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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전쟁이 멈춘 지 두 세대가 지났다. 그러나 분단 상태는 지속되었고, 전쟁의 기억은 일종의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되어 여전히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 까닭은 전후 복구 노력이 전적으로 경제적 측면에 집중되었고, 반면에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사회적 노력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독재권력은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여 권력 기반을 다지려 했고, 이를 위해 그것을 확대 심화시켰다. 그 결과 전쟁의 기억과 상처는 비정상적인 사회심리학적 ‘장애’로 발전되었고, 그것은 극우적인 사고와 행태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다수가 이 현상으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 있다. 65세 이하의 전후 세대가 인구의 85%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그렇다. 전쟁의 상처를 이용한 독재정권의 기만적 통치술이 성공적일수록 그 기억은 더 왜곡되고 그 상처는 더 깊이 내면화되었다.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들 역시 그 상처를 치유하려 하지 않았고, 독재정권과 궤를 같이하며 대립을 조장해왔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그것은 마치 존재 기반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기독교의 이와 같은 현상은 ‘비기독교화’라고 할 수 있다. 사랑 대신 증오를 키우고, 하나님의 자리에 맘몬을 앉히고,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지 않고 거짓과 불의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가두고 말씀을 파묻는 비기독교적 기독교, 그런 기독교가 회개할 수 있을까? 그 트라우마를 우리 사회가 극복하는 데 교회가 기여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그 트라우마 극복은 새 정부에 거는 여러 가지 기대 중 하나이다. 그런데 단순한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어쩌면 그러한 기회를 앞으로도 상당 기간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이를 뒷받침할 강력한 징후가 북에 대한 정부 태도의 급변(?)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관계는 다자의 관계이므로 정부의 변화가 아무 이유 없는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북에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그래도 새 정부이기에 다름을 기대했고 지금도 그 기대를 완전히 접을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문재인 대통령이니까,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그와 같은 과거에서 벗어나기 한층 더 어려워질 테니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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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미국 방문 시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만났고 그들의 회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당시 흥남철수작전에 참여했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그 배를 타고 남쪽으로 피난온 젊은 부부의 아기였다고 소개한다. 그들에게서 불과 2년 후에 태어난 아기가 대통령이 되어 그들 앞에 있으니 벅찬 감회와 감사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는 “저의 삶이 그런 것처럼 한미동맹은 양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강하게 연결돼 있다.”라고 말할 수 있었고, 한미동맹은 “더 위대하고 더 강한 동맹”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혀지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주최한 백악관 오찬에서 ‘전략적 인내가 끝났다’는 미 대통령 트럼프의 입장에 동의하며 “압도적인 힘의 우위가 있어야 대화와 평화도 가능하고, 그런 점에서 한미 연합방위 능력과 한국군의 자체적 방어능력이 강화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 놀랄 만한 발언은 그 이전의 발언과 그 이후의 조치들이 말해주듯이 결코 외교적 수사가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방문 전인 지난 6월 초 사거리 500km 미사일 발사 성공을 지켜보고 “포용정책도 우리가 북한을 압도할 안보 능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라고 했다. 정부가 사거리 800km 탄도 미사일 탄두의 최대 중량을 현재 0.5톤에서
1톤으로 늘리기 위해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을 추진하는 것도 그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북의 미사일 발사 직후 잔여 사드 배치를 전격 지시한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요 시 우리의 독자적인 대북제재 방안”도 검토하고 또한 (정부의 부인으로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으나)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북한 지휘부 및 핵/미사일 시설을 정밀 타격하는 시나리오”를 만들 것을 지시하는 데까지 이른다. 바로 여기서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 추구가 겨냥하는 군사적 목표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입장을 그 이전의 몇몇 발언과 비교하면 뚜렷한 변화를 볼 수 있다.
그는 대통령 선거 직전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남북관계 단절의 시기에 통일을 향한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경제협력으로 꼽았다. 그가 이러한 ‘포용정책’이 가능하다고 본 까닭은 김정은이 비합리적 지도자일지라도 북의 통치자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과거 한미가 경제적・외교적 제재, 압박, 고립을 통해 북을 고사시키려 했던 ‘전략적 인내’ 정책보다 햇볕정책이 더 효과적이었음을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이 점에서 그가 ‘전략적 인내’를 실패작으로 보는 트럼프에 동의한다는 것은 이해된다. 그렇다면 그는 현재 그가 말하던 포용정책에 다가가고 있는가? 그래서 트럼프와 다른 길을 가고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베를린에서 냉전과 분단을 넘어 통일을 향한 ‘신 한반도 평화비전’을 제시한다. 그것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노력을 계승하고 “대한민국의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그 핵심에 북핵 문제가 있다. 그는 북이 핵도발을 전면 중단하고 비핵화를 위한 양자대화와 다자대화에 나서면,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 북의 안보와 경제에 대한 우려, 북미 관계와 북일 관계 개선 등을 포괄적으로 해결해나갈 것을 약속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구조 정착은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서 찾는다. 또한 “올바른 여건이 갖춰지고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전환시킬 계기가 된다면” 남북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양자가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일로 민간교류 확대와 군사분계선에서의 상호 적대행위 중단, 남북 간 접촉과 대화 재개 등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그럼에도 남과 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왜일까? 오로지 북의 탓일까?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둔 시점에서 문정인 전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미국에서 북한이 핵을 동결하면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청와대는 한미 관계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엄중하게 경고성 주의를 주었다. 며칠 뒤 북의 인도주재 대사가 “예를 들어 미국이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단한다면” 북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한미 동맹에 따른 방어적 성격의 합법적인 군사훈련과 북한의 불법적인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은 동등하게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거부했다.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할 수 있다는 베를린 선언은 이와 관련하여 무슨 의미가 있는가? 대화의 관심사는 오직 북에만 적용되는 것이었는가?
