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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情談 > 성서정담 - 평신도 고전학자의 성서 읽기(2)
성서情談 (2016년 4월호)

 

  “왜 너여야 하는데?”
  

본문

 

우리 아이에게 복을 내려주세요!
실례이긴 하지만 나란히 앉아 기도하다 보면, 종종 옆 사람 기도소리를 듣게 된다.
“우리 아들에게 큰 복을 내려주시면 선교도 하고 가난한 사람들도 많이 구제하겠습니다.”
대충 이런 식이다. 나쁜 내용도 아니고 잘못된 기도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조금 입맛이 쓸 때가 있다. 기복(祈福) 신앙이어서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신에게 복을 달라고 비는 것은 자연스럽다 못해 마땅한 일이다. 신에게 복을 빌지 않으면 대체 누구에게 빈단 말인가? 복을 빌지 않는 종교가 과연 종교이기나 할까? 고상한 지식으로 무장하신 분들이야 알아서 잘 믿으시겠지만, 삶이 고달파 그런 입씨름에 매달릴 여력조차 없는 분들에겐 기복신앙이 옳네 그르네 같은 말들은 그저 고담준론일 뿐이다. 행여 그런 말을 늘어놓으면 “똑똑한 당신들이나 잘 하슈.”란 소릴 들을 게다.
내 생각에 성경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복을 바랐고 또 복을 간절히 빌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매일의 삶이 저승길 끌려가는 것처럼 진저리쳐지는 자들을 만날 때마다 복을 빌어주고 병을 고쳐준 예수는 뭐란 말인가? 예수야말로 기복신앙의 두목 아니겠는가.
아무튼 그 기도소리가 귀에 거슬렸던 것은 기복적 요소 때문이 아니라, 옆 사람이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크게 외치는 소리 때문이었는데, 그건 정말 복을 받으면 그렇게 하겠다는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었기 때문이다. 복 받아 선교하고 구제하겠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사람보다 훨씬 낫다. 하지만 내가 딱했던 것은 바로 그 옆으로 한 다리 건너에서 몸을 앞뒤로 흔들며 열심히 기도하는 다른 집사님도 그렇게 기도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잘은 몰라도 우리 교회만 그런 게 아니라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그런 기도를 올릴 테니 정말이지 하나님은 답답도 하시겠다. 내가 하나님 입장까지 변론할 것은 아니지만, 대체 누구의 기도를 들어줘야 할지 하나님도 퍽이나 난감하시겠다.
“모두의 기도를 들어주면 되잖아? 뭘 그걸 가지고 그래?”라고 할지 모르나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 세계 사람들 모두에게 1억씩 나눠주면 결국 똑같아지니 말이다. “우리 딸이 꼭 서울대에 붙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부모 숫자가 서울대 정원을 훌쩍 넘는 판국이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 그러니 잘 모르긴 해도 하나님이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왜, 꼭 너여야 하는데?”
우리는 이 말씀을 조금 깊이 경청할 필요가 있다.

모세의 세 도막 삶
모세는 120년을 살았다.(신 34:7) 그리고 설명하기 쉬우라고 그랬는지, 40년마다 큰 고비를 겪었다. 그러니까 모세는 40+40+40으로 120살을 사는 우여곡절의 스펙터클한 삶을 살았다.
그는 불쌍하게도 태어나자마자 강물에 띄워 보내졌는데 그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파라오의 딸이 그를 발견하여 키웠다. 그렇게 모세는 왕궁에서 성장해서 40살까지 지냈다. 그의 이런 첫 번째 삶은 평생에 걸쳐 물질적으로 가장 풍족하고 넉넉한 삶이었다.
이 첫 번째 삶은 나이 마흔에(행 7:23) 끝난다. 어느 날, 힘겹게 노동하는 히브리 사람을 마구 때리며 각박하게 대하는 이집트 관리를 그만 때려죽이고 만(출 2:11-12)것이다. 그때 그는 시체를 모래에 묻어 은폐하고는 다음 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다시 나간다. 이번엔 히브리 사람들끼리 싸우고 있었다. 여기에 모세가 끼어들어 잘잘못을 따지며 담판지었다. 그런데 모세에게 비난을 들은 사람이 이렇게 빈정댔다.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출 2:14)

