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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소통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지만, 일상이란 본래 소통의 산물이다. 개인이나 집단 차원에서, 사적이나 공적 차원에서 소통의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더 나은 소통을 위해 소통의 과정을 돌아보며 법칙을 찾으려는 시도가 적지 않다.
소통은 이해와 공감에 바탕을 둔 관계 형성을 낳기도 하고 그 결과이기도 하다. 이것을 실천하는 한 가지 길은 ‘역지사지’(易地思之)에 있다. 이는 자신의 의도를 상대의 입장에 놓고 자신을 향해 스스로 그 의도의 정당성을 묻는 것이다. 성서에서 역지사지는 황금률로 나타난다.1 이렇게 할 때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제거될 수 있다.
소통은 자신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관철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질문과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광고나 구호는 소통으로 보기 어렵다. 물론 역지사지 또는 황금률의 완벽한 실천을 사람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행위를 결정하는 지침 혹은 준칙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국가나 국민과 같은 집단에 기대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소통의 부재나 결함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희생을 초래하므로 소통의 필요성은 그만큼 더 커진다. 따라서 이 관점에서 현재 상황을 살펴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소통은 현 정부의 모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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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다수 국민의 기대와 희망 가운데 출범하였다. 있을 수 없는 ‘박근혜-최순실’ 불통 정권과 그 세력의 국정농단, 그리고 세월호 학살이 정권 교체의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와 희망은 단지 정권 교체에 머무르는 것만은 아니었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 세력의 역사적 뿌리인 친일독재 및 극우세력 청산에까지 이르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 곧 헌법적 가치가 실현되는 세상을 여는 데 있었다. 문재인 정부 100일은 대체로 그 기대와 희망을 강화하는 기간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불통이 소통으로 바뀌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예우를 받고, 세월호 가족들이 청와대에 초청을 받았다. 상징적인 일들이지만,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게 나라다!”라고 말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소통이란 무언가를 보여주거나 알리기 위한 선전 도구가 아니다. 변명이나 자기주장, 이미지 창출의 수단은 더더욱 아니다. 소통은 일련의 질문 교환에 의한 상호 이해로 막힌 것을 헐고 공동의 과제를 찾고 실천함으로써 함께 미래를 열어가는 길이며, 고통을 덜고 보다 유쾌한 삶의 장을 만들어가는 길이다. 그래서 소통은 화해, 존중, 공감, 배려, 행동의 소통이다.(현실에서 적 또는 적대 세력에 대해 소통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껏해야 이익을 나누는 ‘협상’이 있을 뿐이다.)
이런 것이 소통이라면 소통의 영역은 제한구역이 있을 수 없고, 또 있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소통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특수 영역이 있음을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것은 소통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인사정책, 사드 및 북핵 문제만큼은 어떠한 ‘소통’도 시도하지 않고 있다. 이것들은 소통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소통이 불필요한 영역이어서 그런가? 아니다. 오히려 소통이 절실히 요구되는 영역이다. 부적절한 인사들에 대한 이의 제기에 생활 보수니, 대통령의 철학에 어긋나지 않는다니, 교육부 장관이 아니면 괜찮다느니, 실무 능력이 중요하다느니 등의 말로 응수하는 것이 소통인가?2 대통령 역시 ‘생활 보수’라는 것인가? 생활에서는 국정화를 지지하고 4대강을 옹호하고 최순실을 변호해도 좋다는 것인가? 이는 촛불을 부정하는 궤변일 뿐이다. 촛불이 청산하고자 했던 적폐를 보호하고 정당화하는 기만일 뿐이다.
