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교회와현장 > 나의 목회 수기
교회와현장 (2018년 6월호)

 

  나는 어떻게 목회했는가 – 경계(境界)의 목회
  

본문

 

목회와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지면을 허락해준 「기독교사상」에 감사를 드린다. 필자의 목회 경험이 변화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교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자칫 자기 자랑이 될까 두렵다.
필자는 모태 신앙인으로 중학교 1학년 장래 직업란에 ‘목사’라고 기입을 한 이후, 마치 예언자 예레미야와 같이 하느님께 붙잡힌 삶을 살아왔다. 한국신학대학 졸업과 함께 3년간의 철책선 군복무를 마치고 폴 틸리히, 라인홀드 니버, 제임스 콘 등으로 잘 알려진 뉴욕 유니온신학대학에서 신학석사(M. Div.) 학위를 받고, 이어 미국장로교단(PCUSA)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이민교회에서 20년간 목회를 하였다. 그리고 작년 5월 향린교회에서의 14년 담임목사 임기를 마치고, 지금은 10여 명이 출석하는 부산의 한 믿음의 공동체를 섬기고 있다. 성서일과(Lectionary)에 따른 설교를 여러 기독교 인터넷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에도 이를 나누어 올리고 있는데 3,000명의 페이스북 친구 가운데 상당수가 전도사, 목사들이기에 인터넷 목회자이기도 하다.

인종갈등 해소를 위한 화해 목회
필자의 목회를 한 단어로 정리하라면 ‘경계’(境界)의 목회이다. 미국에서의 이민목회는 한국과 미국 두 문화 사이의 경계 목회였고, 향린교회에서의 목회는 교회와 사회의 경계 목회였다.
이민자들은 교회 밖에서는 영어를 말하고 햄버거를 먹지만 교회 안에 들어오면 한국어로 말하고 김치를 먹는다. 이러한 이중문화 갈등 경험은 헤겔의 정반합(正反合)의 역사 원리에 따라 이 둘을 넘어서는 새로운 창조로 나아가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크게 보아 초기 한인 이민(移民)신학은 아브라함의 이주 이야기를 중심으로 백인 주류사회에 접근하여 가는 ‘순례자의 신학’(the Pilgrim Theology)과 이중문화를 새로운 창조로 접근하는 ‘문화신학’(the Multi-cultural Theology)이었다. 필자는 1980년대 초 한 신학지에 기고한 글에서 ‘바벨론 포로 경험’이라는 수난의 역사를 이민신학의 주요 주제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고, 이후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를 심화시켰다.1 곧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억눌린 소수자들에 의해 새로운 역사가 펼쳐진다고 하는 민중해방신학 입장의 ‘소수자신학’(the Marginal Theology)이다. 지금도 미국 내의 유색인종들은 3세 혹은 4세라 하더라도 여전히 백인 주류사회로부터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the glass ceiling)을 겪고 있으며, 이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필자는 개 교회 성장을 넘어 한인 2, 3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체성의 확립이 매우 소중하다고 보았다. 하느님의 영을 받은 모세가 애굽의 히브리 노예들과 더불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듯이, 그리고 예수가 저 성문 밖 갈릴리의 가난한 민중들과 더불어 새로운 하느님 나라 운동을 전개해 갔듯이, 인종차별을 겪으며 살아가는 한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위로와 축복의 말씀이 아닌 역사에 대한 주체적인 자각이었다. 이를 위해 필자는 미국장로교 내 한인교회 성서교재 『말씀과 함께』의 저자 중 한 사람으로 ‘거룩한 성서읽기’(Letio Divina)를 개발하면서 단순한 성서지식이 아닌 삶의 적용을 위해 노력하였고, 셀목회를 통한 생활목회자(평신도) 지도력 세우기에 많은 힘을 쏟았다. 단순한 심방과 행정의 협력자가 아닌 설교도 하는 팀목회를 시도했다. 이러한 경험은 후에 향린교회에서 생활목회자 설교를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장로교단은 모든 목회자가 의무적으로 1년에 2주 이상 신학교에 가서 연장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목회자로서 소홀하기 쉬운 새로운 신학 이론들을 놓지 않고 계속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다. 1990년대 이래 ‘예수세미나’ 학자들의 획기적인 책들이 출판되면서 그동안 숨겨 있던 복음서 말씀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대다수의 목사들이 이런 학문적 성과에 대해 별 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교회 침체의 원인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이민목회를 정리하여 보면, 첫째는 한흑 인종갈등 관계 해소를 위해 노력하였다. 워싱톤수도노회(the National Capital Presbytery, PCUSA) 내 한인 목회자들과 흑인 목회자들 간의 친교 모임을 만들어 강단 교류, 세계성찬주일 합동예배, 공동바자회 등의 선교파트너십 관계를 통해 교회가 한흑 인종갈등 해소를 위해 앞장섰다. 이러한 노력들이 뒷받침되어 워싱턴(D.C.) 흑인 빈민지역 안에 여러 한인교회들이 후원하는 복지기관이 태동하여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두 번째는 멕시코에 있는 한인 후예들을 찾아나서는 운동을 전개한 일이다. 알려져 있듯이 일제의 침략과 더불어 하와이 지역에 사탕수수 재배를 위한 노동이주가 이루어졌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멕시코 유카딴 지역에도 노동이주가 있었는데, 그동안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80년대 중반에 이 일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한인 후예들을 찾아나서는 ‘뿌리찾기운동’을 시작하고 두 명의 교인을 선교사로 파송하여 의료, 복지, 장학생 선발, 교류 등 여러 일을 진행하였다. 수십 개의 한인교회들이 이 일에 동참하였으며, 필자가 섬기던 교회의 경우에는 어린이를 포함한 대부분의 교인이 최소한 한 번 이상 선교지에 다녀왔다.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 활동은 여러 이민교회를 통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세 번째는 남북화해와 통일에 앞장서는 교회로 자리매김한 일이다. 1980-90년대 미국교단의 초청으로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소속 목회자들이 워싱턴을 방문하는 일이 몇차례 있었는데, 필자가 통일운동에 관계하고 있어 그때마다 이분들이 필자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곤 하였다. 당시 통역자로 온 비기독교인 김혜숙 선생을 4년 전 필자가 평양 봉수교회를 방문하였을 때 재회하여 뜻깊은 만남을 가졌는데, 그녀는 평양신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교단 내의 여러 위원회에서 한인을 대표하여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중에서도 총회 대표위원회(the Representation Committee) 활동을 통해 미국교회의 장점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위원회는 총회장 직속 기구로 미국장로교 내의 모든 기관과 조직에 청년/여성/장애인/인종별/평신도가 참여하는지를 감시하고 시정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아시아인 목사로는 최초로 노회장에 선출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또 다른 경사도 생겼다. 당시 대부분의 이민교회들이 그러했듯이 필자가 섬기던 한인교회도 미국교회의 건물을 빌려 오후 예배를 드렸는데, 부임 후 15년이 되었을 때에 미국인 회중과 한인 회중이 하나의 교회로 통합하게 된 것이다. 당시 한인교회는 1세 중심의 한국어권 교회 혹은 2세 중심의 영어권 교회 두 형태만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인 회중과 한인 회중이 하나의 당회를 이루는 제3의 이민교회 형태가 태동한 것이다. 당시 감독제의 미국감리교 내에서는 성장하는 한어 회중에게 교회 건물을 넘겨주는 일이 몇 차례 있었지만, 회중 중심의 장로교 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필자가 떠나고 나서 교회가 다른 장소로 이전하였는데, 나이 든 미국 교인들이 출석하지 않게 되어 통합교회는 끝이 나고 말았다. 이제는 모두 하늘나라로 가셨겠지만, 필자를 믿고 따라 준 미국 교인들에게 미안함을 감출 길이 없다.