모세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살인을 은폐했다고 여겼는데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거였다. 소문이 났고 파라오까지 알게 되었다. 결국 모세는 죽음을 피해 미디안 땅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거기서 양을 치며 80살까지 늙어간다. 이것이 그의 두 번째 삶이다.
나이 여든에 다시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나타난다.(행 7:30) 가시나무 떨기에 나타난 신이 그에게 도저히 할 수 없는 지시를 내린다. 노예로 살고 있는 히브리 사람들을 이집트에서 탈출(Exodus)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는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명령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백성들을 이끌고 탈출을 감행하고,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곳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장장 40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을 이끈다. 그의 마지막이자 세 번째 삶이다.
모세의 생애를 설명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두 번째 삶, 40-80세 동안 미디안 땅에서 양치기로 지내던 때를 강조한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그가 겸손함을 배웠기에, 훗날 그가 광야에서 백성들을 이끄는 일을 할 때 하나님을 의지했고, 그래서 허다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거다.”
“자신의 혈기로 백성들을 구하려던 40세의 모세는 결국 칼과 창으로 백성들을 이끌려했던 거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만약 그가 40살에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 했다면 홍해 앞에서 어떻게 됐겠어? 그 막막한 홍해에 그냥 빠져 죽든지 아니면 뒤따라오는 이집트 군대에게 몰살당해 버렸을 거야. 그러니 두 번째 삶이 정말 중요한 거라고.”
“왕궁에서 화려하게 살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곤궁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연단이라니까.”

뭐, 이런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분명 모세의 고통스런 두 번째 삶은 필수불가결한 삶인 것이 맞다. 연단인 것도 맞고 겸손하게 하시려는 것도 맞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적절하게 만드시는 기간인 것도 맞다. 그래서 우리도 그처럼 시련과 고난이 오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참고 기다리며 하나님을 바라야 한다는 것도 모두 맞다. 하지만 두 번째 삶만 너무 강조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것이 빠지게 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잠시 미디안 광야에서 실의에 차 있던 모세의 삶을 따라가 보자. 미디안으로 도망친 혈기왕성한 마흔 살의 모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신약성경>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는 그의 마음을 이렇게 돌려 설명했다.

[모세의]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행 7:23-25)

