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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성서情談 > 성서의 눈으로 보는 세상살이 17
성서情談 (2018년 3월호)

 

  인권과 노동3권
  

본문

 

1
개별적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인권은 한편으로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권리를, 다른 한편으로는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기본으로 한다. 생명권은 건강권과 생존/생계권을 동반한다. 이 가운데 특히 생존/생계권은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만 다루어지기 쉽고, 경제질서는 고용자 우위의 고용과 피고용 관계로 축소되고 만다.
경제활동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성을 실현할 수 있는 생활을 보장하는 데 있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는 이 목적에 기여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허용되고 있는 ‘해고의 자유’ 때문에 특히 노동자의 생존/생계권이 위협당하고 침해당하고 있다. 이것은 인권침해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2
이러한 상황에서 인권변호사로 불리는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지난 대선은 국가폭력이 난무하던 대한민국 건국 100년사를 마감하고 인권과 정의 실현을 위한 새 100년을 여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는 부산에서 노무현과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 부림 사건, 동의대 사건, 경상대생들의 소위 지리산 결사대 사건, 경상대 교수들의 ‘한국 사회의 이해’ 사건 등을 맡아 변호하였다. 이러한 경력 때문에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그의 국정 운영과 정책 수립에 끼칠 영향은 짐작건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기대도 그만큼 더 커진다.
위의 사건들은 군사독재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일어난 폭력 사건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독재권력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실시하였고, 저항하는 학생, 노동자, 시민들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며, 저항운동을 봉쇄하기 위해 용공, 이적, 종북 등의 굴레를 씌우고 탄압을 일삼았다. 이러한 때에 문재인은 억압당하는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변호하였고 그 길을 끝까지 갔으니, 그의 신념과 용기가 얼마나 확고한가를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니 100년 묵은 역사적 체증이 다 내려가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그에게 새로운 기대를 걸고 또 다른 요구를 한다면, 지나친 일일까? 아닐 게다.
1987년 6월 항쟁이 미완으로 끝났다면, 그 까닭은 6월 항쟁이 거둔 정치적 민주화가 경제적 민주화로 이어지지 않았고, 정치적 민주화의 결실조차 기존의 정치경제권력이 독점하다시피 하여 자신의 지배력 강화와 확대에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단순히 경제 민주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를 방해하고 억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정치경제권력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권들과 다를까? 아니 촛불의 힘이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글을 쓰고 있는 현재(2018. 1. 22.) 상황에서는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에도 긍정적인 대답은 아직 어렵다. 최저임금 인상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실질적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여지가 다분하고, 정규직 전환 역시 재계에 의해 무력화 내지 반쪽짜리가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 전환이 단순히 고용보장에 그친다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더 실질적인 방안이 될 수도 있다. 정규직 전환과 함께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이뤄지지 않으면 차별이 해소되지 않고 임금착취가 계속된다는 점이 더 부각되고 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런데 앞의 물음에 긍정적 대답을 하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지난해 성탄절 특사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많은 사람이 요구했고, 또 과거 문재인 대통령도 형이 지나치게 무겁다며 감형을 위해 탄원서를 냈던 한상균의 특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로 일하던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은 2015년 백남기 농민이 살수차의 직사 때문에 목숨을 잃은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 4・24 총파업과 5월 1일 노동절 집회 관련 집시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이던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이후 12월 13일 구속되었고, 2016년 7월 4일 서울중앙지법 1심에서 징역 5년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고, 항소심(서울고법 형사2부)을 거쳐, 2017년 5월 31일 대법원2부에서 항소심대로 징역 3년과 벌금 50만 원이 확정되어 현재 수감 중이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투쟁했던 그는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이른바 ‘불법집회’를 이유로 자신을 구속하고 징역형을 선고한 권력과 법정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헌정을 파괴한… 박근혜 정권의 초헌법적… 통치 행위야말로 정당성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개악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하고, 노동개악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은 정당하다 할 것입니다.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권의 패악질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민주노조를 이제는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입니다. 포승줄 풀어야 할 것은 이제 이 법정입니다. 대통령 권한을 사익에 쓰지 않고 99% 민중을 위해 쓴다면 헬조선을 사람 냄새나고 인간이, 노동이, 평화가 존중받는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국민 모두가 깨닫고 있으니 이것은 역사의 큰 진전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용한 항소심 최후진술은 국회가 박근혜 탄핵소추안을 가결(2016. 12. 9.)한 지 불과 4일 후의 발언이었다. 불법 정권의 불법 집회 규정에 따라 그에게 형을 선고한 법정은 정당한가? 아니면 ‘역사의 큰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인가? 불법 정권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결의를 부정하고자 했던 것일까?
법원은 법 위의 불법과 불의를 판단하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어도 법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법원은 그 법을 고수한다. 마치 프로그램에 따라 말하는 로봇이 프로그램화되지 않은 것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고, 따라서 사람과 ‘소통’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한 법원이 생존권, 보다 넓게 인권을 위한 투쟁을 심판할 수 있는지, 또 해도 되는지 의문스럽다.
생존권 투쟁과 관련하여 법원의 한계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은 15년 전인 2003년 1월 9일에 있었던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열사의 분신자살이다. 해고자 복직과 노동탄압 중단을 외치며 두산중공업의 노동탄압에 저항하던 그는 왜 죽음의 길을 갔는가?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무엇을 고발하려 했는가? 그는 두산중공업 파업으로 구속되었다가 2개월 후 집행유예로 출소하였으며, 3개월의 정직 기간이 끝나고 복귀했다. 그러나 복귀하고 나서 2주 뒤에 두산중공업 사내 노동자광장에서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월급 전날이었다. 왜 하필이면 이날이었을까?
재산과 급여를 가압류당한 그가 받을 월급은 2만 5,000원이었다. 30억 원의 급여 가압류 처분은 평생의 임금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손배가압류법이었다. 그는 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출근을 해도 재미가 없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 말살 악랄한 정책에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 사원의 고용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 없을 것이다. …공정해야 할 재판부가 절차를 거쳐 쟁의행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불법이라니 가진 자의 법이 아닌가. …동지들이여, 끝까지 투쟁해서 승리해주기 바란다. 불쌍한 해고자들 꼭 복직 바란다. …

