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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현장 (2018년 6월호)

 

  『충청남도 선유문안』 (忠淸南道宣諭文案) (9)
  

본문

 

* 한자로 쓰인 『忠淸南道宣諭文案』은 감리교 목사 최병헌이 충청남도에서 했던 선유 활동을 기록한 글이다. 선유(宣諭)란 임금의 훈유(訓諭)를 백성에게 널리 알리는 것을 말한다. 최병헌(1858-1927)은 충북 제천에서 출생하여 과장(科場)에도 여러 차례 나갔던 한학자 출신의 목사로 교회 일을 현순 목사에게 맡기고 1908년 2월 6일부터 3월 10일까지 충청남도에서 선유 활동을 한 바 있다.

이번 연재(9)에는 지난번에 이어 ‘부록’의 마무리 부분이며, 뒷부분은 ‘충남 선유 일록’이라는 제목으로 기록한 선유 대상자 명단이다. 거주지와 직업, 교회 직분, 어떤 경우는 간략한 인물평도 메모로 남기어서 흥미롭다. ‘일록’(日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나 날짜 기록은 전혀 없으며, 마치 오늘날 어떤 캠페인을 벌이는 가두서명처럼 무작위 형태로 되어 있다. - 편집자 주



(3월) 5일 아침에 대흥과 예산에 공문을 전담하는 사람(專人)1을 파견하여 발송하였다. 연일 빗길을 무릅쓰고 일에 힘쓴 나머지 자연히 몸 조절을 잘하지 못해서 기력이 대단히 고달프고 힘들었다(困惱). 잠시 숙소에 누워 있었다. 경부(警部) 기요우다 쇼조(脅田庄藏)가 내방하여 지방형편에 대해 담론했다. “이후로는 총을 탄압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오로지 보안(保安) 방침으로 쓰기로 했다. 만일 귀순자가 있으면 마땅히 힘껏 보호하고 안녕과 질서를 유지할 것을 바란다.”라는 것 등을 말하였다.

6일 상오 10시에 저잣거리에 모인 인민의 수가 100명이 되었다. 지극한 정성과 간절하고 측은한 마음으로 낱낱이 효유하고 조칙과 효유문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일반 백성들이 그것을 다투며 먼저 받으려 하는 것으로 보아 민심이 기쁜 마음으로 복종함을 미루어 알 수 있었다.
같은 날 하오 1시에 황급히 대흥군을 향하여 길을 나섰다. 가는 길을 자세히 알 수 없어서 본 군수에게 길 안내자 한 명을 요청하였더니 아랫사람을 돌아보며 지시하였다. 어느 마을의 한 백성이 관청에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자 땅에 엎드려 애걸하기를, “지금 선유의 말씀을 들으니, 전의 잘못을 더욱더 깨닫게 되어 증빙문서를 받기를 원한다.”라고 하였다.
백성을 향한 임금의 미쁘신 감화가 빠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일을 어찌 우연이라 하겠는가! 진실로 백성을 위함이요 나라에는 다행이다. 날이 저물 때에 대흥군에 도착하여, 본 군수 김윤수(金允秀)와 서로 예로써 대했다. 본 군의 버금가는 이(倅)가 지난 일들의 형편과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였다. 작년 12월경에 몇 명의 폭도가 밤에 군에 도달하여 난폭하게 총을 쏘아대며 갑자기 관아로 들이닥쳐 문과 창을 부수고 갔으며, 다행히 인명이 다치거나 죽지는 않았으나 알지 못하는 사이(扵焉中)에 벌어진 일이라 놀라서 겁을 먹은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7일 상오 11시, 지역 내 선비와 백성들이 모두 군 관아에 모였으므로 차례에 따라 선유하였다. 같은 날 12시 반에 곧바로 예산으로 갔다. 본 군수 이범소(李範紹)와 함께 그 군의 저잣거리로 가서 조칙을 받들어 읽고 선유하였는데, 매우 많은 수의 취객이 뒤섞여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순사와 관청에서 심부름하는 이들이 그들의 행위를 금했지만 막지 못했다. 정식(定式)으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到底)2 효유하고 조칙과 권유문을 반포한 후에 폐회하니 이미 하오 5시가 지났다. 일본 순사가 권고하는 일이 있어서 다시 군 관아로 들어와 각 면장과 이장을 특별히 불러들여서 재차 효유하였다.
“면장 이장이 각각 그 직분을 지켜 그 직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고 기본적인 의무이다. 현재 조선의 법령을 이어받은 자위단(自衛團)의 조직을 훼방하여 방해하는 자(沮戲)3는 백성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자이다. 관과 백성이 서로의 마음을 생각하며 순복(順服)하여 혹 제멋대로 둘로 갈라지는 일이 없도록 함이 마땅한 일이다. 대저 면과 이(里)의 대표되는 자들은 마땅히 이러한 뜻을 가가호호 알려주어(家諭戶誦) 한 사람이라도 알지 못하는 폐단이 없도록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폐회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어느새 7시 반이 지났다.
찬바람을 쐬며(觸風) 고달프게 애썼더니 온몸의 뼛골이 다 아팠다.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함은 자신의 뜻대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괴로움으로 쇠해졌다.