모세는 왕궁에서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그만이 그랬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였다. 노예인 그들에게 학식이나 지략을 기대할 수는 없다. 모세가 교만해서가 아니라 누가 봐도 이스라엘 백성 중에 모세만 한 자가 없다. 모세는 자신의 안락과 행복을 포기하고 남을 위한 삶을 살기로 했고 그래서 과감하게 나섰다. 자신만을 위한 쾌락적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런 욕망을 버리고 억눌린 자를 돌아볼 비전을 품고 그렇게 살려 한 것이다.
그런데 웬 걸. 정작 그 혜택을 볼 당사자들의 반응은 뜨악했다. 모세를 밀치며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행 7:27)며 비꽜다. 이때 모세의 마음은 어땠을까? 바로 당신을 위해 이렇게 모든 것을 감수하고 있는데 정작 그 당사자인 당신이 거부하고 부인하고 욕하다니…. 해머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 완전히 당한 느낌일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약자를 돌볼 생각으로 나섰던 일로 인해 그의 삶은 곤두박질치고 만다. 미디안 땅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모세의 좌절은 깊을 수밖에 없다. ‘대체 내가 뭐라고 나섰던 거야.’에서부터 ‘저따위 노예근성에 물든 작자들을 구하려고 나선 내가 미친놈이다.’까지 수 없이 많이 상념이 그를 밤낮 괴롭혔을 것이다. 그 번민이 검은 머리를 하얗게 물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모세가 이런 원망을 하지는 않았을까?
“하나님, 나를 이렇게 살게 하려 했다면 대체 뭐 하러 왕궁에서 성장하게 했습니까?”
자가용 타던 사람이 택시만 타려 해도 불편한 것이 세상 이치다. 애초에 몰랐다면 모를까 온갖 좋은 것을 다 보고 배우고 경험하고 누렸던 삶에서 추락해 버린 자신의 모습을 견디기란 정말이지 괴로웠을 것이다.
두 번째 삶이야 모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거였지만, 왕궁에서의 첫 번째 삶은 혹시 공연한 삶이 아닐까? 곤두박질쳐지는 큰 고통을 느끼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풍요로운 생활을 하게 한 것일까?
나날이 쇠약해져가는 몸과 흰 머리카락을 회한으로 바라보는 80세의 모세라면 모를까, 그의 전 인생을 다 아는 우리까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문제다. 왕궁에서 살았던 첫 40년이 쓸데없는 군더더기라고 본다면 그건 정말 안 될 말이다.
모세의 첫 번째 삶은 더 없이 중요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첫 번째 삶이 없었다면 세 번째 삶도 있을 수 없었다. 모세가 모세인 것은 바로 왕궁에서의 40년 때문이었다.

제가 할 일을 하나님에게 시키지 마라
모세의 세 삶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고르라면 당연히 마지막 40년 광야에서 백성들을 인도하던 삶이다. 그리고 그런 지도자 노릇을 할 때 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었다. 아무리 그가 출중하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허다한 백성들을 매일 같이 먹이고 입힐 재간은 없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신 분은 하나님이다. 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고 이곳저곳의 적대적 민족들을 물리친 것도 역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했다. 마지막 세 번째 삶의 모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인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과연 믿음과 신념만으로 백성들을 이끌 수 있을까? 이런 삐딱한 질문은 믿음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란 것이 무엇이고 그런 믿음으로 여타 모든 일이 술술술 풀려나가느냐는 물음이다.
광야에서 백성들끼리 다툼이 일어나면 그것을 어떻게 조정할까? 태어난 다음 세대들을 양육하고 가르치는 것은 어떻게 할까? 커리큘럼에 믿음과 기도만 넣으면 만사형통하게 될까? 호전적인 적들이 사는 지역이 어디이고, 그곳의 풍토와 문화는 어떠하며, 군사력과 습성은 어떠한지, 그들과 전쟁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접전(接戰)하고 어떻게 진(陣)을 펼칠지 등등은 어떻게 해결할까? 그때마다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소위 ‘계시’를 달라고, ‘응답’을 달라고 애원해야 할까? 물론 기도해야 한다. 믿음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기도만 하고 앉아 있으면 저절로 모든 지식이 습득되고 어려움이 해소되고 문제가 사라지는가? 그렇게 하나님만 넋 놓고 바라보며 떡 달라고 떼쓰는 것이 정말 ‘믿음’일까?
취직을 하려는 사람은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전이 무엇이고 또 내 적성에 맞는 직업이 무엇인지 기도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한다. 노력해야 한다.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당에 앉아만 있으면 절대로 하늘에서 툭 하고 합격 통지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교인들이 은연중에 지니고 있는 치명적인 착각이 있다. 예수만 잘 믿으면 만사가 저절로 술술 풀릴 거란 환상이다. 그런 일은 없다. 하나님은 분명 일을 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인간이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의 강연을 들으러 모였던 허다한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 예수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눅 9:13)는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 예수는 제자 몇 명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 그 군중들을 다 먹일 수 없음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또 자신이 그냥 하늘에서 먹을 양식을 내려오게 할 수 있으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제자들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물고기 2마리와 떡 5개를 내놓자, 비로소 놀라운 기적을 베풀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말이다. 기복신앙의 으뜸 두목이신 예수도 이렇게 하셨다.
인간이 해야 할 것은 인간이 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옳다. 자신의 약함, 부족함, 어리석음을 철저히 고백하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자신이 할 것을 하나도 하지 않고 방기하며 하나님만 부르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왜 하필 모세를 불러서 광야 40년의 막중한 임무를 맡겼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그가 잘 생겨서도 아니고, 미디안 땅에서 양치기하며 철저하게 순종했기 때문도 아니다. 잘 생긴 사람도 많고 순종의 달인들도 넘쳐나지만, 이 늙은 여든 살의 모세를 불러낸 이유는 바로 그가 이집트 왕궁에서 당대 최고의 학문을 배웠기 때문이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행 7:22)는 논평은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다. 이런 그였기에 광야에서 그 수많은 민원을 처리했고 백성들을 조직했으며 군대를 양성하고 편재시켰다. 허다한 인재가 있지만 모세야말로 적임자였던 것이다. 모세가 아니면 안 되었다. 모세만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릴 수 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었기 때문이다. 홍해를 갈랐던 것도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다. 그건 모세의 노력과 열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백성들을 보살피고 다독이고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을 이끌고 다스리는 능력은 모세의 배움 속에서 준비된 거였다. 왕궁에서 배운 최고의 학술과 지혜가 그의 세 번째 삶에서 제대로 진가를 발휘했던 것이다.
여기서 삐딱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모세가 왕궁에서 공부할 때 농땡이를 피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힘들어서 피하고 어려워서 건너 뛴 것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그 작은 결핍은 훗날 진정으로 자신의 소명이 이루어지는 때에 백성들에게 눈덩이처럼 커져서 피해로 돌아갔을 것이다. 사소한 부주의와 미진한 배움, 미처 준비하지 못한 태만이 엄청난 문제를 일으켰을 거란 말이다. 그것까지 하나님이 다 채워주실까? 기도해서? 믿음으로? 글쎄 잘 모르겠다. 기도해 보시라, 어떤 응답이 올지.

