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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18년 9월호)

 

  3・1운동 100주년과 통일
  

본문

 

여는 글
3・1운동 100주년이 다가온다. 1919년 3・1운동으로부터 시작된 한국 현대사는 영욕(榮辱)이 수없이 교차하는 ‘반전(反轉)의 역사’이다. 일제강점기 선조들은 식민지 백성으로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도 3・1운동을 계기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구심점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광복을 쟁취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을 누릴 겨를도 없이 분단의 아픔을 겪었고, 다시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규모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했다.
전쟁의 폐허로 세계 최빈국이 된 대한민국은 1960, 70년대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1960년 4・19혁명으로부터 출발하여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거친 후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민주화의 커다란 진전을 이룩했다. 1세기도 지나지 않은 기간에 역사의 대변혁과 함께 정치와 경제에서 모두 기적을 경험한 것이다. 20세기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2018년 한반도는 또 다른 역사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4월 27일 판문점에서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선언이 가시화되었다. 섣부른 예견이지만 평화협정으로 발전할 수 있는 로드맵이 제시됨으로써 통일국가로의 가능성도 대두하고 있다. 평창올림픽에 이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일부 종목에서도 남북한 단일팀이 구성되면 통일코리아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어느 시점에서 통일국가 논의가 이루어지고 7,000만 민족이 공유할 헌법을 마련한다면, 그 정신은 어디서 출발해야 할까? 현행 대한민국헌법 전문을 보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덧붙여 문재인 정부는 남북한 공동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제안했다. 과연 3・1운동(정신)은 통일코리아를 세우는 초석이 될 수 있을까?


그간의 3·1운동과 통일운동
1) 천도교계의 3·1운동과 통일 이념

3・1운동을 통일운동과 처음 연계한 곳은 천도교이다. 천도교는 1948년 3월 1일을 기해 3·1재현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남과 북에서 미·소 양군의 점령 아래 각기 다른 사회체제의 단독정부를 수립, 민족의 영구분열을 획책하려는 것을 저지하고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운동이었다. 선언문의 공약 5장에 구체적인 실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1

3·1재현운동 선언서 ‘공약 5장’
이 평화통일운동은 국토의 분단과 역사의 분단, 민족의 분열을 저지하고 오로지 구국대오인 통일의 길로 매진하는 것이다. 우리의 운동과 목표는 정의·인도와 민족대의를 재현시키는 구국 통일운동임을 거듭 밝히는 바이다.
1.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사에 의거치 않은 어떤 정치체제, 어떤 경제구조도 단호히 이를 배격한다.
2. 우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국토통일과 민족단결을 저해하는 모든 세력의 책동을 봉쇄한다.
3. 우리는 유엔의 결의를 성실히 수행하며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입북을 환영한다.
4. 우리는 남북통일정부가 수립되기 최후 일각까지 이 운동을 계속한다.
5. 우리는 이 운동을 비폭력·무저항주의로 일관한다.


이 운동은 남북한 천도교가 공동으로 추진했으나, 북한에서는 사전에 발각되었다. 김일성은 2월 25일부터 접주(接主) 이상의 간부급 1만 7,000명을 검거하고, 천도교의 근간을 이루는 포제(包制)를 철저히 파괴했다. 이때 황해도 신계와 평북 영변에서 대규모의 반대시위가 일어나서 87명이 처형당했기 때문에 이를 반공운동으로 오해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천도교의 ‘조선식 신민주주의’에 입각한 민족통일운동이었다.2 1997년에 월북한 전 천도교 교령 오익제는 3・1정신을 ‘민족 화합・자주 자결・평화・민주주의’로 정의한 후 통일 이념과의 관련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마디로 우리의 통일이념은 무엇인가? 바로 3・1정신이 통일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것이다. 통일은 남북의 사상이 갈라지기 이전의 ‘우리 민족 고유의 정통사상’으로 귀일하여 민족주체사상을 살리는 데서 사상의 대립을 초월하고 포용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3·1정신과 민족주체정신을 떠나 다른 어떤 특정의 외래사상에서 통일 이념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3