파업은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이지만, 그것이 기업에는 손실일 수 있다. (실제로 손실인지는 알 수 없다. 파업 이후 노동자와 기업은 파업 기간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손배가압류법은 이 손실을 기업이 파업 노동자들에게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법원은 기업의 손을 들어준다. 파업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경제적 보복인 셈이다. 구조화된 폭력의 법적 도구로 사용되는 이 법은 노동3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노조활동을 거의 불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노동쟁의에 민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노동3권의 법적 보장은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한 민형사상 면책의 내용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 그러나 법원은 파업의 ‘정당성’을 아주 제한적으로만 인정한다. 인력 감축이나 노동 조건의 악화로 노동자의 권익을 해칠 이른바 구조조정 혹은 민영화와 같은 경영, 정책 관련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그 정당성을 부정한다. 노동자들에게 파업 이외에 자신을 지킬 다른 방법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파업의 정당성을 제한하고 손배가압류법을 광범위하게 적용한 결과 배달호 열사 이후에도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투신은 계속되었다.3
15년을 사이에 두고 일어난 이 두 사건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고발 이후 지금까지 정권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이 사회의 노동 현실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국가와 기업이 노동자의 권익 곧 자유권적 기본권과 사회적 기본권 보호를 통해 얻는 공익적 가치보다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이데올로기’에 포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의 인권은 구조적으로 침해를 당한다. 그러나 인권과 이익은 양자택일해야 하는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초과이윤을 달성하기 위해 인권을 유린한 이익은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고, 인권을 지키고 보장하는 것이 결국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권의 경제적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문재인 대통령은 이 사건과 손배가압류법의 심각성을 어떤 정치인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참여정부 첫해인 2003년 당시 민정수석으로 배달호 열사와 김주익 열사의 죽음 현장을 찾아 노사중재를 성사시켰고, 노사정은 손배가압류 남용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노력에 합의했다.
그러나 그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그 결과 현재 손해배상 청구액은 1,800억 원을 넘었으며, 가압류 금액은 180억 원 가까이 이르렀다.4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로서 그는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남용5이 노동3권을 무력화시키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이러한 현실을 국민의 힘으로 바꾸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며 ‘사람이 먼저인 세상, 그래서 노동자들이 행복한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자고 호소하였다.6
이 행복한 꿈이 단숨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까지나 꿈이어서는 안 된다. 그 실현을 향한 발걸음이 시작되고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는 종교계 지도자들과 오찬 간담회(2017. 12. 6.)를 하면서 한상균 사면 건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면은 준비된 바 없다. 한다면 연말연초 전후가 될 텐데 서민 중심, 민생 중심으로 해서 국민통합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가 해야 할 중요한 핵심이 통합인데 우리 정치문화가 통합과는 거리가 있다.”