홍길동이 될래? 전우치가 될래?
약간 과장하면, 『홍길동전』의 홍길동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적서차별(嫡庶差別)로 인한 괴로움으로 집을 나가 활빈당을 세우고, 부패한 탐관오리들을 척결하는 등 사회 모순과 싸우다가 급기야 바다 바깥에 율도국이란 이상국을 건설하는 이야기 말이다. 이런 홍길동과 유사한 아니 거의 비슷한 능력과 도술을 부리는 인물이 있는데, 그가 바로 『전우치전』의 전우치다.
홍길동이나 전우치 둘 다 사회의 부패를 고발하고 탐관오리를 혼내주고 왕권을 희롱하는 등 행적도 유사하고 신나게 도술을 부리는 것도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홍길동은 알아도 전우치는 잘 모른다. 얼마 전 영화로 만들어져 조금 알려졌지만 다만 그뿐, 여전히 전우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손으로 꼽아야 할 정도다. 왜 그럴까? 이유는 전우치와 홍길동은 그 시작과 끝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서자(庶子)로 태어난 홍길동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음에 울울불락하다가 그 모순을 떨쳐 내고 결국 율도국의 왕이 된다는 것은 앞서도 말했다. 그런데 전우치의 시작은 홍길동과 다르다. 당당한 명문가에 적자(嫡子)로 태어난 전우치는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 친구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다.
어느 날 아침 공부하러 가는 길에 고개를 넘을 때였다. 그곳에는 무척 아리따운 여자가 혼자 울고 있었다. 그냥 지나쳐 갔다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여전히 그녀는 계속 울고 있었다. 전우치는 여자의 미모에 끌려 다가가 사정을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계모의 박해로 살 수가 없어 자결하려고 하는데 용기가 없어 선뜻 못하고 그저 인생이 서러워 울고 있다고 답한다. 아리따운 여인의 한스러운 말을 들은 전우치는 그렇지 않아도 동한 마음을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래도 살아야지”하며 그녀의 손을 잡는데 그 여자가 뿌리치지 않는 거였다. 그리하여 결국 그녀와 흠뻑 정을 맺는다. 얼마나 푹 빠졌는지 집에 갈 생각도 잊을 정도였다.
아무튼 다음 날 다시 서당에 가려고 지나다보니 그녀가 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당신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녀의 정에 녹아 버린 전우치는 공부고 뭐고 다 던져 버릴 생각으로, 잠시 기다리란 말을 하고는 부리나케 서당으로 달려가 스승에게 말하려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스승은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