2) 기독교계의 3·1운동과 통일운동
• 3・1절 50주년 기념행사 - 1946년 3월 1일 광복 후 처음으로 맞는 3・1절을 앞두고 서울에서는 ‘기독교 남부대회’가 주도하는 기독교, 천도교, 천주교, 대종교, 유교, 불교의 6대 종단 대표 50여 명이 수운회관에 모여 ‘기미독립선언 3・1전국대회’를 결성하였다. 명예대회장에 이승만, 김구, 김규식 3인을 추대하고, 대회장에 김관식, 부회장에는 각 종단 대표 1인씩을 선정하여 서울운동장에서 전국대회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좌익에서 박헌영, 허헌, 여운형 3인을 명예대회장에 추가하는 공동대회를 제안해왔으나 우익은 이를 거절하였다. 그렇게 우익은 서울운동장에서, 좌익은 남산광장에서 따로 기념행사를 진행하였다. 이후 1948년까지 ‘기독교 남부대회’가 주동하는 3・1절 행사가 거행되었으나, 정부 수립 후에는 정부 주도로 3・1절 기념식이 행해졌고 종교계에서는 별도의 행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69년 3・1절 50주년을 맞아 한국기독교연합회(NCC)가 중심이 되어 3・1독립운동기념대회를 독자적으로 거행하고 김재준, 지명관, 박형규 등이 작성한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우리는 이 땅에 믿음과 사랑을 구현하기 위한 기독자로서의 시대적 책임을 엄숙히 다짐한다. 국토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민족의 생존과 번영이 위협받고 있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은 유린되고 정치적 정의의 실현은 요원하며 행정의 시행착오는 되풀이되고 있다. …기독자는 잘못된 사회구조와 불의한 정치와 부패한 풍조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반역임을 확인하고 이에 항거하며 개혁하는데 나선다. 참된 인간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선한 세력과 힘을 합칠 것이다. 이 길을 가려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새 용기를 주실 것을 우리는 믿는다. - 3・1독립운동 기념대회4

그러나 정작 그날 주목을 받은 것은 50주년 선언문이 아니라 백낙준의 기념사 내용이었다.

고통이 없이는 구속(救贖)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3・1독립운동의 연장이 되는 조국 통일의 과업이 있습니다. 이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우리가 당하는 고통의 성질은 다를지라도 수난이 있어야만 구속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조국을 통일하고 민족을 결합하여야만 3・1독립운동에서 미진한 사업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5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조국 통일과업’에 두고 실천의지를 밝힌 백낙준의 기념사에 대해 정일권 국무총리는 치사를 통해 “기독교가 민족사에 남긴 업적이 크다. 교회가 오늘의 조국 근대화와 통일과업에 지주가 되어주길 바란다.”라고 화답했다. 이것은 이듬해인 1970년 3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전국 대다수의 교회가 3・1절 기념예배를 드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1972년 ‘10월 유신’이 단행되고 비민주적 상황이 악화되자 3・1절 기념행사도 단순한 행사로만 머물지 않고 인권문제와 민주회복을 주장하는 세미나와 기도회 등으로 변화되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76년 3・1절에 발표된 ‘민주구국선언’이다.6

• 민주구국선언과 60주년 선언문 - 1976년 3월 1일 윤보선, 김대중, 함석헌을 비롯한 재야 정치인, 신부, 목사, 교수 등이 ‘민주구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유신체제하에서 일어난 최대의 반정부선언 사건이었다. 3・1절 57주년을 맞아 명동성당에서 약 700명의 신자가 기도회를 열고 투옥 중인 정치범들을 위한 미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요지의 민주구국선언문이 발표되었다.

오늘로 3・1절 쉰일곱 돌을 맞으면서 우리는 1919년 3월 1일 전 세계에 울려 퍼지던 이 민족의 함성, 자주독립을 부르짖던 그 아우성이 쟁쟁히 울려와서 이대로 앉아 있는 것은 구국선열들의 피를 땅에 묻어 버리는 죄가 되는 것 같아 우리의 뜻을 모아 민주구국선언을 국내외에 선포하고자 한다. …우리의 비원(悲願)인 민족통일을 향해서 국내외로 민주세력을 키우고 규합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전진해야 할 이 마당에, 이 나라는 일인독재 아래 인권은 유린되고 자유는 박탈당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여·야의 정치적인 전략이나 이해를 넘어 이 나라의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민주구국선언’을 선포하는 바이다. …민족통일은 오늘 이 겨레가 짊어진 지상의 과업이다.…

