정과 경험은 그날그날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올리고 있으니 이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사실 내가 이 까미노 길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약 30년 전 미국 공항에서 우연히 고른 까미노에 관한 책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의 유명 여배우가 60대 중반에 인생의 아픔을 경험하고 혼자 한 달 동안 이 까미노를 걷고 나서 일기체로 작은 책을 냈는데, 이것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미국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스페인 사람의 10% 이상은 까미노 길을 걸은 경험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등산을 하듯 스페인 사람들 또한 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걷는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은 순례자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이다.(그러나 요즘은 소매치기들도 가끔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대략 10년 전부터 알려졌고, 제주 올레길도 여기에서 영향을 받아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한국 사람이 걷고 있으며,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펴낸 책만 해도 수십 가지가 된다. 길에서 만난 다른 나라 순례자들은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이곳을 많이 찾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왜 그럴까? 나는 목사로서 신앙적인 이유로 순례길을 경험하는 측면도 있지만, 신앙과 관계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까미노 길에 그렇게 몰입할까? 까미노 길은 단순한 여행길이 아닐뿐더러 우리나라 둘레길과도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온종일 산속을 걸어야 할 때도 많고, 비나 눈을 만나게 되면 낭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이유는 어쩌면 남북 분단과 대결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젖어든 죽음의 문화를 떠나 자유를 경험해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까미노 길에는 천년의 역사가 숨어 있고, 심지어는 로마시대의 역사 유물을 보게 되는 경우도 많아 역사공부를 하는 측면도 있다.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안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해서 유럽 역사의 일부분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길에서 만나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의 만남 또한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기쁨을 준다. 여기 순례길에 대한 또 다른 이유를 찾아본다.

걷기는 저항
작년에 가지고 다닌 책이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의 『걷기의 인문학』(Wanderlust: A Histotory of Walking)이다. 글쓴이도 매우 탄탄하게 글을 썼지만, 김정아 씨의 번역 또한 매우 탄탄하다. 걷기에 대한 여러 사상가들의 철학적 사색, 그리고 사색을 넘어 행동과 실천을 동행하는 삶의 나눔을 다룬 책이다. 내용의 깊이와 폭, 그리고 작은 활자와 책의 부피로 볼 때, 일반 서적 3권에 맞먹는 분량이다.
저자가 쓴 서문의 첫 문장이다. “지난해 한국 사람들이 부정한 정권에 맞서 뭉치는 모습은 감동적이고 경이로웠습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습니다. 공적 공간으로 걸어 나오는 비무장 시민들이 엄청난 힘이라는 것, 때로 자치의 힘이기도 하고 때로 압제 정권, 불량 정권을 막아내는 힘이기도 하다는 것은 이 책의 주제 중 하나입니다.”
본문 첫 문장 또한 나의 시선을 확 끌어당긴다. “길을 걸으면서 자기 몸의 힘을 느끼는 경험, 집 밖에서 집처럼 편하게 느끼는 경험, 스스로를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고 느끼는 경험, 낯선 사람들과 공존하는 경험입니다.” 우선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으니 집처럼 편하게 지내기는 쉽지 않지만, 내 삶을 ‘도상의 나그네’로 인식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혼자 다니면 다른 이들과 같이 다니는 경우보다 위험성은 높다. 까미노 길이 아닌 유럽과 남미 지역에서 몇 차례의 소매치기단을 만났다. 그때마다 임기응변과 주변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것은 없지만, 표적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을 포함한 낯선 이들과 공존하는 기술을 배우는 건 삶의 지혜이자 축복이다.
솔닛은 말한다. “정신과 육체, 내면의 성찰과 사회의 결성,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도시와 시골, 개인과 집단, 이 양쪽은 대립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대립하는 듯한 두 항이 이 책에서는 보행을 통해 하나로 연결됩니다.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그렇다. 나도 그러하지만, 사람들이 까미노를 걷는 것은 일종의 저항이 아닐까? 자본주의로 인한 경쟁과 물질 욕망에 대한 저항 말이다. 실제로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사람들은 걷기를 통해 찢어진 곳을 꿰매고자 한다. 영혼의 치유를 위해서이다. 나 또한 내 삶의 찢어진 곳과 사회의 찢어진 곳을 새롭게 회복하기 위해 걷는다.

