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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18년 6월호)

 

  「복음과 세계」(福音と世界) 편집 동향, 2018년 1-4월
  

본문

 

일본에서 가장 역사 깊은 기독교 출판사 가운데 하나인 신쿄출판사(新教出版社)는 매달 신학 잡지 「복음과 세계」(福音と世界)를 발행하고 있다. 일본의 「기독교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저널이다. 이 지면을 통해 2018년 초반의 특집 주제와 기사 등을 살펴보고 일본 신학계의 동향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는 한일 기독교 신학의 현재를 비교함으로써 미래의 교류와 연대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18년 1월호–기독교와 근대 일본: 메이지 150년을 생각하다
올해는 소위 ‘메이지’(明治) 원년인 1868년으로부터 150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현재 일본의 아베 정부 및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촉발과 깊은 관계를 지닌 각 지방자치단체는 올해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로고와 마크를 만들고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자 애쓰고 있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이른바 ‘메이지 정신’을 가르치고 ‘일본의 강력함’(日本の強み)을 재인식시키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여기서 말하는 메이지 정신이란 ‘기회의 평등’, ‘도전정신’, ‘화혼양재’라고 일본 정부 홈페이지에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복음과 세계」는 신년호를 통해, 일본의 강력함 혹은 메이지 정신을 찬양, 고무하는 일본 정부의 국수주의적 행태를 오히려 비판하며 근대 일본 150년의 발걸음을 기독교와의 관계성 속에서 고찰해보려 하였다. 그렇게 정해진 특집 주제가 ‘기독교와 근대 일본: 메이지 150년을 생각하다’(キリスト教と近代日本: 「明治150年」 を考える)이다.
메이지유신으로부터 전후 7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근현대사 내에는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서 형성된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있다. 이 특집은 우선 그 점에 집중하여 메이지 정부가 만들어낸 일본식 정교분리, 그리고 일본식 인권 개념이 서구와 달리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어떤 역할을 감당했는지 살펴보았다. 이 주제는 도쿄기독교대학에서 일본 기독교사를 가르치는 야마구치 요이치(山口陽一) 교수가 쓴 “근대 일본의 형성과 교회사”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메이지 150년이 메이지의 현창(顯彰)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하에, 국가신도 체제의 형성과 기독교의 관계를 ‘배제로부터의 공존’이라는 관점에서 살폈고, 신론(神論)과 기독론(基督論)에서의 과제, 선교와 사회실천에서의 다양한 공헌에 대해 고찰했다.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기독교단 나가사키평화기념교회의 모리시마 유타카(森島豊) 목사가 “인권 법제화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감당한 역할”이라는 글을 썼다. 그는 최근 『인권 사상과 기독교』라는 책을 발간한 젊은 학자이다.
다음으로, 복음주의 기독교와 더불어 일본에 전파된 ‘젠더’ 혹은 ‘섹슈얼리티’의 새로운 담론들이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다루어졌다. 도쿄여자대학에서 여성사와 미국교회사를 가르치는 고히야마 루이(小檜山ルイ) 교수는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와 근대 일본의 젠더・섹슈얼리티”라는 제목의 글에서 “100년 이상을 거치면서 복음주의 기독교와 함께 영미의 결혼과 가정 습관이 일본에도 배양되어 왔지만,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의 파도 또한 거역할 수 없어서 그러한 복음주의적 성 규범과 이상적 가정상 등이 ‘이름 없는 억압’으로 존재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각성시켜 왔다.”라고 평가했다.
그밖에도 오비린대학의 스구로 스스무(勝呂奏) 교수는 “기독교와 근현대 문학의 작가들”이라는 주제를, 세가쿠인대학 학장인 시미즈 마사유키(清水正之) 교수는 “메이지의 도덕철학과 기독교: 니시무라 시게키(西村茂樹)의 『일본도덕론』을 통해”라는 글을 소개했다. 이 글에서는 최근 아베 정권이 퇴행적 도덕 교육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기독교계의 비판적 성찰이 이루어졌다. 편집부는 기획 의도를 통해 “이들 논고를 통해 메이지 정부가 시도한 이른바 ‘근대화’의 과정이라는 것이 결코 현 정부의 말처럼 눈부시게 훌륭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일갈하였다. 특집 바로 다음 기사로서는, 일본의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프로그램 위원인 후지와라 사와코(藤原佐和子) 씨가 “아시아기독교협의회 60주년에 개최된 아시아선교회의”라는 보고서를 게재
했다.