네가 오다가 여색(女色)을 범했으니 글을 배워도 천지(天地) 조화(造化)를 통(通)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돌아가서 그 여자를 만나라. 그러면 그 여자의 입에 구슬을 머금었을 것이니 그 구슬을 빼앗아라.(경판37장본 전우치전)

스승의 말대로 돌아가 여자를 만나 정을 통하다보니 정말 그녀 입 안에 구슬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살살 달래 입을 맞추다가 그 구슬을 제 입으로 받아서는 꿀떡 삼켜 버렸다. 그러자 여자는 난리를 피우며 크게 울더니 들로 달려가 버렸다. 놀란 그가 스승에게 돌아가 그 연유를 묻자, 스승은 놀라운 말을 들려주었다.

그 여자는 사람이 아니라 여우다. 네가 삼킨 것은 여우의 정(精)이니 네가 여우처럼 천문지리(天文地理)를 통할 것이고 72가지 도술을 행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전우치는 여우의 정수(精髓)를 삼켜서 여우의 신통력을 얻게 된 거였다. 이후 전우치는 과거에 장원급제한다. 그러나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온 세상을 다니며 요괴와 괴물들을 물리치며 그 정수를 빼앗는다. 급기야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라며 왕을 속여 희롱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하늘 모르고 까불던 전우치가 서화담을 만나 크게 패하고 마음을 고쳐먹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떤 측면에서 전우치 이야기는 홍길동 이야기보다 기기묘묘하고 다채롭다. 하지만 전우치가 우리 머릿속에 별로 남지 않는 이유는 그의 일생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저 ‘희롱’ 뿐이기 때문이다. 도술을 얻게 된 것도 여우를 속여 받아낸 것이고, 과거에 급제한 것도 벼슬을 해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제 능력을 뽐내려는 거였다. 왕과 대신들을 도술로 놀린 것도 사회 모순을 비판하고 왕의 실정(失政)을 꼬집기 위함이 아니라 그냥 재미였다. 그가 마지막에 서화담에게 잡힌 것이나 서화담의 준엄한 꾸짖음에 머리를 숙이는 것으로 맺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가 평생 한 일이나 하려고 한 것 모두 다 비루하고 졸렬했기 때문이다.
물론 홍길동의 삶도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삶이었지만 그것이 다른 이들의 삶과 행복에 연결되어 있었다. 전우치처럼 제 욕망대로 희롱과 난리법석을 피우며 이기적 욕망을 분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런 둘의 차이가 궁극적으로 누구는 율도국을 건설하고 누구는 서화담에게 잡혀 머리를 조아리는 차이를 빚어냈다. 모든 것이 그 시작에 있었다.
홍길동은 절대 관직을 할 수 없는 서자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열심히 학문을 연마하며 노력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전우치는 달랐다. 맘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특이한 행운으로 세상 누구도 지니기 힘든 능력을 획득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그저 낄낄거리고 놀며 던져 버렸다. 아까운 재능을 낭비하며 세월을 희롱할 뿐이었다. 홍길동과 전우치, 이 둘의 겉은 같아 보일 수 있다. 남들이 보면 꼭 쌍둥이 같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은 하늘과 땅 만큼의 현격한 차이가 있다.
어리석은 질문을 하나 하나님께 해 보자.
“하나님, 홍길동과 전우치 중에서 누구를 쓰시고 싶으세요?”
뭐라 답하실까? 글쎄, 굳이 답을 들을 필요가 있을까.