8일에 병세가 약해진 듯하였으나 신창군(新昌郡)으로 갔다. 군수 서병익(徐丙益)이 숙소로 와서 만나 보았다. 날씨에 관한 인사(寒暄)4를 마치자 굳이 관아에 함께 들어가기를 청하였다. 고된 풍상(風霜)을 겪은 대강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일은 다른 사람이 견딜 만한 일은 아니었다. 작년에 폭도가 여러 차례 침입하여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울 때에, 군의 주사가 크게 놀라서 겁을 먹고 같이 도피하자고 했지만, 그 사리를 따져서 거부하고 그를 책망하였다(據理責之). “임금의 명을 받은 관리의 몸으로 어찌 제멋대로 직분을 떠나려 하는가? 나는 비록 죽을지언정 달아나는 것은 불가하다. 그대는 오로지 염려하지 말고 잘 도피하라.”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였더니 군의 주사가 홀로 경황없이 달아나서 숨었음이라. 그리하여 마을의 창문과 문을 열어젖히고, 등불을 켜고 촛불을 밝혀 환한 중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문지방 위에 걸터앉아서 굳게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일본 순사 한 명이 총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달려와 관아로 들어왔다. 다급하게 관아 뒤쪽의 땔나무를 쌓은 가운데에 그를 감추어 숨기고 관아로 돌아와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여전히 앉아 있었다. 수없이 많은 난동의 무리가 갑자기 삼문(三門)으로 들어와서 난폭한 행동을 했다. 군수가 꿈쩍도 않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서로 돌아보다가 멋쩍게(無聊)5 물러간 일이 있다. 그 후로는 지금까지 지경 내의 모든 일이(闔境) 편안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군수의 행적은 지금까지 거쳐 온 모든 군(郡)에서 처음 보는 일이었으며, 군수는 지금 교육에 열심하여 학교를 세우고
있다.

9일 상오 10시에 그 군의 6개 면의 면장과 이장과 책임을 맡은 인민을 모아서 조칙을 받들어 읽고 시기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과 교육의 시급함을 낱낱이 타일렀더니 와서 듣는 선비와 백성의 얼굴에 기쁨이 있었다. 다소간에 마음의 감동이 점점 더 발생하여 일어나자, 그 군에 주재하는 순사 와타나베 무네요시(渡邊旨吉)가 교육이 더욱 필요함을 잠시 또 설명한 후 폐회하였다. 시간이 이미 하오 2시였다.
마음이 몹시 분주하여 길을 떠나 먼저 온양군에 도착하였다. 군의 주사 정호석(鄭好奭)이 나이가 많고 일에 어두워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바가 두서가 없는지라(茫無頭緖).6 수석 서기를 불러서 이 일을 속히 거행하게 하였다. 각 면리의 인민과 기다리는 자들을 군의 관아로 모이게 하여 이 지방의 근황을 물었다. 군의 남쪽 5리쯤에 5형제 언덕이 있는데 지세가 점점 더 험하고 협소해서(險隘)7 그곳에서 종종 절도사건이 일어나는 근심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밖에는 달리 특별히 경계할 일이 없다고 한다.
하오 6시경에 각 면장과 이장, 읍저인민(邑邸人民)8이 모두 모였다. 조칙을 선포 효유하고 시세의 형편을 소상히 말하니 듣는 자들이 모두 감복하였다.
같은 날 8시경에 폐회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연일 분주하게 머무르니 과연 몸이 배겨나지 못하고 병에 병을 더하므로 기침이 급히 나오는 것이 마치 말의 울음소리 같았다. 마시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밤새도록 고통스럽더니 정신이 혼미하고 기운이 모자라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10일 아침에 시험 삼아 일어나서 움직여 보았지만, 정신이 어지러워 엎드리고 싶어서 다시 누웠다. 모든 일이 괴롭고 견딜 수 없었다(辛酸).9 그렇지만 조칙을 선포하는 막중한 일을 땅에서 안연(晏然)이 할 수 없어서 짐을 짊어지고(擔舁)10 천안역에 이르렀다.
당일에 눈과 함께 바람이 불어와서 혹독하고 추운 겨울날씨와 다름이 없었다. 추위를 무릅쓰고 여행의 괴로움이 더욱 곤란하여서 간신히 도착하였다(抵達). 도움을 받고 여관에 들어가니 실로 백번 헤아려 보아도 혼자서는 지탱하기가 어려웠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남은 힘도 없었다. 아직 도착하지 못해서 이행하지 못한 각 군을 조회하며 국문으로 제술(製述)11한 권유문을 발송하여 백성에게 널리 고르게 미치도록 하
였다.12