2018년 2월호–웃는 기독교
한국의 ‘개그콘서트’와 비슷한 영국의 코미디 집단 ‘몬티 파이선’(Monty Python)이 있었다. 이들은 성서에서 착안한 영화 <브라이언의 삶>(Life of Brian, 1979)을 만들었다. 크리스마스 밤, 아기 예수가 잠든 마구간 근처 집에서 브라이언이라는 청년도 태어났다. 그런데 누추한 마구간에서 인류의 구세주가 태어날 리 없다고 생각한 로마의 군대는 예수 대신 브라이언을 붙잡아 가 십자가에 처형한다는 블랙 코미디 영화이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십자가 언덕에서 주인공과 수형자들은 이런 노래를 부른다.

인생이 찌꺼기를 던져줘도 투덜대지 말고 휘파람이나 불어. 그게 최선이지.
그리고 늘 삶의 밝은 면을 보라고!
잘 보면 산다는 건 똥이지, 삶은 웃음거리, 죽음은 농담거리.
그러니 늘 죽음의 밝은 면을 보자고, 마지막 숨이 넘어가기 전에….


이는 영화의 마지막 크레딧과 함께 울려 퍼진 <언제나 삶의 밝은 면을 봐!>(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라는 노래인데, 십자가에 매달려 해맑게 웃는 역으로 등장했던 에릭 아이들(Eric Idle)이 2012년 런던올림픽 폐막식에서 70세의 나이로 직접 부르기도 했다. 이 노래는 포클랜드 전쟁 당시, 격침된 영국 군함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군인들이 합창하였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많은 영국인들은 장례식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지금은 영국의 중요한 문화로까지 자리 잡은 이 영화와 노래는, 처음 공개되었을 때 기독교와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였고, 상영금지 처분까지 받았다. 하지만 영화 속의 웃음은 오히려 권력의 모순을 들춰내며, 인간의 해학, 무언가에 휩쓸린 집단의 심리, 완고한 종교의 교리 등을 향해 여러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현대의 기독교는 이 작품을 통해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호교론에 함몰된 나머지 융통성을 잃어버린 스스로를 보게 된다. 이때 ‘웃음’이란 그 깨우침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런데 과연 기독교에서 이 웃음이라는 것이 그동안 적절하게 공존하였는지 묻게 된다. 경건이라는 이름하에 근엄함과 권위 등이 강조되고 이와 동시에 기독교의 메시지도 함께 경직되어버린 측면은 없을까? 교회 현장에서는 과연 어떤 형태의 웃음만이 요구되고, 허용되고 있을까? 예수는 언제, 어떤 마음으로 웃고 계셨을까? 히브리 성서에서는 웃음이 어떤 위치에서 다뤄지고 있을까? 코미디 영화와 기독교의 관련성 속에서도 배울 것이 있듯이, 웃음의 배후에 존재하는 사회 구조와 그 안에서 움트는 인간 감정의 깊은 곳까지 살펴보고자 하는 시도로서 「복음과 세계」 2월호는 ‘웃는 기독교’(笑うキリスト教)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우선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기독교문화센터 소속의 코시카와 히로히데(越川弘英) 교수가 “실천신학과 웃음”이라는 글을, 오사카에 있는 모모야마가쿠인대학(桃山学院大学)의 타키자와 부진(滝澤武人) 교수가 “예수의 웃음을 되찾자!–미소와 한 방울의 눈물”이라는 글을 통해 교회 현장에서 웃음의 회복 문제를 다루었다. 이어서 히브리대학에서 유학한 뒤 도쿄대학, 릿쿄대학 등에서 가르치는 이이고 토모야스(飯郷友康) 선생이 “웃음의 모습–구약성서와 웃음”을, 『시네마의 종교미학』이라는 책을 쓴 영화평론가 핫토리 코이치로(服部弘一郎) 씨가 “코미디 영화와 기독교”라는 주제를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미군기지 건설 문제로 웃음을 잃은 땅 오키나와의 현장에 웃음을 회복시키기 위한 기획으로 “기지에 웃음으로 맞서다!”가 현장 취재로 소개됐다.
특별히 2월호에는 일본기독교단이 한국에 파송한 나가오 유키(長尾有起) 재한 선교사의 참관기 “한국기독교장로회 임보라 목사 강연회 보고–성적 소수자 차별과 한국교회의 이단 논쟁”이 소개됐다. 나가오 선교사는 마지막에 “한국교회는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무지개 교회’(虹の教会)로 스스로를 바꿔 나갈 필요가 있으며, 일본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2018년 3월호–기독교와 희생의 시스템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지만, 한국의 봄은 결코 밝고 명랑하지만은 않다. 약 100년 전 수많은 만세시위 참가자들이 희생당한 3・1운동이 봄을 연다. 그리고 신록이 영그는 4월이 되면, 제주4・3을 시작으로 인혁당 사건의 사법살인이 자행된 4월 9일, 그리고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4・16 세월호 참사, 4・19학생혁명에 이르기까지 억울하고 분통한 ‘희생’의 역사가 이어진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염두에 둘 리 없겠지만 일본의 「복음과 세계」 3월호는 ‘기독교와 희생의 시스템’(キリスト教と犠牲のシステム)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잡았다.