이 선언문은 3・1운동의 궁극적 과제인 민족통일 과업을 달성하기 위한 민주구국의 결단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때 문익환, 서남동 목사를 비롯한 11명이 구속되고, 7명이 불구속으로 기소되자 NCC는 ‘3・1 성직자 구속사건 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해마다 3・1절을 전후하여 대대적인 연금 및 연행 사태에도 불구하고 3・1절 기념예배와 구국금식기도회가 계속되었고, 1979년에는 3・1절 60주년 기념예배가 연동교회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분위기로는 ‘3・1정신’과 ‘민주주의’와 ‘통일’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되었고, 이를 방해하는 군사독재정권과의 투쟁이 곧 민주화운동을 의미했다.
한편 보수 성향의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도 새문안교회에서 3・1절 60주년 선언문을 발표했다.

3・1정신의 고귀함은 국가의 독립과 국민의 자주성을 제창하는 것이며 인류 평등 원리에 입각하여 생존의 권리를 되찾는 데 있다. 그러나 통일이 없이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없고 통일이 없이 온전한 민족의 독자적인 생존 권리를 누린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남북평화통일을 염원하고 있으며, 이 대업이 성취될 때까지 5천만 겨레가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7

선언문에 ‘통일이 없이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없고, 통일이 없이 온전한 민족의 독자적인 생존권을 누린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남북평화통일을 염원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한국교회가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를 떠나 3・1정신의 현재적 의의를 ‘통일’로 귀결하였음을 알 수 있다.


3·1정신은 통일 이념이 될 수 있을까
남한과 북한은 5,000년 민족사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역사관에 의해 역사를 인식해왔다. 그 결과 3・1운동에 대한 역사 해석도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훨씬 더 많다.
첫째, 명칭의 차이점이다. 남한은 ‘3・1운동’으로, 북한은 ‘3・1인민봉기’로 부른다. 남한에서는 독립운동의 성격을 강조하는 데 비해, 북한은 계급투쟁이라는 시각에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둘째, 3・1운동이 일어나게 된 외부 요인으로 남한에서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북한에서는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직접적인 요인으로 지목한다. 셋째, 3・1운동을 주도한 세력으로 남한에서는 발발단계에서 민족대표 33인의 역할을 중시하는 데8 비해, 북한에서는 민중의 역할을 주장하며 김형직(김일성 부친)이라는 특정 인물을 부각시킨다. 넷째, 3・1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다르다. 남한에서는 독립이라는 목적을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독립운동을 조직화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북한은 실패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원인을 ‘영도자의 부재(不在)’로 파악하면서 김일성 중심의 항일무장독립투쟁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필연성을 부여한다.9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이처럼 3・1운동에 대한 인식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현실에서 통일코리아의 국가 이념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통일코리아운동을 주창하는 배기찬은 이렇게 제안한다.

분단 70년인 2015년을 맞아 시작되는 통일대장정은 통일의 새로운 나라를 목표하고 있습니다. 통일코리아(united korea)는 ‘모든 사람은 존엄하다. 따라서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인간 사회의 핵심가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통일코리아는 ‘존엄한 인간이 생명권과 자유권, 행복추구권을 누리며 그에 합당한 의무를 다하는 민주공화국입니다. - ‘통일대장정 취지문’(2015. 1. 15.)

이어 그는 ‘자주’와 ‘민주’, ‘인간 존엄’의 가치와 그들 사이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한다.

자주(自主)가 중요한 가치이기는 하나 민주(民主)가 더 중요한 가치이며, ‘모든 인간의 존엄’이 더 본질적인 가치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인 모든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 위에 민주적 체제를 확립하고, 민주적 체제 위에 자주·통일 등의 정책들이 배치되어야 한다. - 배기찬의 ‘통일 편지’(2015. 3. 26.)

배기찬이 주장하는 ‘자주·민주·인간 존엄’의 가치는 3・1독립선언서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공약 3장의 1항 “오늘 우리의 이 거사는 정의·인도·생존·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하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라는 내용과 상통함을 보여준다.


맺는말
기미독립선언서에는 자주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이유가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우리는 조선이 자주독립국임과 우리 국민이 자주민임을 선언하여 우리의 자주성과 독창성을 주장하고, 인류의 평등사상과 세계 평화와 인류의 공존공영을 주창하노라.