병세가 점점 아주 위독하여(危劇) 숙소에 머물러 누워 있었다. 치료의 처방이 적합하지 못한 점이 많아 병세는 갈수록 더하고 더 늦어졌다. 한 번에 이어서 15일까지 계속하여 병의 위세(威勢)가 수그러들지 않아서 부득이 (서울로) 돌아가게(賦敀)13 되었다. 비록 지극히 송구스럽고 답답하지만, 병이 이와 같으니 집에 있으면서 나빠진 것이 예닐곱 번이나 되었다. 갖가지 약을 시험 삼아 써 보았지만 수 삼일 내로 점차로 소생하는 경향이 있어서 지나온 바를 이제야 드문드문 겨우 엮어서 올리게 되었다. 지극히 송구하고 황공할 따름이다.



충남 선유 일록

연산군 외성면(外城面) 신외성(新外城) 사인(士人)14 김영대(金永大)
김영대 우현(宇鉉) 조카 김병원(金炳元)
우현 조카사위 김재혁(金在赫)
같은 면 □현(□峴) 사인 최종렬(崔宗烈),
김구현(金龜鉉) 예수교 전도사
같은 면 임리(林里) 전(前) 주사 김영기(金永起)
식한면(食汗面) 향안리(香安里) 사인 박정래(朴鼎來)–이상 5인 예수인
(耶穌人)
외성면 외성리 주사 이현호(李玄皓)–지방위원, 지사인(知事人)
김영우(金永雨)–외성면 임리(林里)
김 참서(參書)15 영욱(永昱)–부인면(夫人面) 전당리(錢塘里) 풍력(風力), 이상 김우현에게 의탁(所托)
회덕 산내면(山內面) 와지(瓦旨)에 사는 송한용(宋漢用)–김광수(金光洙) 의탁
신창(新昌) 이곡(狸谷) 삭실에 사는 최완(崔椀)
면천 비방면(菲芳面) 상궁원(上宮院)16에 사는 이원보(李源輔)
같은 신대(新垈)에 사는 김민식(金敏植)
덕산외면 고도곡(古道谷)에 사는 김인제(金寅濟)–이상(以上) 이인승(李寅承) 의탁
해미(海美) 와현(卧峴) 눈고개에 사는 전(前) 주사 한태교(韓台敎)
면천읍 신촌에 사는 진사(進士) 김동용(金東墉)
결성(結城) 현내면(縣內面) 성남(城南)에 사는 전(前) 청양(靑陽) 정인희(鄭寅羲)–이상 조철구(趙銕九) 의탁
같은 곳 용학리(龍鶴里) 남쪽 은진가(恩津家) 전(前) 주사 중희(重熙)
홍산(鴻山) 대야면(大也面) 신서촌(新西村)에 사는 주사 윤도순(尹道淳)–선유위원
같은 곳 논치(論峙)에 사는 군(郡) 주사 김일규(金一圭)–일을 맡은 사
람(觧事人)
같은 곳 함안(咸安)군수 한헌교(韓憲敎)
임천군(林川郡) 주사 조동익(趙東翊)
같은 곳 남산면 남산리 전 주사 조철구(趙銕九)–선유위원
노성(魯城) 하도면(下道面) 주곡(酒谷)에 사는 의관(議官) 김영운(金永運)–아들 상수(常洙)
공주 궁원(宮院)에 사는 전 참판 이종관(李鍾觀)–아들 청한(淸漢), 이상 오보영(吳普泳) 의탁
같은 곳 전(前) 우체사장(郵遞司長) 최봉식(崔鳳植)
유구(維鳩)에 사는 진사 윤용보(尹容普)
추곡(楸谷)에 사는 주사 윤택보(尹宅普)
덕산 괴촌(槐村)에 사는 윤철보(尹喆普)
홍주 갈산(葛山) 특진관 김병수(金炳秀)
대흥 교촌(校村) 전(前) 주사 김병위(金炳緯)
예산 월궁리(月宮里) 김 참판–이상(已上) 윤명보(尹命普) 의탁(托)
홍주(洪州) 흥구향면(興口香面) 어동(漁洞) 전(前) 사과(司果) 채진묵(蔡晋黙)
화성면(化城面) 모산(茅山) 채규오(蔡奎五)
보령 주교(舟橋) 이(李) 진사(進士) 집안(家) 이임규(李林珪)–이상(已上) 구암(九庵) 의탁
오천(鰲川) 하궁교회(河宮敎會) 간사 이(李) 오위장(五衛將)17 재우(載宇), 유병렬(劉秉烈), 박계호(朴啓浩)
당진 외창교회(外倉敎會) 간사 이계순(李啓淳), 조종식(趙宗植)
태안 근서면(近西面) 마검동(磨劒洞) 전(前) 주사 윤명보(尹命普)
평택 전(前) 참봉 읍(邑) 남산리(南山里) 강난수(姜蘭秀)–일을 맡은 사람
아산 내곡(內谷) 전(前) 단천(端川) 안윤중(安允中)–지식이 풍부함
둔포(屯浦) 전(前) 사과(司果) 이약희(李若熙)
천안 읍내 전(前) 제주(濟州) 심현택(沈賢澤)–문장이 밝음(文雅)18
전의(全義) 시(時) 군(郡)주사 정관식(鄭觀植)–김정기(金鼎基) 의탁
읍내 전(前) 도사(都事)19 이기하(李琦夏)
양지촌(陽地村) 전(前) 정령(正領) 구연하(具然河)–그때그때 일을 잘
하는 사람(識時務)20