향린교회에서의 사회선교 목회
2003년 고 홍근수 목사 후임으로 향린교회 3대 목사로 부임을 하게 되었다. 올해로 65주년을 맞이하는 향린교회는 크게 보아 네 개의 창립정신을 갖고 시작했다. 생활공동체/독립교회/사회민족선교/평신도교회. 1953년 5월 남산 자락에서 30대 초반의 젊은이 12명이 처음 시작할 때에는 마치 수도원과 같이 기도와 삶이 하나로 연계된 생활공동체를 표방하였으며,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교회가 분열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하여 교단에 가입하지 않는 독립교회를 내세웠고,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을 재현하고 이를 위해 담임목사가 없는 평신도교회를 지향했다.
그러나 결혼과 유학 등의 이유로 생활공동체는 2년 후에 중지되었고, 교회 건물에 대한 세금을 감당하기 힘들어 한국기독교장로회에 가입했다. 목사 없는 평신도교회는 이후 23년 동안 지속되다가 교인이 늘면서 목회 요청이 많아지자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등 노선의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지금도 평신도 주인정신이 살아 있어 당회 외에도 각 기관 대표들이 참여하는 ‘목회운영위원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 성장을 추구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제자로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임하도록 하는 예수의 뜻을 실현하는 길이라는 신앙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만남으로 새로운 남북관계가 시작되었지만, 향린교회 건물 외벽에는 “국가보안법을 즉각 철폐하라”는 현수막이 지금까지 27년째 붙어 있다. 이는 홍근수 목사가 KBS 심야토론에서 한 “공산주의자들도 휴머니스트들이다.”라는 발언으로 인해 구속이 되면서부터이다. 이 때문에 빨갱이교회라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영화 <1987년>에도 나왔듯이 향린교회는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된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고, 폭력 경찰에 쫓긴 학생들은 물론 노동자들의 피난처가 되어왔으며, 기장 총회가 이어온 ‘시국기도회’의 상징이 되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 약자 보호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수백 명의 목회자들이 목사 가운을 입고 여러 차례 거리를 행진하였다. 박근혜 정권 1년차인 2014년에는 사순절을 맞이하여 진보적 신앙인들이 함께 뜻을 모아 향린교회에서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진 바 있다. 기도회 후 매일 20여 명이 을지로입구 사거리에 나가 “이명박 구속 박근혜 탄핵”이라고 쓰인 팻말을 들었다. 물론 촛불혁명 이후 지금은 현실이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하기 힘들었다. 필자는 이 경험을 통해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는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게 되
었다.
향린교회는 그 출발부터 민족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 왔다. 특히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향린교회와 분가(分家)한 세 자매교회(강남향린, 들꽃향린, 섬돌향린)는 반드시 1년에 최소 한 번은 아픔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주일예배를 드린다. 평택, 파주, 성주, 강정에서 미군기지 확장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였고, 광화문과 종각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예배를 드려왔다. 또한 이 땅에 고통당하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용산참사, 구룡 판자촌 화재마을, 세월호 유가족들을 직접 찾아가는 현장예배를 드렸다.
이런 일들은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채찍을 들어 성전숙청을 단행하신 후에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신, 보이는 건물로서의 탈성전 신앙과 예수의 몸・민중・부활 신앙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에 뜻을 같이한 여러 교회와 교인들은 아픔을 당한 노동자와 빈민들과 함께하기 위해 촛불교회를 만들고 매주 목요일 저녁, 현장을 찾아가는 기도회를 10년째 진행하고 있다. 필자에게는 어떤 의미에서 향린교회 목회보다 더 소중한 예수목회였다. 그러면서 전국적으로 ‘예수살기’라는 새로운 신앙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필자는 2006년 평택 대추리 농민들과 함께 투쟁하다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되었고, 2년간의 법정 다툼 끝에 벌금 75만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때 벌금 납부 대신 15일간의 자원 구치소 생활을 선택하였는데, 우연히 「한겨레」 기자에게 알려져 보도가 되기도 했다.
이때 ‘예언자 하늘뜻펴기’를 시작하여 17명의 문서 예언자들을 한 명 한 명 다루었고, 이를 『양심을 습격한 사람들』(부제: 예언자와 오늘의 시대정신)이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특이한 것은 한 주간에 일어난 중요한 사회정치적 사건들을 첨가해놓은 점이다. 하늘뜻펴기는 땅의 물음(context)에 대한 하늘의 응답(text)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기독교사상」에 게재된 바 있는 필자에 대한 정용섭 목사의 ‘설교비평’과 이에 대한 필자의 ‘반론’을 함께 실었다.