군사 문제에 대해서는 한술 더 떠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고 강경 일변도이다. 형식적으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폭압적으로 사드를 배치한 후 일방적인 입장문이 발표된다. 사드 배치를 거부하는 중요한 이유가 환경 문제가 아닌데도 단지 그 때문인 것처럼 호도하며, 현재의 사드 배치는 나중에 엄격한 환경평가를 할 때까지 ‘임시’라고 한다. 마치 정부가 그 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사드를 철수시킬 수 있는 양 그렇게 말한다. 이제까지의 한미관계를 보면 한국에는 미군과 그에 속한 것들을 임의로 처리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그 말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고 사실상 속임수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사드가 적절한 방어무기가 될 수 없음은 그 무기가 언급될 때부터 알려진 사실인데, 그런 것을 마치 최선의 방어무기인 양 치켜세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화의 기회를 다 걷어차고 오직 북을 최고 강도로 압박 제재한다는 한 가지 목표만 내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구걸’ 외교를 마다하지 않지만, 돌아오는 답은 비아냥에 가깝다. 그런데도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한일 공조를 이루기 위해 ‘미래 지향적’이라는 상투적 이유를 들먹이며 한일 간 현안들조차 덮고 넘어갈 기세다.
이로부터 되돌아보면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처음 몇몇 ‘소통의 모습들’은 중요하지만 비교적 부담이 적은 사건들에 한정되어 있었다. 정작 소통이 더 긴밀하게 이루어져야 할 영역에서는 소통 대신 대립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통으로 시작된 정부가 소통을 닫고 있다. 과거의 불통과 억압 정권으로 역행 내지 회귀하고 있지 않은가?
국방의 기초가 천시(天時)보다도, 지리(地利)보다도, 무기보다도 인화(人和)에 있음은 수천 년의 역사가 증명해온 ‘사실’이다.3 또한 인화는 소통과 설득 없이는 불가능하다. 소통 중단이나 거부는 국방의 기초를 스스로 허무는 일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국방을 말하며 국방을 부정하는 모순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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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정부의 소통 문제를 일단 말길[言路]의 관점으로 바꿔본다면, 그 이해를 우리는 무엇보다도 조선의 조광조(1482-1519)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언로 관장 부서로 처음에는 양사(兩司) 곧 사간원과 사헌부가 있었고, 성종 이후에는 이 둘에 홍문관이 더해져 삼사로 확대되었다. 1515년 조광조는 양사의 관원인 대간(臺諫)이 왕의 요청에 따라 직책상 간언한 사간원의 박상과 김정 두 사람의 말을 문제 삼아 처벌하자 ‘양사’를 파직해야 한다고 중종에게 청하며 이렇게 말한다.
말길(言路)이 통하는지 (아니면) 막히는지는 나라(의 운명)과 가장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말길이) 잘 통하면 나라가 ‘질서 있고’ 평안하지만(治安), 막히면 어지러워지고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말길을 넓히는 데 힘써 위로는 공경과 집백사로부터 아래로는 마을과 동리(閭巷과 市井)의 민간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말할 수 있게 합니다. 그렇지만 말할 책임이 없으면 스스로 말을 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임금에게 직언하는) 간관을 두고 ‘말길’을 주관하게 합니다. 그가 말하는 것이 비록 과도하더라도 모두 마음을 비우고 관용으로 대하는 것은 말길이 혹시라도 막힐까 우려해서입니다. …대간이 된 사람은 말길을 열어야 ‘하고’ 그래야 그 직책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 등의 건은, 재상이 혹시 처벌할 것을 청했다 해도, 대간이 (김정 등의 편에서) 해결함으로써 말길을 넓혔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그 자신이 말길을 훼손시키고 앞장서서 그 직책을 ‘놓아버렸습니다.’ 신이 이제 정언(正言)으로서 어떻게 그 직책을 ‘놓아버린’ 대간과 함께 일할 수 있겠습니까? 서로 용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양사(兩司)를 파직하고 말길을 다시 열어주시기를 청원합니다.4
조광조는 왜 대간만이 아니라 사헌부와 사간원을 모두 물갈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추정컨대 그 까닭은 양사가 말길을 권력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양사 책임자(?)가 스스로 말길을 막는데도 양사의 관리들이 이를 막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5 말길은 그것을 담당하는 자들이 스스로 안팎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조광조의 주장이 극단적으로 보이겠지만,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말길에 국가의 안위가 달려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열린 말길이 인화(人和)의 조건이라면, 그의 말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은 조광조만이 아니라 조선의 기본적인 말길 이해라고 할 수 있다.6 말길이 막히면 아첨하는 자들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윗글은 말길의 제도화를, 말길이 민간 백성에까지 이르러야 하지만 책임이 없으면 다 말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양사 같은 ‘언론 기관’은 원칙적으로 군주와 백성 사이의 말길을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제도를 넘어 백성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성호 이익은 그의 책 『성호사설』 18권 “경사문” <순민>(詢民, 백성에게 물어라)에서 바로 이 점을 다룬다.