삼성당(三省堂) 전(前) 위원 김예묵(金禮黙)–정책에 밝은 사람(文算)
전(前) 주사 이봉화(李鳳和)–문장이 밝음(文雅)
온양 좌부(左部) 전(前) 참판 조종서(趙鍾緖)–지사(知事)
예산 시르뫼 전(前) 전주(全州) 이학림(李鶴林)–문장이 밝음, 이상(已上) 오관응(吳觀應) 의탁
서산 오산면(吾山面) 덕지내 전(前) 수사(水使) 이봉호(李鳳鎬)–교인이 천거(薦)
읍(邑) 유미교회(有美敎會) 공석환(孔錫煥)–약을 팜(賣藥)
오산면(吾山面) 신촌(新村)예배당 임봉익(林鳳翼)–공석환(孔錫煥) 천거
면천(沔川) 율사촌(栗寺村) 이두영(李斗榮)–교인
송암면(松巖面) 하웅리(下雄里) 주사 유병륜(劉秉倫)
당진 군내면(郡內面) 무수동(無愁洞) 의관(議官)21 이흥로(李興魯)–지사인(知事人)
한산(韓山) 후포(厚浦) 감역(監役)22 김규배(金奎培)
비인(庇仁) 판교(板橋) 시장 남쪽 10리쯤 수소촌(繡沼村) 조(趙) 도사(都事) 집안 현구(鉉九)
공주 아촌(雅村)에 사는 전(前) 의관(議官) 이한용(李漢容)–이석령(李石㱓) 의탁
보령 청라동(靑蘿洞) 백현리(白峴里) 이헌규(李憲珪)–오위장 자(字) 원빈(元賓)
임천군(林川郡) 군(郡) 주사 조동익(趙東翊)
같은 군(同郡) 남산면 황교(黃橋) 참봉 조돈하(趙敦夏)
같은 군 동면(東面) 두곡(豆谷) 시어(侍御)23 조동숙(趙東淑)
부여 오평(梧坪) 임한상(林漢相)–동초댁(東樵宅)
석성(石城) 속은리(俗隱里) 임온상(林溫相)
노성(魯城) 논호(論湖) 의관(議官) 윤상욱(尹相郁)
노성읍 소현(巢峴) 주사 윤철병(尹轍炳)
진잠 승지(承旨)24 이정현(李廷鉉)
홍산읍(鴻山邑) 판윤(判尹)25 권중석(權重奭)–혹 규암(窺岩) 청풍정(淸風亭)에 거주.
은진 논호(論湖) 감역(監役) 조병정(趙秉鼎)
같은 곳 해미에 사는 남정식(南廷植)
노성 갈현(葛峴) 진사 윤자삼(尹滋參)
석성 화정(花亭) 수문장(守門將)26 윤이병(尹怡炳)
홍주 흥구향면 어재곡(魚在谷) 어재울 사과(司果) 채진묵(蔡晋黙)–정산댁
(定山宅)
진잠군 주사 이상렴(李相濂)–읍내에 거주
동면 노곡(老谷) 느리울 도사(都事) 조한기(趙漢綺)
관저동(關雎洞) 주사 서병염(徐丙炎)–오교(午橋)
연기 서면 생천(生泉) 주사 김혁기(金爀基)
공주 곡화천면(曲火川面) 와룡동 구레실 유봉훈(柳鳳塤)
같은 곳 노창수(盧昌洙)
서천 초처면(草處面) 홍현리(紅峴里) 내종(內從)27 자(字) 문옥(文玉) 구창제(具昌濟)
결성(結城) 삼산면(三山面) 두호(斗湖)에 거주 주사 정문조(鄭文朝)
공주 반포면(返浦面) 병암(屛巖)에 거주 오위장 신석문(申錫文)
정산(定山) 적면(赤面) 적곡(赤谷) 거주 전(前) 도사(都事) 안석호(安奭鎬)
당진 거주 이계순(李啓淳)
면천 거주 채원묵(蔡圓黙)
덕산 거주 이규환(李奎煥)
임천(林川) 대동면(大同面) 원당리(元堂里) 전(前) 주사 김창근(金昌根)
임천 가화면(可化面) 태봉리(泰封里) 거주 이화용(李化鎔)
남포(藍浦) 심전면(深田面) 평장(平章) 거주 이규량(李圭亮)
여산(礪山) 합선면(合仙面) 황화정(皇華亭) 신상균(申尙均)–권사
은진 논산 문학삼(文學參)–권사
연산 식한면(食汗面) 향한리(香汗里) 동촌(東村) 안승용(安昇容)–속장
양양수면(陽陽水面) 인천교회(仁川敎會) 김상기(金商基)–훈장
같은 곳 강창섭(姜昌燮)–속장
청양 서하면(西下面) 청수동(淸水洞) 이명하(李鳴夏)–선전(宣傳)28
같은 곳 최봉순(崔鳳淳)–주사
은진 강경포 이상기(李相基)–전(前) 회장
같은 곳 송석기(宋錫基)–시(時) 회장
공주 사곡면장(寺谷面長) 노원하(盧源河)
궁원(弓院) 광정리(廣亭里) 임기준(任基準)–전(前) 중군(中軍)29
공주 부하(府下) 지덕제(池德濟)-전(前) 도사(都事)
반포면(返浦面) 신소촌(新沼村) 양인수(梁仁洙)–전(前) 선전관(宣傳官)
공찰(公察)30 근족 단장
회덕 산내면 대전(太田) 전(前) 주사 임덕순(任悳淳)
전(前) 교관 이강호(李康浩)
연산 식한면 관동(官洞) 교우 도상규(都相奎)–대리(代理) 속장
향한리(香汗里) 교우 김태현(金泰鉉)–속장
연기 봉암(鳳巖) 교우 정덕환(鄭悳煥)–권사