루터의 신앙혁명과 향린교회
향린교회는 개혁교회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 1993년 창립 40주년을 맞아 목사 및 장로의 ‘임기제’와 ‘국악예배’의 도입, 그리고 ‘통일헌법’이 선포되었다. 필자의 부임과 더불어 교회정관이 제정되었는데 거기에는 담임목사의 7년 임기는 연임으로 제한, 평신도가 주축이 된 목회운영위원회 조직, 여성장로 3분의 1 이상 선출, 재정 30% 이상 선교비 할당, 그리고 교인 500명 이상이 되면 분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해놓았다.
2017년 5월 필자의 퇴임과 함께 독일에서 책 한 권이 배달되었다. 독일 종교청 산하 베를린역사박물관에서 루터 개혁 500주년을 맞아 출간한 세계 개신교 역사 500년을 정리한 책 ‘The Luther Effect’였다. 4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역사적 가치가 있는 수많은 사진과 함께 신학자들의 설명이 곁들여 있는 매우 획기적인 책이었다. 이 책의 3분의 1은 루터 직후 유럽에서의 개신교 탄생과 분화를 다루고 있으며, 나머지 3분의 2는 세계 개신교회를 다루는데 200여 개의 나라를 모두 다룰 수 없으니 시대별/대륙별로 네 개의 나라를 선택했다. 17-18세기 유럽 대륙을 대표하여 스웨덴이,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을 대표하여 미국이, 그리고 20세기를 대표하여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탄자니아가, 아시아 대륙을 대표해서는 한국이 선택되었다.
한국이 선택된 이유는 그 제목 “KOREA-BOOM LAND OF PRO-TESTANTISM”이 말해주듯이 급격한 교회성장이다. 책에서는 130년의 선교 역사에서 한글 번역과 선교사들의 활동, 그리고 1960년대의 박정희 독재와 민주화운동 등을 열거하고 오늘의 한국교회를 “Divided Land, Divided Church”라고 설명했다. 나라가 분단되어 있듯이 교회도 분열되어 있음을 언급하면서 교회성장의 대표로 세계 최대 규모의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정의평화의 하느님 나라 가치를 실현하는 ‘향린교회’, 이 두 교회만을 설명한다. 이는 다른 3개국의 교회를 설명하는 방식과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베를린역사박물관에서는 책에 나와 있는 그림들과 상징물들을 모아 6개월 동안 특별전시를 하였고, 이 행사에 세계 기독교인 수십만 명이 다녀갔다.
전시회의 한국관을 들어서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예배 사진과 함께 설교 영상이 나온다. 옆에는 향린교회를 설명하는 상징물이 전시되었는데, 이는 모두 전시 담당자가 향린교회를 방문하고 요청하여 직접 가져간 것이다. 첫 현수막은 국악예배를 소개하는 모습이다. 교회 건물 외벽에 달려 있던 세 개의 커다란 현수막도 전시되었다. 문구는 “정의를 심어 평화의 열매를!”,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이다. 물론 이 현수막들 중 두 개는 얼마 있지 않아 사라질 것
이다.
그리고 두 개의 상징물이 더 전시되었는데, 하나는 홍근수 목사가 옥에 갇혔을 당시 수백 명의 교인들이 석방을 염원하며 천에 쓴 기도문이다. 다른 하나는 필자가 8・15평화통일주일 예배에 사용한 커다란 십자가이다. 필자는 매년 예배 마지막 순서에 에스겔서 37장에 있는 ‘막대기 두 개를 취하여 하나는 북왕국 에브라임이라, 다른 하나에는 남왕국 유다라 쓰고 이 두 막대기를 하나로 만들라.”는 말씀을 읽은 다음 ‘대한민국’이라고 새겨진 판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새겨진 판 두 개를 합쳐 화해의 상징 십자가로 만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에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판문점회담은 더할 수 없는 감격을 주고
있다.