이 말은 노동자 한상균의 사면을 ‘국민통합’에 걸림돌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만든다. 노동 탄압과 착취의 현실을 국민의 힘으로 바꾸어내자고 했던 그가, 그래서 현 정부를 촛불정부라 자임하는 그가 오히려 청산 대상인 적폐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아직 한상균의 사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상균은 이에 대해 “정권의 정체성은 노동자의 기대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 또한 진전일 것”이라고 동료에게 보낸 편지에서 담담히 답했다. 그에게 “노동 존중 세상을 노동자의 단결된 힘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어서이다. 맞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정권의 정체성은 중요하다. 노동 존중 세상의 ‘현실화’는 그 정권의 정책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권으로서의 노동3권이 보장되고 더 나아가 노동이 존중되는 세상은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이며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다. 이런 세상은 이익, 효율, 이해관계, 전쟁 위기, 통합 등의 이유로 인권이 외면당하거나 짓밟히지 않을 때 비로소 가능한 세상이다. 그런 이유들로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세상이다. 한상균 사면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그 점에서 자기부정에 가깝다. 인권은 통합의 장애물이 아니다. 이를 장애물로 여기는 자들이 바로 장애물이다. 인권을 세우는 것이 통합의 동력이다. 반인권 세력과 함께 해야 하는 ‘현실 정치’가 문재인 정부의 한계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가 그 한계에 갇히면 그것이야말로 모두에게 비극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상균 사면과 노란봉투법 제정에서 그 한계 돌파를 위한 지렛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과 앞에서 간단히 언급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달성은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기회는 균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의 기초가 될 것이다. 그것들은 기회만이 아니라 ‘권력’과 ‘자원’의 평등한 분배를 향한 디딤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그렇지 않으면 ‘기회균등’은 단지 형식적인 것으로 오히려 불평등의 확대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그가 이루고자 하는 ‘통합 이상의 통합’이라는 열쇠가 있다.

2
이 ‘통합’을 『논어』 계씨 편의 ‘불환과이환불균 불환빈이환불안’(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에 비춰 살펴보고자 한다. 비교적 친숙한 이 말은 공자가 염유에게 한 말로 국정을 맡은 자들에게 자주 건네진다. 염유와 계로는 그들이 모시던 계손이 전유를 상대로 전쟁을 기획하고 있을 때 공자를 찾아왔다. 공자는 군주의 부당한 전쟁기획을 막지 않은 것에 대해 그들을 질책하고 군자란 “싫으면 물러나며 (자신은) 이를 원하고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하며 사퇴한다.”7라고 일갈하고 이어서 정치의 책무에 대해 논했다.