五日朝에 大興與禮山公文을 專人彂送하고 連日冒雨行役之餘에 自然失攝하야 氣力이 大段困惱함으로 暫卧旅邸러니 警部䝱田庄藏이 來訪하야 談論地方形便曰自此以後로 決不用弹厭手段하고 專用保安方針하야 若有敀順者면 當極力保護하와 安寧秩序를 期乎維持云云

六日上午十点에 會同人民数百名于市街하고 以至誠恳惻之意로 這這曉諭하고 詔勅及曉諭文을 分佈于衆한즉 一般民庶가 爭先柢受하니 民心之悅服을 推此可知라○ 同日下午一点에 急急彂程하야 向大興郡去할새 所去路程이 未詳故로 送隷于本郡守하야 指路者一名을 要請이러니 下隷面告曰有何許村氓이 入于官庭하야 伏地哀乞하되 今聞宣諭즉 怳覺前非오니 願受文憑云云이온즉 王化之孚民이 捷扵影響이니 是豈偶然哉리오 宲爲民國之幸이라 暮抵大興郡하야 與郡本守金允秀로 相見禮畢에 本倅가 所經情形을 一一說去하되 昨年十二月頃에 幾名暴徒가 夜到郡邸하야 放銃作梗하고 突入官衙하야 打破門窓而去하니 人命은 幸無死傷하나 扵焉中驚㥘이 不少云云이오며

七日上午十一点에 境內士民이 齊會于郡衙故로 次苐宣諭하고 同十二点半에 直徃禮山하야 與本郡守李範紹로 出徃該郡市街하야 詔勅을 奉讀宣諭할새 許多酔漢이 迊遝喧嘩하니 巡査與官隷가 禁之不得이라 正式에 依하야 到底曉諭하고 詔勅及勸諭文을 頒給한後 閉會하니 已過下午五点鍾이라 日巡査의 勸告가 有함으로 更入郡衙하야 各面長與里長을 特爲招入하야 再次曉諭하되 面長里長이 各守其分하며 各盡其職함이 當然底義務오 現承朝令之下에 自衛團組織을 沮戱코져하는者有하면 切非爲民道理니 官民이 互相心眼하고 毋或妄生歧貳함이 當然하니 凡爲面里頭目者須以此意로 家諭戶誦하야 俾無一民不知之獘케하라하고 閉會敀館하니 扵焉過七点半이라 連日觸風努力에 百骸俱痛이라 轉側을 不得任意하고 終宵煩惱러라

