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한희철 목사의 내가 친 밑줄 21
교회와현장 (2018년 9월호)

 

  매화꽃들 별처럼 터지던
  

본문

 

이삭 덜 털린 볏짚 쑤셔넣으면
아, 빠알간 비단 펼쳐지고
매화꽃들 별처럼 터지던
어린 시절의 아궁이속–

내일은 누가
저녁놀 속에 나를 던져

어느 밤하늘에 샛별 뜰까

- 김영무, <아궁이 속>(『산은 새소리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 중에서



같은 대상을 본다고 모두가 같은 방법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소 닭 보듯’ 볼 수도 있고, ‘눈여겨볼’ 수도 있다. 세상 어디에 살아도 사람의 마음이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이런 차이는 한문에도 나타난다.
‘견’(見)은 사물의 외형이나 현상을 자기 식대로 보는 것이어서, 의견과 견해의 차이로 갈등이나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시’(視)는 어떤 입장에서 보는 것으로, 보는 입장에 따라 시각차가 생겨난다. ‘관’(觀)은 중심에서 보는 것으로, 꿰뚫어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심에서 바라보니 한쪽으로 치우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간’(看)이라는 글자 모양을 보면 ‘눈 목’(目) 자 위에 ‘손 수’(手) 자를 얹었다. 눈 위에 손을 대고 바라보는 형상이다. 손으로 빛을 가리며 세심하게 살피는 모습인데, 그런 까닭에 그냥 대충 보아 넘기는 것을 우리는 ‘간과(看過)한다’고 한다.

시인은 어떤 것도 허투루 보질 않는다. 심지어는 기억까지도 그러하다. 시인의 마음에 남아 있는 유년 시절 기억 중에는 아궁이에 대한 것도 있다. 이삭 덜 털린 볏짚을 태운 기억이다. 유난히 날은 춥고 땔 것은 궁했던 시절, 땔 수 있는 모든 것은 아궁이로 들어갔다. 이 산 저 산 다 잡아먹고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아궁이 아닌가.
아궁이 속에 이삭 덜 털린 볏짚을 쑤셔 넣고 태워본 이는 알 것이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빠알간 비단’이 무얼 말하는지를 말이다. 이글거리며 타는 볏짚이 만들어내는 검붉은 불빛은 영락없는 빠알간 비단이다. 그냥 비단이 아니라 햇살과 바람에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비단이다. 빠알간 비단이라는 말 앞에 다른 말들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그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매화꽃들 별처럼 터지는’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기억 속 빛바랜 사진처럼 남아 있던 순간을 살려낸다. 덜 털린 이삭들은 불 속에서 팝콘처럼 터진다. 하얗게 터진다. 순간 아궁이 속은 붉은 비단에 매화꽃이 별처럼 피어나는 별천지가 된다.
유년 시절의 기억은 현실로 다가온 인생의 황혼을 돌아보게 한다. 시인은 사라짐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집의 발문을 쓴 김광규 시인은 4행으로 구성된 첫 연이 반씩 줄어서 셋째 연은 1행이 되고, 넷째 연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생(生)은 유한하다. 그럴수록 눈여겨본다면 매 순간은 붉은 비단 아궁이 속 매화꽃들처럼 별처럼 핀다. (한희철/정릉교회)

 
 
 

2018년 11월호(통권 719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