‘희생의 시스템’ 가운데서 어떤 사람 혹은 사람들의 이익은, 타인 혹은 타인들의 생활(생명, 건강, 일상, 재산, 존엄, 희망 등)을 희생시킨 결과로 발생하여 유지되는 것이다. 희생시키는 자들의 이익은, 희생되는 사람들 혹은 그 무엇의 희생 없이는 생겨날 수 없으며 유지될 수도 없다. 이 희생은 대부분의 경우 숨겨져 있는데, 공동체(국가, 국민, 사회, 기업 등)에 의하여 ‘존귀한 희생’으로 미화되고 정당화되고 있다. 혹여 은폐나 정당화가 어려워져서 희생의 부당함이 고발되더라도, 희생시키는 자들은 스스로의 책임을 부인하고 책임으로부터 도망가기 일쑤다.
- 다카하시 테츠야(高橋哲哉),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오키나와』(集英社新書, 2012), 27-28.


도쿄대학 교수이자 철학자인 다카하시 테츠야는 ‘희생의 시스템’이 국가를 비롯해 공동체에 뿌리 깊게 존재함을 지적하고, 이와 같은 구조가 기독교에서도 보인다고 말하였다. 「복음과 세계」 3월호 특집은 이 문제 제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여러 관점을 통해 기독교와 희생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
았다.
먼저 희생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저항하는 예수의 윤리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위해 도시샤대학 신학부의 고하라 가츠히로(小原克博) 교수가 “희생의 논리와 예수의 윤리”(犠牲の論理とイエスの倫理)라는 글을 썼다. 고하라 교수는 결론에서 “우리는 예수가 그의 생애와 여러 비유를 통해 전한 메시지 곧 ‘희생의 시스템’이 지닌 허구성을 부수고, 그 시스템이 전제하고 있는 질서를 전도시키는 힘을 발견해내야 한다.”라면서, “시스템에 저항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예수의 비유와 예수의 윤리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성서에서 묘사되는 ‘예수의 죽음’이 지닌 메타포로부터 우리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위해 관세이가쿠인대학(關西學院大學)의 아사노 아츠히로(浅野淳博) 교수가 “주변인을 향한 폭력에 가담하지 않기 위하여: 예수의 죽음이 지닌 은유와 해석”을 기고했으며, 또한 전통적 속죄론을 대담하게 파헤친 르네 지라르(René Girard, 1923-2015)의 메시지를 경청해보는 글 “십자가와 모방적 욕망의 임종: 르네 지라르가 말한 십자가의 의미”를 일본성공회 사제이자 풀학원대학(プール学院大学)의 교목인 마츠다이라 이사오(松平巧) 신부가 기고했다. 마츠다이라 신부는 마태복음 9장 13절을 인용하면서 “예수는 무조건적 폭력 포기만이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지라르의 주장처럼, 신의 계시는 희생의 시스템이 계속되길 바라지 않으며, 예수의 모방을 가르친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타치오 크리스티(Imitatio Christi, 그리스도를 본받음)의 신앙이 바른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원폭 희생의 땅에 위치한 나가사키외국어대학에서 가르치는 고니시 데츠로(小西哲朗) 교수는 “나가사키 원폭과 순교”라는 글을 통해, 희생을 미화하고 포장하는 사례로 비판되는 ‘나가사키 원폭 피폭자’ 나가이 다카시(永井隆)의 ‘우라카미 번제설’(浦上燔祭説)을 다시 음미해보았다.
마지막으로 다카하시 테츠야 교수와 젊은 신학자들이 기독교와 희생의 논리, 그리고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좌담회 “희생의 재생산에 맞서기 위하여”가 게재되었다. 기독교와 희생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속죄론이나 예수의 십자가 이해라는 신학적 과제뿐만 아니라, 더 넓게는 사회, 국가, 세계에서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폭력적 구조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된다. 희생의 재생산에 맞설 방법이 있을까? 있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기독교는 그 저항에 무엇으로 힘을 보탤 수 있을까? 질문과 과제는 한없이 이어진다.
3월호에서는 메이지가쿠인대학 등지에서 가르치는 다카이 헤라(高井ヘラー由紀) 박사가 “대만의 본토화와 원주민의 기독교(台教)”라는 글을 통해, “처음 만나는 대만의 기독교사”라는 연재를 총 12회로 마무리지었다.