八日에 病少可하야 徃新昌郡하니 郡守徐丙益이 來見于舘하고 道寒暄畢에 固請同入衙中하야 曾經風霜을 大綱陳說함을 聞하온즉 果非他人所能이니 昨年에 暴徒가 數次侵入而方其搶攘之際에 郡主事가 大端驚㥘하야 請與逃避故로 拒理責之曰身爲命吏하야 豈可擅離職所乎아 我는 雖死라도 不可去矣니 惟君은 勿慮하고 善自逃避하라한즉 郡主事가 獨自蒼黃走匿이라 扵是乎洞開門窓하고 點燈燃燭하야 朗然通明케하고 踞坐閾上하야 凝然不動이러니 日巡査一名이 中丸流血하고 走入衙中故로 急急藏匿于衙後積柴中하고 因卽囬衙하야 如前坐在하니 居無何에 無數亂黨이 突入三門하야 方欲作梗타가 見郡守之坐而不動하고 愕然相顧라가 無聊退去한 後至于今闔境이 賴安云하오니 如此한 郡守는 所經列郡에 果是初見이오며 敎育에 熱心하야 學校를 現方刱立이온지라

九日上午十点에 該郡六面面長及里長與觧事人民을 會同하고 詔勅을 奉讀한 後時機의 異前과 敎育의 時急함을 這這說諭한즉 士民來聽者頗有喜色하야 多少間興起之心이 稍稍發生하는 意思가 有하온지라 該郡에 駐在한 巡査渡邊旨吉이 亦以敎育의 必要로 暫時演述한後閉會하니 時已下午二点이라 忙忙發程하야 前到溫陽郡하니 郡主事鄭好奭이 年老事昧하야 諸般擧行이 茫無頭緖하온지라 招致首書記하야 斯速擧行하야 各面里人民來待者를 使之會同于郡衙케하고 爲問該地方近况則郡南五里許에 有五兄弟峴하오니 稍爲險隘하와 徃徃有窃發之患이옵고 其外는 別無他警云이온지라 下午六点頃에 各面里長及邑邸人民이 始爲齊會라 詔勅을 宣布曉諭하고 時勢形便을 昭詳說去하니 聽者莫不感服이라 同八点頃에 閉會敀舘하니 連日奔泊에 果難抵當함으로 病上添病하야 咳促聲嘶하야 不飮不食하고 終夜苦痛하니 神昏氣乏하야 無由動作이온지라

十日朝에 試爲起動則眩暈欲仆하야 頹然復卧則萬事辛酸이라 然이나 莫重하신 詔勅을 宣布之地에 不可晏然하와 擔舁至天安驛하니 當日에 風雪이 無畢嚴冬이라 冒寒行役이 尤極困難하야 艱辛抵達하야 扶入旅邸에 實難自支百爾思量에 少無更進之餘力이온지라 未及行到한 各郡에 更爲照會하오며 國文으로 製述한 勸諭文을 發送하와 民間에 均播케하옵고 病勢가 漸漸危劇하와 滯卧旅店에 治療之方이 多未適合하와 病勢가 去益添肆하온지라 一連至十五日에 少無威勢하와 不得已賦敀하옴애 雖極悚悶하오나 宲病이 如此하와 在家委頓이 又爲六七天에 雜試方藥하와 自数三日內로 稍向蘇道이온고로 這間所經을 今纔修呈하오니 極涉悚惶함