비핵화도 단계를 밟아야 한다면 그것에 실질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화 가능성을 닫아버린 다음에 이어진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의 연설은 결국 비핵화 목표만 고집하는 내용 없는 말잔치에 그치고 만다.1 그러한 제안의 수용은 민간교류와 경제협력을 앞세운 햇볕정책과 다른 길이 될 수도 있었다. 더구나 햇볕정책은 압도적 힘의 우위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그런 것에 기대어 성과를 낸 것도 아니었다. 압도적 힘의 우위 추구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4% 수준인 국방예산을 임기 내에 2.9%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로 귀결된다. 이것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군비경쟁을 유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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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부국)강병책’이라는 말로 옮길 수 있다. 부국강병은 예로부터 크고 작은 뭇 나라들의 이상이다. 그러나 그것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일은 흔치 않다. 성호 이익은 짤막한 그의 글 “상앙망진”에서 이를 통찰력 있게 다룬다.2 상앙은 진나라에 변법을 도입해 중국 통일의 토대를 닦은 자이다.3
성호는 부국강병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나 그것(을 말하는 것)의 실체를 종국적으로 사익을 위한 구실로 파악하며, 그러한 인식의 준거틀로 ‘인의’를 제시한다. 인과 의는 간단히 말해 사람을 중심에 놓는 것 또는 사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부국강병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고, 인과 의의 실현에 기여하는 종속적 수단이다. 군대는 버릴 수 있고 부는 포기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상앙의 중농정책을 예로 들어 비판한다. 그는 밭(의 경작면적)을 (늘리기) 위해 천맥을 열었다.(爲田開阡陌)4 ‘열었다’는 말의 의미를 둘러싸고 ‘시작했다’는 입장과 ‘결렬시켰다’는 정반대의 입장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5 천맥은 가로와 세로로 난 도로로서 토지 경계 역할을 하므로 이를 ‘열었다’는 것은, 상앙의 농업 중시정책과 이를 위한 분가(分家) 정책에 비춰 추정컨대, 농토 확장을 위해 정전제의 토지 경계를 재편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성호는 여기서 그 말을 결렬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상앙은 인의를 실현하기 위한 문왕(文王)의 토지제도인 정전법을 최종적으로 무너뜨린 자라고 본다. 이는 부국강병을 전면에 내세운 탓이다. “부를 말하고 강(强)을 말하면 분명 인의(仁義)의 어떤 모습도 볼 수 없지만, 인의를 말하면 부와 강은 그 가운데 있다.”
현대 국가에서 이러한 관점은 무의미한가? 복지가 현대국가의 중요한 과제라고 한다면, 성호의 입장은 지금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복지정책은 넓은 의미에서 인의 정치 실현에 가깝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과 의의 우선은 부와 강의 의미와 목표도 달리 이해하게 만들 것이다. 압도적 힘의 우위와 이를 위한 국방비 증대는 비록 복지를 말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선후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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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강병을 추구한 정치의 예는 유다의 웃시야 왕에 대한 역대기하
26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이야기는 웃시야 (치하 유다)의 막강한 세력에 대해 보도하는 8절과 16절에 의해 단락이 구분된다. 6-8절이 하나님의 도움을 내용으로 한다면, 16-20절은 하나님에 대한 범죄를 다룸으로써 6-8절과 상반되는 짝을 이룬다. 이로써 26장은 다음과 같은 교차법적 구조를 보인다.