적음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균등하지 않음을 걱정해야 하고, 가난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안정되지 않음을 걱정해야 한다. 대체로 균등하면 가난이 없고, 고르면(和) 적음이 없고, 안정되면 기울어짐이 없다. 이 때문에 멀리 있는 자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문과 덕을 닦음으로써 이들이 오게 하고, 이들이 이미 왔으면 이들을 안정되게 해야 한다.8

한편으로는 균등(均)과 가난(貧), 가난과 안정(安), 안정과 기울어짐(傾)이, 다른 한편으로는 ‘균등과 적음(寡), 고름(和)과 적음이 각각 연관되므로 이들 사이에는 ’균등과 고름→가난 없음과 적음이 없음→안정→기울어짐이 없음’이라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름은 적음이 없음에 이르는 과정이기에 채워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는 채움과 덜어줌의 어우러짐을 나타내기에 화합이나 조화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9 균등과 고름을 오늘날의 용어로 바꿔 말하면 그것은 분배의 정의와 복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다시 말해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일 수 없는–법적・제도적 토대 위에서 시행되어야 하는 정치의 핵심이다.
불평등으로 인한 내부의 불만과 불안정은 개인적 선의나 자선 또는 시혜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전쟁과 같은 외적인 위기 조성으로10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폭력과 억압으로 제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불평과 불안정의 원인은 물자가 적어서라기보다 적은 물자가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사회구조에 있다. 또한 가난 자체가 불만이라기보다 가난한 삶조차 안정되게 영위될 수 없게 하는 폭력의 구조화가 그 원인이라면, 국가운영의 과제는 일차적으로 그 구조를 바꾸는 데 있을 것이다. 공평하지 않아서 불안정해진 현실을 바꾸는 것은 비록 현재 국가가 그 구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을지라도 변함이 없다. 권력집단들의 카르텔 해체는 국가가 (그에 대해 분노하는) 국민과 함께할 때 가능한 일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민이 지속적으로 이를 요구하고 표로 심판할 때에만 기대할 수 있다.
(분배가) 공평하게 이루어질 때 상대적 빈곤은 사라질 수 있고, 고르게 될 때 적은 부분이 채워지고, 이로써 삶이 안정되면 (나라가) 기울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불공평과 불평등을 그대로 둔 채 안정 곧 국민통합을 시도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국민을 속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3
성서 시대의 노동자들은 대다수 농장에서 일하는 약자와 일일 노동자로 존재한다. 지금과는 다른 경제체제에 속해 있지만, 이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오늘날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도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레 19:13, 신 24:15, 렘 22:13 등 참조. 욥 7:20과 비교) 약자들을 위한 사회적 제도로 추수하고 남은 것이나 땅에 떨어진 것은 약자들을 위해 남겨 두도록 했다. 휴경지의 산물 역시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휴경지에는 가난한 자들이 먹을 먹거리가 많지만
(자신을 위해) 이를 불의하게 쓸어가는 자가 있다.(잠 13:23, 이하 사역)


휴경제도는 땅의 생산력 회복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이기도 하다.(안식일은 단순히 노동력의 회복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한 종교적・사회적 장치이다.) 그렇지만 ‘불의하다’는 사회적 비판을 감수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더 나아가 그 장치를 무력화시키는 세력들이 있다.
이들이 이용하는 ‘효율적’ 제도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법정’이다.(잠 17:23, 18:5) 장로들로 일컬어지는 지역 유지들이 이 성문 법정을 담당한다. 법정 담당자들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공정과 평등이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외모, 신분, 빈부에 구애받지 않고 공정하게 판결해서 억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이 따른다.(신 1:16-17, 24:17, 27:19, 출 23:12-13, 잠 24:23, 31:8) 특히 법정이 약자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보장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약자를 약자라고 탈취하지 말고 힘없는 자를 성문 법정에서 짓밟지 말라.(잠 22:22, 또한 31:8-9도 참조)