2018년 4월호–부활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까?
매년 4월 초에 돌아오는 부활절.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은 물론 비신자들까지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예수의 부활 이야기에 다시 귀 기울여 보기 위해 ‘부활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까?–성서 해석의 시좌와 방법들’(復活物語をどう読むか–聖書解釈の視座と方法)이라는 특집을 기획했다. 성서의 ‘부활 기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다양한 ‘읽기’ 방법이 존재할까? 오늘날의 성서학은 여러 방법론을 통해 그 새로운 읽기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새로운 연구 성과들을 정리해서, 특히 마가복음서에 기록된 부활 이야기(16:1-8)를 집중해서 읽어보았다. 같은 성서 본문이라 할지라도 최근 성서학의 여러 해석 방법론을 배우는 가운데, 그 ‘풍성한 읽기’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이 기획의 의도라고 한다.
네 개의 복음서 가운데, 유독 마가복음이 말하는 부활 이야기는 꽤 의미심장하다. 그 본문에는 부활한 예수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활에 관한 마가복음의 기사가 실린 16장을 보면, 5-6절에서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라고 말한다. ‘청년’과의 만남 이후 ‘여자들’은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8절)였다. 이 본문에 의하면 아무도 부활하신 예수와 만나지 못했고, 많은 제자들은 그 사실조차 몰랐다. 이 상태로 16장은 끝나버린다.
성서학의 성과는 이렇게 의문점 가득한 텍스트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을까?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이 특집은 접근 항목들로서 역사 비평, 사회과학 비평, 네러티브(이야기) 비평, 퀴어 비평이라는 네 가지 접근 방법을 통해 부활 이야기를 새롭게 읽어 보고 있다.
그 기획을 구체화하기 위해 페리스여학원대학(フェリス女学院大学)에서 가르치는 히로이시 노조무(廣石望) 교수의 “신약성서 해석을 즐기자!”라는 글을 특집 전체의 ‘해제’ 격으로 맨 앞에 소개한다. 이어서 도쿄여자대학에서 가르치는 히키치 시게오(挽地茂男) 목사가 “움직인 묘석–역사 비평에 의한 해석”을, 루터학원대학(ルーテル学院大学)에서 가르치는 리 아키오(李明生) 목사는 “교착하는 수치(羞恥)와 명예–사회과학 비평에 의한 해석”을 소개했다. 리 목사는 ‘집합적 기억(集合的記憶)으로서 공동체 안에서 공유되는 예수의 죽음과 텅 빈 묘소’라는 개념으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다음으로 세이신여자대학(聖心女子大学)에서 가르치는 미우라 노조미(三浦望) 교수가 “‘텅 빈 무덤’ 이야기에서의 신과 인간–네러티브 비평을 통한 해석”을, 루터교회의 신진 학자인 야스다 마유코(安田真由子) 선생이 “돌아오는 사자(死者), 부정의 고발–퀴어 비평에 의한 해석”을 소개했다. 야스다 선생은 “퀴어 비평을 통해 성서를 읽는 사람으로서, 나는 사자의 노래 안에 담긴 복음을 듣는다. 울려 퍼지는 그들의 탄식 소리… 이 노래를 들으며 과거와 현재의 경계도,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경계선도 불명확해진다. …그 가슴의 아픔을 끌어안는 순간, 죽었다고 선언된 사람들과 부활하는 사람들이 더불어 더 밝은 날을 열어갈 수 있게 되어, 압도적인 사회 혹은 이데올로기에 계속 맞서 나갈 수 있음을 새롭게 결심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죽은 자의 노래는 늘 더욱 크게 들여온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효고현에서 활동 중인 젊은 목회자 마츠모토 아즈사(松本あずさ) 목사가 “우리의 싸움은 지금부터다!”라는 제목으로 현장 설교의 한 사례를 소개했다. 하나의 성서 텍스트가 어떤 다양한 이해로 전개되는지를 독자들과 나누면서, 독자 자신은 어떤 이해를 하게 되는지 그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 밖에도 「복음과 세계」는 여러 연재물을 게재하고 있는데, 교토대학 아시나 사다미치(芦名定道) 교수의 “현대 신학의 모험–새로운 해도(海圖)를 모색하며”는 주목할 만하다. 총 20회 가까이 이어진 이 시리즈는 신학 여러 분야의 최신 세계 동향을 알기 쉽게 정리해서 소개하고 있다.

홍이표 | 연세대학교 신학과와 교토대학(京都大学)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공부하였다. 일본기독교단 교토교구 탄고미야즈교회 주임목사, 교토대학 강사 등을 거쳐, 현재 메이지가쿠인대학(明治学院大学) 그리스도교연구소 협력연구원으로 있다. 『믿음의 흔적을 찾아: 일본 간토 간사이 편』(공저), 『신학을 다시 묻다』(번역서) 등의 저서가 있다.

 
 
 

2018년 6월호(통권 7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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