맹자는 “좌우가 다 어질다 해도 안 되고, 모든 대부가 다 어질다 해도 안 된다. 국인(國人)이 다 어질다 한 다음에야 등용한다.”라고 하였다.7 국인이란 일반 대중을 가리킨다. 서민의 말이 어떻게 위에 이르기에 그들이 된다 안 된다 할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결정해야 하는가?
추관 조사가 외조(外朝)를 관장하는 법을 생각해보자. [죄를 신문하는 일을 극목지청(棘木之聽)이라 한다. 그때] 왼쪽에는 고(孤, 삼공 다음의 관명)・경・대부가 자리하고 여러 사(士)들이 그 뒤에 있고, 오른쪽에는 공・후・백・자・남이 자리하고 여러 이(吏)들이 그 뒤에 있다. 삼괴(三槐, 조정 뜰에 있는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마주보고 삼공(三公)이 자리하고 주장(州長)과 일반 대중이 그 뒤에 있다. 왼쪽 가석(嘉石, 형으로 다스리기 어려운 가벼운 범죄자들이 앉는 곳)에서는 부랑민(罷民)을 뉘우치게 하고, 오른쪽 폐석(肺石, 의지할 곳 없는 빈민이 억울함을 호소할 때 서는 자리)에서는 서민들이 사정을 말하게 한다.
소사구(小司寇)는 모든 백성을 불러 물음으로써 외조(外朝)의 정사를 관장한다. 첫째 나라의 위태로움을 묻고, 둘째 나라를 옮기는 것에 대해 묻고, 셋째 임금 세우는 것에 대해 묻는다. 각자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왕은 남쪽을 향하고, 삼공 및 주장(州長)과 백성은 북쪽을 향하고, 신하들은 서쪽을 향하고, 이(吏)들은 동쪽을 향한다. 이로써 많은 사람이 (왕의) 뜻을 보좌하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게 한다.
옛날에 성인은 이렇게 꼼꼼하게 생각하고 신중하고 치밀하였는데, 후세에는 오직 권력을 잡거나 측근인 자들과만 어울려 위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하니, 비록 백성들에게(蒭蕘) 좋은 계책이 있어도 위에 이를 길이 없으니 어찌 참으로 한이 되지 않겠는가? 한(漢)나라 이래 어진 임금과 큰 재상이 없지 않았으나 이렇게 정치했다는 것을 아직 한 번도 듣지 못하였다. 정치가 옛날만 못한 것이 당연하다.8
성호는 맹자의 말을 출발점으로 삼아 일반 대중의 의견을 어떻게 청취할 수 있는가를 추관(형조)의 예를 들어 밝힌다. 추관의 외조와 소사구는 모두 일반 대중을 그들의 일에 참여시키고 그들의 의견을 묻는다. 그는 이 형식을 다른 영역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고 본다. 맹자는 양혜왕에게 인재를 등용할 때 몇몇 고위층이나 정치 집단의 의견이 아니라 대중의 동의를 구하고 대중이 인정하는 자를 등용해야 한다고 말한다.9
이것이 소통이다. 정치에서 대중은 권력의 수단도 아니고, 위로를 받거나 맺힌 한을 풀게 해주는 수동적 대상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대중은 권력을 향해 권력과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정치 주체이다. 성호가 탄식하는 것처럼 그러한 소통 구조의 정치는 그때까지 실현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맹자가 말하고 성호가 논한 정치는 어쩌면 현대에 와서 그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사상은 미래를 이끌어가는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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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성서 시대의 정치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스라엘 백성은 소통에 참여하는 주체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다. 소통과 관련이 적은 사건에서도 대중의 정치적 역할은 대부분 가려져 있지만, 백성이 왕을 세우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기록이 짤막하게 언급되기도 한다.(왕상 16:16, 왕하 14:21, 23:30, 대하 33:25, 삼상 8장)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는 사건을 소통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에 대한 보도는 예고(왕상 11장)와 실현(12장)의 2단계로 진행된다. 그렇지만 분열이 예고의 실현임을 보여주는 것은 12장 15절에 있는 내레이터의 해설뿐이다. 이것은 11장이 12장의 정치적 사건에 대한 신학적 해석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12장에만 관심을 기울여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12장 1-20절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진행과 구조를 보여준다.