忠南宣諭日錄

連山郡外城面新外城士人 金永大
金永大 宇鉉侄
金炳元 宇鉉侄婿
金在赫
同面 □峴 士人 崔宗烈
金龜鉉 耶穌敎傳道師
同面林里前主事金永起
食汗面香安里士人朴鼎來 以上五人耶穌人
外城面外城里主事李玄皓 地方委員知事人
金永雨 外城面林里
金參書永昱 夫人面錢塘里 風力 以上金宇鉉所托
懷德山內面瓦旨居宋漢用 金光洙托
新昌狸谷 삭실 居崔椀
沔川菲芳面上宮院居李源輔
仝新垈居 金敏植
德山外面古道谷居 金寅濟 以上李寅承托
海美卧峴 눈고개 居前主事韓台敎
沔川邑新村居進士 金東墉
結城縣內面城南居前靑陽 鄭寅羲 以上趙銕九托
仝龍鶴里南恩津家前主事重熙
鴻山大也面薪西村居主事 尹道淳 宣諭委員
仝論峙居郡主事 金一圭 解事人
仝 前咸安郡守 韓憲敎
林川君主事 趙東翊
仝南山面南山里前主事 趙銕九 宣諭委員
魯城下道面酒谷居議官 金永運 子 常洙
公州宮院居前參判 李鍾觀 子 淸漢 以上吳普泳托
仝前郵遞司長 崔鳳植
維鳩居進士 尹容普
楸谷居主事 尹宅普
德山槐村居 尹喆普
洪州葛山特進官 金炳秀
大興校村前主事 金炳緯
禮山月宮里 金參判 以上尹命普所托
洪州興口香面漁洞前司果蔡晉黙
化城面茅山 蔡奎五
保寧 舟橋 李進士家 李林珪 已上九庵所托
鰲川河宮敎會幹事 李五衛 將載宇
劉重烈 朴啓浩
唐津外倉敎會幹事 李啓淳 趙宗植
泰安近西面磨劒洞前主事尹命普
平澤 前參奉 邑南山里 姜蘭秀 觧事
牙山內谷前端川 安允中 多知識
屯浦前司果 李若熙
天安 邑內 前濟州 沈賢澤 文雅
全義 時郡主事 鄭觀植 金鼎基托
邑內前都事 李琦夏
陽地村 前正領 具然河 識時務
三省堂前委員 金禮黙 文算
前主事 李鳳和 文雅
溫陽左部前參判 趙鍾緖 知事
禮山시르뫼前全州 李鶴林 文雅 以上吳觀應托
瑞山吾山面덕지내前水使 李鳳鎬 敎人薦
邑有美敎會 孔錫煥 賣藥
吾山面新村禮拜堂 林鳳翼 孔錫煥薦
沔川栗寺村 李斗榮 敎人
松巖面下雄里 劉主事秉倫
唐津 群內面無愁洞 李議官興魯 知事人
韓山 厚浦 金監役奎培
庇仁 板橋市場南十里許繡沼村趙都事家 鉉九
公州雅村居前議官 李漢容 李石㱓托
保寧靑蘿洞白峴里 李憲珪 五衛將字元賓
林川郡郡主事 趙東翊
同郡南山面黃橋參奉 趙敦夏
同郡東面豆谷侍御 趙東淑
扶餘梧坪 林漢相 東樵宅
石城俗隱里 林溫相
魯城論湖議官 尹相郁
魯城邑巢峴主事 尹轍炳
鎭岑 承旨 李廷鉉
鴻山邑 判尹 權重奭 或 住扵窺岩淸風亭
恩津 論湖 監役 趙秉鼎
同海美居 南廷植
魯城葛峴進士 尹滋參
石城花亭守門將 尹怡炳
洪州興口香面魚在谷 어재울 司果蔡晋黙 定山宅
鎭岑郡主事 李相濂 居邑內
東面老谷 느리울 都事趙漢綺
關雎洞 主事 徐丙炎 午橋
燕岐西面生泉主事 金爀基
公州曲火川面卧龍洞구레실 柳鳳損
仝 盧昌洙
舒川草處面紅峴里 內從字文玉 具昌濟
結城三山面斗湖居主事 鄭文朝
公州返浦面屛巖居五衛將 申錫文
定山赤面赤谷居前都事 安奭鎬
唐津 居 李啓淳
沔川 居 蔡圓黙
德山 居 李奎煥
林川大同面元堂里前主事 金昌根
林川可化面泰封里居 李化鎔
藍浦深田面平章居 李圭亮
礪山合仙面皇華亭 申尙均 勸師
恩津論山 文學參 勸師
連山食汗面香汗里 東村 安昇容 屬長
陽陽水面仁川敎會 金商基 訓長
仝 姜昌燮 屬長
靑陽西下面淸水洞 李鳴夏 宣傳
仝 崔鳳淳 主事
恩津 江鏡浦 李相基 前會長
仝 宋錫基 時會長
公州寺谷面長 盧源河
宮院廣亭里 任基準 前中軍
公州 府下 池德濟 前都事
返浦面 新沼村 梁仁洙 前宣傳官公察近族 團長
懷德山內面太田前主事 任悳淳
前敎官 李康浩
連山食汗面官洞敎友 都相奎 代理屬長
香汗里敎友 金泰鉉 屬長
燕岐鳳巖 敎友 鄭悳煥 勸師