A 1–5절 웃시야의 처음: 하나님을 찾음
B 6–8절 하나님의 도움
C 9–15절 웃시야의 부국강병책: 농업과 군사력
B 16–20절 하나님에 대한 범죄
A 21–23절 웃시야의 마지막: 하나님과의 단절
웃시야는 예루살렘을 요새화하고 농토 개간과 수리시설에 역점을 두고 군사력 증강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국력이 크게 신장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유다가 주변국들로부터 조공을 받을 만큼 강국이 된 이후의 일이었다. 본문은 이를 그가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은 그를 도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에게 예배드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의 다른 말이고, 본문은 예언자 스가랴를 언급함으로써 이를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가리키며, 그 내용은 (이사야 1장에 따르면) 악을 버리고 선을 배우고 정의를 구하며 약자 편에 서는 것이다. 앞에서 나온 말로 하면 ‘인의’라고 할 수 있다. 호세아 6장 6절에 의하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인애이고, 번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예언자 스가랴의 안내를 받는 웃시야가 하나님을 찾는 것은 다른 내용일 수 없다. 그 결과가 하나님의 도움이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은 성서가 도처에서 보여주듯이 군사력에 기댄 승리가 아니다. 그들의 군사력은 오히려 열세였고 보잘것없었다. 군사력에 의존하고 강대국에 기대는 것은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웃시야는 적어도 처음부터 부국강병책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인과 의의 실천이 조금은 다른 의미의 부국강병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훗날 왕권의 영역이 아닌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 대신 하나님께 분향하려 했고, 이 때문에 제사장들과 충돌했다. 이것은 단순히 제사장들과의 다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었다. 그가 이렇게 행동한 이유를 성서는 교만 때문이라고 한다.(16절) 무엇이 그를 교만하게 만들었는가? 9-15절은 그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강성하게 된 이후에 대해 보도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그는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지만 그 일들의 상당 부분은 자신의 부와 안전을 위한 것이었다.(9-10절) 그것은 동시에 임금을 받는 다수의 농업노동자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토지제도가 붕괴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 위에 그는 군사력 증강과 무기 개발에 열심을 냈다. 본문은 15b절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보도한다. 그러나 그 보도는 9-15a절의 부국강병을 위한 그의 활동과 직접 연관되지 않고, 8절을 다른 말로 반복하는 것으로서 16절로의 이행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그는 하나님을 찾고 신뢰하는 인의 정치로부터 스스로 부를 축적하고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이에 의존하는 일종의 패권정치로 옮겨간 셈이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이것이 그의 교만을 낳았다.
문제는 그의 교만이 한 사람의 재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사야 6장은 이스라엘의 철저한 멸망을 예언한다. 이사야는 당시 이스라엘을 입술이 부정한 백성이라고 평가한다. 웃시야의 교만은 이스라엘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신 것처럼 이스라엘도 깨끗하게 하시리라 기대했지만, 그가 이스라엘에 선포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멸망이었다. 1차 재앙에서 그 땅의 10분의 1이 남아도 그것마저 불타버릴 것이다.(13a절)6 이것이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정치의 최종 결과이다. 상앙을 따른 진나라나 웃시야를 따른 이스라엘이 유사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놀랍다. 양자 모두 정치의 본령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그럼에도 부국강병은 여전히 상당수의 국가를 지배하는 불행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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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와 함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평화를 압도적 힘의 우위로 이루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정전체제의 종식을 거부하는 것은 북이 아니다. 평화협정은 종잇조각이어서는 안 된다. 평화협정이 실질적이고 지속적이려면, 쌍방 간의 조치가 단계별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어느 한쪽의 요구만 있다면 평화협정에 이르는 길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압도적 힘의 우위 강조는 대화와 경제와 문화 교류 의지를 실종시키고 말았다. 이것 자체가 이미 압도적 힘의 우위 정책이 지닌 한계를 보여준다. 이런 정책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권이 닫은 남과 북의 창구를 더 굳게 닫을 수 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이 혹시라도 전쟁의 기억이 남긴 트라우마가 숨어 있다가 발현되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된다. 그 때문에 촛불로 시작된 문재인 정부가 촛불을 잊어버리고 힘에 의지하지 않기를 바란다. 웃시야의 불행이 오늘 한국에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빈다. 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평화로 평화협정에 이르는 길을 가는 우리와 우리 정부가 되기를 빌자.
* 필자 후기-문재인 대통령의 8・15 담화는 북과 관련해서는 지금까지의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북의 핵동결은 대화의 전제가 아니라 대화의 결과이고, 제재의 해제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렇지만 군사적 대화의 문도 열어놓겠다는 것은 중요한 진전이다. 이 같은 작은 진전이 계속되어 사고의 전환에까지 이르러야 평화가 올 것이다.