A 1절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왕 즉위 준비
B 2-3a절 이집트로 피신한 여로보암을 사람들이 불러옴
C 3b-4절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이 르호보암에게 왕이 되는 조건으
로 노역 완화를 요구함: 남북 분열 원인
D 5-14절 르호보암이 이를 거부하고 노역 강화를 선언함
E 15-16절 이스라엘이 르호보암을 거부함: 남북 분열 시작(15절은
내레이터의 해설)
A 17절 유다가 르호보암을 왕으로 받아들임
C 18a절 르호보암이 이스라엘에 노역을 시키려고 함
D 18b절 이스라엘이 노역을 거부함: 남북 분열 진행
E 19절 (내레이터의 평가) 남의 관점에서 남북 분열 확인과 평가
B 20절 여로보암의 이스라엘 왕 즉위: 남북 분열 완료
열왕기상 12장은 분열의 계기를 솔로몬의 강제 노역에서 찾는다. 솔로몬은 성전과 왕궁 외에도 상당수의 ‘도시’들을 건설하고 양곡을 저장하기 위한 성읍, 병거와 기병이 주둔할 성읍을 곳곳에 세웠다. 이에 동원된 노역자들에는 열왕기상 9장 20-21절의 보도와 달리 이스라엘 땅에 있던 원주민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도 포함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권 교체기에 노역을 완화시키기 위해 솔로몬의 후계자인 르호보암과 왕권 수용을 내걸고 협상을 시도하였다. 권력자와 백성 사이에는 두 종류의 참모들이 있었다. 백성 편에 선 자들과 백성과 대립하는 자들이었다. 르호보암은 인화(人和)의 길과 대립의 길 가운데 후자를 택했다. 대립은 이스라엘의 노역 거부와 다른 왕 옹립으로 귀결되었다.
경험 많은 노인 참모들의 말에서 섬김은 핵심 역할을 한다. 왕과 백성의 관계를 이렇게 말하는 경우는 이곳이 유일하지만, 성서에서 이 구절의 중요성은 작지 않다. 그들은 왕이 ‘백성을 섬기는 자’(에벧 라-암)가 될 때 백성은 왕을 영구적으로 섬길 것이라고 간언(諫言)한다. 왕은 그의 권력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소리를 들음으로 먼저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 역이 아니다. 참모들은 권력자가 그렇게 결정할 수 있도록 간언해야 한다. 왕과 백성 사이의 소통을 가로막는 아첨꾼들이 득세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이 이야기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실에서도 실제로 참모들의 견해는 일치되지 않고 이처럼 상반될 때가 많을 것이다. 그때 결정은 오로지 권력자든 누구든 결정권자의 몫이다. 르호보암이 그와 백성을 이간시키는 간언(間言)을 따라 백성의 소리를 짓밟은 것은 그에게 솔로몬 이상으로 권력에 대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자에게 백성은 소통의 상대가 될 수 없다. 단지 강제와 억압에 의한 통치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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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문재인 정부를 평가하는 데 있지 않다. 트럼프와의 의기투합은 소통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일치에 불과하고, 소통이 필요한 것은 남과 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상대를 무시하는 독백이나 시혜를 베푸는 듯한 오만은 소통의 최대 장애물이다. 적어도 몇몇 국가들은 북의 도발적 행위에 담긴 의도를 인식하고 인정한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애써 외면하는 이유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정책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일관성의 상실일 뿐 아니라 그 정책과 정권 지지자들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배반이다.
권력은 국민에게 이해 내지는 복종과 섬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권력이 섬길 때 그 권력은 섬김을 받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열왕기상 12장의 기자는 역지사지를 실천했으며 황금률을 국가권력과 국민의 관계에 적용했다고 볼 수 있다. 르호보암은 이 제안을 거부하고 남북 분열을 가져왔다.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 문재인 정부에 그와 다른 태도를 기대하면 안 되는가?