설렁설렁 해도 되는 삶이란 없다
취직이 안 되는 것은 물론 회사에서 많이 뽑지 않아서다. 세상이 어수선한 것 역시 정치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하지 못해서인 게 맞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다 세상 때문이고 정치 때문일까? 누군가 잘되는 사람은 ‘빽’이 좋아 잘되는 거고 ‘연줄’을 잘 타서 술술 풀리는 걸까? 그런 측면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빽’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고 ‘연줄’이 동아줄처럼 든든한 사람도 한둘이 아닐 거다. 그들 모두가 다 잘 될까?
회사를 경영하는 분들을 가끔 만나 대화하다 보면 언제나 듣는 이야기가 있다. 인재가 없다는 말이다. 경영자들은 정말이지 눈을 까뒤집고서 인재를 찾는다. 빽? 연줄? 물론 그런 것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로 다 채우지 않는다. 내일 당장 회사 접을 생각이라면 모를까, 절대 그러지 않는다. 혹시 실력이 없지만 뒤로 들어온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그리 높이 올라가지 못한다. 일을 맡겨도 감당할 충분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만 가면 일이 꽉 막혀 버리니 어쩌겠는가. 아무리 빽이 좋아도 그냥 자리만 차지하는 정도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사업을 망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세상이 깨끗하고 모든 이치가 공정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당연히 세상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런 세상 탓을 하는 푸념과 비난 속에 숨은 자신의 모습을 한번 돌아보기를 바라는 것이다. 정작 자신은 얼마나 준비되었는지를 묻고 싶은 거다. 빽도 빼고 연줄도 빼고 그냥 있는 그대로 당신을 대했을 때, 정말 당신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스스로 생각해 보란 말이다.
모세는 준비되었다. 정말 당대 최고의 학문을 제대로 공부하고 노력했기에 그는 말과 행동에 능했다. 누가 봐도 그가 지도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못해 마땅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그 누구도 아닌 모세를 불러내신 것이다.
정말 ‘국가를 위해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싶으신가? 정말 ‘가난한 자들을 위해 온 몸을 던져 헌신’하고 싶으신가?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하시는 당신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 열정에 머리가 숙여진다. 그런데 당신은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지금 당신이 발 딛고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거기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게 길러진 능력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쓰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신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고 하는데, 막상 그때가 되어 뭔가 필요할 때 정작 합력할 만한 것이 없으면 어쩐단 말인가?
세상에 필요 없는 시간이란 하나도 없다. 버릴 것도 하나 없다. 왕궁에서의 모세의 훈련과 생활은 더 없이 귀중하고 소중했다. 서자(庶子)이기에 죽어라 공부하고 노력해도 절대 벼슬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노력했던 홍길동은 결국 율도국의 왕이 되었다. 적자로 명문대가에서 성장하여 과거까지 급제해서 모든 이가 바라마지 않는 위치가 되었어도 인생을 방탕과 희롱으로 점철한 전우치는 그저 그런 모습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그대는 모세인가? 홍길동인가? 아니면 전우치가 되고 싶은가?
그 답은 하나님도 아니고 세상도 아닌, 바로 당신이 쥐고 있다.

유광수 | 교수는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연세대학교 대학원(문학박사)을 졸업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부교수이다. 한국고전문학을 전공했으며, 2007년 『진시황 프로젝트』로 제1회 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했다. 쓴 책으로 『왕의 군대』 『윤동주 프로젝트 1, 2』 『가족기담』 『고전, 사랑을 그리다』 등이 있다.

[이 게시물은 대한기독교서회님에 의해 2023-02-20 16:55:23 문화와신학에서 이동 됨]

 
 
 

2023년 8월호(통권 7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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