1 여기서 문재인 대통령은 아울러 1)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2)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으며, 3) 북한 정권의 교체나, 4) 정권의 붕괴를 원하지 않고, 5) 인위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가속화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2 富國强兵豈非善事 畢竟是私利之題目 言富言强時 了不見有仁義影子 擧仁義則富强在中也 商鞅志富强而終成之 可謂有功扵秦 然其終也 亡秦者鞅也 以其外仁義也 使秦按岐周故基 復修文王之政 亦未必不王天下矣 孟子與鞅並世 是時齊滕之間 井牧無㾗 惟鞅則决裂阡陌 盖尙有聖人之遺制也 此其與仁義背馳之一驗 及其覇成 富過而奢 强過而驕 奢必重歛 驕必虐人 馴至扵始皇而極焉 此皆鞅之餘烈 非一朝夕之故也
…
鞅也助(=鋤)之 卒至扵廢舊典而開阡陌 文王之治掃地盡矣 雖曰富强 數世而滅亡 䓁是岐周而興亡之效謬以千里 鞅烏得辭其罪也 (『星湖僿說』 經史門, “商鞅亡秦”)
나라를 부(富)하게 하고 군대(兵)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결국 그것은 바로 사리사욕(私利)을 위한 구실(題目)이 되고 만다. 부를 말하고 강(强)을 말하면 분명 인의(仁義)의 어떤 모습도 볼 수 없지만, 인의를 말하면 부와 강은 그 가운데 있다.
상앙(商鞅)은 부강에 뜻을 두고 마침내 이루었으니, 진(秦)나라에 공을 세웠다(有功)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 종(말에 기여하였다.) 진나라를 망친 자는 바로 상앙이다. 그것도 인의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진나라가 기주의 옛 기초를 헤아리고 다시 문왕의 정치를 시행했다면 또한 천하의 왕이 결코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법도 없다.
맹자는 상앙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 이때는 제나라에서 등(齊滕)나라까지 정전법(井牧)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는데, 오직 상앙만이 천맥을 헐었다(決裂)고 한다면, 생각컨대 (거기에는) 아직 성인의 유제(遺制)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의 정책)이 인의와 어긋남(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이다.
패업 달성에 이르자 부(富)가 지나쳐 사치가 되고, 강(强)이 지나쳐 교만이 되었다. 사치하면 반드시 무거운 세금을 거두게 되고, 교만하면 반드시 사람을 학대하게 된다. (이러한) 악습이 시황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이것은 모두 상앙이 남긴 해독(烈)이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
상앙이 이(=夷禮)를 없애고 마침내 구전(舊典)을 폐지하고 천맥을 열기에 이르자 문왕의 정치는 흔적도 없이 소멸되었다. (진나라는) 비록 부강하다고 일컬어졌지만 몇 세대 못 가서 멸망하고 말았다. 똑같은 기주의 땅이지만 흥망의 결과가 천리만큼이나 차이가 나니 상앙이 어찌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성호사설』 경사문, “상앙망진”)
3 그는 대략 진시황의 중국 통일 130여 년 전 진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해 부심하며 인재들을 구했던 효공에게 발탁되었다. 그는 일종의 노선 투쟁에서 나라를 바꾸기 위해 하, 상, 주 3대의 왕업이든 제(齊) 환공, 진(晉) 문공, 진(秦) 목공, 초(楚) 장왕, 오(吳) 합려 등 춘추 오패의 패업이든 각기 다른 법도와 법제로 이루어졌으므로 ‘반드시 옛 것을 따를 필요는 없다’는 말로 효공의 지지를 받으며 변법 시행을 관철시켰다. 그는 개혁을 위해 법의 권위와 믿음에 대한 원칙을 내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변법을 시행한 결과 한편으로는 변법이 국경 지역까지 철저히 시행되었고, 다른 한편 진나라의 국력은 급속하게 신장되었고 패주의 지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자신이 변법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변법의 중요한 내용들은 1) 세금, 징병, 연좌제를 위한 오가작통법, 2) 중농정책을 위한 분가와 정전제 폐지, 3) 노예제 폐지(시행되지 못함), 4) 귀족의 세습적 지위를 타파하는 군공수작제 등이다.
4 『史記』 秦本紀, 孝公 七年(『사기』 진본기, 효공 7년)
5 천맥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 논쟁은 해결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위전개천맥’에서 천맥을 연 목표가 농지 확장임을 시사한다는 점이다.
6 13절은 이렇게 번역할 수 있다. ‘그 (땅)에 그 (땅의) 10분의 1이 아직 (남아) 있어도 그것은 돌기둥(맛쩨벳)이 무너질 때 거기 있는 밤나무나 상수리나무처럼 타버릴 것이다. 거룩한 씨가 그 (땅)의 돌기둥이다.’ 이것은 심판의 철저함을 일러주고 왜 심판을 당하는지 암시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여기서 ‘남은 자’ 사상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이 구절은 그것과 아무 관련이 없다.
김상기 |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나와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과 독일 뮌스터대학교 신학부에서 구약학으로 박사학위(Dr. Theol.)를 받았다. 감신대와 한신대에서 강의하며, 백합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위기Ⅰ‐대한기독교서회 창립100주년기념 성서주석』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기도』 외 다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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