3・1운동의 궁극적 목표는 조선이 자주독립국가임을 선포하고 세계 평화와 인류의 공영공존에 기여하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 대립하면서 외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분단된 한반도는 미완성의 독립국이며 그 지향점은 자주적인 통일국가 건설이다. 따라서 지난 시기 ‘3・1정신’과 ‘민주주의’와 ‘통일’을 동일한 맥락에서 인식하고, 통일을 방해하는 독재정권과의 투쟁이 곧 민주화운동임을 의미했다.
3・1정신에 기초한 통일국가는 세계평화와 인류의 평등, 공존공영에 기여해야한다는 점에서 통일코리아는 이제까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국가이다. 그것이 ‘1국가 1체제’ 단일국가인가, 아니면 ‘1국가 2체제’의 연방제국가인가 하는 형태와 체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인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북한식 사회주의와 OECD 자살률 1위 남한식의 자본주의를 놓고 이분법적으로 선택하는 통일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새롭게 추구하려는 통일코리아는 분단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재통일’(reunification)이 아니라, 3・1정신이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정신이 존중되는 바탕 위에서 정의·인도주의·공존공영을 찾는 ‘새 통일’(new unification)이다.
필자는 지난 2000년에 출간된 전우택의 『사람의 통일을 위하여』를 읽고 도전을 받았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1961년생 동갑내기 탈북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비교한 이 책은 진정한 통일이란 당시 우리 정부가 지향하던 국토통일이나 체제통일이 아니라, 사람의 통일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당시 북한을 다니며 인도적 지원활동을 펼친 필자는 이 책을 계기로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필자의 자의적 판단일 수도 있지만, 남북한의 이질화는 상호 간에 극복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순박한 삶은 잃어버린 우리의 옛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의료인 일행들이 병원에서 북한 의료인을 만났을 때나 농업 기술자들이 농장에서 북한 농민을 만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 통일은 금방 이루어졌다. 이데올로기가 필요 없는 삶의 현장에서 만난 남북한 주민의 이질화는 별다른 난관이 없었다. 대화에서 ‘서로 다름’의 문제는 있었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었다. 필자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남북통일과 사회통합은 가능하다는 나름의 결론을 얻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탈북자의 국내 적응 상황을 보고 통일 이후 남북한 주민의 통합문제를 우려하지만 탈북자와 북한주민집단의 경우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필자는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에 대한 단상을 수없이 가졌다. 그리고 인도적 지원을 위해 북한을 출입하는 국제 NGO 단체들을 보며 그간 별로 주목하지 않은 사실 한 가지를 되새기게 되었다. 북한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독재자, 독재정권이 아니라 북한 사람의 생존(생활)에 있었고, 그들의 이념은 지구촌시대를 사는 인류의 공존공영이었다. 한마디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필자가 통일을 한민족만이 아니라 세계인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 것도 그러한 현장 경험 때문이다. 통일코리아가 지향해야 하는 이념은 8,000만 한민족(남북한 주민, 해외동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다문화가정)이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을 위하여 올바른 역할을 감당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 3・1운동 100주년이 다가온다. 3・1운동의 궁극적인 완성은 자주적인 통일국가 건설이다. 새로운 통일국가 건설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와 생존권을 보장해줄 근본적인 해결방안일 뿐 아니라, 남한 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우리가 통일국가의 근간이 될 이념을 3・1정신에서 찾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훈이다.

1 박연수, “3・1재현 평화통일운동의 역사의식을 바르게 하자,” 「신인간」(1991. 3): 46.
2 탁암, “분단 저지운동–3・1재현운동의 재고찰,” 「천도교월보」(1988. 8)
3 오익제, “3・1정신과 통일이념,” 「신인간」(1985. 3): 12.
4 정지강, “한국교회 3・1운동 의식화과정,” 「기독교사상」(1984. 3): 99-100.
5 「크리스천신문」, 1969. 3. 8.
6 정지강, 위의 글, 98-102.
7 「크리스천신문」, 1979. 2. 28.
8 김형석, “3・1운동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역할,” 「기독교사상」(1991. 3): 37-48.
9 염주희, “3・1운동에 대한 남북역사교과서 서술내용 비교분석,”(이화여대교육대학원 석사학위청구논문, 2006): 31-35.


김형석 | 역사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로 『광주, 그날의 진실』, 『한국교회여 다시 일어나라』 등이 있다. 현재 통일과역사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8년 9월호(통권 7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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