1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
2 관련 후보는 얼마후 사퇴하게 된다. 이 사건은 권력의 억지가 결코 국민에게 지지받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3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맹자』 공손추 하 1)
4 言路之通塞最關於國家 通則治安 塞則亂亡. 故人君務廣言路 上自公卿執百事 下至閭巷市井之民俾皆得言. 然無言責則不自得盡. 故爰設諫官以主之. 其所言雖或 過當, 而皆虛懷優容者, 恐言路之或塞也 … 爲臺諫者能開言路 然後可謂能盡其職也. 金淨等事, 宰相雖或請罪, 臺諫則當救解, 以廣言路. 而反自毁言路, 先失其職. 臣今爲正言 豈敢與失職臺諫同事乎 不可相容矣. 請罷兩司 復開言路.(『조선왕조실록』 국편영인본, 15책, 122.)
5 영화 <공범자들>은 MBC 기자와 PD들이 저 대간처럼 말길을 왜곡 폐쇄시키는 사장과 고위직들, 그리고 그 배후인 권력에 맞서 처절하게 투쟁한 역사를 보여준다.
6 『율곡전서』 3권 <진미재오책차>(陳弭災五策箚)에서는 “말길의 열림과 닫힘, 거기에 흥망이 달려 있다.”(言路開塞 興亡所係)라고 하였다. 또한 『삼봉집』 2권 <문덕곡 병서>(文德曲 幷序)는 이성계를 기리는 노래이지만, 거기서 삼봉은 아래와 같이 말길을 열고 말길을 일반 백성에게까지 여는 것을 군왕의 덕목으로 간주한다. 그는 같은 책 다른 곳에서 이러한 언로 이해를 제도화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궁궐은 구중으로 깊고 엄숙하고(法宮有儼深九重 법궁유엄심구중)
하루에도 온갖 정사가 무수히 쌓인다.(一日萬機紛其叢 일일만기분기총)
군왕은 민심을 꿰뚫어야 하니(君王要得民情通 군왕요득민정통)
말길을 활짝 열어 천하사방에 이르게 하셨네.(大開言路達四聰 대개언로달사총)
말길이 열렸으니 신의 생각에는(開言路臣所見 개언론신소견)
우리 임금님의 덕이 순 임금과 같도다.(我后之德與舜同 아후지덕여순동)
그리고 세종은 신하를 예로 대하고 간언을 따르고 어기지 않았다고 한다.(使臣以禮 從諫弗咈 사신이례 종간불불, 『조선왕조실록』 세종32庚午秊)
7 『맹자』 양혜왕 하 7.
8 孟子曰 左右皆曰賢未可也 諸大夫皆曰賢未可也 國人皆曰賢然後用之 所謂國人者衆庶也 庶民之言何以上達而必待其是非然後㫁之耶
按秋官 朝士掌外朝之法 左九棘孤卿大夫位焉羣士在其後 右九棘公侯伯子男位焉羣吏在其後 面三槐三公位焉 州長衆庶在其後 左嘉石平罷民焉 右肺石逹衆庶焉
小司寇掌外朝之政 以致萬民而詢焉 一曰詢國危 二曰詢國遷 三曰詢立君其位 王南面 三公及州長百姓北面 羣臣西面 羣吏東面 以衆輔志而蔽謀
古聖人綢繆慎宻如此 後世惟與秉權近昵者獨断扵上 雖有蒭蕘善䇿 無由上通 豈不可恨之甚耶 自漢以来賢君碩輔不無其人 未聞一有行此政者 治不古若宜矣
9 국회의 인사청문회는 많은 경우 여론을 무시하고 여론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다. 민의에 기반을 둔 법치를 실현할 의지가 없는 정당은 정당의 본래적 의미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
김상기 |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나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과 독일 뮌스터대학교 신학부에서 구약학으로 박사학위(Dr. Theol.)를 받았다. 감신대와 한신대에서 강의하며, 백합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위기Ⅰ‐대한기독교서회 창립100주년기념 성서주석』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기도』 외 다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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