한국교회에 드리는 당부
끝으로 필자의 목회를 정리하면서 침체기에 접어든 한국교회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세 가지 과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는 생활목회자(평신도) 목회의 강화이다. 당회와 더불어 젊은이와 여성을 포함한 교인 대표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목회운영위원회를 따로 구성하여 교인들의 목회 주체성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는 일부의 당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다. 당회는 예배와 제직 인선을 비롯한 장기 과제를, 목회운영위원회는 재정을 포함한 일상적 과제를 맡도록 한다. 그리고 설교에도 교인들의 참여를 높여야 한다. 필자는 1년에 열 명 이상 주일예배에 설교자로 초청하여 함께 하늘뜻을 펼쳐왔다. 이 경우 목사는 주로 성서 해석, 그리고 평신도는 생활에 적용하는 말씀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깊은 신앙의 연대를 형성하게 된다.
둘째는 국악찬송의 도입이다. 어느 나라나 자기 민족의 고유한 악기를 사용하고 고유한 가락을 지닌 찬송을 예배시간에 많이 부른다. 물론 현행 찬송가에도 한국인이 작곡한 곡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우리 가락으로 만들어진 찬송가는 몇 곡 되지 않는다. 영국이나 독일의 국가는 물론 아일랜드나 흑인의 전통가락을 찬송으로 부르면서 왜 우리나라 고유의 가락으로 된 찬송가는 부르지 않는 것인가? 미국과 캐나다교회의 찬송가에 ‘아리랑’이 포함된 지 이미 30년이 넘는다. 영성(spirituality)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역할은 매우 크다.
셋째는 정의・평화・생명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선교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교회’의 빛과 소금이 아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성전을 허물고 아파하는 사람들 곁으로 가기를 희망하신다. 예수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들이었음을 기억하자. 예수께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펼친 하느님 나라 운동은 거리에서 백성들과 함께 어울리는 현장신앙이었지 문자 안에 갇힌 교리 신앙이 아니었다. 130년 전 선교 초기의 교회가 그러했듯이 이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세속 분리(分離)가 아닌 세속 경계(境界)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한국교회의 살 길이 있다.

1 “No More Strangers: Towards a Formation of Korean-American Immigrant Theology”(Union Presbyterian Seminary, 1999)

조헌정 | 신약학(역사적 예수)을 전공하였다. 저서로는 『양심을 습격한 사람들』 등이 있다. 예수살기 상임대표, 「현장언론 민플러스」 이사장, 평화통일연구소 이사장 등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2018년 6월호(통권 714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