재판하는 자들은 뇌물이나 다수 의견에 따라 부당하게 자신의 판단을 굽혀서는 안 된다.(출 23:2, 신 16:19) 법정은 정의를 지키고 세우는 곳이기 때문이다.(잠 31:9, 또한 슥 7:9, 8:16도 참조) 그러나 법정이 공정과 평등의 원칙에 따른 정의를 지키지 않는 때가 적지 않다(전 3:16, 사 1:23, 29:21, 렘 5:28, 애 3:35-36, 호 10:4, 암 5:12, 미 3:11, 7:3, 습 3:3) 권력집단끼리 결탁하여 약자를 억압하고 수탈한다. 법정과의 연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법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약자들은 짓밟히고, 가난한 자는 부채 때문에 팔려가기도 한다.(암 2:6b-7a, 4:1, 5:11, 또한 욥 24:2-4, 9도 참조) 한 집안이 철저하게 약탈당하고 파괴되기도 한다.(미 2:1-2)
법정이 권력자들과 가진 자들 편에 기울어졌을 때 일어나는 사회적 참상이다. 하나님은 시편 82편에서 최고 심급으로 신들을 재판하며, 약자와 공의를 재판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이 시편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A 1 하나님이 하나님의 ‘법정’에 들어서시고, 신들 가운데서 재판을 하 신다.
B 2 언제까지 너희가 불공정하게 재판하려느냐? 악인의 얼굴을 세워주려느냐? (셀라)
C 3 가난한 사람과 고아를 판결하되, 미천한 자와 없는 사람에게 공의를 베풀어라.
4 가난한 사람과 빈궁한 사람을 구해주어라. 그들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주어라.
C 5 그들은 알아듣지도 못했고 깨닫지도 못한 채 어둠 속을 헤매었다. 세상의 기초가 온통 흔들렸다.
B 6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신들이고,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들이지만,
7 너희도 사람처럼 죽을 것이고, 군주처럼 쓰러질 것이다.”
A 8 하나님, 일어나셔서 이 세상을 재판하십시오. 온 나라가 당신의 것입니다.