일상의 기적
혼자 걷다 보면 외로움은 물론이고 먹는 것과 자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아니 걷는 일조차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걷는 것은 바로 이를 통해 자유를 느끼고 저항을 배우기 때문이다.
2년 전 어떤 독일인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40대 후반의 매우 건장한 사람이었는데, 그는 당시 10년째 까미노 길을 걷고 있었다. 돈은 한 푼도 쓰지 않았다. 텐트에서 잠을 자고, 남이 나누어주는 것을 먹거나 굶는다.(구걸하지는 않는다. 다만 서로 얘기를 나누다 보면 먹을 것을 나누게 된다.) 사실 그는 당시에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가 까미노를 걷게 된 연유를 말한다. 서울에도 다녀간 적이 있는 그는 원래 자동차 엔진 기술자였다. 병으로 아내를 먼저 보낸 후 아들딸을 돌보면서 열심히 일하던 어느 날, 그는 노년의 일본인 여행객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 노인에게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하였으며, 그 노인이 무일푼으로 10년째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등의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그 노인은 하늘로부터 부름을 받는다. 고등학생인 자녀들이 혼자 앞길을 헤쳐갈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그 길로 집을 떠났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딱 한 번 집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는 핸드폰도 없었다. 작은 성서 하나를 들고 다니면서 기도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에게 남북통일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에게서 들은 기적과 같은 이야기가 많다. 한번은 3일을 굶고 걸어가는데 버스 정류장에 피자 세 박스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혹 주인이 가지러 올까 봐 세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 하늘이 준 선물로 여기고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또 이탈리아에서는 몇 날 며칠을 비가 오는 밤길을 걸어야만 했는데(이탈리아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텐트를 치지 못한다.) 가다 보니 홍수에 의해 다리가 끊어져 있어 가던 길을 되돌아 가야만 했다. 그때 갑자기 차에서 한 여성이 내리더니 어젯밤 꿈에 그를 보았다고 하면서 그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서 먹여주고 하루를 재워주더라는 이야기도 생각난다. 물론 그는 생전 처음 본 여성이었다고 한다.
나 또한 짧지만, 까미노를 걸으면서 전연 예상할 수 없는, 그래서 ‘기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일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2년 전 프랑스 길을 걸을 때의 일이다. 겨울에는 해가 짧고 알베르게 숙소는 먼 거리에 있어 새벽 5시 30분에 숙소를 나섰다. 도시를 벗어나 들판 길로 접어드는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참새 한 마리가 내 앞에 날아와 앉더니 내가 다가가면 살포시 날아서 3-4m 앞으로 가고, 또 다가가면 3-4m 앞으로 가기를 너댓 번 반복했다.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생각하며 걷는데, 갑자기 이 참새가 길 반대편으로 훌쩍 날아갔다. 아! 그런데 바로 거기에 노란색 화살표와 함께 까미노 길을 상징하는 조개껍데기 길 표시가 있는 것이었다. 만약 그 표시를 지나쳤다면 한참을 가서야 되돌아왔을 것이고, 그날 목적지까지 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저마다 한두 가지의 기적과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제 하루를 함께 보내고 같이 잠을 잔 젊은 독일 친구는 아침에 길을 떠나면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디에서 연유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까미노 길을 걷는 사람들끼리 하는 인사말이 있는데(보통은 ‘뷰엔 까미노!’라는 스페인 인사를 한다.), ‘하우이데’라고 말하면 그 말을 받아 ‘이데우데’라고 답한다고 한다.(바로 적어놓지 않아 발음이 정확한지 자신이 없다.) 앞의 말은 ‘계속 앞으로 앞으로 끊임없이 걷는다.’라는 뜻이고, 뒤의 말은 ‘그래서 천국까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도상의 나그네. 우리는 모두 길 위의 나그네이다. 아브라함의 축복이란 다름 아닌 이 도상의 축복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을 쌓는 자 망하리라.” 이 말은 몽골의 어느 장수가 남긴 말이다. 아파트 한 평을 넓히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도시문명, 그것은 문명이 아닌 죽음의 길이다. 잘 알려진 톨스토이의 우화가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서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말뚝을 박아놓은 모든 땅을 주겠다는 왕의 말을 들은 어느 신하가 아주 신이 나서 지평선 너머까지 말뚝을 박고 해가 지기 직전에 겨우 돌아왔는데, 그만 왕 앞에서 보고를 함과 동시에 너무 지친 나머지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현대인들이 맞게 될 삶의 종말이 이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게 무엇일까? 까미노는 바로 이러한 신기루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도전이자 모험이다. (다음 호에 계속)


조헌정 | 신약학(역사적 예수)을 전공하였다. 저서로 『양심을 습격한 사람들』 등이 있다. 예수살기 상임대표, 「현장언론 민플러스」 이사장, 평화통일연구소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11월호(통권 7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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