1 전인(專人): 일을 전담하여 처리하기 위하여 파견하는 사람.
2 도저(到底): ① 학식이나 생각이 아주 깊음. ② 행동이나 몸가짐이 흐트러짐 없이 바름.
3 저희(沮戱): 훼사를 놓음. 남을 지근덕거려 방해함.
4 한훤(寒暄): ① 일기(日氣)의 춥고 더움을 묻는 인사. ② 한훤문(寒暄問).
※ 최병헌은 부록과 일록에서 상견예필(相見禮畢), 악수서례(握手叙禮), 도한훤필(道寒
暄畢), 서한훤필(舒寒暄畢), 한훤예필(寒暄禮畢) 등으로 만나서 인사 나누는 것을 표현하였다.
5 무료(無聊): ① 어울리지 아니하여 탐탁한 맛이 없음. ②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있음. 열없음, 열적음.
6 망무두서(茫無頭緖): 정신이 아득하여 하는 일에 두서가 없음.
7 험애(險隘): 험조(險阻). ① 지세가 높고 가파르며 험하여 막히고 끊어져 있음. ②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어려운 일.
8 읍저인(邑邸人): 조선시대 각 지방 군현에서 사무 연락을 위하여 경저(京邸) 곧 서울에 와서 머무르던 향리들.-『한국고전용어사전 4』(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1), 293.
9 신산(辛酸): ① 맛이 맵고 심. ② 세상살이의 쓰라리고 고된 일.
10 담여(擔舁) : 가마나 상여 따위를 어깨에 멤.
11 제술(製述) : 글이나 시를 지음.
12 여기에서 탁사는 각 군에 보낸 조회와 고시문의 발송이 천안의 한 숙소에서 발송한 것처럼 기록하였다. 그렇지만 본 선유문 중 “일록”(日錄)의 맨 끝부분에는 “10일 하오 3시 15분 아픔을 무릅쓰고 기차를 타고 경성으로 향하였다.”라고 기록하였다. 각 군에 보낸 조회의 발송일은 3월 11일로 되어 있다. 다음 문장의 숙소(旅店)가 천안의 숙소를 가리키는 것 같으나, 그 이후의 서술을 볼 때 분명치 않다.
13 부귀(賦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감.-『漢韓大辭典』 13권(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2008), 166.
14 사인(士人): ①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 선비. ② 벼슬아치, 관리(官吏).
15 참서(參書): 대한제국시대 박문원(博文院)의 한 벼슬. 감서(監書)를 고친 이름으로 주임(奏任) 벼슬이다.
16 비방면 상궁원: 현 당진시 합덕읍 점원리. 궁원은 점원리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앞에 황실소유의 전답이 많았다고 한다. 윗궁원, 중궁원, 하궁원으로 나누어진다. 비방구지는 하궁원 동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 때 이곳 이름을 따라 덕산군 비방면이 되었다고 한다. 원점원은 상궁원에 딸린 마을로 옛날 점원리가 처음 건설된 마을이라 한다.-두산백과
17 오위장(五衛將): 조선시대에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에 딸려 오위(五衛)의 군사를 거느리던 으뜸 벼슬. 품계(品階)는 초기에 종2품(從二品), 임진왜란 뒤에 정3품(正三品)이 되었음.
18 문아(文雅): 시문(詩文)을 짓고 읊는 풍류(風流)의 도(道).
19 도사(都事): ① 조선시대 충훈부, 개성부, 중추부의 종5품 벼슬. 조선시대 의금부의 한 벼슬. 처음에는 종5품이었으나 나중에 종6품에서 종9품 또는 종8품까지 여러 품계로 갈림. ② 조선시대 5부(五部)의 종9품 벼슬. ③ 조선시대 감영(監營)의 종5품 벼슬. 감사(監司)의 다음가는 벼슬.
20 식시무(識時務):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을 잘 앎.
21 의관(議官): 대한제국(大韓帝國) 중추원(中樞院)의 한 벼슬. 고종 32년에 베풀어 광무(光武) 9년에 찬의(贊儀)로 고침.
22 감역(監役): 역사(役事)를 감독함. 감역관(監役官)의 준말.[감역관-조선시대 선공감(線工監)의 한 벼슬로 품계는 종2품]
23 시어(侍御): 조선말과 대한제국 때 궁내부(宮內府) 시종원(侍從院)에 딸린 판임관(判任官) 벼슬. 광무(光武) 4년(1900)에는 좌시어(左侍御)와 우시어(右侍御)를 두었음.
24 승지(承旨): 조선시대 때 승정원(承政院)에 딸려 왕명의 출납을 맡아보던 정3품의 당상관(堂上官). 정원은 6명으로, 도승지는 이방(吏房), 좌승지는 호방(戶房).
25 판윤(判尹): ① 조선시대 한성부(漢城府)의 으뜸 벼슬(정2품). 초기에는 판사(判事)라 했다가 7대 세조(世祖) 때 부윤(府尹)으로 바뀌었으며, 8대 예종(睿宗) 1년(1469)에 판윤으로 개칭했음. ② 구한말 한성부(漢城府)의 으뜸 벼슬. 칙임관(勅任官).
26 수문장(守門將): 대궐(大闕)이나 성의 문을 지키던 무관(武官)의 벼슬.
27 내종(內從): 고종사촌(姑從四寸)을 외종사촌(外從四寸)에 상대하여 일컫는 말.
28 선전관(宣傳官): 조선시대에 선전 관청에 속한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
29 중군(中軍): 조선시대 군영의 대장, 또는 사(使)의 다음가는 장관.
30 공찰(公察): 조선 말기 공주(公州)에 있던 충청남도 관찰사.

 
 
 

2018년 6월호(통권 7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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