신들은 악인 대 약자의 재판에서 악인을 편드는 불공정한 재판을 했다는 죄목으로 하나님의 법정에 섰다. 재판의 불공정성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공정한 재판을 하고 약자들을 악인에게서 구해주는 것이 재판에서 해야 할 일임을 알려주었지만, 그들은 이것이 재판의 존재 이유임을 알지도 못했고 깨닫지도 못했다. 그러한 관행의 결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땅의 기초가 온통 뒤흔들리고 말았다. 세상은 마치 창조 이전의 어둠 같은 세상이 되었다.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이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은 ‘죽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신들에 대한 죽음 선고이다. 이 모든 일이 약자를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약자가 세상의 기초요, 약자가 정의와 공의를 측정하는 리트머스라는 놀라운 선언이다. 시편 기자는 이와 같은 하늘의 질서가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한다. 모든 약자들을 대변하는 기도이다.
시편 기자가 고발하는 악인과 신의 결탁은 마치 현대 자본가와 권력의 결탁을 보여주는 듯하다. 성서가 말하는 정의와 공의는 언제나 약자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한다. 약자/노동자가 세상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약자/노동자들이 세상의 기초이다. 모든 부와 권력은 그들의 고통과 희생 위에 군림하며 기생한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인권을 세워주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권력집단은 죽음을 선고받은 ‘신들’과 똑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자신들의 운명을 걸고 실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현재의 정부는 약자/노동자들의 인권과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1 우리 헌법은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는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고용 보장과 임금 수준 유지와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자본과의 기나긴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획득한 권리이다. 동시에 이를 보장하는 것이 자본주의체제를 안정시킨다는 사실을 자본주의 국가들이 인정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2 <세계인권선언> 23조
[1. 모든 사람은 일, 직업의 자유로운 선택, 정당하고 유리한 노동 조건, 그리고 실업에 대한 보호의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아무런 차별 없이 동일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
진다.
3.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에게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는 생존을 보장하며, 필요한 경우에 다른 사회보장방법으로 보충되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4.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
<세계인권선언>과 달리 우리 헌법 33조는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하지만, 이를 인권의 관점에서 다루지는 않는다. 헌법 34조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인정한다. 그러나 생존권보다는 복지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10조 참조)
3 2003년 10월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전 위원장 김주익 열사, 세원테크 노조위원장 이해남 열사, 2012년 12월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원 최강서 열사 등이 있다. 동일한 경우는 아니지만 노조탄압과 노조파괴공작을 견디지 못해 2016년 3월 17일 목숨을 끊은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도 있다.
4 손잡고, 『2017년 상반기 손배가압류현황 및 노동현장 피해사례 발표 기자회견』에 따르면, 2017년 6월 기준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총 24개 사업장 65건이고, 손해배상 청구금액(누적액)은 총 1,867억 6,414만 9,085원, 가압류 금액은 총 179억 7,250만 2,147원이다.
5 하이디스 노동자 이상목 씨 경우는 이 법의 남용을 잘 보여준다. 2015년 1월 회사의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서던 노조 지회장 배재형 씨가 4개월 후 대표이사와의 면담 뒤 사라지고 일주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되자, 이상목 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그가 목숨을 끊은 것은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회사는 이에 대해 이상목 씨에게 4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1심 법원은 그에게 3,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하였다. 지난 1월 19일 항소심에서 서울고법 제34민사부는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고 1,7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하였다.
6 문재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이던 2015년 10월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남용은 노동3권을 무력화시키는 부당한 처사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고달픈 싸움에서 승리하고도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라며 “이러한 현실을 국민의 힘으로 바꾸어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시민들이 맞잡은 손을 이어받아 노정법(노동관계조정법) 개정법 노란봉투법을 관철시켜낼 것입니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 그래서 노동자들이 행복한 세상,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나갑시다.”라고 말한 바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05QV9jtO2ts) 그렇지만 노란봉투법은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을 비롯해 정의당 이정미 의원 등이 1년 전 발의했지만 법 개정을 위한 후속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7 君子 疾夫舍 曰欲之而必爲之 辭
이 본문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사(舍)와 사(辭)의 기능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치다, 물러나다’ 등을 의미하는 사(舍)가 동사를 목적어로 취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사(辭)는 여기서 명사일 수 없다. 欲之而必爲之는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이를 분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따라서 위와 같이 떼어 읽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이렇게 읽으면 이 글은 염유와 계로의 상황에서 군자가 마땅히 취해야 하는 행위를 나타낸다.
8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夫如是故 遠人不服則修文德以來之 旣來之則安之
*寡(과)는 不均(불균)과 연관된 말이므로 여기서는 재화의 적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9 이것은 寡(과)를 인구의 적음으로 보는 주자의 견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10 공자는 각주 7의 본문에 이어 이렇게 말한다. “지금 유와 구가 계손을 돕고 있지만 멀리 있는 자들이 복종하지 않는데 오게 할 수 없고 나라가 무너지고 떨어져 나가도 지킬 수 없는데, 나라 안에서 방패와 창을 움직이려고 모의하니, 추측건대 계손의 걱정이 전유가 아니라 담장 안에 있는 것 같다.”(今由與求也 相夫子 遠人不服而不能來也 邦分崩離析而不能守也 而謀動干戈於邦內 吾恐季孫之憂不在顓臾而在蕭墻之內也)


김상기 |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나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과 독일 뮌스터대학교 신학부에서 구약학으로 박사학위(Dr. Theol.)를 받았다. 감신대와 한신대에서 강의하며, 백합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위기Ⅰ‐대한기독교서회 창립100주년기념 성서주석』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기도』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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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호(통권 7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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